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5) 제 1 부
3.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다
오늘은 지난번 교제를 이어서 해 보자. 지난번에는 적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모습 중 ‘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에 대해 교제했다. 이 조항은 내용이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 두 부분은 이미 교제가 끝났고, 오늘은 세 번째 부분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다’는 내용을 교제하도록 하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 모습과 언사는 예전에 조금 교제했다. 예를 들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해서 믿음의 요소는 없고, 단지 의심과 시험, 추측의 요소만 있다. 요컨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일이 닥쳐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 원칙을 구하지 않고, 속으로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반발하고, 부인한다. 이런 게 전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모습이다. 오늘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을 좀 더 깊이, 구체적으로 교제함으로써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지 해부해 보겠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지는 역시 몇 가지 면에서 조목조목 교제해 보는 것이 좀 더 명확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개략적으로 교제했을 때, 너희가 만약 일정한 이해 능력이 있고, 자질도 충분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서 하나님 말씀에서 항상 빛 비춤을 얻을 수 있다면 내가 전에 교제한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지 못했고, 하나님 말씀을 대함에 있어 그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이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므로 조목조목 교제하도록 하겠다. 이 주제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작은 부분으로 나뉜다.
1)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한다
제1조,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한다. 전에 이 내용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교제한 바 있다. 물론 거기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으로 해부했다기보다는 곁들여서 교제를 조금 했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하는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1조와 관련해서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행동하느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이런 모습,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본성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그가 속으로 하나님 말씀이 곧 진리이고, 신성불가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면의 진리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든, 사람이 보기에 평이한 것이든 심오한 것이든 그건 모두 하나님 말씀이자 진리이고, 사람의 생명 진입,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의식하지 못하며, 그런 의식도, 그런 인식도 없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 진입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인식이 없다. 반대로 그는 하나님의 그 말씀들이 겉으로 볼 때 사람의 말이고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 의해, 하나님 집, 교회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칭호가 씌워진 후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 하나님 말씀의 겉면을 보면 그 말씀들은 사람이 자주 하는 말들인 것이다. 문자적으로 볼 때, 그 말씀에는 사람의 언어의 성분이 들어 있고, 사람의 언어의 논리와 사유, 어휘 사용이 있고, 또한 사람의 언어에 있는 속어, 성어, 속담, 심지어 헐후어도 있다. 적그리스도가 보기에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생각하듯 그렇게 수준 높고 난해하지도 않고, 심오하지도 않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천서(天書)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즉,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연구해 보다가 결국 속으로 이렇게 정의한다. ‘이 말씀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아주 실제적인 말씀이어서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봐야 하고, 사람의 행위,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군.’ 많이 들여다보고는 이런 결론을 도출해 낸다. 심지어 일부 적그리스도나 교만한 무리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져와 단숨에 여러 편, 혹은 여러 페이지를 읽어 버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달 이내에 완독해서 머릿속,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일부 영적인 용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투, 방식, 심지어 하나님이 여러 단계에서 말씀하는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이해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는 말했다. “하나님 말씀도 그저 그렇군. 단숨에 다 읽어서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이 한번에 이해가 됐어.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심오하지 않아. 하나님 말씀을 격상시켜서 진리라고 하고, 사람의 생명 진입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말씀이라고 하는 건 좀 과하지.” 따라서 그의 눈에 그 말씀들이 어떻게 보이든, 그가 속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 내린 최종적인 정의는 바로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상상하듯 그렇게 심오하고 난해하지 않고, 글을 읽을 줄 알고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꾸 읽어도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얘기하는, 사람이 생명에 진입하려면 깨달아야 할 각각의 진리들을 읽어 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깨우침도, 공급도, 도움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이 진리와도, 천서와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결론을 내린 후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더욱 멸시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그저 그렇고, 하나님도 그저 그렇고, 진리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와 인식이 생긴 뒤로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진리를 멸시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지식과 두뇌, 기억과 잔머리를 이용해 그 말씀의 내용과 소위 그 말씀의 원리, 그리고 그 말씀의 어투, 방식, 또 상용어, 관용어가 포함된 어휘 사용을 재빨리 파악한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얻었다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런 인식과 태도로 인해 그는 더욱 거리낌 없이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의심하고, 하나님의 신분과 하나님의 본질을 더욱 의심하게 된다.
