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재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제 1 부)

하나님의 주재를 알아 가는 것, 이는 매우 깊은 공과이다.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진리도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알아 감에 있어 많은 경우에 사람은 안목이 좁아 늘 눈앞만 본다. 늘 옳고 그름, 시비, 흑과 백의 관점에 따라 혹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가늠하며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럼 무엇이 옳은 것이냐? 하나님이 한 것이라면 모두 옳다.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는 것이 옳으냐? (옳습니다.) 하나님이 한 종족을 일으켜 번창하게 하였는데, 너는 그 종족이 번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종족은 어째서 번창하게 된 것일까? 유대인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사람의 관점에서는 일단 하나님이 노하고 저주하면 그들을 완전히 멸해야 마땅하겠지만, 이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하나님은 저주하고 징벌한 후 그 민족을 살아남게 하였고, 그들에게 그들의 뿌리를 남겨 두고,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다가 마지막에는 나라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할 수 없으며, 그들을 징벌한다는 그 말도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주재는 이렇게 기묘하다. 옳고 그름과 시비의 관점에서 본다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과 직면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 같지 않고 너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진리로 삼아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냐? 그것은 사람의 관념으로 초래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로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행사, 그리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는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한정적인 것’을 어떻게 타파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겠느냐?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고, 꿰뚫어 볼 수 없는 일이 닥치면 섣불리 정의 내리지 말아야 하며, 해결 못 하는 문제가 있어도 맹목적으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사람이 가장 먼저 갖춰야 하는 이성이다. 만약 네가 “그건 하나님께서 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리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네가 무엇을 꿰뚫어 볼 수 있느냐? 네가 감히 하나님을 대신해 판단을 내린다면 너의 이런 행위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의 생각과 상상의 범주 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위대하고, 지극히 예측하기 어렵고, 지극히 심오하고, 지극히 기묘하며,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지혜롭다! 왜 ‘지극히’라는 말을 쓰겠느냐? 바로 사람은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피조물이니 하나님을 온전히 측량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네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없어져야 약간 이성적이 된다. 하나님을 규정하려 하지 마라. 네가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아야 이성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늘 하나님을 규정하며 “하나님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하셔요. 이렇게 한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절대’라는 단어를 덧붙였는데, 어떠하냐? (비이성적입니다.) 네가 하나님이 지극히 기묘하고 지혜롭다고 한 후, 또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모순되지 않느냐? 이는 진실한 인식이 아니다. 늘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고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할 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중국에 나타나 사역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네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네 마음속에 있는 관념과 상상, 그리고 생각의 제한 때문이 아니겠느냐? 너는 미국, 영국 또는 이스라엘 등 나라는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뛰어넘은 일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중국에서 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단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을 일으켰다. 이는 너무나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배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며, 기묘하고 측량하기 어렵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며, 기묘하고 측량하기 어려우며, 지혜롭고 심오해서 헤아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언어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본질을 형용한 것인데,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하고 측량하기 어려우며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런 말들로 총정리를 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사람은 또 어떤 공과를 배웠느냐?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관념과 상상이 모두 뒤집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관념들은 어떻게 생긴 것이냐? 바로 네가 본 것에 근거한 것이다. 바로 중국은 빈곤하고 낙후되어 있으며,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이 박해받으며, 자유와 인권이 없고, 중국인은 교육도 잘 받지 못하고, 국제적인 지위 또한 매우 낮으며, 게다가 중국인의 외모조차 동아병부(東亞病夫)의 불쌍한 모습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중국에 성육신하여 그의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관념 아니겠느냐? 지금 보면 이 관념이 맞느냐, 틀리느냐? (전부 다 틀렸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는지, 그것이 낮춤과 감춤인지, 또는 그 의의와 가치가 얼마나 심원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이 부분은 얘기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는 이 일과 사람의 관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둘이 매우 크게 충돌하지 않겠느냐? 너무나 크게 충돌해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다. 이는 하늘의 비밀로, 누구도 알 수 없다. 설령 천문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예언가를 모두 불러온다 해도 예측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아무도 예측해 내지 못한다. 설령 고대와 현대의 능력이 있는 사람을 모두 다 한곳에 불러 모아 함께 분석하고 토론하거나, 또는 천체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연구한다고 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류가 너무나 보잘것없고 무지하며 식견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히 측량할 수 없으면 측량하지 마라. 