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하나님의 거룩 (3)

우리가 방금 교통한 것은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사탄이 어떻게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지에 대해 교통하도록 하자. 먼저, 사탄이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학이란 명의로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과학과 오묘한 비밀에 대한 탐색을 만족시키며, 또한 과학이란 명의로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생활의 질을 끊임없이 높이려는 요구도 만족시킨다. 사탄은 바로 그런 명의로, 과학이란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사탄이 과학이라는 방식으로 패괴시킨 것은 사람의 사상과 생각(원문: 頭腦)뿐이겠느냐? 우리가 보고 접하는 주위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서 사탄은 과학으로 또 무엇을 패괴시키느냐? (자연환경입니다.) 너희 말이 맞다. 너희도 이것에 대해 많이 느끼고, 그 해도 깊이 받은 모양이구나.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하지만 과학이 인류에게 초래한 결과는 무엇이냐? 우리는 어떤 환경들을 접하게 되느냐? 인류가 호흡하는 공기는 오염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진정 깨끗한 물이냐?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어떠냐? 대다수가 자연적인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그것은 화학 비료로 재배한 것이고, 유전자를 개량해 재배한 것이며, 또한 각종 과학적 방식으로 변종시킨 것이다.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마저도 이미 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자연적인 먹거리를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계란마저 원래 맛이 아니라 이미 사탄의 이른바 과학으로 가공된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볼 때, 전체 공간의 공기도 다 파괴되고 오염되었으며, 산천, 호수, 삼림, 강, 바다, 땅 위아래의 것이 다 소위 ‘과학의 성과’로 망가졌다. 바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전체 생태 환경과 전체 생존 환경이 이미 소위 과학으로 오염되고 망가진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의 질은 사람이 예상한 목표에 도달하여 사람의 욕망과 육체를 만족시켰을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은 모두 과학이 가져온 각종 ‘성과’에 의해 파괴되고 망가졌다. 우리는 지금 실내외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실 이런 권리마저 없다. 이것은 인류의 비극이 아니냐? 사람이 이런 생존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행복을 논할 나위가 있겠느냐? 사람은 이런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본래 이 생존 환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사람이 마시는 물과 공기, 사람의 먹거리와 식물, 나무 그리고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런 생존 환경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하나님이 정해 놓은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과학이 없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그대로 누린다면, 사람은 아주 행복하고, 시초의 것을 하나하나 다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이 모든 것이 다 사탄에게 파괴되고 훼손되어 사람의 기본적인 생존 공간은 이미 시초의 것이 아니다. 이런 결과는 무엇으로 인해, 어떻게 초래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게다가 더욱 많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의 관점과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킨 사상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그것을 대한다. 이것은 아주 가증스럽고 가련한 것이 아니냐? 지금 사탄이 사람의 생존 공간과 생존 환경을 이렇게 파괴해 놓았는데, 인류가 이대로 발전해 나간다면, 깊이 패괴되고 하나님과 적대시되는 지구상의 이 인류를 하나님이 직접 멸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친히 훼멸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인류가 이대로 발전해 나간다면 어디로 가겠느냐? (멸망으로 나아갑니다.) 어떻게 멸망으로 나아가느냐?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졌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었고,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가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는 결말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이다.

사탄이 전통문화로 사람을 패괴시킨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통문화와 미신은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 다만 전통문화에는 옛이야기나 전설(원문: 典故) 그리고 출처가 좀 있을 뿐이다. 사탄은 민간에서나 역사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꾸며 내고 만들어 내어 사람에게 전통문화나 미신 속의 인물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갖게 하였다. 예를 들면, 중국의 고전 소설, ≪여덟 신선 바다 건너기≫, ≪삼장 법사 불경 구하기≫, ≪옥황상제≫, ≪나타 바다 뒤흔들기≫, ≪봉신방(封神榜)≫…… 이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다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세부적인 것은 몰라도 대략적인 것은 다 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이 마음과 머릿속에 박혀 있어 사람은 잊지 못한다. 이런 것은 다 사탄이 일찍이 사람에게 설정해 놓은 것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퍼뜨린 사탄의 각종 사상이나 인생철학이다. 이런 것들이 직접 사람의 영혼을 해치고 좀먹게 하며, 또한 사람을 하나 또 하나의 마귀의 저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즉, 네가 일단 이런 전통적인 문화나 이야기 또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들을 받아들여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일단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너는 이런 문화와 이런 사상, 그리고 이런 전통적인 이야기에 얽매이고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며,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고,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데에는 더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마귀의 저주 속에 들어간 후,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경배하게 되고, 마음속에 사탄의 형상이 세워지게 된다. 즉, 사탄을 자신의 우상으로, 자신이 숭배하고 앙망하는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부지중에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의 언행을 제어하고 있는데, 부지중에 너는 이런 이야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진실한 인물이나 진실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부지중에 너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사상과 이런 것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무의식적으로 마귀, 사탄, 우상을 자기 집에 맞이해 들이고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너희는 이것을 공감하느냐? (네.) 너희 중에 향을 피우고 부처를 공양했던 사람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너희가 향을 피우고 부처를 공양한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평안을 비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에게 평안을 비는 것은 아주 황당한 일이 아니냐? 평안은 사탄이 가져다주는 것이냐?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아주 어리석지 않았느냐? (어리석었습니다.) 그런 행동은 황당하고 우매하고 유치하다. 그렇지 않으냐? 사탄은 너를 평안하게 할 리가 없다. 왜 그럴까? 사탄은 어떻게 하면 너를 패괴시킬 수 있을 것인가만 궁리할 뿐, 너를 평안하게 해 줄 리가 없다. 단지 너에게 일시적인 안정감만 있게 할 뿐이다. 하지만 너는 또 반드시 서원을 해야 한다. 네가 너의 약속이나 서원을 어긴다면 사탄이 어떻게 너를 괴롭히는지 봐라. 사탄은 너에게 서원을 하게 하는 동시에 또 너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가 평안을 빌 때, 평안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평안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재앙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재앙이 끊이지 않고,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되며, 그야말로 고해가 끝이 없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는 평안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적인 미신과 전통문화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결과이다.

