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하나님의 거룩함(3) 제2부분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있을 때, 사람을 닥치는 대로 해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택한 사람을 내버려 두거나 못 본 척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을 분명하고 똑똑히 알고 있었다. 사탄이 어떤 일을 하거나 풍조를 만들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소리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해 나갔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사역을 할 때나 누군가를 택할 때,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고, 요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선 하나님은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해 주었다. 너의 가정 환경, 부모, 조상은 하나님이 일찍부터 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한 다음에는 네가 태어날 날짜도 정했다. 이어서 네가 울며 태어나는 모습, 네가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모습까지 하나님은 다 지켜보았다. 한 걸음씩, 너는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으며, 말을 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성장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일은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 질병,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이 길을 걷는 너의 생명과 미래를 엄격하게 지켜 주었으며, 너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어느새 너는 장성하여 새로운 사물을 접하게 되고, 이 세상과 이 인류를 알아 가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길 좋아하며, 자신의 인성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조금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조금씩 성장하고,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지식을 습득하고 과학을 공부할 때에도 하나님은 너에게서 한 걸음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도 세상을 알아 가고 접하는 과정에서 꿈을 키운다. 자신의 취미,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게 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본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지 하나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눈에 담고 있다. 어쩌면 너는 자신의 과거를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는 하나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살아가고, 자라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그 기간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한다. 이는 아무도 느끼지 못했던 일이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하나님이 한 번도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렇다면 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하는 이 일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 일이 무엇인지 너희는 아느냐? 너희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아무 개념도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내가 알려 주겠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는 동안 하나님은 너에게 수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알리지 않고, 네가 알게 하지도 않으며, 너에게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일들이 어떤 것이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일들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가 다른 일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바로 사람이 태어나서 현재에 이를 때까지 그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 준 것이다. 이 말이 너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아 “안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다. ‘안전’은 문자적으로 보면 무엇을 말하느냐? 아마 너희는 평안함, 재앙도 화도 없는 것, 멀쩡하게 사는 것, 정상적인 삶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안전’이 하나님 편에서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너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지켜 준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사탄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너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지 않으냐? 신변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니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탄에게 먹히는 순간, 너의 영혼과 육체는 더 이상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영혼, 그런 사람을 포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네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너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그런데도 너희는 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 아무래도 너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느끼지 못했나 보구나!
하나님은 사람이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 외에도 많은 사역을 하였다. 즉, 한 사람을 택하고 구원하기 위해 많은 예비 사역을 한 것이다. 우선,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을 소유할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부모는 누구일지, 형제는 몇 명일지, 그 가정 상황과 경제적 여건은 어떠할지, 가정 환경이 어떠할지 등을 다 정성스럽게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택할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알고 있느냐? 대단한 지위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겠느냐?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매우 드물다. 그럼 억만장자, 천만장자의 집안처럼 특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겠느냐?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도록 하겠느냐? (평범한 가정입니다.) 평범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느냐? 근로자 가정이 있다. 근로자는 급여로 생활하며,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지만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는 못한다. 농민 가정도 있다. 농민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어 배를 곯거나 추위에 떨지는 않는다. 자그마한 장사를 하는 가정도 있다. 부모가 지식인인 가정도 평범한 가정에 속한다. 부모가 기껏해야 회사원이거나 낮은 직급의 공무원인 가정도 상류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는데, 이는 다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살아가는 그 환경이 생각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정해 준 가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가정에서 살고 있다. 사회적 지위는 어떻겠느냐? 대부분 경제력이 평범하고, 이렇다 할 사회적 지위가 없다. 직업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성장(省長)이나 대통령인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기껏해야 작은 회사의 과장이나 사장으로 평범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가정생활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부모의 영향으로 자녀가 무속인의 길을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부모가 평범한 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함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이런 환경을 정해 주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 않고, 모든 일을 묵묵히, 소리 없이 조용하게 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네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길을 예비하고, 각종 조건을 예비한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시점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시점이자,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때이다. 그때 어떤 사람은 이미 부모가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아직 자녀의 신분으로 남아 있다. 즉, 결혼하여 자녀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고 미혼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하나님이 너를 택할 시기,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 다가갈 시기를 하나님은 이미 다 정해 놓았고, 환경까지 마련해 놓았다. 누구를 통해 혹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시켜 너에게 복음을 전해 줄지, 그리고 네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지를 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조건을 예비해 두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오게 되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따라 한 걸음씩 그의 사역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그의 사역 방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겠느냐? 우선,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하여 사람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다른 이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다.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은 누가 마련한 것이냐?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병 때문에 온 가족 또는 가족 중 일부가 하나님을 믿게 된다. 겉보기에는 가족이 병에 걸린 것 같지만 사실 이는 네가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련해 준 계기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늘 가정에 평안이 없고 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서 “예수를 믿으면 가정에 평안이 깃듭니다.”라고 전하는 복음을 받게 되고,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다. 이것도 하나의 계기 아니겠느냐? 가정에 평안이 없었던 것도 하나님이 준 은혜 아니겠느냐? 또 다른 이유로 믿게 된 사람도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다. 네가 어떤 이유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든 사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안배와 인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너를 택하고 하나님의 집까지 데리고 왔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이다.
