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제 4 부

다음을 보자. 하나님이 말씀했다. “너는 너의 남편을 사모하고 너의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다스린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몽둥이로 단속하며 여자를 노예로 여긴다는 그런 뜻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이냐? (여자를 돌봐 주고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이 ‘책임’의 의미와 가깝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해 죄를 저지른 일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여자가 먼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뱀에게 유혹된 다음, 남자가 자기와 같이 유혹에 넘어가도록 하여서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화가 난 하나님은 앞으로 여자는 나서지 말고 무슨 일이든 남자와 의논하고, 남자가 결정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그렇다면 여자에게도 결정할 기회를 줄 수 있느냐? 줄 수 있다. 여자는 남자와 의논할 수도 있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자기 남편, 자기 남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니까 큰일은 남자와 의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여자로서 너는 네 남편과 동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편이 집안일 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이 가정과 결혼 관계에서 집안의 주인 역할을 하고, 너는 무슨 일이든 남편과 의논해야 하는 것이다. 성별의 차이로 인해 여자는 생각, 도량, 관점, 또 대외적인 여러 가지 일에서 남자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성별이라는 차이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남자에게 특별한 권력을 주었다. 가정에서 남자가 ‘주’고 여자가 ‘부’인 것이다. 여자는 자기 남편을 보조하거나 자기 남편 곁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너의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라는 말은 남성이 여성보다 지위가 높다거나 남성이 사회 전체에서 주도적인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단지 결혼에, 그리고 가정에 적용되는 말이고, 단지 남녀가 가정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할 때에 남자가 사사건건 통제하며 여자에게 강요하라는 말이 아니다. 남자가 적극적으로 집안의 무거운 짐과 책임을 담당하게 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를 관리하며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것은 남자에게 특별한 책임을 부과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커다란 원칙 앞에 남자는 앞장서서 책임을 짊어져야 하지 여자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으면 안 된다. 또 여자가 사회에서 모욕과 따돌림을 당하거나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남자가 나서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이, 하나님이 “너의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라고 했으니까 몽둥이를 들고 소리 지르고 통제하며 여자를 노예처럼 마음대로 대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전제와 틀 안에서 남성, 여성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 다만 남편으로서의 남성에게 하나님이 그에 해당하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했을 뿐이다. 이것은 일종의 책임일 뿐, 특별한 권세가 아니고,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너희 둘은 평등하고, 남성과 여성은 모두 하나님이 만들었다. 다만 남성에게 하는 특별한 요구가 있으니, 하나는 바로 가정의 무거운 짐과 책임을 짊어지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자는 앞에 나서서 남성 혹은 남편이라는 역할의 책임과 의무, 즉 여자를 보호하는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여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자기 여자가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속된 말로 여자를 힘들게 하지 말고, 여자가 하면 안 될 고생을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남자가 승진하기 위해, 혹은 혼자 잘살고 돈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자기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고 우러름을 받기 위해서 자기 여자를 상사에게 첩이나 애인으로 제공하고, 자기 여자가 몸을 팔게 했다. 그런데 여자가 몸을 팔아 자기 목적이 달성되자 이제는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팽개쳤다. 이건 어떤 인간이냐? 이런 남자가 없느냐? (있습니다.) 이건 마귀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에게 여자를 다스리라고 한 것은 사실상 책임을 다하고 자기 여자를 보호하라는 말이다. 성별이라는 생리적 각도에서 보면 남성이 일을 바라보는 사상 관점, 경지, 식견이 여러모로 여성보다 뛰어나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너의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라고 하면서 여자를 남자에게 맡긴 이상, 남자는 집안의 부담을 짊어지고, 또 여러 가지 중대한 일 앞에서는 자기 여자를 보호하고, 아끼고, 헤아리고 이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여자를 시험에 밀어 넣어서는 안 되고, 한 남편, 한 남자가 져야 할 책임을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정과 결혼의 틀 안에서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 네 여자는 너를 자신이 의탁하고 인생을 함께할 만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믿을 수 있고, 네 어깨는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자가 너를 의지하려 할 때, 남편인 네가 중대한 일을 결정하고 처리해 줘야 할 때, 이불 뒤집어쓰고 잔다든가 술이나 도박을 하러 간다든가 여기저기 쏘다닌다든가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너는 비겁한 자이고, 좋은 남자가 아니다. 