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4)

1. 하나님은 영계를 어떻게 주재하고 관리하는가

그 어떤 영혼이든 윤회하여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즉 그가 금생에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그의 이번 생은 어떠할지, 이러한 것들은 전생과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각 부류 사람들이 인간 세상에 와서 담당할 역할이 다르고 담당할 임무도 다르다. 어떤 임무일까? 어떤 사람들은 빚을 갚으러 오는데, 전생에 남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아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빚을 받으러 오는 것인데, 전생에 남에게 너무 많은 물건과 돈을 사기당했기 때문에 영계로 간 뒤에, 영계에서 그에게 공정하게 처리해 주어 금생에 와서 빚을 받게 해 준다. 어떤 사람은 은혜에 보답하러 오는데, 전생에 다른 사람의 은혜를 받았다. 이번 생에 아주 좋은 기회를 얻어 다시 윤회한 후, 환생하여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금생에 윤회하는 것은 목숨을 취하기 위해서인데, 누구의 목숨을 취할까? 바로 전생에 그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람이다. 어쨌든 각 사람의 금생은 모두 전생과 아주 큰 관계가 있고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또한 각 사람의 금생은 전생의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전에 장씨가 이씨의 돈을 많이 사취했다면 장씨가 이씨에게 빚진 것이 아니냐? 만약 장씨가 이씨에게 빚을 졌으면 이씨가 당연히 장씨에게서 빚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럼 두 사람이 죽은 후에 그들 둘은 계산할 장부가 있게 된다. 다시 윤회할 때 장씨가 환생하여 사람이 되면 이씨는 그에게서 어떻게 빚을 받을까? 이것은 그중의 한 가지 방식인데, 즉 이씨는 장씨의 아들이 되어 빚을 받으러 오고 장씨는 이씨의 아버지가 된다. 이것이 이번 생, 금생의 일이다. 이씨의 아버지━장씨는 돈을 많이 번다. 그다음 이씨가 장씨의 아들이 되어 와서 장씨의 돈을 탕진한다. 즉, 장씨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든, 아들 이씨가 ‘도와’ 돈을 물 쓰듯 하여 아무리 벌어도 모자란다. 장씨의 아들은 어찌 된 것인지 항상 다른 방식과 수단으로 장씨의 돈을 허비한다. 그리하여 장씨는 답답해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내가 어떻게 저런 망할 놈을 낳았지? 다른 집의 아들은 왜 다 그리 좋을까? 내 아들은 왜 포부도 없고, 기술도 안 배우고, 땡전 한 푼도 안 벌어 오고, 늘 내가 먹여 살려야 하지? 내가 먹여 살리는 건 괜찮은데, 왜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모자랄까? 왜 바른 일을 하지 않을까? 왜 빈둥거리고 방탕한 생활만 하며 무슨 짓이든 다 할까?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그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전생에 저 놈에게 빚진 게 아닌가? 에휴, 아마 전생에 빚졌을지도 모르니 갚자! 말끔히 갚지 않으면 끝이 없어!’ 아마 언젠가 이씨가 정말로 장씨에게서 빚을 다 받고 40살이나 50살이 됐을 때,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다. “내가 전반생에 좋은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번 돈을 내가 다 허비하였구나. 이젠 사람답게 살아야지! 다시 뜻을 세우고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잘 살아야지. 더 이상 아버지 마음을 괴롭게 해서는 안 돼!’ 이씨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왜 갑자기 좋아졌을까? 그것은 원인이 있지 않느냐?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은 빚을 다 받아 냈고, 장씨가 빚을 다 갚은 것이다. 그 일은 전후사연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발생한 것이고, 그 두 사람이 전생에 있을 때 있은 것이다. 그래서 전생의 이야기를 금생까지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무도 그 누구를 탓할 수 없는 것이다. 장씨가 자기 아들을 아무리 교육해도, 아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바른 일을 하지 않았지만 빚을 다 갚은 그날이 되니, 더는 교육할 필요도 없이 그 아들이 자연히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간단한 예인데, 이런 예는 적지 않다. 이 예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알려 주느냐?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악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악한 짓을 하면 보응이 있다! 이방인들을 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행한 악은 모두 적지 않은데, 그들의 악행은 모두 보응을 받았다! 그 보응은 아무렇게나 오는 것일까? 무릇 보응을 받은 사실은 모두 배경이 있고 원인이 있는 것이다. 너는 남의 돈을 사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남의 돈을 사취하고 남의 돈을 얻어 내도 그 결과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선행에는 선과가 있고 악행에는 악과가 있다. 조금도 틀리지 않다! 다시 말하면, 사람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든 믿지 않든, 모두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모두 자신의 행위로 초래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 간단한 예, 즉 장씨가 징벌을 받고 이씨가 빚을 받아 낸 일은 공평하지 않느냐? 그것은 공평한 것이다. 