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5) 제 2 부

4)보복하기 좋아한다

세 번째 부류인 방탕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자들의 모습에 대해 교제를 마쳤다. 이 부류 외에도 악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 중에는 교회에서 분별하고 제명해야 할 여러 부류의 악인이 있다. 이제 네 번째 부류의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교회에서 분별하고 제명해야 할 여러 부류의 악인 중 네 번째 부류는 매우 다루기도 어렵고 정말 골치 아픈 자들이다. 어떤 부류겠느냐? 바로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다. ‘보복하기 좋아한다’는 말만 봐도 이 부류는 좋은 작자가 아니다. 쉽게 말해 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성적으로 일관되게 드러내는 모습과 일 처리 원칙을 보면, 그들은 마음씨가 선량하지 않다. 속담에 “만만한 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이 부류를 가리켜 선한 부류가 아니라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씨가 선량하지 않고, 악과 독, 독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류는 누가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이익과 체면, 지위를 건드리거나 비위를 거스르는 순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적대감을 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적대감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 행동의 목표와 방향은 분풀이, 화풀이를 하는 것인데, 이런 행위를 가리켜 보복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이런 부류가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속 좁은 자든, 전횡을 일삼는 자든, 아니면 비교적 예민한 사람이든, 어떤 말로 이 부류의 인성을 지칭하거나 개괄하든 간에, 어쨌든 이 부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다음과 같은 모습을 자주 보인다. 즉, 누가 고의든 아니든 그를 상처 주거나 비위를 거스르면 그 사람은 화를 입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마치 일부 사람이 “그는 자기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를 건드려 상처를 주었다면, 쉽게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 중에 이런 부류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분명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이 화를 내거나 따질 만한 일이든 아니든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 부류는 그 일을 자신의 의사일정에 올려 두고 가장 중요한 일로 대한다. 누구든 그의 비위를 거스르면 가만두지 않고, 상대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하고, 적으로 여기는 모든 이를 대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교회 생활 중에 자신의 내적 상태를 교제하거나 정상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교제하고 나누면서 자신의 내적 상태나 패괴에 대해 말할 때,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나 패괴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의도가 없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서 들은 후에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대하지 못하면 보복 심리가 생기기 쉽다. 만약 그가 그런 말을 들은 후에 물고 늘어지면서 어떻게든 공격하고 보복하려 든다면 교회 사역에 문제를 초래하게 되니, 그 일은 반드시 제때 처리해야 한다. 교회에 악인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교란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악인이 교회를 교란하는 사건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네가 의식적으로 한 것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한 것이든, 그를 건드리거나 그에게 상처를 주면, 그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의 패괴를 말하면서 왜 내 얘기를 하는 거지? 당신 스스로를 인식한다면서 왜 나를 폭로하는 거냐고. 당신이 내 패괴를 폭로해서 내 체면과 존엄을 떨어뜨리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나를 난처하게 하고, 내 위신을 깎고 내 명성에 흠집을 냈으니 나는 복수할 거야. 난 당신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날 만만하게 보지 마. 내 가정 형편이 좋지 않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해서 막 대해도 되는 줄 알아? 나를 순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가 어떻게 복수할지는 잠시 차치하고, 이 부류의 사람이 이런 작은 일, 그러니까 교회 생활에서 흔히 생기는 일을 마주했을 때 올바르게 대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증오심을 품고 기회를 노려 보복하며, 심지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이 부류의 사람은 인성이 어떠하냐? (악독합니다.) 이들이 선한 부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체험을 교제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이런 패괴가 있지. 그가 말한 건 꼭 내 내적 상태 같네. 그가 의도적으로 나를 폭로했든, 아니면 무의식중에 우연히 내 내적 상태와 비슷한 것을 말했든 나는 올바르게 이해해야 해. 그가 어떻게 체험했는지, 어떻게 진리를 구해 이 측면의 내적 상태를 해결했는지, 어떻게 실행하고 진입했는지 들어 보자.’ 이런 자가 바로 진정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보다 조금 못한 사람은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인식한 패괴 성품이 어떻게 내 내적 상태와 똑같을까? 나를 말하고 있는 건가? 어디 말할 테면 말해 보라지. 어차피 나는 손해 본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모를 텐데. 그는 그냥 자기 얘기를 했는데 우연히 일치한 걸 수도 있어. 