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 제 4 부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1. 무엇이 하나님의 이익이고 무엇이 사람의 이익인가

이번에는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 중 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에 관해 교제하도록 하겠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 집의 이익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매사에 자기 이익을 중심에 두는데 무척 이기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일을 처리할 때 늘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치고 그 대가로 자기 이익을 지키며, 심지어는 말을 빙빙 돌려 하나님 집에 뭔가를 요구함으로써 자신의 사욕을 채운다. 여기에서 중심 단어는 무엇이냐? 무엇에 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느냐? (이익입니다.) 그럼 이익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냐? 이익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사람에게 이익이란 무엇이냐? 사람의 이익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지위, 명예, 그리고 물질적인 이익과 관련된 것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남들을 미혹하여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이다. 이 밖에, 물질적인 측면도 있다. 일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이익과 이점을 취하고, 하나님 집의 물품을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들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이익만을 취하려고 한다. 그것이 정신적인 측면의 이익이든, 아니면 물질적인 측면의 이익이든 끝없이 탐내며, 전부 독차지하려고 든다. 이익과 관련된 일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며, 이익은 모든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매일 접하는 모든 일은 다 이익과 연관된다. 예를 들어, 말을 하고 일에 관해 논할 때 어떤 이익과 관계가 있겠느냐? 두 사람이 어떤 일에 관해 논하는 것은 누구의 말재간이 좋고 누구는 말재간이 좋지 않은지, 누가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누구는 무시당하는지 등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말하는 방식에 따라 그로 인한 결과도 달라지는 것과 관련된다. 이는 이익과 연관된 것 아니겠느냐? 그럼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어떻게 하겠느냐? 온 힘을 다해 뽐내고, 머리를 쥐어짜 할 말을 잘 생각해서 명확히 이야기함으로써 더 조리 있는 말로 듣는 이가 기분 좋게 하고, 논리 정연하다는 느낌을 줘서 깊은 인상을 남기려 한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말재간과 머리,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일종의 이익이다.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또 어떤 부분과 관계가 있겠느냐? 일을 처리할 때 사람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계산하고 궁리하며,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롭고 어떻게 하면 이롭지 않은지, 어떻게 해야 더 큰 이익을 얻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 이익을 잃지 않게 될지, 어떻게 해야 최고의 명예와 물질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 등에 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한다. 이는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쟁취하려는 두 가지 측면의 이익이다. 사람이 얻으려는 이익은 다음의 두 가지에 중점을 둘 뿐이다. 첫 번째는 물질적인 이익을 얻는 것으로,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신적으로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며 마음을 얻는 것이다. 때로는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물질적인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이다. 어쨌든 사람의 명망, 지위, 명예, 그리고 물질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사람의 이익이라는 범주에 속하며, 사람이 추구하는 이익이다.

이러한 이익 추구의 성질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왜 이런 것을 추구하겠느냐?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게 정당하겠느냐? 합리적이겠느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겠느냐? 그것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자신의 지위와 명망, 손안의 권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대가를 불사하고 그런 것들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지위를 준다면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이 치욕이 아니라 네 명예가 되게 해야 한다. 이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다.’라는 내용이 있더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없다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피조물에게 어떻게 요구하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익을 어떻게 대하라고 요구하겠느냐? 먼저,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익을 버리라고 한다. 이는 무척 개괄적인 말이다. 이 밖에, 하나님은 더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에게 적절한 실행의 길을 주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인지,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 피조물로서 해야 할 일인지, 물질과 명리를 대할 때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따로 언급할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이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알려 주지 않았지만, 그 행간에는 패괴된 인류의 이익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 관점을 내려놓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착실히 하나의 피조물이 되어 자신의 위치를 지키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 사람에게 이렇게 요구한 것이 의도적으로 사람의 이익을 박탈한 것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에서는 늘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에 관해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저희, 사람의 이익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까? 저희, 사람의 이익은 누가 주는 겁니까? 저희도 인권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에게 작은 이익 정도는 주셔야죠. 왜 저희에게는 조금도 남겨 주지 않는 겁니까? 왜 전부 하나님의 것이죠? 하나님도 이기적이신 것 아닙니까?” 이런 말은 너무도 패역적이며 대역무도하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말로,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마귀만이 어떤 패역한 말도 다 내뱉을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늘 사람에게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 일을 좀 하고 성취를 거둬 모두의 숭배를 받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가리켜 야심이라고 하시지요. 