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제 3 부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무엇을 당부하느냐면, “여자는 말이다,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고 했다. 닭 집에 들어가면 닭이 되고 개집에 들어가면 개가 되어야 하는 거다.”라고 한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닭이나 개가 되라는 것인데, 이것이 올바른 길이겠느냐? 너무나도 확실해서 단번에 분별되지 않느냐? 시집간다는 말은 분명 여자를 의미할 것인데, 여자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다는 것이다. 가정의 교육과 영향으로 여자도 타락을 자초한다. 닭에게 시집가면 정말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정말 개를 따르는 것이다. 올바른 길을 지향하지 않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한다. 비록 부모가 이런 생각을 주입했지만 너는 이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네 처신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물론 이런 측면으로 우리는 결혼 내려놓기라는 주제를 다룰 때 교제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구체적인 해부나 분석은 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부모에게서 비롯되는 이런 잘못되고, 치우치고, 얄팍하고, 어리석다 못해 사악하고 타락한 생각과 관점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방금 이야기한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와 “먹고살려고 시집간다.”라는 말을 분별해야 한다. 부모가 주입한 이런 생각에 잘못 이끌려서 ‘시집가는 건 팔려가는 거야. 남편이 곧 나의 주인이니 하라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내 운명은 그와 함께하는 거야. 그에게 시집간 순간부터 난 그와 한배를 탔어. 그가 좋으면 나도 좋고 그가 좋지 않으면 나도 좋지 않아. 그러니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영원히 맞는 거지. 여자는 독립심이나 추구하는 바가 있어선 안 되고 올바른 인생관을 세우고 올바른 인생길을 갈 생각이나 바람은 더더욱 가져선 안 돼. 분수에 맞게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만이지 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으냐?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라는 말과 같은 뜻인 “한배를 탄다.”라는 말은 네가 시집간 순간부터 네 운명은 그와 함께하니 그가 좋으면 너도 좋고, 그가 좋지 않으면 너도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먼저 “그가 좋으면 너도 좋다.”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이 말이 사실이겠느냐? (아닙니다.) 너희가 반대의 사례를 들어 이를 반박해 보아라. 그런 사례가 있느냐? 떠오르지 않느냐? 그럼 내가 말해 보겠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시집간 뒤 일편단심으로 그를 따랐다. 여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부터 저는 당신의 사람이에요.”라는 것이다. 이 말의 저의는 ‘전 당신에게 팔려 왔으니 제 운명은 이제 당신과 함께합니다’라는 뜻이다. 여자가 타락을 자초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그가 좋으면 너도 좋다.”라는 말이 옳으냐? 그가 좋으면 정녕 너도 좋은 것이냐? 그가 창업할 때 형편이 좋지 않아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어딜 가나 첩첩산중이다. 있어야 할 돈과 인맥은 없다. 가게를 열자니 적당한 곳이 없고 장사를 하자니 시장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아내로서 너는 일편단심으로 그를 따르고 있으니 그가 뭘 하든 싫어하지 않고 무조건 그를 지지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그의 장사가 잘되기 시작해서 가게를 하나둘 열게 되었다. 매출이 오르고 수입이 짭짤해지니 남편이 사장이 되고 부자가 되었다. 그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느냐? 옛말에 “남자는 돈을 벌면 타락한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이 사회, 이 사악한 세상의 현실이다. 남편이 사장이 되고 부자가 되면 타락하기 쉽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남편이 사장이 되고 나서 그의 상황이 좋아지면 네 좋은 날도 끝난 것이다. 어째서 끝났겠느냐? 그의 상황이 좋아지면 너는 걱정될 것이다. ‘밖에서 여자가 생겼나? 계집질하고 다니는 건 아닐까? 그에게 꼬리 치는 사람은 없을까?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네 좋은 날이 끝난 게 아니겠느냐? 지난 몇 년 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고된 날을 보냈다. 고되고 힘든 날이었고, 형편도 좋지 않았으며 몸도 많이 상했다. 사람이 늙으면 볼품없어진다더니 늙은 추녀가 되어 버렸다. 어딜 보아도 귀여웠던 아가씨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그는 생각한다. ‘이제 돈 있고 힘이 있으니 이 정도 조건이면 여자 하나쯤 다시 만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가 너를 싫어하게 되면 마음속에 잡생각이 들고 변해 버린다. 그럼 네가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는 큰 사장이 되었는데 너는 늙은 추녀가 되었다. 두 사람의 지위 사이에 격차가 생기지 않았느냐? 불평등하지 않으냐? 이렇게 되면 너는 그와 안 어울리지 않겠느냐? 그가 자신을 통해 네가 신분 상승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갈수록 네가 싫어지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네 고생길이 열린 것이다. 그는 결국 바라던 대로 다른 여자를 만나 하루가 멀다 하고 외박할 것이다. 집에 온다 해도 너와 싸우다가 문을 박차고 나가버릴 것이다. 한 번 나가면 며칠 동안 연락 두절이다. 그나마 부부의 정이 있어서 용돈과 생활비라도 주면 다행이다. 네가 바가지라도 긁는 날에는 생활비마저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그의 형편이 나아지니 네 운명이 좋아졌느냐? 행복하겠느냐, 불행하겠느냐? (불행합니다.) 넌 불행해졌고 고생길이 열린 것이다. 여자가 이런 일을 당하면 보통 정신없이 울기 마련인데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라는 부모의 말까지 더해지니 참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들이 장성해서 내 억울함을 풀어 줄 때까지 참자. 그때 가서 그를 버려 버리겠어!’ 어떤 여자는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인데, 아들이 커서 힘이 되어 주는 날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자는 그런 날까지 가지 못한다. 