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제 1 부)
참고 다바오와 샤오바오의 이야기
오늘 본격적으로 교제하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해 보도록 하자. 너희는 다들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듣는 것에 원칙이 있지 않겠느냐? 이야기 속에서 한 측면의 진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또는 사람의 일부 본성 본질에 대해 인식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사람이 마땅히 실행하고 진입해야 하는 진리 실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야기를 하는 의의이다. 이는 심심해서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며,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저 사건만 이해하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자질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 주로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듣든 이야기 속의 사건들만 기억하거나 이야기한 사건들 속에서 약간의 규례만 얻을 뿐,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여러 진리는 듣고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며, 깨닫지도 못한다. 이는 가장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 중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느냐? 듣고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이야기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해 능력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이야기 속 사건을 통해 도움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느냐? 그 속에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든 없든, 너희는 방금 내가 말한 이야기를 듣는 원칙을 알아야 한다. 그럼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샤오바오(小寶)라는 아이가 있었다. 최근에 샤오바오네 집에 한 아저씨가 오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는 자주 샤오바오의 부모와 복음을 전하러 나가곤 했다. 어느 날 샤오바오의 부모는 일이 있어 밖에 나가고, 집에는 아저씨와 샤오바오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샤오바오는 아저씨에 대해 별로 익숙하지 않았는데, 샤오바오가 놀고 있을 때 아저씨가 다가와 샤오바오를 알고 있고 샤오바오의 이름도 안다면서 친근하게 굴었다. 그러자 샤오바오는 굉장히 기뻐하며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아저씨는 샤오바오에게 물었다. “샤오바오, 평소 부모님이 얘기하실 때 아저씨 얘기하신 적 있니?” 샤오바오가 잠시 생각해 보고 모르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샤오바오는 정직한 아이야. 있는 그대로 말해야 착한 아이란다.”라고 하더니, 이어서 또 “엄마 아빠가 아저씨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샤오바오가 여전히 모른다고 대답하자, 아저씨는 또 이어서 “샤오바오는 착하지. 샤오바오가 솔직히 말해 주면 사탕을 주마.”라고 했다. 이번에도 샤오바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모른다고 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그에게 솔직히 말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샤오바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샤오바오, 엄마 아빠는 하나님을 믿고, 아저씨도 하나님을 믿어. 아저씨는 네 엄마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란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고 샤오바오도 하나님을 믿지. 그럼 하나님께서 어떤 아이를 좋아하시는지 알고 있니?” 샤오바오는 잠깐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몰라요.” 그러자 아저씨는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아이, 거짓말하지 않는 아이를 좋아하신단다. 알면 안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가 바로 정직한 아이란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이를 좋아하셔.”라고 말했다. 샤오바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네.”라고 대답하고는 다시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곧이어 아저씨가 또 “만약 샤오바오가 아저씨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샤오바오는 정직한 아이, 바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아이란다.”라고 하자, 샤오바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럼 좋아요.”라고 했다. 아저씨가 “‘그럼 좋아요’라는 건 무슨 뜻이니?”라고 하자, 샤오바오는 “바로 엄마 아빠가 아저씨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는 뜻이에요.” 아저씨는 곧바로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캐물었고, 또 재차 샤오바오에게 정직한 아이가 돼야 한다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샤오바오는 “엄마 아빠가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고, 아저씨와 이야기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라고 했다. 아저씨는 또 “엄마 아빠가 또 무슨 말을 하셨니?”라고 묻자, 샤오바오는 “기억나지 않아요.”