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제 2 부
방금 교제한 화제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내려놓아야 하며 다만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내려놓는 것에 관한 교제는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또 다른 문제를 하나 교제해 보자. 바로 ‘너는 결혼의 노예가 아니다’는 주제다. 이 측면의 문제는 응당 교제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 어떤 생각을 하느냐? ‘이번 생은 이렇게 정해졌으니 이 사람과 한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구나.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평생을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친구도 마찬가지야. 그러면 누구한테 평생 의지해야 할까? 바로 나와 결혼한 그 사람이지.’ 이런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혼만 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바람을 피할 곳이 생기고, 하소연할 대상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자들은 말한다. “결혼하면 제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생기는 거잖아요.” 남자들은 말한다. “결혼하면 안정적인 가정이 생기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니까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제 주변의 싱글들을 보면 여자들은 하루 종일 떠돌면서 의지할 곳도 없고, 정해진 집도 없고, 기댈 어깨도 없어요. 남자도 마찬가지로 따스한 집도 없고 얼마나 딱한데요!” 그러니 본인에게 결혼의 행복이 생긴 게 사뭇 흐뭇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만족한 나머지 본인이 결혼 생활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이 집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결혼 생활에 뛰어들려고 하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분투하고 목숨을 바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 죽기 살기로 고생한다. 물론 본인 일생의 행복을 자신의 반려자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이 행복하고 즐거울지는 자신의 반려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렸다고 믿는다. 반려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자신의 성격과 지향점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돈을 잘 벌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래에 내가 먹고살 걱정 없이 살게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에게 행복하고 안정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자기가 어떤 고통과 환난,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검증하기 위해 그들은 상대와 같이 생활하면서 속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상대의 사상 관점, 언행, 일거수일투족, 상대의 장단점 등을 아주 주의 깊게,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상대가 생활하면서 드러내는 모든 사상 관점, 모든 언행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는데, 상대를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상대도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며 상대가 자기 마음에 들어오게 하고, 자기도 상대 마음에 들어가려 한다. 서로 간에 상대를 더욱 구속하거나 혹은 상대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이 그 앞에 제일 먼저 나타나 도와주는 사람, 제일 먼저 일어서서 그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고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생활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분별하지 않고, 완전히 상대에 대한 정 속에 살아가고, 정으로 그를 보살피고 포용하며 그의 모든 결점과 문제, 추구를 대하고, 심지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이 너무 길다며 30분만 예배드리고 들어오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 번 예배 때는 정말 3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진작에 이랬어야지. 다음에는 얼굴만 내비치고 들어오도록 해.” “아,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다음번 예배 때도 역시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참석한 지 1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은 무척 흡족하고 기뻐한다. “이 정도는 돼야지!” 아내는 남편이 동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는 엄두도 못 내고, 웃으라고 하면 우는 건 생각조차 못 한다. 아내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부르는 걸 보자 남편은 못마땅하고 반감이 든다. “하루 종일 말씀 읽고 찬양 부르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말씀 읽고 찬양 부르는 거 좀 안 할 수 없나?” “알았어요, 알았어요. 안 볼게요.” 그녀는 이제 말씀 읽는 것도 찬양 듣는 것도 감히 못 한다. 상대의 요구에 마침내 그녀는 남편이 자기가 하나님 믿는 것도, 말씀 읽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그 옆에서 같이 TV도 보고, 식사하면서 얘기도 나누고, 남편의 고충도 들어 주는 등 무슨 일이든 한다. 상대가 좋아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녀는 이런 일들이 반려자로서 다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언제 읽느냐? 남편이 나가자 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얼른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 여는 소리가 들려서 후다닥 책을 덮었다.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짝 문을 열고 내다보았는데 남편이 들어온 게 아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데 역시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긴장되고 겁이 났다. ‘만에 하나 그이가 정말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어? 우선은 그만 읽고 전화해서 지금 어딘지, 언제 들어올 건지 물어보자.’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오늘 업무가 바빠서 서너 시나 되어야 들어온다고 했다. 