아들이 어린데도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꺼져, 이 여편네야!” 너를 밥 동냥하는 거지 취급하면서 집 밖으로 내쫓는다. 그가 좋으면 너도 좋으냐? 너희 둘의 운명이 함께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의 사업이 계속 부진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아 네 지지와 응원, 동반과 내조가 필요했다면 그는 자본도 없고 타락할 기회도 없으니 어쩌면 너를 소중하게 대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잘 안 될 때 네게 안전감이 생기고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결혼의 행복과 온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밖에서 그를 상대해 주거나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네가 바로 그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그가 너를 보배로 여길 것이고 네게는 안전감이 생기게 되니 상대적으로 좋고 행복한 일이다. 만약 그의 형편이 나아지고 날개가 단단해지면 날게 될 텐데 그가 널 데려가겠느냐?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라는 부모의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이는 여자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만약 “그가 옳은 길을 가면 그를 따르고, 그가 옳은 길로 가지 않으면 그를 내쳐 버린다.”라고 한다면 이 원칙은 옳으냐? 이 원칙도 옳지 않다. 네가 그에게 시집가는 것은 그에게 팔려가는 것이 아니며 그를 남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너는 결혼에서 이행해야 할 책임만 다하면 된다. 같은 길을 갈 수 있으면 가고, 같은 길을 갈 수 없으면 이혼하는 것이다. 네 의무를 다했으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네가 책임을 다해 그와 함께할 필요가 있으면 책임을 다하고 그럴 필요가 없으면 갈라서면 되는데, 바로 이런 원칙이다.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라는 말은 사람 잡는 허튼소리이다. 어째서 허튼소리라고 하겠느냐? 원칙 없이, 누구든 분별없이 따르는 것이다. 네가 좋은 사람을 따르면 평생이 살 만하겠지만 나쁜 사람을 따르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그가 어떤 사람이든 네가 결혼이라는 문제를 대할 때는 올바른 입장을 취해야 한다. 너는 진리가 사람에게 알려 준 것만이 사람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고 사람이 존엄하게 살도록 하는 길이자 원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알려 준 것은 그저 정이나 사심에서 비롯된 하찮은 경험이자 수단에 불과하기에 절대 너를 보호해 줄 수 없고 모든 일에 올바른 실행 원칙을 갖게 하지도 못한다.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와 같은 말은 혼인이라는 문제에서 너를 어리석게 만들고 존엄과 올바른 인생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 뿐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네가 구원받는 기회를 잃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말이 너에 대한 관심이 되었든, 보호가 되었든, 그 말이 정이나 사심,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에서 비롯되었든 어쨌든 너는 그들이 하는 여러 말들을 분별해야 한다. 설사 그들의 의도가 너를 잘되게 하려고 하고 보호하려는 것일지라도 너는 아무 생각 없이 미련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잘 분별해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올바른 실행 원칙을 찾아내야지 그들의 말대로 실행하고 처신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기성세대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먹고살려고 시집간다.”라는 말은 더욱 틀린 말이다. 여자가 손이 없느냐 발이 없느냐? 자기 밥벌이도 못 한다는 말이냐? 어째서 남자에게 의지해 먹고살려는 것이냐? 여자가 아둔하더냐? 여자가 남자보다 못할 게 무엇이냐? (아무것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그 무엇도 뒤처지지 않는다. 여자에게는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여자가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데 어째서 먹고사는 것을 남자에게 의지해야겠느냐? 이는 잘못된 생각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잘못된 생각이 주입된 것이다. 여자는 이런 말 때문에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타락을 자초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를 남자에게 의존해서도 안 된다. 물론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가정을 위해 모든 생활비를 책임지고 여자가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할 의무는 있다. 하지만 여자라고 먹고살기 위해 시집을 가서는 안 되고, 이런 생각과 관점을 가져서도 안 된다. 네게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데 어찌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를 남자에게 의존하는 것이냐? 이는 어느 정도 부모의 영향과 가정의 사상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 여자가 만약 이런 가정 교육의 영향을 받았다면 그런 여자는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 남에게 기대어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모의 사상을 받아들여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먹고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서는 안 되고, 해결할 수도 없으니 남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를 두고 타락을 자초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어째서 이런 생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그것이 무엇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냐? 어째서 사람은 이런 측면의 타락한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겠느냐? 남자가 네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면 너는 네 남자를 자신의 주인이나 직속상관, 지배인으로 삼으니 그럼 너는 모든 대소사를 네 지배인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지배인한테 믿어도 되는지 물어봐야겠다. 