사람이 그런 일을 하여 그런 결과가 있게 된 것은 영계에서 그런 일들을 관리하는 것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영계를 관리하는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 설령 이방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천상의 계율과 법령 아래에서 살아가며,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 아무도 이런 현실을 피하지 못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무릇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존재하는 것이고, 무릇 보이지 않는 것, 사람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늘 그렇게 여긴다. 그들은 오히려 ‘생사윤회’가 없고 ‘징벌받는다’는 이런 설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방자하여 거리낌 없이 악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그런 후, 징벌을 받거나 혹은 동물과 서로 윤회한다. 이방인 중의 각 부류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런 악순환 속에 빠져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들은 영계에서 그 어떤 생령에 대해서도 다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 사실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이 감찰하는 범위하에, 그런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천상의 계율을 벗어나거나 하나님의 법령의 규정과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간단한 예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죄를 짓고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책임져야 할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남의 돈만 사취한 사람이 그런 징벌을 받았는데, 그것은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공의로운 것이다. 이처럼 흔히 볼 수 있는 행위도 영계의 제재를 받고, 하나님의 법령과 천상의 계율이 규정한 대로 제재를 받는다. 그러므로 강간하고 약탈하고, 남을 속여 재물(財物)을 빼앗고, 도둑질하고 강탈하며 살인 방화하는 등등 엄중한 범죄, 악한 짓을 저지르는 행위는 갖가지 정도가 다른 징벌을 더욱더 받게 된다. 그 정도가 다른 징벌은 어떤 것들을 포함할까? 어떤 것은 시간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제정하고, 어떤 것은 각기 다른 징벌 방식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제정하며, 또 어떤 것은 그가 환생 윤회하여 갈 곳으로 그에게 징벌받는 정도를 제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입버릇이 나쁘다. ‘입버릇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할까? 늘 남을 욕하고 악독한 말을 하며, 저주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다. 악독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사람의 마음이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주의 성질을 띤, 악독한 말은 늘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또한 그의 악독한 말로 인해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죽은 후, 상응한 징벌을 받은 다음 다시 환생하면 아마 벙어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세세하게 타산해 가며 늘 부당한 이득만 챙기는데, 자기 이익은 아주 꼼꼼하게 따지고 남을 해치는 짓을 많이 저질러 다시 환생할 때는 아마 바보, 얼뜨기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늘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데, 즉 그의 눈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보았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환생하면 아마 맹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발놀림이 재빨라 늘 치고 박고 싸우며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다시 환생할 때 아마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절름발이라든가, 한쪽 팔이 없다든가, 곱사등이라든가, 목이 비뚤어졌다든가, 까치발을 한다든가, 한쪽 다리는 길고 한쪽 다리는 짧다든가 등등, 그것은 그 사람이 생전에 악을 저지른 정도에 근거해 받는 각기 다른 징벌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팔뜨기는 어떻게 된 일일까? 사팔뜨기가 많지 않느냐? 지금 봐도 적은 편은 아니다. 어떤 사팔뜨기들은 전생에 눈을 너무 많이 쓰면서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하여 금생에 와서 비뚤어지는 것이고, 심한 자들은 맹인이 된 것이다. 사팔뜨기가 보기 좋으냐? 미관에 영향을 주지 않느냐? 그 사람을 보면 얼굴은 매우 예쁘고 말쑥하게 생기고 눈도 크고 쌍꺼풀이지만, 아쉽게도 한쪽 눈은 비뚤어졌다. 그러면 보기에 어떠하냐? 그 사람의 기품에 완전히 영향을 주지 않느냐? 그렇게 영향을 주면 그 사람은 한평생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다른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생각한다. ‘아, 내 눈이 비뚤어서 다른 사람이 내 눈을 보지 못하도록 적게 쳐다봐야지. 똑바로 보지 말고 머리를 숙여 말해야겠어.’ 눈이 비뚤면 물건을 보는 데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그것은 눈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눈을 적게 쓰는 것인데, 전생에 불필요하게 쓴 그 부분을 되찾아 오는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그는 내세에 가서 다시는 감히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보응이다!

