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4) 제 3 부
거짓 리더는 사역을 점검하거나 지도하지 않는다
방금 리더 일꾼의 직책 제5조 ‘각 사역의 현황을 알아보거나 파악하는’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거짓 리더의 구체적인 모습 그리고 그들의 인성과 인격을 폭로하였다. 이제 ‘각 사역의 진도를 알아보거나 파악하는’ 것에 관해 살펴보자. 물론 사역의 진도와 현황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으며, 이 관계 또한 상당히 밀접하다. 만약 어떤 사역의 현황조차 알아보거나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사역의 진도 또한 마찬가지로 알아보거나 파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사역의 진도가 어떤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었는지, 사람의 내적 상태가 어떤지, 업무에 어려움은 없는지, 하나님 집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게 한 것은 없는지, 이룬 성과는 어떤지, 만약 사역하는 사람이 업무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면 학습은 하고 있는지, 누가 학습을 조직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등등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이 바로 진도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찬양 사역은 매우 중요하지 않겠느냐? 한 곡의 찬양이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작곡이 완성되기까지, 이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사역이 필요하겠느냐? 우선 노래를 만들기에 적합하고 길이도 적당한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로는 그 말씀에 어떤 스타일의 곡을 붙여야 적합하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느낌이 좋고 즐거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이 노래를 부를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인 사역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찬양의 편곡이 완성된 후, 곡이 합격인지, 스타일이 적합한지 거짓 리더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편곡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느끼기에 대충 됐다 싶으면 녹음을 해 버린다. 모두가 기대하던 이 하나님 말씀에 드디어 곡을 붙여 찬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여전히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겠느냐? 만들어진 곡이 그다지 좋지 않고, 멜로디와 운치도 없는데 녹음 제작된 것이다. 거짓 리더가 듣고는 “누가 이 찬양을 만들었나요? 어떻게 녹음까지 되었죠?”라고 말한다. 그는 최소한 이미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이런 질문을 한다. 그 한 달 동안, 리더가 이 사역의 진도를 점검하고 제때 파악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작곡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기본적인 모티브는 나왔는지, 멜로디는 있는지, 이 곡의 멜로디와 스타일이 하나님 말씀과 어울리는지, 관련된 경험 있는 사람이 지도를 도와주었는지, 이 곡이 완성되고 나서 불릴 수 있을지, 효과는 어떨지, 좋은 곡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등 말이다. 거짓 리더는 이런 것들을 전혀 점검하지 않는다. 그가 점검하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저도 몰라요. 모르는데 어떻게 점검합니까? 점검할 방법이 없어요.”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이유이겠느냐?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모르는 문외한이 점검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점검해야 하겠느냐? (형제자매들과 함께 협력해서 원칙에 따라 이 곡이 적합한지 심의하면, 이 사역을 실제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손 놓고 신경을 끄면 안 됩니다.) 거짓 리더가 사역을 할 때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도리와 구호만 외치고 지령을 전달한 후에는 손을 놓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사역이 그 후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문제나 착오,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사역을 맡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사실, 리더로서 사역을 안배한 후에는 반드시 사역의 진도를 점검해야 한다. 이 측면의 사역에 있어 문외한일지라도, 아는 게 하나도 없을지라도 그 사역을 할 방법은 있다. 그 업무에 정통하고 잘 아는 사람을 찾아 감독하고 의견을 내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의견 가운데서 적절한 원칙을 찾으면 사역을 점검할 수 있다. 네가 그 업무에 정통하든 그렇지 않든, 그 업무를 잘 알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사역을 주관하고 점검하며, 사역의 진전 상황이 어떤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알아봐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파악해야 하는 것은 너의 책임이자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사역을 점검하지 않으며, 사역을 맡기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놓고 관여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의 일 처리 스타일이다. 사역을 점검하거나 지도하지 않고, 발생한 문제에 대해 묻지도 않고 해결하지도 않으며, 사역의 진도와 효율도 파악하지 않는 것, 이 또한 거짓 리더의 모습이다.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 사역의 진도에 지장을 준다