물어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겠느냐?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어지럽기만 했다. 그녀는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려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나님 믿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남편이 무섭다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조용히 있었더니 마음이 그렇게 심란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읽어 보려고 하는데, 집중이 안 된다. ‘아까 어디까지 봤더라? 어디까지 묵상했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슬슬 짜증이 나고 마음이 불편하다. ‘오늘은 관두자. 영 생활 한 번쯤 빠뜨려도 괜찮아.’ 어떠냐? 이것이 잘 지내는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은 결혼의 번뇌이냐, 아니면 결혼의 행복이냐? (번뇌입니다.) 이때 일부 독신들이 말했다. “그것 봐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거 맞죠? 결혼은 전혀 아름답지 않잖아요? 제가 지금 얼마나 멋지게 사는지 보세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무 때나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해도 전혀 지장이 없어요.” 너는 배우자가 너에게 만족해서 네가 가끔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예배드리는 것에 동의하게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닭 모이 주고 개밥 주고 하면서 힘든 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 남자가 할 일도 다 했다.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녀처럼 뼈 빠지게 일만 했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남편 구두도 반짝반짝 닦아 놓고, 슬리퍼도 가지런히 놓아두고, 남편이 들어오면 잽싸게 몸에 묻은 먼지도 털어 주고 외투도 받아서 걸어 놓는다. “오늘 날씨 진짜 덥네요. 안 더워요? 목 안 말라요?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새콤한 거? 아니면 매콤한 거? 옷 안 갈아입어도 돼요? 벗어 두면 빨아 놓을게요.” 꼭 하녀나 노예 같다. 이건 결혼의 틀 안에서 해야 할 책임의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상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를 자기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가정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명백히 차이가 난다. 한쪽은 노예, 다른 한쪽은 노예주이다. 한쪽은 머리를 조아리고, 다른 한쪽은 눈을 부라린다. 한쪽은 굽실거리고, 다른 한쪽은 기세등등하다. 확실히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불평등하다. 왜 그럴까? 이 노예는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비굴하게 굴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준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키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 다른 한쪽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배우자에게 너는 무조건 복종하고 무릎 꿇었다. 기꺼이 노예가 되고 하녀가 되어 그를 위해 애쓰고,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이건 어떤 인간이냐? 도대체 너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에게는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배우자가 네 생활을 책임지는 것, 이는 하나님이 정한 일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빚을 진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데, 그러면 그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느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느냐? 결혼한 두 당사자는 둘 중 사나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 잘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한 양쪽은 서로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동반해 주는 것이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양쪽 모두 결혼의 틀 안에서 자신이 다해야 할 의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너는 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네 역할이 어느 쪽이든, 너는 그쪽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너는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다. 속된 말로 형편없는 인간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 형편없는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기꺼이 노예가 되어 주는 것은 너무나 멍청한 짓이고, 가치 없는 행동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게 어때서 그러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 이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다. 나라와 정부에서 하나님 믿는 사람을 박해한다는 건 무얼 뜻하느냐? 이 인류가 너무나 사악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사악한 세력을 대표하고 사탄을 대표한다. 진리를 대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네가 남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남보다 등급이 낮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고귀하고, 또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하나님은 너를 눈동자로 여긴다. 그런데 너 자신이 너를 짓밟고 배우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럼없이 노예가 되었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왜 그걸 못 하느냐? 이것이 사람의 비천한 부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준 것은 책임을 다하는 법,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삶, 직면하는 갖가지 일을 배우자와 함께 처리하는 방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네가 더욱 풍부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라는 뜻이다. 