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0) 제 1 부

우리가 교제한 각 방면의 주제는 모두 일상생활의 실제 내용과 관련된다. 그 내용을 듣고 진리는 공허한 것이 아니고 구호도, 일종의 이론도 아니며 지식은 더더욱 아님을 느끼지 않았느냐? 진리는 무엇과 관계가 있느냐? (우리의 현실 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진리는 현실 생활과 관계가 있고, 현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과 관계가 있다. 진리는 인성 생활의 모든 측면과 관련되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온갖 문제와 관련되며, 나아가 사람의 추구 목표 및 사람이 걸어가는 길과 관련된다. 그 어떤 진리도 공허하지 않고, 있으나 마나 한 건 더더욱 아니다. 모두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일부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될 때, 만약 우리가 교제한 진리 원칙을 근거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너는 진리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만약 일상생활에서 진리와 관련된 이런 문제에 대해 여전히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사상 관점을 고집하고, 본인 인성의 각도에서 그 일들을 바라본다면, 또 그 일들을 바라보는 원칙과 근거가 진리와 관계가 없다면 분명히 너는 진리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그와 관련된 주제는 모두 각 방면의 일에 대한 사람의 잘못된 사상 관점과 관념 상상을 바로잡고 되돌려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올바른 사상 관점을 지니게 해 준다. 또한, 현실 생활에서 발생하는 그런 일을 언제나 올바른 각도와 입장에 서서 바라보고, 그런 다음 진리를 준칙으로 그것들을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설교를 듣는 이유는 도리와 지식을 갖추기 위한 것도, 견문과 식견을 넓히기 위한 것도 아닌,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목적은 사람이 사상적, 정신적으로 혹은 인성 면에서 충실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 현실 생활과 괴리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일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해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기 위함이다. 만약 오랫동안 설교를 들어서 도리와 지식이 좀 늘고, 정신세계도 충실해지고, 사상의 차원도 조금 높아졌지만,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만났을 때 여전히 올바른 각도에서 그런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또한 꾸준히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진리 원칙대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처신하지 못하고,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분명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진리 실제에 진입한 사람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아직도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네가 아직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현재 너희의 실제 분량, 너희의 상태에 근거했을 때, 너희는 어느 방면에서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고 느끼느냐? 어느 방면에서 구원받을 희망이 생겼느냐? 어느 방면에서 아직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고 구원받는 기준에 한참 이르지 못했느냐? 이런 것을 판단할 줄 아느냐?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여 하나님 집 이익에 손해를 입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정의감도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충성심도 없어서 나서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 근본적인 옳고 그름과 관련된 문제에서 별로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저는 구원받는 기준에 전혀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현실의 문제다. 다들 더 얘기해 보아라.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버리는 것과 관계된 문제를 통해 자신의 분량을 인식한 것 말고, 또 다른 방면은 없느냐?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일 중에서 본인이 실제에 진입하지 못해서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 못했다고 느낀 일, 비록 도리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진리를 잘 몰라서 길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원칙을 지킬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꽤 오래 본분을 이행하면서 저는 제가 가정도 직장도 버리고, 부모와 가족에 대한 정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 놓이니까 제 안에 아직도 정이 남아 있어서 곁에서 부모님을 보살피며 효도하고 싶고, 그러지 못하면 속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근에 부모는 내 채권자가 아니라고 하신 교제를 듣고 나서야 제가 이 방면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누가 얘기해 보겠느냐? 너희는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점이 없느냐? 아니면 딴 세상에 살고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냐? 본분을 이행할 때 어려운 점이 없느냐? 건성으로 대충 임하는 경우는 없느냐? (있습니다.) 육적인 안일함을 탐한 적은 없었느냐?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 사역한 적은 없었느냐? 늘 자기 앞날과 훗날을 걱정하고, 그것 때문에 마음 졸이고 조바심을 내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했느냐? 진리로 해결할 수 있었느냐? 발탁되었을 때 자신에게 여지를 남겨 둔다든가, 해임되었을 때 앞날과 종착지를 걱정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하며, 관록을 내세운 그런 문제는 없었느냐?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하느냐? 사욕에 따라 행하느냐, 아니면 진리 원칙을 지키며 육과 패괴 성품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느냐? (하나님, 그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육적인 기호나 패괴 성품에 따라 행하면 안 된다는 점을 도리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양심적으로 자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면 행위 면에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을 바라보는 제 관점에 변화가 생겨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가끔 개인적인 욕심이 앞설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너무 어렵습니다. 용을 써서 실행하려 해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때는 패괴 성품을 따르게 되어 표면적인 좋은 행위조차 보이지 못합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이냐? 마지막에 진리를 실행하여 굳게 섰느냐, 아니면 실패했느냐?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반성하고 통회했느냐? 