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제 3 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따르면서 사람은 무엇을 얻었느냐? 대부분 사람은 큰 수확을 얻었다고 말할 것이다. 자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큰 수확을 얻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자질이 평범한 사람도 많은 수확을 얻었다. 우선, 사람이 이 사악하고 패괴된 세상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예전에 이방인과 어울리면 어떤 느낌이었느냐? 매일매일 지치고 짜증 나고 화나고 답답하며 억압받는 느낌이었어도 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악인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이길 수 없어 꾹 참아야 했다. 다시 말해, 이방인의 세상에서, 이 사악한 세상에서 살며 접하는 것이라고는 온통 마귀들이고 서로 해를 입히는 것이니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진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은 후 이 두드러진 느낌은 어떻게 바뀌었느냐? 너의 양심, 도덕과 지각은 어떻게 바뀌었느냐? 이 사악한 시대에 대한 진실한 분별과 인식으로 바뀌었다. 많은 박해를 겪으면서 마왕의 추악한 모습과 이 시대의 어둠과 사악함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수확 아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수확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전에는 그저 ‘사람이 왜 갈수록 더 못되지는 걸까? 알 수가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말하겠느냐? 지금 네가 악인을, 사악하고 세속에 속한 마귀를 어느 정도 알고 분별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그들과 접하고 어울리라고 한다면, 네 마음이 내키겠느냐? (내키지 않습니다.) 분명 원하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그들과 왕래하고 어울리라고 한다면, 너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서워요. 저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어요. 그들은 모두 사탄에 속하고 너무 악랄해요!” 무엇 때문에 네가 이렇게 많이 변화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를 발휘한 것 아니겠느냐? 계속해서 악인, 사악한 시대, 사악한 흐름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어 네가 이 시대와 인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 아니겠느냐? 인식하게 되었으니, 네가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네 마음속의 도덕과 양심이 그들에게 반감을 갖고 분별하기 시작해 점차적으로 그들의 본성 본질을 간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마음속에서부터 그들이 모두 마귀임을 간파하여, 그들과 함께 지낼 때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 살아갈 수 없게 되고, 즉시 그들에게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막 교회에 들어와 형제자매를 접하고는 ‘이 사람들은 왜 다르지? 다들 가족처럼 순수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네. 어쩜 이렇게 전혀 남을 경계하지 않을까? 바보인 거야, 아님 뭐야? 역시 내가 똑똑해. 누구에게나 방어적으로 대하고, 아무에게도 마음속 말을 하지 않잖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가 진리를 좀 깨닫게 되면 ‘더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늘 이리저리 감추면서 거짓말하고 기만하면, 바로 마귀 사탄 아닌가? 분명 내쳐질 거야. 진리를 받아들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순수하게 마음을 터놓고 형제자매에게 마음속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어쩌다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스스로도 거짓말을 버리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늘 이렇게 실행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좋다고 느끼게 된다. 지치지도 않고, 억압받지도 않으며, 고통도 전혀 없는 데다가, 마음이 해방되고 자유로워 평안하고 즐거운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다. 그 후로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형제자매와 순수하게 터놓고 교제할 수 있게 된다. ‘오직 하나님 집만이 진리의 환경을 갖추고 있고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청정 지역이야. 오직 하나님 집에서만 사람이 점점 사람답게 살 수 있어!’ 네가 진정으로 이런 느낌이 든다면, 너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된다. 이는 네가 하나님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나님에게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배를 계속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제명되고 출교되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봉사하고 복음을 전하며 선행을 예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떠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까 두려워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진실을 말해 주겠다. 마음 놓고 떠나라. 하나님은 징벌하지 않고 자유를 준다. 하나님 집의 문은 영원히 활짝 열려 있으니, 누구든지 가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아무런 제한도 없다. 하지만 떠난 후에 다시 돌아오려면 그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이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회개했는지, 좋은 사람인지를 철저히 조사한 후에야 교회로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하나님 집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다. 교회에 어떤 사람은 떠나면 안 된다는 행정 규정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전혀 없다. 하나님 집에서는 누구든 교회를 떠나도록 내버려 둔다. 악인이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 집에서는 환송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떠나려는 사람에게 호의로 “떠나면 안 돼요. 당신이 은사도 좀 있고 어느 정도 자질도 있으니, 교회에 있으면 그래도 앞길이 밝고 앞으로 큰 복을 받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일부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권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네가 사람을 붙잡아 둘 수는 있지만, 그의 마음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굳게 서지 못한다. 억지로 붙잡아 둔다 하더라도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 그 사람이 복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만약 충성스러운 봉사자라서 살아 남게 되면 그 복도 작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것에 흥미가 없는데, 그가 봉사하고 싶겠느냐?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권면하는 이런 방법은 좋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악인에게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권면하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회개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권면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악인에게는 권면해도 소용이 없다. 네가 권면할수록 그는 더욱 반감을 갖게 되고 화까지 내게 될 것이니, 이는 분명 어리석은 행동이다. 악인에게 권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이 몇 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많은 진리를 감성적이고 얕게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아직 완전히 진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으니, 확실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마음속 깊숙이 느낄 수 있다. 비록 체험 인식과 간증을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너는 자신이 나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후진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네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나는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해. 절대 간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하나님이 혐오하는 교만하고 사악한 자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돼. 