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제 2 부

지난번 예배 때는 어디까지 교제했느냐? (지난번 예배 때, 하나님께서 ‘가정에서 비롯되는 짐 내려놓기’라는 화제에 관해 교제해 주셨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후손에 대한 기대 내려놓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두 단계로 나누어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부모의 태도였고, 또 하나는 자녀가 성년이 된 후 부모의 태도였습니다. 자녀가 미성년자든 성인이든 부모가 보여 주는 태도와 행동은 사실 전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늘 자식의 운명을 통제하려 하고, 자식의 생활에 개입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식이 어떤 길을 걸어갈지, 무엇을 추구할지는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식의 운명 역시 부모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께서는 일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식이 어떤 시기에 있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나머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정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난번에는 부모가 자식 세대에 거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교제하였다. 물론, 그 기대는 전부 사람의 뜻이고 인위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안배한다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부모의 그런 기대는 인성적인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니 마땅히 내려놓아야 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아무리 커도, 그 기대가 아무리 당연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진리에 위배되는 한, 사람은 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 또한 부정적인 사물이며 정당한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부모의 책임에 어긋나고 부모의 책임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또 비현실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기대이자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에 우리는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비정상적 행동과 태도, 그리고 과격한 행위 때문에 자녀에게 갖가지 부정적인 영향과 압박을 주며, 어린 자녀에게 육체적, 정신적, 심적 학대를 가하게 된다고 교제하였다. 이런 일은 부모의 그런 행동이 부적절하고 부당함을 알려 준다.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내려놓아야 하는 사상이자 행동이다. 인성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미성년자에 대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육체적, 정신적 학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위해 그들의 미래와 운명을 계획하고 주재하고 배치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난번 시간에,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게 다해야 할 주요 책임 두 가지를 언급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 두 가지를 잘해 낸다면 책임을 다한 것이고, 잘해 내지 못한다면 아이를 어떤 예술가나 인재로 키웠을지라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든, 그로 인해 머리가 하얗게 세든, 과로로 병에 걸리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심혈을 쏟아붓든, 얼마나 많은 돈을 썼든 책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게 다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냐? 두 가지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느냐? 기억하는 사람이 있느냐?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두 가지 측면의 책임에 관해 교제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자식의 육체적 건강을 보살펴 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식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지도하고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간단하냐! 사실, 아이의 육체적 건강을 보살펴 주기는 쉽다. 아이가 어디 부딪히지 않게 하고, 음식을 잘못 먹지 않게 하며,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고, 부모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건강하게 배불리 먹여 주고 잘 쉬게 해 주면 된다. 또 되도록 병에 걸리지 않게 하고, 병에 걸리면 바로 치료해 주면 된다. 부모는 보통 이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임무는 쉬운 것이다. 이 기준은 동물도 도달할 수 있으니, 만약 사람이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동물보다 못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동물조차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더없이 가련할 것이다. 이는 자녀의 육체적 건강을 보살피는 측면의 책임이다. 자녀의 심적 건강에 대한 것 또한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동안 다해야 할 책임이다. 여기에는 자녀가 신체적으로 건강할 경우 사상적, 심적으로도 건강하게 하고, 문제를 생각하는 방향과 방식 등이 모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 되게 하는 것,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급진적이거나 치우치거나 적대시하지 않게 하는 것 등이 있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부모의 말을 알아듣고 부모와 간단하고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하며 새로운 사물에 관심을 보일 때, 성경 이야기를 읽어 주어도 되고, 또는 처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면서 사람으로 처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좋은 아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등을 이해하도록 가르쳐 줘도 된다. 