그건 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남자가 돼서, 중요한 일은 뭐든지 여자가 나서게 만들고, 남자보다 연약한 역할인 여자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풍파 속으로 밀어 넣고, 온갖 번잡한 크고 작은 일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면, 그건 좋은 남자가 할 일도, 좋은 남편이 보여야 할 태도도 아니다. 네 책임은 네 여자가 너를 사모하고 동반하고 네가 잘살도록 보조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네가 져야 할 책임이 또 있다. 그녀는 너에게 책임을 다했는데, 그럼 너는 그녀에게 책임을 다했느냐? 그녀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마음 편하게 해 줬다고 다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중대한 일, 시비가 걸린 일 앞에서 그녀 대신 매사를 정확하고 올바르고 타당하게 처리해서 그녀의 근심을 없애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너에게서 혜택을 얻게 하고, 너는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자는 이런 것에서 결혼의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아무리 달콤한 말로 비위를 맞추고, 평소에 그녀와 함께 잘 보낸다 해도, 중대한 일 앞에서 네 여자가 너를 믿고 의지하게 하지 못하고, 네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지지 못해 연약한 여자가 앞에 나서서 굴욕을 견디거나 고통을 견뎌야 한다면 그런 여자는 행복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너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남자한테 시집을 간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기 결혼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의 앞날과 인생에 희망도 빛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기댈 수 없는 남자,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남자, 비겁한 자, 무능한 자, 겁쟁이를 만났기 때문에 그녀는 그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남성이 자신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인성에 갖춰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남자에게 맡긴 결혼 생활에서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그러니 여자는 결혼하고 싶고 자신의 반쪽을 찾고 싶다면 최소한 먼저 이 남자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그의 생김새, 키, 학력, 재산, 돈 버는 능력은 그다음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인성이 있는지, 책임감이 있는지, 넓고 든든한 어깨가 있어서, 네가 기대야 할 때 쓰러지지 않고 어깨를 내어 주고, 버텨 줄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남편 된 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 그가 그런 사람인지,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은 둘째 치고, 최소한 하나님 보기에 인성이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가난하든 부유하든, 삶의 질이 어떻든, 집안에 뭐가 있든, 두 사람 성격이 맞든 안 맞든, 최소한 너와 결혼한 그 사람이 너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너에 대해 책임감이 있고, 마음속에 네가 있어야 한다. 어여삐 여기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것도 좋다. 최소한 마음에 네가 있어야 하고,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그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네 생활은 행복하고 너의 나날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네 앞에 놓인 길도 막막하지 않을 것이다. 한 여자로서 결혼한 남자가 늘 믿을 수 없고, 무슨 일만 생기면 도망쳐 숨기 바쁘다면, 아무 일 없을 때는 마치 자기가 능력 있고 대단한 사내대장부라도 되는 것처럼 큰소리치다가도 일만 생기면 슬슬 뒷걸음질친다면, 너희가 볼 때 그 여자는 속이 상하지 않겠느냐? (속상할 것입니다.) 행복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품행이 바른 여자, 좋은 여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평소에 저 사람을 잘 챙기고, 지켜 주고,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아내 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데, 이 남자한테는 미래가 안 보여.’ 이런 결혼은 고통이 아니냐? 그렇다면 여자가 느끼는 이런 고통이 그녀의 반쪽인 남성과 관계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이건 남성의 책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남성은 여성이 다사스럽고 바가지를 잘 긁고 따지기 좋아한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반성해 봐야 한다.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대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서로가 반성하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분은 서둘러 바로잡고, 서둘러 고치고 보완한다면 아직은 늦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좋습니다.)