적그리스도의 본성으로 보면 그들은 진리를 싫어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낮춤과 감춤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진실함, 사랑스러움을 멸시한다. 이런 일련의 멸시는 적그리스도가 자기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의 역겨움과 하나님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께 정죄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 행동에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하는 것이 포함된다. 변조한다는 건 어떤 뜻이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의 이 말씀들이 바로 인류가 살아가는 근간이자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왜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려 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이 왜 이런 배경에서 이런 말씀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왜 이런 내용을 얘기하려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이 내용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하나님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님이 이 말씀들을 하는 동시에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려 하고, 무엇을 이루려 하고, 어떤 성과를 이루려 하는지에 대해, 그 안에서 하나님이 하려는 모든 것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진리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백지상태이고, 아는 바가 없다. 즉, 문외한이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늘 하나님의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저 말씀은 이 말씀 다음에 해야 하고,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해야 하고, 저 말씀은 이런 말투, 저런 뉘앙스로 해야 하고, 이런 어휘 사용은 옳지 않고, 그런 어휘 사용은 생각이 짧고 하나님 신분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의 관점이 생겨난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 말씀이 세상의 어떤 유명인이나 위인의 저서만 못하다. 그는 하나님 말씀은 근엄함이 부족하고, 장황하며, 또 어떤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엄밀히 말해서 인류의 문법과 어휘 사용 규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말씀 안에 어떻게 진리가 담겨 있을 수 있지? 이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일 수 있지? 어떻게 진리일 수 있지?’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저울질하고 궁리하며 동시에 의심하고 정죄한다. 이런 태도, 이런 마음이 생기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관점이 생기면, 적그리스도는 마수를 뻗친다.
몇 년 전에 찬양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들은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에 곡을 붙여서 교회에서 부를 수 있게 했다. 편곡하는 과정에서 보니 하나님 말씀의 길이와 글자 수가 곡에 맞지 않고, 한 소절당 가사로 들어갈 글자 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노래 전체의 선율을 하나님 말씀에 맞추면 하나님 말씀이 너무 많고 길었다. 그러면 어떻게 했을까? 방법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 중에서 몇몇 표현이나 어휘를, 표면적인 의미는 바꾸지 않은 채로 조금 손을 댄 것이다. 예를 들어 4자 성어를 두 글자 단어로 바꾼다든가 너무 긴 구절은 봐서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말 같으면 빼 버린 것이다. 이런 원칙을 따르며 그들은 삭제하거나 수정한 하나님 말씀에 곡을 붙여서 교회 안에서 부를 수 있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이것이 하나님 말씀 찬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은 전혀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적그리스도가 마음대로 수정하고 삭제하며 손을 댄 말씀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느냐? 나중에 이 곡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할 때, 이 노래가 하나님 말씀 몇 편에서 발췌한 단락인지 물었다. 그들이 몇 편의 첫 단락이라고 알려 줘서 그 단락을 찾아 찬양집에 대조해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찬양집에 담긴 그 말씀은 말이 해당 편 말씀에서 발췌한 단락이지, 이미 원문을 알아볼 수 없게 손을 대 놔서 말씀의 어투도 온데간데없고, 많은 중요한 말씀이 삭제되었고, 말씀한 내용도 엉망이 되었다. 게다가 말씀한 순서도 뒤바뀌어 있었다. 만약 그 말씀이 어느 편에서 발췌한 것인지 알려 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 생각에 누구도 그게 어느 편 말씀인지 찾지 못해 전혀 맞춰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 볼 때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고 하나님 말씀에 곡을 입히고 모두가 부르게 해서 그것을 마음속에 심어 주려 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항상 사람을 이끌고 인도할 수 있고,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도록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보통 사람이 수다 떠는 정도로 생각해서 마음대로 삭제하고 마음대로 변조했다.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누구의 허가나 동의도 거치지 않고, 나아가 누구에게 권한을 위임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혀 다르게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고, 하나님 말씀에 곡을 입히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오인하게 만들었다. 이건 일종의 어떤 행위, 어떤 행동이냐? 이런 행위와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과연 경외심이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아끼겠느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대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인 태도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장난감으로 생각해서 아주 제멋대로 바꿔 놓았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전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발현이며, 하나님 성품이 발현된 것이자, 하나님의 본질이 표출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라면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문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고, 수고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는 그렇게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일 수가 없다. 아마 적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책을 잘 꾸미고 천으로 싸서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겼을지도 모른다. 