나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며 늘 자신을 경계하고 단속하면, 몇 년 후에는 결국 자신이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각 개인의 가장 진실한 느낌, 경험, 체험으로 보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사람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은 이래로 지금까지 없어지고 적어진 것은 무엇이냐? 어디 한번 따져 보자. 방종, 자기 마음대로 하기, 생각 없이 살기가 적어졌다. 나이트클럽이나 바에 가서 디스코를 추고 노래하는 기회가 없어졌다. 또한, 사악한 흐름에 휩쓸려 먹고 마시는 기회가 없어졌다. 이런 날들은 사라졌다. 더 많이 얻은 것은 무엇이냐?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우 즐겁고 근심 걱정이 없어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네가 더 많이 얻은 것은 즐거움, 행복, 평안이다. 이런 것은 매우 실속 있는 것 아니겠느냐? (실속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 2년 동안 본분 이행으로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마음은 참 편안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편안함과 평안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며, 어떤 지위와 명리, 학위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 진리를 얻으면 이는 바로 생명을 얻는 것이며,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실질적인 것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 실질적인 것을 얻을 때, 하나님은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얻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으로부터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거래를 하느냐? (거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과 행사 중에 하나님이 “내가 이 말씀 한 편을 이야기하면, 너희가 돈을 줘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이 너희에게 돈 한 푼이라도 요구한 적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몇몇 의심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사심 없이 값 없이 이렇게 많은 생명의 진리를 사람에게 대가 없이 베풀어 준다고 믿지 않는다. 이 사실을 그들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일은 거래를 동반하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고 행하는 것 모두를 사람에게 대가 없이 베풀어 준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설령 정말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도 분명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지 모르고, 어떤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지는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값 없이 행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사람이 그것을 해내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만족하고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는 결과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면서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만큼밖에 원하지 않는데, 사람이 이를 하나님에게 줄 수 없겠느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를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느냐?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누가 이해하기라도 했느냐?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귀중한 것을 얻었음을 깨닫지 못한다. 왜 사람이 가장 귀중한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생명, 소유와 어떠함을 사람이 살아 낼 수 있도록, 그의 소유와 어떠함, 그가 베푼 진리를 삶의 방향과 목표가 되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도록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사람의 생명이 되도록 아무 대가 없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얻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약속?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얻는 것은 빈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베푸는 한편,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이 자신의 생명이 되게 하여 살아 내라는 요구를 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요구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살아 낸 네 모습을 보면 흡족해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한 요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지극히 값진 것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을 베풀지만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가장 큰 수혜자는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큰 수확을 얻으니 사람이 가장 큰 수혜자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의 생명이 되게 하는 동시에 진리를 깨닫고, 사람됨의 원칙과 근본, 인생길의 방향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더 이상 사탄에게 미혹되거나 결박당하지 않게 되고, 악인에게 미혹되고 이용당할 일도, 사악한 흐름에 오염되고 유혹될 일도 없어진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자유롭고 해방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더는 어떤 사악한 세력과 흑암 세력의 박해도 받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이러한 생명을 살아 내는 한편, 어떤 고통도, 어려움도 없이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항하는 일이 없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안팎으로 모두 정당하고 올바르게 살며 진리와 인성을 갖춘 명실상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큰 이익을 얻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 사람이 상상하는 약속 또는 사람이 바라는 복과 이것을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좋겠느냐? 어느 것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겠느냐? 어느 것이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며, 하나님께 멸망당하거나 징벌받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할 수 있겠느냐? 복받으려는 너의 욕망이 중요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너에게 준 생명을 진정으로 살아 내는 것이 중요하겠느냐? 어느 것이 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고, 하나님이 혐오하고 버리고 징벌하지 않도록 하겠느냐? 너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네가 이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네가 이런 생명을 얻으면 너의 생명이 무한해진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다. 이 말의 이면에 담긴 의미는 바로 만약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은 다 죽게 되며, 사람의 생명은 모두 유한하다는 것이다. 유한한 생명이 영생이겠느냐? 영생이 아니다.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원한 생명을 대체할 수 있겠느냐?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사람의 죽음을 막아 줄 수 있겠느냐? 이는 확실히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와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때, 즉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될 때, 하나님이 바뀌겠느냐? (바뀌지 않으십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 공사 덕분에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의 소망을 이루고, 6,000년의 경륜인 인류 구원 사역을 완수한 듯하다. 하나님의 대업이 이루어지면, 마치 하나님이 이익을 얻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대상은 누구겠느냐? 가장 큰 복을 받는 대상은 누구겠느냐? (사람입니다.) 바로 인류인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지위가 바뀌겠느냐?