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제 1 부)

지금 너희는 어떤 시련을 견딜 수 있느냐? 자신이 이미 기초를 갖추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 시험이 임하면 굳게 설 수 있느냐? 사탄의 추격과 박해의 시험, 지위와 명예의 시험, 결혼의 시험, 그리고 금전의 시험과 같은 것들을 너희가 이겨 낼 수 있느냐? (어느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시험은 몇 개의 레벨로 나뉘느냐? 너희는 어느 레벨의 시험까지 이겨 낼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갔다는 말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잡혀가 고문을 받는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너 자신이 잡혀서 직접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이는 커다란 시험이 아니냐? 또 예를 들어 네가 아는 사람, 인성이 괜찮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 집과 사업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가 판결을 받는다면, 그리고 훗날 또 그가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이는 너에게 시험이 아니냐? 이런 일이 닥치면 너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어떻게 체험해야 하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진리를 구할 것이냐? 어떻게 해야 이런 시험에서 자신이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속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너는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런 시험을 이겨 내기 쉽겠느냐? 이는 특수한 일이 아니냐? 특수한 일, 그리고 사람의 관념 및 상상과 부합되지 않는 일을 너는 어떻게 체험하겠느냐? 만약 너에게 방법이 없다면 원망의 말을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진리에 근거해 적합한 실행 원칙을 확정 지을 수 있겠느냐? 이는 진리를 추구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겠느냐? 어떻게 체험해야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여러 가지 관념과 원망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들로 무장해야 가장 유용하며 각종 시험에서 사람이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지금 너의 분량은 얼마나 되느냐? 어느 레벨의 시험까지 이겨 낼 수 있느냐? 자신감이 있느냐? 만약 자신감이 없다면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방금 전 너희가 “어느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어리석은 말이다. 너희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갖추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진리로 무장하였는지, 어떤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는지, 어떤 시련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며, 어떤 시련에서 어떤 진리를 갖추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하고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이런 일들을 다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너의 관념 및 상상과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치면, 너는 어떻게 체험하겠느냐? 이 일에서 어떻게 진리로 무장하고 어느 방면의 진리로 무장해야 네가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고, 관념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진실로 알 수 있는지, 이는 마땅히 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평소 너희가 겪는 시험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지위, 명예와 이익, 금전, 남녀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두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볼 때, 너희는 어떤 시험에서 자신을 파악하고 굳게 설 수 있느냐? 너희는 이 몇몇 시험을 이겨 낼 진정한 분량을 갖고 있느냐? 너희가 진정으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으며, 방해와 교란을 하지 않고, 대적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한편으로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성찰하여 자신이 한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자신이 한 것에 대충 건성으로 한 것이 있는지, 거역하고 대적한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있다면,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책망과 훈계를 받는다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절대로 이치를 따지거나 궤변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행해야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다. 사람은 마땅히 이 두 가지 측면의 요구를 달성해야 하며, 모두 진실하게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으며, 또한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임했을 때 저는 많은 경우에 어떻게 진리를 구해야 할지 몰랐으며, 구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도도 했고, 구하며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해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 말씀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의 어느 부분을 찾아 읽어야 적합한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겠느냐? 여기에 최저 기준이 있다. 즉, 일이 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양심에 따르는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하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처럼 마땅히 지켜야 하는 최저 기준이자 실행 원칙이다. 그렇다면 양심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큰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사람의 양심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성에 달려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일을 할 때도 양심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의 일 처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분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를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이런 사람이 바로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양심과 이성에 따라 일을 하지 않고 사람됨의 최저 기준을 벗어났다. 어떤 사람은 많은 진리를 깨닫지 못해 어떤 일을 해도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실행해야 합당하겠느냐? 최저 기준은 양심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선이다. 양심에 근거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바로 진심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이 준 이 생명과 구원의 기회에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양심의 역할 아니겠느냐? 