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2) 제 1 부

지난 예배 시간에는 리더 일꾼의 직책 제10조인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서적, 각종 기구, 식량 등)을 적절히 보관하고 합리적으로 분배하며, 또한 정기적으로 검사, 정비, 유지 보수하여 파손과 낭비를 줄이는 동시에 악인의 착복도 피하도록 한다는 내용에 관해 교제하였다. 제10조에서는 리더 일꾼이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에 대해 해야 할 사역과 다해야 할 책임에 관해 교제했고, 아울러 거짓 리더의 여러 모습에 관해서도 비교하며 폭로하였다. 하나님 집의 각 사역에서 리더 일꾼이 다해야 할 책임과 다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한다면 기준에 맞는 리더 일꾼이지만, 다하지 않고 실제적인 사역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리더임이 틀림없다. 제10조 중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을 보관하고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사역을 거짓 리더의 부류는 당연히 그다지 잘 이행하지 못한다. 각종 물품을 제대로 보관하기는커녕 보관도 안 하고 엉망으로 분배하며, 심지어 아예 이 사역을 가벼이 여긴다. 사무적인 일이긴 해도 이 역시 리더 일꾼이 다해야 하는 직책이자 해야 할 사역이다. 리더 일꾼은 본인이 직접 하든, 적임자에게 하도록 안배하든, 감독과 검사, 밀착 관리 등을 병행하든 결론적으로 이 사역은 리더 일꾼의 직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이 사역과 관련하여 리더 일꾼이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거나 합리적으로 분배하지 않으면 그는 직책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가 지니고 있는 모습의 한 측면이다. 지난 예배 시간에 거짓 리더가 이 사무적인 일을 하면서 보이는 모습을 간략하게 폭로하고 해부하면서 사례를 들어 주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거짓 리더라면 이 사역에서 분명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사역 이행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거짓 리더는 항상 실제적인 사역에 힘쓰지 않고 사역을 안배하기만 하고 신경을 꺼버리며 밀착 관리 하거나 사역에 참여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된 원인은 어떤 사역을 하든 거짓 리더가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쉬지 않고 사역하지만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원칙과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고 심지어 원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게 사역한다.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이냐? 이 말은 제멋대로 나쁜 짓을 일삼고, 상상, 사람의 뜻, 정에 휘둘려 마구잡이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리더 일꾼의 이 직책에서 거짓 리더의 주된 모습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적인 모습이다. 지난 예배 시간에 거짓 리더가 이런 사무적인 일을 하면서 보이는 인성의 모습을 교제하고 폭로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사역 하나에도 거짓 리더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능력이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다. 이는 이런 부류의 인품 및 인성과 관련이 있다. 이런 부류의 인성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 심성이 곧지 않고 인격이 저속하다. 제10조에서 리더 일꾼의 직책, 기본적인 원칙, 그리고 거짓 리더의 여러 모습에 관해 기본적인 교제를 마쳤다. 이어서 오늘은 리더 일꾼의 직책 제11조에 관해 교제하겠다.

