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하나님의 거룩 (3) 제2부분

조금 전까지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서 사탄이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에 대해 교제해 보자. 우선, 사탄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호기심, 과학이나 비밀을 향한 탐구욕을 충족시킨다. 또한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람의 물질적인 욕구, 갈수록 높아지는 삶의 질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런 것들을 명목으로 삼아 사탄은 과학을 내세워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탄이 과학을 통해 패괴시키는 것이 비단 사람의 생각과 머리뿐일까? 우리가 보았거나 접했던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을 생각해 보자. 사탄이 과학으로 또 무엇을 패괴시켰느냐? (자연환경입니다.) 그렇다. 너희도 큰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잘 알고 있구나. 사탄은 각종 과학 정설과 과학적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시킬 뿐만 아니라 과학적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개발하고 파괴한다. 과학을 연구하면 생존 환경이 점점 개선될 것이고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물질적 수요와 삶의 질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내세우는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데 과학이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인류가 마시는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진짜로 깨끗할까?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천연 식품이냐? 대부분이 화학비료나 유전자 변형으로 재배되거나 여러 가지 과학적인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조차 천연 식품이 아니다. 요즘에는 온전한 천연 상태의 계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탄이 말하는 소위 과학적인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계란 본연의 맛이 다 사라졌다. 더 넓게 보면 공기가 망가지고 오염되었으며, 산천, 호수, 삼림, 강, 바다, 땅, 지하 모두 소위 과학적 성과에 의해 파괴되었다. 즉,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생태계와 생존 환경 전체가 소위 말하는 과학에 의해 훼손되고 못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질이 기대만큼 향상되었고 사람의 욕망과 육은 충족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사람이 생존해야 할 환경은 여러 과학적 ‘성과’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깨끗한 공기 한 모금 마실 권리조차 잃어버렸다. 이것이 인류의 비애가 아니겠느냐?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과연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고 있는 이 공간, 즉 이 생존 환경은 본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것이었다. 사람이 마시는 물, 공기, 사람이 먹는 식재료, 식물, 나무 그리고 바다까지, 이러한 생존 환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자연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다. 과학이 없었다면, 사람은 하나님 방식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어 누릴 수 있게 된 것들로 본디 행복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 그대로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탄에 의해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 환경은 이미 태초의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많은 사람이 사탄이 주입한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다룬다. 참으로 가증스럽기도 하고 또 불쌍하기도 하지 않으냐? 지금 사탄이 사람의 생존 공간과 환경을 이 모양으로 망쳐 놓았다. 인류가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지구상의 인류를 친히 멸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인류는 어디로 가게 되겠느냐? (멸망입니다.) 어떻게 멸망하느냐? 사람은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좇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깊이 연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물질적인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타났느냐? 먼저 생태계가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인류의 오장육부는 모두 이런 환경 속에서 오염되고 망가졌으며, 각종 전염병과 유행병이 도처에 창궐하여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사탄을 좇아가며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고, 과학을 이용해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자연히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알 수 있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한 걸음씩 멸망을 향해 걸어간다. 한 걸음씩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사탄이 사람의 혼을 빼놓기 위해 조제한 약과 같아서 너희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사리를 분별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이름으로 너의 흥미를 유발하고 너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세 번째 방법은 사탄이 전통문화를 이용하여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이다. 전통문화와 미신은 비슷한 점이 많다. 다만 전통문화는 이야기, 유례, 출처가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탄은 수많은 이야기를 날조하여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역사책에 실어 전통문화나 미신과 관련된 인물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예를 들면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넌 이야기, 당나라 승려가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하는 이야기, 옥황상제 이야기, 정의로운 소년 나타와 악을 저지르는 동해 용왕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 봉신연의 등등, 이런 이야기들은 중국에서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으냐?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 알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일지라도 마음과 머리에 아로새겨져 잊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미리부터 마련해 둔 것이다. 사탄이 시대별로 퍼뜨리는 각종 사상이나 전설 이야기는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갉아먹고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각종 마법과 저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즉, 네가 그러한 전통문화와 이야기, 미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마음과 머릿속에 새기는 순간, 마치 마법과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즉, 그런 문화와 사상, 전통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고, 사물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의 길을 찾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고 떨쳐 내려고 해도 떨쳐 낼 수 없는 마법과 저주이다. 게다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법과 저주에 걸리면 무의식적으로 사탄을 경배하게 되고, 마음속에 사탄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된다. 즉, 사탄을 자신의 우상 또는 자신이 숭배하고 존경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사람의 언행을 지배하게 된다. 너는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나 전설이 가짜라고 생각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상과 그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마귀와 사탄, 우상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법과 저주이다. 공감하느냐? (네.) 너희 중 향을 피우면서 부처를 숭배했던 사람이 있느냐? (네.) 어떤 목적으로 향을 피우고 부처를 숭배했느냐? (안녕을 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탄에게 안녕을 빈 것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느냐? 안녕은 사탄이 가져다주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때 참 어리석지 않았느냐? 참으로 황당하고 어리석고 유치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사탄은 어떻게 너를 패괴시킬지에 대해 열중하지 안녕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일시적인 평온함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하지만 너는 그래도 서원을 해야 한다. 네가 만약 약속을 어기거나, 서원을 저버리면 사탄이 너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사탄은 서원을 하게 해서 너를 지배하려 한다. 너희는 안녕을 빌어서 안녕을 얻었느냐? (아닙니다.) 안녕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입었고, 게다가 불행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사탄의 권세하에 안녕이란 없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적 미신과 전통문화가 인류에게 초래한 결과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마지막 방법은 사회 풍조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회 풍조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패션, 뷰티, 헤어, 미식을 가리키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에 관한 것이냐? 