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제 1 부

지난 예배에서 어디까지 교제했느냐? (지난번 하나님께서는 전통, 미신, 종교 측면에서 가정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내용을 주로 교제하셨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떠날 땐 만두를 먹고 돌아와선 국수를 먹는다.”와 “왼쪽 눈이 떨리면 재물이 들어오고 오른쪽 눈이 떨리면 재난이 닥친다.” 등의 미신적인 말을 교제하셨고, 새해와 명절의 전통 풍습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교제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이러한 전통적이고 미신적인 주장과 행위를 올바르게 대하는 방법도 교제하셨습니다. 어떤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점을 믿는 한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들이 무엇을 예고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저희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따라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지난번 예배에서 교제한 기본 내용이다. 가정에서 사람이 교육받은 전통, 미신, 종교 측면에 관한 내용에서, 우리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교제했다. 비록 교제 내용이 우리가 아는 중국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전통, 미신, 종교 측면의 화제에 국한되어 여러 민족과 인종을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다양한 지역에 살며 다양한 인종에 속한 사람들이 고집하는 전통, 미신, 종교와 성질이 똑같다. 하나같이 선조가 남긴 전통, 생활습관, 미신적인 말을 생활 속에서 지키는 것이다. 그러한 미신적인 것이 사람의 심리적 작용이든 아니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든 간에 너희가 그것을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미신 뒤에 있는 주요 사상 혹은 본질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영향을 받거나 방해받지 말고,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한다. 미신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미신이 사람의 운명과 사람의 하루하루를 주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영험하든 아니든, 혹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러한 종류의 일을 대할 때는 진리에 부합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것에 사로잡히거나 조종당해서는 안 되며, 그것으로 인해 너의 정상적인 추구 목표와 실행 원칙이 방해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전통, 미신, 종교와 같은 화제 중에서도 미신은 사람의 생활과 생각, 그리고 사람이 각종 사물을 대하는 관점을 가장 심하게 방해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보통 미신적인 주장과 정의를 감히 포기하지 못해서 그것이 사람의 생활 방면에 일으키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미신적 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엄두를 못 낸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직 부족하고, 하나님이 만물과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아직 진실로 꿰뚫어 보지도 정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어떠한 미신적 주장이나 미신과 관련된 느낌을 마주했을 때 너는 손발이 묶이게 된다. 특히 그것이 생사와 관련된 큰일이거나 사람의 운세 또는 자기 가족의 생사와 관련이 있다면 소위 미신적 금기와 주장에 손발이 묶여 무척 자유롭지 못하다. 만에 하나 금기를 어겼는데 만에 하나 그것이 영험하면 자기에게 모종의 액운이 닥치거나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봐 항상 두려워한다. 사람은 미신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그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더욱이 갖가지 미신적 말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신이 사람의 생활에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파하지 못하는 것도 물론이다. 사람의 태도를 보면, 그리고 미신에 대한 사람의 이러한 사상 관점을 보면, 사람의 사상 의식과 사상 관점은 여전히 상당 부분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물질세계 밖의 어떠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사람의 운세나 생사, 그리고 생존과 관련된 미신적 말에 계속 조종당한다. 요컨대, 사람은 내심 그러한 미신적인 말이 진짜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는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주재되고 지배된다는 사실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사람이 여전히 그러한 미신 뒤의 보이지 않는 마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자기 운명을 하나님 손에 맡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탄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평소에 장사하는 사람, 자주 외출하는 사람, 그리고 과거에 관상, 주역 팔괘, 음양학 등의 미신적 활동과 미신적 주장을 믿는 편이었던 사람들은 일상생활, 생존 법칙, 관념 등의 면에서 미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조종당하고, 지배당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미신에서 비롯된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집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달력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살펴보며 혹시 무슨 금기는 없는지 확인한다. 오늘이 장사나 계약 체결, 혹은 주택 매매 등등을 하러 가는 날이면 꼭 달력을 봐야 한다. 