제11조 신뢰할 수 있고 인성이 기준에 맞는 전문인을 선택하여 제물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통계 작성하고, 보관하고, 정기적으로 출납 장부를 심의 검열하며, 이로써 흥청망청 낭비하는 상황과 불합리한 지출을 제때 발견하는 한편, 이를 저지하고 합리적인 배상 요구를 하는 동시에 제물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 악인에 의해 착복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제물이란 무엇인가

리더 일꾼 직책의 제11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뢰할 수 있고 인성이 기준에 맞는 전문인을 선택하여 제물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통계 작성하고, 보관하고, 정기적으로 출납 장부를 심의 검열하며, 이로써 흥청망청 낭비하는 상황과 불합리한 지출을 제때 발견하는 한편, 이를 저지하고 합리적인 배상 요구를 하는 동시에 제물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 악인에 의해 착복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이 사역에서 리더 일꾼의 직책이 무엇이냐? 해야 할 주된 사역은 무엇이냐? (제물을 잘 보관하는 것입니다.) 열 번째 사역은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을 보관하고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이고, 이 항목은 제물을 잘 보관하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과 제물은 비슷하긴 하지만 똑같은 것이겠느냐? (다릅니다.) 어떤 점이 다르냐? (제물은 주로 금전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금전은 한 측면이다. 각종 물품과 제물은 성질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나님 말씀 서적이 제물이냐? 사역에 쓰이는 각종 기기가 제물이냐? 하나님 집에서 구매한 여러 생필품이 제물이냐? (아닙니다.) 그럼 이것들은 무엇이냐? 하나님 집의 모든 하나님 말씀 서적, 각종 사역에 필요한 카메라, 녹음기, 컴퓨터, 휴대전화 등 각종 설비는 모두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로 구입한다. 이는 모두 하나님 집의 물품에 속한다. 또한, 책상, 의자, 식품 등 생필품 역시 하나님 집의 물품이다. 이 물품에는 형제자매가 구입한 것도 있고 하나님 집에서 제물로 구입한 것도 있는데 모두 하나님 집의 각종 물품에 귀속된다. 이 주제는 지난 예배 시간에 교제한 바 있다. 이어서 제11조에서 교제할 중요한 사항인 제물에 관해 살펴보자. 제물이란 과연 무엇이냐? 그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리더 일꾼의 직책을 교제하기에 앞서 무엇이 제물인지에 관한 문제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고 오래전부터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제물의 개념이 모호하고 무엇이 제물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나님에게 바친 금전과 물품을 제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물은 주로 금전적인 것을 뜻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옳겠느냐? (하나님께 바친 것이면 금전이든 크고 작은 여러 물품이든 모두 제물에 속합니다.) 그렇게 요약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이제 제물의 범위와 경계가 분명해졌으니 제물이 과연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이 개념을 확실히 잡아 주겠다.

제물에 관해서는 성경에 기록이 있다. 처음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이 제물이다. 바친 액수가 얼마나 되든, 바친 것이 돈이든 물건이든 사람이 바쳐야 하는 십일조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제물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제물 중 한 가지 항목이다. 혹자는 “십일조는 단지 돈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이 10묘(畝)의 땅을 일궈 식량을 수확했다면, 수확량이 얼마나 되든 마지막에는 1묘의 땅에서 생산된 식량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이 10분의 1은 마땅히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10분의 1’의 개념은 금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1,000위안을 벌면 반드시 100위안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소득에 적용된다. 소득에는 물질이나 금전 등 많은 것이 포함된다. 이는 성경에 언급된 내용이다. 물론 현재 하나님 집은 성경에 나온 것처럼 반드시 소득의 10분의 1을 내라고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그저 ‘십일조’의 개념과 정의를 교제하고 알려 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내야 하는 십일조는 제물의 한 항목임을 알려 줄 뿐, 반드시 10분의 1을 바치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바치느냐는 개인의 이해와 바람에 달린 일이며, 이에 대해 사람에게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제물의 또 다른 항목은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다. 크게 봤을 때, 하나님께 바친 물건에는 당연히 사람이 바친 십일조가 포함된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내야 하는 십일조 외에도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모두 제물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에는 음식, 도구, 생필품, 건강식품 등 아주 많은 것이 포함된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제단에 바친 소나 양 등도 제물에 속한다. 이는 봉헌하는 자의 뜻에 달려 있다. 만약 봉헌하는 자가 이 물건은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가 직접 하나님께 바쳤든, 아니면 하나님 집에 보관하게 두었든 그것은 제물의 범주에 속하니 사람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고급 컴퓨터를 한 대 구입하여 하나님에게 바친다면 이 컴퓨터는 제물이 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게 차를 한 대 사 준다면 이 차는 제물이 되고, 건강식품을 두 병 사 준다면 이 두 병도 제물인 것이다. 하나님에게 바치는 물품이란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 범위는 대단히 넓다. 즉,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바치는 물건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계시니, 하나님께 물건을 바치면 속할 곳이 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시지 않으면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실 때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제물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이게 맞는 말이냐? (틀립니다.) 제물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기에 있는지를 근거로 하는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게 바친 물건이면 모두 제물이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 그렇게 많은데 하나님께서 쓰실 일이 있을까요? 