하지만 너를 결혼에 팔아넘긴 것도 아니고, 배우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긴 것도 물론 아니다. 너는 그의 노예가 아니고 그 역시 네 노예주가 아니며, 너희 둘은 평등하다. 너는 배우자에 대해 아내 혹은 남편의 책임밖에 없고, 그 책임만 다하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아내로서 합격이고 혹은 남편으로서 합격이다. 네가 상대보다 뭐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고, 자주 예배에 참석하고, 또 자주 하나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자주 하나님 앞에 나아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이고, 피조물로서 해야 할 일, 피조물로서 보내야 할 평범한 일상이다. 그것은 면목 없는 일이 아니다. 이런 생활을 한다고 해서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네가 그에게 무슨 빚을 진 게 아니다. 원한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 사역을 증거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너와 뜻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에게 네 신앙과 네가 가는 길에 관련된 어떤 일이나 정보도 해명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고, 또 그래야 할 의무도 없다. 그 역시 알 권리가 없다. 너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지켜 주는 것, 이것은 그의 책임과 의무다. 만약 그걸 못 한다면 그는 인성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 것이냐? 네가 가는 길은 바른길이며, 또한 바른길을 가는 너 때문에 네 가정과 배우자도 너와 함께 축복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는 이 부분에서 너에게 감사하는 것이 옳다. 네가 신앙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다고 해서 멸시하고 괴롭히거나 그것 때문에 네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네가 자기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는 감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면에서도 그에게 빚지지 않았다. 빚은 그가 졌다. 네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더 많은 별도의 은혜와 축복을 누렸다. 그는 덤으로 적잖이 얻었다. 덤으로 적잖이 얻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그런 사람은 전혀 얻을 자격도 없고, 얻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왜 얻으면 안 되느냐?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이런 은혜를 누리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혜택을 본 것이고, 네 덕분에 복을 누린 것이므로 그는 너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바꿔 말하면 본인이 별도의 축복과 은혜를 누렸기 때문에 그는 더 책임을 다해야 하고, 네가 하나님 믿는 일을 더욱 지지해야 한다.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에 집안의 장사가 순조롭게 풀리고 잘 돼서 돈도 많이 버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덕분에 가정 형편도 좋아져서 물질생활도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이 올라간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 너희 집에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이 없었다면 네가 그런 걸 얻을 수 있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돈을 많이 벌게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잘되게 해 준 것은 맞다. 그런데 만약 그 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는 장사에서 원래는 그토록 많은 은혜와 축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추구하고, 기꺼이 버리고 헌신했기에, 믿지 않는 쪽이 그 은혜와 축복을 덤으로 얻은 것이다. 그건 하나님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만족을 모르고 하나님 믿는 사람을 여전히 억압하고 괴롭히려 한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사회의 박해는 재난이 된 지 오랜데,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집안 식구마저 이들을 구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해 스스로가 기꺼이 결혼의 노예를 자처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바람직하지 못하다.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도 괜찮고, 네가 하나님 믿는 일을 지켜 주지 않는 것도 괜찮다. 이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너를 노예로 생각하는 것은 안 된다. 너는 노예가 아니다. 너는 사람이다.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이다.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너는 피조물이고, 누구의 노예도 아니다. 노예가 되겠다면 오로지 진리의 노예,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야지, 어떤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그 노예주가 네 배우자여서야 되겠느냐? 육적인 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부모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사실 너의 배우자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가 너를 원수처럼 생각하며 공격하고 핍박한다면, 네가 예배드리는 것도 반대하고, 밖에서 무슨 소리만 들렸다 하면 돌아와서 너를 질책하고 욕하고 때린다면, 심지어 네가 집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읽는 일이 본인의 정상적인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데도 너를 질책하고 반대하고 잔인하게 때린다면, 이건 대체 어떤 인간이냐? 마귀가 아니냐? 그런 자가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냐? 그런 자가 너더러 본인에게 무슨 책임을 다하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이런 결혼 생활에서도 배우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그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는 것, 자기가 본분을 이행할 시간, 본분 이행할 기회,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을 기회마저 희생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소한 그런 생각은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 부모에게도,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빚진 게 없고, 당연히 친구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도 너는 빚진 게 없다. 