지금의 이 말세 사역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예전처럼 은혜와 축복만 주는 사역을 하지 않으며, 더 이상 사람을 달래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다양한 면을 체험하면서 무엇을 보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도 보게 된다. 또한 이 기간에 하나님은 공급과 붙듦, 깨우침, 인도의 방식을 통해 사람이 그의 뜻과 그의 말씀, 그가 사람에게 준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한다. 사람이 연약하거나 소극적이거나 길이 없는 것 같아 막막해할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권면한다. 그리하여 유약한 사람의 분량을 조금씩 강하게 키워 주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며, 하나님과 협력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한다.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면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사람을 채찍질하고 징계한다. 그러나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 연약함과 유약함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인내한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다양한 사역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하며, 조금씩 그의 뜻과 진리를 깨달아 가고, 무엇이 긍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사악함이고 무엇이 어둠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람을 채찍질하거나 징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관용을 베풀거나 인내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처한 시기, 사람의 분량과 자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에게 공급한다. 그는 사람에게 많은 일을 하고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사람은 그러한 대가와 일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행한 것은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번 또 한 번 화를 면하게 되었고, 연약함으로 인해 한 번 또 한 번 하나님의 관용을 받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인류의 패괴와 인류에게 있는 사탄의 본질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 깨우침, 인도를 통해 갈수록 진리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고,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사람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행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취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왜 그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겠느냐? 어떤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이겠느냐? 즉, 그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사역하여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과 영을 불러 깨우며,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사람을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하고 있는지, 누가 사람을 지금까지 살 수 있게 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누가 창조주이고, 사람이 누구를 경배해야 하며, 어떤 길을 가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소생시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깨닫게 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게 한다. 마음이 깨어나면 사람은 더 이상 타락한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으며,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자 한다. 사람은 마음이 되살아났을 때 사탄과 완전히 결별한다. 사탄에게 더 이상 해를 입지 않고,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사탄에게 우롱당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의 취지이다.