그가 믿으라 하면 믿고, 믿지 말라 하면 믿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면 이것도 그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가 좋아하면서 동의해야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 싫어하면서 동의하지 않으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지는 남편의 태도와 너를 대하는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편이 이 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남편의 말을 따르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남편이 총명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고 하나님의 양일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그를 따라 덕을 볼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남편이 만약 나쁜 놈이고 적그리스도라면 그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인데 너는 어쩌겠느냐? 그럼에도 믿겠느냐? 너는 귀가 없느냐 머리가 없느냐?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면 네가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남편이 네 운명을 결정해 줄 수 있느냐? 남편이 네 운명을 주재하고 배치하느냐? 네가 그에게 팔려간 것이냐? 사람은 이런 도리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일부 원칙적인 문제가 생기면 항상 자기도 모르게 가정에서 배운 이런 생각과 관점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관점이 네게 영향을 미치면 너는 항상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잘못 판단한 생각에 이끌려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곧이어 잘못된 길을 가게 될 것이며 결국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너는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놓쳤고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쳤으며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다. 너는 무엇 때문에 신세를 망쳤느냐? 표면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미혹되고 영향을 받아 그로 인해 신세를 망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생각 때문에 신세를 망친 것이다. 즉,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닭에게 시집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가면 개를 따른다.”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내려놓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교제한 처세 원칙, 처세 수단, 불문율, 처세술 그리고 종족, 남성이나 여성, 결혼 등에 관련된, 부모나 가정에서 비롯된 사상 관점을 지금 살펴보면 긍정적인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너를 진리 추구의 길로 어느 정도 인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네게 진정한 피조물,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 하나하나가 네게 해를 끼치고 이런 사상 관점의 영향으로 너를 패괴시킨다. 이로 인해 오늘날 사람들의 내면이 여러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에 속박받고 지배당하며 영향을 받고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가정은 따스한 곳, 유년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 마음속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가정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부정적인 영향은 간과할 수 없다. 가정의 온기가 이런 잘못된 사상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가정의 온기, 가정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추억은 그저 사람의 육적인 정 면에서 사람에게 일정한 위안과 만족을 줄 뿐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처신하고 처세하는 방법과 가야 할 길, 혹은 수립해야 할 인생관과 가치관 등의 측면에서 보면 가정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모두 백해무익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은 사회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가정에서 여러 사상 관점의 패괴를 받고 여러 잘못된 사상 관점의 교육과 지배, 영향을 받았다. 가정은 사람의 여러 잘못된 사상 관점을 길러 주는 곳이자 사람의 여러 사상 관점이 발휘되고 자유자재로 활용되기 시작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정은 각 사람의 생명과 삶에서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교제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정에서 정을 떼라거나 형식적으로 가정과 관계를 끊고 단절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가정이 주입한 여러 잘못된 사상 관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분별하라는 것이다. 물론 내려놓기는 더 정확하고 실제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가정과 관련된 주제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과 관련된 주제는 이 외에도 많다. 우리가 교제했던, 가정에서 가르치는 이런 말들을 자주 듣지 않느냐? (자주 듣습니다.) 가정에서 항상 듣는 말인데 이 집 아니면 저 집에서 들리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비교적 보편적이고 대표적이지 않으냐? 절대다수의 가정은 저마다 이런 사상 관점을 주입하고 있다. 우리가 교제한 이 모든 말들은 대다수 가정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며 성장기의 사람에게 각 연령대별로 주입된다. 이렇게 주입된 그 시점부터 사람은 이런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이런 사상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다음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사상 관점을 앞으로의 삶과 생존의 처세 수단과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를 자신이 사회에 발붙일 수 있는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이런 사상 관점은 사람의 삶 속에 넘쳐날 뿐 아니라 사람의 내면세계는 물론 사람의 인생길에서 직면하는 온갖 문제들 속에도 가득하다. 