거짓 리더는 사역의 진도를 알아보지 않고, 사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며, 해결은 더더욱 못 하기에 그 결과 수시로 사역을 지연시킨다. 어떤 사역은 사람이 원칙을 파악하지 않고, 책임지고 주관할 적합한 자가 없기 때문에 사역하는 사람이 종종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기다리기만 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사역의 진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만약 리더가 책임을 다해 주관하고 사역을 추진하고 독촉하는 한편,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해당 사역을 지도하게 한다면 사역의 진도는 계속 지연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로서 사역의 현황을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사역의 진도를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역 진도는 사역 효율이나 그 사역이 내야 할 성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 일꾼이 교회 사역의 진도조차 파악하지 않고 점검하거나 감독하지도 않는다면 교회 사역의 진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본분을 이행하는 많은 인원이 불량 습성이 심각하고 부담이 없으며, 수시로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굴고, 대충 건성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체적으로 사역을 책임지고 제때에 사역의 진도를 알아보며,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 대해 지도하고 감독하고 징계하며, 아울러 책망하는, 부담감과 사역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사역 효율은 당연히 낮아지고 사역 성과도 떨어지게 된다. 리더 일꾼이 이런 일조차 간파하지 못한다면 어리석고 눈먼 자이다. 그러므로 리더 일꾼은 반드시 사역의 진도를 제때 알아보고 점검하고 파악해야 하고, 본분 이행 인원에게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이런 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리더로서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절대 거짓 리더처럼 표면적인 일만 좀 하고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 리더는 사역할 때 대충 형식만 취하고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 않고, 어떤 사역을 하든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넘어간다. 그저 큰소리만 치고 도리와 빈말을 늘어놓으며 형식만 따른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거짓 리더는 이런 상태로 사역을 한다. 적그리스도와 비교해 보면, 거짓 리더는 눈에 띄게, 고의로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사역 성과 면에서 보면 일을 건성으로 하고 부담을 갖지 않으며, 본분에 무책임하고 충성심도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방금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며, 교회 각 사역의 진전 상황을 알아보거나 파악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교제하였다. 교회 사역에 나타나는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서도 거짓 리더는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거나 그저 도리만 좀 이야기하고 구호를 좀 외치며 대충 넘긴다. 사역 현장 어디에서도 그들이 사역을 알아보고 점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으며, 그들이 현장에서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그들이 현장에서 직접 사역을 지도하고 감독하여 사역에 허점과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모습은 더더욱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가 건성으로 대충 사역하는 가장 뚜렷한 모습이다. 비록 거짓 리더가 적그리스도처럼 일부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독립 왕국을 세우지는 않지만, 거짓 리더가 건성으로 대충 하는 여러 행동 방식은 교회 사역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해 다양한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교회 각종 사역의 진도에 심각한 지장을 주었으며,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설마 이런 거짓 리더를 도태시키면 안 되는 것이냐?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하든 전부 용두사미로 끝낸다. 그는 시작을 외치는 역할을 맡아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이야기하며, 사역을 배치하고 사역 책임자를 안배하고 나면 그의 일은 끝이 난다. 마치 중국 농촌의 방송 스피커처럼 그는 그저 이런 역할을 할 뿐이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기만 할 뿐, 후속 사역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각 사역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원칙에 부합하는지, 성과가 있는지 등 일련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는 사역의 밑바닥까지 들어가 사역 현장에 가서 각 사역의 진도와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고 파악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거짓 리더 부류의 사람들이 리더로 있는 동안 일부러 방해하고 교란하거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들은 사역을 마비시켰으며, 교회 각종 사역의 진전을 지체시켰다. 그로 인해 하나님 선민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었고 생명 진입도 없게 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사역을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하나님 선민을 인도할 수 있겠느냐? 이는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책임져야 할 사역을 점검하고 지도하고 감독하여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전되도록 보장하지 못했으며, 리더 일꾼이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도 하지 못했고, 그들의 충성과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 이로써 거짓 리더는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심이 없으며, 전부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하나님 선민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속였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지장을 주고 방해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거짓 리더가 정말로 사역을 하지 못하든 아니면 사역을 회피하며 일부러 건성으로 대충 하든, 어쨌든 거짓 리더가 교회 사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교회 각종 사역이 아무런 진전이 없고 누적된 많은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복음 사역의 확장에 지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이런 사실들은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음 확장 사역의 장애물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역의 진도를 지체시키고 사역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교회 사역에도 심각한 손실을 입혀 많은 인력, 물자, 재원을 낭비한다. 