이는 자녀를 심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든가,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든가, 높은 사람이 되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고 고생하며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든가, 권력이 생겨 위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그 부정적인 것들을 주입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일을 말해 주거나 그 나이대에 이해할 수 있고 긍정적인 교육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말라고, 거짓말하는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거짓말하면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 거짓말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알려 주며, 거짓말하는 아이는 나쁜 아이니 모두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최소한 아이에게 정직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려 주어야 한다. 이 밖에,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생각을 갖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타인에 대해 관용을 갖고 어떤 일이 닥치든 인내하고 포용하라고, 제멋대로 굴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만약 악인이나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폭력이나 무력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어린 마음에 폭력적 성향의 씨앗과 사상을 심어 주어서는 안 된다. 부모는 폭력을 싫어하며, 폭력적인 마음을 가진 아이는 좋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사람이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으면 훗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사회에서 제약받고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는 것을, 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이 밖에도 아이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이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무슨 일이든 혼자 힘으로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해야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아이가 그런 긍정적이고 올바른 사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부정적인 사물이 생겨나고 닥치는 것을 보면 그런 행동은 좋지 않다고,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는 좋은 아이가 아니라고, 그런 행동은 부모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행동하면 앞으로 사회에서 법적인 제재에 부딪혀 처벌을 받거나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간단히 알려 주어야 한다. 요컨대, 자녀에게 가장 기초적이고 간단한 처신의 원칙과 일 처리 원칙을 알려 주는 것이다. 적어도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좋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나쁜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은 사람의 모습이고 어떤 일을 하는 게 악행을 저지르는 나쁜 사람의 모습인지 분별하고 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는 가장 기본적으로 알려 주어야 할 것들이다. 이 밖에, 일부 행위는 사람들에게 혐오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점유하거나 훔치거나 몰래 가져다 쓰는 것, 뒤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것,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등은 모두 나쁜 사람의 모습이며,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아이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무슨 일을 하든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된다고,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어서는 안 되며 충동적이고 무모하게 행동해서도 안 된다고, 어떤 일을 하든 그 결과를 생각하라고, 만약 나쁜 결과나 최악의 결과가 예상된다면 이익이나 욕망에 판단력을 잃지 말고 손을 떼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이 밖에도, 나쁜 사람은 보통 어떤 말과 일을 하는지 알려 주어 나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나 판단 기준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쉽게 낯선 사람이 하는 말, 약속을 믿거나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을 알려 주어야 한다. 이 세상과 이 사회는 더없이 사악하여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에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악인과 나쁜 사람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 악인에게 모함당하거나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악인을 경계하고 멀리하게 해야 한다. 이 가장 기본적인 교육에 대해 부모는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올바른 각도에서 지도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는 동안 아이가 몸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이가 심적으로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심적 건강의 표지는 무엇이냐? 올바른 인생관을 갖고 바른길을 걷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성인이 되기 전에 사악한 흐름에 속하는 것들을 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아이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면 부모는 바로 신경을 쓰고, 제때에 고쳐 주며, 정확하게 지도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어릴 때 사악한 흐름 속에서 생겨난 일을 보거나 잘못된 주장, 사상 관점을 듣는다면 분별력이 없어서 그것들을 따르고 모방할 수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바로 알아채서 가능한 한 빨리 바로잡아 주고 올바르게 지도해 주어야 한다. 이 또한 부모의 책임이다. 