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제 1 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다면 먼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마음을 기울이며 진리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구할 때의 핵심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목적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한 함의를 이해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등을 구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들을 분명히 이해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진리를 깨달으면 실행의 원칙을 쉽게 습득할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진리를 실행하는 법을 배우면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예전에 알지 못했던 일들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고, 예전에는 꿰뚫어 보지 못했던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예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일에서 깨우침을 얻고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고 실행의 길을 갖게 되며 항상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러면 진리 실제에 완전히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쓰지 않고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은 채,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하고, 하기 쉬운 대로 한다면, 이것이 어떤 마음가짐이겠느냐? 이것은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다. 본분을 대할 때 충성심도,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다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이르지 못하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절대로 불가능하다.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마음을 쓰지 않고 온 힘을 다하지 않으려 하며 놀이를 하듯 가볍게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결국 사람은 네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며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너는 도태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은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체 과정을 감찰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겠느냐? (이 사람은 부탁할 가치도 없고 믿을 가치도 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이 믿을 가치도 없고 도태시켜야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간에 그것이 중요한 본분이든 일반적인 본분이든, 그 일을 네게 부탁했는데 네가 온 마음을 다하지 않고, 네 책임도 다하지 않으며, 그 일을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이라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의무로 여기지도 않고, 항상 건성으로 대한다면 곤란하다. ‘믿을 가치가 없다’는 일곱 글자는 네 본분 이행의 성질을 규정한 것이다. 네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이르지 못해 도태됐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너라는 사람의 인품이 나쁘다고 말한 것이다. 네게 한 가지 일을 부탁했는데 네가 이런 태도로 대하고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앞으로 네게 본분 이행을 부탁할 수 있겠느냐? 네게 큰일을 부탁할 수 있겠느냐? 절대로 불가능하다. 네가 진실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네게 안심할 수 없을 것이고, 항상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본분 이행의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고, 구원받을 수도 없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정직한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 태도는 훨씬 더 올바른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해야 그런 태도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겠느냐? ‘마음을 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라.’라는 이 말이 네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네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이 분산되거나 놀고 싶을 때, ‘이렇게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게 충성심이 없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본분에 충성심도 없어서 하나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시에 속으로는 이 일이 좀 문제라고 느끼긴 했지만 진지하게 문제로 대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겼어. 그리고 이제 와서야 그게 확실히 건성으로 대충 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임을 알겠어. 난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어!”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다. 그러면 돌이켜야 한다! 과거에는 그릇된 태도로 본분을 이행했다. 본분을 그저 추가적인 일로 생각하며 대충 이행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이렇게 건성으로 본분을 대한다면 하나님께 징계와 채찍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 이런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 양심이 편안해지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돌이킨 것이다. 회개하는 과정에서도 자주 자신이 과연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했는지를 돌아봐야 하며, 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가늠해 보고, 맞춰 보아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본분 이행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부단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제로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냐? 만약 더 이상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고,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이를 수 있고 충성을 다할 수 있다면, 비로소 마음이 진정으로 평안하고 즐거워질 것이고, 본분 이행이 가외적인 부담도 아니고, 남을 위해 일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불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이 충실해짐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렇게 처신한다면 마음이 안정되고, 살아 있는 송장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쉽겠느냐 쉽지 않겠느냐? 사실 쉽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몹시 힘든 일이다.