그러니 거짓 리더가 경제적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리더 일꾼이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손실 배상까지 해야 한다면 리더 일꾼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라고 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될 자격도 없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은 바로 악인이다. 그런데 이런 악인이 리더 일꾼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는 골치 아픈 일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의 많은 사역이 다 경제적 지출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경제적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하나님의 제물은 사람이 멋대로 낭비하고 훼손해도 되는 것이냐? 리더 일꾼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제물을 훼손하느냐? 경제적 손실을 입혔으면 배상해야 한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며,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한 항목의 사역은 한 사람이 한 달이면 끝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역을 반년 동안 한다면 나머지 5개월의 지출은 손실 아니겠느냐? 복음 전파를 예로 들어 보겠다. 참도를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한 달이면 그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 후 교회에 가입시켜 계속 양육하고 공급하면 반년 안에 토대를 마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신경 쓰지 않거나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를 보이고, 리더 일꾼 역시 책임감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반년이나 끌다가 사람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그 사람의 생명 측면에서 볼 때 반년의 시간을 손해 본 것 아니겠느냐? 만약 대재난이 닥쳤는데 그가 아직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는 그 사람에게 빚을 진 것 아니겠느냐? 그 손실은 금전적, 물질적으로 가늠할 수 없다. 너는 그가 진리를 깨닫는 것에 반년이나 지장을 주었으며, 또 그가 토대를 마련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반년이나 늦어지게 했다. 그 책임을 누가 져야겠느냐? 리더 일꾼이 그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에 지장을 준 데 대해 책임질 수 없다. 누구도 그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리더 일꾼이 어떻게 해야 적절하겠느냐? 딱 한 가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무엇을 해야겠느냐? 자신의 책임을 다하되, 자기가 볼 수 있는 것,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자기 자질로 이를 수 있는 것들을 전부 해야 한다. 이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충성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리더 일꾼이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일부 리더 일꾼들은 복음 전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알아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는 거야. 그런 사람은 재난 속에서 죽어도 마땅해!’라고 생각한다. 거짓 리더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복음 사역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이제 막 교회에 들어온 새 신자들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늘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만 중시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도를 알아보든 그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늘 그럭저럭 시간 보내는 마음가짐으로 태상황(太上皇)이나 관료처럼 행동한다. 사역이 아무리 중요하고 급해도 그는 현장에 가지 않고, 사역 상황을 물어보지도 않으며, 사역을 점검해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역을 안배하고 나면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것이 바로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건성으로 대충 하는 것 아니겠느냐? 상부와 아래를 속이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리더 일꾼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합당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치 큰 붉은 용의 관리 같지 않으냐? 그는 ‘리더 일꾼이 된다는 것은 관직에 오르는 거야. 그러니 지위의 복을 누려야 해. 관직에 오르면 이런 특권이 있으니, 매사에 현장에 나갈 필요 없어. 늘 현장에 나가 사역을 점검하고 상황을 알아본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나는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거짓 리더와 거짓 일꾼은 바로 이렇게 사역한다. 그들은 그저 편안함을 누리고 지위의 복을 누릴 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고, 양심과 이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런 기생충은 마땅히 도태시켜야 하고, 징벌받아 마땅하다! 일부 리더 일꾼은 교회 사역을 몇 년이나 했는데도 복음을 전파할 줄 모르고, 복음을 증거할 줄은 더더욱 모른다. 네가 그에게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 측면의 진리를 복음 대상자에게 교제하라고 하면, 그는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렇다면 당신은 이상 측면의 진리를 갖추기 위해 공을 들여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거짓 리더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뭐 하러 그런 공을 들여야 하지? 내 지위가 이렇게 높으니, 내가 그 일을 할 필요 없어. 할 사람은 많아.’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자는 어떤 작자이겠느냐? 