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말세에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역사하실까요?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깊은 의의는 무엇일까요? 왜 인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할까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고 주님의 날도 이미 왔습니다. 주님이 말세에 재림하실 때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실까요, 아니면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은밀히 오실까요?

성경 참고: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계시록 1:7)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계시록 16:15)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누가복음 17:24~25)

『몇천 년 동안, 사람은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구주 예수가 몇천 년 동안 그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 사람들과 재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사람과 몇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과오를 담당하여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구주 예수가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가 되어 사람에게 전혀 노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담당해 여전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전 우주 아래에 있는,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함으로써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하신 “내가 어떻게 가면 또 그렇게 오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흰 구름(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을 타고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몇천 년 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후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를 부어 주며,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매우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여기는 등등 이런 관념이 있는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었다. 예수는 자신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예수는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무작정 그를 기다리고만 있을 뿐,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所是)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은 모른다!』

『예수는 간 그대로 온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말씀의 참뜻을 아느냐? 설마 그가 너희에게는 알려 주었단 말이냐? 너는 그가 흰 구름을 타고 간 그대로 온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할 것인지를 아느냐? 만약 정말 너에게 볼 수 있게 한다면 예수가 했던 그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예수는 “말세에 인자가 다시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고 모든 사람이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곧 영만 아시느니라”라고 하였는데, 네가 알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다면 그 말씀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느냐? 인자 본인도 모르는데, 네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직접 보게 된다면 그 말씀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느냐?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하였느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날이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른다. 인자라 하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가리키는데, 정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당시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 사람들이 그분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럼 성육신이란 무엇일까요? 성육신의 실질은 또 무엇일까요?

성경 참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요한복음 14:1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30)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일단은 반드시 육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함의는 바로 육신에서 역사하고 육신에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이 된 것인데, 바로 하나님이 육신이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바로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제화되어 육신을 통해 발표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 외에는 아무도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직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이 정상 인성만이 신성의 역사를 발표할 수 있고, 그를 제외한 사람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이 첫 번째로 왔을 때, 29세 이전에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말할 줄 알자마자 하늘의 말을 하며, 태어나자마자 천하의 일을 통찰하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다 알아낸다면, 그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육신은 육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도성육신 된 의의와 실질은 없게 된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이 ‘육신’ 된 것임을 증명하고, 그에게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는 것은 그의 육신이 정상임을 더욱 증명한다. 게다가 그의 역사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되었음을 충분히 실증할 수 있다. 사역의 필요로 하나님은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번 사역은 반드시 육신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상 인성에서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전제이다. 이것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내막이다.』

『그가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조된 어떤 인류보다 높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 높다. 이런 연고로 그와 같이 사람의 외형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조된 인류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었지만 피조된 사람은 인성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도성육신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서 인성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신성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성은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었다고 한 이상, 그의 실질은 바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다. 이 결합을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고, 또한 땅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라 칭한다.』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발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는 것을 통해,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성육신 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소시 등등을 모두 구체화하고 인성화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하면, 인자의 겉모습은 어느 정도 국한성이 있지만 인자의 실질과 소유소시(所有所是)는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발표하는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육신의 각도에서 말씀하고, 인자의 신분과 지위에 서서 인류를 마주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실제적인 말씀과 역사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하였을 뿐이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과 자신을 낮춘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또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실과 실제에 대해 기초적인 인식과 기초적인 정의도 있게 하였을 뿐이다.』

첫 번째로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된 하나님은 땅에서 33년 반 동안 생활했는데, 직분을 한 것은 단 3년 반이었다. 그는 역사하는 기간에도,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정상 인성을 갖추고 있었고, 정상 인성에서 33년 반 동안 생활하였다. 그는 마지막 3년 반 동안에 시종일관 도성육신한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다. 그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 평범한 정상 인성으로 나타났고, 신성(神性)의 표현은 조금도 없었는데,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신성의 표현이 있게 되었다. 그가 29년 동안 했던 사역과 모든 생활은 그가 틀림없는 사람이고, 인자이며, 육신임을 증명한다. 그것은 그의 직분이 29세 이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일까요? 하나님 자신일까요?