이건 뭘 설명하느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냐?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냐? 이런 표면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오만불손하게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가릴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표현, 말하는 방법, 어투를 손대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일부 적그리스도들은 어느 정도까지 설쳐 대느냐? 하나님 말씀이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을 알았을 때, 어휘 사용이 부적절하고, 문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거나 심지어 문장 부호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 그는 바로 말을 퍼뜨리고, 침소봉대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어느 한 군데 문장 부호가 틀렸고, 어느 한 군데 어휘 사용이 부적절하고, 어느 한 군데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걸 전세계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한다. 그는 조소하고 무시하는 뉘앙스로 곳곳에 소문을 낸다. 마치 이 순간만큼은 그가 드디어 하나님 말씀에서 틀린 증거를 찾고, 꼬투리를 잡고, 허점을 보았고, 드디어 그 덕분에 하나님 말씀도 틀린 곳이 있고 완벽하지 않다고 속으로 맘 편히 생각하게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문제나 오류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적대시하는 태도이지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해석하는 얘기를 하자면, 방금 얘기한, 찬양팀에서 발생한 그 일이 하나님 말씀을 변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볼 때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들은 하나님에게 경외심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건 일종의 어떤 성품이냐?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그럼 그는 하나님 말씀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 사람의 말로 생각한다. 사람의 체험 간증문이라면, 말에 조리가 없고 완벽하지 않을 때 좀 손대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과 관계된 것을 사람이 감히 그렇게 손댄다면, 그건 어떤 성질이냐? 제멋대로 행동하는 성품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냐? 하나님 말씀에 대해 감히 함부로 평론을 해 대고, 마음대로 손을 대는 것,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자기 관점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손을 대는 것, 이런 일은 그 성질이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변조하는 일과 관련해서 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부 복음 대상들이 하나님 말씀을 접할 때는 하나님 말씀의 어투와 방식, 서 있는 위치, 심지어 하나님이 말씀할 때의 어휘 사용, 또 인칭 등 많은 방면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관념을 보이고, 다양한 종파 사람들이 다양한 입맛과 요구를 가지고 있다. 복음팀 소속의 몇몇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좀 지나치게 엄격한 부분이 있어요. 어떤 말씀들은 사람을 욕하는 말 같고, 조금도 부드럽지 않고, 사랑이 없어요. 죄다 생활어이고, 일부는 특정 인종을 겨냥하기도 하고, 또 비밀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고요. 사람들이 보면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그 말씀들은 복음 대상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어떡하나요?” 누군가가 말했다.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복음 대상이 이 말씀들 때문에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면 삭제하면 되지 않나요? 사람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말씀이나 내용은 한 마디라고 해도 전부 표시해 뒀다가 인쇄할 때 다 빼 버리죠. 그러면 복음 대상들이 봤을 때 자신들의 체면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씀도 하나 없고, 자기들 관념에 맞지 않는 말씀도 하나 없고, 하나님 말씀은 다 적절해 보이겠죠. 그들에게 관념이 하나도 없으면 하나님의 새 사역을 아주 순조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복음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손을 댔다. 심지어 물어보지도 않고, 상부의 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그들은 삭제하고 변조한 하나님 말씀을 소책자로 인쇄해서 배포했다. 게다가 배포한 범위도 꽤 넓었다. 사역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사람을 많이 얻기 위해, 자신들이 사역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본분 이행에 충성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그들은 이런 방법을 생각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실제로 해서 책으로 인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책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과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 말씀을 변조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변조한 이 일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속으로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한 행동이라고 의식하느냐? (그렇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다 그런 의식이 있느냐? 오늘 이렇게 많은 말씀을 교제하고 나니, 너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만약 3년 전, 5년 전에 너희가 복음을 전하러 갔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한 자도, 한 마디도 손대면 안 된다는 이런 의식이 있었겠느냐? 너희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겠느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 상황에서 이런 의식이 없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감히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할 수 있지 않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감히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변조하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본뜻을 바꾸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을 바꾸고, 하나님이 그 말씀 한 단락을 얘기함으로써 이루려는 효과를 바꾸고,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는 뜻과 핵심, 중점을 모두 지워서 없애 버린다. 