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4) 제 3 부

2. 인성에 근거한다

이제 두 번째 항목인 인성에 대해 교제하겠다. 한 사람이 드러내는 인성을 통해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교회에 남겨 두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만약 그의 인성 측면의 모습과 표출, 본질을 통해 볼 때 그가 진정한 형제자매가 아니고 교회에 남겨 두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또 그가 교회에 남아 있으면 형제자매들이 교란을 받게 된다면, 그의 모습을 볼 때 교회에서 제명하거나 출교시킬 대상에 속한다면 교회에서는 신속하게 상응하는 처리 방안을 마련하여 그들을 교회에서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리더 일꾼의 직책 중 제14조에서 교제한 내용이 바로 각 부류의 악인을 제명하거나 출교시키는 것이었다. 인성 면에서 볼 때 이들의 인성은 분명 나쁘고 악하다. 쉽게 말해 그들은 괜찮은 작자가 아니다. 그러니 그가 드러내는 인성에 따라 그를 교회에서 제명하거나 출교시킴으로써 그가 계속 교회에서 교란하고 하나님 선민들의 교회 생활이나 본분 이행의 정상적인 질서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의 인성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에서 그를 제명하거나 출교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 두 번째 항목인 인성 또한 많은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조항에 대해 교제해 보자.

1)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한다

첫째는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부류를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의 주된 모습은 무엇이겠느냐? 말에 원칙이 없으며, 늘 속셈과 목적을 갖고 시비와 다툼을 일으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 부류는 분명 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근원은 성품이 좋지 않고 인성이 없는 것으로, 그래서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살펴보면, 늘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한다. 이는 흑백을 전도하고, 심지어 과장하고 억측하며 함부로 판단하며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에 속한다. 그는 좋은 방향으로 말하지 않으며, 하는 말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움도, 이점이나 도움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와 접촉하고 왕래하고 소통하며 그의 말을 들으면 사람은 마음이 늘 어둠과 혼탁에 빠지고,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잃게 돼 하나님을 믿으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영 생활을 하고 예배할 때도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고, 늘 그가 말한 시시비비와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에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누구를 봐도 못마땅하고 문제투성이로 느껴진다. 시비를 일으키는 그의 말을 들은 후에는 내면의 정상적인 사유와 일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까지 교란되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늘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유혹되어 시험에 빠지지만 깨닫지 못하고 ‘그들은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해. 때로는 남에게 베풀거나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이렇다 할 나쁜 짓도 저지르지 않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과 접촉하면 대부분 시비와 시험에 빠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 갈등과 부적절한 대인 관계에 빠지는 결과를 맞이한다. 시비를 일으키는 자들은 특히 사람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교란하고, 전적으로 사람이 내적으로 순수하게 이해하는 것들을 망가뜨린다. 사이가 좋아 서로 붙들어 주고 돕는 사람은 그의 눈에는 뒤에서 공격하고 판단할 대상이 되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얼마간 충성을 다하고 헌신하는 사람도 그에게는 공격할 대상이 된다. 그는 아무리 좋고 긍정적인 것도 비하하며, 무슨 일이든 항상 불만이 많고 한바탕 평론해야 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있다. 사실 이 관점이라는 것도 뭔가 진정한 관점이 아니라 그저 헛소리를 하고 시비를 혼동하며 흑백을 전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을 모함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하고 억측하여 함부로 지껄이고, 없는 일을 날조하거나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은 그의 말이 조리 있다고 생각해 거짓말일 리 없다고 여기고 미혹된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 부류는 어떤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든 항상 불만이 많다. 그들에게 정의감이 있어서 그렇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분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거나 충성을 다하거나 열심히 헌신하거나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들에게 불복하고 그들을 업신여긴다. 그럼 그들이 함부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 근원은 어디에 있겠느냐? 왜 늘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인성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바로 인성이 나쁘기 때문이다. 인성이 좋다면 시비를 일으킬 리가 없다. 말을 할 때는 양심과 이성에 따라 해야지, 궤변과 사설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시비를 일으키는 근원은 인성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오든 그 의미가 변질된다. 가볍게 말하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의 말에는 정죄와 저주의 악의가 들어 있다. 또 그 안에는 이간질과 질투, 불복, 증오, 심지어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성분까지 들어 있다. 요컨대, 시비를 일으키는 그들의 특징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이 외에도 이 부류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남이 가진 것을 보면 질투하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보면 비웃는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성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이 부류는 남이 가진 것을 보면 질투하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보면 비웃는다. 누가 자기보다 나으면 질투하고 뒤에서 험담하며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누가 자기보다 못하면 입을 비쭉거리며 비웃고 비꼬고 조롱하고 깎아내린다. 