네게 양심이라는 이 최소한의 선이 마련되면 보호를 받아 큰 잘못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나 자신의 책임을 내팽개치는 일, 대충 건성으로 임하고 자신의 지위와 명리, 앞날을 도모하는 일을 쉽게 저지르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양심이 작용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성에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양심과 이성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양심과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성이 없는 사람, 인성이 몹시 나쁜 사람이다. 자세히 말하면, 이런 사람에게 인성을 상실한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일할 때 건성으로 하고, 자기와 무관한 일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는다. 본분 이행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일할 때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가장 먼저 ‘내가 이렇게 한 걸 하나님이 아실까? 다른 사람들은 봤을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착실하게 일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도 보지 못했다면 이렇게 힘을 쏟으며 이 고생을 하는 게 의미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 이는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겠느냐? 이 또한 비열한 마음가짐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는데, 여기에 양심의 역할이 있겠느냐? 양심의 가책이 있겠느냐? 양심의 역할도, 양심의 가책도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무슨 본분을 이행하든 책임감이 없고, 문제를 발견해도 제때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해도 내버려 두고, 악인이 악을 행해도 막지 않는다. 하나님 집 이익도 전혀 지키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직책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실제적인 사역은 조금도 하지 않고, 편안함만 좇고, 무골호인이 되어 그저 자신의 허영과 체면, 지위, 이익만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노력을 기울이고, 힘을 쏟는다. 그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즉, 그는 앞에 나설 기회, 복을 누릴 기회만 있으면 바로 달려 나오고,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일이나 고생스러운 일을 보면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이런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일하는데 자책을 느끼겠느냐? 이런 사람에게는 자책이 없다. 이런 사람의 양심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가 한 번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본 적이 없는데 성령이 질책하고 징계한다고 한들 느낄 수 있겠느냐? 느끼지 못한다.

성령이 역사하는 데는 원칙과 조건이 있다. 성령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겠느냐? 사람이 어떤 조건을 갖춰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면 최소한 무엇을 갖추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최소한 양심과 정직한 마음을 갖추어야 하며, 양심 안에는 정직이라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너의 마음은 정직해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자들은 모두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모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고, 모든 것을 감찰하며,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내면의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느냐? 이는 사람이 단지 글귀와 도리만 이해하고 있을 뿐,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 어떤 사람은 시종일관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고, 내적 상태가 늘 소극적이고 침체되어 있으며, 전혀 즐겁고 평안하지 않으냐? 그들의 내적 상태를 진지하게 살펴보면, 보편적으로 모두 양심 지각이 없으며 정직한 마음이 없고 자질 또한 빈약하다. 게다가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으니, 사람의 내적 상태가 정상인 경우가 매우 드물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와 다르다. 이들은 늘 진리에 공을 들이며, 진리를 조금 깨닫기만 해도 내적 상태가 바로 좋아지고, 진리를 조금 깨닫기만 해도 몇몇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내적 상태는 나날이 좋아지고 정상적이 된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소극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일정 기간 체험하면 늘 수확과 인식을 얻으며, 본분 이행에 있어서도 늘 성과를 얻는다. 복음 전파에서도 사람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떤 본분을 이행해도 모두 원칙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확은 어디에서 얻어지겠느냐? 모두 하나님 말씀을 항상 읽으면서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고 진리를 깨달아 얻은 성과이며, 성령의 역사로 이룬 성과이다. 네가 정직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인성에서 마땅히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을 갖고 있어야 성령이 너에게 역사할 수 있다. 너희는 성령 역사의 법칙을 알게 되었느냐?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느냐? 성령은 일반적으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역사하며,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혀 진리를 구할 때 역사한다. 조금의 인성도, 양심과 이성도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만약 정직한 사람이지만, 그가 한동안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기도도 하지 않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협력하지도 않는다면, 잠시 내적 상태가 어두워지고 타락한 이런 상황에서도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예 인성과 지각이 없는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겠느냐? 더더욱 역사할 리 없다. 이처럼 양심과 이성이 없고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희망이 있겠느냐? 일말의 희망은 있다. 유일한 출로는 바로 진실로 회개하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되겠느냐? 우선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마음을 맡긴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열납할 수 있다. 너는 우선 육을 버리고 자신의 허영과 체면, 이익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다해 너의 본분에 전념해야 한다. 또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만족하기만 하면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다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어려움에 임해 네가 하나님께 기도해 진리를 구했다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네 마음속에 평안과 즐거움이 있는지, 이러한 증거들이 있는지 보아라. 