요컨대, 자녀가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혹은 사람으로 처신하고 남들을 대하고 각 부류의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긍정적이며 올바른 발전 방향을 갖게 해서 나쁜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방인들은 “생사는 운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이 평생 얼마나 누리고 얼마나 고생할지는 전부 하나님이 정한 것으로, 사람은 바꿀 수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 주는 한편, 사람이 평생 육의 먹고 입는 것을 위해 살아가서도, 더욱이 향락을 위해 살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을, 먹고 마시고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오직 육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과 향락만 위한다면 그런 사람은 산송장처럼 삶에 아무 의미도 없으며,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도, 사람으로 처신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자녀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바른 일을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물론, 자녀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이며, 성년이 된 후 교회 생활을 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자녀가 그런 사람이라면 부모는 마땅히 하나님이 알려 준 원칙대로 미성년 자녀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이가 하나님을 믿을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인지 모르겠다고 해도 최소한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다해야 한다. 네가 모르는 것, 밝히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대한 부모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네가 알고 있는 긍정적인 사상과 사물을 자녀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의 심적 성장이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고, 건강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기대와 양성, 또는 압박 속에서 각종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 심각한 경우, 어떤 부모는 자녀와 함께 각종 문예 대회, 지식 대결, 기술 경기에 참가하며, 사회의 각종 트렌드를 따라 기자 회견이니 사인회니 세미나니 무슨 대회니 시상식이니 하는 등에 참석하기도 한다. 부모라면 최소한 자녀가 자신과 함께 이런 일을 하지는 말게 해야 한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이런 일을 한다면 이는 분명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대놓고 자녀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이끄는 것이며, 자녀의 마음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를 어디로 이끌겠느냐? 사악한 흐름 속으로 이끈다. 이는 부모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이 밖에, 부모는 자녀가 장차 걷게 될 길이나 종사하게 될 직업에 대해 “저 피아니스트를 좀 봐. 저 사람은 네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대. 놀지도 않았고, 친구도 장난감도 없이 매일 피아노만 연습했다지. 부모가 피아노 수업에 데려가고, 선생님들을 찾아 주고, 온갖 피아노 대회에 참가시켰대. 봐 봐, 얼마나 성공했니. 생계 걱정도 없는 데다가 어디를 가든 환영받고 존중받잖아.”라는 말 따위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교육이 자녀를 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키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교육이겠느냐? 마귀식 교육이다. 어린 마음에 이런 교육은 일종의 학대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가 명인이나 각종 영광, 명예, 지위, 누림을 동경하게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지향하고 추구하게 하며, 그것을 위해 초조해하고 속 끓이고 걱정하고 심지어는 온갖 대가를 치르게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각종 예체능을 배우느라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시간을 지불하고 그것을 얻는 것이다. 미성년 자녀는 사악한 흐름이 숭배하는 것들에 대한 저항력이 없으며, 당연히 분별력도 없다. 그러니 부모는 미성년 자녀의 보호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여 아이가 세상의 사악한 흐름에서 비롯된, 모든 부정적인 사물에서 비롯된 갖가지 관점을 분별하고 막아 내게 하는 한편,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가르쳐야 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생각이 있는 법이다. 나이가 어린 일부 자녀의 경우, 부모가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 못하게 해도 마음속으로 추구하려고 한다. 자녀의 생각은 자녀의 생각이고 부모는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생각을 규범화해 주는 한편, 그 생각이 올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인도해 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아이가 부모 말을 들을지 안 들을지, 커서 부모가 가르친 대로 하려고 할지는 그 아이에게 달린 일이니 부모는 간섭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요컨대,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심적으로 건강하고 합리적이며 긍정적인 사상 관점과 인생 목표를 수립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는 부모의 책임이다.

어떤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자녀를 잘 가르치지 못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되는대로 살아왔어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했죠. 사실 지금도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칠 줄 몰라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알고도 실행하지 않고, 늘 자녀가 출세하도록 가르치며 “우리 세대는 끝났습니다. 저는 제 자식들이 저보다 뛰어났으면 좋겠어요.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도 있잖아요. 대대로 더 나아야죠. 저는 지금 과장까지 올라왔지만, 제 아이는 나중에 시장이나 성장(省長), 나아가 상류 사회에서 고위 공무원이나 대통령은 돼야죠.”라고 말할까 우려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으니 대화를 하지 마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모의 책임은 긍정적이고 올바른 것, 진리와 관계된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자녀에게 책임을 다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처음부터 배우면 된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성인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도 어렵겠느냐? 자기가 배우면서 가르치고, 배운 것을 바로 써먹으면 쉽지 않겠느냐?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쉽다. 