성경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9~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30)

『그 당시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피조된 사람의 각도에 서서 부른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정상 사람을 입었기에 피조물의 외형이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의 안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 사람이다. 즉, 예수 자신이 말한 것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인자라고 한 이상,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남자든 여자든 다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한 것은 바로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며, 피조된 사람의 각도에서 부른 것이다. … 땅에서 예수의 권병(역주: 권세)이 얼마나 크든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고 땅의 피조물 중 하나에 속하였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했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자신을 낮추고 순복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하늘 위의 영)을 그렇게 칭했다 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의 아들이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 각도가 다를 뿐이지 결코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위격이라는 그런 그릇된 논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은 분명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지 않았냐고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인데, 단지 다른 각도에 서서 자신을 증거한 것이고, 하늘에서 영의 각도로 말씀으로 된 육신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이지 결코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알기나 하는가?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한 예수의 말은 원래 영이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도성육신한 것 때문에 하늘 위아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여전히 하나이다. 어쨌든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시대가 다름으로 인해, 사역의 필요로 인해, 그리고 경영 계획의 절차가 같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이 그를 부르는 것도 달랐다. 제1단계에서 역사할 때는 여호와라고만 불렀는데,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자였다. 제2단계에서는 도성육신 하나님을 주님, 그리스도라고만 불렀다. 그러나 당시에 하늘의 영은 다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지, 결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어찌 독생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도성육신하였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단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예수가 기도한 것은 육신의 각도에서 한 것이다. 그가 이런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입은 이상, 그는 육신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 “나의 외형은 하나의 피조물이다. 내가 육신을 입고 땅에 온 이상, 하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육신의 각도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본분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도성육신하여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육신의 각도에서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해서 결코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비록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만 영이 도성육신한 것일 뿐, 실질은 여전히 영이기 때문이다.』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이 육신은 육체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는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있는데, 그의 신성은 어떤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다 천부의 뜻에 순복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영이자 신성이므로, 그의 실질 자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 하나님은 도성육신 된 이상 그의 실질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고, 육신에 온 이상 육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어쨌든 다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할 것이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구속 사역을 하셨고 말세에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심판의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두 차례 성육신의 참된 의의는 무엇일까요?

성경 참고: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첫 번째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敗壞)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도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도성육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사람이 간구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혈기에 속하고, 하나님의 영을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모든 도(道)와 진리를 깨닫게 되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도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한 것은 단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라는 실질을 응하게 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므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한다는 것으로,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 되었다”라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게 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 내포된 뜻을 더욱 깊게 하였으며, 또한 너에게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이 말씀까지도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창세부터 하나님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역주: 권세)을 더욱더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道)를 보게 하는데, 곧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 왜냐하면 이것은 두 번째 도성육신의 사역인데, 마지막 한 번의 도성육신으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철저히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치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하는데, 오늘날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후에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마지막 때의 사람의 귀숙(歸宿),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는지 등등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이런 사역을 다 명확하게 말씀하였다. 이런 것은 모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 반포한 행정과 헌법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고 어떤 사람들이 안식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말씀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은 말세에 주로 이 사역을 완성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어디에 속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어디에 속하는지, 자민(子民)과 뭇 아들을 어떻게 나누는지, 이스라엘은 어떠하고 애굽은 어떠한지를 알게 한다. 이후에는 이런 말씀들이 다 일일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이 빨라졌으므로, 각 시대에 하려는 것, 말세에 도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과 하려는 직분을 모두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공개한다. 이런 말씀은 모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두 차례 성육신하셔서 그리스도는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질은 바로 진리, 길, 생명임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한복음 1: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敗壞)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敗壞)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역주: 권세),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

『생명의 도(道)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지니고 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생명 활력이 있는 많은 사역을 하였고,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많은 사역을 하였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많은 대가를 치렀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고, 하나님 자신이 바로 사람을 부활시키는 도이기 때문이다. ...
... 하나님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다고 말하였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인 이상,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하나님만이 생명의 도인 이상,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의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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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심을 아는 것은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실질을 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야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실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사람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진리, 길, 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발표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진리, 길,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점검하는 기준은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지의 여부에 근거합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심을 아는 것은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실질을 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야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실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사람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진리, 길, 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발표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진리, 길,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점검하는 기준은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지의 여부에 근거합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 시대를 끝마치신다고 성경에 예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성육신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 사역으로 인류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끝내고 사탄이 통치하는 흑암한 시대를 끝내실까요?

