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8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2) 제1부분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지난번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이 주제가 너희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느냐? 아니면 너희에게 얕은 인식이라도 있게 되었느냐? 지난번 주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한번 말해 보겠느냐?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만물과 인류를 양육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에게 말씀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만 생각했지, 만물의 법칙 속에서 인류를 양육하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교통하신 진리를 통해서 그제서야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이 법칙을 관장하고, 만물을 양육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주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에게 규칙과 법칙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다루었다. 만물은 그 규칙과 법칙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안중에서 인류와 공생공사하고 공존하게 되었다. 우리가 먼저 이야기했던 것은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만물의 성장 법칙, 성장 과정, 성장 방식을 정하였으며 또 만물이 이 땅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상호 의존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해 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법칙과 방식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이 땅에서 무사히 생존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안락한 삶의 터전과 생존 환경을 갖고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기본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나님은 먼저 그런 방식으로 만물에게 공급하여 만물이 인류를 위해 존재하고, 인류를 위해 생존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환경은 하나님이 정한 법칙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하나님이 법칙을 유지하고 관장하기 때문에 인류는 현재의 생존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논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큰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과거에는 하나님이 인류, 즉 하나님의 선민을 구원하고 경영하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주제를 성경과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구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성경과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한 3단계 사역을 뛰어넘어 하나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성경과 하나님의 3단계 역사에 국한시켜 하나님을 알아 가서는 안 된다. 더 넓은 시각으로 만물 중에서의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관리하는 법을 보아야 한다. 이런 방식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만물에게 어떻게 공급하는지 알 수 있으며, 이로써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진정한 근원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참된 신분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지위,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모든 것은 만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몇몇 사람들과 너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매우 광범위하다. 여기서 ‘만물’로 하나님이 주재하는 모든 것들의 범위를 묘사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이 너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는, 물질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를 포함하고 있고, 심지어 현재 인류가 생존하는 세계 밖의 공간과 행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범위이다. 하나님이 주재하는 만물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너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고, 어떤 일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는 너희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해하고, 볼 수 있고,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만물의 범위가 매우 넓긴 하지만 너희가 전혀 볼 수 없거나 닿을 수 없는 범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접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분명히 알 수 있는 범위 내의 것만 알려 주어 모두가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내가 하는 어떤 말도 빈말로 끝나지 않게 된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요약 서술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에게 공급하는지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모두에게 기본적인 개념을 알게 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과 3단계 역사 이외에도 사람이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더 많은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 자신이 직접 사역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이 단순히 선민을 인도만 하고 경영 사역 외에 다른 사역은 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고, 인류와 세계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말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기본적인 생존 환경
우리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에 대한 주제와 내용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을 공급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하는 것 외에 인류에게 또 어떤 것을 베풀어 주는지 알고 있느냐? 어떤 이는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고, 징계를 주시며,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따뜻한 관심을 베풀어 주십니다.”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라고 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육체 생명에 관한 체험 범위에서는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에서 필요한 범위 안에 국한된 것들이 아니라, 모두의 시야를 넓힐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면,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까? 다시 말해, 하나님은 만물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가져다주고, 어떻게 만물 생존의 법칙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느냐? 이 주제는 어쩌면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심오한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이 진지한 태도로 듣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오늘의 주제가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에게 공급하느냐? 하나님이 만물에게 어떤 것을 공급하기에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할 수 있느냐? 이에 대해 어떤 개념이나 생각이 있느냐? 보아하니, 이 주제에 대해 아무도 기본적인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이제 내가 논하고자 하는 주제, 이 이야기를 그 어떤 지식과 결부하여 생각하지 말고, 그 어떤 인류의 문화나 인류의 연구와도 연관시키지 말며, 오로지 하나님의 행사와만 결부시키기를 바란다. 미리 일러두지만 나는 오로지 하나님,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것만 언급할 것이다. 이건 알아들었겠지!
하나님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먼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 즉 느낄 수 있는 것부터 이야기하겠다. 이는 사람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공급했는지, 물질적인 것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자.