어떤 사람은 생전에 대인 관계가 괜찮아 주변 사람, 즉 친척이나 친구, 동료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베풀어 주고 보살펴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여 아주 좋은 기억을 남겨 주었다. 그런 사람은 영계로 돌아가면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는다.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으면 이방인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은 아주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고 천지신명만 믿고 ‘머리를 쳐들면 석자 위에 신령이 있다’는 것만 믿었고, 그 신조만 믿었다. 그 결과 어떠하냐? 나쁜 일을 많이 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은 마음씨가 착하고 선행을 잘 베풀어 나중에 영계로 돌아간 후, 영계에서 그에 대해 아주 좋게 처리하여 그 사람은 아주 빨리 다시 윤회하고 다시 환생하게 된다. 어떤 가정으로 올까? 그 가정은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생활이 평안하고 가족이 화목하며, 평온하고 즐거운 생활을 보내며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여 삶이 괜찮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의 후반생은 자녀와 하인이 창성하고 자녀가 출세하고 인재가 되며, 집의 가운과 운세도 괜찮다. 이런 결과 또한 그 사람의 전생과 아주 큰 관계가 있다. 사람의 일생을 놓고 말하면, 죽은 후 다시 환생하여 어디로 갈지, 남자일지 여자일지, 그의 사명이 무엇일지, 일생 동안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좌절을 당할지, 복을 얼마나 누리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일에 부딪칠지,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피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이 일생이 정해진 후, 일생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는, 네가 어떻게 피하든, 어떤 방식으로 피하든 모두 하나님이 영계에서 너에게 정해 준 그 일생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환생할 때 일생의 운명이 모두 정해졌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각 사람마다 직면해야 하고 앞으로 가야 한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또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런 것을 다 알아들었겠지?

이런 것을 알고 나서 너희는 하나님은 이방인의 생사윤회에 대해 모두 아주 정밀하고 아주 엄격하게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느냐? 우선, 하나님은 영계에서 각 항목의 천상의 계율, 법령, 제도를 제정하였다. 그런 천상의 계율과 법령, 제도를 반포한 후, 영계의 여러 가지 직위에 있는 생령들은 모두 하나님이 정한 규정에 따라 엄격히 집행하고 있고, 아무도 감히 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서 인류의 생사윤회 혹은 동물이나 인류의 상호 윤회는 다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 법칙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타파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런 법칙을 타파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그런 주재로 말미암아, 그런 법칙이 있음으로 하여 사람이 보게 되는 이 물질세계는 질서 정연하고 문란하지 않고 조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주재가 있기에 인류는 비로소 인류가 전혀 보지 못하는 다른 세계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화목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갈라놓을 수 없다. 한 영혼의 육체 생명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은 계속 살아 있는데, 만약 그 영혼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영혼은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이고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것이며, 심지어 인류 세계의 생물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그 ‘해’는 단지 인류에게만 미칠 뿐만 아니라, 아마 식물들을 해칠 수도 있고 동물들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러나 맨 처음으로 해를 입는 것은 인류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고, 그런 영혼들이 관리를 받지 못하고, 정말 인류에게 해를 끼치며 정말 어느 정도 악한 짓을 저질렀다면, 그런 영혼에 대해 영계에서도 정당한 처리가 있다. 만약 심각하면 그 영혼은 곧 멸망되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영혼을 한곳에 두었다가 나중에 재차 윤회하게 한다. 