보지 않으면 자신이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달력을 보고 나서 일을 하거나 결정을 내려야만 자신이 생기고 마음이 놓인다. 게다가 자꾸 금기를 깨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다 보면 미신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더 확실하게 알고 믿게 되어 미신에 속박당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운명과 운세, 사람의 생사가 미신에 의해 조종된다고,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서 커다란 손이 자기 운세와 생사를 틀어쥐고 있다고 더욱더 믿게 된다. 그래서 그는 미신적인 주장은 무엇이든 굳게 믿는다. 특히 자기 생활 및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내용이라면 더 그렇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입으로는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은 자기도 모르게 늘 각종 미신에 의해 방해받고 조종당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소위 생활 속의 금기, 무엇과 무엇은 상극이라든지 어떤 살이 끼었다는 등의 미신적인 주장을 진리 원칙과 섞어서 지킨다. 미신을 대하는 사람의 이러한 태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하나의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하는 태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하나님이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기꺼이, 어쩔 수 없이 계속 사탄에게서 주입받은, 갖가지 미신에 관계된 생각과 주장에 의해 통제당하고 방해받는 동시에 미신과 관련된 갖가지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교육받은 내용 중 사람을 가장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은 사실 미신이며, 사람에게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미신이다. 그러므로 미신이라는 방면에 있어서 사람은 자기가 가정이나 집안 혹은 종족으로부터 미신 방면의 각종 교육과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실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조사하고 인식하며 살펴봐야 한다. 만약 있다면 그것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은 진리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드러나는 전통적 생활방식의 행동 양식 하나만 해도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하게 사탄의 통제를 받도록 만들 수 있으니 사상적으로 영향력을 지니는 미신적인 주장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더 나아가 한 사람이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꼼짝없이 통제받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전통과 종교 외에 미신에 관련된 일부 사상 관점과 주장 혹은 규율은 모두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즉시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금기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요구, 하나님의 뜻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에 명문으로 선포되었다. 게다가 하나님이 모든 말씀으로 사람에게 알려 주거나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한 것들은 전부 진리와 관련된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괴상한 요소도 없다.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어떻게 할지, 어떤 일에 있어서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할지 알려 줄 뿐이다. 그 어떤 금기도 없고 특별한 사항이나 어떤 주장도 없다.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은 오직 자신의 실제 상황에 근거해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하는 것뿐이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진리 원칙을 지키는 일은 날짜나 시간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 어떤 금기도 없는 것이다. 달력을 볼 필요도 없고 별의 위치를 살피거나 오늘 달이 둥근지 이지러졌는지 신경 쓸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러한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 속에서 사람은 자유롭고 해방되어 있다. 또한, 마음이 평온하고 기쁘며 편안하다. 당황스럽거나 두렵지 않고 억압받는 느낌은 더더욱 들지 않는다. 당황스러움, 두려움, 억압감은 각종 미신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느낌에 불과하다. 진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 그리고 성령 역사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평안과 기쁨, 자유와 해방, 홀가분함과 유쾌함이다. 미신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이와 정반대로, 미신은 너의 손발을 묶는다. 네게 이것도 못 하게 하고 저것도 못 하게 하고 이것도 못 먹게 하고 저것도 못 먹게 한다. 무엇을 하든 옳지 않고 무엇을 하든 금기가 있어서 항상 오래된 책력의 말을 따라야 한다. 지금이 음력으로 언제인지, 어느 날에 무슨 일을 해도 되는지, 외출을 해도 괜찮은지, 심지어 머리 자르기, 목욕하기, 옷 갈아입기,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금기가 있다. 특히 관혼상제, 이사, 일 처리, 취업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책력을 봐야만 한다. 사탄은 갖가지 미신적인 말과 괴상한 말로 사람의 손발을 꽁꽁 묶는다.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것이겠느냐?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사람들 말로 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자기가 제시한 금기와 관련된 말들이 허구가 아니고, 자기가 결정권자이고 한다면 하는 자이니 말을 듣지 않는다면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뜻이다. “할머니가 립스틱을 바르는 것, 본때를 보여 준다.”