그는 어떤 일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성과 도덕으로 대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축복해 주는 것도, 누군가가 잘되고 뜻대로 되며 바른길로 가는 것을 축하해 주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을 올바로 평가하고 나쁜 악의를 품지 말아야 하는데, 그는 이것조차 해내지 못한다. 시비를 일으키는 이면의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매우 분명하다. 그의 말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생각, 내면 깊은 곳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방법을 통해 이 부류의 인성이 악독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부류는 그저 입으로 시비를 일으키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일과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고,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사람과 일을 대하는 진정한 관점과 태도가 있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가 어느 정도로 진리를 이해하는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인성 특징, 그러니까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 한 가지만 볼 때, 그들이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좋은 영향,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시비를 일으키는 이 부류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아주 부유한 집 출신의 자매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육적인 누림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러 갔다. 말해 보아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보겠느냐?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부러워하지 않겠느냐? 최소한 그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육적인 누림을 포기한 것은 칭찬하고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 평론하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의 삶을 내려놓고 온종일 밖에서 복음이나 전하다니, 그러다가 언젠가 남편한테 차이고 말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건 복을 받고 누리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매는 웬일이랍니까. 복을 누릴 줄도 모르고 가정과 일을 버리며 오직 본분만 이행하다니, 그건 어리석지 않습니까? 저희 집이 그렇게 부자라면 저는 그냥 집에서 제대로 누리고 살 텐데 말이죠.” 말해 보아라, 이 말 중에 인성에 부합하는 게 한마디라도 있느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건 사실 왜곡 아닌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물질적 누림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본래 긍정적인 사물이잖아. 그런데 이 사람은 오히려 그걸 정죄하고 있네.’ 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미혹되고 교란되어 하나님을 믿는 열정, 본분을 이행하면서 버리고 헌신하는 열정이 순식간에 30%는 줄어들 것이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 말이 길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매우 커서 한동안 소극적 상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이 몇 마디 말을 듣고 중독되는 사람도 있다. 남을 중독시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인성은 어떻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그 말들 중 사람이 듣고 믿음이 커질 만한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그것은 다 무슨 말이냐?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전부 불신파의 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해야 할 말은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한 말 중에 인성이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인성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 도덕성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도덕성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생활 형편이 좋고 집에 돈이 많은 사람을 보고 그는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단순히 부러워하고 축복하는 것으로 끝났느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질투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며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그 자매가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질 자격이 있나? 나한테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이 없지? 하나님은 왜 저 사람만 축복해 주시고 나는 축복해 주지 않으시는 거야?’ 이렇듯 그 자매가 돈이 많고 부유하기에 질투하고 증오한다. 진심으로 부러워하거나 축복해 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또 그 자매가 부유하다고 증오하는데, 그 사람 손에서 빼앗거나 사취할 생각까지 할 정도이다. 이 밖에, 그 자매는 부유한 가정에서 살면서도 좋은 생활 여건을 버리고 물질적 누림을 내려놓은 채 나와서 본분을 이행하니,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입장에서 축하할 만한 일, 탄복할 만하고 부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 자매를 축복해 주고 가까이하고 본받아야 마땅한데,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하더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말했느냐? 한마디 한마디 독설이고, 증오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현재 상황에 불만과 불평, 원망이 생겨 그 부유한 자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많이 칭찬하고 탄복하고 배우고 본받아야 하는데,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취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는커녕 그 자매를 어리석다고 비웃으면서 그 자매가 남편에게 버림받기를 바랐다. 남의 우스갯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 자매가 정말 버림받는다면 그는 기뻐하지 않겠느냐? 원하는 바를 이룬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그의 속마음이고 그의 속셈과 목적이기도 하다. 그는 남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누가 잘되고 자신보다 나으면 질투하고 원망한다. 하나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무리 클지라도 자신보다 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인성이 전혀 없어서 남을 축복해 주는 말, 남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왜 그렇겠느냐? 