즉, 영계에서 각 부류 영혼에 대해 관리하는 것은 모두 층차 있게 절차와 규정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 관리가 있기 때문에 인류의 이 물질세계는 혼란스럽게 되지 않고, 이 물질세계에 있는 인류에게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理性), 그리고 질서 있는 육체 생활이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이런 정상적인 생활이 있게 된 후,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로소 한 세대 또 한 세대씩 번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방금 이 화제를 들으니 어떠냐? 아주 새롭지 않느냐? 그렇다면 지금 말한 이 화제에 대해 너희는 어떤 소감이 드느냐? 새롭다는 것을 제외하고 또 다른 소감이 있는지 말해 보아라. 사람은 정직(正直)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두려워해야 할 분이라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욱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후에 일이 닥칠 때,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며,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도 정직하고 반듯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하나님의 교통━하나님께서 어떻게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대하시는지의 교통을 듣고 나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시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너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주 원칙이 있게 일하신다는 것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원칙은 무엇이냐? (사람이 행한 것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방금 말한 이방인들의 여러 가지 결말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에 대해 일하는 원칙은 ‘하나님은 상선벌악 한다’라는 그런 원칙이 아니냐? 그럼 하나님이 일하는 데에 원칙이 있지 않느냐? 너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에 순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도 모르며, 하나님은 더더욱 시인하지도 않는다. 더욱 심한 자들은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대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런 태도로 대해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원칙과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그렇게 질서 있게 그들을 관리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적대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부분의 사람, 즉 이방인 중의 대부분 사람들을 모두 동물과 서로 윤회하게 한 적이 있다.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이방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이방인들은 모두 그런 부류이고 모두 짐승이다. 하나님은 짐승도 관리하고 인류도 관리하는데, 그 부류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칙을 갖고 있다. 설령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관리하고, 그 사람들에게 행하는 일일지라도 거기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을 볼 수 있다. 그럼 너희는 방금 말한, 하나님이 이방인을 관리하는 원칙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느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고 하나님의 성품도 보았다. 즉, 하나님은 만물 중의 어느 하나를 대해도 모두 자신의 원칙과 자신의 성품에 따라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실질이다. 하나님은 그 부류 사람들을 짐승으로 여긴다 하여 자신이 정해 놓은 천상의 계율과 법령을 마음대로 깨뜨리지 않는다. 즉, 하나님이 일하는 데는 원칙이 있고, 전혀 함부로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어떤 요소로 인해 방해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든 다 자신의 원칙을 지킨다. 그런 것은, 하나님에게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그것 또한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구비되지 않은 독특한 실질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만물 중의 어떠한 것, 어떠한 사람, 어떠한 생물에 대해서도 다 진지하고 책임지는 태도로 처리하고, 대하고, 경영하고, 관리하고, 주재하며 지금까지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착한 사람에게는 은총을 베풀 것이고 선대할 것이며, 악인에게는 조금도 사정없이 징벌할 것이다. 그러나 각 부류 생령에 대해서는 인류 세계의 각기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제때에 정기적으로 적합하게 안배하여, 각 부류 생령들을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규칙적으로 윤회하게 하고, 규칙적으로 물질세계와 영계 사이에서 오가게 한다. 이것은 인류가 마땅히 깨닫고 알아야 할 것들이다.