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 이는 만약 네가 말을 안 듣고 금기를 깨뜨리면 어디 두고 보겠다고, 뒷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러한 금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육에 속한 인간은 영계의 온갖 마귀 사탄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제 너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 네 생각과 네 하루하루의 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은 하나님 손의 주관하에 있다.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지킨다. 너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생활하고 생존하는 것이지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더는 그런 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 반대로 만약 네가 여전히 사탄이 해를 끼칠 수 있을까 봐 두려워하고, 사탄의 말을 듣지 않거나 미신에서 말하는 금기 사항을 믿지 않았다가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곧 네가 여전히 사탄이 네 운명을 통제할 수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이와 동시에 네가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고 기꺼이 사탄의 지배를 받고자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탄이 이 모든 짓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이다. 사탄은 자신의 마력으로 인류를 통제하고 모든 생명체를 통제하려고 한다. 통제의 목적은 유린이고, 유린의 목적과 최종 결과는 집어삼키는 것이다. 물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경배하게 하는 것 역시 통제의 목적이다. 마귀 사탄이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약간의 영험함을 보여 줘야 한다. 예를 들어, 그가 달걀을 똥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치자. 한 악령의 위패에 바쳐진 달걀이 있는데 배고픈 네가 먹고 싶은 마음에 달걀을 빼앗으려 하면 그는 달걀을 똥이 되게 하여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네게 보여 준다. 그러면 너는 두려워져서 감히 먹을 것을 두고 그와 다투지 못한다. 한 가지 일로 그를 두려워하게 되면 다른 일로도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게 될 것이고,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믿게 되면 마음 깊이 그것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일을 하는 목적이 아니겠느냐? 사탄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일을 한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느 인종 사람들이든, 모두가 악령이나 귀신에게 무릎을 꿇고 절한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악령 귀신 앞에 대대로 향불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만약 네가 그 악령 귀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믿으면서 대대로 악령 귀신을 위해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고, 소원을 빌고, 또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냐? 그 악령 귀신이 어떠한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악령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악령들은 너에게 병이 나게 하고, 일이 잘 안 풀리게 만들고, 재앙이 임하게 하고, 집의 소가 모두 병들어 밭을 갈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가족에게 교통사고가 나게 한다. 악령은 너를 괴롭힌다. 괴롭힘이 점점 심해지면 너는 도저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악령에게 무릎을 꿇고 절해야 한다. 기꺼이 자기에게 머리 숙여 굴복하면 악령은 신이 난다. 이때부터 너는 악령의 것이 된다. 사회에서 여우 신선을 모신다느니 영계의 온갖 인물을 모신다느니 하는 위패들을 보아라. 우리는 그것들을 뭐라고 칭하느냐? 악령에 씌었다고 하거나 빙의되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무슨 신선을 모신다고 하거나 무언가가 들러붙었다고 한다. 악령이 들러붙을 대상을 찾을 때 그 대상이 거부하면 악령은 그를 방해하고 교란한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집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적자가 나고 손님이 끊긴다. 도저히 살 수가 없게, 상황이 몹시 어려워질 정도로 악령의 방해를 받으면 그 사람은 결국 백기를 들고 동의한다. 동의하고 나면 악령은 그의 육체를 빌려 일한다. 약간의 이적과 기사를 행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진찰도 해 주고 관상도 봐 준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 주는 등의 일도 한다. 악령은 이러한 수법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패괴시키고, 통제하는 것 아니겠느냐?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러한 미신적인 주장에 대해 이방인과 똑같은 관점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성질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맞았다. 너무나 정확한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너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동시에 미신에 의해 통제되고 방해받고, 더 나아가 미신이 주입한 생각을 추종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미신과 관련된 생각과 사실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다.