그는 교회 사역을 여러 해 했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할 줄 모르고, 복음을 증거할 때도 간증인을 찾아 증거하게 해야 한다. 만약 리더 일꾼이 복음을 전파하거나 증거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해 주지도 못한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너의 직책은 무엇이냐? 너는 직책을 다하였느냐? 너는 밑천을 파먹고 있는 것이냐? 너의 밑천은 어디에 있느냐? 누가 너에게 밑천을 파먹을 권리를 주었느냐? 심지어 일부 복음팀 책임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전혀 듣지도 않는다. 그는 듣는 데 흥미가 없고, 듣기 귀찮아하고, 번거롭다고 생각하며, 그런 인내심도 없다. 그들이 리더이고, 그들이 관직에 있으니, 이런 구체적인 사역은 그들이 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에게 시킨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할 때 구체적인 이상 측면의 진리들을 깨닫고 싶어 하는 자질이 훌륭하고 모든 일에 진지한 사람을 정말로 만났는데, 어떤 복음 전파자가 진리를 명확하게 교제하지 못해 리더에게 교제하라고 하면, 리더는 말이 없어지며 이렇게 핑계를 댄다. “이 사역은 저도 해본 적이 없으니, 여러분이 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뒷받침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제가 보완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괜찮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계시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누군가가 참도를 찾을 때, 여러분은 그에게 복음을 증거하거나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세요. 저는 단지 생명 진입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는 것만 책임집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이런 사역은 여러분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저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복음을 전파하거나 증거하는 중요한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그는 숨어 버린다. 그는 자신에게 진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왜 갖추지 않는 것이냐? 자신에게 진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왜 늘 앞다투어 리더가 되려 하는 것이냐? 그는 별다른 재능이 없으면서도 어떤 직위든 감히 맡으려 한다. 그에게 황제를 시켜도 감히 할 정도이니, 이 얼마나 뻔뻔하냐! 그는 어떤 급의 리더가 되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면서 감히 지위의 복을 누리려 하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 이는 너무 뻔뻔한 사람 아니겠느냐? 너에게 외국어를 하라고 했는데 네가 못 한다면, 이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에게 모국어로 이상 측면의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교제하라고 하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이제 막 믿은 지 3~5년 된 사람이 진리를 교제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20년 가까이 믿고도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지 못한다면, 이는 폐물이고 식충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지 못하다니, 내가 들어도 의아한데 너희가 들으면 어떤 느낌이겠느냐? 불가사의하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요 몇 년 동안의 사역을 너는 어떻게 하였느냐? 너에게 음악을 지도하라고 하면 할 줄 모르고, “이 분야의 업무가 너무 어려워 일반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너에게 미술 디자인이나 영상 사역을 지도하라고 하면, “이런 사역들은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너에게 체험 간증문을 쓰라고 하면, 너는 또 “저는 배움이 짧아서 쓸 줄 모릅니다. 연습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역들을 네가 할 줄 모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복음 사역은 너의 본분에 속하는 일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사역은 쉽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상 측면의 진리를 교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3단계 사역의 진리를 명확하게 교제하는 것이다. 처음 교제할 때는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다지 잘 교제하지 못하지만, 한동안 훈련하면 점점 더 교제를 잘하게 되고, 말에 체계가 생기고, 언어가 정제되고 명확해지며, 표현 방식도 점점 좋아진다. 이것이 리더가 마땅히 익혀야 할 구체적인 업무 사역 아니겠느냐? 오리보고 홰에 오르라 하는 셈이 아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이 정도의 사역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무슨 리더를 한다는 것이냐? 너는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저는 사고가 흐릿하고 명확하지 않아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상 측면의 진리를 잘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복음 사역에서 나타난 다양한 허점과 오류를 네가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네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해결은 말할 것도 없다. 거짓 리더는 복음 사역을 책임지는 동안 점검과 감독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이 마음대로 하게 한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하게 하며, 원칙과 기준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일 처리에 이성이 없으며, 원칙은 더더욱 없어서 함부로 제멋대로 하는데, 거짓 리더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한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해 몇몇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은 고정 수입이 없어서 끼니와 생활이 모두 문제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니,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밥을 배불리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구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 서적 몇 권을 나눠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와 전화가 없는데,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들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는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알아본 결과, 이 사람들이 지금은 돈이 없지만 돈이 생겨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후, 리더는 그 사람들에게 매달 구호금을 주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인터넷 요금, 휴대폰과 컴퓨터 등 장비 구입 비용까지 모두 하나님 집의 돈을 사용했다. 