한 생령의 죽음, 한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한 생령이 물질세계에서 영계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육체의 새 생명의 탄생도 한 생령이 영계에서 물질세계로 와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자신의 배역을 맡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 사람이 가든지 아니면 한 사람이 오든지, 그런 것은 모두 영계의 일과 갈라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오면 어떤 가정에 올지, 어느 시대에 올지, 어느 시각에 올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영계에서 하나님은 모두 적합한 안배와 규정을 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일생, 그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은 영계에서 그를 위해 안배한 것에 따라 조금도 오차 없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한 육체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어떤 곳에서 끝날지에 관한 것도 영계에서 분명하게 알고 영계에서 다 속속들이 관찰하고 있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주재하고 있고, 영계도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의 정상적인 생사윤회를 지체하지 않고, 한 영혼의 생사윤회를 잘못 안배하지도 않는다. 영계의 각 직위에 있는 심부름꾼들도 모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이 정한 것에 따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세계에서 사람이 보게 되는 한 가지 물질 현상마다 다 질서 정연하여 그 어떤 혼란도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규칙적인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재하는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생존하는 물질세계를 포함하고, 더더욱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인류 배후의 그 영계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좋은 삶이 있고 좋은 생존 환경이 있게 하려면, 사람이 볼 수 있는 물질세계의 이 모든 것으로 인류에게 공급하는 것 외에, 인류에게는 사람이 볼 수 없는, 인류를 위해 각 생령을 관리하는, 질서 있는 그 영계의 공급이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는 이 ‘만물’에 대해 또 한 가지 더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지 않았느냐?

(2)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

방금 우리가 말한 첫 번째는 이방인들의 생사윤회이다. 그럼 이제 두 번째,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에 대해 말해 보자. ‘신앙이 있는 각 부류 사람들의 생사윤회’, 이 화제도 아주 중요하다. 또한 너희가 매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다. 우선,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그 ‘신앙’은 모두 어떤 신앙들을 가리키는지에 대해 말해 보겠다. 말하자면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이 5대 종교를 가리킨다. 이방인을 제외하고 이 5가지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세계 인구에서 아주 큰 비례를 차지하고 있다. 이 5가지의 종교 중에서 전임으로 믿는 사람, 즉 이 몇 개 종교에 전임 신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신도들은 그래도 많은 것이다. 이 각종 종교의 신도들은 죽은 후에, 하나의 다른 곳으로 간다. 이른바 ‘다르다’는 것은 누구와 다른 걸까? 우리가 조금 전에 말한 이방인, 아무런 신앙도 없는 사람과 다른 것이다. 그들이 죽은 후에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데, 즉 이방인이 죽은 후에 가야 할 곳과는 다르다. 영계에서도 그들의 생전의 모든 행위에 근거해 그들에게 판단을 내린 다음 서로 다른 처리를 한다. 하지만 왜 그 부분의 사람들을 서로 다른 곳에 두어 처리할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불교를 가지고 예를 들어 너희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겠다. 불교 신자라면 우선 그 사람은 불문(佛門)에 귀의한 것이고, 자신의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한 불교 신자가 삭발하고 중이나 비구니가 된 후에, 그 사람은 속세를 벗어나 인간 세상의 번잡함을 멀리하였음을 의미한다. 매일 독경하고 염불하며 채식하면서 청빈한 삶을 살고, 가난과 쓸쓸함이 동반하는 나날을 보내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보낸다. 그러다 그 사람의 육체적 생명이 끝날 때, 그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총결을 짓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갈지, 누굴 만나러 갈지, 어떤 결말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 자신도 마음속으로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는 맹목적으로 하나의 신앙만 가지고 일생을 보낼 뿐이다. 그런 후에, 또 맹목적인 소망과 꿈을 안고 인간 세상을 떠난다. 그 사람이 인간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육체적 생명도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그의 육체적 생명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이 영계에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사람이 환생하여 다시 태어나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생전에 행한 행위에 근거하고, 생전에 수행한 것에 근거한다. 만약 그의 평생에 아무런 나쁜 행적도 없다면, 그는 곧바로 인간 세상에 보내져 두 번째로 윤회하여 또다시 삭발하여 중이나 비구니가 된다. 이렇게 중이나 비구니가 되어 3~7대가 지난 후, 즉 그의 그 육체의 생명은 처음의 그런 법칙대로 수행한 후, 육체의 생명이 끝나 영계로 돌아가서는 영계의 검증을 받는다. 검증을 받고 난 뒤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그 사람은 계속하여 인간 세상에 돌아와 수행을 계속하게 된다. 즉, 그 사람은 재차 불교에 들어가 계속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3~7차례 윤회한 후, 다시 영계로 돌아가는데, 그는 매번 육체가 끝나면, 가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만약 그의 각 방면의 조건과 세상에 있었을 때의 행위가 영계의 천상의 계율에 부합되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영계에 남게 되고, 다시는 사람으로 환생하지 않으며, 더 이상 인간 세상에 와서 나쁜 짓을 하여 징벌받을 위험이 없게 된다. 또한 더 이상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며 영계에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직무를 하나 맡게 된다. 그가 직무를 맡는 그 일이 바로 불교의 사람들이 말하는 ‘수행하여 성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너희는 알아들었겠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하여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수행하여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바로 영계에서 종 노릇을 할 수 있고, 다시는 환생하지 않으며 더 이상 징벌받는 일도 없고, 더더욱 환생하여 사람이 되는 번뇌도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럼 그들이 다시 환생하여 동물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절대로 없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일까? 그는 영계에 남아 직책을 맡고 더 이상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행하여 성과를 얻은 하나의 예이다.