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탄을 따라 하나님의 주재에 저항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람이 미신을 믿거나 미신을 따르는 것의 본질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미신으로부터 받은 다양한 영향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내려놓기를 실행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것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곧이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에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설사 미신에서 말하는 그 일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방해받거나 통제받지 말아야 한다. 어째서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사탄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하나님이 말씀했듯이 사탄은 너의 털끝 하나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자 사람이 믿어야 할 하나의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네 어느 쪽 눈꺼풀이 떨리든, 꿈에서 이가 빠졌든, 머리카락이 빠졌든, 사람이 죽었든, 그 어떤 악몽을 꾸더라도 사람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그것의 영향을 받거나 그것에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이 예정해 둔 일 또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이 예정해 둔 일, 하나님이 계획해 둔 일은 기정사실이다. 네가 예감했든 아니든, 영계의 마귀 사탄이 네게 어떤 예시를 줬든, 너는 그것에 방해받지 말고 오직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곧 일어날 일 혹은 일어날 리 없는 일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고 하나님의 예정에 포함되어 있다.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무릎 꿇고 경배해야 할 대상은 창조주이지 미신을 영험하게 만들거나 환원할 수 있는 영계의 그 어떤 세력이 아니다. 마귀 사탄이 아무리 신통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어떤 이적을 보인다거나 어떤 일을 영험하게 만든다거나 누구의 예감과 미신적인 주장을 사실로 만들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사람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무릎 꿇고 경배하고 믿어야 할 대상은 마귀 사탄이 아니라 창조주이다. 가정에서 교육받은 전통, 미신, 종교 관련 화제에 대해 사람은 이런 점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전통이든, 미신이든, 종교든 그와 관련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요구와 무관하다면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일종의 생활 형식이든 사상이든, 규례이든, 아니면 일종의 이론이든, 진리와 관계가 없다면 전부 다 사람이 버려야 할 대상이다. 예를 들어, 종교에 관계된 것들은 사람에게 관념적으로 미신이나 전통 혹은 우상 숭배보다는 비교적 고상하고 신성하게 여겨진다. 사람의 관념과 생각 깊은 곳에는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와 같은 종교에 대해 약간의 흠모 또는 호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사람은 종교와 관련된 표지, 기념일, 또 일부 상징적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들을 보배처럼 지극히 아껴서도, 진리를 대하듯이 대하며 무릎 꿇고 절해서도, 더 나아가 마음에 그것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 종교적 표지와 종교 활동, 종교적 경축일과 휴일, 종교적 상징물들, 그리고 종교의 비교적 고상한 주장 등등이 모두 우리가 말하는 종교라는 주제의 범위에 포함된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미신, 전통, 종교와 관련된 것들은 그것이 고상하든 아니면 조금 괴상하든 간에, 진리에 관계되지 않는다면, 진리와 무관하다면 전부 다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것이지 사람이 고집해야 할 것이 아니다. 물론 진리 원칙을 거스르는 주제들은 더욱더 내려놓아야 하며, 절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반드시 가정에서 물들거나 영향을 받은 이러한 것들을 남김없이 내려놓아 그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마침 성탄절에 즈음하여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되면 너는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성탄절 즐겁게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Happy Christmas!” 여기서 “성탄절 즐겁게 보내세요.”라는 말이 괜찮은 것이냐? (괜찮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니까 기념으로 하루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사역과 본분이 아무리 바빠도 잠시 멈추고, 과거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가장 기념비적인 날을 기념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적절하겠느냐? (부적절합니다.) 어째서 부적절하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사역이며, 진리와는 무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도리상으로는 그렇다. 너희는 이론상으로 이 문제의 근원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사실상으로는 어떠하냐? 무엇보다도 간단한 일이건만 너희는 대답하지 못하는구나.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면서 혐오한다. 이렇게나 간단하다. 보아라. 기념일에 이방인은 이런 말을 한다. “Happy New Year!” “Happy Christmas!” 그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You too!”라고 한다. ‘당신도 성탄절 즐겁게 보내라’는 뜻이다.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끝낸다. 