사탄이 사회 조류를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 사회 조류에는 많은 것이 포함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옷을 입는 데에 관한 것이 아닙니까? 패션, 피부 미용, 헤어, 미식(美食)에 관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이런 것도 역시 조류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런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사상과 처세술, 그리고 사람에게 가져다준 생존 목표와 인생관에 대한 것만 말하려고 한다. 이런 것은 아주 중요한데, 이런 것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좌우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理性)도 잃게 되었다. 그럼 이런 조류는 어떤 것이냐? 이 조류는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조류가 유행할 때, 아마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봉이 되어 그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런 사상과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도 부지중에 계속 이런 조류에 감염되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조류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런 조류에 파묻히고 통제되기까지 한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그럼 이런 조류는 도대체 어떤 것이냐? 내가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면, 너희는 점차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 사람들은 장사를 할 때, 누구도 속이지 않고 제값만 받았는데, 거기에 양심과 인성의 표현이 조금 있지 않느냐? 사람에게 그런 상도덕이 있었는데, 그때의 사람은 그나마 양심과 인성이 조금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사람의 요구가 부단히 늘어나게 되면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갈수록 돈을 사랑하고, 이익을 좋아하고, 누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럼 사람이 돈을 더욱 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냐? 사람이 돈을 더욱 중하게 여길 때,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명예를 가볍게 여기고, 명성과 신용과 인격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네가 장사를 한다고 할 때, 남들이 서로 다른 수단과 갖가지 속임수로 항상 큰돈을 벌고, 설사 그 돈이 불의의 돈이라 해도 돈이 점점 많아지고, 그 집은 온 가족이 너랑 똑같은 장사를 해도 너보다 더 잘 누리는 것을 보게 되면, 너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너는 ‘난 왜 저런 재주가 없을까? 난 왜 저 사람들처럼 큰돈을 벌지 못할까? 나도 방법을 대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장사도 잘되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네가 평소의 방식대로 아무도 속이지 않고 제값을 받으며 장사하면 양심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지만, 그 돈으로는 벼락부자가 될 수 없다. 그리하여 너는 이익의 부추김을 받아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하는데, 생각이 바뀌는 과정에 너의 일처리 원칙도 바뀌기 시작한다. 네가 처음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기 칠 때는 조금 여지를 둔다. 너는 ‘이번 한 번만 속이고 다시는 속이지 말자. 남을 속이면 안 돼. 그러면 보응을 받고 화를 입을 거야. 딱 이번만 속이고 다시는 속이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처음 속일 때는 너의 마음에 거리낌이 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양심이 작용하여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거리낌과 가책이 좀 있기에, 너는 남을 속일 때 아주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너의 속임수가 성공하여 자신에게 들어온 돈이 원래보다 많아진 것을 보고 나면 그 방식이 아주 득이 된다고 여긴다. 마음은 비록 조금 찔리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번 ‘성공’은 축하할 만하다고 여기고, 조금 흐뭇해한다. 너는 처음으로 자신의 기만과 행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 ‘기만’이 일단 사람에게 물들면 마치 어떤 사람이 도박에 물들어 도박꾼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기만하는 행위를 인정하고, 그 행위를 받아들이게 되며, 부지중에 그는 기만을 한 가지 정당한 상업 행위로 여기고 또한 자신의 생존과 생활의 가장 유용한 한 가지 수단으로 여기면서 그렇게 하면 돈을 빨리 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처음에 그런 행위를 수용하지 못하고 그런 행위와 수법을 멸시하던 데에서 자신만의 방식과 자신이 몸소 그런 행위를 테스트하고 체험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은 점차 변하게 된다. 그 변화는 어떤 것이냐? 그 조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사회 조류가 너에게 주입시킨 그런 사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지중에 너는 장사를 할 때, 속이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여기고,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고 여긴다. 이 ‘기만’이 부지중에 너의 영혼이 되었고, 너의 기둥이 되었으며, 또한 너의 생존 법칙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행위가 된 것이다. 사람이 그런 행위와 사상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마음은 변한 것이 아니냐? 너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럼 너의 인격은 변하지 않았느냐? 인성은 변하지 않았느냐? (변했습니다.) 