특히 자녀의 심적 건강 측면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설령 만점은 받지 못할지라도 가르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어리고 철이 없는 자녀에게 직접 TV나 각종 정보의 원천에서 정보를 얻으라고 하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고 하면서 교육하지도, 규범화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고,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의 책임과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에게 책임을 다할 때는 수동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 자녀의 심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학문, 또는 진리와 관계된 기본 원칙을 처음부터 주동적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 이런 것은 다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들을 배우는 것이 헛되지는 않다. 배우는 과정에서, 또 자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너 자신도 얼마간 수확이 있을 것이다. 자녀의 심적 건강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가르치는 동시에 너 또한 성인으로서 긍정적인 사상을 접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긍정적인 사상이나 각종 처신과 일 처리 원칙, 준칙을 참답게, 진지하게 대하면 부지중에 수확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절대 헛수고가 아니다. 자녀는 남이 아니니 정과 혈연관계에서 출발하여 마땅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 책임을 다했다면, 자녀의 행동이나 태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너 자신은 수확을 얻었을 것이다. 자녀 교육이 어떤 것인지, 자녀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이미 책임을 다했으니 말이다. 자녀가 나중에 어떤 길을 걸을지, 어떤 사람이 될지, 평생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등은 너와 관계없는 일이다. 아이가 성인이 된 후 겪는 인생과 운명에 대해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쪽에서 지켜보는 것뿐 거기에 개입할 의무나 책임조차 없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 몇 가지 일을 제때 규범화하고 가르치고 인도하지 않았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네가 생각지도 못한 언행이나 사상, 행위를 보인다면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에게 항상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고 석사, 박사도 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찾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거야. 그럼 그 후로는 편하게 살 수 있단다.”라고 가르쳤다고 해 보자. 아이는 네 가르침과 격려 속에서, 그리고 네가 주는 갖가지 압박 속에서 네가 만들어 준 궤도대로 살아가고 추구했으며, 네가 바라는 대로 당시 네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믿고 일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갖게 되었다. 네가 이제 와서 아이에게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면, 그는 도리어 반박할 것이다. “지금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당신이 바라던 것 아닌가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또 그렇게 요구하셨고요. 그런데 이제는 왜 또 그러지 말라는 거죠? 제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는 지금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하고 있고,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 기뻐하고 흡족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셔야죠!”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심정이겠느냐? 울어야겠느냐, 웃어야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할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이가 어릴 때 네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선사했더라면, 어떤 압박도 주지 않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거나 고위 공무원, 부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명리와 지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면, 많은 돈을 벌고 누리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했다면,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면 족하다고 했다면 어쩌면 하나님을 믿게 된 부모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그는 더 즐겁게 살아갈 것이며, 그렇게 큰 삶의 스트레스도, 사회로부터 오는 수많은 압박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명리니 뭐니 하는 건 얻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부모의 거듭된 충동질과 종용, 그리고 압박 속에서 한결같이 지식을 배우고 재물과 명리를 추구해 왔다면, 결국 명리와 지위를 얻고 누리면서 잘살고 돈도 많이 벌겠지만 삶이 무척 피곤할 것이다. 너를 만날 때마다 피폐한 몰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집이나 부모 곁에 돌아갈 때만 가식의 가면을 벗고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 문밖으로 나가면 다시 가면을 써야 한다. 너는 그의 피폐하고 딱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를 돌아오게 할 힘이 전혀 없으며, 이미 돌이킬 수도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네 가르침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알고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이는 너의 가르침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자식의 그런 얼굴, 그런 생활 상태를 보면 괴롭지 않겠느냐? (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네게는 힘이 없으니 후회와 괴로움만 남을 뿐이다. 너는 아이가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돌아올 수 없다고, 네게는 돌이킬 힘이 전혀 없다고, 이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네가 아이를 망쳤고 네 잘못된 사상 교육과 인도가 아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후회만 남을 것이다. 자식이 고생하며 이 사악한 사회에 패괴되고 삶에서 비롯된 각종 압박을 견디는 것을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면서도 아무 방법이 없으니 그저 “집에 자주 들르렴. 맛있는 거 해 주마.”라고 말할 뿐이다. 네가 해 준 밥을 먹는다고 무슨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그는 이미 사상이 성숙하고 형태를 갖췄으니 손에 들어온 명예와 지위를 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곧장 나아갈 뿐 돌아올 수는 없다. 