다들 내적 상태는 같으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마음에 증오심이나 보복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선하지 않은 부류의 악인들은 다르다. 똑같은 일을 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일로 여겨 처리하거나 대한다. 물론 진리를 받아들이는 좋은 사람은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보통 사람은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는 않아도 증오심을 품지 않으며 보복하려는 마음은 더욱 품지 않는다. 그러나 선하지 않은 부류는 이렇게 평범하고 흔하디흔한 일에도 마음에 풍파가 일고 평정을 잃는다. 그는 긍정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 아닌 흉악하고 사악한 것을 마음에 품고, 보복하려 한다. 보복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는 다른 사람이 의도적으로 악담을 하며 그를 헐뜯었다고, 그의 치부와 추태, 패괴를 들춰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의도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사람을 원수로 간주한다. 그러고는 보복을 통해 이 일을 잠재울 이유가 생겨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복수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는 성품이 흉악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오직 진리를 싫어하고 성품이 사악한 자들만이 그것을 듣고 적대감, 심지어 복수심까지 생기게 된다. 이는 사람의 본성 본질이 철저히 드러난 것이다. 보복심이 생겼으니 그는 곧이어 일련의 보복 행위나 행동을 하게 된다. 보복 행위가 시작되면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겠느냐? 더 이상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다. 그럼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겠느냐? (그가 보복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 진정한 피해자는 체험 간증을 교제한 사람이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 부류의 사람이 다음에 하려는 일은 바로 자신을 폭로하고 적대시했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말로든 행동으로든 다양한 자리에서 판단하고 공격하며 심지어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잠시 증오를 품는 데 그치지 않고 온갖 기회를 찾아서, 심지어는 각종 기회를 만들어서 자신이 보복하려는 사람, 적대시하는 사람,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복수하려 한다. 예를 들어, 리더를 선출할 때, 그가 적대시하는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쓰는 원칙에 부합하여 리더로 선출될 자격이 있다 해도, 그는 그 사람을 적대시하기에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공격하며, 뒤에서 작은 술수를 부리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일을 해서 보복한다. 어쨌든 그의 보복 수법은 무척 다양하다. 예컨대 상대의 약점을 잡아 험담하는 것, 과장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억측으로 상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 그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 심지어 리더에게 그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저항한다고 모함하는 것 등이 있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없는 일을 만들어 내고 고의로 날조한 것이다. 보아라,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과 오해 때문에 해서는 안 될 행위와 행동을 이렇게나 많이 저지른다. 이 모든 행동 방식은 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그의 본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은 체험 간증을 말하면서 결코 그를 겨냥하지 않았고, 그에 대해 어떤 악의도 없었다. 다만 그에게 진리를 싫어하고 보복하기 좋아하는 사악한 성품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폭로하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도, 패괴 성품이나 사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화가 나고 자신을 겨냥하고 폭로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보복심이 생겨나고 형성되는 것이다. 이 부류가 다른 사람에게 보복하는 모습은 한 가지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본성이 흉악해서 누구도 건드리거나 거슬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전갈이나 지네처럼 천성적으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에 대해 공격성을 띤다. 그래서 상대가 의식적으로 말한 것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말한 것이든 그를 건드리거나 그에게 상처를 주어 그가 체면과 위신이 떨어졌다고 느끼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체면과 위신을 만회하려 한다. 그리하여 일련의 보복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이어서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의 다른 모습에 대해 교제하겠다.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다가 리더에게 책망받으면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다. 말해 보아라, 그 책망은 정당한 것 아니냐? (정당합니다.) 매우 정당하고 정상적이다. 네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교회 사역에 손해를 끼치고, 원칙에 맞지 않게 행동했을 때 누군가가 나서서 폭로하고 책망하는 것은 정당하며, 사람은 그것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는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불만을 품고, 리더가 가고 나면 욕을 한다. ‘뭐가 잘났다고 으스대는 거야? 그냥 직함 하나 있을 뿐이잖아? 내가 그 일을 맡으면 당신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당신이 뭔데 나를 책망해? 나를 책망했으니 당신을 미워할 거야. 밖에 나가서 차에 치여 죽고, 물 마시다가 사레들려 죽고, 밥 먹다가 목이 메어 죽으라고, 비명횡사당하라고 저주하겠어! 