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제 2 부)

사람이 진리를 얻는 과정은 마치 용감한 전사가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온갖 원수와 싸워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원수는 바로 사탄의 갖가지 패괴된 성품이다. 사람은 패괴된 육체와 싸우는 것인데, 요약해서 말하면 그것은 사탄과의 싸움이다. 그럼 사탄과 싸우는 무기는 무엇이겠느냐? 물론 진리이다. 바로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사탄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어떤 측면의 진리를 실행해야 하겠느냐?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과 싸울 때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하는 공과다. 일이 닥쳤을 때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순종할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도 없으며 진리를 구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할 수 없으면 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이 어째서 네게 그런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을 배치해 주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너는 흐리멍덩할 것이다. 네가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패괴된 성품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네가 자신의 패괴된 성품, 패괴된 육체와 싸워 이겨야만 비로소 영계의 사탄 마귀에게 치욕을 안겨 줄 수 있다. 사탄과의 싸움은 주로 진리를 구하는 것을 통해 진행된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네 마음속에 어떤 관념과 문제가 생기든 다 너를 소극적이고 연약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패괴된 성품이 드러나도 언제나 해결되지 못하면 너는 쉽게 넘어지고 실패하고, 굳게 서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험이 임하면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병의 고통이 닥치면 소극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으며, 시련이 닥치면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평소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된 성품이 드러나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아 초래된 결과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탄의 성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피해가 크지 않으냐? (큽니다.) 얼마나 크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면 사람은 무엇에 기대 살겠느냐? (사탄의 패괴된 성품으로 삽니다.) 사람이 사탄의 패괴된 성품으로 살면 항상 관념을 드러내고 혈기가 폭발한다. 가령 네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 형제자매가 너를 폭로하고 책망한다면 그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리를 구해야 하겠느냐? 여기에 배울 공과가 있다. 네가 만약 ‘평소에 날 얕봤는데 이번에는 그에게 약점을 잡혔어. 그가 나를 겨냥했으니 나도 체면을 봐주지 않을 거야. 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혈기 아니냐? (혈기입니다.) 혈기란 무엇이냐? (자기 이익이 손해를 입거나 명예와 이익, 지위가 손상됐을 때 사탄의 성품이 폭발합니다. 그때 사람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혈기라고 이해했습니다.)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또 누가 말해 보겠느냐?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기 안에 있는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을 혈기라고 합니다.) ‘천연적’이라는 단어가 아주 적절하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에 사람에게 있는 가장 천연적이고 가장 원시적이며 가장 근본적인 성품을 자주 드러내는데, 그것이 바로 혈기다. 사고를 거치지 않고 머리 속에서 가공, 생각, 포장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혈기다. 패괴된 성품 속에서 살면서 드러내는 것은 모두 혈기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어째서 진리에 부합하지 않겠느냐? 어째서 사람이 혈기를 드러내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는 사람의 사탄 본성으로 초래되는 것이다. 사람의 원래 성품은 혈기에 속한 것이고, 사람의 이익과 허영, 체면이 손상됐을 때,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실제가 없는 사람이면 패괴된 성품대로 행동하여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럴 때 그가 나타내고 드러내는 것이 바로 혈기이다. 혈기는 긍정적인 사물이냐, 부정적인 사물이냐? 부정적인 사물임이 명백하다. 사람이 혈기대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며 화를 부르기 쉽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혈기와 패괴를 드러낸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겠느냐?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배치해 준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 대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해결한다면 결국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혐오받으면 사람에게 유익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 손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유익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여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려진다. 그런 사람은 증거를 잃게 되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 집의 일원이지만 모든 일을 혈기로 행하고 항상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고 항상 패괴된 성품을 드러내며 사람의 방법, 사탄의 패괴 성품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그 최종의 결과는 바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만약 계속 회개하지 못하고 진리 추구의 길을 가지 못하면 결국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탄의 성품으로 살면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냐? 자기 생명에 발전도 변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교회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는데, 오래 지속되면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마치 역겨운 파리가 식탁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역질 나게 하고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같다. 너희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 어떤 패괴된 성품을 드러내든 먼저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서둘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절대로 혈기나 자기 뜻에 따르면서 계속 패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살면서 매 하루, 매분, 매초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네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하나님은 모두 감찰하고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너의 무엇을 관찰하겠느냐? (하나님이 배치하신 사람과 일, 사물이 닥쳤을 때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찰하십니다.)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관찰하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보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측면이고, 주된 측면은 무엇이겠느냐? 잘 묵상해 보아라.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든,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든, 그것은 모두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느냐와 관련된 문제다. 하나님이 어째서 계속 사람을 감찰하겠느냐? 바로 네가 어떤 길을 가는지, 네 인생 목표와 방향이 어떠한지, 네가 진리 추구의 길을 선택하는지 아니면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길을 선택하는지, 네가 대체 어떤 길을 가는지 보려는 것이다. 만약 네가 선택한 길이 옳다면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너를 붙잡아 주고 공급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네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이므로 하나님도 자연히 너를 버릴 것이다.

