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재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제 3 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하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느냐?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에게 사역하느냐? 바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너를 가야 할 길로 인도하고, 너에게 시련을 주며, 너에 대한 그의 모든 요구와 기준을 알려 준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 형제자매를 대하는 법, 교회 사역과 본분을 대하는 법, 시련이 닥쳤을 때 체험하는 법,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법, 버리는 법, 이방 세계를 대하는 법 등등 각 방면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데, 하나님이 모두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은 최종적으로 어느 경지까지 체험하게 되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셔요?”라고 물을 때, 체험이 없는 사람은 고민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러게.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 하나님께서는 내게 나타나신 적이 없어. 늘 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계신다고 하지만 나도 본 적은 없어. 하나님께서 도대체 얼마나 크고 높으신지, 어느 정도까지 전지전능하신지 이런 것들을 나는 전혀 몰라.’ 체험을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하나님을 믿은 첫날부터 하나님 말씀을 접했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20~30년 믿어 왔어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보았기에 하나님에 대해 약간 알고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체험했는데, 만약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 곁에 오셔서 저와 이야기하시고 교류하신다면, 그분이 바로 이런 말씀들을 선포하신 하나님이시며, 제가 믿는 분이 바로 그분임이 틀림없다고 확증할 수 있어요! 그분의 외모가 어떻게 변하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이 말씀들과 뿌리가 같다면 그분이 바로 제가 믿는 하나님이시며, 바로 하늘에서 오신 그 하나님이시며, 바로 만물과 제 운명을 주재하시는 그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전히 천상에서 너에게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형체와 형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네가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호기심이 사라진 것이다. 왜 그런 것이냐? 그동안 체험하고 하나님과 교류하면서 비록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가지거나 하나님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나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너에게 이미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와 함께하며 너의 인생을 인도하고, 너의 하루하루를 주재하며, 너의 운명을 주재한다. 그가 너의 희로애락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너 또한 그의 희로애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를 오해하지 않게 되고 원망도 하지 않게 되면서 네 마음속에 그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네 마음속에서 보좌에 올라 왕권을 잡고 너의 전 존재를 주관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왕권을 잡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바로 네가 모든 일을 다 하나님 말씀으로 해결하고, 하나님 말씀이 네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너 자신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 네가 배운 지식과 받은 학교 교육, 네가 읽은 책, 너의 인생 경험과 노하우,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너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너의 모든 것을 인도하고, 하나님 말씀이 네 삶의 지침이 되어 매일매일 네가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표출하고 살아 낼 것이다. 그러면 너에게 진리 실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만약 어떤 사람이 다시 너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조금 압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고 지혜로우신지를 제가 감히 말로 표현하거나 규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하나님은 측량하기 어렵고, 지극히 지혜롭고 기묘하며, 지극히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걸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위대하고 실제적이며, 하나님의 성품은 지극히 공의롭습니다!” 이 정도의 인식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거짓되고 공허한 관념과 상상보다는 가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 있는 것들은 어디에서 얻은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체험해 얻은 것이다. 즉,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은 후, 그 말씀이 네 몸에서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어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내게 된 것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살아 내는 기간에 어떻게 이런 성과를 이룬 것이냐?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사람, 일, 사물 속에서 조금씩 체험함으로써 이룬 것입니다.) 경험함으로써 이룬 것이다. 즉, 이 기간에 네가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검증하고, 하나님 말씀의 모든 구절이 전부 진리이며 다 네 생명에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실증한 것이다. 그때,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는 그 어떤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는 사실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 사역을 체험한 실제 체험이 결정하는 것이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한 모든 간증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증거한 것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어디 계셔요?”라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답하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계신다고 답할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계시지만 동시에 만유 가운데도 계시고 우리 곁에도 계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이다. 너는 이를 부인할 수 없고, 네가 체험한 것은 본 것보다 더 실제적이다. 