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제 4 부

사례7. 맵게 먹는 것을 즐기다

고추를 자주 먹는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후 때문에, 또는 가정에서 습관적으로 고추를 즐겨 먹기 때문에 매일같이 고추를 먹고 평소에도 매운맛 위주로 식사한다. 이는 분명 선천적인 조건이다. 선천적인 조건의 어느 측면이겠느냐? (생활 습관 측면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식사할 때 매운맛을 빼놓지 못하며 무엇이든 맵게 먹으려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로 맵게 먹겠느냐? 단 음식을 먹을 때도,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도 매운맛을 곁들여야 하고, 심지어는 차나 커피에도 고추를 넣어 마실 정도이다. 이는 일종의 생활 습관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이 있느냐? (없습니다.) 매운맛을 즐기는 것은 생활 환경과 생활 습관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과할 정도로 매운맛을 즐겨서 매운맛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그는 한사코 매운맛을 고집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바꿀 수 없다. 아무튼 고추를 즐겨 먹는 것은 일종의 생활 습관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진리와도 관련이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생활 습관은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비판하고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강 상식을 보급하고 건강 위주의 식사 및 생활 습관 원칙을 보급해야 하지 않겠어요?” 고추나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나쁘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는 오랜 세월 그렇게 먹어 왔고, 어떤 사람들은 몇 대에 걸쳐 그렇게 먹어 왔지만 다들 상당히 건강하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고추를 많이 먹는다. 지나치게 매운 그들의 음식을 보면 속이 불편해지지만 그런 지역 사람들은 몸이 상당히 건장하고 튼튼하며 일을 할 때도 끈기와 지구력이 있다. 이는 고추를 먹는 것이 폐해가 없고 건강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맵게 먹는 것은 건강 원칙에도 부합한다. 고추를 즐겨 먹는 것은 일종의 선천적인 생활 습관으로 남이 좋아하든 말든,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개인이 좋아하고 남의 생활과 식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유지해도 되며,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집에서도 아무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고추를 먹는 것은 위에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에 안 좋을까 봐 걱정된다면 안 먹으면 된다. 계속 먹다가 위가 불편해지면 그도 스스로 느끼고 알아서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누구든 개인의 취향이 있다. 단맛이나 신맛, 혹은 쓴맛이나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어떻게 먹든, 어느 정도로 먹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조건과 환경이 허용하는 한 마음 놓고 과감하게 먹어도 된다. 나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건 제 자유고 권리니 당신이 간섭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한 끼 식사로 고추만 먹는다고 해도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위가 다치든 말든 제가 스스로 책임질 거예요. 당신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요.”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건 너와도, 나와도 상관없는 그의 개인적인 일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일은 진리나 패괴 성품과 무관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할 때 해결하려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 습관에 관한 문제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긍정적인 사물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사물도 아니며, 일부 사람의 기호일 뿐이다.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고추를 즐겨 먹어서 끼니마다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한다. 그래서 매끼 매운 음식을 준비한다. 고추를 먹어 본 적 없는 사람이 먹고 나서 몸이 견디지 못해 맵지 않은 음식을 해 달라고 해도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안 돼요. 저는 매운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해져서 이제 맵지 않은 음식은 맛이 없거든요. 당신도 매운 음식을 먹는 연습을 해야 해요. 한동안 먹다 보면 적응이 돼서 먹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무엇이 문제겠느냐? (그의 인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인성의 어느 측면에 문제가 있느냐? (남에게 강요합니다.)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남에게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 무슨 일을 하든 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도 좋아하라고 하고 남들이 자신을 만족시켜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아니냐? 남에게 강요할 뿐 아니라 다소 악독하기까지 한 이런 사람의 인성이 좋겠느냐? (인성이 나쁩니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남에게 유익을 주지 않고 상처만 주며, 심각한 경우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막무가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매운 음식을 즐겨 먹지만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식사를 준비할 때는 저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매운 음식도 좀 하고 맵지 않은 음식도 좀 하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만족시킬 수 있잖아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원칙은 모두가 잘 먹고 만족하는 겁니다. 제 생각만 하지 말고 원칙대로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겠죠.” 이 부류는 어떠냐? (인성이 비교적 좋습니다.) 어떻게 좋으냐? (그는 자기만 만족하려 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돌볼 줄 압니다.) 비교적 선량하지 않으냐? 좋은 인성 안에는 선량한 면이 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돌볼 줄 아는 것이다. 이는 인성과 관련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성격이 어떻든 그의 인성에 좋은 면이 있으면 그의 주위 사람이나 그와 어울리는 사람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에게서 붙들어 줌과 도움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생활 속에서 그의 보살핌을 받는다. 이는 좋은 인성이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어서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식사 시간만 되면 일부러 매운 음식이 있는 곳을 찾고, 한 끼라도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면 속으로 괴로워한다. ‘여기서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니 본분을 이행하는 재미가 없어.