방금 사탄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두가 사람의 삶은 행복이 없고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가 사람에게 행한 사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오니, 기분이 어떠하냐? (너무나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세심하게 마련한 모든 것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 오차가 없다는 것은 잘못이 없으므로 누군가 정정하거나 조언을 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이를 위해 행한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있다. 하나님은 시시각각 너를 보살피며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사람은 이런 환경과 배경에서 성장하니,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자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허전하냐? 여전히 소극적이냐? 하나님이 인류를 버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행하였느냐? (인류를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행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 모든 사역을 행하면서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하나님이 치른 대가를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런 적이 있더냐? (없습니다.) 지금 이 나이까지 살다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일생에서 수많은 위험과 시험을 겪게 된다. 사탄이 네 곁에서 시시각각 너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네게 재난과 불행이 닥치거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즐거워한다. 또한 네가 사탄이 던진 올무에 걸려드는 것을 즐긴다. 반대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불행과 재난을 피하도록 너를 항상 지키고 보호한다. 그러므로 평안, 즐거움, 복, 신변의 안전 등 사람의 모든 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평생의 운명은 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주재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위라는 개념이 존재하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위대하니 내가 너희를 관리하겠다. 모두 나에게 용서를 구해라.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며 인류를 위협한 적이 있더냐? (아니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는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안배해 줄 필요 없이 대충 챙기면 된다.”라고 말씀하거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더냐?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은 매우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모든 사람을 대한다. 네가 스스로를 대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게 말이다. 그렇지 않더냐?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지위를 점하고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람을 무책임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진실하게,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한다. 그렇게 행한 일들은 사람에게 복과 평안, 기쁨을 가져다주었으며, 지금처럼 무탈하고 행복하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집에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사람이 정상적인 이성과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그의 구원을 받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역하면서 사람을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대한 적이 있느냐? 가식적으로 대하며 듣기 좋은 말로 얼버무리고 외면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언행이 불일치한 적이 있느냐? “너 대신 이 일을 해 주겠다. 저 일을 도와주겠다.”라고 공수표를 날리거나 큰소리를 치고 사라진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간사함이나 거짓됨이 없으며 신실하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진실하다. 그는 사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자 사람이 자신의 일생과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는 간사함이 없으니 가장 진실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하나님을 ‘진실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 이는 하나님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인간의 관점에 치우친 단어이다. 그러나 인류의 언어가 가진 한계로 인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하나님을 진실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다소 부적절해도 잠시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자. 하나님은 신실하고 진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몇 가지 측면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은 인류와 다르고 사탄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에게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으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멘!) 하나님이 드러내는 것에서는 사탄의 그 어떤 사악함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이 행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은 사람에게 이롭고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급과 생명이 되고, 길이 되며, 방향이 된다. 하나님께는 패괴가 없다. 또한 우리가 지금 보게 된 하나님의 모든 행사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어떤 패괴도 없고, 인류의 패괴 성품, 사탄의 본질과 비슷하거나 같은 점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패괴 성품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과정에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로, 이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한다. 너희는 이를 깨달았느냐?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지금 알게 된 하나님의 거룩함의 본질을 말하겠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패괴 성품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을 보여 준다. 그 본질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모든 사역은 다 긍정적인 것만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가지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에 근거하여 사람, 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더 이상 미혹되지 않고, 잔혹한 해를 입지 않으며, 사탄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즉,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 길의 어디까지 걸어왔느냐?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래도 이제는 최소한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어떤 것이 사악한 것인지,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가 생기지 않았느냐? 적어도 이제 너희는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거룩함에 관해 말했는데, 너희가 듣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이란 무엇이냐? 다시 되새겨 보거라. 하나님의 진실함은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의 신실함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의 사심 없는 마음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대가 없이 주는 것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 아니더냐? (맞습니다.) 하나님이 드러낸 이 모든 것은 다 유일무이한 것으로, 패괴된 인류에게는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으며,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 사탄의 본질과 본성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 이런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러한 본질을 지니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러한 본질을 갖추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너희는 인류 중에서 그렇게 거룩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너희가 우러러보는 유명인이나 위인, 우상 중에 그렇게 거룩한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유일무이하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은 명실상부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명실상부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면도 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룩함이 너희가 그동안 생각하고 상상했던 거룩함과 차이가 있느냐? (차이가 있습니다.)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흔히 말하는 거룩함이란 무엇이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행위 또는 특정 사물을 묘사하거나 서술할 때 거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깨끗하고 보기 좋고 이목을 끄는 것일 뿐, 거룩함에 대한 실제적인 내용은 없다. 그것이 도리적인 면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함’의 실제적인 면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대부분 사람이 ‘거룩하다’고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것들 아니더냐? 일례로, 불교 신자들이 수련하다 앉아서 잠든 상태로 세상을 떠나면 열반에 들었다면서 그들이 거룩해지고 승천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 또한 상상이다.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를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함’이란 개념은 공허한 상상과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내용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의 본질과도 무관하다. 거룩함의 본질은 진실한 사랑이며, 더 나아가 진리와 공의와 빛의 본질이다. ‘거룩함’이란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어울릴 뿐, 그 어떤 피조물도 거룩하다고 불릴 자격이 없다. 이는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점이다. 그러니 앞으로 ‘거룩함’이란 단어는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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