결혼을 포함해서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빚진 것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에게만 빚졌다. 물론 하나님은 너에게 갚으라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바른 인생길을 걸으라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이라는 일에서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바로 결혼 생활 때문에 존엄과 인격을 상실하지 말고, 올바른 추구의 길을 잃지 말고, 자신의 인생관과 추구 방향을 잃지 말고, 심지어 진리 추구를 내려놓지 말고, 구원받을 기회를 내려놓지 말고,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과 사명을 내려놓지 말고, 기꺼이 결혼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네가 그런 식으로 결혼 생활에 대처한다면, 오히려 결혼하지 않은 것만 못하고, 독신이 너에게 더 어울린다. 만약 아무리 애써도 결혼 생활의 이런 현 상황과 결혼 생활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이런 결혼 생활에서 빠져나와 자유인이 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역시 이 말을 해야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준 목적은 단지 사람이 반려자를 만나서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의 마디마디를 함께 걸어가게 하려는 것이고, 네 인생의 마디마디가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너와 함께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하고 챙겨 줄 사람이 있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혼을 이용해 너를 속박하지 않았고, 네 손발을 묶은 적도 없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네 권리를 없애고 너를 결혼의 노예로 만들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너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주고 배우자를 안배한 것은, 너에게 노예주를 찾아 준 것이 아니고, 또 스스로를 결혼 생활 안에 가둬 놓고 자신의 추구와 인생 목표, 올바른 추구 방향, 구원받기를 추구할 권리를 잃어버리라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네가 결혼했든 안 했든 자신의 인생 목표를 추구하고, 올바른 인생관을 세우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네게 부여한 최고의 권리로, 그 누구도 박탈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네 배우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결혼 생활에서 노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생활 방식을 내려놓고, 결혼의 노예가 되려는 그런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고,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또 상대의 기분, 관점, 말, 태도, 나아가 행동에 의해 영향이나 제한, 속박과 구속을 받지 말고 거기서 걸어 나와 대담하고 용감하게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싶으면 읽고, 예배드려야 할 시간에 예배드리도록 해라. 너는 사람이지 개가 아니기에 누구로부터 본인의 행위를 규제받을 필요도 없고, 누구로부터 본인의 생활을 구속받고 통제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스스로의 생활 목표와 방향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네게 부여한 것이고, 특히 네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 집에서 네 사역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 집에서 너에게 본분을 맡길 때, 당연히, 무조건, 완전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네게 준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사역이 열흘 또는 한 달간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이라면 너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서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성하고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이자 의지, 바람이다. 만약 그 사역이 반년 혹은 일 년을 떠나 있어야 하거나 혹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해도, 너는 당연히 가정을 내려놓고 배우자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준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그 기간은 네 결혼 생활과 네 배우자에게 네가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 집 사역과 네 본분에 네가 가장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결혼하면 결혼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결혼이 끝나거나 결혼이 해체되는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사실 치욕도 아니다. 그 결혼이 어떤 상황에서 끝이 났고,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했는지 봐야 한다. 그 끝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고 주재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영광이고 영예로운 일이다. 네가 정의로운 사업을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결혼을 끝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기념하고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치욕이 아니라 영예로운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설령 일부 사람들의 결혼 생활이 상대 배우자가 그를 포기하고 배반해서 끝난 것이라 해도, 속된 말로 버림받아 쫓겨난 것이라 해도 이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제게는 영광입니다. 왜냐고요? 