라고 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라고 하자, 샤오바오는 “엄마 아빠가 아저씨한테는 아무 말이나 다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에도 아저씨는 계속해서 캐물었고, 샤오바오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져 샤오바오에게 “샤오바오는 정말 착한 아이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아이지. 왜냐하면 샤오바오가 정직한 사람이고 아저씨에게 모든 걸 말해 주기 때문이지.”라고 했다. 이때 샤오바오는 더 이상 처음처럼 그렇게 이 아저씨를 경계하지 않았고, 또한 더 이상 처음처럼 그렇게 뭘 물어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모르는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도록 아저씨가 물어보는 것이라면 다 알려 주고 싶었다. 아저씨도 샤오바오에게 털어놨다. “아저씨의 아명이 다바오(大寶)란다. 봐봐. 넌 샤오바오고, 난 다바오니까, 우리 둘이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샤오바오는 “맞아요.”라고 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즐거워졌다. 샤오바오도 사탕을 먹고는 더 이상 아저씨를 경계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샤오바오에게 “앞으로 엄마 아빠가 또 아저씨에 관한 말을 하면, 아저씨에게 알려 줄 수 있을까?”라고 요구하자, 샤오바오는 “물론이죠. 우린 좋은 친구니까요.”라고 했다. 샤오바오는 더는 그 아저씨를 경계하지 않았고, 아저씨는 그런 샤오바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부터 둘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샤오바오의 엄마 아빠가 아저씨에 대해 말하면, 샤오바오는 곧바로 아저씨에게 알렸고, 아저씨 역시 샤오바오에게 약속했다. “난 절대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네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않을 거야.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앞으로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아저씨가 꼭 사 줄게. 엄마 아빠한테 알게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아저씨가 비밀을 지켜 줄게.” 이렇게 샤오바오는 더욱 마음을 놓고 아저씨를 철석같이 믿으며 진심으로 교제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이게 이야기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많지 않으며, 주인공은 다바오와 샤오바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바오라는 아저씨가 어떻게 샤오바오라는 아이를 미혹하고, 종용하고, 회유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아이가 털어놓게 했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야기와 대화이다. 이런 간단한 줄거리와 대화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냐? 여기에서는 어떤 인물의 특징을 주로 이야기하였느냐? 아이이냐, 아니면 어른이냐? (어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설명하려는 것은 무엇이냐?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무엇이냐? 바로 이 어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수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다들 알아들었느냐? (회유하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익으로 회유했고, 옳은 말로 미혹했으며, 이익으로 유혹도 했다. 무엇을 이용해 유혹했느냐? 이익이다. 이익으로 유혹했다. 회유하고, 이익으로 유혹하고, 미혹하는 것, 이는 이익에 의한 유혹이기도 하고 미혹이기도 한데, 옳은 말로 유혹하는 것이고, 또한 위협하는 성질도 지닌다. 다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그는 이 말들을 어떤 일에 사용하였느냐? (자신의 목적 달성에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은밀한 목적에 이용했다. 그가 쓴 수법을 거의 명확히 파악했는데, 이게 정상적인 인성이 갖추어야 하는 모습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어떤 방면의 사탄 패괴 성품이겠느냐? (사악함입니다.) 왜 간사함이 아닌 사악함이라고 하느냐?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더 심각하다. 간사함보다 더 음험하고 비밀스러우며, 미혹하는 성질이 더 강하고, 사람들이 알아차리기가 더 어렵다. 사악함 속에는 또 이익에 의한 유혹, 종용, 회유, 농락, 매수, 시험이 포함되며, 이런 행동과 모습은 간사함을 훨씬 뛰어넘은 사악함이며, 한치도 틀림이 없다. 그는 “말하지 않으면 때리고, 발로 차고, 죽일 거야.”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수법을 쓰지 않았고 겉으로 보면 악독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건 악독함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사악함이다. 왜 사악함이라고 하겠느냐? 간사함은 보통 사람이 그래도 간파할 수 있지만, 그의 수법은 더 괴이하다. 겉으로는 점잖게 말하고 인정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 깊은 곳에는 더 비밀스러운 것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행동 방식과 수법은 사람이 흔히 보고 접할 수 있는 간사함보다 더 비밀스럽고 음험하며, 그 수법은 더 교묘하여 사기성과 미혹성이 더욱 강하다. 이게 바로 사악함이다.