네가 측량하면 마지막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너의 관념은 진리가 아니며, 너의 관념과 하나님이 하려는 것은 사실상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인류가 갖춘 그 정도의 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는데, 어떤 일도 측량할 수 없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으니 마음속으로 조금 이해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조금 알게 되지 않았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 저희와 상의하시지 않아요. 천체 현상이라도 저희에게 보여 주셔도 되는데 말이죠. 그래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려는지 저희가 알 수 있잖아요. 하다못해 예언가를 통해 예언해 주셔도 되잖아요.” 너에게 천체 현상을 보여 주어도 네가 알지 못하며, 예언가 또한 그런 능력이 없다. 하나님이 영적 세계에서 한 일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비밀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인류 가운데서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렇게 은밀하다. 정말 능력 있는 예언가나 천문학자라도, 각 분야의 학자, 전문가, 과학자라도 그들이 아무리 연구한다 해도 하나님의 일을 연구해 낼 수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이 과거에 한 사역을 연구하면, 약간의 비밀이나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분석해 낼 수도 있고, 어쩌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한 뜻에 근접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어찌 할 계획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늘 하나님을 온전히 측량하려고 하면 안 되는데, 관찰과 연구 및 장시간의 고찰과 체험, 다방면의 분석, 마음과 공을 많이 들이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찌 할 것인지를 온전히 측량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결과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측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이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이성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순종, 이것은 전제 조건이다. 순종의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기초 위에서 네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진리와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이며 네가 얻으려는 보물이다. 외부의 큰일에 있어, 예를 들어 국제 정세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는지, 하나님이 이 인류를 어떻게 인도하였는지를 네가 알 수 있다면 더 좋다. 만약 네가 “저는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는 그런 자질과 지능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에게 진리를 공급해 주시고 저의 성품을 변화시키시는지에만 관심이 있어요.”라고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네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결국에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진리는 바로 사람의 성품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며, 사람이 추구하고 얻어야 하는 생명이자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얻는 지혜는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많은 일을 한 방식을 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 하나님의 저의와 목표는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인지를 네가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말과 일이 너무 심오해서 네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의 마음속에 느낌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한 인식이 생기게 된다.

아브라함 이야기를 먼저 좀 해 보자. 아브라함은 85세까지 살았을 때 아들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 하나를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의 아내인 사라는 어떤 반응이었느냐? 그녀는 마음속으로 ‘내가 이미 늙어 아기를 낳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이는 사람의 관념 아니겠느냐? 그녀는 사람의 관념으로 하나님이 하는 일을 가늠했기 때문에 의심하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어떤 방법을 취했느냐? 그녀는 하녀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였다. 말해 보아라. 그녀가 한 일을 하나님이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다음 해에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다음 해 이맘때에 사라가 그의 아들을 낳을 것이며 또한 가나안 전 지역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히 기업으로 줄 것을 약속하였다. 다음 해에 사라는 아들 이삭을 낳았다. 이삭은 여주인이 낳았기 때문에 기업을 얻을 아들이었지만, 이스마엘은 하녀가 낳은 아이여서 기업을 얻을 수 없었다. 훗날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났는데, 하갈은 이스마엘을 데리고 사막 지대로 갔다. 사막에서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죽음에 직면하게 되자 하갈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제가 살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있어요.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마실 물을 주었는데, 그리하여 그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훗날 사막은 그들의 생존의 땅이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후손이 번성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지금의 중동 사람과 아랍 사람이다. 지금 네가 보다시피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 일을 허락한 것이다. 이는 외부 세계의 대세로, 이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하나님의 행사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행사가 있었다. 이는 누군가 몰래 어떤 일을 했는데 하나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고,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정세에 균형을 맞추고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이스마엘 지파의 생존을 허락하고 약속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가자지구와 예루살렘을 쟁탈하는 등 줄곧 이스라엘 사람과 영토를 두고 싸워 왔다. 너는 이 일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며, 사람은 하나님이 실책했거나 제대로 감시를 못 해 사람이 허점을 파고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졸다가 감시를 못 했고, 그 결과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하나님이 그들 모자를 불쌍하게 여겨 그들이 사막 지대에서 생활하도록 안배했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그러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획이 있었다. 각 인종의 탄생과 존재, 즉 각 종족과 각기 다른 피부색의 인류는 전체 인류의 균형에 모두 기여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네가 세계정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사 아니겠느냐? 