이는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그릇되게 지도하고 잘못된 사상을 주입해 야기한 나쁜 결과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미성년일 때, 부모는 마땅히 책임을 다하여 아이의 심적 건강에 도움을 주고, 아이의 사상과 행위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네가 “저는 자녀 교육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책임을 다하는 것도 못하겠느냐? 만약 네가 정말 이 세상과 사회를 꿰뚫어 본다면, 명리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꿰뚫어 보고 세상의 명리를 버릴 수 있다면 자기 자식을 보호해야지 미성년 자녀가 사회에서 비롯된 그런 그릇된 사상을 너무 일찍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 사회에서 어떤 부자는 자산이 수백억이고, 어떤 부자는 어떤 슈퍼카를 끌며, 어떤 사람은 얼마나 높은 직위에 올랐고 얼마나 많은 돈이 있고 집에 차가 몇 대나 되는지, 또 어떤 것들을 누리는지 등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 중학생이야. 그런데 나중에 대학교에 간 후에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쩌지? 일자리를 못 구해서 으리으리한 집이나 좋은 차를 못 사면 어떡해? 돈이 없으면 어떻게 남들 위에 설 수 있겠어?’ 이렇게 고민하면서 사회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호화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자녀가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의식했을 때는 이미 사회에서 비롯된 각종 정보와 일, 현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어린 마음에 압박감을 느끼고 고민하며, 자신의 미래를 계산하고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이를 위로하고 이끌어 주며, 어떻게 그런 일을 올바로 바라보고 처리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해 주어야지 어릴 때부터 그런 일에 매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이런 일에서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어떻게 해야 자녀에게 이런 일들을 잘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 요즘 아이들은 사회의 갖가지 일들을 너무 일찍 알게 되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가수나 배우, 축구 선수, 인플루언서, 부자, 수백억 재벌, 억대 자산가 등이 돈을 얼마나 벌고 뭘 입고 어떤 것을 누리는지, 집에 슈퍼카가 몇 대나 되는지 등을 요즘 아이들은 많이 알고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이 번잡한 사회 속에서 부모의 책임을 다해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 한편, 아이가 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이런 일을 알게 될 때, 혹은 건전하지 않은 정보를 듣고 접할 때 부모는 아이가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갖도록 지도하고 그런 일에서 바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 최소한 아이에게 가장 간단한 이치 하나는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너는 지금 아직 어리잖니. 네 나이 때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거야.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지, 뭘 살지 등은 신경 쓸 필요 없단다. 그건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니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이 맡긴 일을 잘해 내고, 네 생활 속의 일들을 착실하게 하면 그만이야.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그런 일들은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접하게 됐을 때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야. 지금 사회의 그런 일들은 다 어른들 일이야. 너는 미성년자니까 그런 일은 생각하지도, 참여하지도 말아야 해. 지금은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 말을 잘 듣기만 하렴. 부모는 어른이니까 너보다 아는 게 많잖니. 그러니까 부모 말을 듣고 따라야지. 사회의 그런 일들을 알고 네가 모방하고 좇게 되면 학업과 공부에 도움이 안 돼. 공부에 지장을 주게 되겠지. 네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든, 어떤 일에 종사하든 그건 나중 일이란다. 지금 네 의무는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학업을 마칠 수 없고, 좋은 아이가 될 수 없어. 그러니 다른 일은 생각하지 말렴. 다른 일은 다 너와 관계가 없으니까. 어른이 되면 어떤 일은 자연히 알게 된단다.” 이는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이치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자녀에게 “지금 네 의무는 먹고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거야. 공부하지 않는다면 허송세월을 하게 되고, 학업을 망치게 돼. 사회의 그런 먹고 마시며 노는 화려한 것들은 다 어른들의 일이란다. 미성년자는 그런 일을 하면 안 돼.”라고 알려 주어라. 아이가 이런 말을 들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는 아이가 이런 일을 알아 가거나 부러워할 권리를 박탈하지 않으며, 이와 동시에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이런 식의 자녀 교육이 좋지 않으냐? (좋습니다.) 간단하지 않으냐? (간단합니다.) 부모는 이렇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조건, 자질에 따라 최대한도로 미성년 자녀를 교육하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자녀에게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온 힘을 다해서 말이다. 이는 엄격하지도, 가혹하지도 않은 기준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마다 가정 조건이나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책임을 다하는 데는 각자의 방법이 있다. 효과가 좋고 성과가 나는 방향으로 행하되 자녀의 성격이나 나이, 성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해라. 어떤 경우는 엄하게, 어떤 경우는 완곡하게, 어떤 경우는 강하게, 어떤 경우는 부드럽게 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모가 자녀의 상황에 맞춰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어쨌든, 소기의 성과는 자녀의 심적 건강을 지켜 주고, 자녀가 사상적으로나 행위 기준에서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인성에 어긋나거나 성장 법칙에 위배되는 일, 아이의 자질이나 연령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부모가 이렇게 한다면 책임을 다한 것이다. 쉬운 일 아니겠느냐? 이는 복잡한 일이 아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