너희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이 표출하는 사악한 성품과 모습을 식별하고 분별할 수 있느냐? 간사한 사람은 약삭빠르기는 해도 일정 기간 접하다 보면 보통 사람은 여전히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성품이 사악한 사람을 간파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아서 본질과 결과를 볼 줄 모른다면, 간파할 수 없다. 사악한 사람은 간사한 사람보다 더 음험해 그의 말 한두 마디만으로는 전혀 그를 간파할 수 없다. 성품이 사악한 사람의 경우, 일정한 시기나 짧은 기간에는 그가 왜 그 일을 하는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네가 꿰뚫어 보거나 간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그가 철저히 폭로되고 완전히 드러나면 그제서야 다들 그것이 단지 간사함만이 아니라 사악함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악한 성품을 분별하려면 일정 기간 체험해야 하고, 때로는 결과를 봐야만 분별해 낼 수 있다. 이는 단기간에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큰 붉은 용이 몇십 년 동안 인류를 미혹했는데, 지금에서야 소수의 사람만이 약간 분별한다. 큰 붉은 용은 항상 가장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말과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사람을 미혹하고, 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배척하며, 무수히 많은 좋은 사람을 해친다. 그런데도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는 큰 붉은 용의 말과 행동이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큰 붉은 용이 한 모든 것이 명분이 있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이고, 또한 인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몇십 년 동안 사람을 미혹했고, 큰 붉은 용이 완전히 폭로되고 무너지게 되면 사람은 비로소 큰 붉은 용의 진정한 면모가 마귀임을, 그 본성 본질이 사악함을 알게 된다. 큰 붉은 용이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를 미혹해서 사람의 내면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생겨 다들 큰 붉은 용의 자손이 되었다. 너희가 큰 붉은 용이 했던 그런 짓을 하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말하는 방식이 큰 붉은 용과 같아서 말은 정말 듣기 좋게 하지만, 실질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척 음험하고 사악하다. 이런 부류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되면 그게 누구라도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적절한 기회를 잡아 상대방에 대한 보복이라는 목적을 이룰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약점을 잡히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나서지도 않고 일을 처리한다. 이것이 사악함 아니겠느냐? 사악한 자가 일을 하는 원칙과 방식, 그리고 그의 속셈, 동기, 출발점은 모두 매우 은밀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다. 사악한 사람은 모두 간계를 써서 남을 해친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사람을 해치거나, 죄를 저지르도록 사람을 유혹하거나, 법률을 통하거나 각종 비열한 수단을 통해 사람을 괴롭힌다. 이는 모두 사악한 모습에 속하며, 공명정대한 수법이 아니다. 너희에게 이런 모습과 표출이 있느냐?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느냐? 이것이 사악한 성품임을 의식할 수 있느냐? 간사함은 통상적으로 겉에서부터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빙빙 돌리거나 매우 번지르르하게 말해 아무도 그의 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간사함이다. 그런데 사악함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더없이 듣기 좋게 말해 겉으로는 모두 옳은 것 같고 어떤 흠도 잡아낼 수 없으며, 모든 면에서 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그가 어떤 수단을 취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허점과 빈틈이 전혀 없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는 매우 은밀하게 일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사람을 미혹해 이 부류의 일과 사람을 분별하기가 가장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늘 옳은 말을 하는데, 듣기 좋은 말, 사람의 인정에 맞는 이치와 주장, 또는 행동으로 남의 이목을 가리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으로 차마 밝힐 수 없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모습을 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악함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 분석도 적은 편이다. 사실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더 분별하기 어렵다. 사악함이 더 은밀하고, 수단이나 행동 방식도 좀 더 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 간사한 성품이 있다면, 보통 이삼일만 접하면 다른 이들이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는 그가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표출하는 것이 간사한 성품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악하다면 며칠 만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시간 내 큰일이나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의 말만 듣고서는 분별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죄다 옳은 말과 일만 하며, 도리도 청산유수처럼 말한다. 그래서 며칠 접하고 나면 너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버리고 헌신할 줄 알며 영적인 이해력도 있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성과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을 몇 번 처리하고 나면 그의 말과 일 처리에 불순물이 몹시 많으며, 꿍꿍이와 속내도 너무 많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간사한 사람이고, 사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늘 옳은 말, 진리에 부합하고 인정이 넘치는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과 왕래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남들도 미혹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명성과 지위를 얻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미혹하는 능력이 대단해 일단 권력과 지위가 생기면 많은 이들을 미혹하고 해칠 것이다. 