한 인종의 번식 속도가 어떤지, 지구상에 이 인종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지구상에서 그리고 전체 인류 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들이 모두 어떤 일들을 하는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포함해서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다. 나쁜 일이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 사람은 나쁜 일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될 리가 없으며 모두 사탄이 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탄 또한 하나님 손안에 있지 않으냐? 어떤 사람은 “사탄이 마음대로 하는데, 하나님께서 통제하지 못하시는 거죠.”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이 논리대로 추리하면 틀렸다. 이 일은 논리대로 추리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쁜 일이고, 어떤 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일이지만 모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다. 너는 하나님이 좋은 일만 주재하고 나쁜 일은 주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지배하고 다스리며, 이 모든 것에는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인데, 이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면 진리를 깨닫게 된다. 만약 네가 나쁜 일을 규정하고 또 나쁜 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쉽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대적하게 되기 때문에 이는 옳지 않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란 무엇이냐? 사람은 눈앞에 발생하는 나쁜 일만 볼 수 있다. 나쁜 일이 생긴 지 10년 또는 20년 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보지 못한다. 심지어 천 년이나 이천 년 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세계정세 속에서 그리고 전체 인류 가운데서 그것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지,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 사람은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이다. 세계정세의 발전과 전체 인류의 발전, 이것이 간단한 일이겠느냐? 어디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떤 큰 사건이 터지든, 전염병이 생기거나 지진이 일어나든 하나님이 모두 주관하고 있다! 일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터무니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주관하신다면, 마귀가 하나님 선민을 탄압하고 학살하며 잔혹하게 박해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건가? 하나님께서 시키신 건가?’ 이렇게 보는 것이 옳으냐? 이게 말이 되느냐? 이는 하나님을 부정적인 입장에 놓은 것인데, 이는 틀렸다.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나님은 만유를 움직이는데, 만유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산, 하천, 나무, 식물, 인류 등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 나아가 영적 세계의 마귀, 사탄, 각종 생령과 요괴도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어떤 시기에 나와야 할 때 그들은 풀려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주재하고 안배하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 어떤 성과가 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백 년이 지난 후에도 어쩌면 여전히 알지 못하고 인류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천 년이 지난 후에는 비로소 납득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너무나 옳다. 너무나 잘됐다. 정말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야!’ 이로써 인류는 하나님이 한 것이 모두 진리이고 잘못된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일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가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 단계의 사역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예수님은 정상적으로 생로병사 하지 않으셨어. 어떤 사역을 하시기도 전에 유다에게 배반당했고 그러고는 병사에게 잡혀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희롱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 이게 실패가 아니란 말이야?’ 십자가에 못 박히면 실패한 것이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해 정부에 넘겼는데, 정부가 대표하는 것은 무엇이냐? 정부는 사탄의 세력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가 사탄의 손에 넘겨진 것은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겉으로 보기에는 나쁜 일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큰일 났네. 마귀가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시켰어. 이는 좋은 일이 아니야.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감시를 못 하신 거야. 그렇게 큰 능력은 없으신 거라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에게 배반당해 집권자의 손에 넘겨질 수가 있지? 이건 분명 사탄의 손에 넘겨져 제멋대로 지배당하는 것 아냐?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틈타 빨리 도망가셔야 해. 도망가지 않으시면 이 사역이 여기에서 그냥 끝나는 것 아니겠어? 그리스도에겐 아직 직분이 남아 있잖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말했는데, 사람의 관념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은 집권자의 손에 넘겨지면 안 돼. 만약 거기에 넘겨지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사람의 관념 아니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 행위, 행동을 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했느냐?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마 16:23)라고 하였다. 예수는 베드로를 사탄으로 여긴 것이다. 마지막에 예수는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이 성취되도록 봉사한 존재가 되었다. 예수가 사탄의 손에 넘겨진 것은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성취된 것이다. 유다의 배반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나님이 어떤 일이라도 하였느냐? 예수는 도망가려 했느냐, 아니면 누군가 그를 구하러 왔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한 번에 하늘로 들어 올려 구름으로 가림으로써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방법을 생각했느냐? 그렇게 하늘에 오르면 얼마나 영광스럽고 영예롭겠느냐! 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느냐? 바로 자신을 사탄의 손에 넘긴 후 그런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그들을 되찾아 오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천둥을 여러 번 치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인이 전부 벼락 맞아 죽게 했어야 해. 벼락 맞아 죽은 다음에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시면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풍당당하겠어. 