수행하여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이 영계로 돌아간 후, 영계에 있는 해당 심부름꾼이 검증하고 확인한 결과 그 사람은 세상에 있을 때,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불교에서 규정한 대로 착실하게 독경하거나 염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적지 않은 악을 행하였다. 그러면 그가 영계로 돌아갔을 때, 영계에서는 그의 악행에 대해 판단을 내릴 것이고, 그다음 그는 징벌을 받는다. 그것은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은 언제 수행하여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바로 그가 어느 세대에 가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때이다. 영계로 돌아가서 보니 그 사람은 생전에 어떤 나쁜 행적도 없다. 좋아! 계속 환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계속 독경하고 염불하며 가난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면서 살생하지 않고 육식하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인간 세상의 번뇌를 멀리하여 사람 간의 그 어떤 분쟁도 없다. 그 사람이 그런 과정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영계로 돌아가면 영계에서는 그 사람이 행한 것에 대해 검증한 후, 계속하여 그를 인간 세상에 보내는데, 그와 같이 여전히 3~7차례 윤회하는 것이다. 만약 그 사이에 아무런 착오가 없다면 그가 수행하여 성과를 얻는 것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 각종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생사윤회에 대해 바로 이런 특별한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행하여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영계에서 직무를 맡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방인과 서로 다른 점이다. 우선, 영계에서 직무를 맡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행동 표현은 어떤 것일까? 반드시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고 살인 방화하지 않으며, 강간하거나 약탈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만약 사기치고, 훔치고, 강탈하면 수행하여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악행과 연계되고 관련되면 그 사람은 영계에서 주는 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영계에는 수행하여 성과를 얻은 불교 신자에 대해 적합한 안배가 있는데, 아마 그들을 안배하여 불교를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천지신명을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을 관리하게 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범위를 하나 주는데, 아마 이방인을 관리할 수도 있고, 아마 작은 심부름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각 부류 영혼의 성질에 근거해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 중의 한 예이다.

우리가 얘기한 이 5가지 신앙의 부류 중에서 기독교가 비교적 특별하다. 기독교의 특별한 점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참 하나님을 믿는다. 참 하나님을 믿는데, 왜 여기에 열거하였을까? 왜냐하면 기독교는 단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 인정할 뿐,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적대시하였는데, 그것으로 인해 신앙 단체로 몰락되었다. 기독교를 하나의 신앙이라고 한 이상, 틀림없이 그저 신앙과만 관련되고, 하나의 의식(儀式)이고, 하나의 교파이며, 하나의 종교일 뿐,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신앙과는 별개의 일이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이 5대 종교 부류에 열거한 까닭은 기독교가 이미 유대교, 불교, 이슬람교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종교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의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고, 단지 성경으로 신학을 강의하고, 신학으로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좋은 일을 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바로 그러한 종교인데, 단지 신학 이론만 중시하는 종교이고,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종교이며, 하나님을 따르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종교이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일에서도 하나님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결코 그들을 이방인을 대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불교 신자들을 대하는 것처럼 대한다. 만약 한 크리스천이 생전에 자기 자신의 몸을 철저히 지키고, 자신의 행위를 십계명과 계명 그리고 율법에 따라 엄격히 요구하면서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그들도 똑같은 시간의 윤회를 거쳐야만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들림받을’ 수 있다. 