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8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2)

지난번의 화제에 이어서 교통해 보자. 지난번에 우리가 어떤 화제를 가지고 교통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화제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이 화제는 너희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지난번에 교통한 이 화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말해 볼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만물과 인류를 양육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선민에게 말씀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만 생각했지, 만물의 법칙 속에서 하나님이 인류를 양육하신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해 주시는 것을 듣고 비로소 만물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그런 법칙을 지배하시고 만물을 양육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또한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주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에게 규칙과 법칙을 정해 준 것에 대해 교통하였다. 그런 법칙과 규칙은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세하에서 또 하나님의 안중에서 인류와 생사를 같이 하게 하고, 인류와 공존하게 한다. 우리가 먼저 무엇에 대해 말했었느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만물이 생장하는 법칙과 궤도, 방식을 정하고, 또한 만물이 이 땅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정하여 그것들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번성하며 서로 의존하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방식과 법칙이 있었기에, 만물이 이 땅에서 순조롭고 아무런 탈 없이 생존하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 있었기에, 인류는 땅에서 안정된 터전과 안정된 생존 환경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에서 계속 앞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계속 앞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해 주는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말했다. 즉, 하나님은 우선 그런 방식으로 만물에게 공급해 주어 만물이 인류를 위해 존재하고, 인류를 위해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은 하나님이 제정한 법칙으로 인해 존재하는데, 하나님이 그런 법칙을 유지하고 지켜 주고 또 주관하고 있으므로, 지금의 이런 인류의 생존 환경이 있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은 전에 얘기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대해 교통했을 때에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고 경영하는 이 범위에서 말했다. 즉, 하나님의 선민을 구원하고 경영하는 이 범위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이야기했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공급해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한 그 화제는 성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의 선민들을 구원하는 범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라, 그 범위와 성경을 벗어나고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행한 3단계 사역의 범위도 벗어나 하나님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교통을 들을 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성경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3단계 역사에 국한시켜서도 안 되며, 시야를 넓혀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고,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주재하는지, 만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또 이 기초에서 너에게 하나님이 만물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는지를 보여 준다. 이에 근거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은 진정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자신의 진정한 신분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신분과 하나님의 지위, 그리고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과 하나님의 전부에 대해 말한 것은 지금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즉, 너희 이 무리들만 상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만물을 상대로 말한 것이다. 그럼 그 만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 만물의 범위는 아주 넓다. 내가 ‘만물’로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는 범위를 묘사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님이 주재하는 만물은 단지 너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 그리고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물질세계 외의 또 다른 세계를 포함하고 있고, 더욱이 지금 이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곳 외의 공간과 천체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범위이고, 또한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범위는 매우 넓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보아야 하는지, 어떤 일에서 인식이 있어야 하는지, 이런 것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너희 각 사람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고, 또한 너희가 반드시 깨닫고 보아야 하며 분명히 알아야 할 것들이다. 비록 이 ‘만물’이 포함하고 있는 범위는 아주 넓지만 나는 너희가 전혀 볼 수 없거나 접촉할 수 없는 그런 범위는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인류가 접촉할 수 있고 인류가 깨달을 수 있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그 범위만 알려 주어, 각 사람이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말의 진정한 의의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너희에게 교통해 주는 것이 그 어떤 것도 빈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에 우리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방면의 화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요약하고 서술하여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만물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갖게 해 주었다. 이 기본적인 개념을 너희에게 갖게 해 주는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성경 외에, 그리고 3단계 역사 외에, 또 사람이 보지 못하고 접촉하지 못하는 더 많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그런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자신의 선민들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만 할 뿐 경영 사역 외의 그런 사역이 없다면, 너희를 포함하여 이 인류는 계속 전진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고, 이 인류와 이 세상도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늘 너희에게 교통해 주고자 하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말씀의 중요성이다.