감히 나를 책망해? 감히 나를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 리더가 어떤 일로 인해 윗선 리더에게 책망을 받으면, 그는 고소해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콧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생각한다. ‘어때? 으스대더니, 인과응보다! 나를 책망한다면 험한 꼴을 당하게 해 주겠어!’ 이런 부류는 어떠냐? (악독합니다.) 책망과 훈계가 아무리 정당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사코 이치를 따지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며, 그 후에도 계속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거듭 가르쳐도 고치지 않는다. 네가 언제나 건성으로 임한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그저 책망하고 훈계할 뿐이지만 밖에 나가서 일할 때도 건성으로 임한다면 자칫하면 해고당해 밥줄이 끊길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진리를 교제하고 사랑으로 붙들어 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며, 많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면서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 사실, 리더 일꾼 중에서 심각하게 책망과 훈계를 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믿음과 자각으로, 양심과 이성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며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에 심각하게 책망과 훈계를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망과 훈계를, 특히 상부의 책망과 훈계를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이는 사람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생명 성장을 이룰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최소한 책망과 훈계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책망과 훈계는 좋은 일이다. 설령 어떤 사람이 자기 뜻이나 혈기가 섞여 그다지 원칙에 맞지 않게 책망해도, 너는 자신을 돌아보고 네가 한 일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원칙에 맞지 않는지 살펴보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부류의 악인은 정당한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복 조치를 취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에 극도의 불만을 품은 채 저주하고 욕하다가 자신을 책망한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마주하면 설날을 맞은 어린아이보다 더 기뻐하니, 이것이 바로 악인의 모습이다. 또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승부욕이 강해서 늘 원칙을 따르지 않고 건성으로 대하여 성과를 내지 못한다. 리더가 그의 문제에 대해 교제해 주고 책망하고 훈계해도 보복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 일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원칙을 따르지 않았음을 인정하지만, 책망과 훈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복하려는 생각과 행동을 보인다. 그 후 그는 편지를 써서 리더를 모함하고, 리더의 일부 행동 방식이나 패괴 표출을 과장하여 윗선에 보고함으로써 그 리더를 교체시키려고 한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뒤에서 헐뜯고 교란하며, 리더가 어떻게 하라고 안배하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 사역도, 하나님 집의 요구 원칙도, 본분 이행의 성과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분풀이만 하면 된다고 여기며, 누가 말해도 듣지 않고 리더 일꾼이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대놓고 대들거나 반항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부정적인 것을 퍼뜨리고, 책임을 내팽개치고 대항하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리더 일꾼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다. 심지어는 관념을 퍼뜨리는 한편, 스스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그들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하여 본분 이행을 게을리하거나 그만두게 하려고 한다. 그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나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 대신 나와 함께 죽어 줄 사람을 찾아야겠어. 날 책망하고 훈계하면서 나보고 합격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난 모두가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겠어. 내가 잘 안 되면 당신들 중 누구도 좋은 꼴을 못 볼 줄 알아! 리더는 나를 책망하고 훈계했고 당신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으니, 당신들 모두 험한 꼴을 당하게 해 주겠어!’라는 것이다. 그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거나 원칙을 어겼을 때, 누가 리더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면 그는 이렇게 추궁한다. “누가 보고했죠? 누가 리더한테 저에 대해 고자질했냐고요. 누가 리더와 긴밀하게 연락하는 겁니까? 제 일을 윗선 리더에게 보고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면,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끝장을 볼 거예요!” 그는 이런 독한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독한 일도 저지를 수 있다. 이 부류는 보복하는 나쁜 수법과 악독한 방법을 무척 많이 알고 있는데, 단지 남의 약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고의로 보복 대상의 노트북 충전기를 훔쳐 가서 노트북을 충전하지 못하게 해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고, 또 어떤 이는 고의로 남의 음식에 소금을 한 줌 넣어서 먹지 못하게 한다. 