(1) 공기
먼저, 하나님은 공기를 만들어 사람이 숨 쉴 수 있도록 하였다. 일상생활을 할 때 사람에게 직접 닿는 것이 공기 아니냐? 사람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공기가 필요하며, 잠을 잔다 하더라도 공기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만든 공기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고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기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가장 먼저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럼 공기를 쉽게 만들었을까? 하나님은 공기를 만든 후 공기의 밀도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까? 공기의 함유량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까? (고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생각으로 공기를 만들었을까? 왜 공기를 만들려 하였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공기가 필요했고 숨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공기의 밀도는 사람의 폐에 적합해야 한다. 공기의 밀도에 대해 아는 이가 있느냐? 사람이 이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수치로 공기의 밀도를 설명할 필요는 없고 우리는 이런 개념을 아는 정도로 충분하다. 하나님이 만든 공기의 밀도는 폐 호흡에 가장 적합하여 사람이 숨을 쉬기에 알맞고, 인체가 손상되지 않는다. 이것이 공기의 밀도에 관한 것이다. 그다음 공기의 함유량에 대해 말해 보자. 하나님은 공기 함유량이 사람에게 독이 되지 않고, 폐와 몸에 해를 주지 않도록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이 원활하게 숨을 쉬고, 숨을 쉰 후에도 혈액이 정상적으로 순환되어 체내, 폐 안의 탁한 공기가 밖으로 배출되도록 공기의 성분과 함유량을 정해야 했으며, 또 공기 안에 유독 성분이 포함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떠한 지식을 주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담겨 있고 또 가장 좋게 만들어졌음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대기 중에 미세 먼지 함유량이 얼마나 되는지, 지구상의 먼지, 모래, 흙 그리고 대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먼지 함유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해 하나님께는 해결할 방법, 다시 말해 완전히 제거하거나 녹여 없앨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대기 중에 먼지가 어느 정도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호흡이나 인체에 해를 입히지 않고, 먼지의 입자 크기도 인체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설계하였다. 하나님이 공기를 만든 것에 심오한 비밀이 있지 않으냐? 이것이 한 번의 입김으로 끝나는 간단한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가장 단순한 것에도 심오한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하나님은 실제적이지 않으냐? (맞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단순한 것도 모두 인류를 위한 것이다. 사람이 숨 쉬는 공기는 깨끗하며, 공기 함유량도 호흡에 알맞고 독이 없어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 희박한 공기 또한 인류가 숨 쉬기에 적합하며, 공기를 들이마신 후 다시 내쉬는 것은 신체와 육체에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사람은 공기 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으며, 어떠한 방해나 근심 걱정 없이 정상적으로 숨 쉴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태초에 만든, 인류가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바로 공기이다.
(2) 온도
둘째는 온도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온도는 인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너무 높게 오르면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지 않으냐? 반대로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간다면 어떨까? 이 또한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도를 정할 때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는 온도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 사이로, 북쪽 지역에서 남쪽 지역까지의 기온이 이 범위 안에 있다. 기온이 영하 50~60도 안팎으로 떨어지는 한랭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거주하도록 한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추운 지대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지혜가 있다. 사람이 지나치게 더운 곳과 추운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하여 그런 지역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곳은 사람이 거주하도록 준비된 곳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 예비한 곳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인류가 거주하지 못하고 생활하지 못하도록 한 곳을 왜 만든 것일까?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의 기본 온도를 합리적으로 조절한 여기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온도를 유지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창조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먼저 태양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너무 뜨거우면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느냐? 태양에 감히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지구상에 태양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계가 있느냐? (없습니다.) 왜 태양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일까? 너무 뜨거워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태양과 인류의 거리는 하나님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준이 있고,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필요한 일을 했다. 다음으로 지구의 남극과 북극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빙하이다. 빙하가 있는 곳에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느냐? 빙하는 인류가 살기에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남극과 북극에 가지 말아야 빙하가 존재할 수 있고, 제 기능을 발휘하여 온도를 제어할 수 있다. 이해가 되었느냐? 만약 남극과 북극이 없는 상태에서 태양이 계속해서 지구를 비춘다면 사람은 더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생존에 적합한 온도 조절을 위해 하나님은 단지 이 두 방법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외에도 초원의 풀, 숲속의 나무, 식물 등 여러 생명체를 두었다. 이들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태양의 열에너지를 적절하게 제거하여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온도를 조절한다. 다음으로는 하천, 호수와 같은 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강, 호수의 면적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물의 양, 물이 흐르는 방향, 그리고 물의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지하수와 지상에 있는 하천, 호수 등의 물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 밖에 고산 지대, 평원, 협곡, 습지와 같은 다양한 지형도 있다. 