항상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진리 원칙을 어기고, 심지어 하나님 집의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징계도 책망도 받지 않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느냐?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미 포기한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포기하려 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과 소망은 사람이 어떤 길을 가길 바라는 것이더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환경을 배치해 줄 때 사람이 순종하길 바라느냐, 거역하길 바라느냐?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얻길 바라느냐, 아니면 본체만체하고 제자리걸음 하길 바라느냐?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이냐?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이 소극적으로 태업을 하거나 본체만체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할 수 있길 바란다. 어떤 이들은 미온적인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 어떤 일을 배정받으면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지만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구하지 않으면서 이것이 별로 문제가 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행정 법령을 위반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도 않았으며,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지도 않은 데다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정죄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미온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혐오받는 태도입니다.) 미온적인 것은 무슨 태도이냐?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의 그런 태도를 혐오하느냐? 그런 태도의 본질은 무엇이냐?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제 마음대로 하여 원칙을 어긴 적이 있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았지만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속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그런 태도가 바로 미온적인 것이고, 그 때문에 그 시기에 저는 몹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으면 마음속에 믿을 만한 기둥이 사라진 것과 같으므로 무척 괴로웠습니다. 겉으로 보면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눈에 띄게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도 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깨우침이 없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협력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 미온적이고 소극적이며 태업하는 태도가 계속되면 그것은 만성 자살과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뿌리가 죽은 나무와 같습니다. 생명 공급이 사라져 나뭇가지와 잎도 천천히 시들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죽습니다.) 아주 잘 얘기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내적 상태가 있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말썽을 피우는 것도 아니며, 악을 행하거나 교란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온적인 상태 말이다.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의 이런 태도를 혐오하겠느냐? 이런 태도의 본질이 무엇이겠느냐? 소극적으로 대항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거부한 것이냐,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냐?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네가 먼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향해 네 마음을 닫은 것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이 ‘닫는다’는 것은 사실 사람이 마음을 봉쇄하고 하나님을 밖에 둔 것이다. 바로 ‘나는 당신을 원치 않는다. 나는 당신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모든 왕래를 끊겠다.’라는 뜻이다. 피조물이 이런 태도로 창조주를 대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의 이런 내적 상태를 보고 기뻐하겠느냐, 혐오하겠느냐, 아니면 상심하겠느냐? 처음에는 상심한다. 사람이 너무 무감각하고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실망하고 사람을 혐오한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측면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에게 얼굴을 가리고 네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다. 네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은 계속 너를 긍휼히 여기며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만약 네가 그런 태도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완전히 닫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과의 왕래도 거부한다면, 그것은 바로 너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인도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네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네가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 너의 주님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계속 역사할 수 있겠느냐?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버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네가 이 점을 깨닫고 네 잘못을 알고 회개할 줄 알아야만 하나님이 비로소 역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고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 둘 것이 분명한 것이다. 너희가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없느냐? 그런 상황에서 평안하고 즐거웠느냐, 아니면 괴롭고 고통스러웠느냐?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산 송장처럼 생각도, 영혼도 없이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이 텅 비어 사람의 영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니냐!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는데 그러면 상황이 곧바로 변해 버린다. 즉, 영적 상태가 즉시 가라앉고, 하나님이 함께함을 느낄 수가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의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심장 박동이 정지된 것처럼 말이다. 이는 아주 위험하다. 그러면 이런 내적 상태가 나타날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네게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 항상 소극적이고 대항하는 내적 상태, 하나님께 완전히 버려지고 하나님을 느낄 수 없는 내적 상태에서 산다면, 아주 위험한 일이다! 너희는 이런 위험이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느냐? 사람이 피해를 입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또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느냐? (악령에게 점유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한 측면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더 있다. (큰 악을 저질러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또 어떤 가능성이 있느냐?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점점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이것이 끔찍한 일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믿음을 포기하려는 악한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다. 그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배신했으므로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일 때는 사람의 내적 상태가 좋지만,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다. 