서로 다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은 마음에 품고 있는 여러 사상 관점에 이끌려 그 일을 처리하게 된다. 또한 서로 다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사상 관점, 처세 원칙, 처세 수단에 이끌리고 지배되어 이런 잘못된 사상 관점을 모두 현실 생활에서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사람은 여러 잘못된 사상 관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잘못된 길로 접어든다. 사람은 잘못된 생각에 이끌려 행동하고 처신하며 생활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걷는 인생길도 잘못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각을 이끌어 가는 근원이 잘못되었으니 그가 걷는 길도 자연히 잘못되고, 그가 걷는 길의 방향이 잘못되었으니 마지막 결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가정에서 비롯되는 여러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게 되고 이 잘못된 길에 의해 잘못된 방향을 향하게 되니 사람은 지옥과 멸망을 향해 가게 된다. 결국 사람이 마지막에 멸망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에서 영향받은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과가 이토록 심각하니 사람은 가정에서 가르치는 여러 가지 사상의 영향을 내려놓아야 한다. 현재 사람에 대한 이런 여러 잘못된 사상의 영향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잘못된 사상이 존재하고 또 사람을 이끌어 가다 보니 사람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마음속으로 거부하고 진리에 맞선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가 이러니 멀리 보면, 이런 잘못된 사상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버리게 하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진리에 어긋나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잘못된 길을 걷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길로 이끌리면 사람이 형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만 사람이 걷는 잘못된 길로 인해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에 대한 가정의 영향이 이토록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니 사람은 이런 사상을 가볍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만약 각기 다른 측면의 문제마다 그것에 상응하는 가정에서 비롯된 잘못된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너는 성찰해 보고 그것을 고수하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이 만약 잘못되었고,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네가 유일하게 선택해야 하는 올바른 길은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기의 올바른 실행법은 다음과 같다. 이 일을 바라보고, 행하고, 처리하는 준칙과 근거는 더 이상 가정이 주입한 잘못된 사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비록 이 과정에서 너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내키지 않고,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네 육적인 이익이 침해당한다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네게 알려 준 원칙에 따라 계속 실행해야 한다. 이 전환의 과정은 분명 어려울 것이고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 순조롭지 않겠느냐? 그것은 부정적인 사물과 긍정적인 사물의 대결이자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악한 사상과 진리의 대결이며,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려는 네 의지, 바람과 네 내면의 잘못된 사상 관점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결이 있으니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는 네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진리 추구의 길을 가고 구원에 이르려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 대결을 겪어야만 한다. 물론 이 대결을 받아들이면 이와 함께 분명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받으며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진리를 얻어 구원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러므로 이 목표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든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는 무엇보다 올바른 목표이고 네가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 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든 사람은 이로 인해 타협하고 도피하거나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또 네 목표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구원에 이르는 것이기만 하면 네가 어떤 대결이나 전쟁을 겪든 너는 외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방패가 되어 주고 하나님 말씀이 네게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몇 가지 사항에서 보면, 사람은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든 다른 어떤 대상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너에 대한 잘못된 사상의 영향을 내려놓는 것을 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방금 교제한 “나쁜 마음은 먹지 말되 경계심은 가져라.”라는 말은 가정에서 항상 듣는 말인데, 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그저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원칙만 따라 행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원칙’이란 말이 모호한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자기에게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 있는지 해부할 필요도 없고, 경계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한편으로는 당당하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부류의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리고 진리를 준칙으로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분별하고 그런 다음 그에 맞는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 바로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그가 형제자매이면 형제자매로 대하고, 그가 비교적 추구하는 사람이며 버리고 헌신하는 사람이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로 대하면 된다. 