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3) 제 3 부
국가의 흥망이라는 일을 도대체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사람은 어떻게 올바르게 대해야 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이 일을 바라보아야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의 잠식과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아야 한다. 먼저 국가의 흥망이라는 일이 모든 사람, 모든 세력, 모든 집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를 보자. 국가의 흥망은 누구에 의해 결정되느냐?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 이 근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한 국가의 흥망은 하나님의 주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어떤 사람과도 관계가 없다. 어떤 세력, 어떤 사상, 어떤 사람도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수는 없다. 국가의 운명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국가의 흥성과 쇠망이 포함된다. 국가가 발달했는지 낙후했는지, 지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국가가 포괄하는 면적과 영토는 얼마나 되는지, 지상과 지하, 영공을 포함한 영토 내의 자원은 얼마나 되는지, 통치자는 누구인지, 통치 집단은 어떤 사람들인지, 통치자의 정치 강령과 통치 방식은 어떤 것인지,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어떠한지 등은 전부 한 국가의 흥망과 관계가 있다. 이것들은 어떤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것도, 더욱이 어떤 한 세력이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어떤 세력도 그것을 결정할 수 없다. 사탄도 마찬가지다. 그럼 누가 결정할 수 있겠느냐?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다. 사람은 이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탄도 그렇다. 하지만 사탄은 승복하지 않은 채 늘 사람을 다스리고 강점하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선동하고 미혹하는 사상과 말로 덕행이니 사회 풍조니 하는 것들을 고취시켜 사람이 그 사상들을 받아들이게 하고, 통치자를 위해 봉사하면서 통치자의 통치를 유지하도록 사람들을 이용한다. 하지만 사실 사탄이 어떻게 하든, 한 국가의 흥망은 사탄과도, 전통문화 사상이 퍼져 나가는 힘이나 깊이, 범위와도 관계가 없다. 한 국가가 어떤 시기에 생존하는 상태나 존재 형식, 빈곤한지 부유한지, 낙후되었는지 발달했는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은 통치자의 통치력이나 사상가들이 퍼뜨리는 이 사상들의 내용, 힘과 아무 관계가 없다. 국가의 흥망은 오직 하나님의 주재나 하나님이 전 인류를 경영하는 시기와 관련이 있을 뿐이다. 어떤 시기에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해야 하며, 어떤 일을 주재하고 배치해야 한다면, 또 전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떤 사회 형식이 생겨나도록 이끌고 싶다면 그 시기에 특별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큰일, 특수한 일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전쟁의 발생, 한 국가의 영토가 다른 국가에 합병당하는 일, 혹은 특수한 신기술의 등장, 오대양 육대주 지각의 이동 등은 전부 하나님 손의 주재와 안배 아래 있다. 어쩌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의 등장이 전 인류의 진보를 이끌 수도 있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이 발생한 후 인류의 대이동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어떤 작은 일이 시초가 되어 전 인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면서 경제, 군사, 비즈니스, 의료 등에 다양한 정도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에 있는 모든 국가의 운명과 흥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어떤 국가가 강하든 약하든, 그 운명과 흥망은 모두 하나님의 인류 경영이나 하나님의 주재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렇게 행사하겠느냐? 거기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어쨌든 모든 국가와 민족의 존망과 성쇠는 어떤 종족이나 세력, 통치 계층, 통치 모델이나 방식, 심지어 어떤 개별적인 인간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직 창조주의 주재, 그리고 창조주가 인류를 경영하는 시기와 인류를 경영하고 인도하여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와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떻게 행사하든, 그것은 다 한 국가와 민족, 종족, 집단, 그리고 개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어떤 개별적인 인간, 종족, 민족, 국가의 운명은 사실 서로 관계가 있으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몇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그 관계는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 관점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주재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이 몇 가지의 운명이 모두 유일무이한 참하나님, 창조주의 주재 아래 있기에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생긴 것이다. 이는 국가 흥망이라는 일의 근원이자 본질이다.