내적 상태가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다르다. 내적 상태가 좋을 때는 사람의 마음속에 의욕이 생기고, 그 의욕으로 너는 충동이 생긴다. 즉,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아무리 고생해도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고, 죽을 때까지 변치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런 의지가 어디서 비롯되겠느냐? (사람의 열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럼 그런 열정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겠느냐? 그런 의지는 긍정적인 사물이냐, 부정적인 사물이냐? (긍정적인 사물입니다.)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고, 사람이 마음속 깊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내적 상태를 갖고 있는지 살핀다. 그러므로 당시에 네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런 바람과 의지를 하나님이 감찰한다. 그러면 사람의 그런 의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냐? 사람의 천연적인 것과 혈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냐?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더해 준 것입니다.) 그렇다. 사람이 올바른 내적 상태에서 살면 성령이 사람에게 그런 힘을 더해 주어 그런 마음을 갖게 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사물로, 사람의 협력과 대가 때문에 성령이 사람에게 더해 주는 것이다. 사람이 까닭 없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이 협력하려는 마음을 약간 가졌을 뿐인데 성령은 그토록 큰 원동력을 사람에게 불어넣어 준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오로지 죽음뿐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이것은 진실한 말이며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네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약간의 의지로 하나님께 솔직하게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게 힘을 더해 준다. 네가 그 힘을 얻으면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하며 그렇게 큰 의지를 갖게 한다. “내 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겠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자기 머리와 마음으로, 또 자기 자질과 은사로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겠느냐? 네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 사람은 스스로 그 힘을 가질 수 없다. 그 힘은 하나님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그 힘을 잃을 때는 어떻게 된 일이겠느냐? 어떻게 초래된 것이겠느냐?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힘도 사라진다. 사람에게 그 힘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더해 준 힘이다. 모두 하나님이 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고 하나님에게 “싫어요.”라며 네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를 거부하고 네 주변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을 배치하는 것을 거부하면, 너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조차 다 사라지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잃게 되면 이렇게 끔찍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을 잃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닫으면 믿음을 포기할 생각까지 생겨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그런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제일 끔찍한 것은 이런 생각이 점점 강렬해진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사람은 자신이 처음에 버리고 헌신했던 것을 후회하고, 처음에 그런 의지를 갖고 그런 고통을 겪었던 것까지 후회한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전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이 배치한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 순종할 수 있으면 평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배치한 사람, 일, 사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주위 환경에 순종하지 않으려 하면 사람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겠느냐? (고통과 어둠이 닥칩니다.) 사람은 어둡고 고통스럽고 초조하고 불안에 떨며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 둘의 차이가 크지 않으냐? (큽니다.) 사람이 좋은 내적 상태 속에서 사는 것은 하늘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과 같지만, 내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점점 어두워지고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어진다. 어두운 내적 상태 속에서 사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 너희는 지옥의 고통을 맛본 적이 있느냐? 그 기분이 괴롭지 않더냐? (괴로웠습니다.)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하겠느냐?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습니다.) 그렇다. 죽느니만 못하게 사는 것이다. 살아 있지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만큼 고통스럽다. 아주 잘 표현했다.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의 모든 어려움, 모든 소극성과 연약은 패괴 성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면 믿음의 모든 어려움이 거의 해결될 것이다. 진리를 구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사라지고, 진리를 실행할 때 어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아무런 장애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패괴 성품을 해결해 성품 변화를 이루는 것과 관계가 있다. 진리를 구하는 목적은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진리 추구는 성품의 변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진리를 어떻게 구하고, 또 어떻게 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조금 전에 어떻게 말했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속에서 공과를 배우며, 진리를 구하고 자기 본분을 지켜야 한다. 네가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속에서 공과를 배울 수 있다면 순종하기가 쉽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는 과정에서 패괴 성품과 혈기를 드러내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 과정에서 사람의 방법과 사람의 머리로 하나님이 네게 배치해 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람이 정상적인 내적 상태 속에서 살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정상적인 내적 상태가 있다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너는 안전해질 것이다. 네가 항상 하나님 앞에 올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이 네게 마련해 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배치해 준 모든 사람, 일, 사물에 순종할 수 있다면, 너는 항상 하나님의 눈 아래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에서 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 운명을 하나님이 보살피고 책임지고 주재하면, 네가 날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면 너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화제에 대한 교통은 여기까지 하겠다. 나중에 너희가 함께 교제하고 총정리하고 공유해 보아라.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욥처럼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이 너를 마음속으로 걱정하며 네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바른길을 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2017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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