사악한 성품을 지닌 사람은 너무나 위험하다. 너희 주변에 이러한 사람이 있느냐? 너희 자신은 이런 부류의 사람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 말과 행동에 털끝만큼의 진리 원칙도 없이 완전히 사악한 본성에 따라 일하면서 늘 다른 사람을 미혹하려 하고 가면을 쓰고 살려고 하여 다른 사람이 너를 꿰뚫어 보거나 간파하지 못하게 하고, 너의 인성과 지위를 숭배하고 앙망하는 태도를 취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너희는 평소 이런 사악한 모습을 어쩌다 가끔 보이는 것이냐, 아니면 대부분 이런 모습이고, 자신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 벗어나기가 힘든 것이냐? 어쩌다 가끔 이런 수단을 보인다면, 그래도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사람이고, 늘 약삭빠르고 간사하게 일을 하며, 항상 수단을 써서 일을 한다면, 이것은 바로 가장 교활한 마귀이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겠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속 다바오는 이러한 수단을 써 샤오바오가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도록 미혹했다. 이렇게 하라고 누가 다바오에게 가르쳤겠느냐?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얕은꾀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본성에서, 패괴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어린아이마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니 이 얼마나 비열하냐! 솔직한 말을 듣고 싶으면 어른에게 가서 물어보거나 자발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면, 어쩌면 상대방이 솔직히 말해 줄지도 모른다. 이런 수단을 사용해 뒤에서 떳떳하지 못한 졸렬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 사악한 사람이 하는 짓이다. 말해 보아라. 역겹지 않으냐? (역겹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마저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어린아이라 만만하고 속이기 쉽다고 생각해 어린아이에게 꾀를 부린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상대가 정직하고 선량한 어른이라는 것을 알면, 그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내버려두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만약 자신과 비슷하고,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수단을 쓰기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상대방이 자신처럼 사악하다는 것을 알면, 경계하고 쉽게 뭔가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경계 외에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다툴 것입니다.) 바로 음으로 양으로 다툴 것이다. 딱 이 두 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 사악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타인과 음으로 양으로 다투기 좋아하며 어떤 기회도 그냥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명언이 하나 있는데, 네가 만약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그는 분명 성품이 사악한 사람이다. 어떤 명언이냐? 예를 들어, 네가 그에게 다른 사람과 협력해 본분을 이행하라고 했을 때, 그가 “아이고, 난 그 사람과 다투면 못 이겨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다툼’을 먼저 떠올린다.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협력해 사역을 잘해 낼까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투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명언이다. 그가 어떤 무리에 있든, 이방인이든 형제자매 사이에 있든, 또는 가족들 사이에 있든, 그의 유일한 법칙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다투는 것이다. 드러내 놓고 다퉈 이기지 못하면 몰래 다툰다. 이런 성품이 바로 사악함이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투고 있다. 각종 수단과 기교를 동원해 에둘러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술책을 간파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간파했을 때는 이미 승패가 결정된 후이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음으로 양으로 다투는데, 각종 음모와 간계, 또는 수단을 써서 상대방을 무너뜨려 굴복시키고 결국에는 모두가 자신에게 승복하게 한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까지, 전체 인류의 역사는 모두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크게는 국가에서부터 작게는 가정에까지, 그리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르기까지, 겉으로 드러난 투쟁이든 드러나지 않는 투쟁이든, 또는 글과 말로 하는 투쟁이든 무력 투쟁이든 투쟁으로 가득 차지 않은 무리는 하나도 없다. 중국 역사상 여러 민족 전쟁이 가장 빈발했던 시기는 바로 춘추전국시대이다. 유명한 병서들이 거의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손자병법≫의 계략들도 모두 그 시기에 생겨난 것이다. 또한 ≪삼십육계≫라는 책에서는 다양한 계략을 기록해 전쟁에 응용했다. 일부 병법과 계략은 지금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모두 어떤 계책들이 있느냐? (고육계(苦肉計)가 있습니다.) (조호리산계(調虎離山計)가 있습니다.) (반간계(反間計), 공성계(空城計), 미인계(美人計)가 있습니다.) 