그렇다면 많은 개체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이 어떤 관점으로 국가의 흥망을 대해야겠느냐? 먼저 그 국가가 다수의 개체를 얼마나 만족시켜 주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장해 주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다수의 개체가 잘 살아가고 자유와 발언권을 가지며, 국가와 정부에서 반포하는 모든 정책이 더없이 이성적이어서 공평하고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국민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생존권이 박탈당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연히 그 국가를 의지처로 여길 것이고, 그 국가에서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그 국가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 사람은 진심으로 그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하고, 그 국가가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삶과 그의 모든 것에 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 국가가 국민들의 삶도, 당연한 인권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언론의 자유도 없어서 마음속 말을 좀 하려고 해도 제약하고 억압하며, 심지어는 말하거나 비평하는 것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고 박해받을 때 국가에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어떤 자유도 없고 최소한의 인권과 생존권까지 박탈당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탄압과 박해를 마주해야 하며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개죽음을 당해야 한다면, 그 국가는 마귀의 국가, 사탄의 국가지 진정한 국가가 아니다. 그런 국가의 흥망에도 민초에게 책임이 있겠느냐? 사람은 마음속으로 그 국가를 혐오하고 증오하니 설령 이론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할지라도 그 책임을 다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강적이 침략해 온다면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자기 나라가 하루빨리 무너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흥망에 민초도 책임이 있는지의 핵심은 국가와 정부가 국민과 대중을 어떻게 대하는지, 과연 민심을 얻었는지에 있다. 이는 무척 중요한 부분으로, 주로 이것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한편 근원적으로 봤을 때, 각 국가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 데는 배후에 다 이유가 있으며, 그 일의 발생을 촉진한 요소가 있다. 이는 어떤 한 명의 민초나 평범한 인물이 조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흥망과 관계된 일은 어떤 한 개체나 집단이 결정할 수 있는 것도, 간섭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사실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통치 계층이 영토를 확장하고 이웃 국가의 좋은 땅이나 시설, 자원을 점령하고자 한다면 결정을 내린 후에 군사력과 자본, 각종 물자를 비축하고 때를 의논해서 영토 확장에 착수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이러한 일에 대해 알 권리가 있겠느냐? 너에게는 알 권리조차 없다. 너는 그저 최근 몇 년간 국가의 세수가 늘었으며, 각종 명목으로 요구하는 세금이 많아지고 국채가 증가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너에게는 오직 납세의 의무만 있다. 국가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통치자가 어떤 일을 할지 등이 너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겠느냐? 국가가 전쟁을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어떤 국가나 어떤 영토를 어떻게 침략하겠다는 그런 일들은 오직 통치 계층만 알 뿐, 전장에 나갈 병사들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알 권리조차 없다. 통치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싸워야 하는데 왜 싸워야 하는지, 얼마 동안 싸워야 하는지, 이길 수 있을지,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어떤 이는 자기 아들딸이 전쟁터에 나갔는데도 부모로서 그들은 모르고 있다. 심지어 아들딸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유골이 도착하면 그제야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해 보아라. 국가의 흥망과 국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등이 너라는 민초와 관련이 있겠느냐? 국가가 너라는 민초에게 알려 주겠느냐? 너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겠느냐? 너는 알 권리조차 없으니 참여는 말할 것도 없다. 국가가 네게 어떤 의미이든, 그 국가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떻게 통치될지 등이 너와 관계있겠느냐? 너와는 관계가 없다. 어째서겠느냐? 너는 민초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오직 통치자와 관련이 있고, 통치자나 통치 계층, 기득권층이 결정하는 것일 뿐, 너라는 민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주제를 알아야 한다. 비이성적인 일을 하지 마라. 통치자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만약 국가의 통치자가 독재자이고, 마귀가 정권을 잡고 있다면, 정무를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에 빠져 사치스럽게 살면서 국민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국가가 빚더미에 앉고 혼란해진다면, 부패하고 무능한 통치자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된다면, 통치자는 그제야 국민들을 떠올리고 이렇게 호소할 것이다.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는 법’입니다. 국가가 사라지면 여러분도 제대로 삶을 꾸려 나가지 못하겠죠. 지금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고, 침입자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어서 전장으로 나가십시오. 국가가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너는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잖아. 국가가 모처럼 나를 필요로 하니 내게는 그 책임이 있는 거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우리나라 주인이 바뀌어서는 안 되지. 그 통치자가 없으면 우리는 끝장이야!’라고 말이다. 이 생각이 어리석지 않으냐? 이 독재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며, 온종일 먹고 마시고 즐기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했다. 또 국민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위세를 부리면서 국민들을 괴롭히고 해쳤다. 이런 통치자를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고 망설임 없이 그들을 지키며, 그들을 위해 전장에 나가 총알받이로 목숨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처사이며, 맹목적인 충성이다! 어째서 너무도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군인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겠느냐?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느냐? 누구를 위해 총알받이가 되겠느냐? 게다가 닭 잡을 힘조차 없는 너 같은 서민이 전장에 나간다는 것은 필부의 혈기로, 목숨을 버리는 짓이다. 전쟁이 닥친다면 무의미한 희생이나 반항을 할 게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의미한 희생은 어떻게 정의되느냐? 필부의 혈기라고 한다. 국가는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정신을 기꺼이 받드는 사람이 지킬 것이며, 그들이 통치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그들의 이익이나 생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며, 국가의 일은 그들이 주관한다. 