그것도 풍조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사회 풍조가 사람의 생각, 처세 방식, 생존 목표와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생각을 좌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에는 사악한 기운이 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 인격과 품격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과 인성, 양심, 그리고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풍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풍조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풍조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일,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풍조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러면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풍조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풍조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런 풍조들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내가 간단한 예를 들면 너희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장사를 할 때 고객이 누구이든 상도를 지켰고, 물건 가격을 제멋대로 부르는 일이 없었다. 조금이나마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지 않으냐? 신조를 지키며 장사를 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에게 일말의 양심과 인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람은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갈수록 돈, 이익, 안락함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사람은 돈을 더 중시하게 되지 않겠느냐? 돈을 더 중시하면 자신도 모르게 명예, 명성, 신용, 인격을 간과하게 되지 않겠느냐? 네가 장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다른 사람이 온갖 사기 수법으로 돈방석에 앉은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갈수록 많은 돈을 쓸어 담는다. 똑같이 장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이 더 많은 부를 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가 아프다. 그럼 너는 ‘나는 왜 저런 능력이 없지? 나는 왜 저 사람만큼 벌지 못하지? 나도 어떻게든 장사를 잘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어.’라고 하면서 돈 벌 방법을 궁리한다. 평소에 하던 대로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를 한다면 양심적으로 돈을 벌 수는 있어도 벼락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너는 이익에 눈이 멀면서 조금씩 생각이 변하게 된다. 생각이 변하는 과정에서 일의 원칙도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 남을 속일 때는 ‘이번만 남을 속이고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을 거야. 사기를 쳐서는 안 돼. 천벌을 받고 후환이 생기니까!’라고 생각하며 조금 망설인다. 처음 사기를 칠 때는 양심의 작용으로 망설여지고 마음이 찔리기 때문에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사기 치는 데에 성공하고 평소보다 많은 돈을 손에 넣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만 자신이 거둔 성공에 기뻐하며 자축한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 자신이 저지른 사기 행각을 합리화하게 된다. 사람이 도박에 물들면 도박꾼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를 치는’ 것에 물들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사기 행각을 합리화하고 받아들이게 되며, 사기를 일종의 정당한 비즈니스 행위 또는 자신이 생존하고 생활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간주한다. 그렇게 해야 빨리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기 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런 행위와 방법을 경멸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사기를 시도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마음이 점차 변하게 된다. 어떻게 변할까? 그러한 풍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사회 풍조가 주입하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사할 때 사기를 치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봤거나 뭔가를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부지불식간에 ‘사기를 치는’ 것이 너의 영혼으로 자리 잡고, 너의 중심이 되며,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할 행위로 변질된 것이다. 사람이 그러한 행위와 생각을 받아들일 때면 마음이 변하지 않겠느냐? 마음이 변한다. 그럼 너의 인격은 어떨까? 인성은 어떠하겠느냐? 너의 양심은 또 어떻겠느냐? (변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변하고, 심지어 안팎으로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너는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사탄과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사탄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이제 보니 이런 사회 풍조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 사람에게 큰 해악을 초래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크나큰 해악을 초래한다! 사탄은 그런 여러 가지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의 무엇을 패괴시키느냐? (양심, 이성, 인성, 도덕성, 생존에 대한 관점입니다.) 사람을 조금씩 타락시키지 않느냐? 사탄은 이런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사람을 악마의 소굴로 조금씩 유인한다. 사회 풍조의 영향으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돈, 물욕, 사악함, 폭력을 숭상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사람은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 마귀로 변한다!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지향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냐? 사람이 무엇을 숭배하느냐? 사악함과 폭력을 좋아하게 되는 반면 아름다움과 선함을 싫어하고, 평화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정상 인성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기보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육적인 향락을 즐기고 자신의 육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싶어 하며, 그 어떤 제약이나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한다. 사람이 이런 풍조에 빠지게 되면 그동안 습득했던 지식이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네가 잘 알고 있는 전통문화와 미신이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전통적 윤리 도덕과 예의가 사람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느냐? 예를 들어 ≪삼자경≫이 그런 풍조에서 발을 빼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아니요, 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안하무인이 된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엔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폭력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밥그릇을 차지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또한 폭력적이고 사악한 방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한다. 이 인류가 무시무시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들어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환경 속에서,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너희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느냐? 지금은 조금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지? (네.) 너희들의 말투를 들어 보니 ‘사탄이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찾으면 파고드는데, 과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구나.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느냐?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공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관음보살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누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미쳐 날뛰면서 해를 가하는 사탄으로 인해 우리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잃었고 패괴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워. 그런데 사탄이 우리를 패괴시키는 동안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던 거야?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는 느껴 본 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너희는 꽤 강렬히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말해 주는 내용을 깨달을수록 너희는 더욱 자신이 구원받을 가망이 없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조급해하지 마라. 우리가 오늘 이야기를 나눈 ‘사탄의 사악함’은 진짜 주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관련된 본질을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법과 사탄의 사악함을 얘기해야 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현재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확실히 알게 해야 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을 다룬 목적은 사탄의 사악함을 알게 하고, 무엇이 진정한 거룩함인지 더 깊이 이해시키고자 함이다.

방금 언급한 몇 가지 내용이 지난번보다 구체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희는 더 깊은 인식을 얻었느냐? (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함께 탐구하며 이야기 나눠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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