또 사람이 좀 이익을 얻고 좋은 것을 먹고 호시절을 보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폼 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가리켜 자기 이익을 충족하는 거라며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전부 내려놓는다면 저희가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채 늘 하나님의 요구에 반발하며, 이런 일에서 항상 하나님과 충돌한다. 이는 다음 상황과 같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느라 반평생 고생하면서, 병에 걸려 몸이 망가지면 자식이 기댈 곳이 없을까 봐 영양제를 사 먹으니 철없는 자식은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새 옷을 못 산 지 몇 년이나 됐는데, 엄마 아빠는 왜 영양제를 사는 거죠? 돈을 모아서 제가 대학에 갈 때 써야죠.”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부모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겠느냐?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도, 육적인 안일을 누리기 위한 것도, 좀 더 편하게 오래 살면서 훗날 자식 복을 누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것이겠느냐? 부모가 위하는 것은 자식이다. 그런데 자식은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를 책망하니, 이는 대역무도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모와 충돌하며, 심지어는 고집을 부리면서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럼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느냐? 이는 진리를 깨닫는 것과 연관이 있다. 사람이 자기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는 행동이 왜 하나님에게 정죄되겠느냐? 설마 하나님이 이기적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람을 가난하고 불쌍하게 만들기 위해서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이 잘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와서 사역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기 위함이고,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사람이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에게 약속과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모두 패괴 성품을 갖고 있으므로 반드시 숱한 고난을 겪어야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모두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호시절을 보내고 육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충족하려고만 하면서 진리 추구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정결케 되어 구원받을 수도 없다. 구원받지 못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재난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이 육적인 누림을 탐할 때겠느냐? 그렇지 않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육적인 이익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이며,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이고, 사람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일단 진리를 얻어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언제든 임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복은 사람이 상상하는 육적인 누림보다 수백 배, 수천 배 크다. 그런데 사람은 왜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모두 눈먼 것이 아니냐? 그럼 하나님은 왜 늘 사람에게 자기 이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라고 하겠느냐? 누가 이 일에 관해 설명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고, 사람의 이익은 모두 진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에게 처신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이런 사역은 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줄 모른다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 말에는 실제적인 부분이 좀 있구나. (제가 조금 보충해 보겠습니다. 저는 명리와 지위에 대한 욕심이 무척 컸습니다. 저는 은사가 있으니 책임자로 발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선거 때마다 떨어지자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작은 바람조차 이뤄 주지 않으시는 걸까?’라고 말입니다. 그 후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반성했고, 제가 많은 경우에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면서 질투하고 분쟁을 일으켜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로 인해 제 생명만 성장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사역에도 손실을 가져다주었지요. 저는 명리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인생관이나 추구 목표가 아니며,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여 주입한 잘못된 관점임을, 이런 식의 추구는 무척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척 위험한 길이고, 그런 식의 추구는 마지막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척 위험하다.”라고 말했는데, 너희는 여기에서 ‘위험’이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느냐?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나겠느냐? 그것은 어떤 길이겠느냐? (멸망의 길입니다.) 그런 추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다.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지위와 명망을 추구하는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다. 네 바람과 포부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식의 추구도 아니다. 하나님은 네게 그렇게 추구하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고집을 부리면서 네 멋대로 군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걷게 된다. 그럼 무엇이 위험하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편, 하나님에게 아우성치고 대항하며,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멸망이다. 또 보충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 제가 보충해 보겠습니다. 방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왜 사람이 자기 이익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게 하는가?’에 관해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셨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두 번 성육신하여 하신 이 모든 사역과 현재 교회를 세우는 이 모든 사역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든, 그것은 사실 다 사람을 구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교회 생활을 하며 본분을 이행하면 구원받는 길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저희에게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게 하시는 것은 박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서 최종적으로 혜택을 보는 것은 사람입니다.) 훌륭하다. 너희가 교제한 내용의 대략적인 의미는 기본적으로 옳다. 자신의 소소한 체험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고, 이론적인 각도에서 말한 사람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해한 것들은 전부 ‘하나님의 이익은 정당하고, 사람의 이익은 정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이익이야말로 이익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람의 이익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특히 ‘사람의 이익’이라는 단어와 주장, 이 사실을 사람이 누려서는 안 된다. 