인성이 너무 악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고 싶지 않다거나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질투와 원망,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축복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이런 패괴된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인성이 악독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다. 그는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내기에, 사람들이 쉽게 분별하고 그의 패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한 자매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동서 간에 늘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가 동서 둘 다 하나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진리를 조금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어떻게 타인과 함께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패괴를 드러냈을 때도 서로 털어놓고 스스로를 인식하며 사이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부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저 집은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동서 간에도 친자매 같네요. 그게 다 하나님을 믿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방인들은 한 가족이라도 잘 지내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친형제 사이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훨씬 낫죠. 동서 사이가 친자매 관계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한, 공통의 추구 목표가 있고, 같은 길을 걸으며, 말이 통하니 영적으로 하나가 되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이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방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공통의 목표와 추구하는 바가 있기에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된다. 이 말을 하는 목적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으로 이룬 성과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은혜임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갖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최소한 하나님을 믿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호감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 보아라. “흥! 저 동서 두 사람, 겉으로는 사이 좋아 보이죠? 예배 때도 화기애애하고요. 그래도 가끔은 승강이할 때가 있지 않겠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들이 원래 얼마나 지독하게 싸웠는데요!” 상대가 “저들이 예전에 다투고 싸운 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요! 다 하나님을 믿고 얼마간 진리를 깨달아서 그런 거죠. 이제 함께 있으면서 서로 솔직하게 자신의 패괴를 교제하며 인식하고, 자주 함께 본분을 이행해서 그런 거고요. 마찰이 여전히 있어도 기본적으로는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무슨 일이든 상의하면서 하고요. 이건 어떤 이방인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가족 간에도 할 수 없는 거라고요.”라고 말해도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은 이렇게 대꾸한다. “가족끼리 싸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동서 사이는 물론 친자매 사이에도 싸우잖아요? 저 둘이 겉으로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저 둘이 재산 다툼을 안 할까요? 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그저 바람이고 정신적인 의탁 아니겠어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많은 재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소리죠!” 이 말 중에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고 상대를 축복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게 좋다고 절실히 느낀 것 같은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형제자매들의 이런 변화가 다 기만이고, 하나님을 믿어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를 얻었다는 것도 다 거짓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의 말을 통해 그가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증오하고 저주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사역과 말씀으로 사람에게서 이룬 성과를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자매들이 동서 간에 사이가 좋은 것은 하나님을 믿어 서로 포용하고 인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 사람은 속으로 언짢아하고 불만스러워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의 사이를 이간질하려 든다. 그리하여 그들이 만나서 다투고 싸우게 되면 그는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몰골이냐? 무슨 마음가짐이냐? 그의 마음가짐은 좀 비정상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만약 그의 몰골을 두고 말한다면, 이는 추악한 몰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류는 계속 교회 생활에 참여한다.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중에도 이런 자가 적지 않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속칭 ‘입이 거칠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자들은 입이 거친 정도가 아니다. 그들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어둡고 악독한지 모른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어떤 좋은 체험 간증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모두 인위적인 것, 사람이 상상한 것이며, 대단하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여 상당한 수확을 얻게 하고, 사람이 일어나 체험을 말하고 하나님을 증거해도 그는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생각한다. ‘저게 뭐라고?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들었으니 당연히 인식한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체험 간증문 하나 쓴 걸로 자신이 이긴 자라고 생각하며 흡족해하는 거야? 나중에 당신한테 일이 닥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지 지켜보겠어. 