이런 졸렬한 보복 수법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교회의 악인들도 이런 일을 저지른다. 그들의 보복 수법은 결코 이 정도에 그치지 않으며, 그중에는 우리가 본 적도 없는 돼먹지 못한 짓들도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몇 가지 간단한 예만 들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처리할 때 고의로 상대를 귀찮게 하거나 방해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데, 이는 모두 흔한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장소와 환경에서 보복하기 좋아하는 자의 흉악한 성품은 시시각각 드러난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보복하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교회에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존재하는 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선민들은 교란받게 된다.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하루라도 존재하는 한, 교회는 평안할 수 없고, 좋은 사람은 공격받고 배척받으며, 특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적대시되고 보복당한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을 괴롭히고 보복하겠느냐? 그들은 먼저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을 견지하는 사람에게 손을 쓴다. 이 악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속으로 잘 알고 있다. 첫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들을 분별할 수 있다. 그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기만 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 간파당한다. 둘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있으면 악을 행하는 데 제약을 받아서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교회 사역의 수호자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한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와 악인의 눈엣가시가 되고, 그렇기에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하려 드는 것이다.

악인은 누군가에게 보복하려 할 때 흉악한 성품을 드러내며, 막무가내이고 이성이 없다. 한동안 그와 지내면서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여 말을 꺼낼 때도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며, 그를 특별히 존중해 준다. 언제나 그를 달래고 그에게 양보해 줘야 하고, 그에게 어떤 문제점이나 흠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못한 채 완곡하게 상의하듯, 달래듯 말해야 한다. 또 말을 마친 후에는 한바탕 칭찬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런 흠과 결점이 있긴 해도 저희보다 기술 습득 속도가 빠르고, 업무 능력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데다가 사역 효율도 저희보다 좋잖아요. 제가 보기에 당신의 흠은 다 장점 같아요.” 이렇게 추켜세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겠느냐?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그는 기뻐하며 마음이 평온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감히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보고하지도 못한다.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치고,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굴어서 교회 사역을 지체시키는 것을 분명히 보고도, 심지어는 그의 방향이나 원칙이 치우친 것을 보고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윗선에 보고하지 못한다. 그의 흉악한 성품과 보복하기 좋아하는 인성 때문에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여 화가 나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와 대화할 때는 유독 예의를 차리고 완곡하게 해야 하며, 특히 호의적이고 온화하며 정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는 사람들이 그와 대화할 때 그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며 양보하면 마음이 편해지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그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의견을 내면 반감을 품는다. 그는 그것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에게 불만과 적대감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 보복하고 괴롭히려 하며, 어떻게든 상대를 무너뜨리고 망신을 주려고 한다. 누구든 그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 이런 부류는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네가 그를 파악하지 못해 정말 그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는 마음속으로 네게 앙심을 품고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네게 어떻게 보복할지 궁리할 것이다. 그가 너를 마음에 담아 두었다면 조만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가 네게 보복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예전처럼 말하는 것 같아도, 그가 보복을 궁리할 때는 네가 그에게 했던 모든 언행이 트집거리가 된다. 그는 자기 속이 후련해지고 완전히 만족스러울 때까지 너를 원수처럼 대하면서 하나하나 보복할 것이다. 악인과 지내면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 부류의 갖가지 행위나 처신 원칙과 방식을 볼 때, 그들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 누구에게나 호의를 베풀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원칙을 따지지 않는 부류만이 흉악한 자들과 함께 있어도 안전하다. 