다 쓰실 수 있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사람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핵심을 명료하게 잘 말해 주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바친 물건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든, 쓸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이 어떻게 분배하고 처분하든, 사람과 상관없으니 마음 졸일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사람이 물건을 하나님에게 바쳤으면 그 순간 그 물건은 제물로 구분되고, 하나님에게 귀속되며, 어떤 사람과도 상관없어진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단 말씀은 하나님이 강제로 차지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그 물건이 하나님에게 귀속되면 그것을 제물이라고 하며 사람이 건드리거나 함부로 분배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낭비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낭비일지언정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지 않고 하늘에 계실 때 사람이 바친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지도 못하고 쓰실 데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어려울 것 없다. 하나님 집과 교회에서 원칙대로 처리하면 되니 네가 마음을 졸이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것이 일단 제물의 범주로 귀속되거나 제물로 규정되면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 그 물건이 하나님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건드렸다가는 결과가 따를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추수할 때가 되면 사람들이 제단에 여러 제물을 바쳤다. 곡식이나 과일 등 각종 농작물을 바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나 양을 바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나님이 향유하더냐? 하나님이 그것들을 먹었느냐? (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않은 걸 어떻게 아느냐? 네가 보았느냐? 그건 네 관념이다. 하나님이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한 입이라도 먹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네 관념이나 상상에 어긋나지 않느냐? 하나님은 이것들을 먹지 않고 쓸 데도 없으니 바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어찌 그렇게 확신하느냐? 너희가 ‘드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영체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냐? 아니면 하나님은 육체를 지닌 평범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신분이므로 이런 것을 향유하면 안 되기 때문이냐? 사람이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을 하나님이 향유하는 것이 부끄러울 일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신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냐? 대체 어느 쪽이겠느냐?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 사람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꼭 향유해야 하는지,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네가 결정할 필요 없다. 너는 네 할 일을 하고 네 본분과 직책, 네 의무를 다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든, 그냥 두고 썩히든 혹은 하나님이 향유하든, 구경하든 그것은 탓할 일이 아닌 모두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자유이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일도 아니고 사람이 판단해야 할 일도 아니다.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함부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이제 알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을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십니다.) 맞다. 이렇게 이해하면 사람의 이성이 정상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처리하고 싶은 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슬쩍 살펴보든,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시하든 너는 오로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바쳐야 할 때 바치고, 바치고 싶을 때 바쳐서 사람의 책임을 다하는 것만 신경 써라.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대하는지는 상관하지 마라. 결론적으로 네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요구 범위 안에 있고, 양심의 기준에 부합하며, 인간의 본분과 의무, 직책에 부합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이 이 물품을 어떻게 처리하고 대하는지는 하나님만의 일이니 사람은 절대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방금 몇 초 사이에 너희는 큰 실수를 범했다. 내가 하나님이 이것들을 향유하거나 먹는지 물었을 때 너희는 먹지도 않고 향유하지도 않는다고 답했는데 여기서 무엇을 잘못했느냐?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함부로 규정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향유해도 옳지 않고, 향유하지 않아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향유하면 사람은 “당신은 육체를 지닌 평범한 사람이 아닌 영체이신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향유하시나요? 믿기지 않는군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거들떠보지 않으면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희가 힘들게 마음을 바쳤는데 당신께 바친 물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다니, 도대체 저희가 안중에 있긴 하신 건가요?” 사람은 그래도 할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비이성적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이런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겠느냐? (사람은 자기가 바쳐야 할 것을 하나님께 바치되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실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관념이나 상상도 지니지 말고, 판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지녀야 할 이성이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바친 물품 측면에 관한 것으로, 이 또한 제물의 한 가지이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품의 범주는 매우 넓다. 사람은 이 물질세계에 살면서 금전과 금은보화 외에도 좋고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때, 또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할 때,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물건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한다. 그 물건들이 하나님께 바쳐졌을 때, 그것은 제물의 범주에 포함되어 제물이 된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이 처리하며, 사람은 건드리거나 관리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의 물건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하나님께 속하므로 네가 그것을 처리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대하든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 역시 제물 중 한 항목이다. 어떤 이는 “귀한 금은보화나 금전만 제물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신발이나 양말 한 켤레, 깔창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도 제물로 봐야 합니까?”라고 말하는데, 제물의 정의에 따른다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은 펜 한 자루, 종이 한 장일지라도 그 크기와 값어치에 상관없이 모두 제물에 속한다.