그런 일이 또다시 생겼을 때 조금 개선할 수 있었느냐? (실패하고 난 뒤에는 양심상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에게 대조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그런 상황을 만나자 또다시 패괴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이쪽 방면에서는 크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지 않느냐? 너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똑같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이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양심의 작용으로 행위가 조금 개선되거나 혹은 당시 배경과 내적 상태에 따라, 기분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상한 행위를 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비열한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 밖의 실행은 진리와 관계가 없다.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이것이 한 사람의 분량을 의미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건 어떤 분량이냐? 어린 분량이냐, 아니면 연약함이냐, 인성의 결함이냐, 아니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모습이냐? 그건 어떤 것이냐? (어린 분량입니다.) 분량이 어리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량이 작은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작으냐? 네가 이 일에서 아직도 진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진리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네 생명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는 아직도 문자나 도리, 말에만 머물 뿐, 네 내면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고 네 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네가 깨달은 소위 그런 진리는 일종의 도리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너는 이 도리를 네 실제로 바꾸지 못해서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진리에 따라 그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에 따라, 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처리했다. 그러니 적어도 그 일에서 네가 진리도 없고, 생명도 얻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생명을 얻지 못했으니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으니 그 일에서 전혀 구원받지 못한 채 여전히 사탄의 권력 아래 살아가고 있다. 양심의 작용으로 실행해 낸 것이 좋은 행위이든, 아니면 일종의 모습이든, 모두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정상 인성의 모습에 불과하다. 그런 모습에 양심이 섞여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좋은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양심의 작용조차 주도하지 못하고 패괴 성품이 주도한다면, 그런 건 좋은 행위가 아니라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어떤 일에서 진리가 실제가 되고, 생명을 얻었느냐? 또 어떤 일에서 아직 너희 생명이 될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리가 실제가 되지 못했느냐? 다시 말해, 어떤 일에서 하나님 말씀을 살아 내고, 또 하나님 말씀을 준칙으로 삼고 있으며, 어떤 일에서는 그러지 못했느냐? 얼마나 되는지 세어 보아라. 만약 그걸 다 세어 봤는데 불행하게도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한 일,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살아 낸 일은 하나도 없고, 모든 일이 혈기나 관념, 육적인 기호와 욕망에 따라, 혹은 패괴 성품에 따라 한 것이라면, 최후의 결과가 어떻겠느냐? 좋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오늘날까지 오면서 여러 해 동안 설교도 듣고, 가정도 직장도 버리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렀는데, 만약 이런 결과를 맞이한다면 기뻐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냐, 아니면 슬프고 우려되는 일이냐? (슬프고 우려되는 일입니다.) 진리를 실제로 만들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탄의 패괴 성품에 완전히 통제되어 살아가는, 구원받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신을 성찰할 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생각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열일곱 살 때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서 지금은 마흔일곱이구나. 긴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몇 번 잡혀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 산속 동굴에서도 살고 초막에서도 살았고, 며칠씩 굶은 적도 있고, 잠을 못 잔 적도 많았어.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사역을 하기 위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고생도 많이 하고, 열심히 뛰어다녔지. 난 구원받을 희망이 너무나 크고, 이미 구원받는 길로 접어들었어. 난 정말 행운아구나!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건 다 하나님 은총이야! 생각해 보면 난 세상에서 정말 보잘것없고,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한 번도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거름 더미에서 궁핍하게 사는 나를 발탁해서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게 하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행운을 누리게 해 주셨어. 하나님은 나를 높여 주셨고, 나를 사랑하셔! 지금은 또 진리를 이렇게 많이 깨닫고 사역도 오랫동안 해 왔으니 앞으로 상을 받는 건 기정사실이야. 그걸 누가 빼앗아 가겠어?’ 스스로를 성찰할 때 이런 생각만 한다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너희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만큼 고생도 많이 하고, 많이 뛰어다니고, 사역도 많이 했는데, 왜 지금 어떤 사람들은 믿다가 B팀으로 분류되었느냐? 어째서 수많은 리더 일꾼이 지금 제물을 갚아야 하고, 채무를 안고 있느냐? 어찌 된 일이냐? 이미 구원받지 않았더냐? 이미 진리를 갖추고 생명을 얻지 않았더냐?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하나님 집의 기둥이자 대들보, 하나님 집에서 흔치 않은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 만약 오랜 세월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 생명과 진리 실제를 얻었다면,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본분에 충성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직위가 해제되고 B팀으로 분류되었겠느냐? 채무를 떠안거나 중대한 과실이 기록됐겠느냐? 그런 문제들이 발생했겠느냐? 이건 무척 난처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것이 어떤 문제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이 고생하고 대가를 많이 치른 것은 구원받거나 진리 실제에 진입했음을 나타내는 표징이 아니고, 한 사람에게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이고, 무엇이 진리 실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이냐?