어떤 지형이든 면적과 규모에 상관없이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둘레가 100km인 산이 있다면 그 크기만큼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지구에 그런 산맥과 협곡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든, 여기에도 하나님의 생각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에는 각각 탄생의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삼림과 식생의 면적과 생장 범위를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삼림과 식생이 얼마나 많은 수분과 태양열을 흡수하는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계획한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려하며 계획하고 배치했기에 사람은 온도가 적절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예를 들어 태양, 흔히 들을 수 있는 남극과 북극, 지상ㆍ지하ㆍ수중 생물들, 삼림 식생의 면적, 수원과 여러 가지 물, 해수와 담수의 양, 그리고 다양한 지리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류 생존에 필요한 정상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배려로 사람은 적합한 온도가 있는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안 된다.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지역은 분명히 하나님이 예비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너무 춥거나 기온이 심하게 낮은 지역에 가게 되면 몇 분도 채 안 돼 입이 얼어 말을 할 수 없고, 뇌가 경직되어 생각할 수 없으며, 바로 질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이 예비한 곳이 아니다. 인류가 연구를 하려 하든, 혁신을 이루려 하든, 돌파구를 찾으려 하든 상관없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든 육체가 적응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이 창조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육체가 어떤 온도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는 하나님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 스스로는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왜 사람이 모른다고 말하느냐? 어떤 어리석은 짓들을 저질렀느냐? 많은 이들이 항상 남극과 북극 정복에 도전하고 싶어 하지 않느냐? 그곳의 땅을 점령하고 하루빨리 터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는 자해가 아니냐? 남극과 북극을 철저히 연구한 후에 그 온도에 적응하여 거기에서 살 수 있고, 남극과 북극의 생활 환경과 상태를 ‘개선’한다 한들 그것이 인류에게 득이 되겠느냐?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져야 만족할 것이냐? 정말 기막히고 황당한 행동이다. 인류는 생존이 가능한 환경에 가만히 있지 않고 기어코 살 수 없는 그런 지역에 가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이냐? 이미 너무 많은 복을 누렸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에서 지내는 삶이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또 사람이 정상적인 생존 환경을 거의 파괴하다시피 했으니 남극과 북극에까지 가서 파괴하며 크게 ‘사업’을 하여 ‘유례없는 업적’ 따위를 남기겠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 인류는 조상이라 불리는 사탄에게 이끌려 계속해서 황당무계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아름다운 터전을 조금도 망설임과 거리낌 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짓이다. 현재 지구에 닥친 위기를 보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살길을 찾는답시고 그 대안을 달로 정하여 달에 가서 살 방법과 달에서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그런데 그곳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냐? (산소입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달에 산소가 부족하다면 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늘 달에 가고자 한다. 이는 무슨 행동이냐? 이 또한 자해이다. 그렇지 않으냐? 달에는 공기가 없고, 온도도 인류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해 준 곳이 아니다.
온도는 일상 속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온도는 몸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온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인류 생존에 적합한 온도는 누가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제 알아야 한다.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지 않으냐? 그 안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 생존에 적합한 온도로 환경을 조성했다면, 이는 만물에게 제공하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것이 그중 한 가지 방식이다.
(3) 소리
셋째는 무엇일까? 이 또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환경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반드시 조절해야 할 일이었다. 그 일은 하나님께도, 모든 사람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생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육체와 생활에 지장이 생겨 그러한 환경에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생물이 그러한 환경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소리이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였고, 만유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살아가며, 만물은 하나님의 안중에서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은 각자 생존 가치가 있고, 존재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존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중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게 된다. 예를 들어, 지구는 끊임없이 회전하고, 태양도 달도 끊임없이 회전하며, 만물은 살아 움직임과 동시에 계속해서 소리를 낸다. 지구상의 만물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산의 밑부분은 활동하고 있고, 심해의 생물들도 헤엄쳐 다닌다. 이러한 생물들, 하나님 안중의 만물들은 끊임없이, 정상적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발생하고 움직이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무엇이 생길까? 바로 강한 소리이다. 지구 밖 행성들도 계속해서 회전하고, 여러 행성의 생명체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생명이 있든 없든 모두가 하나님의 안중에서 계속 앞으로 움직이면서 소리를 낸다. 하나님은 그 소리를 조절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너희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비행기에 가까이 갔을 때 들리는 엔진 소리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귀가 먹먹해지기 쉽습니다.) 오래 있으면 귀가 먹먹해질 것이다. 심장이 견딜 수 있느냐? (견딜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고, 심장이 강한 사람이라도 오래되면 견디기 힘들다. 소리는 귀나 심장과 같은 인체에 많은 영향을 주며, 너무 큰 소리는 해를 끼친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한 후, 움직이는 소리를 적절히 조절하였다. 이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한 환경을 창조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들 중 하나였다.