무릇 이런 유명한 계략은 앞 글자가 미인이든, 공성이든, 아니면 조호리산이든, 뒤에는 다 ‘계’ 자가 붙는다. ‘계’는 무슨 의미이냐? (계략과 음해를 의미합니다.) 음험하고, 간교하며,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계책이다. 이러한 ‘계’는 계획의 ‘계’가 아니라 음모이다. 이러한 ‘계’의 이면을 통해 무엇을 보았느냐? 그들이 한 행동과 드러낸 모습, 전쟁을 할 때 응용한 이런 계책과 행동 방식들이 인성과 진리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이렇게 하겠느냐? (아닙니다.)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 방식은 누구를 대표하겠느냐? 사탄을 대표하고, 이 사악한 인류를 대표한다. 사악한 인류는 이런 계략을 어디에서 얻었느냐? (사탄에게서 얻었습니다.) 사탄에게서 얻었다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왕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마왕은 누구이겠느냐? 바로 인간 세상에 환생해 나쁜 짓을 하고 인류를 해치는 마귀와 사탄인데, 이들이 계략을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기록에서 하나님이 한 번이라도 공성계나 조호리산계를 사용한 것을 본 적이 있느냐? 하나님의 경륜 중 이런 ‘계’가 있느냐? 하나님은 그의 경영 사역에 결코 이런 ‘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계략은 모든 사악한 인류가 사용하는 것이다. 크게는 국가나 왕조, 작게는 종족 혹은 가정에 이르기까지, 더 작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패괴된 인류가 있는 곳이라면 투쟁이 빠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다투느냐?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이냐? 바로 권력, 지위, 이익을 위해서인데, 이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이다. 국가 간의 다툼은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이며, 종족 간의 다툼 역시 세력 범위, 사람, 주권을 다투기 위해서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 또한 우열을 가리고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가 있는 곳이라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인류가 있는 곳이라면 사탄의 패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었기에 인간 세상이 투쟁과 살육으로 가득 차 있다. 패괴된 인류가 일을 할 때 사탄 성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전체 인류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각의 모든 역사는 전부 인류의 사악한 투쟁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이다. 인류는 그래도 이를 명예로운 일로 생각한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의 삼십육계를 배우고 있다. 너희도 배우느냐? (배우지 않습니다.) 만약 네가 일부러 이것들을 배우고 거기에 있는 경험, 교훈, 수단, 방식, 방법을 받아들여 너의 머리를 채우고 네 생존 능력으로 삼는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너는 틀림없이 점점 더 사탄과 가까워지게 될 것이고, 너라는 사람은 점점 더 사악해지고 나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가 만약 관점을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것을 분석하고, 분별하고, 폭로한다면, 어떤 성과를 얻겠느냐? 네가 사탄을 더 증오하게 되고, 자신을 더 잘 인식하고 증오하게 된다. 더 좋은 성과는 무엇이겠느냐? 사탄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탄은 이러한 소위 전통문화와 몇천 년에 걸쳐 종합한 인류의 각종 지식과 이론을 이용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를 사람들에게 주입하여 더 깊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통제한다. 만약 네가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배우고 활용할 줄 알게 된다면, 너는 살아 있는 사탄이 되어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도태된다.
예전에 예배에서 자기 인식에 관해 교제할 때, 대부분의 사람이 항상 교만한 성품 문제를 언급했는데, 이는 사람에게 가장 흔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패괴 성품이다. 비교적 흔한 패괴 성품으로 또 어떤 것이 있느냐? (간사함과 강퍅함이 있습니다.) 간사함, 강퍅함, 진리를 싫어함, 흉악함, 이런 것들은 사람이 자주 접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악함을 비교적 적게 접하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는 것도 비교적 적다. 사악한 성품은 가장 인식하기 어려우며, 또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비교적 은밀한 패괴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데, 둘 다 진리를 싫어하고 추구하지도 않으며, 또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는다고 해 보자. 겉으로는 두 사람이 매우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다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여전히 각종 패괴 성품이 존재하는데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보지 못하는 것이냐? 이 두 사람 모두 무척 간사해서 일 처리가 교활하고,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전혀 분별이 없기 때문에 네가 그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깨달은 진리가 적고 분량이 지나치게 작아서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꿰뚫어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도와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그럴 능력이 없다. 