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1) 제 4 부

3) 하나님의 거룩함과 유일무이함을 멸시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성품 본질에 담긴 공의와 전능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고, 인식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함과 유일무이함을 믿고, 인정하고, 인식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착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피조물이 되라고 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의견이 생기고, 일종의 태도와 정서가 생겨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높고 크신 분 아닌가? 최고로 높으신 분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에게 하시는 요구도 당연히 고차원적이고 대범하고 품위가 있어야지. 난 그래도 하나님이 아주 신비하신 줄 알았는데 사람에게 겨우 그만한 요구를 하실 줄은 몰랐네. 그것도 진리라고 할 수 있나? 너무 간단한 요구잖아! 하나님 요구는 좀 더 높아야지. 사람은 초인이나 위인,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해야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사역일까? 사칭하는 건 아닐까?”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진리에 반감을 품는 동시에 진리를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건 진리를 멸시하는 것이 아니냐? 그는 하나님이 제시한 요구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빈정대고, 조롱하는 태도로 이를 정의하고 대한다. 이를 보면 적그리스도는 성품 본질이 추악해서 진실되고 아름답고 실제적인 사물이나 주장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은 진실되고 실제적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시한 요구는 사람의 필요에 부합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말한 ‘고차원적이고 대범하고 품위가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 거짓되고, 허황되고,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패괴시키고, 사람을 미혹한다. 사람을 타락시켜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 하나님의 생명은 신실하고 사랑스럽고 실제적인 것이다. 한동안 하나님 말씀을 겪고 체험한 뒤,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만이 가장 사랑스럽고, 하나님 말씀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또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사탄, 적그리스도가 제시하는 ‘고차원적이고 대범하고 품위가 있는 것’에 관한 논조와 주장은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진실, 실제와는 어긋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질을 바탕으로 보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폭로한, 사람의 각 방면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 사람의 강퍅함, 교만함, 사람의 간사함, 사악함, 진리를 싫어하는 것, 그리고 흉악한 성품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호된 질책, 적그리스도는 거기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스러움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속으로 하나님이 얘기한 그 말씀들을 싫어하고 반발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폭로하는 그 말씀들을 볼 때마다 그는 속으로 미워하며 욕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 그를 교만한 사람, 강퍅한 사람이라고 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 사람과 다투고 그 조상을 욕한다. 누군가 그의 패괴 본질을 폭로하고 그를 정죄하면 마치 목숨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본질과 이런 패괴를 드러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집에서, 교회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별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립되고 드러난다. 종종 그의 야심과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그는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증오하고, 또 ‘하나님 집은 진리가 다스린다’는 이 말씀을 더욱 증오한다. 네가 만약 이 말씀을 내뱉는다면 그는 너에게 필사적으로 덤빌 것이고, 너를 죽도록 괴롭히고 혼내 주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겠느냐? 너무나 옳은 말이다! 누군가 말한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누구도 숭배해서는 안 되고, 어떤 우상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적그리스도가 이 말을 듣고 싶어 하겠느냐?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느냐? 그 말이 그를 정죄하지 않았느냐? 그가 하나님이 되려는 권리를 박탈하지 않았느냐? 자신이 하나님이 될 권리가 사라지면, 그 희망이 파멸을 맞이하면 그가 기뻐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네가 그를 폭로하면, 그래서 그가 지위도 명예도 다 잃고 아무도 숭배해 주지 않고, 더 이상 사람들을 구슬릴 수 없고, 지위도 사라지면, 그는 너를 향해 악독한 마수를 뻗치며 너를 괴롭히고 혼낼 것이다. 교회에서 일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 상부에 보고하려고 하는데 리더가 적그리스도라면 보고하도록 내버려두겠느냐? 그라는 관문을 너는 통과할 수 없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보고했다가 일이 터지면 결과는 당신 책임이야! 상부에서 우리를 책망하고 우리 교회 사람을 제명한다면 난 당신한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거고 모두가 당신을 버리게 만들겠어. 그때 가서 제명당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 주지!” 보고하려는 사람이 겁박과 위협을 당한 게 아니냐? 적그리스도는 말한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 아닌가? 좋아, 나도 유일무이한 사람이 돼서 우리 교회에서 내가 결정권을 가지겠어. 당신이 뭘 하고 싶으면 무조건 내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나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 거야. 나한테 허락받고 싶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우리 교회는 내가 다스리고 나한테 결정권이 있어. 내가 바로 진리이고 내가 바로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이건 마귀가 정체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 그렇다. 그건 마귀 모습을 드러내고, 마귀적인 말도 내뱉은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대하는 일에서 적그리스도는 불신하고 의혹을 품고, 관망하고, 심지어 시험하고, 궁극적으로는 판단하고 모독한다. 이런 행위는 그들을 점점 곤경에 빠뜨리고, 무한한 심연에 빠뜨린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양립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끝까지 맞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만든다. 