설령 네가 하나님을 본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 있느냐?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체가 지금 사람들 가운데 내려와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하면, 너는 오히려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이라고요? 그런데 왜 제가 모를까요? 저는 당신 같은 하나님은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너는 오히려 두려워할 것이다. 왜 네가 이런 반응을 보이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이런 태도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을 때 무엇을 중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대적하거나 거역하는 내적 상태 같은 옳지 않은 내적 상태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들을 모두 바로잡고 진리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내적 상태가 점차 좋아지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나날이 정상적이 되어 네가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면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진리가 있지 않으냐? 진리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늘 진공 상태에 사는 것처럼 아무것도 접촉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마치 도를 닦는 비구니와 승려처럼 현실과 괴리된다면, 그것은 바른길이 아니다. 사람이 관찰할 줄도 깨달을 줄도 알고, 체험할 수도 있으면 많은 일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일부 일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심오해 알지 못하니 너는 먼 것을 구하고자 가까운 것을 버려서는 안 된다. 너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들이고 자신과 대조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자신과 대조하는 것이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 말씀 속에 밝혀진 각종 내적 상태를 네가 갖고 있는지, 너는 어떤 내적 상태에 있는지, 하나님이 얘기한 그 말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류의 어떤 내적 상태에 대해 얘기한 것인지, 이것들을 모두 성찰하여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때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한 귀로 흘려듣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내적 상태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겨냥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말씀하시는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는 네가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이 너에게 아직 영향을 주지 못하며, 네가 아직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하다가 어느 날 사람을 밝히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네가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바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거네.”라고 말하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자신과 대조한 것이다. 대조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시작일 뿐인데, 이는 단지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는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한 그런 내적 상태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네가 아직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는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길은 무엇인지를 구하는 단계를 더 겪어야 한다. 여기에는 세부 사항이 있는데,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내적 상태를 네가 성찰과 분석을 마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해 사람이 성찰하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에게 바로잡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이를 잘못된 내적 상태라고 한다. 네가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 이는 패역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패괴 성품으로, 사탄에 속하는 것이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너는 바로잡아야 한다. 바로잡는 동시에 너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에는 진리가 담겨 있는데, 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이 일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요구를 하셨지? 나는 이런 내적 상태를 어떻게 바로잡고, 벗어나고, 해결해야 하지?’ 이는 진리를 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네가 그저 하나님 말씀과 대조만 해서는 안 된다. 대조하고 나서 또한 진리를 깨닫고 자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네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나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고 하나님은 지극히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도 몰랐던 제 내적 상태를 밝히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어요!” 이러면 끝나는 것이냐?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님이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네가 그러한 소극적이고 잘못된 내적 상태를 내려놓고, 네가 패괴 성품인 그런 것을 해결해 버린 후에 진리에 따라 실행하기를 요구한다. 진리를 점차적으로 깊이 깨닫게 됨에 따라 네 내면의 내적 상태가 완전히 바뀌게 되어 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내려놓게 된다. 너는 그것이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것임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디가 틀렸으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네가 그것을 해결해 버리게 된다. 사람이 이러한 외부 세계의 것과 사탄의 관점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그 당시에는 내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지만 네가 깨달은 진리가 너의 마음을 채우기 시작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올바른 관점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갖추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관점이 옳은 것이며 어떤 관점이 잘못된 것인지, 사람이 이것들을 이해하려면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리에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이 완벽하게 충실해지고 편안해진다. 