사실 한 사람의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에 대해서는 자기 마음속에 저울이 있다. 사람이 항상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함께 모여 교제한다면, 설령 진리를 얕게 이해한다 해도 최소한 몇 가지 도리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한 도리에 따라 평가할 수 있으며, 자신의 본분 이행이 어떤지, 원칙에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은 다 도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본분 이행은 모두 건성이고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며, 진리를 구하고 원칙에 따라 일하는 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대충대충 하고, 문제를 발견해도 문제라고 여겨 해결하지 않고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건성으로 대한다. 또 마음속으로 스스로 힘들게 할 필요도 없고 그 일을 진지하게 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과 대충 타협한다. 그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사람의 내적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네 본분 이행에 부담이 없으면 분명 건성으로 대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며, 더더욱 충성심이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항상 순서에 따라 규례를 지키며 새로운 빛도 없고 새로운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일할 뿐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으며 봉사조차도 합격점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봉사조차도 합격점에 이르지 못하면 충성스러운 봉사자가 될 수 있겠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봉사조차도 합격점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어떤 멍청이들은 진리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본분 이행을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그에게 “당신은 진리를 실행할 줄 압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내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이것은 멍청이가 하는 말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최소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비로소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고,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해야만 비로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만약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실제 효과를 얻지 못한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그저 봉사일 뿐이다. 네가 하고 있는 것은 봉사가 분명하다. 그것은 진리 실행과 별개의 일이다. 봉사는 그저 자기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은 내던져 버리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진리 원칙에 따르지 않고 일 처리를 한다면 그것은 모두 봉사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몇 년을 바쁘게 일해도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고 본분을 이행해도 원칙에 따라 일 처리를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제 마음대로 일하고 제 마음대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설령 악을 행하지 않더라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며 몇 년을 바쁘게 살아도 결국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어떤 체험 간증도 교제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옳지 않은 속셈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받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구하지 않고, 대충대충 하고 얼렁뚱땅 형식적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봉사에 속한다. 본분을 얼마나 이행하든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본분 이행은 다르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맞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과 하나님의 선민에게 이로운지 생각하고, 항상 원칙과 효과를 생각하며, 진리 실행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려고 한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옳은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자,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리를 조금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하며 자신은 손해를 보지 않고 자신에게 이로운 대로 한다. 또 힘을 조금 썼을 뿐이면서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의 선민에게 찬동을 얻어 좋은 명성을 갖고 싶어 한다. 마음속으로 이런 것들만 생각하는데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이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너희가 비록 겉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너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계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다. 너희가 비록 항상 예배를 하고 함께 모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설교 교제를 듣지만, 하나님 말씀 책을 덮고 예배 장소를 떠나기만 하면 너희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 말씀 한 구절, 진리의 말 한 구절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며, 때로는 노트에 적은 것조차 마음에 새기지 않고 금세 잊어버린다. 또 너희는 일상생활 중에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한 번도 묵상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으며,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모두 건성으로 하는 태도로 대한다. 심지어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도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의 이런 모습은 이방인과 별로 차이가 없다. 너희가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생명 진입이 전혀 없고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으며, 너희의 본분 이행은 순전히 봉사에 속한다. 너희는 봉사를 통해 천국의 복을 얻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너희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어서는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힘들고, 진리 생명도 얻기가 어렵다. 너희 중에 자질이 훌륭한 사람도 10여 년을 믿어도 글귀와 도리를 좀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표면적인 글귀와 도리에만 머물러 있고, 도리를 조금 깨닫고 규례를 조금 지키고 끝내는 데 만족하며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정도에 한계가 있고 규례를 조금 지킬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본분 이행을 통해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느냐고 너희에게 묻는다면 아마 모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고 고생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대충 하지 말고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집의 요구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가 겉으로는 어떻게 본분을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도리를 말할 수 있지만, 진리 원칙에 관한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의 표면적인 뜻만 이해하고 진리 실제는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진리의 글귀와 도리만 조금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진리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겠느냐? 