이들에게 돈을 지급한 것은 복음 사역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한 것이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생계가 막막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구제한다는 규정이 하나님 집에 있느냐? 이런 원칙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리더는 어떤 원칙에 따라 그들에게 구호금을 지급한 것이냐? 하나님 집에 돈이 남아돈다고 생각해서이겠느냐, 아니면 그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이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이들을 통해 복음을 확장하려는 것이겠느냐? 그의 의도는 대체 무엇이냐?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냐? 이들에게 휴대폰, 컴퓨터, 생활비를 나눠 줄 때 그는 매우 기뻐하며 바삐 일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이런 사역을 하기 좋아한다.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고 인심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런 일에 마음을 기울인다. 게다가 점점 더 만족을 모르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돈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인심을 얻는 것이다. 사실 이 가난한 사람들은 결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배불리 먹고 삶의 출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구원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구원하겠느냐? 일부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만 이조차도 진심이 아니라 휴대폰과 컴퓨터를 얻기 위한 것이며, 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누구든지 본분을 이행하려고만 하면 돌봐 준다. 주거비와 식비를 줄 뿐만 아니라 컴퓨터, 휴대폰, 각종 장비까지 사 주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본분을 이행해도 아무런 성과가 없다. 그렇다면 이 돈은 헛되이 쓴 것 아니겠느냐? 이는 하나님 집의 돈으로 인심을 쓴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리더 일꾼이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자가 거짓 리더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는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짓 자비와 거짓 선심을 베푼다. 네가 선심을 베풀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네 돈으로 해라! 그에게 입을 옷이 없다면, 네 옷을 벗어 그에게 입혀라. 하나님의 제물을 사용하지 마라! 하나님의 제물은 복음 확장 사역에 쓰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쓰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 집은 복지 시설이 아니다.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고, 진리와 생명은 더더욱 공급할 수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제물로 혜택을 제공해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는 것만 중시한다. 이는 집안을 말아먹는 뻔뻔한 자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 리더를 발견하면, 제때 폭로하고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아무도 나서서 제지하지 않는다. 만약 상부에서 발견해 제지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돈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손을 길게 뻗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끝없이 욕심을 부렸을 것이고, 아무리 줘도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기 위해 가정과 직장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생활에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방법을 마련해 해결하지 하나님 집에 늘 요구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체험한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께 밥을 빌어먹는 그런 사람들은 늘 하나님 집에 생활비를 요구하고 하나님 집에서 자신들을 먹여 살리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이성이 없다! 그들은 아무런 본분도 이행하려 하지 않으면서 생활을 즐기려고만 하고, 하나님 집에 손을 내밀기만 한다. 게다가 끝도 없이 요구한다. 이는 거지 떼 아니겠느냐? 그런데 이 어리석은 거짓 리더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한도 끝도 없이 주며, 끊임없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사람들의 감사를 받으려 한다. 그래 놓고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모두 거짓 리더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이러한 문제들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대부분의 리더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복음 사역을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에 뭐 하러 신경 써? 내 돈 쓰는 것도 아닌데. 내 주머니에서 한 푼도 나가지 않으면 돼. 너희가 누구에게 주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렇다고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매우 많은데,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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