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위는 바뀌지 않고,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으며, 어떤 일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반면, 사람의 운명은 크게 바뀐다. 약간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천지 차이가 난다! 하나는 영원한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삶인데,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영원한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느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기대는 무엇이냐? 하나님은 왜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느냐?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값 없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면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어떠한 거래도 없다. 추가적인 요구도 없이 단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사람답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결실을 맺고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속이 옹졸해 사람이 먹고 마시고 진입하게 하고, 또 버리고 헌신하게 하며, 자신을 저버리고 내려놓고 계속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큰 이익을 얻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이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값 없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시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이 일들을 통해 “하나님은 사심이 없다.”라는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심이 없다. 즉,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어떠한 사심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을 행한 적이 있느냐?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 번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체험을 해 보면 알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또 다양한 환경, 사람, 일, 사물을 배치해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적절한 시기를 제공한다.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과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충분히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적합한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준다. 또한 책망, 징계, 시련, 연단, 일깨움, 권면, 그리고 교회 생활, 형제자매 사이 상호 교제하거나 붙들어 주고 도와주는 것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걷게 한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어떠한 별도의 요구를 하느냐?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느냐?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동안 하나님은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와 여지를 주고, 여러 가지 유리하고 편리한 조건과 환경을 제공해 각 개인을 돕는다. 또한 각 개인을 정결케 하여 마지막에 온전케 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행하는 이 모든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하는 말씀과 사역이든, 치르는 대가든 모두 값 없이 이루어진다.

사실, 하나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을 했든,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깨달을 수 있든, 얼마나 진리를 실행할 수 있든,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생명 공급을 받았든, 인류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에게 대화라는 요구치는 좀 높은 것 같으니, 일단 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만족게 하는 것은 제쳐 놓고, 너는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느냐?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고, 우리는 너무 보잘것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도 우리가 여러 해 동안 묵상하기 충분한데,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 정도에 도달하기도 힘드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더욱 도달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한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우냐? 난이도가 있느냐? 어떤 점이 어려운 것이냐?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에 있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에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에 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리가 없으며,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화란 무엇이냐? 마음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너희는 대화를 할 줄 아느냐?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가까운 친구와는 마음을 나눌 줄 알지만, 하나님과는 영원히 마음을 나눌 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인 것이냐?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지 모른다. 네가 이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너의 마음이 여전히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우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전혀 없으며, 자기 삶의 주인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재난이나 재앙이 닥치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판단하고 부인하는 말을 한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한 것이다. 이 말은 모두 사실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사람이 이런 내적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왜 좋지 않으냐?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실 것입니다.) 먼저 가슴 아파한다. 네가 누군가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그가 너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를 바라는데, 그가 너에게 벽을 치고 너를 오해하여 항상 너를 피하고 거리를 둔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그가 너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더라도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면,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외롭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먼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낀다. 가족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네 마음이 외로운 것이다. 네가 외로움을 느낄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네 마음이 아프겠느냐? (그렇습니다.) 아플 것이다. 이 아픔은 쉽게 해소되는 것이냐? 무엇으로 이 아픔을 완화시킬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겠느냐? 이런 소망을 포기하거나 이런 사실이 안 보이는 척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하겠느냐?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두 가지 일을 할 것이다. 사람은 또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패괴된 인류의 선택은 하나님의 방식과 분명히 다르다. 사람의 선택은 ‘네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를 상대하지 않을 거야. 