이 밖에도 사람이 교회와 하나님 집에 바친 물건 역시 제물의 범주에 속한다. 이 물품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겠느냐? 어떤 사람이 차를 한 대 샀는데 한동안 몰다가 차가 좀 낡았다고 생각해서 새 차를 사고 원래 있던 차는 하나님 집에 바쳐 사역에 쓰도록 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그 차는 하나님 집에 속한다. 또한, 하나님 집에 속하는 물건은 제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물론 교회와 하나님 집에 바쳐진 물건에 설비 기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물건도 있으며 그 범주 또한 매우 넓다. 어떤 이는 “사람이 바친 십일조는 제물이고, 하나님께 바쳐진 금전과 물건도 제물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제물이라는 데는 이렇다 할 이견이나 의문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하나님 집에 바쳐진 물건들은 왜 제물에 속합니까? 그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너희가 말해 보거라, 그것들을 제물에 포함시키는 게 비합리적이냐? (합리적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계시기에 교회가 존재하며, 따라서 교회에 바쳐진 것들 역시 제물에 속합니다.) 아주 잘 말했다. 교회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있어야 비로소 교회가 있고 하나님 집도 있다. 또 교회가 있어야 형제자매들이 예배하고 생활할 장소가 생기며, 하나님 집이 있어야 형제자매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곳이 생기고, 그들의 진정한 집이 있게 된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집의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 집에 물건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이유다.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 집에 물건을 바치는 것이다. 이 말에 내포된 의미는 무엇이겠느냐? 만약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면 누가 괜히 교회에 물건을 바치겠느냐? 하나님이 없으면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은 불필요하거나 남는 물건이 있으면 버리거나 한쪽에 처박아 두거나 판매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전부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왜 그렇게 처리하지 않겠느냐? 어째서 교회에 바치겠느냐? 하나님 때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있기에 사람이 교회에 바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와 하나님 집에 바쳐진 모든 물건은 다 제물에 속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저는 이 물건을 교회에 바칩니다.”라고 말하는데, 교회에 바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 같으며, 교회와 하나님 집에서 그 물건들을 처리할 전권을 갖는다. 네가 교회에 바치는 순간 그 물건은 너와 아무 관계가 없어진다. 하나님 집과 교회가 하나님 집에서 규정한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그 물건을 분배하고 사용하고 처리할 것이다. 그럼 이 원칙들은 어디에서 온 것이겠느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 물건들의 사용 원칙은 하나님의 경륜과 복음 사역의 확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특정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특정 그룹을 위해 쓰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복음 확장 사역이나 하나님 집의 각 사역에 사용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그 물건들을 사용할 특권이 없다. 그 물건들의 사용과 분배에 관한 유일한 원칙, 근거는 바로 하나님 집에서 요구한 원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다.

제물에 관한 정의는 이렇게 세 항목이다. 각 항목은 제물의 정의 중 하나이자 제물의 범위 중 한 측면이다. 이제 제물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돈도 아닐뿐더러, 바친 사람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이 물건을 바친다고만 했으니 이것을 하나님 집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드려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라면서 장부에 적지 않고 슬쩍 그 물건들을 제멋대로 사용했다. 이것이 합리적이냐? (불합리합니다.) 이런 말 자체가 불합리한데도 “교회에 바치고, 하나님 집에 바친 것은 공동 재산이니 아무나 가져다 써도 됩니다.”라고 하니 불합리한 게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제물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 모호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 비열한 소인배나 탐욕과 헛된 욕심을 품은 사람이 기회를 틈타 이 물건들을 강제로 차지하려 한다. 제물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개념을 확실히 하고 나면 앞으로 이런 일이나 이런 부류의 사람과 마주쳤을 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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