반면 양심과 정의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많이 혹은 적게, 크든 작든 어느 정도 위협을 받게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신체적 상해를 입거나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고, 가벼운 경우에는 말로 공격을 받거나 비방과 모함을 당할 수 있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의 흉악한 성품은 대체로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나타난다. 전반적인 모습을 보면, 그들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교회에서도 교란을 일으킨다. 이런 자들과 지내다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의 보복 대상이 되고, 피해자가 된다. 이처럼 보복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흉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그들이 대세를 따라 본분을 이행하고,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성으로 볼 때 그들은 언제든 남에게 보복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심어 줄 수 있다. 이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교란을 일으킨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에게 원한을 사지 않고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고 말할 때마다 늘 그의 안색을 살펴야 하고,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며, 그가 말하는 의도와 목적, 방향을 살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부분 사람이 그에게 교란된 것은 물론이요, 통제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질로 볼 때,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 부류는 악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제 분명해졌으니, 악인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 부류의 상황을 알아보려 해도 대부분이 실상을 말하지 못하고, 무엇을 물어도 “그럭저럭”이란 말로 얼버무리며, 아무도 그의 문제를 보고할 엄두를 못 내고, 그에 대해 논하거나 평가할 엄두도 못 내니, 이는 매우 골치 아픈 일 아니겠느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악인은 언제 어디서든 보복할 수 있는데, 누가 감히 건드리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항상 자기가 합법적인 세계와 불법적인 세계에 모두 인맥이 있다고 말하면서 누구든 자기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온 가족을 망하게 하겠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래서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하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우리는 각자 자기 앞가림이나 하는 수밖에요.” 보아라, 교회에 이런 상황이 나타난다면 그가 이미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에게 보복하는 그의 흉악한 성품을 모두가 보았기에 아무도 감히 그를 질책하거나 책망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진실한 평가도 내리지 못하며, 말할 때도 돌려서 하고, 그에게 미움을 살까 봐 무척 두려워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구체적이고 진실한 모습을 뒤에서 몰래 얘기하는 것조차 몹시 두려워한다. 무엇이 두렵겠느냐? 그런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가 보복당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말하고 나면 자기 입을 치며 이렇게 생각한다. ‘큰일났다. 오늘 말실수를 했군. 이제 고생 좀 하겠어. 나는 왜 이렇게 입이 쌀까?’ 그 후로 매일 불안에 떨며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의 근처에 가면 항상 살피고 고민한다. ‘내가 한 말을 그가 알고 있을까? 내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갔을까? 그는 예전과 같은 태도로 나를 대할까?’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두려워져서 아예 그를 피해 다니기로 한다. ‘건드리지는 못해도 피할 수는 있잖아. 당신이 알든 모르든, 당신을 피해 다니는 건 상관없잖아?’ 겁이 나서 예배에도 참석할 엄두를 못 내고, 이 흉악한 자가 있는 곳에는 본분을 이행하러 가지도 못한다. 잔뜩 겁에 질린 것이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악인은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제명해야 합니다.) 아주 간단하다. ‘제명’이라는 두 글자면 끝이다. 그를 제명해서 많은 이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통쾌해한다면 올바로 처리한 것이다. 예전에는 예배 때 악인이 참석했기 때문에 많은 이가 교제에 제약을 받았고, 한 마디라도 잘못해서 악인에게 미움을 살까 봐 전전긍긍했다. 말할 때도 그를 경계하고 피해야 했으며, 예배 때 누가 눈짓하면 얼른 화제를 바꾸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 악인을 제명하니, 교회는 안정을 되찾고, 교회 생활도, 사람들 간의 관계도 정상화되었다. 형제자매들끼리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며, 각자의 체험 간증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됐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게 되었고, 누구를 두려워하거나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다. 이런 결과를 보면 이 부류 악인을 제명한 것이 옳은 조치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더없이 옳다. 제명해야 한다. 그를 제명하지 않으면 모두가 편할 날이 없고,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조차 겁내게 된다. 심지어 겁이 많은 사람들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늘 귀신이 목을 조르는 꿈을 꾸고, 예배 때도 항상 조심조심하며, 말도 못 하고, 자유나 해방감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악인을 제명하자 사람들은 완전히 변했다. 예배 때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교제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으며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이는 좋은 일 아니냐? (좋은 일입니다.) 