이 사람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선택하고, 갑이 안 되면 을을 선택할 거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루려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심 없는 본질이 드러난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생명, 마음, 그리고 환경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계속 값 없이 공급해 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계속해서 해 왔던 두 번째 일을 할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계속 기다리시고, 또 계속해서 사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보아하니 너희가 어느 정도 체득했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그렇다,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도피나 포기, 또는 근심을 더는 것과 같은 두 번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값 없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또 값 없이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어떠하냐? 사람의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히 성의를 다하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의를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값 없이 이 모든 것을 한다. 별도의 요구도 하지 않는데, 적어도 사람에게 어떠한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주면서 자신의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자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들을 조금씩 사람에게 값 없이 베풀어 준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얻으면, 기쁨과 평안, 생존의 기반과 사람됨의 근본을 얻게 되니 사람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을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느냐? 생각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냐?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보답해 드렸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으셨을까? 우리가 행복과 즐거움을 얻을 때, 하나님은 즐거우실까?”라고 자문해 본 사람이 있느냐? 어쩌면 사람은 묻지 않을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서로 함께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여 행복과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을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느냐?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없다. 하나님에게서 이 모든 것을 얻을 때, 사람은 마음속으로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이 모든 것을 얻었으니 정말 잘됐어! 나는 정말 복이 많아! 나보다 복 많은 사람은 없어.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감사의 말 한 마디만 할 뿐이고, 감사하는 마음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열정적이든, 사람이 이미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짐이 얼마나 크든, 자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얼마나 많든,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사람 옆에서 여전히 외롭다! 왜 외롭다는 것이겠느냐?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 사람에게 나타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역사하든,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되어야 이런 상황이 바뀌어 하나님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외로움도 느끼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사람의 분량이 어느 정도여야 이런 상황과 내적 상태를 바꿀 수 있겠느냐? 이는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사람의 추구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결국은 정말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전에 말했던 대로, 사람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마음을 나누어 마음에 장벽이 없어지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혐오하는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람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진정한 관계이다. 이해하였느냐?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쉬우냐, 쉽지 않으냐?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말씀과 진리를 열심히 묵상하고 체험한다면, 너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어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전제 조건은 무엇이냐? (이해입니다.) 우선 알고 이해해야만, 만족게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너희에게 이 일이 어려우냐? (노력하고 마음을 다해 묵상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은 사실 어렵지 않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다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행한 사역도 다 보았다. 마음속으로도 인정했고, 아무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람이 마음만 있다면, 쉽게 해낼 수 있다. 만약 네가 마음이 없다면 곤란해진다. 너에게 아무리 많이 말해도 소용이 없고 다 헛되게 된다.

방금 하나님의 전체 경륜 중 가장 큰 수혜자는 사람이라고 교제하였다. 이것이 사실 아니겠느냐? 너희는 이 사실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이해하고 ‘그렇다면 나는 정말 실질적인 것을 얻었네. 이건 정말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야. 정말 영생을 얻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영생은 어떻게 얻느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여 얻습니다.)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누가 가장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필요로 합니다.)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지,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었으니, 사람이 가장 행복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지금 너에게 전 세계와 영생 이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너는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저는 영생을 원하지 않아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추구하기도 매우 힘들잖아요. 저는 돈, 호화 주택, 비싼 차를 원해요. 이 얼마나 실속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이 있느냐?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별 어리석은 사람이 다 있다. 아무리 말해 줘도 그는 이해하지 못하니, 그냥 내버려 두어라. 그가 복이 없는 것이고, 그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다. 결국에는 네가 선택한 대로 얻게 되니, 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만약 네가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려 한다면, 너에게는 죽음의 길밖에 없다. 만약 네가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신 이 길을 따라 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계속 살아갈 수 있으며, 이는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고 현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저는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라고 말한다. 네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알려 주면, 네가 알게 되지 않겠느냐? 또 몇몇 사람들은 “제가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직접 본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은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 말씀이 매일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하나님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며, 하나님이 전능함을, 하나님 말씀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너는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이 너에게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을 본다면, 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안심해라. 하나님이 너에게 한 약속과 축복은 분명히 너의 바람과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2016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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