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진리 원칙이 있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매사에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독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못 하는데, 바로 진리 원칙을 견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항상 자기 이익을 고려하고, 자신을 위한 퇴로를 생각하고, 자신을 보전하느라 진리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도 너에게는 도리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너란 사람의 값어치를 떠나, 네 삶이 가치 있고 없고를 떠나 최소한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너에게 생명이 없다는 점이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고,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고, 이런 일이 가장 서글프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에게 모든 일을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네가 이행하는 중요한 본분에서,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 원칙과 관련되는 큰일에서는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최소한 이 기준에 도달해야 너에게서 구원의 희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너희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충족하지 못하고, 도달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서글프고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처음 3년은 매일 복받는 일이나 아름다운 종착지를 떠올리며 늘 싱글벙글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많이 헌금하는 등 이런 외적인 좋은 행위는 하나님을 믿으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5년이 지난 후에는 비록 도리를 일부 이해했지만, 진리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준칙으로 삼아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관념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좋은 행위와 양심, 좋은 인성에 기대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이냐? 바울이 걸어간 길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지금 이런 상태에 처해 있지는 않느냐? 이런 상태에 처해 있을 때가 많다면,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듣는다고 한들 소용이 있겠느냐? 어느 방면의 설교를 듣든, 네가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또 일상생활에서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네 정신세계와 인성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설교는 들으나 마나요, 별로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안 들으면 안 되죠. 설교를 안 들으면 하나님을 믿을 때도 기운이 없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운이 안 생기고, 동력도 없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은 들어야 하나님을 믿는 일에 기운도 좀 생기고, 속으로 어느 정도 충족감도 들고 풍부해졌다고 느끼죠.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을 만나거나 소극적이 될 때 동력이 생기고, 대부분의 경우 소극적이 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이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한 것이냐? 몇 년씩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책망하고, 징계하고, 채찍질해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성과는 설교를 듣는 것과 일정 부분 관계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이 단지 너희가 매번 설교를 듣고 난 뒤 마음속에서 곧 꺼지려던 불이 되살아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뿐이 아니다. 기운이 생기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기운이 생기는 것은 그것으로 악을 행하고, 진리 원칙을 어기라는 것이 아니라 더욱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을 가지고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원칙을 향해 노력하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설교를 들으면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느냐? 매번 설교를 듣고 나면 마음속에 불이 지펴진 것 같고, 충전이 되고 바람이 넣어진 것 같다. 기운도 충분해지고, 앞으로 어느 방면에 힘을 내야 할지도 알겠고, 언제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소극적이 되지 않고, 좀처럼 연약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이런 모습이 구원에 이르는 조건은 아니다. 구원에 이르는 조건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 하고, 설교를 들으려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네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그 어떤 크고 작은 일이든, 특히 본분 이행과 관련된 일, 하나님 집의 중요한 사역과 관련된 일은 모두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너희에게 싫은 기색 없이 계속 진리를 교제하고 여러 가지 일의 원칙을 설명해 주는 목적은 능력이 안되는 일을 억지로 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너희에게 기운만 불어넣고 끝내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근거가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일이 닥쳤을 때는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상 관점, 사람의 지식을 따라 처리할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이 그것들을 대신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가장 주된 방식이다. 즉, 네가 만나는 모든 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와 원칙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일에서 왕권을 잡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처리하고 해결해야지 사람의 머리나 기호에 의지해서도 안 되고, 사람의 입맛이나 야심, 욕망에 근거해 대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설교하고 진리를 교제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사람 내면에 만들어 줌으로써 진리가 실제가 되는 생명을 사람이 갖추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의 표징이다. 어떤 일을 만나든 진리 원칙과 하나님 말씀에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이고 슬기로운 사람이다. 항상 외적인 행위와 형식, 도리와 구호에만 노력을 쏟는 사람들은 모두 미련한 사람이고, 구원받고자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일을 너희는 전혀, 혹은 거의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 원칙을 실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서 마음이 거의 텅 비었다. 