그럼 너의 양심은 변하지 않았느냐? (변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서 사상까지, 더 나아가 속에서부터 겉에까지 모두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는 너를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하고, 사탄과는 점점 합하게 하고 닮아 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은 이 사회의 조류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지 간단하고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었을 뿐이다. 이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냐? (큽니다!) 그럼 이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입히는 해는 깊지 않으냐? (깊습니다!) 사람에게 아주 깊은 해를 입힌다. 그럼 사탄이 이 하나하나의 사회 조류로 사람의 무엇을 패괴시키느냐? (양심, 이지(理智), 인성, 도덕입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생존 관점입니다.) 사람을 점차 타락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사탄은 이 사회 조류로 사람을 한 걸음 한 걸음 악마의 소굴로 끌어가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 조류 가운데서 자신도 모르게 금전과 물질을 숭상하고, 사악과 폭력을 숭상하게 한다. 그런 것들이 일단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사람은 무엇으로 변하느냐? 곧 사탄 마귀로 변한다! 그 까닭은 사람의 심리적 동향이 무엇이기 때문이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숭상하게 되었느냐? 사람은 사악과 폭력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아름답고 선한 것은 좋아하지 않고, 평화는 더욱 좋아하지 않으며, 정상 인성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부귀영화와 육체를 누리고 싶어 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면서 그 어떤 제한과 속박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었다. 일단 이런 조류에 빠지게 되면 네가 배운 지식이 너를 거기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느냐? 네가 알고 있는 전통문화와 미신이 너를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느냐? 사람이 알고 있는 전통 도덕과 예교가 사람을 어느 정도 자제하도록 도와줄 수 있느냐? 예컨대, <삼자경(三字經)>이 사람을 조류에서 발을 빼내도록 도와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 사람은 갈수록 어떻게 되었느냐? 점점 더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고, 이기적이 되고, 악독해졌다. 사람 사이에는 인정이 사라졌고, 가족 간에는 사랑이 없어졌으며,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도 이해가 없게 되었고, 사람 사이에는 기만과 폭력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람마다 속이는 수단과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살려고 하고, 거짓말과 기만에다 폭력까지 더하여 자신의 밥그릇을 차지하려고 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빼앗으려고 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며, 폭력적이고 사악한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려고 한다. 이런 인류가 매우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내가 방금 한 이런 말을 들으니, 너희는 사탄이 패괴시킨 이런 무리, 이런 세상,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 아주 두렵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두렵습니다.) 그럼 너희는 전에 자신이 아주 가련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느냐? 이제는 조금 느껴지겠지! (네.) 너희의 이런 말투는 마치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아직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마 마음속에 ‘사탄이 이렇게 광포하게, 이렇게 길길이 날뛰면서 우리를 잔인하게 해쳐 살아갈 희망도, 살아갈 자신도 없게 만들었고, 또 우리 모두가 패괴 속에서 살면서 어쨌든 사람마다 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으니, 지금 우리 마음은 정말 다 절망적이야. 그럼 사탄이 우리를 패괴시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하나님은 뭘하고 계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느낀 적도 없잖아!’라는 이런 의문이 들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실의에 빠지고 낙심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피하기 어렵다. 너희는 이런 느낌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이는 내가 한 이런 말들에 사람은 조금씩 깨닫게 되어 갈수록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고, 갈수록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조급해하지 마라. 우리가 오늘 교통하는 화제인 ‘사탄의 사악’은 우리의 진정한 주제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에 대해 말하자니 사탄의 사악함과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켰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것으로 인류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도대체 어느 지경에까지 패괴되었는지를 더 뚜렷하게 알게 해야 했었다. 이런 것들을 말하는 목적 중 하나는 사람에게 사탄의 사악함을 알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거룩이 무엇인지를 더욱 깊이 알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알았겠지?

조금 전에 말한 이 몇 가지에 세부적인 내용이 지난번보다 더 많아지지 않았느냐? (많아졌습니다.) 그럼 너희의 인식이 좀 더 깊어졌느냐? (깊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