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면 끼니마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고추가 없으면 무엇을 먹든 맛이 없어. 돼지고기볶음을 먹어도 감칠맛이 안 난다고. 어쩌면 좋지?’ 그래서 그는 고추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얼마 후, 매운 음식 전문점이 있지만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멀어도 가야죠! 오늘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예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마음이 불안하다고요. 오늘은 그냥 못 넘어가요!” 누가 그에게 “지금은 바깥 환경이 위험해요. 상당히 혼란스럽다고요! 우리 그 식당은 가지 맙시다.”라고 해도 그는 듣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뭐가 겁나요? 먹는 게 우선이죠! 평소에도 외출은 하잖아요? 걱정 마요.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거니까요!” 그는 음식을 다 먹고 기뻐한다. 고추를 먹거나 자신이 바라던 맛있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고 너무 기뻐서 잠을 자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성입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객관적인 환경이나 조건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바람과 기호를 충족시킬 수만 있으면 그만이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한 입 먹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상관하지 않는다. 설령 고생스레 먼 길을 가야 하더라도 어떻게든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것이 그저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겠느냐?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아주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누구든 그와 함께 있으면 제멋대로 구는 그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한다. 그가 하는 말은 곧 법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어느 날, 그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밥을 먹기 싫다고 한다. 왜 밥을 안 먹느냐고 물으면 “오늘은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아서 밥을 못 먹겠어요.”라고 말한다. 또 밤에 잘 때가 되면 자지 않고, 잠이 안 오니 노래를 불러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이 잠을 못 자잖아요.”라며 말리면 그는 “저는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요. 당신들이 잠을 자든 못 자든 저와는 상관없잖아요. 저는 지금 기분이 안 좋은데 아무도 위로하거나 관심을 가져 주지 않네요. 당신들은 너무 이기적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냐? 너무 제멋대로 구는 것이고 규율을 지키지 않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면 남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저는 너그러운 사람이라서 따지는 걸 싫어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기분이 나쁠 때 사람들은 유독 말을 조심해야 하고 그를 건드려선 안 된다. 그를 건드리면 야단이 난다. 그는 떼를 쓰고 행패를 부리고 물건을 부수며 식음을 전폐한다. 심각한 경우, 본분을 포기하고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모두 제게 못되게 굴고 저를 괴롭혀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요!” 이는 제멋대로 구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제멋대로 구는 것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몹시 제멋대로 굴어서 남들이 다 그 위주로 행동해야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태도가 돌변해 불같은 성격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고, 모두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는 나이도 적지 않지만 늘 인성이 미성숙하여 마치 어린아이 같다. 또 그는 어디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결코 공공 규칙을 준수할 줄 모른다. 그가 신이 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은 듣고 있어야 하는데,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앙심을 품는다. 그와 대화할 때는 웃는 얼굴을 해야 한다. 무표정한 채로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는 화가 나서 성을 낸다. 교회에서도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을 때 행동한다. 사람들의 정상적인 생활 규칙에 영향을 끼쳐도 개의치 않으며, 그저 자신이 편안하고 기분 좋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다. 만약 누가 의견을 제시해 반감이나 불쾌감을 표시하면 그를 건드린 것이 되며, 그는 상대와 끝장을 보려 한다. 이런 부류 중 일부는 나이가 어리고 인성이 미성숙하지만, 일부는 40, 50세, 심지어 70, 80세로,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 인성을 가진 채 유독 제멋대로 군다. 환경과 조건이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는 씻을 여건이 안 되는 곳에 가서도 기어코 씻으려 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집에서 매일매일 씻어요. 씻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는 그럴 여건이 안 되고 일주일에 한 번 씻는 것도 쉽지 않다면 어떡해야겠느냐?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지 안다. 날씨가 습하고 무덥다면 밤에 물을 한 바가지 퍼서 간단히 닦고 잘 수만 있으면 된다. 사람은 이 정도 고생은 견딜 수 있으며,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류는 그러지 못한다. 씻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며 심지어 엄청난 굴욕을 견디기라도 하듯 못 살겠다고 한다. 이는 어느 정도로 제멋대로 구는 것이냐?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남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리거나 왕래하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 정상인처럼 살 수도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정신병자 같다. 그는 사이가 좋은 사람과는 마치 한 몸처럼 잘 지내지만, 사이가 나쁘거나 자신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는 사람과는 평생 말도 섞지 않을 수 있다. 만나면 눈을 흘기고 바로 얼굴을 굳히며 마치 원수라도 만난 듯 유독 극단적으로 구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성이 정상적이겠느냐? (비정상적입니다.) 이런 부류는 몹시 제멋대로 구는 것으로 인성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남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리고 협력할 수 있겠느냐? 무리 속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예를 들어 한 끼 식사를 하거나 좋은 대우를 누리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때 반드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 속으로 불안해하고 불평하며 타인과 환경을 원망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환경을 마련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거야! 왜 다른 사람은 이런 환경을 맞닥뜨리지 않고 이런 고생을 하지 않지? 왜 나만 고생하냐고.