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종착지에 관하여>(발췌문 334)

너희는 종착지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매우 진지하게 대하고, 개개인 모두 종착지에 관한 일에 대해 특별히 민감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해서라도 좋은 종착지를 얻고 싶어 한다. 나는 너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으나 일일이 말하지는 않겠다. 너희는 그저 자신의 육체가 재난에 빠지지 않고, 더욱이 자신이 이후에 영원한 징벌에 떨어지지 않으며,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안락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종착지에 관한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자칫 부주의로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에 따르는 보응을 받게 될까 봐 매우 두려워한다. 게다가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굽실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종착지를 위해 너희 가운데 능구렁이 같던 자들도 갑자기 매우 성실해지고 온순해지는데, 그 성실한 모습은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찌 됐든, 너희의 마음은 다 ‘정직’하다. 처음부터 원망이든, 기만이든, 충성심이든 너희 마음속 비밀을 하나도 숨김없이 내게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너희는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내게 솔직하게 ‘고백’했고, 나 역시 그러한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니 말이다. 너희는 최후의 종착지를 위해서라면 불바다라도 뛰어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 바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들을 너무 교조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너무 충성심 없이 대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희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내가 간단히 설명을 하겠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진리와 생명, 사람됨의 원칙이 아니고, 내가 심혈을 기울인 사역은 더더욱 아니며, 너희들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재물, 지위, 가정, 혼인 등등)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말과 사역에 대해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두 글자로 너희들의 믿음을 개괄하겠다. 그것은 바로 ‘건성’이다. 너희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달성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충성하고 상대적으로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지극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 가운데 실패한 사람이 많지 않으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성공한 것은 그 자신의 행한 바에 의해서이고,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 역시 사람의 행위로 초래된 것이지 결코 다른 요인의 영향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일보다 더 어렵고 힘든 그 어떤 일도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해낼 것이고, 매우 진지하게 대할 것이며, 심지어 그 어떤 오차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너희 개개인이 자신의 생활을 위해 부단히 기울이는 노력이다. 심지어 너희는 자신의 혈육을 속이지 않으면서 나의 육신을 속이는 짓도 해낼 수 있다. 이것이 너희의 일관된 행위이자 처세 원칙이다. 너희는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서, 아름답고 이상적인 종착지를 얻기 위해서 여전히 거짓된 모습으로 나를 속이고 있지 않느냐? 나는 너희의 충성심이 일시적인 것이고, 성실함도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있다. 너희의 의지와 대가도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오로지 마지막 한 번의 노력으로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종착지를 쟁취할 생각만 한다. 너희의 목적은 교환하는 것일 뿐, 진리에 부응하기 위함도 아니요, 나의 대가에 보답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머리를 써서 얻으려고만 할 뿐 노력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심이 아니더냐? 스스로를 위장하지 말라. 더욱이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식음을 잊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지도 말라. 결국 너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각자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어떠한 대가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말했듯이, 그날이 되면 하나님은 그를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 그 누구도 홀대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신념은 그래도 간직할 만하며 또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나는 너희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희에 대해 영원히 안심할 수 없고, 너희를 영원히 싫어할 것이다. 너희들이 양심에 따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나의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나의 복음 사역을 위해 평생의 정력을 바친다면 내 마음이 항상 너희로 인해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내가 너희에 대해 완전히 안심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내가 바라는 것들 가운데 초라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 애석할 따름이다. 그러니 너희는 무슨 낯으로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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