첫째, 지구의 지면과 대기층의 거리에 따라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땅이 갈라진 틈새의 크기가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셋째, 지리적 환경이 어우러져 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소리를 조절하여 사람이 귀와 심장이 견딜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소리로 인해 생존에 커다란 지장을 받게 되고, 삶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 그것은 인류에게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땅과 대기층 그리고 지리적 환경을 창조할 때,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고 하나님의 지혜를 담았다. 이에 대해 사람이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그저 거기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그럼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소리를 조절하기 위해 행한 하나님의 이러한 일들이 필요치 않으냐? 너희는 하나님이 행한 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느냐? 하나님이 행한 일, 즉 소리를 정교하게 조절하여 인류의 생존 환경을 유지시키고,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일이 필요하지 않으냐?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통해 만물에게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안정된 환경을 창조하고 제공하여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고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니냐? 하나님이 행한 일이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매우 필요하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비록 이것이 하나님의 행사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이 그때 어떻게 일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필요성은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지혜와 애쓰심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정도라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은 만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많은 행사를 느끼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단서들을 통해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빛
넷째는 사람의 눈에 관한 것으로 빛인데, 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빛을 볼 때 빛의 세기가 강하면 사람은 자극 때문에 실명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눈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손상을 입지 않을 수는 없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이를 시도해 본 적이 있느냐? 시도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쳐다본다면 가능은 하다. 그렇지? 이렇게 도구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도구 없이 사람은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기 힘들다.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나님은 태양을 창조하여 사람에게 빛을 주었는데, 이 빛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든 후 상관치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이 견디든, 견디지 못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일하지 않으며,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고 전반적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눈을 만들어 주어 볼 수 있도록 하였고, 사물을 볼 수 있는 빛의 범위도 예비해 주었다. 너무 어두워서 손을 내밀어도 볼 수 없을 정도면, 사람의 눈은 제 기능을 잃어 쓸모없게 된다. 또 너무 밝은 곳에서도 사물을 볼 수 없기에 쓸모없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의 생존 환경에 사람의 눈에 적합한 빛을 제공하였고, 이 빛으로 사람은 눈이 손상되지 않고, 실명은 더욱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태양과 지구 주변에 구름을 추가하였고, 공기의 밀도로 눈이나 피부를 자극하는 빛을 여과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둘은 서로 대응된다. 또한 하나님이 만든 대지의 색깔이 태양 빛과 각종 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눈이 적응하기 힘든 빛의 밝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외출할 때 선글라스를 낄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은 빛의 방해 없이 시야 안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빛은 너무 밝아도, 너무 어두워도 안 된다. 너무 어두우면 눈이 손상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실명하게 되고, 너무 밝으면 눈에 자극이 심해 3, 40년 혹은 50년 뒤에는 눈을 쓸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빛의 밝기는 사람의 눈이 적응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또 하나님은 빛이 사람의 눈에 줄 수 있는 자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최소화하였다. 빛이 눈에 좋든 해롭든, 하나님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건강한 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느껴지지 않느냐? 하지만 사탄 마귀는 어떠하냐? 사탄 마귀는 사람에게 어떤 해가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빛을 너무 밝게 하거나 너무 어둡게 한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들, 다시 말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의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사람이 생존에 최대한 적응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러한 생존 환경은 인류에게 가장 적합하고 유익한 환경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별것 아닌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소리, 빛, 공기는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며,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누리고 있는 이런 것들의 뒤에는 하나님이 행한 일들이 있다. 너는 이 부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네가 인지의 필요성을 느끼는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소리, 빛, 공기 등을 창조할 때 애쓰고, 계획하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사람을 이러한 환경에 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공해 준 모든 것은 인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행사가 있다.