그들은 하나님 본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본질의 면면에 대해 각양각색의 관념과 상상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또한 이런 관념과 상상을 이용해 주변 사람, 그리고 그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 목적은 바로 더 많은 사람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하나님 본질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희생양을 끌어들인다. 혼자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서 자기와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르고,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함께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할 사람들을 찾으려 한다. 하나님 본질의 면면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낱낱이 분석하고, 연구하고, 시험하고, 판단하고, 심지어 암암리에 하나님과 맞서려 한다. “당신은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게 두십니까? 당신이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라면 어떠한 적대 세력도 당신의 사역 장소를 침입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적그리스도는 항상 제일 먼저 일어나 내리깎는 말을 하고, 소극적인 말, 판단하는 말을 한다. 제일 먼저 일어나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며 대들고, 하나님에게 이래라저래라 요구한다. 특히 하나님 집에 어려운 일이나 난처한 일이 생겼을 때 적그리스도는 쾌재를 부른다. 그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기쁘고 즐거운 순간, 너무 좋아 날뛰는 순간이다. 그는 하나님 집 이익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며 웃음거리로 삼는가 하면, 하나님 집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 선민들이 잡혀가고 해산되어 하나님 집 사역이 중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는 마치 설이라도 맞이한 듯 기뻐할 것이다. 매번 하나님 집에서 발생한 일이 잠잠해지고 해결되면서 형제자매들이 거기서 공과를 배울 때, 그때가 곧 적그리스도에게는 ‘형을 선고받는’ 순간이자, 가장 의기소침하고 힘든 순간, 가장 낙담하는 순간이다. 그는 형제자매가 잘되는 꼴을 못 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충만한 신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꼴을 못 보고, 형제자매가 하나님 말씀의 인솔 아래 성품이 변화하여 본분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사역이 점점 나아지는 꼴을 못 본다. 그는 교회의 흥성을 차마 못 보고, 하나님의 경륜이 차츰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꼴을 못 본다. 사람들이 입만 열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찬미하는 일은 더욱 증오하고, 사람들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에게 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구하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 지배에 맡기는 일은 더욱 혐오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밥을 먹고,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집의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 언제나 하나님 집을 웃음거리로 삼으려 하고, 이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하나님 집 사역이 진행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보호하지도 않고, 방법을 생각해 해결하지도 않는다. 최선을 다해 형제자매들을 보호하지도 않고, 모두와 한마음 한뜻으로 일을 잘 해결하고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대신 옆에 서서 웃음거리로 삼고, 괴상한 주장이나 하고, 무너뜨리고 교란하는가 하면, 심지어 중요한 순간에 밖으로 팔이 굽어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고의로 교란하고 파괴한다. 이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냐? 중요한 때일수록 그의 마귀 같은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요한 때일수록, 일이 있을 때일수록 그의 마귀 같은 모습은 더욱 유감없이 드러난다. 중요한 때일수록 그의 팔은 밖으로 굽는다. 이건 어떤 인간이냐? 이런 자를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느냐? 이런 자는 멸망의 가증한 짓을 하는 자요, 하나님의 원수요, 마귀이자 사탄이요, 악인이자 적그리스도이다. 형제자매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 아니다. 만약 정말 형제자매이고, 하나님 집의 사람이라면 하나님 집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형제자매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직면하고 함께 처리할 것이다. 방관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고소해하는 일은 더욱 없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같은 부류의 사람만이 방관자가 되어 고소해하고, 또 하나님 집이 잘 안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모든 일에서 드러나서 조금도 감출 수 없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또 어떤 일에서든 그들이 드러내는 관점과 성품은 사람에게도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에게도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이 생길 때마다 무너뜨리고, 방해하고, 교란하고, 고소해하는가 하면, 항상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건 어떤 뜻이냐?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말이나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 뜻을 시험하고, 끝까지 파헤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흔하다. 욥의 일에서 사탄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했느냐? (사탄은 처음에 만약 하나님이 욥의 재산을 모두 앗아 간다면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사탄은 만약 욥의 뼈와 살을 다치게 하면 그가 하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모든 재난과 화를 욥에게 내리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시험이냐? 그 정의가 정확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참소다. 사탄이 한 말은 이런 뜻이다. ‘당신은 욥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좋은 것을 그토록 많이 주셨는데, 그가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만약 그것들을 빼앗아도 그가 여전히 당신을 경배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건 참소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시험이냐? 사탄이 강도를 시켜 욥의 재산을 약탈하고 강탈한 일이 욥의 입장에서는 시험이다. 왜 시험이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너는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의 것을 앗아 간 뒤 네가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지 보겠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욥은 어떻게 이해했느냐?