리더인 너희가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네가 그를 폭로하고 분별하면, 그가 쉽게 받아들이겠느냐?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방법이 있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기술과 업무를 약간 알고 있어서 하나님 집을 위해 힘을 쓸 수 있다면, 형제자매로 대하고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니 그가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에게 충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는 무엇이 있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체면치레를 특히나 잘하지 않느냐?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놀면서 느릿느릿하게 하다가, 누가 오는 것을 보면 재빨리 한다. 게다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저렇게 해도 되는지 많은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가고 나면, 그는 한가해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질문도 전혀 없어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널 놀린 거야. 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라고 되뇐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체면치레만 하며, 자기 자신을 특히 잘 포장하고 남에게 허상을 꾸며 보여 주는 것에 능숙하다. 많은 사람이 그와 여러 해를 함께해도 그의 간사하고 교활한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상황을 알아볼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누구에게나 다 잘해 주고,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해친 적이 없는 무골호인이에요. 누가 일을 잘못해도 책망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한결같이 권면하고 위로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방법과 수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바로 적당히 분위기 맞춰 행동하기와 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도록 처세하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다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너희 주변에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느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이 표출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은 특히나 꽁꽁 포장해 아무도 그의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 이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역사상 어떤 황제가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어도, 후세 사람들은 그가 명군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째서 사람이 그를 이렇게 보는 것이냐? 그가 자신의 명성을 위해 공을 들이고 뭔가를 한 것 아니겠느냐? 그는 한편으로는 치적을 위해 선한 일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왜곡했으며 사실의 진상을 쓴 사람을 살해하여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을 은폐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은폐해도 그가 저지른 짓은 분명 기록이 남는다. 그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런 짓들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밝혀졌고,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 폭로로 사람들은 전체 인류의 실제 사정을 새롭게 인지하게 된다. 어떻게 인지하겠느냐? 군왕에서부터 평범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인류가 모두 악인의 권력 아래에 놓여 있고,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다들 사악해졌는데, 악하거나 나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다들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며, 다들 매우 사악하고,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청렴한 관리가 한 두 명은 있는데, 그럼 그런 청렴한 관리도 사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네가 그런 청렴한 관리의 권력 아래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너를 잡아들이는지를 살펴보아라. 네가 청렴한 관리에게 하나님을 증거했을 때,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사악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나타남과 사역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며,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일부 통치자와 관리들은 치적도 있고 좋은 일도 좀 하는데, 그것은 어떤 성질의 좋은 일이겠느냐? 누구에게 유리한 좋은 일이겠느냐? 통치 계급이 원하는 좋은 일이다. 그들이 하는 좋은 일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선행이겠느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치적’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그들의 치적과 좋은 일은 모두 진리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그들이 한 알량한 좋은 일과 치적은 모두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좋은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또는 아무리 많은 치적을 쌓아도, 이것이 그들이 마음이 선량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며, 더구나 그들이 악을 행한 적이 없고 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아느냐? 