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신다니까!’ 보아라, 마귀의 본성이 나오지 않았느냐? 이 인성이 기준에 맞겠느냐? (맞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보통 교회로 쫓아내야 합니다.) 만약 그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러 본분을 이행할 때 방해하고 교란하는 데다가 모두가 그에게 반감과 혐오감을 품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서둘러 쫓아내야 한다. 이런 자는 ‘개차반’이다. 제멋대로 군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막무가내라는 것이고, 때로는 쩨쩨하게 굴거나 남에게 야박하며 심지어 흉악하고 악독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한동안 본분을 이행하면 다들 큰 피해를 입고, 보는 사람마다 그를 두려워한다. 그를 피하면서 건드리지 않아도 그는 이렇게 트집을 잡는다. “도둑을 피하나요? 제가 당신한테 뭘 어쨌다고 저를 피하죠?” 그에게 접근해 한마디 나눌 때도 그는 너와 정상적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정상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와 어울리는 사람은 말로 인해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인격이나 마음도 다치고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해를 입는다. 이런 부류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그들을 인성이 나쁜 범주 안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인성이 나쁘고 제멋대로 군다. 제멋대로 구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혐오감과 반감을 일으키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그의 안에는 어떤 성품이 있겠느냐? (강퍅함이 있습니다.) 강퍅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진리를 싫어합니다.) 그렇다. 강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은 제멋대로 구는 부류가 가진 두 가지 측면의 특징이다. 이 부류는 제멋대로 굴 뿐 아니라 이기적이고 막무가내이다. 막무가내인 모습에는 억지를 부리는 면도 있다. 이런 부류와 어울릴 때는 좋게 말로 해도 안 통한다. 그러면 그는 네게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엄하게 말하면 그는 네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제멋대로 구는 바람에 남이 해를 입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일부러 당신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니에요. 상처받았다고 느낀다면 사과할게요.” 이 말이 듣기는 좋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이 그를 용서하지 않고 지적하는 말을 하면 그는 성을 낸다. “그만 좀 하세요. 잘해 줬더니 기어오르는 건가요? 사과했더니 제가 만만해 보여요? 제 흠까지 지적하는군요! 제가 흠이 있다고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지적하죠?”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는 패괴 성품과 관계된다. 인성의 이런 특징은 당연히 일부 패괴 성품의 특징도 드러내며, 둘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이런 부류가 가진 패괴 성품의 특징은 바로 강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것으로, 흉악함도 조금 섞여 있다. 그들이 가진 패괴 성품은 이 몇 가지 측면의 특징을 보인다.

사례8. 사람의 본능

선천적인 조건에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게 된 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하나님 선민을 광적으로 탄압하고 체포하고 박해하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무서워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겁먹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때로는 다리에 힘이 빠져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는 어떤 모습이냐? (본능입니다.) 이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은 일부 공포스러운 일, 자신의 목숨과 관련된 일,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일에 대한 소식을 듣거나 그런 사실이 닥쳤을 때 일부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겁먹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신체도 자연스레 정상적인 반응들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일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거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입이 마르고 다리가 풀리고 온몸에 땀이 나거나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는 등의 반응도 나타난다.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이런 반응이 신경 작용에 의한 것이든, 다른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든 결국 외부 요소가 사람의 육체에 일으킨 반응으로, 이런 반응을 통틀어 본능이라고 부른다. 육체는 감내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사람의 담력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을 초월하면 일부 본능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남들에게는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우습고 불쌍해 보이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런 반응은 사람이 선천적인 본능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위험에 맞닥뜨리면 머리를 붙잡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또는 캄캄한 구석에 웅크려 숨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울든 웃든, 크게 놀라 민망한 일이 생기든, 사람의 이런 본능적인 반응들에 옳고 그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럼 정부가 신도들을 체포하는 일을 듣고 두려워하는 부류를 가리켜 못난 데다 인성이 없다고 말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어야지,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라는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그건 연약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이에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 의지할 줄 모르니 이기는 자가 아니라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느냐? (그것은 외부 환경을 마주할 때 나타난 신체의 생리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상적인 생리 반응이지,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아 나타난 모습이 아니다. 즉,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그런 모습을 표출할 때는 패괴 성품에 영향받은 것도 아니고, 인성의 특정 사상 관점에 지배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반응은 사전에 구상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런 환경이 닥치자 갑작스럽게 어떤 생각이 떠올라 곱씹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고 몸에 경련이 일어나며 심지어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게 된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과 소식들을 듣고 나서 머리로 사색하지도 않고, 아무런 생각의 여과나 가공도 없이 일부 본능적인 생리 반응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연스러운 반응은 선천적인 육체의 본능에 따른 것으로, 옳고 그름이 없으며 강인하거나 연약하다고 할 수도 없는 데다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구분은 더더욱 없다. “정부가 아무리 형제자매들을 잡아들여도 저는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런 자를 얼간이라고 한다. 