사람이 진리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여러 가지 생각, 마음,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어 한가할 때는 늘 하나님 말씀의 옳고 그름을 연구한다. 만약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체험 간증을 접하게 되면 그는 이점과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만약 황당무계한 말과 관점을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좌우로 흔들리게 된다. 이는 정상적인 내적 상태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까지 체험하게 되면 그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고, 또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된다. 알게 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느냐? (실행할 수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이렇게 자신을 부정해 버리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가 여전히 계속 연구하고 싶어 하는 한, 그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패역과 패괴 성품은 늘 존재한다. 이런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직접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진리임을 분명히 알아도 그렇게 빨리 그리고 절대적으로 실행하지 못한다. 이는 사람의 내면에 패괴 성품과 사탄의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고 진리를 선포한 이유는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사람의 패괴를 조금씩 파헤쳐 조금씩 해결하고 조금씩 정결케 하려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사람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하게 되며, 사람이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게 된다. 네가 하나님과 어떤 방면에서 서로 일치하게 되면, 너는 그 방면에서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게 된다. 네가 하나님을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그 방면의 진리를 구해 진리로 오해를 해결해야 한다. 절대 늘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거나 자신의 오해가 맞고 오해할 만하다고, 어디 내놔도 이치에 맞고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사람은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만한 것은 정상이며, 진리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황당무계하고 일을 대하는 관점이 바르지 않다면, 이는 위험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잘못 해석하기 쉽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거나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기 가장 쉬운 사탄에 속하는 부류이다.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에 있어 만약 사람이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늘 이렇게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하며’ 겨루고 싸운다. 싸우고 겨룬 최후의 결과는 사람의 실패로 끝나고 사람은 철저하게 창피를 당하게 된다. 진리는 영원히 승리하며, 하나님은 영원히 승리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과 겨루고 싸우는 과정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의 마음이 돌아설 수 있는데, 결국 너는 하나님 말씀 앞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얻는 과정이다. 죽어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드러나 도태된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다면 네가 바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게 되어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을 몇 년을 믿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기만 하면, 결국에는 생명 성품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네가 식물학을 배우는 사람이거나 또는 농업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과실수 종자 10개를 땅에 심었다. 네가 배운 지식에 따라 너는 10개의 종자로 10그루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과학적 근거와 이론에 따라 얻은 결론이기에 너는 이 결론을 고수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10개의 종자에서 11그루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다고 말씀했을 때, 너는 믿지 않았다. ‘그게 가능해요? 10개의 종자에서 어떻게 11그루의 나무가 자라나요?’ 사실 종자가 한 개 숨겨져 있었는데 네가 보지 못한 것이다. 네가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는 근거는 무엇이냐? 바로 과학적 논증과 네가 배운 지식으로, 이런 것들이 너의 사상을 통제하여 네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사람의 패역이다. 너는 이렇게 생각했다. ‘근거가 있는데 어째서 저의 결론이 진리가 아니라는 거죠? 당신께서는 근거도 없이 그렇게 한마디 하셨을 뿐인데, 어째서 그게 진리라는 건가요?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근거가 없어요! 몇 명이나 논증했나요? 누가 이 일을 논증했나요? 누가 봤나요? 사실이 뭔가요?’ 사실을 보기 전까지 너는 하나님 말씀을 부인했다. 하나님 말씀에 늘 의문을 갖고 늘 하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렸어. 내 결론이 맞아. 논증을 거쳤고 내가 이 분야 학문을 하는 전문가니까 내가 내린 결론이 맞아.’라고 생각했다. 너는 10개의 종자와 10그루의 나무가 자라나는 것에 등호를 그렸기에 하나님이 11그루가 자라날 것이라고 했을 때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11그루의 나무가 자라난 것이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승복하지 않겠느냐? (승복합니다.) 완전히 승복하겠느냐? 어째서 승복하겠느냐?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보게 되면, 이와 동시에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자신의 이런 결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또 부정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속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왜 틀렸을까? 설마 과학도 틀릴 때가 있나?’ 이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옳고 그름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대조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과 과학적 논증 중 어느 것이 맞지? 누가 맞을 가능성이 더 클까?’ 사실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사람은 여전히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기어코 몇 년 후에야 하나님이 행한 이 사실에 대해 완전히 승복하고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근거 없이 말하거나 일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일하는 과정 또한 네가 결과가 무엇인지 볼 때까지 체험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너는 무엇을 얻게 되느냐? 