반면 하나님의 이익은 지고지상하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데 치우쳐 있다. 사람이 이해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하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고 하나님의 이익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지만, 사람의 이익은 무시당하고 박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익은 그리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에게는 패괴 성품이라는 근본 원인이 있고, 또 내면에 패괴 성품이 섞여 있기에 사람의 모든 이익은 어떤 각도에서 보든, 형태가 있든 없든 전부 정당하지 않은 범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내려놓을 수 있든 없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이익을 쟁취하고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주관적으로는 이미 인식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미 공감대를 형성했으니,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이익인지 교제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이익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에 등호를 붙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호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 본질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하나님 집’과 ‘교회’는 어떠하냐? 하나님 집은 범주가 꽤 큰 편이며, 교회는 비교적 구체적이다.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에 등호를 붙여도 되겠느냐? (그러면 안 됩니다.)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되겠느냐, 안 되겠느냐?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 교회의 행정 법령, 하나님이 반포한 행정 법령은 같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모두 같다. 이런 각도로 본다면, 이 세 가지 이익에는 등호를 붙여도 된다.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이 택한 선민들이 있기에 하나님 집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 집의 선민들이 있기에 교회가 생긴 것이다. 교회는 비교적 구체화된, 하나님 집의 ‘하부 기관’이다. 하나님 집은 꽤 넓은 의미를 지니며, 교회는 비교적 구체적이다. 그럼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에 등호를 붙일 수 있겠느냐? 말해 보아라. 등호를 붙여야겠느냐? 모르겠느냐? 그럼 일단 등호를 붙이고 분석해 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이익이다. 만약 이를 하나님 집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안 된다. 하나님 집은 하나의 명칭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대표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이 곧 교회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분명히 이 역시 안 된다. 교회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든 형제자매의 영광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동일시하면 큰일이다. 사람은 이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 집과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에 등호를 붙이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안 된다. 그럼 또 다른 각도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부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일부 사역, 교회의 일부 사역 이 세 가지에 등호를 붙일 수 있겠느냐? 예컨대,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다. 이 부탁이 하나님 집으로 하달되었을 때, 이 사역과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에 등호를 붙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부탁 또한 하나님 사역의 일부이다. 이 구체적인 부분과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에는 등호를 붙일 수 있다. 이 부탁이 다시 교회로 하달된다면, 하나님의 사역과 동일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다. 이 두 가지 예 중 하나는 하나님 본질과 관련된 부분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집, 교회에 등호를 붙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부탁, 더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관련된 것으로, 등호를 붙일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증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하나님, 하나님 집, 교회에 등호를 붙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집과 교회는 그런 증거와 영광을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과 등호를 붙일 수 없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한 가지 사역이나 부탁과 관련된 것에는 등호를 붙일 수 있다. 일전에 우리는 하나님 집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에 관해 교제하며 적잖은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이익이란 과연 무엇인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하나님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하나님의 이익에 속하는 것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중점적으로 교제하겠다. 명사여도 괜찮고, 말이어도 괜찮으며, 하나님의 본질이나 신분과 관련된 것이어도 괜찮다. 하나님의 이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확실히 맞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은 증거이니 말이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지위 등이 모두 해당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키려는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증거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겠느냐? 과연 무엇이겠느냐?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 이것이 하나님이 지키려는 가장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은 하나님이 6천 년이라는 기간에 하려는 모든 사역으로, 하나님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지음 받은 인류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익에 대해 사람이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마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정도이다. 이제 하나님 집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하나님 집의 이익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 증거를 지키는 것이 있다. 이것 외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탁한 것,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맡긴 가장 큰 부탁은 하나님 집의 가장 큰 이익이다. 그럼 그 이익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이 인류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루어짐에는 당연히 여러 측면이 포함된다. 그럼 어떤 것이 포함되겠느냐? 