1.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기본적인 생존 환경

우리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말씀에 관련된 화제와 내용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을 공급해 주고, 너희에게 형벌 심판의 사역을 하는 것 외에 인류에게 또 어떤 것들을 베풀어 주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느냐? 아마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고, 징계를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극진한 보호와 세심한 관심을 베풀어 주십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라고 말할 것이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이런 것들에 대해, 너희는 아마 자신의 육체 생명에 관계되는 경력(역주: 체험) 범위 내에서는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사람의 일상에 필요한 것에 대한 범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너희 각 사람이 멀리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이다. 즉, 거시적인 각도에서 보게 해 주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면,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을 어떻게 유지하고 보호해 주고 있을까? 하나님은 만물이 생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엇으로 만물의 생존을 유지시키고 보호하며 만물의 생존 법칙을 유지시키고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오늘 얘기해야 할 중점인 것이다. 이 말들을 너희는 알아들었느냐? 내가 말하는 속도에 따라올 수 있느냐? (네.) 너희가 듣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계속해서 교통하겠다. 이 화제는 너희에게 어쩌면 매우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심오한 도리는 말하지 않고 너희가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너희는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말고 진지하게 듣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려고 한다. 내가 말하려는 화제는 무엇이었느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만물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고 있을까? 하나님은 만물에게 무엇을 공급해 주고 있을까? 어떤 이유로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너희는 어떤 개념이나 상상하는 것이라도 있느냐? 보아하니, 너희는 내가 말하는 이런 화제에 대해 마음과 머릿속이 거의 텅 비어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너희는 내가 이제 말하려는 화제와 이야기를 그 어떤 지식과도 연관시키지 말고, 또 인류의 그 어떤 문화나 인류의 그 어떤 연구와도 아무 연관도 시키지 말고, 하나님의 행사와 결부시키기 바란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 자신에 관련된 것만 말하겠다.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미리 일러 주는 것이다. 알아들었겠지? (네.)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많다. 우선 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 즉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부터 말하겠다. 그런 것은 사람이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물질세계에서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공급해 주고 있는지 얘기해 보자.

(1) 공기

우선, 하나님은 사람이 호흡할 수 있도록 공기를 만들었다. 공기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뿐만 아니라 일분일초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잠들었을지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그 공기는 인류에게 아주 큰 의의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숨 쉬고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갖춰져 있어야 할 것이고,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공기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가장 먼저 베풀어 준 것이다. 하나님이 공기를 만든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 것일까? 거기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은 공기를 만든 후, 공기의 밀도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공기가 차지하는 함량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인류 생존의 필요에 따라 반드시 적절하게 해야 했다. 공기의 밀도에는 우선 산소 함량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물리학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공기를 만들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나님은 왜 공기를 만들어야 했을까? 공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하고 호흡하는 것이 필요했다. 우선, 공기의 밀도는 사람의 폐와 서로 대응되어야 한다. 공기의 밀도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 그것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아니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개념만 알면 되지, 데이터를 가지고 공기의 밀도를 말할 필요는 없다. 우선, 하나님이 만든 공기의 밀도는 사람의 폐가 호흡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사람이 숨을 쉬는 데에 알맞는 것이고, 게다가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공기의 밀도에 관한 내용이다. 공기의 함량에 대해 말하면, 우선 사람에게 독이 되지 말아야 하고, 사람의 폐에 손상을 주지 말아야 하며, 사람의 몸에 손상을 주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고려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공기를 마셨을 때, 호흡이 원활해야 한다. 공기의 성분과 함량은 사람이 공기를 들이마실 때 혈액에 정상적인 신진대사가 있게 해야 하고, 폐와 몸속의 탁한 공기도 정상적으로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게 해야 하며, 더군다나 공기에 유독 성분이 함유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고려해야 할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지표에서 나는 지식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주입시키고 싶지 않다. 단지 사람에게 하나님이 만든 것 하나하나에는 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고, 그것은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뿐이다. 공기 속의 미세 먼지 함량이 얼마가 되든, 지구상의 먼지와 모래, 토양 및 공중에서 떨어지는 각종 미세 먼지 함량이 얼마가 되든, 거기에 관한 것도 하나님은 해결할 방법이 있다. 즉, 깨끗이 제거해 버리거나 녹여 버릴 수 있다. 설령 공기 속에 먼지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사람이 호흡하는 데에, 그리고 사람의 몸에 그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 또한 먼지 입자 크기도 하나님이 다 처리했기에, 사람의 몸에 해를 끼칠 수 없다. 하나님이 공기를 만든 일에 심오한 비밀이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간단하게 입으로 한번 불면 끝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간단한 것을 만들어도 거기에는 다 심오한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있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분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은 간단한 것을 하나 만들어도 인류를 위해 고려한다. 우선, 사람이 마시는 공기는 깨끗한 것이다. 공기의 양은 사람이 호흡하는 데에 적합하고, 독이 없으며,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 공기가 희박한 것도 인류가 숨을 쉬는 데에 적합한 것이고, 사람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은 사람의 몸, 즉 육체에 반드시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공기 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고, 어떠한 방해나 걱정도 없이 그렇게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만든, 인류가 숨을 쉬는 데에 반드시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 바로 공기이다.