보복하기 좋아하고 성품이 흉악한 이 부류는 분별하기 쉽다. 보통 반년 이상 함께 지내면 누가 이런 부류인지 모두가 느낄 수 있고, 명확히 알아볼 수 있다. 일정 기간 어울리다 보면 깨닫게 된다. 교회의 리더 일꾼은 이 부류 악인을 처리할 때 수동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 수동적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이런 부류를 처리할 때, 그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나쁜 짓을 저질러 공분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수동적이다. 그렇다면 악인을 처리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겠느냐? 소수의 사람들이 해를 입고 그에게 반감과 경계심을 품고 있으며, 그를 악인이라고 100% 규정할 수 있을 때 신속히 처리하거나 제명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그에게 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 악인 때문에 겁을 먹거나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악인이 교회에서 오랫동안 교란하면 최종적으로는 교회와 하나님 선민들을 통제하게 되며, 그 지경이 되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 리더는 일부가 피해를 봤을 때, 혹은 일부 사람들이 이 부류에 대해 특히 반감을 품고 있거나 이미 그를 꿰뚫어 보고 간파하여 그가 보복하기 좋아하는 악인임을 확신할 때, 즉시 제명 처리해야 한다. 악인이 온갖 악행을 저질러 공분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하기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무 수동적이다. 그런 교회 리더는 너무 무능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 리더는 이런 사역을 할 때 이 부류의 내적 상태와 모습, 표출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 부류의 성품을 신속히 간파하고 꿰뚫어 보아 그를 제명해야 할 악인으로 규정하고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당장은 규정할 수 없다면 중점적으로 관찰해라. 그의 언행을 관찰하고, 그의 생각과 일 처리의 동향을 파악하여 그가 보복하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즉시 조치를 취해 제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보복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떤 교회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아요. 악인이 뭐 대수라고요. 저희는 사탄도 두려워하지 않고 큰 붉은 용의 체포와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악인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악인은 작은 마귀에 불과한데, 두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그를 교회에 남겨 두어 많은 형제자매가 해를 입으면, 그 후에는 분별력이 생길 테고, 분별력이 생긴 뒤로는 더 이상 그 악인들에게 결박되거나 속박되지 않을 테니 얼마나 좋습니까!” 대다수가 이런 분량에 이를 수 있겠느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를 수 없다. 그들은 믿음이 너무 작고,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제한적이며, 분량이 너무 작아서 악인을 보면 피해 다니며 차마 악인의 눈 밖에 나는 짓은 하지 못한다. 대다수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아끼며 자신의 각종 육적인 이익을 지키려 하기에 악인이 벌인 갖가지 일에서 분별력을 기르거나 공과를 배우는 데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니 네 그 생각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며 성과를 낼 수도 없다. 어떤 교회에 악인이 한 명 나타났는데 대부분이 그가 악인임을 알아채고 단정 지었을 때, 정의감을 가지고 일어나 악인과 관계를 끊고 싸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 비율이 얼마나 되겠느냐? 10%는 되겠느냐? 10%도 안 된다면 5%는 되겠느냐? (그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러면 20명 중에 한 명이 나서서 악인과 싸울 수 있고, 하나님 말씀으로 그를 폭로하고 그와 맞설 수 있고, 변론을 벌여 그를 교회에서 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선민들 중 영웅이고 교회의 공신이다. 어떤 리더 일꾼은 악인을 처리할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사람이 리더 일꾼을 할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겠느냐? 교회에서 제명해야 할 악인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를 제명하는 건 좀 곤란합니다. 원래 저와 꽤 잘 알던 사람이라 제 집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저희 집 사람들 중 누가 하나님을 믿는지도 안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를 출교하면 분명히 저에게 보복할 겁니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리더 일꾼을 할 자격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제명해야 할 악인을 발견하자 그는 가장 먼저 자기 이익을 떠올렸고, 악인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예배 장소와 형제자매들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악인인데, 제명된 후에 그가 교회와 형제자매를 팔아넘기지는 않을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하나님 집의 이익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자신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는 악인이 자기 가족들을 팔아넘기거나 자기 집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리더 일꾼에게 증거가 있긴 한 것이냐? (없습니다.) 어떤 리더 일꾼은 악인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교회를 통제하려 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말도 못 한 채 타협하고 회피하며, 악인을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 악인을 보면 무시무시한 악귀라도 본 것처럼 겁을 먹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일반 형제자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정의감이 있어서 악인을 발견하면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선뜻 나서서 악인을 폭로하며, 악인의 보복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너무 낮다. 