하나님이 하는 이 일을 네가 진실로 긍정할 수 있게 된다. 네가 근거 없이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위대하고 고상하며, 지혜롭고 기묘하십니다.”라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그를 그렇게 증거하게 하지 않고, 네가 이런 사실들을 사용하여 네가 체험하고 보게 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10개의 종자에서 10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것이 틀리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를 부정하지 않고, 너와 논쟁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사실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네가 직접 보게 한다. 어쩌면 네가 20살 때에 하나님이 너에게 이 일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가 바로 진리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냥 이 일을 한다. 네가 30살이 되었을 때에 결과를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만큼의 긴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에 하나님이 너와 논쟁을 하였느냐?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논쟁하였느냐? 사람이 하나님과 논쟁하였고, 늘 ‘하나님께서 틀리셨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하신 것은 비과학적이고 도리에 부합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고 그냥 계속 일을 한다. 10년 후, 너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이고, 원래 내 관점이 틀린 거였어!”라며 두려워하게 된다. 네가 자신이 틀렸다고 말할 때, 그 일의 결론은 사실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너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너는 단지 하나의 현상을 받아들였을 뿐,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그 일이 어찌 된 일인지 모른다. 네가 몇 년을 더 체험해야 하느냐? 어쩌면 10년을 더 체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체험하여 하나님이 한 그 일의 결론이 옳고,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옳고 네가 틀리다는 것을 실증해야 할지도 모른다. 40세에 네가 완전히 승복하게 된다. “하나님이야말로 진리이고, 하나님께서 진정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기묘하고 실제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십니다!”라며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보아라. 몇 년을 체험하였느냐? (20년을 체험했습니다.) 이 20년 동안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하였느냐? 하나님은 뉴턴의 법칙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것처럼 공식을 사용하여 너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실을 통해 네가 어떤 일들을 보게 하였으며, 일부 현상과 네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통해 네가 그 일을 인식하도록 깨우치고 인도하였다. 3~5년 후에 네가 약간 알게 되면 “제가 틀리기는 했지만 완전히 틀린 건가요?”라고 하게 되고, 거기서 좀 더 체험을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일부 사실들을 제시하면, 네 나이 40살이 될 때, 즉 또 한 번의 10년이 지난 후에 네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이런 일들을 한다. 너는 어떤 과정에서 네가 틀리고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인식하였느냐? 사실이 닥치는 과정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에서 네가 비로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의 결론만을 주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강제로 이해시킨다면 괜찮겠느냐? 하나님이 강제로 너를 통제해 이해시켜도 어쨌든 하나님은 옳다는 것을 네가 이해하고 알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을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 사역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느냐? (그렇습니다.) 지극히 실제적이다. 하나님 사역이 실제적이라는 것은 사람의 상상 및 막연한 관점과 대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들이 상상한 것인지, 공허하고 실제적이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없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것들을 전부 부정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분명 틀림이 없으니 바로 이렇게 체험해야 한다.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것을 창조하였고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네가 3~5년이라는 시간 내에 모두 다 체험하고 꿰뚫어 보려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다. 네가 평생 체험해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착실하게 차근차근 하나님 말씀을 체험해야 한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해 나가며 진리 원칙을 구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이 닥치면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평온하게 하고 진리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평온하게 할 수 있느냐? 바로 네가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만약 평온해질 수 없다면,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거나 하나님 말씀 찬양을 부르면, 모두 하나님 앞에 평온하게 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밖에서 일을 하고 뛰어다니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 하나님 앞에 평온하게 있는 한, 하나님 말씀을 읽든, 진리를 교제하든, 아니면 찬송가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든 영적으로 수확과 깨우침을 얻어 마음속으로 윤택함과 충실함을 느끼게 된다. 네가 서서히 하나님의 사역을 분명히 보게 되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게 되고,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된다. 사람이 진리를 얻고 하나님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며, 오랜 세월 동안 에너지와 시간을 바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진리 생명과 하나님의 모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2017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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