하나님이 당신 자식을 거두어 가셔도 울지 않는지, 계속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해 보아라,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천하가 태평할까 봐, 사람들이 바른길을 걸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 아니겠느냐? 요컨대, 누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든 그는 몇 마디 말을 보태 떠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말하든 한 가지 특징이 있으니, 바로 누구든 잘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늘 남을 쓸모없는 사람처럼 말한다. 상대를 쓰레기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며, 온종일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 반면, 누구 집이 유복하면 시기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며, 온종일 마음속으로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재산과 그 사람이 누리는 은혜를 모두 거두어 자기에게 주기를 바란다. 이런 자들이 뒤에서 내뱉는 그 원망의 말은 듣기가 거북하다. 이런 자가 어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물론, 이 부류는 위장에도 능하다. 내면이 아무리 악독하고 어두워도 그는 예배 때 형제자매들 앞에서는 자신의 인식과 깨달음을 교제하고, 또 한바탕 거창한 도리를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장하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뒤에서는 사람답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와 접촉하지 않고, 그의 진짜 모습과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것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예배 때 그가 하는 옳은 말만 들으면, 대다수가 그의 인성이 얼마나 악랄하고 흉악한지, 그의 인격이 얼마나 저열한지 알아채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그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그와 접하는 기간이 길어져 그가 뒤에서 하는 짓들을 알게 되면, 조금씩 그를 분별하고 역겹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분별할 때는 그 사람이 예배 때 하는 그럴듯한 말만 봐서는 안 된다. 그가 뒤에서 하는 말과 행동도 보아야 그의 본질과 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 부류는 사람답게 말하지 않는 것 외에도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누구든, 무슨 일이든 다 논평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교류가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그는 한마디 보태고 싶어 하고, 남의 집의 사소한 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논평 결과, 아무리 긍정적인 일도 그의 말에 의해 부정적인 일이 되고, 아무리 정당한 일도 그의 더러운 입을 거치면 부정적인 사물로 왜곡된다. 이렇게 되면 그는 기뻐하며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말해 보아라, 이런 자는 어떤 인간이겠느냐? 예를 들어, 올해 수입이 좋아 경제 사정이 괜찮아진 형제자매들이 십일조 이상으로 헌금을 했다. 그러면 그는 질투하며 이렇게 말한다. “올해는 왜 그렇게 봉헌을 많이 하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당신의 헌금의 많고 적음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이죠? 하나님 집에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듣기 거북한 말이 또 나오지 않았느냐? 누가 어떤 정당한 일, 진리에 부합하는 일을 해도 그는 못마땅해하며 마음속으로 극도의 반감을 품는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네 약점을 잡으며, 구실을 찾아 너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정죄한다. 너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소극적으로 만들어서 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속으로 너를 조롱할 것이다. ‘그 꼴에 무슨 체험 간증을 말하겠다는 거야!’ 이는 마귀가 본모습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사탄의 종, 적그리스도가 하는 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나고 구역질이 난다. 너희는 이런 부류를 본 적이 있느냐? 이 부류는 용모나 생김새가 어떻든, 시비를 일으키려 할 때면 표정이 아주 괴상해진다. 입을 비쭉거리고 눈을 흘기며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심지어 어떤 이는 이목구비까지 비정상적이 된다. 이는 일종의 신호로, 사람 같지 않은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신호를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차단할 것이냐? (차단하겠습니다.) 너는 그를 멀리해야 한다. 그에게 이렇게 말해라. “말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시비를 너무 많이 일으키는군요. 사람 같지 않은 말을 할 거라면 제게서 멀리 떨어지십시오. 저는 당신한테 교란받고 싶지 않고, 그런 비정상적인 인간관계에 빠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비를 잘 일으키는지, 어떤 사람이 이런 몰골을 지녔는지 잘 관찰하고, 그런 사람이라면 당장 멀리하여라. 이 부류는 어떤 인성 특징을 보이느냐? 악독한 말을 한다. 속된 말로 ‘입이 거친 것’이다. 그들의 악독한 말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이 표출하는 다양한 언행을 보고, 또 그들의 다양한 언행을 통해 그들의 내면세계를 보면서 그들의 인성 본질이 어떤지, 악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런 자들이 표출하는 여러 신호와 언행을 통해 그들이 악인임을 매우 분명히 판단할 수 있다. 이 부류는 제명과 출교의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니, 절대 인정사정 봐주어선 안 되며 반드시 내쫓아야 한다. 그들이 교회에서 교란하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방금 우리는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부류의 특징에 대해 교제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상황과 인성의 모습을 통해 이 부류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인성은 최악의 지경에 이르러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인성, 도덕조차 결핍되어 있다. 다만 그 나쁜 인성의 특징은 유달리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들이 하는 말을 통해 그 인성의 특징과 인성 본질을 알 수 있다. 이 부류는 분명 인성이 좋지 않다. 어느 정도로 좋지 않겠느냐? 악할 정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이 부류는 결국 악인에 속한다. 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은 가끔 불평을 하거나 약간 질투를 하거나 때때로 인성의 연약함을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드러내는 모습은 일반적인 패괴 성품이 아니며, 이들이 악인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십분 증명한다. 이것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 즉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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