계속해서 살펴보자. 그다음은 바로 하나님이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게 했던 분부다. 하나님이 말씀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땅은 너로 인해 저주받고 너는 평생 수고해야 그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고 네가 먹을 것은 밭에서 나는 채소이니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니 이는 네가 흙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 3:17~19, 중국어성경 직역) 이 말씀은 주로 하나님이 남성에게 하는 분부다. 어떤 배경에서든, 요컨대 하나님이 남성에게 분부한 이상 하나님의 분부는 남성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가정에서 다해야 할 의무와 해야 할 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요구한, 남성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결혼한 다음 가정의 생계원을 책임지는 것이다. 즉, 남성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생계를 꾸릴 수 있다. 남성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나가서 일해야 한다. 지금 말로 하면, 나가서 직장에 다니거나 일해서 돈을 벌거나 땅에 곡식을 심고 거둬서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남성은 수고스레 일해서 집안의 노인과 아이들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남편 되는 남성에게 내리는 분부로, 이는 그의 책임이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남성은 이런 말을 강조해선 안 된다. “어이쿠, 몸이 좋지 않구나!”, “아이고, 지금은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 “난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왜 결혼했느냐? 가정을 부양할 능력도, 수고스레 일해서 집안의 노인과 아이들의 생활을 책임질 그런 능력도 없으면서 왜 결혼했느냐? 네 말은 무책임한 소리다. 우선 하나님은 남성에게 열심히 일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하나, 남성에게 수고스레 일해야만 땅에서 거둔 소산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꼭 농사를 지어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고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서 남성의 근육과 뼈는 그렇게 단단하고 튼튼하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남성과 다르게 연약한 것이다. 하나님이 남성, 여성에게 만들어 준 근육과 뼈는 다르다. 남성은 태어나면서부터 힘들게 일해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 집안의 노인과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가 바로 가정의 주력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분부하지 않았다. 그럼 여성은 가만히 앉아서 콩고물만 받아먹으면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차려진 음식만 먹으면 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비록 여성에게는 가정의 생계 부담을 짊어지라고 분부하지는 않았지만 여성도 놀면 안 된다. 하나님이 여성에게 분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성은 생계에 수수방관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게 아니다. 여성도 자신의 책임을 다해서 자기 남편이 한집안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거들어야 한다. 여성은 반려자일 뿐 아니라, 동시에 남성이 가정에서 다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일도 도와야 한다. 옆에서 팔짱만 끼고 있으면 안 되고, 장난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고, 가만히 있다가 차려진 음식만 먹으려 해서도 안 된다. 두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남성, 여성이 다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한 것이고, 잘 완수한 것이다.

계속해 보자. 하나님이 말씀하였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고 네가 먹을 것은 밭에서 나는 채소이니라.” 봐라. 하나님은 남성의 수고에 부담을 추가했다. 수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땅에서 자라는 잡초도 너더러 뽑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네가 농부라면 농사짓는 일 말고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제초 작업도 해야 한다. 쉴 틈이 없다. 너는 충분히 수고해야 한 집안의 생계를 꾸릴 수 있다. 하나님이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니”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바로 남성의 수고에 추를 더 얹어 놓은 것이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느냐?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이다. 그러니까 네가 숨이 멎고 일생이 끝나면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네 책임은 끝이 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남성에게 하는 분부이자 남성에게 하는 명령, 남성에게 부여한 중요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므로 너는 도망칠 수 없다. 그래서 온 사회, 혹은 온 인류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어쨌든 남성이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받는 압박감이 여성에 비해 훨씬 크다.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지배에서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남성은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남성이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특히 결혼이라는 틀에서 가정이 있고 배필이 있는 남자는 생활이 어렵고 힘들고 지치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거부해서는 안 된다. “난 이런 책임은 다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고생하고 싶지도 않고요.” 네가 이런 말을 한다면, 너는 결혼을 그만두거나 결혼을 거부하는 쪽을 택하면 된다. 그러니 너는 결혼하기 전에 우선 잘 생각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결혼한 남성에게 짊어지라고 요구한 책임이 무엇인지, 네가 그 책임을 다하고 잘할 수 있을지, 네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하나님이 너에게 내린 분부, 하나님이 너에게 준, 한 가정 안에서의 부담을 짊어질 수 있을지를 말이다. 