교회가 세워지고 형성되는 것, 교회의 각급 리더 일꾼이 등장하는 것, 그리하여 교회의 여러 사역과 하나님의 복음 확장 사역이 막힘없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이 포함된다. 이는 교회의 이익과 연관된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하나님, 하나님 집, 교회의 이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확장되고 하나님의 경륜이 막힘없이 진행되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사람 가운데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가운데 널리 확장되고 전파되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이 모든 사역의 근본 취지이자 핵심이다. 따라서 하나님 집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에 관련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경륜과도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각 시대와 각 단계에 하는 사역이 막힘없이 펼쳐지고 확장될지, 인류 가운데에서 순조롭게 전개되며 진행될 수 있을지와 관련이 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척되고 있다면 하나님의 집과 교회의 이익이 확보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증거 또한 확보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집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방해를 받고 막힘없이 펼쳐질 수 없다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 가로막히게 된다면 하나님의 집과 교회의 이익은 분명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집과 교회의 이익이 큰 피해를 입거나 제약을 받을 때 하나님의 경륜에 분명 큰 장애물이 생기고 하나님의 이익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무엇이 하나님의 이익인지 교제를 마쳤으니, 이제 무엇이 사람의 이익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사람의 이익에 관해서는 방금 어느 정도 다루었지만, 이제는 사람의 이익이라는 정의 측면에서 그 성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 성질을 규정해 보자.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사람의 이익을 내려놓으라고 하겠느냐? 설마 사람에게는 그 권리가 없는 것이겠느냐? 설마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 권리를 주지 않은 것이겠느냐? 사람에게는 그런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겠느냐? 그런 것이겠느냐? 방금 이야기한 사람의 이익 몇 가지를 통해 볼 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이익을 추구하겠느냐?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모호한 말이다. 자기 자신이란 누구냐? (사탄입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진리대로 살아가고, 성품 변화를 이뤄 구원받는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변화되고 구원받기 전까지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육과 관련된 갖가지 측면과 명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진리를 적대시하고 맞서며 진리와 어긋나고 반대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추구 목표의 본질이 두각을 드러내기 위한 것, 자신을 과시하여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기 위한 것,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의 본분 이행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한 것이라면 이러한 추구는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가 행한 것은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겠느냐? 명백히 방해하는 것이지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사역을 한다는 기치를 든 채 개인적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고, 자신의 경영을 하며, 자신의 작은 집단과 소왕국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냐? 그들이 하는 사역은 본질적으로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파괴하는 것이다. 그들이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우선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말씀을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닫는 일에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지장을 준다. 또한,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하나님 선민을 곁길로 이끌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선민을 해치고 망치게 된다. 그럼 결국 교회 사역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 교란하고,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여 초래하게 되는 결과이다. 그들의 그런 본분 이행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 지위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사람에게 자유 선택의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는 동시에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심지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면 결코 진리를 추구할 수 없고, 절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다. 그저 명리와 지위를 위해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다 명리와 지위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와 방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과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갖가지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이 걷는 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것이며, 사탄과 협력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의 성질이다.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의 잘못은 추구하는 목표가 사탄에게 속하는 것, 사악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데 있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 이러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도구이자 출구, 나아가 사탄의 화신 노릇을 하게 된다. 교회에서 부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 사역과 정상적인 교회 생활, 하나님 선민들의 정상적인 추구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부담을 헤아릴 수 있다. 또 본분 이행 과정에서 늘 교회 사역을 지키며,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형제자매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한편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며, 하나님이 영광과 증거를 얻게 한다. 이는 사탄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그의 추구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피조물을 얻게 되고, 그의 추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진전될 수 있다. 이런 추구는 하나님 눈에 긍정적인 것, 빛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구는 하나님의 선민에게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주며, 교회 사역에도 전적으로 도움이 되고, 추진 작용을 한다. 이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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