(2) 온도

두 번째 것은 온도이다. 온도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온도는 인류가 생존하기에 적합한 환경에 반드시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온도가 너무 높아 40도 이상 올라간다면, 사람은 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그러면 체력 소모가 크지 않겠느냐? 온도가 너무 낮아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면 어떻겠느냐?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온도의 범위를 정한 것도 매우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다. 즉, 사람의 육체가 적응할 수 있는 온도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 사이이다. 북쪽 지방에서 남쪽 지방까지, 기본적으로 이런 온도 범위 내에 있다. 아주 추운 지대는 아마 영하 50도 정도 될 텐데, 그런 지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거주하도록 한 곳이 아니다. 왜 그렇게 추운 지대가 있을까? 하나님에게는 자신만의 지혜가 있고,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사람에게 그런 곳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무 더운 곳과 너무 추운 곳은 하나님이 보호하려고 한다. 즉, 사람을 그곳에 보내 살게 할 생각이 없었고, 또한 사람에게 예비해 준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왜 그런 곳이 존재하도록 할까? 그곳에서 인류를 거주하지 못하게 하고 생존하지 못하게 하면서 왜 그런 곳을 만들었을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류 생존 환경의 이런 기본적인 온도도 합리적으로 조정을 하였는데, 거기에도 법칙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것들을 만들어 이 온도를 유지하고 제어하고 있다. 어떤 것으로 이 온도를 유지시키고 있을까? 우선, 태양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하지만 너무 뜨거워도 사람은 견딜 수 없다. 지구상에 태양에 접근할 수 있는 기기(器機)가 있느냐? (없습니다.) 왜 감히 접근하지 못할까? 너무 뜨거워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에 대한 태양의 높이 역시 하나님이 일정하게 계산을 한 것인데, 그 거리는 하나님에게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지구상에는 남극과 북극이 있다. 남극과 북극은 다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빙하이다. 빙하가 있는 곳에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느냐? 인류의 생존에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인류가 남극과 북극에 가지 않으면, 빙하는 존재하고, 그것은 기능을 발휘하여 온도를 제어할 수 있다. 알겠지? 태양이 계속 지구를 비추는데 남극과 북극이 없다면, 지구상의 사람은 모두 더워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그저 이 두 가지만으로 온도를 제어할까? 그것도 아니다. 인류의 생존에 적합한 온도를 제어하는 데에는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생물들도 있다. 예를 들면, 초원의 풀, 삼림 속의 각종 나무와 각종 식물들이다. 그것들은 태양열을 흡수하는 동시에 태양의 열에너지를 적절하게 제거하여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온도로 조절하고 있다. 또 수원(水源), 즉 강과 호수도 있다. 강과 호수의 면적은 그 어떤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에 물이 얼마 있는지, 물은 다 어디로 흐르는지, 물이 흐르는 방향은 어디인지, 물의 양은 얼마인지, 물이 흐르는 속도는 어때야 하는지, 이런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제어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지하수와 사람이 볼 수 있는 지상의 강과 호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수원도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지리 위치의 형태, 고산, 평원, 협곡, 습지, 여러 가지 지리 형세, 또한 여러 가지 지리 형세의 면적과 범위의 크기도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산이 있는데 그 둘레가 100km라면 100km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구상에 이런 산맥이나 협곡들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만들었든지, 그것들에도 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만들 때에 그 배후에는 다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이 있다. 예를 들면, 삼림, 각종 식생, 즉 그것들이 존재하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들이 생장하는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를 제어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들이 수분을 얼마큼 흡수할 수 있는지, 태양열을 얼마큼 흡수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 때에 계획한 범위 내에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각 방면에 대해 세밀하게 계획하고 생각하고 또 정밀하게 안배하였기에, 사람은 온도가 적합한 이런 환경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예를 들면 태양, 사람이 자주 듣게 되는 남극과 북극, 그리고 지상과 지하와 물속의 각종 생물, 더 나아가 삼림과 각종 초목이 차지하는 면적, 수원과 여러 가지 물, 바닷물과 민물의 양, 그리고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런 것들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정상 온도를 유지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하나님에게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온도가 적당한 이런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추워도 안 되고 너무 더워도 안 된다. 