방금 너희는 5%라고 했는데, 이것도 보수적인 수치가 아니라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품이 흉악하고 보복하기 좋아하는 자를 대할 때 대부분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급급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나서서 악인과 싸워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이익을 지킬 방법은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하겠느냐? (이런 사람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한 측면에서 보자면 인성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대부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은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라고 하면서도 막상 현실이 닥치면 하나님은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고, 먼저 자기 자신을 보전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 뜻은 이런 것이다. ‘누구도 나를 지켜 줄 수 없어. 하나님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데? 보이지도 않잖아! 게다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지 어떨지도 모르는걸. 만약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시면 어떡해?’ 사람의 믿음은 너무도 보잘것없다. 입만 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라고 외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자기 몸만 보전하려 하고, 나서서 사탄과 싸우며 굳게 서지 못하니, 이만한 믿음조차 없는 것이다. 사람의 믿음이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이런 일에서 그 작은 분량이 여지없이 드러나는구나. 몇몇 사람이 보복하기 좋아하는 그런 악인을 폭로하고자 하나 힘이 약하고 의지할 데가 없다고 느끼며 상대에게 제압될까 봐 두렵다면, 몇몇 리더 일꾼이나 분별력 있는 형제자매들과 더 연합해야 한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그다음 그 악인들의 행위를 폭로하고 해부하여 많은 사람이 그들의 본색을 분별하고 간파하게 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다 같이 악인들을 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금 너희는 악인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선민 중 20분의 1 정도가 정의감을 가지고 바른말을 할 수 있으며, 용감히 나서서 그 악인들을 제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20분의 1은 좀 적다. 만약 한 교회에 인원이 열 명밖에 안 된다면 악인을 어떻게 정리하겠느냐?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열 명은 악인의 통제를 받고 악인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10분의 1이나 5분의 1 정도가 일어나 용감히 악인과 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네가 늘 스스로를 지키려고만 하면 사탄 앞에서 증거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얻을 기회도 잃게 된다. 한 교회에 악인이 한 명만 있어도 최소 일부가 피해를 본다. 악인이 두 명이면 대부분이 피해를 볼 것이며, 만약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그 밑에 몇몇 공범과 앞잡이가 있다면 교회의 하나님 선민 전체가 피해를 볼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악인과 싸우면 한 사람 몫의 힘을 내겠지만, 열 사람이 일어나 싸우면 열 사람 몫의 힘을 낼 수 있다. 말해 보아라, 악인이 한 사람을 두려워하겠느냐, 열 사람을 두려워하겠느냐? (열 사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스무 명, 서른 명, 쉰 명이 일어나 악인과 싸운다면 결국 누가 이기겠느냐? (형제자매들이 이길 것입니다.) 결국 형제자매들이 이길 것이다. 그러면 악인을 제명하기가 더 쉽지 않겠느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이 간단한 이치를 모두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악인을 분별하고 제명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한 리더 일꾼의 책임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하나님 선민들의 공동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리더 일꾼의 노력과 하나님 선민들의 협력으로 악인을 제명하면 모두가 좋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만약 악인을 제명하지 않고 교회에 남겨 두어 회개하기를 기다려서 결국 반년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민들을 지독하게 교란한다면, 이것이 바로 악인을 긍휼히 여긴 결과다. 악인이 교회에서 제멋대로 활개치고 교회를 통제하도록 방임하는 것은 자신을 악인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고, 형제자매들을 악인의 손에 맡겨 그가 마음대로 하나님의 선민들을 통제하고 해치게 하는 것과도 같다.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이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귀하다. 악인을 하루빨리 제명하면 그만큼 빨리 평온을 되찾고 바른 교회 생활을 누리며 더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반면 악인을 제명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미친개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교란하고 파괴하며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진리를 얻을 시간을 빼앗길 것이며, 이는 너의 시간과 본분 이행이 모두 악인에게 통제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이치상으로는 모두가 나쁜 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막상 악인이 교회를 교란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악인에게 이용당하거나 해를 입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게 된다. 