성경 참고: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사야 2:2~5)

『말세에 하나님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하여 땅에 와서 주요하게는 말씀을 한다. 예수가 왔을 때에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였고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이루었으며, 율법시대를 끝마쳤고 옛것을 모두 폐하였다. 예수는 와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가져왔다.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은 와서 은혜시대를 끝마쳤다. 그는 와서 주로 말씀하는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사람에게 빛 비춰 주고 깨우쳐 주어 사람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 버린다. 예수가 왔을 때에는 이 단계 사역을 하지 않았다. 그는 와서 많은 이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또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관념 속에는 하나님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예수가 와서 한 일은 사람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도성육신하여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관념 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어 사람 마음속에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 없게 하는데,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통해 곳곳에 다니면서 아주 실제적이고 정상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제를 인식하게 하여 막연한 하나님의 자리를 없앤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육신에서 하는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모든 것을 이룬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세에 이루려는 역사이다.』

『도성육신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마지막 한 차례 도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는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갔다. 율법과 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심오한 비밀과 귀숙(歸宿)을 펼쳐 보이는 하나님,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 몇천 년이나 숨겨 왔던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나의 말이 마무리되어 감에 따라 나의 나라는 땅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내 마음속의 나라를 세운다. 나의 나라에서 모든 자민(子民)은 다 정상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데, 다시는 차디찬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날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싸늘함을 겪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고, 나라도 서로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慘殺)하는 광경과 그로 인해 흘리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으로 들끓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뜻함이 넘쳐흐른다. 나는 온 땅에서 거닐고, 보좌 위에서 누리며, 뭇별 가운데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춤을 바치며 더 이상 자신의 ‘취약’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내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나에게 고충을 하소연하는 사람도 더 이상 없다. 오늘, 너희는 모두 내 앞에서 생활하고, 내일은 모두 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니더냐?』

질문: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하셔서 국도(왕국)시대를 개척하시고 사탄이 통치하는 옛 시대를 끝마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심판 사역으로 인류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끝내고 사탄이 통치하는 흑암한 시대를 끝내실까요? 교통해 주세요.

: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인류를 정결케 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영 계획,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마련해 주신 귀숙(歸宿) 등의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를 더욱 가까워지게 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런 사역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시대를 끝마치시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통치하는 흑암하고 사악한 시대도 끝마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확실히 시대를 끝마치고, 시대를 개척하는 사역입니다.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오늘 내가 몸소 인간 세상에 임하여 친히 음성을 발했을 때에야 사람은 나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있게 되었고, 사람의 사유 속에 있는 ‘나’의 지위를 제거하고 사람의 의식 속에 실제 ‘하나님의 지위’를 새겨 넣게 되었다. 관념이 있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하나님’을 보기를 원치 않겠느냐? 어느 누가 하나님과 접촉하기를 원치 않겠느냐? 하지만 사람 마음속에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만 주는 하나님이다. 내가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진정으로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기겠느냐? 진정으로 조금도 의심이 없겠느냐? 사람 마음속의 ‘나’와 실제의 ‘나’는 거리가 너무나 먼데, 아무도 이에 대해 비교하여 묘사할 수 없다. 내가 말씀이 육신 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나를 알지 못한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은 사람의 관념이 아니겠느냐? …

: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인류를 정결케 하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영 계획,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마련해 주신 귀숙(歸宿) 등의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를 더욱 가까워지게 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런 사역으로 인류가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시대를 끝마치시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통치하는 흑암하고 사악한 시대도 끝마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확실히 시대를 끝마치고, 시대를 개척하는 사역입니다.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오늘 내가 몸소 인간 세상에 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