큰 붉은 용이 고문을 가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지 두고 보겠다. 그때가 되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죽는 게 낫겠어. 죽으면 벗어날 수 있고 고통도 사라질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모두 육체의 본능적인 반응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두렵지 않아요. 때리면 반격할 거고, 이길 수 없으면 도망갈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도망갈 때 상대방이 총을 겨누면 다리가 풀리고 겁이 나서 다시는 “저는 두렵지 않아요.”라고 외치지 못할 것이다. 생사가 걸렸을 때는 죽음이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이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이라면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어떤 인성적 연약함을 표출하든 잘못됐다고 할 수 없고 창피한 일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억제해서도 안 되고, 방관자라고 하더라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모두 다 똑같이 혈육의 몸을 지닌 존재이며, 그런 존재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너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 늑대를 맞닥뜨렸을 때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겠느냐? ‘어서 도망가야 해! 빨리 도망갈수록 좋다고!’라고 생각한다. 도망가는 동시에 늑대가 쫓아오는지도 살펴야 하는데, 걱정되어 ‘늑대한테 잡히면 어떡하지? 목을 물리면 죽지 않을까? 총이나 쇠몽둥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도망가면서 그제야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든 본능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쫓아오는 늑대에게서 얼른 벗어나는 것임이 분명하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야지, 늑대에게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이는 모두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이란 무엇이냐? 스스로를 구하는 것,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본능적인 반응은 방관자의 눈에 못나거나 민망하거나 창피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창피한 일이 아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이고 자연스러운 표출이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자연스러운 표출이므로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웃긴 이야기를 들으면 웃게 되는데, 입에 밥을 물고 있거나 물을 머금고 있어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바로 하나님이 준 태생적인 기능이다. 그것은 적절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여 그 기능을 발휘한다. 따라서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운 표출을 가리킨다. 본능적인 반응은 인성의 약점이나 결함을 표출할 수도 있고 육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표출할 수도 있는데, 어찌 됐든 본능적인 반응인 이상 옳고 그름은 없다. 본능적인 반응이 창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식견이 없고 인성이 허영에 들떴으며 남의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다. 또 본능적인 반응을 억제하려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고 이성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특히 위험한 환경이나 위험한 장소에서는 설사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리더라도 그것을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정상 인성의 모습에 해당하며 어떤 사람도 그런 일이 닥치면 그런 모습을 보인다. 설사 유명인이나 위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 닥쳤을 때는 특출난 초인도 없다. 너는 평범한 사람이고 대단하지 않으며 칭찬할 것도 없다. 설사 네가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을 남에게 들켰다 해도 그것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보거나 숭배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안전해지기는 했으니 말이다. 이 측면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은 아주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사람은 머리가 더러워져서 두피가 간지러울 때 긁고 나서 손톱에 때가 끼고, 남들에게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일지라도 본능적으로 머리를 긁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머리가 더러워지면 때가 끼기 마련이다. 너는 흙으로 만들어진 혈육의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네게 머리가 더러워졌으니 감아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 두피가 가려울 때 긁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본능적인 반응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이며, 하나님이 만든 선천적인 조건과 신경의 작용에 따라 나타나는 정상적인 모습이다. 비록 가끔씩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창피하거나 면이 서지 않거나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꾸거나 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사람의 본능을 올바르게 대하는 한편 처신하는 데 도움과 유익을 얻게 된다. 이 측면에서 어느 정도 식견과 인식이 생긴 뒤에는 남과 어울리고 교류할 때 사람의 육체적인 본능에 해당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나타나고 표출되어도 애써 숨길 필요가 없다. 때때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해명하거나 위장하고 포장하지 마라. 그것은 정상 인성의 표출이자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정상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몸 안에서 자연스레 가스가 생겨 본능적으로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젊은 남녀는 이런 모습을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창피해할 것 없다. 이는 신체의 본능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으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는 무관하다. 비록 어떤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만을 품지만 그래도 이는 결코 처신에 마지노선이 없거나 교양이 없는 것, 처신할 때 규율을 잘 지키지 않는 것, 제멋대로 굴고 이기적이며 인성이 나쁘거나 악한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다. 이 일은 처신과 무관한 것은 물론, 패괴 성품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으니 확대 해석하지 말고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