성령의 역사를 얻고자 한다면, 우선 네가 진실하게 회개해야 하며, 먼저 너 자신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활짝 열어 놓아야 하며,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명예, 이익, 지위와 같은 쓰레기들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네가 여전히 이것들을 추구하면서 하나님께 큰 축복을 요구하려 하면, 하나님이 너를 거들떠보겠느냐? 성령이 역사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하나님은 사악을 증오하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다. 사람이 늘 명예, 이익, 지위를 추구하여 이것들을 시종일관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은 늘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어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 용기가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과 인도를 거절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너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악령의 역사만이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사람에게 강요하고, 심지어 억지로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사람을 통제한다. 성령 역사는 매우 부드러워 너에게 감동을 주어도 너는 이를 느끼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이해하고 깨달은 것처럼 느껴진다. 성령은 바로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따라서 성령 역사를 얻고자 한다면, 사람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진실하게 협력해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닥친 일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외에 너는 명예, 지위, 허영, 체면과 같은 너의 진리 실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내려놓아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고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해야 한다. 네가 육체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와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하게 하고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의 이러한 진심을 보면 성령이 역사할 것이다. 우선, 너는 이처럼 진실하게 회개해야 한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하며, 소극적이거나 나태해서는 안 되고 제멋대로여서는 더욱 안 된다. 만약 네가 늘 자기가 결정권을 갖고 주인 노릇을 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자신의 기호대로 하고자 한다면,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이는 어떤 내적 상태이냐? 이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구원해야 하고,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아느냐? 그런 것이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왜 이방으로 전향되었느냐? 왜 이스라엘에서 하지 않았느냐? 왜 종교계에서 하지 않느냐?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너무 거역하고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사역을 이방으로 전향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보겠느냐? 누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구원한다. 그가 종교에서 전향한 사람이든 아니면 이방인이 받아들인 것이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선대하고 구원한다. 너희는 이 일들을 잘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하는 각각의 일은 모두 가장 의미가 있는 일이며, 모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가 그 안에 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고 해도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자신이 똑똑하고 진리를 사랑하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일에서는 네가 똑똑할지 모르지만, 다른 일에서도 똑똑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모든 일에 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야 하며, 자신의 모든 행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 행위가 진리에 부합하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인성이 합격이든 아니든, 정상적인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 부합되든 아니든 상관은 없지만,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만 하나님이 기뻐한다. 진리 추구와 생명 진입은 영원히 끝이 없다. 사람이 단지 양심을 갖고 양심에 따라 일할 뿐이라면 이 원칙은 진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므로 대가를 지불하고 진리에 공을 들이며 하나님의 요구대로 처신해야 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이렇게 추구해야 생명 진입을 할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인성이 있고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양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면 충분히 하나님께 떳떳해.’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이 맞느냐? 양심의 기준이 진리를 대체할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사탄을 증오하고 저버릴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느냐? 양심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 진실한 간증이냐? 모두 아니다. 양심의 기준 안에는 모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양심은 사람 영혼의 감각이며 영혼의 재판이자 또한 정상적인 인성의 선호도를 대표하기도 한다. 종종 수많은 법률 조문과 도덕관념들이 모두 양심 감각의 기초 위에서 세워지고, 이렇게 되면 양심의 감각 역시 법률 조문과 도덕관념을 쉽게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양심의 감각은 진리의 기준에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며, 게다가 감정의 속박을 받거나 듣기 좋은 말에 속거나 오도되어 많은 착오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마귀에게 속거나 사탄이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 따라서 양심에 따라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요구에 한참 미치지 못하니, 반드시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한다. 오직 진리를 깨닫고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해야만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될 수 있다. 진리의 기준은 양심의 기준보다 높다. 만약 양심의 기준에만 따라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느냐? 받지 못한다. 이는 양심은 진리를 대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요구는 더더욱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심에 따른 본분 이행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며, 이렇게 하면 여전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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