너무 더운 곳이나 사람의 육체가 적응할 수 있는 온도를 넘는 곳이면, 그런 곳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예비해 준 곳이 아니다. 사람이 너무 추운 곳이나 온도가 너무 낮은 곳에 가게 되면 몇 분도 안 돼 꽁꽁 얼어 말도 할 수 없고, 머리가 얼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며, 바로 질식할 수도 있다. 그런 곳도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해 준 곳이 아니다. 인류가 어떤 연구를 하려고 하든,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하든, 혹은 어떤 범위를 돌파하려고 하든,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 있든 간에, 사람은 영원히 육체가 적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이 사람에게 창조해 준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류의 육체가 어떤 온도에 적응할 수 있는지는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사람이 스스로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왜 사람은 모른다고 하느냐? 사람은 어떤 미련한 짓들을 했느냐? 많은 사람들이 늘 남극과 북극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느냐? 늘 거기에 가서 땅을 차지하려고 하고, 차지한 다음 하루라도 빨리 거기에 뿌리내리려고 하는데, 그것은 자해하는 행동이 아니냐? (맞습니다.) 남극과 북극을 충분히 연구한 후, 설령 그런 온도에 적응할 수 있고, 남극과 북극의 생활 환경과 생존 환경의 상태를 다 바꿀 수 있다고 한들, 인류에게 또 어떤 유익이 있을까?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야 속이 후련하겠느냐?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짓이고 황당한 행동들이다. 인류는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조용히, 차분하게 지내지 않고 기어코 생존할 수 없는 그런 곳에 가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냐? 누린 복이 너무 많아 적당한 온도에서 지내는 것이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그 밖에, 사람은 정상적인 생존 환경을 거의 다 파괴해 놓고는 또 남극과 북극에 가서 한바탕 파괴하여 어떤 ‘업적’을 이루고, ‘전례 없는 최초의 도전’ 따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 이 인류는 조상인 사탄에게 이끌려 갖가지 황당한 짓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해 놓은 아름다운 터전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리낌 없이 파괴하고 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짓이다. 더욱 한심한 짓은 지금 이 지구에 생존 위기가 닥친 것을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방도를 찾아 달에 가서 지내보려고 하고 살 길을 새로 만들어 그곳에서 살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엇이 부족하냐? (산소가 부족합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느냐? (없습니다.) 달에 산소가 부족하다면 거기는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닌 것이다. 사람은 늘 거기에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고,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거기는 공기가 없는 곳이고, 또한 그곳의 온도는 인류가 생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거기도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해 준 곳이 아니다.

방금 온도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것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모두가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오늘 날씨 좋네! 23도야, 맑은 날씨에 구름 한 점 없고, 공기도 상쾌하고 햇빛도 쨍쨍하네! 신선한 공기도 좀 마시고 햇볕 쪼이며 기지개나 켜자. 아, 기분 좋다!”라고 하거나 혹은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 손을 내밀면 바로 얼어 버릴 것 같아! 너무 추우니 밖에 오래 있지 말고 빨리 돌아와! 추위에 떨지 말고!”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온도는 사람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온도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적합한 그런 온도는 누가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알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지 않느냐? 그 속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온도가 적합한 생존 환경을 창조해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해 주는 일종의 방식이 아니냐? 사실이 그렇다.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해 주고, 만물을 관리하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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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