너는 일개 필부로, 국가를 지킬 힘이 없으니 그런 일은 너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럼 과연 어떤 국가가 지킬 가치가 있는 국가겠느냐? 만약 자유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국가, 통치자가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해 일하며 국민들의 정상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국가라면 지키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 국민들은 그런 국가를 지키는 것을 곧 자신의 집을 지키는 것이요, 미룰 수 없는 책임이라고 여기며 기꺼이 국가를 위해 일하고 책임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마귀가 권력을 잡고 사탄이 권력을 잡고 있고, 통치자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어리석으며, 마왕의 운명이 다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강력한 국가를 일으켜 공격하게 했다면, 이는 하늘이 사람에게 주는 신호이다. 즉, 지금의 통치자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며, 그는 그 권력을 가질 자격도, 그 영토를 차지할 자격도, 그 나라 사람들에게 부양받을 자격도 없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는 그 나라 국민들에게 어떤 기쁨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그의 통치는 국민들에게 어떤 행복한 삶이나 복지도 안겨 주지 못했으며, 오직 국민들을 괴롭히고 해하고 짓밟고 유린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통치자는 내려와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한다. 만약 민주 제도로 바뀌고 덕행 있는 사람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는 민심이 원하고 모두가 기대하는 바이자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성하고 하늘에 역행하는 자는 망한다. 평범한 민중으로서 늘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에 오도되어 통치 계급을 숭상하고 따르기만 한다면, 너는 반드시 빨리 죽을 것이고, 통치 계급의 희생양이나 부장품이 되기 쉬울 것이다. 반면, 만약 네가 진리를 추구하며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면 올바른 국가가 나타나는 것, 덕망 있고 현명한 지도자가 정권을 쥐는 것, 좋은 사회 제도가 세워지는 것을 볼 희망이 있을 것이며, 운 좋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슬기로운 자의 선택 아니겠느냐? 침입자는 누구나 적이고 마귀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생각은 틀렸다. 언제나 통치자를 지고무상한 인물로 보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든,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해하든 그를 그 땅의 영원불변한 주인으로 본다면,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지난날, 봉건 통치 왕조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비교적 민주적인 사회 제도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며, 물질적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또 사람들의 시야나 식견, 각종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예전보다 선진화되었다. 만약 모두가 낙후된 사상을 지닌 채로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전통을 부흥시키고 제왕 통치, 봉건제도를 부활시키려고 했다면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현재의 생활 환경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 분명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만약 국가의 법률이 반드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군대에 가서 복무하라고 규정한다면, 너는 법률이 정한 대로 병역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 복무 기간에 전장에 나가야 한다면 그 책임 역시 다해야 할 것이다. 이는 법률이 규정한 네 의무이기 때문이다. 너는 법을 어길 수 없으니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런 법률 규정이 없다면 자유롭게 선택해도 된다. 네가 속한 국가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속한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크리스천들을 체포하고 박해한다면, 그런 나라는 마귀가 정권을 잡은 사탄 국가로, 늘 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의 저주를 마주한 것이다. 이런 국가가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 내우외환이니 천인공노의 때가 온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환경을 일으켜 그 국가를 파멸시키려는 때 아니겠느냐? 이는 하나님의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에 귀 기울여 그의 선민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 줄 때가 온 것이니 이는 좋은 일이고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이 마귀 사탄을 파멸하는 때는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 감격을 금치 못하고 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며 알리는 시기이다. 이럴 때, 통치 계급을 위해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통치 계급의 속박에서 지혜롭게 벗어나 한시바삐 도망쳐야 한다. 목숨을 건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면 탈영병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기적인 것 아닐까요?”라고 말하는데, 탈영병이 되지 않아도 된다. 네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침입자들이 그 땅을 폭파시키고 점령하기를 기다려라. 그리고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보아라. 사실, 국가에 어떤 큰일이 발생하든, 서민들에게는 주동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지켜보고 그 일의 발생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를 감내할 뿐이다. 이것이 사실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이는 사실이다. 어떻게 말하든, 도망치는 것이 현명하다. 자기 목숨을 지키고,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것, 이것이 네 책임이다. 만약 모든 민초가 국가의 흥망을 위해 책임을 다하고 죽어 버린다면, 그 국가에는 땅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그럼 그 국가의 본질이 존재하겠느냐? 국가는 그저 빈말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독재자가 보기에 자신들의 야심과 욕망, 침략, 모든 결단이나 조치와 비교할 때, 사람들의 생명은 가장 값어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꺼이 독재자의 총알받이가 되어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정신을 떠받드는 사람에게 통치자를 위해 기여하고 희생하라고 해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사탄의 국가를 위해 어떤 희생도 할 의무가 없다. 이 말인즉슨, 사탄의 효성스러운 자손과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의 통치와 야심, 욕망을 위해 희생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들이 총알받이가 되면 딱 맞는다. 그들이 그렇게 큰 야심과 야망을 지닌 채 통치자를 따르길 좋아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마왕에게 충성을 바치려는 것을 어떡하겠느냐?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사탄의 희생양, 부장품으로 전락되니 이는 인과응보다.