(5) 기류
다섯 번째는 무엇일까? 다섯 번째는 모든 사람의 매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도 아주 관련이 크다. 사람의 육체가 이 물질세계에서 생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바로 기류이다. ‘기류’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무엇을 기류라고 하느냐? 설명해 봐라. (기류란 공기의 흐름입니다.) 그렇다. 공기의 흐름을 기류라고 한다. 기류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이고 기체가 이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기류는 주로 무엇을 가리킬까? 내가 설명하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지구의 산과 강과 바다를 비롯하여 만물은 모두 회전하며, 회전할 때는 속도가 있다. 사람이 지구의 회전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구는 여전히 회전하고 있다. 지구의 회전은 무엇을 일으키느냐? 사람이 달릴 때 무엇이 발생되느냐? 달릴 때 귓가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느껴집니다.) 사람이 달릴 때도 바람이 생기는데, 하물며 지구가 회전할 때 어떻게 바람의 힘이 없을 수 있겠느냐? 지구와 만물은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고 운동하며 지구상의 만물은 끊임없이 증가한다. 따라서 일정한 속도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류가 발생하는데 그런 기류를 말한다. 이 기류가 그런 정도에서 사람의 몸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 대만이나 홍콩에도 태풍이 오는데 기껏해야 얼마나 강하겠느냐? 그런데도 사람들은 똑바로 서 있지 못한다. 또 바람이 부는 거리를 걸을 때면 걸음을 내딛기조차 힘겨워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바람이 너무 강하니 움직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뭔가를 의지해 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류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중 하나이다. 만약 지구 전체가 평지라면, 사람의 몸은 지구가 회전하고 만물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기류를 절대 견딜 수 없고 대응하기도 힘들다. 그런 상태에서 기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 즉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양한 지리적 환경을 조성하여 기류가 약화되도록 하였고 기류의 방향, 속도, 강도를 조절하여 기류 문제를 해결하였다. 따라서 사람은 산천, 산맥, 평원, 구릉, 분지, 협곡, 고원, 하천 등의 다양한 지리적 환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지리적 환경을 통해 기류의 속도, 방향, 강도를 변화시키고 약화시켜서 적절한 풍속, 풍향, 풍력을 만들어 주었고, 사람에게 정상적인 생존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으냐? (필요합니다.) 이는 사람이 보기에 어려운 일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하나님의 눈이 늘 만물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알맞은 기류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하나님에게 매우 쉬운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한 이 환경 속의 만물 중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모두 존재의 가치가 있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사탄과 타락된(직역: 패괴된) 인류는 이 원리를 모르고 끊임없이 개발하고 파괴한다. 산천을 평지로 바꾸고, 협곡을 평평하게 메우고, 평원을 아스팔트로 덮어 빌딩 숲을 이루려는 망상에 빠진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예비한 최적화된 환경에서 사람이 매일 행복하게 생활하고 성장하길 기대했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전혀 소홀하지 않았다. 온도에서 공기, 소리에서 빛까지 하나님은 계획적으로 배치하여 인류의 생존 환경과 사람의 몸이 어떤 자연조건 속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종족 번식을 이루고 또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더 나아가 인류에게 공급하는 모든 것이다.
하나님이 처리한 인류 생존의 5가지 기본 조건을 통해 하나님이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으냐?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관리하고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류 탄생 후 몇천 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의 생존 환경을 바꾸어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 생존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정상적인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유지되겠느냐? 다시 말해 언제까지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다. 그때 하나님은 같은 방식이든 다른 방식이든 인류의 생존 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다. 지금 사람이 진정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인류의 생존 환경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하나님의 선민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만물도 하나님의 주재 덕분에 계속해서 생존하고 인류 전체도 이와 같은 공급 덕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방금 이야기를 들으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느냐? 이제는 하나님과 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도대체 누가 만물의 주인이냐?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만물을 대할 때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고 배치하시고,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누립니다.) 너희는 이 말을 인정하느냐? (인정합니다.) 하나님과 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고 공급하고 있으며, 또 그 모든 것의 근원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을 공급할 때 그것을 누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에게 베푼 생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만물을 향유하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의 성과를 누리는 자이고, 하나님은 주재자이다. 그렇다면 만물에게 있어 하나님과 인류는 무엇이 다를까? 하나님은 만물의 성장 법칙을 분명히 알고 있고 이를 관장하고 주재한다. 즉,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안중에 있으며 하나님의 감찰 범위 안에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만물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눈앞의 것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을 본다고는 할 수 없다. 산에 오르면 그 산만 볼 수 있을 뿐, 산 너머의 것은 볼 수 없다. 해변에 가면 바다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바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볼 수 없다.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의 식물만 볼 수 있을 뿐, 더 먼 곳은 볼 수 없다. 사람은 더 높은 곳, 더 먼 곳, 더 깊은 곳은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 시야 내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사람이 1년 사계절과 만물 성장의 법칙을 안다 하더라도 만물을 관리하고 주재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자신이 손수 만든 기계처럼 다루며, 모든 절차, 원리, 규칙 그리고 용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과학을 연구하고 만물의 법칙을 탐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무한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아주 작은 일을 사람에게 연구하라고 한다면, 평생의 시간을 쏟아도 진정한 성과를 얻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네가 배운 지식으로 하나님을 연구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진리를 찾는 방식과 하나님께 구하는 방식으로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측면으로 하나님을 대한다면, 어느 날 하나님의 행사가 어디에나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왜 만물의 주재자라고 하는지, 왜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식할수록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너를 포함한 만물 모두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공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만물의 생존을 주재하고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본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생겼을 때, 너는 하나님이 곧 너의 하나님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여 너의 하나님이 되게 하고 너의 주재자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런 인식이 생기고 생명이 그런 경지에 이르면, 하나님은 두 번 다시 너에게 시련을 주거나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관리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는 하나님의 행사를 인정하게 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실제적으로 알고, 더 많이 이해하고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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