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역과 진입 9>(발췌문 196)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사역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생지옥에 내려와 하늘 끝까지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궁상맞은 인간 세상을 원망한 적 없고, 사람의 패역을 질타한 적도 없으며, 도리어 크나큰 치욕을 참으면서 자신이 친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 지옥에 속할 수 있겠느냐? 어찌 지옥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위해서, 인류 전체가 하루빨리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치욕과 억울함을 참고 땅에 내려와 친히 ‘지옥’과 ‘음부’,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단 말이냐? 무슨 이유로 또 하나님을 원망한단 말이냐? 무슨 낯짝으로 다시 하나님을 마주한단 말이냐?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음란한 땅에 와서 단 한 번도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사람의 박해와 억압을 감내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무리한 요구에 반항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 한 마디 없이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의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 등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을 할 뿐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의 생존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이 고난과 칠흑처럼 어두운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사람을 구해 내려고 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의 그 절박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느냐? 하나님의 불처럼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로 얻은 것은 뜻밖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 냉혹하고 무정한 눈동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훈계와 욕설, 그리고 냉소와 조롱, 비방과 폄하, 사람의 비웃음, 유린과 저버림, 사람의 오해와 원망, 소외와 회피, 기만과 공격, 쓰디쓴 결과뿐이었다. 따뜻한 말씀은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로 돌아왔으니, 하나님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전반측하며 아버지와의 이별보다 천배나 더한 고통을 참아 내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 ‘훈계’와 ‘책망’을 참아 내야 했다. 하나님이 ‘낮추고 감춘’ 대가로 얻은 것은 사람의 차별, 불공평한 시선과 대우였다. 하나님의 묵묵한 인내와 포용으로 얻은 것은 인정사정없이 하나님을 밟아 죽이려 하고, 하나님을 갈라진 땅 틈 사이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사람의 탐욕스러운 시선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보기 드물게 똑똑해져’, 사람 눈에 만만해 보이고 사람들이 깔보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 깔아뭉개고는 마치 ‘왕 노릇을 하려는’ 듯, ‘대권을 독차지하여’ ‘수렴청정’하려는 듯 스스로를 높이 추켜올리고, 하나님에게는 고분고분 순순히 ‘무대 뒤의 감독’ 역할을 맡겨 반항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마지막 황제’처럼 분장시켜 자유라곤 전혀 없는 ‘꼭두각시’ 역할을 맡게 했다. 사람의 작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니,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사람의 연약함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한단 말이냐?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관대함을 누릴 자격이 있더냐? 계속되는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은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하였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이 그에게 아주 작은 온정이라도 베풀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오래도록 사람의 위로를 얻지 못했고, 돌아온 것이라고는 설상가상 식의 공격과 괴롭힘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탐욕스럽고, 사람의 욕망은 너무 커서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어 하고, 무리한 트집을 잡으면서 하나님께 약간의 자유도, 일말의 발언권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울분을 참으면서 묵묵히 사람의 조종을 받아야 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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