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시련으로 생각해서 다투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예수에게 닥쳤던 몇 가지 일도 있다. 사탄은 그에게 돌을 떡으로 바꿔 달라고 하는가 하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 주며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했다. 이런 일들이 시험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는 어떤 일들이 있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뻔히 알고도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고, 하나님의 징벌이 미칠 수 있는지 보려 합니다. 그건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악행을 저지를 때 지각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시험이다. 즉, 한번 떠보려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하는지 보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엄과 진노가 있지 않나? 그럼 내가 교회에서 이렇게 횡포를 부리고, 하나님을 등지고 사람을 등지고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하나님이 과연 알까? 속으로도 괴롭지 않고 육적으로도 달리 징벌받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이 모른다는 뜻이야.’ 그는 몇몇 작은 일로 솜씨를 부려 보고 하나님이 과연 전능한지, 하나님이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는지 테스트하려 한다. 이런 걸 바로 시험이라고 한다. 그는 이 일의 진실성을 검증하려 하고, 하나님이 과연 행사할지,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는지 테스트하려고 한다. 이런 것이 시험이다.

전에 중국 본토에서 어떤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미혹했다. 그는 하나님 집이 해외에서 합창단을 꾸려서 찬양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신들이 해외에서 합창단을 꾸릴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지.’ 그는 사방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합창단을 만들어 찬양을 하고, 또 많은 관중들을 불러들여서 꽤 큰 장면을 연출했다. 그가 왜 그렇게 했겠느냐? 하나는 독립 왕국을 세우려 한 건데 이건 얘기할 필요가 없겠다. 또 하나, 그는 이런 마음이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하나님이고, 우리에게는 성령 역사도 있어. 비록 지금은 큰 붉은 용이 박해하고 살벌하게 감시하는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과연 보호해 주실지 말지, 이 사람들이 과연 큰일이 나서 잡혀갈지 말지를 보여 주자.’ 이건 어떠한 마음가짐이냐?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 바로 시험이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을 믿고,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믿는다는 기치와 구호를 내걸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 검증하려 했고,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했다. 이것이 시험이다. 어떤 사람은 누가 “이건 먹으면 안 돼요. 먹었다간 배탈이 납니다.”라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냥 먹을래요! 하나님이 제가 배탈나게 하시는지 보죠.”라고 했다. 결국 그는 그걸 먹고 정말 배탈이 났다.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으셨지? 다른 사람이 먹고 탈이 났다면 그건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야.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남들처럼 배탈이 났지?’ 그의 이런 행위는 무엇이냐? (시험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한술 더 떠서 하나님 본질의 존재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량, 자신의 상상을 믿고 행동한다. 그는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는 그의 행위, 그의 일시적인 생각과 충동을 이용해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하나님의 전능이 진짜인지, 하나님이 과연 그를 지켜 줄 수 있는지 테스트한다. 그의 검증이 성공하면 그의 믿음은 이를 바탕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그의 검증이 성공하지 않아서 하나님에게 실망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신 하나님을 믿지 않겠어. 하나님은 사람을 염려해 주시지도 않잖아. 다들 하나님은 사람의 피난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 이 말씀을 대할 때 앞으로는 뒷일을 생각하고, 그렇게 바보같이 굴면 안 되겠어.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지,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의지하면 안 돼.” 그는 시험을 통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가 어떠냐?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한다면 이런 결과를 얻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이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 궁극적으로 긍정적이고 좋은 성과와 수확을 거둘 것이다. 즉,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어떻게 대할지,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방식과 원칙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다해야 할 의무가 있고, 사람의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본능을 내려 주었고, 사람에게 이미 원칙을 주었으니,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인솔을 받으며 원칙대로 행해야 한다. 어떤 일들은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마땅히 사람을 지켜 줘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마땅히’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건 사람의 머리에서 생각해 낸 것이다. 이 ‘마땅히’는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가끔 너를 지켜 주지 않음으로써 너를 드러내고, 네가 어떤 길을 택하는지 본다. 때로는 열악한 상황을 이용해 어느 한 방면에서의 네 인식을 온전케 하고, 네가 그 방면에서 진리를 얻고 변화하게 함으로써 너를 굳건하게 만들고 성장시킨다. 요컨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은 하나님이 일하는 원칙과 도리가 있고, 하나님이 일하는 목표와 취지가 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셔야 하고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하셔야 한다.”라는 말을 진리로 생각해서 이를 고수하고 하나님에게 요구한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하나님과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 잘못은 하나님이 아니라 누구에게 있느냐? (사람에게 있습니다.) 우선은 사람의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사람이 잘못된 입장,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 달라고 요구할 때는 나름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한발 물러나서 말하자면, 네가 순종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너는 네 이유가 성립되지 않으며, 그것이 패괴 성품이고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하나님은 네가 얻어야 할 진리와 인식을 베풀어 줄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소한 은혜와 축복이 아니라 이 방면의 진리이다. 