너희는 이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을 만날 때마다, 특히 어떤 큰일을 만나고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늘 수동적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사심과 감정에 따라 그 일을 대하고, 나서서 교회 사역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되거나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이런 일들을 추궁하지 않으면 어물쩍 넘어가게 되고, 책임을 추궁하면 네가 본분에서 물러나든가, 아니면 본분이 조정된다. 심한 경우 B팀으로 분류되고, 심지어 제명되는 사람도 있다. 너희가 바라던 결과가 이런 것이냐? (아닙니다.) 어느 날 정말 본분에서 물러나거나 본분 이행이 정지당하고, 좀 더 심하게는 보통 교회나 B팀으로 가게 된다면 너희는 반성하겠느냐?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게 오늘 같은 이런 결과를 위한 것이었나? 나는 직장도, 앞날도, 가정도 내려놓았어. 그렇게 많은 것을 버렸는데 설마 B팀으로 분류되고 제명당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겠지? 내가 하나님과 맞서려고 하나님을 믿었나? 그게 내가 하나님을 믿은 목적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었을까?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건 접어 두고, 최소한 생명을 얻고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최소한 어떤 방면의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내 생명이 되었는지 느낄 수 있고, 진리에 따라 살아갈 수 있고, 진리로 사탄을 물리치고 내 패괴 성품을 물리칠 수 있으며, 내 육을 저버리고 내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어. 일이 닥쳤을 때 절대적으로 진리 원칙을 견지하고, 패괴 성품에 기대서 행동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어떠한 어려움과 방해도 없이 매우 순조롭게,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거야. 이 방면의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이미 내 안에 만들어져서 내 생명이 되고, 내 인성의 한 부분이 된 것을 확실히 느껴. 이것은 즐거운 일이자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야.’ 너희는 평소에 이런 느낌을 받느냐? 하나님을 믿는 동안 받은 고통과 치른 대가를 생각하면서 속으로 아주 만족하고,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느끼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 말이다. 너희는 이런 느낌을 받고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느냐? 만약 그런 게 없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부터 열심히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추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추구해야 하느냐? 어떤 일에서 자주 하나님을 거역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하나님은 몇 번이고 너에게 상황을 마련해서 공과를 배우게 하고, 그 일을 통해 너를 변화시키고 하나님 말씀을 네 안에 만들어서 네가 이 방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네가 그 일에서 사탄의 패괴 성품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하나님 말씀을 네 안에 만들어서 네 생명이 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살아 내지 않았다. 너는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구원받을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잃어 갔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겠느냐? 오늘부터 네가 반성할 수 있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문제에서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진리 실제와 생명으로 삼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육을 저버리고, 자신의 기호를 버리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실행의 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앞으로 열심히 추구할 생각만 하고 구체적인 실행 길이 없다면 다 헛일이다. 반면 네게 구체적인 실행 길이 있고, 또한 이렇게 육을 저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만약 네가 이렇게 실행하는 대신 여전히 낡은 길을 걷고, 낡은 생각에 따라 살아가고, 패괴 성품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할 필요가 없다. 네가 기꺼이 봉사자가 되겠다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 구원받는 일이 너와 관계가 없고, 너도 여기에 관심이 없다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만약 네가 정말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여러 가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념, 행동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일상생활에서 너에게 마련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감찰과 검증,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차츰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고, 차츰 하나님 말씀이 네가 일상생활에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준칙이 되도록, 네 생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이고,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이다. 듣기에는 아주 쉽고, 그 절차도 장황하지 않고 매우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의 내면에는 옹졸함, 부정한 방법, 이기심과 비열함, 패괴 성품, 각종 수법 등 패괴된 것이 너무나 많은 데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 있고, 또 사회에서 배운 처세 철학, 음모와 수단 및 인성적인 결함과 문제 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먹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 너무 불량한 사람,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경솔하고 충동적인 사람 등 많은 문제들이 있고, 인성상의 많은 결함과 문제를 모두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구원받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여 진리와 생명을 얻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진리를 깨달아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이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며,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을 견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몇 마디 말을 사람은 실행하고 체험할 줄 모른다. 사람의 자질과 지식수준이 어떻든, 나이가 많든 적든, 하나님을 몇 년을 믿었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이 옳고, 목표와 방향이 옳다면, 네가 추구하는 것, 네가 치르는 대가가 모두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틀림없이 진리 실제일 것이고, 생명이 되는 하나님 말씀일 것이다. 우선 목표를 확정하고 그런 다음 차츰 그 길을 따라 실행한다면 마지막에 반드시 수확이 있으리라는 것을 너희는 믿느냐?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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