이런 게 다 변조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우연한 기회에 복음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희가 한 종족에게 하나님의 새 사역을 증거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폭로하신 그 부분 말씀에 반감을 품은 나머지 들으려 하지 않고 관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들이 그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저희는 그 말씀을 좀 고치려고 합니다. 고치고 나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새 사역과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신 일에 대해 관념이 없어질 것입니다.” 말해 보아라, 너희는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만나서 복음 사역에 대해 얘기를 나눌 그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 슬쩍 마음대로 처리해서 그 말씀들을 바꿔 놓았을 것이다. 또 그들의 상상처럼 그 종족 사람들이 3~5명, 열 명 남짓,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 얘기는 잠시 제쳐 두자. 그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그 사람들이 늘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관념에 맞는 말씀으로 바꾸려 하고,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를 폭로하고, 심판하고,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드러내는 그 말씀들을 지워 버리고자 하는데, 그건 일종의 어떤 성질이냐? 그런 모습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종족이나 어느 종파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관념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관념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얘기하는 그 말씀들이 그들에게서 하나도 통과되지 못해서 그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반발하고, 싫어하고, 들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말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약 정말 하나님 말씀이라면 마땅히 사랑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직설적으로 사람을 폭로해서 체면을 깎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아주 강력하게 요구한다. 만약 복음을 전한다면 그 말씀들을 빼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고,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얻으려면 하나님도 한발 물러서서 말도 좀 완곡하게 하고, 듣기 좋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는 책략을 바꾸고 말씀하는 방식을 바꾸어 패괴된 인류에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양해를 구하는 방식을 취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근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특정 종파 사람들의 문제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한 글자, 한 마디도 손대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관념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점점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념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겠느냐? 전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는 그 말씀들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인류의 실상이 아니라면, 인류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은 말씀하는 방식과 내용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는 구구절절이 모두 인류의 실상이고, 구구절절이 모두 인류의 생명 진입, 구원받는 것에 관계된 것이다. 인류가 관념을 품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가 사악하고, 불결하고, 너무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 옳지 않고, 그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관념을 가지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아들인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하나님 말씀을 들은 지도 이렇게 오래되었으니, 너희가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론적으로,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의 취지,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의 면면에 담긴 진리를 너희는 모두 알아듣고, 기억하고, 또 깨달았느냐?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다면 너희는 사람들이 관념을 가질까 두려우냐? 만약 두렵다면, 능동적으로 나서서 복음 대상에게 명료하게 설명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 뜻을 증거해 내고, 그에게 진리를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이토록 오랫동안 듣고도 아직도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명료하게 얘기하지 못한다면,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네가 이행하는 것은 이 방면의 본분이고, 네가 매일 접하는 것은 다 이런 주제, 이런 내용, 이런 일이다. 너는 왜 아직도 하나님 말씀을 변조하는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얻으려 하느냐? 겉으로 볼 때 이것은 사람이 행하는 잘못된 행위의 일종이고, 사람이 취하는 비열한 수단의 일종이고, 사람이 보이는 무능한 모습의 일종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 그건 영락없는 적그리스도 본질의 모습이고,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낄 줄 알고,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하나님 말씀을 경외할 줄 알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한 자 한 자,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이 말씀하는 모든 방식, 모든 관점, 모든 단락의 내용을 존중할 줄 안다. 오로지 하나님의 원수만이 늘 하나님 말씀을 비웃고 멸시하며 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대하지 않고 창조주의 선포로도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변조하려 들고 마음대로 해석하려 한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과 사고방식, 그들의 논리적 사유로 하나님 말씀을 고쳐 하나님 말씀이 패괴된 인류의 기호와 관점, 사고방식과 철학에 부합되도록 하고, 결국 이런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 한다. 하나님 말씀은 어떤 부분의 내용이든, 어떤 방식으로 말씀한 것이든, 어떤 각도에서 말씀한 것이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하고, 더 쉽게 깨닫고, 더 쉽게 얻으며 하나님 말씀 중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류의 언어, 인류의 방식, 인류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어조, 논리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인류가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에 대해 알려 준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방식과 말투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표현들이 오히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정죄하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부인하게 만드는 약점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 게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들 적그리스도는 항상 지식, 유명인의 저작, 심지어 유명인의 연설과 단어 배치, 기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한다. 