네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분량을 너에게 베풀어 준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성령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가 진리를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든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감을 품고 반발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보통의 패괴된 사람과의 차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신분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본질을 부인하는 방면에 관한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따로 질문할 게 있느냐? (하나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바울의 관점을 끝까지 고수하며 바울이 말한 기준에 이르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적그리스도의 모습이고, 또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본질을 부인하는 모습이 아닌지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부정하는 주된 이유는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고, 사는 것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이 된다.”라는 바울의 말에 깊이 수긍한다. 그는 이 관점이 성립한다면 그에게도 하나님이 되어 왕권을 잡고 사람을 통제할 희망이 있지만,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가 왕권을 잡고 하나님이 될 희망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탄이 늘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하듯 적그리스도 또한 이런 본질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은 늘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사람에게서 얻게 되는 성과를 증거한다. 사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이 모든 사역을 찬미하고, 또한 하나님이 지불한 대가를 찬미한다. 그런데 적그리스도 또한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싶어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그는 자신에 대한 남들의 추대와 아첨, 존경, 나아가 찬미를 누리고 싶어 한다. 더 심할 경우 어떤 염치없는 생각까지 하겠느냐? 그는 사람이 다 그를 믿고, 무슨 일이든 그를 의지하게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것도 괜찮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동시에 그를 의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진실한 것이라면, 매우 기뻐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동시에, 그의 공로까지 기리고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과 그가 한 모든 것을 널리 알린다면 그는 매우 기뻐하고 흡족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보면, 네가 하나님께는 권병이 있고 하나님은 공의로우며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본질을 지니고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나님 외에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해서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어떤 사람도 이 본질을 지니고 이러한 일들을 하지 못한다고 말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째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첫 번째 이유는 그에게 야심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공의롭다고 말하면 그는 마음속으로 반감을 갖고 맞설 것이다. ‘그건 틀렸어. 나도 공의로운걸!’ 네가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다고 말하면 그는 또 “그건 틀렸습니다. 저도 거룩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바울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널리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보혈을 바치고 속죄 제물이 되어 전 인류를 구원했다고, 전 인류를 죄에서 구속했다고 했을 때 바울은 어떤 느낌을 받았겠느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한 것임을 인정했겠느냐? 이 모든 것을 행한 이가 그리스도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했겠느냐? 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존재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음을 인정했겠느냐? 그는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있었다면 사람도 못 박힐 수 있습니다. 그분이 보혈을 바치실 수 있었다면 사람도 바칠 수 있습니다. 저는 전도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보다 지식이 있고 고난도 견딜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저 역시 그리스도라고 불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널리 알린다면, 저의 몫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그리스도라 불릴 자격이 있으시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우리 또한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르며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면서 사역할 수 있는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리스도라 불리는 것이 그리스도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요컨대 그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이 측면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그리스도나 하나님, 이런 건 사람의 능력이나 재주를 통해 단련해 낼 수 있어. 권력은 자기가 악착같이 노력해서 얻어 내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스도가 되는 것도 하나님 본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도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사람의 능력으로 일궈 내는 거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관직에 오르고 결정권을 가지잖아.’ 그는 바로 이런 논리를 갖고 있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 등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문외한이며 풋내기이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모르는 소리만 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말만 하는 것이다. 만약 몇 년간 사역을 해서 자신이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또 큰소리를 치면서 도리를 말하고 외식하며 남들을 미혹시켜 몇몇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는 당연하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