어떤 국가든 다른 국가를 침략할 때, 또는 다른 국가와의 사이에 불공정 거래가 생겨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국민, 그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다. 만약 그중 한 측이 타협하여 야심과 욕망, 수중의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들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몇몇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전쟁이 통치자가 자신의 통치를 지키고, 수중의 권력을 놓거나 잃지 않으려 하며, 끝까지 자기 신념과 수중의 권력, 이익을 지키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 민초들이다. 국민들은 전쟁 기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이 모든 것에 저항할 능력이 가장 떨어진다. 통치자들이 국민들을 생각해 주겠느냐? 어떤 통치자도 “만약 제가 제 신념과 이론을 지킨다면 전쟁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럼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 되겠지요. 설사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이 땅은 무기와 탄약에 의해 파괴될 것이며, 사람들이 생존하는 터전도 망가질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이 땅에서 생존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테죠.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제가 자리에서 내려가겠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며, 협상에 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전쟁을 피하지는 않는다. 이런 통치자가 있더냐? (없습니다.) 사실, 마음으로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다. 국민들은 정치 세력의 각축전이나 힘겨루기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저 통치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전쟁터, 단두대로 보내질 뿐이다. 전쟁터에 보내진 사람은 희생을 하든 살아남든 결국 다 통치자의 통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최종 수혜자는 통치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국민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국민들은 전쟁 속에서 유린당하고, 삶의 터전이 망가지며, 생존하던 생활 환경 역시 파괴된다. 어떤 이는 가족을 잃고, 더 많은 사람은 돌아갈 곳을 잃은 채 떠돌아다니며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못한다. 하지만 통치자는 삶의 터전과 국민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며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다. 이런 주장이 성립하겠느냐? 이는 기만하는 소리 아니겠느냐? 최종적으로 이 모든 나쁜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 서민들이다. 그리고 배후의 최대 수혜자는 통치자다. 그는 계속 국민들과 이 땅을 통치하며, 손에 권력을 쥐고 통치자의 자리에 서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반면,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이 무척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 보니 어떠하냐? 정말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은 전혀 옳지 않다.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이 사상의 출발점을 보든, 아니면 인류의 발전사에서 각 단계 통치자들의 음모, 욕망, 야심을 보든, 그것도 아니면 국가의 흥망과 관련된 어떤 사실을 통해 보든, 이 사건들의 발생은 한 명의 민초나 개체, 혹은 집단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피해를 보는 것은 상황을 알지 못하는 국민, 서민들이고, 최대 수혜자는 국가의 통치 계층, 최고 통치자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은 국민들을 전선에 보내 총알받이로 삼고, 국가가 무사 평안할 때, 국민들은 그들을 먹여 주고 입혀 주는 부모가 된다. 그들은 국민들에게서 고혈을 짜내 자신을 먹여 살리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을 주입시켜 억지로 받아들이게 한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니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그 말인즉슨 ‘내가 너희를 통치하는 것은 너희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내가 통치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말 잘 듣는 양민이 되어 국가의 흥망을 위해 언제든 스스로를 바치고 희생할 준비를 해라.’라는 것이다. 누가 국가냐? 누가 국가의 대명사냐? 통치자가 바로 국가의 대명사다. 그가 사람에게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사상을 주입시킴으로써 먼저 사람이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망설임이나 어떤 이의도 없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한다. 또한, 국가의 흥망, 통치자의 거취가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니 반드시 조심, 또 조심해서 지켜야 한다고 알려 준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사실이 이러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통치자가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며, 국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자는 좋은 통치자가 아니다. 만약 통치자가 국민들을 위해 일하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민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위세를 부리며,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기생충이 되었다면, 그런 통치자는 마귀이자 사탄으로,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국민들의 옹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 그들이 없다면 국가가 존재하지 않겠느냐? 국민들의 삶이 존재하지 않겠느냐? 똑같이 존재한다. 어쩌면 삶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면, 어떤 국가에서 살아가든 국가의 대사와 정치, 운명이나 존망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올바른 관점이 생겨나면 국가의 흥망과 관련된 일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국가의 흥망이라는 일에서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았느냐? (네.)
우리는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덕행에 관련된 말에 대해 적잖이 교제하였다. 국가의 개념, 국가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국가의 흥망이라는 일에 있어 사람이 국가와 민족에 다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하나님은 이 일에서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지 등을 전부 명확히 교제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겠다.
2022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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