만약 잘할 자신이 없거나 잘할 마음이 없고 하기 싫다면, 네가 그 책임과 의무, 가정에서 그리고 결혼의 틀에서 짊어져야 할 부담을 거부한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무거운 책임과 부담을 짊어진다는 의미이다. 그건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비록 결혼은 신성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적어도 엄숙한 것이다. 사람은 결혼에 대해 단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결혼은 육적인 정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일시적인 감정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책임, 일종의 의무다. 물론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결혼 생활에 책임을 짊어질 만한 능력과 자신감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일종의 인정이자 검증이기도 하다. 만약 네가 자신에게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짊어질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거나 혹은 이런 일이 모두 미지수라면, 또는 처음부터 결혼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 그것이 귀찮다면, 가정생활의 번잡한 일들과 중대한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고 싶지 않다면, 그저 혼자인 게 좋아서 “하나님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사는 게 좋아.”라고 한다면, 결혼을 거절해도 좋고 심지어 결혼을 그만둘 수도 있다.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인류 최초의 결혼에 대해 했던 여러 가지 말씀과 정함으로 볼 때, 결혼은 유희도 아니고, 아이들 장난도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무덤도 아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하나님이 정한 것이다. 처음 인류가 생겼을 때부터 하나님이 미리 정하고 안배해 놓은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말하는 “결혼은 무덤이다.”, “결혼은 성곽이다.”, “결혼은 한 편의 비극이다.”, “결혼은 재난이다.”와 같은 소리는 말이 되느냐? (말이 안 됩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건 단지 패괴된 인류가 결혼을 왜곡하고 패괴시키고 또 오명을 씌운 후 이해한 결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정당한 결혼을 왜곡하고 패괴시키고 오명을 씌운 다음,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같잖은 궤변을 늘어놓고, 헛소리를 퍼뜨렸다. 결국 하나님 믿는 사람들도 거기에 미혹되어 결혼에 대해 그릇되고 기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너희들도 미혹되고 패괴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교제해서 결혼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누군가 결혼이 뭔지 아느냐고 물을 경우 너는 또 “결혼은 무덤이다.”라고 대답하겠느냐? (아닙니다.) 그건 올바른 소리냐?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느냐? 결혼이 하나님의 안배, 하나님의 정함인 이상, 사람은 결혼을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사람은 제멋대로 날뛰며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음란하게 행동해서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결혼은 무덤이라고 한다. 이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고 사서 고생한 것이니 원망하면 안 된다. 그건 하나님과 무관하다. 그렇지 않으냐? 결혼은 무덤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과 긍정적 사물에 대한 사탄의 왜곡이자 정죄다. 긍정적 사물일수록 사탄과 패괴된 인류에 의해 사악한 사물로 왜곡된다. 정말 괴이하지 않으냐? 사람이 죄 속에 살면서 음란한 짓을 일삼고 삼각연애를 하는 것을 그는 왜 말하지 않느냐? 불륜을 그는 왜 말하지 않느냐? 정당한 결혼은 불륜이 아니고, 음란이 아니다. 육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장난도 아니다. 당연히 무덤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사물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결혼을 정하고 안배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부탁이 있고 분부가 있다. 물론 하나님이 결혼 당사자 양측에 분부한 책임과 의무가 있고, 또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한 말씀이 있다. 결혼은 단지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이 이룰 수 있다. 여기에 하나님이 한 남자를 만들고 또 한 남자를 만들어 그들을 결혼시켰다는 말이 있느냐? 없다. 두 남자, 혹은 두 여자의 결혼과 같은 동성 결혼은 없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만이 있을 뿐이다. 결혼한 양측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구성된다. 반려자이자 도우미로서 서로 동반하고, 서로 돌보고, 서로 책임을 다하며 좋은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상대와 함께 좋은 인생길을 가고 상대와 함께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비롯한 다양하고 특별한 시기를 함께 보내고, 물론 평범한 날들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의 양 당사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하나님의 부탁이다. 하나님의 부탁이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실행해야 할 원칙이다. 따라서 결혼한 모든 이에게 결혼은 의미가 있다. 결혼은 네 인생 경력과 식견, 또 네 인성의 성장과 성숙, 완숙에 보조적인 작용을 한다. 반대로 네가 결혼하지 않으면 너는 부모와 함께 살거나 혼자 일생을 살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형적인 결혼, 부도덕하고 하나님이 정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겪는 것은 정당한 결혼 아래 네가 얻게 되는 인생의 경력, 경험, 체험, 인성의 성장, 성숙, 완숙이 아니다. 결혼 생활에서 두 사람은 상호 동반과 지지를 체험하게 되는데, 물론 두 사람이 생활에서 발생하는 갈등, 언쟁과 모순도 체험하게 된다. 