그렇게 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권병을 드러낼 수 있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결과를 이들 마귀 사탄, 그런 인간이 모두 보게 하면 앞으로는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않겠어?’ 사람이 감히 대적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성취되지 못하면 이는 일을 망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의 관념이 늘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예수님을 믿는데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은 또 좋은 마음에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말았어야 했어요. 성육신한 것도 쉽지 않으신데 낮추고 감추시면서 이런 사역까지 하셔야 하고, 사람에게 버림 받고,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비방당하셔야 했어요. 이건 정말 불쌍하시잖아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은 피하셨어야 했고, 자신을 그 정도까지 낮추시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럴 필요는 없으시잖아요.” 사람이 이렇게 보면 옳은 것이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이천 년 후인 지금에 와서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의 머리 속에 진리가 있느냐? (없습니다.) 사람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있느냐? 사람의 상상, 관념, 좋은 마음, 감정, 동정, 이기심이 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시킬 수 있느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 자신을 사탄의 손에 넘겨 사탄이 직접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려 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어떠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고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구속 사역을 완수하려고 한 것이었다. 일찍이 하나님은 몇 번이나 “하나님은 침묵을 지킨다.”라고 말씀한 적 있다. “침묵을 지킨다.”란 무슨 의미이냐? 하나님이 보지 않고, 상관하지 않고, 무시하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냐? (아닙니다.) 침묵을 지킨다는 의미는 무엇이냐? 여기에 하나님의 뜻, 지혜, 성품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침묵을 지킨다는 것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이냐?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 있다. 하나님은 그의 경영 사역을 완성하려 한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무리 많아도 우선은 이것들을 피하고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아주 실제적으로 사역할 뿐이다.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완전히 사탄을 이겨 영광을 얻게 되는 그날까지 말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과 결과를 전체 인류와 사탄에게 보여 줌으로써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는 것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이냐? 여기에 하나님의 인내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왜 인내하느냐? 왜 침묵을 지키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어떤 일들은 비밀이기 때문에 비피조물과 천사를 포함한 어떠한 피조물도 알고 파악하게 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은 사전에 먼저 말할 수 없는데 한 마디 더 하면, 이점이 있느냐? 이점이 없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에게 말하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느냐?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해 봤자 이점이 없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천 년 전에 인류에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나의 보혈을 바쳐 인류를 구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사람이 알아들었겠느냐?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무슨 말씀만 했느냐? 하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사람에게 인내하고 포용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더 많은 일들을 이야기하였느냐? (얘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얘기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며 그의 성품과 뜻을 드러냈는데,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어떤 피조물 또는 비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이 설령 그에게 말을 했다고 해도 그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행사와 사실을 통해 인류에게 증명해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이천 년이 지났다. 하나님은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면서 그제서야 이런 일들을 밝혔는데, 사람은 이천 년 전의 일을 다시 돌이켜보고 나서야 당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의의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했는지, 왜 자신을 사탄에게 넘기려 했는지, 왜 그런 배경에서 유다에게 배반당한 후 예수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고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려 가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는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 하나님이 그렇게 한 의의는 무엇인지, 하나님이 말세에 나타나 사역하며 성육신을 증거할 때에서야 이런 말씀들을 하였다. 그 밖에, 하나님의 뜻과 경영 등 많은 비밀 또한 밝혔다. 이제 세 단계 사역이 연결되는 것을 보고서야 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이상(異象)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진리와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하나님이 천 년 전에 미리 인류에게 말했다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었겠느냐?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이 모든 사역을 하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침묵을 지키는 원인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는 것이 지극히 지혜롭고, 지극히 기묘하며, 지극히 심오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미리 얘기했다면, 어떻게 얘기한다 해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저 묵묵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줄곧 말씀하며 그의 사역을 하고 인류를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옳은 것이고, 그 길은 갈수록 밝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인데, 설령 너를 사탄에게 넘겨준다고 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너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께서 설령 저를 노리개로 삼아 사탄에게 넘겨 주신다고 해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저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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