그들은 이렇게 비교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평이하고, 너무 직설적이고, 너무 통속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손대고 싶어 하고, 하나님 말씀을 교정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투, 방식,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관점을 교정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 말씀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오든 적그리스도는 늘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와 실행의 원칙, 그리고 생명 진입의 길을 구할 수 없다. 또한 시종일관 연구적 관점과 학습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깊이 있게 연구하고 논구할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대한다. 이리저리 연구하고, 논구하면서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는 고치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접했던 그 날부터 믿은 지 10년, 20년,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 말씀에는 사람이 말하는 생명도 없고, 진리도 없으며, 하나님나라로 통하는 대문이나 천국으로 가는 통로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볼 수도, 발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느낌은 무엇이냐? 어째서 믿을수록 하나님 말씀이 너무 통속적이라고 느끼느냐? 어째서 믿을수록 하나님 말씀에 대해 흥미를 잃어 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진리인지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어떤 징조냐? 좋은 징조냐 아니면 나쁜 징조냐? (나쁜 징조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이 정도까지 믿었다는 것도 기적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일은 막다른 골목까지 왔고, 진리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이것은 믿음이 막장에 이른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느냐? 다 같이 하나님을 믿고, 다 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다 같이 가정과 일, 학업을 버리고 세상의 앞날을 버린 그 날부터 모두가 같은 선상에 있었지만, 어느덧 경주하는 과정에서 낙오되어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B조로 간 사람도 있고, 보통 교회로 간 사람도 있고, 마지못해 파트타임 교회에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 이행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 집에서 제명 대상이 되어 본분을 더 이행할 자격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일부 사람들, 이들은 어째서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만약 너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고 할 경우, 사람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그가 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미워하는지,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지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성품 본질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정하느냐? 그건 아주 쉽다. 그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된다. 이 일부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 말씀으로 공급받기를 원치 않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원칙을 구하고 진리를 찾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거의 읽지 않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을 교제할 때 속으로 반감을 품는다. 어떤 반감이냐? 그는 생각한다. ‘당신이 하는 말은 다 알고 있으니 그만해도 됩니다. 그 말씀들은 나도 다 읽어 봤고, 모두 이해했다고요.’ 모두 이해했는데 왜 제명되었겠느냐? 모두 이해했는데 왜 B조로 갔겠느냐? 어찌 된 일이냐? 근원적으로 이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적대시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에게 “일이 닥치면 하나님 말씀을 읽어 보시죠!”라고 하면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실제 문제는 실제적으로 해결해야지 하나님 말씀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건 막연한 방법이고, 실제 문제는 실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뉘앙스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 “사람에게 방법이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당신은 하나님 말씀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줄 아세요?”라는 뜻이다. 그는 사람에게 고충이 있다면 그건 단지 고충일 뿐이고, 사람의 내적 상태와 성품의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점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생각한다. ‘사람의 고충은 기계에 나사못이 하나 빠진 것과 같은 거라 나사못을 조이면 그만인데 무슨 하나님 말씀을 찾고 난리람. 하나님 말씀을 찾는 건 다 영적인 척하는 행동이고, 난 그렇게는 안 해.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당신은 하나님 말씀이면 뭐든 다 해결되는 줄 아나? 그런 게 어딨어?’ 이건 분명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일이 닥쳤을 때, 네가 교제로 도와주려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면, 낭독이 끝난 뒤 이런 말을 한다. “이 말씀은 저도 다 외웠어요. 여러 번 외웠는데 또 얘기할 필요가 있나요? 이 말씀은 제가 당신보다도 잘 아는데, 별로 소용이 없어요. 제 고충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요!” 이것은 어떤 문제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패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골치 아픈 일이다. 그는 자신에게 패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은 다 형식적인 것이고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특효약, 영험한 묘약을 찾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문제의 본질은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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