그러나 형제자매를 만났을 때는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째서겠느냐? 그것은 이방인의 기념일이고 상업적인 기념일이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거의 모든 기념일이 사실 상업과 관계가 있고 경제와 맞물려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기념일이 단지 전통과만 관계있는 것임에도 20세기에 들어서는 점차 각종 상업적 이벤트로 변질되어 장사꾼이 물건을 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그러한 기념일이 상업적이든 아니면 전통적이든, 결론적으로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 이방인이나 심지어는 종교인들이 그러한 기념일에 얼마나 열중하든, 그 기념일이 어느 나라 혹은 민족 사이에서 얼마나 장중하고 성대하게 치러지든,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기념일도 아니고, 우리가 축하하고 기억해야 할 기념일은 더욱 아니다. 이방인은 물론이고 어느 인종과 민족의 것이든, 어느 시기에 생겨난 전통적 기념일이든 전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의 각 시대 및 부분과 연관된 기념일조차도 우리와는 무관하다. 예컨대 율법시대의 기념일들도 우리와 관계가 없고, 은혜시대의 부활절, 성탄절 등등은 우리와 더더욱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이를 교제하는 것은 사람에게 무엇을 알게 하기 위함이겠느냐? 하나님은 일할 때 기념일이나 그 어떤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유롭고 얽매임이 없이 일하며, 어떠한 금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기념일도 기념하지 않는다. 하나님 본인이 과거에 했던 사역의 시작일이라든지 종료일, 혹은 어떤 특별한 날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그러한 날짜나 날, 시간을 일부러 알게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러한 날들을 기념하지 않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도 그날을 기념하거나 축하할 필요가 없고 그러한 날들을 지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된 그 어떤 날과 시간도 사람은 기억할 필요가 없고 기념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토록 간단하다. 이러면 사람의 생활이 훨씬 홀가분하고 유쾌해지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제에 대한 교제는 사실 누구에게나 속박이 아닌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주제는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사실이자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거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이 지키면 안 되는 이런 것들을 내려놓게 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그것들은 진리를 대변하지 않으며 사람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하나님의 도는 오직 하나, 진리뿐임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가정과 관련된 주제에는 가정에서 받은 영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측면의 내려놓아야 할 것들도 포함된다. 앞서 우리는 가정이 사람의 생각에 주는 영향을 교제했고, 그다음에는 생활 방면의 여러 가지 주장들로 가정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교제했다. 모든 가정은 사람에게 안정된 생활과 성장 공간을 제공하며,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게 안전감과 의지할 곳, 생활의 기본 요소들을 해결해 주는 원천을 제공한다. 사람은 가정에서 감정적으로 필요한 것 외에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 또한 얻는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것과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생활 상식도 얻는다. 사람은 가정에서 아주 많은 것을 얻는다. 그래서 가정은 누구에게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가정이 사람에게 주는 이점은 아주 많다. 그러나 우리가 교제한 내용을 보면 가정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갖가지 부정적 영향과 부정적 생활 태도 및 관점도 많다. 즉, 가정은 네게 육적인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었고, 너를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 주었으며, 감정적인 버팀목과 의지처를 제공했지만 이와 동시에 네게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문제들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벗어나거나 내려놓기 힘든 것들이다. 그것은 일정 부분 네 일상생활과 네 생존에 크고 작은 방해가 되고, 네가 늘 가정에 대해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정적으로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는 동시에 감정적으로 너의 생활을 방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정’이라는 용어에 대해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가정을 그리워하고 가정에 연연하며, 당연히 가정에 깊이 감사한다. 또, 그리워하고 연연하고 감사하는 동시에 가정이 너에게 가져다준 얽매임은 너에게 그것이 아주 골칫거리라고 생각하게 한다. 즉, 성인이 된 사람의 가정에 대한 개념 혹은 생각, 관점은 상대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가정을 완전히 내려놓거나 팽개치고 상관하지 않는다든지 가정 생각을 안 하기로 하면 양심에 찔린다. 그렇다고 가정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어렸을 때처럼 몸과 마음을 전부 가정에 바치자면 그 또한 내키지가 않는다. 사람은 흔히 이러한 내적 상태, 사상 관점 혹은 양상으로 가정을 대한다. 이러한 사상 관점과 양상 역시 가정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교제하려는, 가정이 사람에게 지운 짐이라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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