제 결혼 생활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이런 식으로 끝난 것,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주재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제가 결혼 생활에서 나오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남편이 저를 내쫓게 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거기서 나올 자신도 용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수많은 결혼 생활 가운데 네가 이런 체험을 얻은 것, 하나님의 인도 아래 바른길 가길 선택하고 하나님이 네게 준 사명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 이런 전제와 동력 아래 상대와 헤어져 네 결혼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은 기뻐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최소한 정말 다행인 한 가지는 네가 더 이상 결혼의 노예가 아니고 결혼의 노예 역할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고, 더 이상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결혼의 노예라는 처지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받고, 발버둥 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순간부터 거기서 빠져나와 자유로워졌으니 이는 좋은 일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과거 고통 속에서 결혼을 끝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그 결혼 생활을 내려놓고, 그 결혼 생활이 자신에게 남긴 그림자를 내려놓고, 그 결혼 생활이 자신에게 남긴 증오와 분노, 아픔을 내려놓고, 더 이상은 본인이 과거에 상대를 위해 했던 모든 희생과 노력이 상대의 불충과 배반, 냉소와 비아냥으로 돌아온 것 때문에 고통받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거기서 나와 더 이상 결혼의 노예가 아닌 것에 기뻐하고, 더 이상 결혼의 노예주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부질없는 희생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에 기뻐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재 아래 인생의 바른길을 걸으며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다하고, 나아가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뒷일을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결혼한 상대방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마음 쓰지 않아도 되고, 그가 마음에 걸릴 일도 없다. 앞으로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본인 일을 배우자와 의논할 필요도, 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원칙과 근거를 찾으면 된다. 지금 너는 이미 자유인이지 더는 결혼의 노예가 아니다. 다행히 결혼 생활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오게 되었고, 결혼 생활의 제약이 없이 하나님 말씀을 읽을 시간도 많아지고 예배드릴 시간도 많아지고 묵상할 시간도 많아졌다. 완전히 자유로워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누구의 냉소와 비아냥도 들을 필요 없고, 누구의 기분이나 감정도 생각할 필요 없다. 혼자 사는 건 정말 좋다! 이제는 노예도 아니고, 남에게 여러 가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피조물이 될 수 있고, 창조주의 권세 아래 있는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그것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좋다! 영원히 결혼 생활의 그런 일 때문에 싸우고 고민하고 따지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모욕당하고 분노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열악한 환경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좋으냐! 모든 게 다 좋고, 모든 게 다 순조로워지고 있다. 사람이 창조주 앞에 와서 말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고 진리 원칙에 따르면 모든 게 순조로워진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어지러운 일도 없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건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열악한 결혼 생활 환경에서 노예를 자처하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됐든 이들이 결혼을 끝내지 않더라도, 결혼 해체라는 형식으로 생활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결혼의 노예는 되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결혼한 상대가 누구든, 그가 어떤 재능과 인성을 지녔든, 어떤 지위에 있든, 그의 능력과 재주가 어떻든, 그는 네 주인이 아닌 반려자이다. 너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그가 너보다 고귀하지도 않고, 네가 그보다 비천하지도 않다. 그가 만약 결혼 생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너에게는 그를 질책할 권리가 있고, 그를 관리하고 징계할 의무도 있다. 그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그가 너를 싫어하고 미워할까 겁내지 말고 그가 너를 버릴까 겁내지 마라. 혼인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굽실대고, 억압을 견디고, 저자세로 그의 노예가 되고 결혼의 노예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것은 결혼의 틀 안에서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도 아니고, 한 사람이 결혼의 틀 안에서 다해야 할 책임도 아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노예가 되라고 하지도 않았고, 주인이 되라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책임을 다하라고만 했다. 따라서 결혼 생활에서 네가 다해야 할 책임을 바르게 이해하고, 또 본인이 결혼 생활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바르게 이해하고 간파해야 한다. 만약 네 역할이 기형적이고 인성에 어긋나고, 하나님이 정한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검토하고 반성해야 한다. 만약 상대가 질책한다면 너 역시 질책할 수 있다. 네가 상대를 질책해서 그것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더 현명하고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 싶다면, 결혼의 노예가 되려는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고 결혼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의 노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람, 진정한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본분도 다해야 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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