이른바 ‘들림받은’ 후에는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고 영계의 심부름꾼이 된다. 마찬가지로 만약 살아 있을 때, 악행을 저질렀고 너무 많은 죄악을 행했으며, 너무 많은 죄를 범했다면, 불가피하게 각기 다른 정도로 징벌을 받을 것이고, 또 각기 다른 정도로 처리받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련하여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극락세계로 올라가는 것이고, 기독교에 있는 그들에게는 어떤 논법이 있느냐? 바로 ‘천당에 들어간다’, ‘들림받는다’는 것이다. 진정 ‘들림받을’ 수 있는 사람도 3~7차례의 윤회를 거친 다음, 죽은 후 마치 잠든 것처럼 영계로 가는 것이다. 만약 합격되면 남아서 직무를 맡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세상 사람처럼 간단하거나 관례적인 윤회를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종교 중에서 그들이 말하는 결말과 그들이 추구하는 결말은 불교의 ‘수행하여 성과를 얻는다’는 것과 유사하고,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다. 이 몇 가지 종교 중에서 종교의 규율에 따라 엄격히 행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일부분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적합한 귀숙, 가야 할 적합한 거처를 주었고, 그들을 적합하게 처리해 주었다. 그것은 완전히 합리적이지만 사람의 상상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너희는 지금 기독교인에 대해 이와 같이 처리를 한다는 것을 다 들은 후, 마음에 어떤 소감이 드느냐? 너희는 그들을 위해 불공평하다고 호소하겠느냐? 그들을 위해 애석해하느냐?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들도 자업자득이다. 왜 이렇게 말할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진실한 것이고, 하나님은 살아 있고 실제적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전 인류를 향하고 각 사람을 향한 것인데, 그는 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그는 왜 미친 듯이 대적하고 미친 듯이 핍박하는 것일까? 그에게 그런 결말이 있는 것만 해도 아주 괜찮은 것인데, 너희는 왜 아직도 애석해하느냐? 그들에 대해 그런 처리가 있는 것만 해도 이미 관용을 베풀어 준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정도에 따른다면, 그들을 마땅히 다 멸해 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평범한 종교로 삼아 처리할 뿐이다. 그럼 다른 종교도 상세하게 말할 필요가 있느냐? 이 모든 종교들의 취지는 모두 어떤 것이냐? 선을 행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많이 고생하고 악행을 하지 말며, 좋은 말을 하고, 선한 일을 하며, 남을 욕해서는 안 되고, 남을 논단해서는 안 되며, 시비를 멀리하고,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데, 대부분 교리가 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신앙이 있는 사람들━각 종교의 사람, 각 교파의 사람들이 만약 엄격히 종교의 규율에 따라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너무 큰 잘못은 없을 것이고, 너무 큰 죄악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런 종교 가운데서 엄격히 종교의 규율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3~7대의 윤회를 거치고 나면 모두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많을까?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고, 종교인이 지켜야 할 규칙과 계율을 지킨다는 것도 쉽지 않다. 불교에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그 한 가지를 너는 지킬 수 있느냐? 온종일 그 회색 승복을 입고 불당에서 독경하고 염불하라면, 너는 지킬 수 있느냐? 지키기 쉽지 않다. 기독교에는 십계명, 계명이 있는데, 그런 계명과 율법은 지키기 쉬울까? 지키기 쉽지 않겠지? 남을 욕하지 않는 것도 사람은 지킬 수 없어 참지 못하고 욕한다. 그렇지 않은가? 욕한 다음에는 거두어들일 수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 밤에 죄를 자백한다! 참지 못하고 남을 욕하고, 욕한 후에도 여전히 속에 원한을 품고, 심지어 언젠가 다시 한번 그를 해칠 계획을 하고 있다. 어쨌든, 사람이 그런 죽은 교리 가운데서 인간답게 살며 죄를 짓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각 종교 중에서 수행하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너는 각 종교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럼 영계에 남아 직무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겠냐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의 생사윤회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이러하다. 특별한 점은 바로 그들이 ‘수행하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방인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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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직(正直): 여기서는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