또한 자녀를 낳고 기르는 고통도 함께 체험하고, 자녀를 가르치고 양육하고 노인을 부양하는 경험도 체험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성장, 다음 세대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는 등 자신의 인생 여정을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면서 일생의 체험, 경험, 경력이 풍부하고 다채로워진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기 전, 하나님 사역,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기 전, 미리 이런 인생 여정을 겪고, 거기다가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게 된다면 너의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더 풍부해지고, 경험과 체험도 더 많아질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정한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네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 남자와 여자의 책임과 의무, 아내와 남편의 책임과 의무를 직접 이행하는 것인데, 그건 당연한 것이다. 만약 네가 네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네 결혼은 분명 엉망이 되고, 실패하고, 결국 파탄이 날 것이다. 너는 파탄 난 결혼, 실패한 결혼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결혼은 너에게 갖가지 번거로움, 얽매임, 고통과 불안을 가져다줄 것이다. 결혼한 양 당사자가 솔선수범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둘 사이에는 다툼이 벌어지고 갈등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이 잦아지고 갈등이 깊어지면 결혼은 금이 가고, 금이 오래가면 그 금을 없애기가 힘들다. 이런 결혼은 반드시 파국으로 치닫고 멸망으로 치닫는다. 이런 결혼은 명백한 실패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이 정한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별로라고 생각된다. 왜 너에게 이런 인식이 생기겠느냐? 결혼이라는 틀에서 네가 한 것 중에는 하나도 하나님 요구와 분부대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기호, 바람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상상을 충족시키려고만 했을 뿐, 한 번도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자제하고 바꿔 본 적도, 어떤 고통을 견딘 적도 없다. 오직 자기 이유만 내세우고, 자기 이익, 자기 기호만 내세우고 한 번도 상대를 고려해 본 적이 없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결혼은 파탄이 난다. 파탄 난 근원은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마땅히 한몸이어야 할 부부마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서로 헤아리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혹은 상대를 위해 뭔가를 바꾸거나 내려놓지 못했다. 이 인류가 어느 정도까지 패괴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혼이 사람의 그 어떤 행위도 단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욕을 내려놓게 만들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온 그 어떤 훌륭한 도덕 준칙, 풍조로도 사람을 좋게 바꿀 수 없고, 혹은 사람의 양심과 이성을 유지시킬 수 없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일을 이해할 때는,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순수하고 올바른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인다면 사람은 올바른 각도와 관점으로 결혼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결혼을 바라보는 입장, 관점이 올발라야 하는 목적은 결혼의 개념과 올바른 정의를 알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결혼에 직면했을 때, 정당하고 올바르고 정확하고 적절하고 합리적인 실행법을 갖춤으로써, 사탄이나 사악한 세상 조류의 온갖 사상에 오도된 상태로 결혼이라는 일을 대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결혼을 선택할 때, 여성은 상대가 하나님이 말하는, 남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사람인지 봐야 하고, 네가 일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봐야 한다. 남성은 여성이 가정생활을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자신의 결점과 문제점을 바꿀 수 있는지 등을 잘 봐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잘 알아봐야 한다. 상상이나 일시적인 취미와 관심사에 따라서는 안 되고, 더욱이 사탄이 주입한 애정관이니 애정론이니 하는 잘못된 사상에 기대어 맹목적으로 결혼을 선택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교제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결혼에 대해 지녀야 할 사상 관점과 서야 할 각도와 입장, 또 결혼이라는 일을 대할 때 사람이 선택해야 할 실행, 지켜야 할 원칙을 잘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는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결혼 자체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서만 자세히 얘기해 보았다. 이 주제는 이제 확실히 얘기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확실히 얘기했는데, 너희는 결혼에 대해 아직도 원망을 품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전에 너와 결혼했던 그 사람, 네가 떠나온 그 사람이 아직도 원망스러우냐? (아닙니다.) 그럼 결혼에 대한 기형적이고도 편집적인 이해와 관점, 심지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일부 유치한 환상이 아직도 존재하느냐? (아닙니다.) 이제는 실제적인 이해와 관점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단순히 일상을 꾸리는 차원이 아니라 정상 인성의 생활, 사람의 책임과 의무에 관계된다. 나아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깨우고 요구하고 분부한 일부 더욱 실제적인 준칙과 원칙에 관계된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완수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고, 사람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다. 이것이 결혼의 실제 정의이자 실제적인 존재 의미이다. 그리고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것이기도 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자.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2023년 1월 7일

이 책에 사용된 한글성경 번역본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외의 경우는 따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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