만약 교회의 하나님 선민들이 모두 이렇게 악인을 두려워한다면 그 교회는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쉽게 통제될 것이고, 하나님의 선민들도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될 것이다. 그러고도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장담할 수 없다. 어떤 교회에 진리를 깨닫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섬기는 사람이 두세 명도 안 된다면 이는 희망이 없는 교회이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것은 악행의 한 가지 모습이자, 흉악한 성품에서 생겨난 한 가지 행위의 표현이다. 이 부류가 이런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마땅히 악인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 도량이 좁거나 식견이 없어서, 또는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늘 지나치게 따지고 들기를 좋아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사람이나 해를 준 사람을 만나면 증오하거나, 혹은 수법을 써서 보복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는 악인이고 교회가 제명하는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돌이키며 행동도 어느 정도 삼가고 절제한다면, 이런 사람을 악인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겠느냐? (그가 돌이킨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는 좋은 현상이다. 왜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겠느냐? 이 측면의 진리를 들은 뒤, 남에게 보복하는 것은 악인의 모습임을 깨달아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를 반성하고 자신의 패괴된 본질을 인정한 다음 하나님에게 회개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자신의 행위를 절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가 아무리 명확하게 진리를 교제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고집을 피우며 누가 말해도 듣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 하면 제명당할 겁니다.”라고 경고해도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행동 방식을 고수하는데, 아무도 그를 바꿔 놓지 못한다. 네가 그를 폭로해도 그는 인정하지 않고, 보복하기 좋아하는 자는 악인이니 제명되어야 한다고 말해도 그는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지 않으며 절대 돌이키는 법이 없다.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성품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든, 이 부류의 악행을 어떻게 폭로하든, 이 부류를 어떻게 처리하든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절대 고개 숙여 잘못을 인정하거나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다. 돌이키지 못하는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가 바른말 한 마디라도, 한 측면의 진리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렇게 한길로 끝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돌이키고 잘못을 인정하며 많든 적든 자신이 여태까지 고수하던 것들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는 악인이기에, 성품이 흉악한 악인이기에 그런 성품에서 보복하기 좋아하는 행위가 나온 후에도 하나님 말씀의 폭로나 책망 훈계, 이런 규정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자신에 대한 규정이나 폭로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며, 자신의 패괴를 인정할 생각도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패괴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보복하기 좋아하는 이런 행위와 행동 방식, 사람됨의 원칙도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이런 자가 바로 철저하고도 전형적인 악인이다. 이런 악인은 마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부정할 여지 없이 사탄의 본질을 지닌 마귀이니, 너는 그를 바꿔 놓을 수 없다. 왜 그를 바꿔 놓을 수 없겠느냐? 근원은 그가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는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어떤 옳은 말이나 긍정적인 말, 긍정적인 사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고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인정할지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사람됨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려는 생각도 없다. 가끔 말로는 자신이 사탄의 철학대로 행동했다고 인정하지만, 절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극도로 반감을 가지며, 상대를 증오하고 판단하기까지 한다. 누가 그를 폭로하고 분별하면 그는 상대를 증오하고 상대에게 보복하는데, 그 사람이 누구라도, 친부모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구제 불능이다. 그가 제명된다고 아쉽겠느냐? (아쉽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반드시 제명하거나 출교해야 한다. 보복하기 좋아하는 부류는 기본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특징, 성품, 일 처리 방식과 방법, 사상, 그리고 그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이러하다. 그들이 교회와 형제자매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앞에서 얘기했으니 더 이상 교제하지 않겠다. 네 번째 부류인 보복하기 좋아하는 자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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