정상적인 영 생활, 기도, 예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설교를 듣는 것, 찬양 등 이런 표면적인 것들을 지키는 것 외에도 자신의 본분을 그르치지 말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이 밖에도 너희가 깨달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깨닫고 얻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는 법,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리를 묵상하는 데 형식이 필요하겠느냐? 거기에 규례가 있겠느냐? 시간의 제약이 있겠느냐? 공간의 제약이 있겠느냐? 전부 없다. 언제 어디서든 묵상하면 된다. 너희는 평소에 한가한 시간과 잡생각 하는 시간을 아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를 묵상하여라. 그럼 하루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느냐? 온종일 한담을 나누고 수다를 떨며, 자기가 흥미 있는 일만 하고, 따분하고 진리와 무관한 일을 하며, 할 일이 없을 때는 쓸데없는 일이나 옛날 일만 생각한다. 또 자기 미래가 어떨지, 미래의 하나님나라는 어디에 있고 지옥은 어디에 있는지 상상한다. 이런 것들은 정말 따분한 일이 아니냐? 이 시간을 올바른 곳에 쓰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진리를 많이 교제하며, 자기 행동을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가져가 하나님의 감찰을 받은 후에, 자신에게 해결하지 못한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본분 이행에 있어서 해결하지 못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자주 드러나는 패괴 성품은 무엇인지 반성한다면, 특히 하나님에게 가장 패역하고 가장 치명적인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고 했는지 반성한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면, 차츰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먼저 자신이 자주 말하는 영적인 용어와 영적인 단어를 가지고 항상 묵상하고 교제해야 한다. ‘이런 영적인 용어들을 표면적인 의미나 이치상으로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실제로 무엇을 포함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적 용어 속에 포함된 실제를 갖출 수 있을까? 어떤 측면에서 실행하고 진입해야 할까?’ 이렇게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려면 우선 이 측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모르면 진리를 깨닫거나 실행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하면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만족게 할 수 없습니다.) 만족게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진리를 몰라서 패괴 성품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묵상해야 하겠느냐?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너는 이를 두고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 어떤 거지?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게 되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악행인 걸까? 하나님이 정죄하실까? 어떤 것들이 악이지? 나 자신의 마음과 뜻, 속셈, 생각, 관점, 언행의 동기, 근원, 드러내는 각종 성품 등이 대체 진리에 부합하는 걸까? 하나님은 어떤 것을 칭찬하실까? 또 어떤 것을 혐오하고 정죄하실까? 사람은 어떤 일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기 쉽지?’ 이러한 것들 모두 묵상할 가치가 있다. 너희는 평소에 진리를 묵상하느냐? (묵상하는 때는 거의 없고, 머릿속이 텅 비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너희가 몇 년 동안 얼마나 허송세월을 했느냐! 진리에 관한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에 관한 일, 생명 진입에 관한 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과 관련된 일을 얼마나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가 이런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서 진리를 깨닫고,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면 성과가 있고 생명 진입이 있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아직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모르고 진리를 깨닫는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으며 생명 진입도 없다. 그러므로 허송세월하지 말고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나이가 얼마나 됐든 어떻게 기술을 배울 것인지, 어떻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사람과 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모습일지 등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그의 사상이 성숙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렇게 문제를 사고하지 않고 이런 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사상과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며, 인생을 꿰뚫어 보지 못해 여전히 사사건건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하며, 먹고 입는 것도 부모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 부모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야 한다면 그런 사람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성숙한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지금 너희는 어느 단계에 있느냐?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어른이 된 단계에 이르렀느냐? 지금 아무도 너희를 양육해 주지 않고, 상부에서 너희에게 설교를 해 주지 않고 아무도 이끌어 주지 않으며, 너희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찬양을 들으라고 하면 너희에게 생명 진입이 있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실행하고 자기 본분을 잘 이행하며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다. 이것은 너희의 분량이 아직 너무 작아서 본분조차 잘 이행할 수 없고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이런 환경에서 누군가 너희를 이끌고 목양해 주기에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나중에 너희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너희가 굳게 서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진리 실제를 얼마나 가졌는지 드러나지 않겠느냐?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네게 시련이 닥쳤는데도 어떻게 해야 굳게 설 수 있는지 모르고,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할 줄도 모르고, 네 마음속에 길도 방향도 없고 진리가 뿌리내리지도 않았다면 네가 굳게 설 수 있겠느냐? 네게 진리 실제가 없어서 시련이 닥쳤을 때 쉽게 넘어지고,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여 교회의 사역을 교란할 때 분별하지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한 채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면 곤란하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너를 분명히 드러낼 것이고 너는 도태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묵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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