이런 일들을 통해 너희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느냐? 좋은 일을 좀 하면 남들이 다 알게 자랑하고 싶어 하면서도, 겉으로는 떠벌리거나 건방 떨면 안 된다고,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행동을 너희가 하느냐? 예를 들어, 네가 새로운 교회에 사역하러 갔는데, 남들이 네가 리더인 줄 모른다고 해 보자. 너는 남들이 네가 리더임을 알도록 온갖 방법을 생각할 것인데,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짜 드디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낸다. 어떤 방법이겠느냐? 모든 사람들을 소집해 예배할 때 “오늘 예배에서는 리더인 제가 합격인지 아닌지를 교제하겠습니다. 불합격이면 여러분이 폭로하고 파면시키시고, 합격이라면 제가 계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다들 네가 리더임을 알게 된다. 이러면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니겠느냐? 그 목적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바로 사악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야심을 가지고 있지만 똑같이 야심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다양한 언어, 수단, 방식을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악한 본성에 관한 이런 종류의 주제는 앞으로도 자주 다뤄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이 방면의 진리와 패괴 성품을 점점 더 철저히 인식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분별하게 되어 진리에 더 깊이 진입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저 대략적인 개념이나 어느 한 방면의 정의만을 교제한다면, 너희가 비교적 얕게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과 예를 가지고 교제한다면, 너희가 좀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아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자. 한 아이가 “오늘 숙제했어?”라고 물었을 때, 다른 아이가 “안 했어.”라고 대답하자, 첫 번째 아이가 “나도 안 했어.”라고 했다. 아이들은 진실된 말을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틀렸다. 한 아이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였겠느냐? ‘바보야. 내가 정말 안 했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숙제를 안 하면 벌을 받는데 안 할 수 있겠어? 일부러 네가 나도 안 한 것처럼 생각하게 한 거야. 그러면 너도 안 할 테고, 결국은 벌을 받겠지. 널 웃음거리로 삼으려 한 거야.’ 나쁜 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런 짓을 한 적이 있느냐?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다. 월요일에 등교할 때, 한 학생은 일요일인 어제 쇼핑을 했다 하고, 다른 학생은 일요일에 남의 집에 놀러 갔다고 했다. 사실 두 명 모두 집에서 공부를 했다. 중국인들은 특히 경쟁이 심한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의 경계심을 늦추게 함으로써 상대를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수단이라고 하며, 생활 속 곳곳에서 이런 일들을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고, 이러한 성품이 표출될 때가 있다. 친구 사이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표출된다. 이러한 성품들이 표출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네가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무엇을 위해 관찰하느냐? 소재를 얻거나 한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분별력을 키워 다른 사람이 한 일과 그들이 표출한 모습을 자신과 대조해 보고, 자신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가 이런 성품이 있다는 것을 네가 알지만, 너 자신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을 때, 그때도 자신이 이런 성품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느냐? 만약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너의 인식은 가짜이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혹은 네가 전혀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주제들은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다. 조금만 이야기해도 너희가 좀 얻는 것이 있고, 진리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깊어질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한다면 더 깊이 진입할 수 있을 것이며, 네 체험과 진입의 깊이는 너의 인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네가 얼마나 깊이 체험하고 진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만큼 깊이 인식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네 인식의 깊이 또한 네가 얼마나 깊이 체험하고 진입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에 진입하는 길이다. 진리에 진입해야 실제를 갖출 수 있다. 이 주제는 일단 여기까지 하고, 이어서 오늘 교제할 본론을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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