반면 그가 불신파인 데다가 본분 이행을 달가워하지 않고 생계에만 힘쓰려 한다면 그를 형제자매로 여기지 말고 이방인으로 여겨 대해야 한다. 사람을 살필 때는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그의 성품이나 인성은 어떤지,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가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고자 한다면 진정한 형제자매나 가족처럼 대하고, 만약 인성이 좋지 않고, 입으로만 진리를 실행하길 원한다고 떠들며 도리만 청산유수이지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면 봉사자로 여겨 대하고 가족처럼 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원칙은 무엇을 알려 주느냐? 네가 어떤 원칙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 원칙은 바로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지혜롭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라는 것이 좀 모호한 말인데, 구체적으로는 각 부류의 사람마다 그에 맞는 방식과 원칙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진리를 근거로 해야 한다. 정 혹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관점을 근거로 하지 말고, 자신과의 이해관계나 나이를 근거로 하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근거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자기에게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 있는지 성찰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네가 하나님이 알려 준 원칙과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모든 시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어떤 시험이나 사람 간의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네가 이방 세계에서도 이 원칙으로 실행하는 것은 합당하다. 누군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악인이고 마귀이며 악마야. 그리고 깡패에 건달이지. 경계할 필요도 없어. 상대하지 않고 건드리지도 않을 거야. 혹여 사역 때문에 그 사람이랑 꼭 교류해야 한다면 공적인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면 돼. 만약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그 사람이랑 접촉하지도 않고 교류도 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을 옹호하지 않을 거고, 비위를 맞추지도 않겠어. 내게서 꼬투리를 잡을래야 잡을 수 없을 테지. 그가 날 괴롭히려 하면 내겐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그분을 의지할 거야. 하나님이 그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난 받아들이고 순종하겠어.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내 머리카락 한 가닥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 이것이 진실한 믿음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는 이런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저 깡패이며 소인배에 불과하다고 하지 마라. 큰 붉은 용을 마주한다고 해도 우린 항상 이 원칙을 지키면 된다. 큰 붉은 용이 네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면 너는 그것과 따지겠느냐? 그것에게 설교하겠느냐? (그러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설교하지 않겠느냐? (설교해 봤자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귀이니 설교를 들을 자격이 없다. 진주를 돼지 앞에 던져서는 안 된다. 진리는 짐승이나 마귀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 마귀나 짐승이 알아듣는다 하여도 그것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에게는 자격이 없다! 이 원칙이 어떠냐? (좋습니다.) 교회의 일부 인성이 나쁜 사람과 악인, 멍청한 사람, 횡포를 부리며 막무가내인 사람, 사회에서 힘 있고 큰 가문의 명망 있는 사람을 너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응당 대해야 하는 방식으로 대하면 된다. 형제자매이면 교류하고, 형제자매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 전도 원칙에 부합할 경우 복음을 전해 주고, 복음 전도 대상이 아니면 평생 만나지 않고 교류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사탄, 마귀를 경계할 필요도 없고 모략을 세울 필요도 없다. 보복할 필요 없이 그것을 무시하면 된다. 그를 분노하게 만들지도 않고 그와 교류하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꼭 교류하고 지내야 할 일이 생기면 공적인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된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쳐 준 행동이나 처신의 원칙과 방식은 네가 존엄한 사람이 되게 하는 동시에 점점 사람답게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 반면 부모가 네게 가르친 방식은 겉으로는 너를 보호하고 네가 잘되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네게 잘못된 길을 가리켜 주어 너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가 네게 가르치는 것은 처신의 바른길도, 지혜로운 처신의 방식도 아닌 비열하고 옹졸하기만 한 처신의 방식이다. 이는 진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고 진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러니 네가 만약 부모가 가르친 사상만 받아들인다면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것이며 진리를 실행해 내는 것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진정으로 가정에서 비롯된 처신의 사상과 처세의 원칙을 내려놓을 마음이 있다면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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