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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왔습니다(상)

말레이시아 Chu Keen Pong(崔建邦)

주님을 믿은지 10년이 넘은 저는 예전에 교회일꾼으로 봉사하며 2년간 교회를 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후에는 싱가폴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돈도 적지 않게 벌었지만,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며 아귀다툼을 벌이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 역시 저를 경계했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항상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고, 그러한 생활은 심신을 지치게 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제가 늘 가지고 다녔던 노트였습니다. 그 노트에는 따로 적어놓은 성경구절이 있는데, 가끔 그것을 펼쳐 보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달랬습니다. 비록 지난 몇 년 간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작년부터는 교회를 찾아서 주님을 잘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말레시아의 많은 교회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쁘게 갔다가 실망감을 가지고 돌아 오곤 했습니다. 뭔가 부족한 것 같기는 했지만 뭐가 부족한 지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갈등속에서 저는 게임이나 하고 영화나 즐기는 완전히 치우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영화와 온라인 게임에 빠져 밤을 새기도 했고, 이렇게 인터넷 게임을 하고 영화를 연이어 보다 보니 생활리듬이 깨져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자각하고 있어서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도 좀 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무감각해졌습니다……그 무렵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정보도 다 날려 버렸으니 복구시켜야 했고, 페이스북앱도 다시 깔고 로그인해야 했습니다……실상 핸드폰을 잃어버린 일이 표면상으로는 나쁜 일이지만, 그 일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치 중국의 사자성어 ‘새옹지마, 전화위복’처럼 말이죠.

2017년 초, 저는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2월 말쯤 페이스북에 로그인했을 때 우연히 영어 계정의 프로필(원문:生活时报)을 클릭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계정 게시물에 성경구절이 있었는데, 일부는 성경구절이 아님에도 제게 위로가 되었고, 저는 곧 그 말씀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뒤로 며칠 간 그 페이스북 계정을 유심히 살펴봤고 따로 시간을 내어 몇개의 단어로 검색해서 게시물 중 저의 흥미를 끄는 말씀을 찾아 다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모두 읽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게시물의 주요 내용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태복음 7:21)라는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저는 그 해석이 매우 독특하고, 깨달음과 빛 비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었지만 게시자와 서로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았기에 더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계정의 프로필에 들어가서 보니 친구 중에 수잔(Susan)이라는 한국 계정이 있어서 제가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했는데, 그녀가 오프라인 상태여서 그런지 바로 수락되지 않았습니다. 이틀 후 저는 중국어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을 친구로 추가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치페이(齐菲)라고 역시 한국에서 온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주님을 믿게 된 체험을 들으면서 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치페이의 친구가 수잔이었고, 우리는 서로를 친구로 추가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올린 게시물을 보고, 가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님 믿음에 관해 그들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과 성경과 일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저의 고민을 도와주는 방식이 매우 독특했고, 말도 이치에 맞고 식견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그들과 교류하면 상대적으로 제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두 사람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을 친해졌다고 생각하게 됐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좋지 않던 생활방식도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쯤 뒤 3월 11일 저녁, 페이스북에 로그인을 하니 수잔도 온라인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녀와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회를 간절히 찾고 싶어 했던 마음을 털어놓으며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수잔 자매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와 주재가 있으니 이 일을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찾고 구해보라고 하면서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있으니 우리는 마땅히 기다리고 순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많은 교회의 실태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설교자는 설교할 내용이 없고, 일부 교회는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의 수가 적으며, 또 일부 교회는 교인은 많지만, 대부분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서로 비즈니스 소개를 하는 등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무관한 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것이 바로 현재 교회에 성령 역사가 없고 교회가 황폐해진 표현들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예전에 교회를 다녔을 때를 돌이켜 보면 교회 사역자들 사이에 서로 명리를 다투고, 아귀다툼을 하면서 서로를 비방하고, 세력을 다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음란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목격할 때마다 저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었습니다. 그때 저도 목사님과 다른 동료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오랫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문제를 수잔 자매 덕분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우리는 또 지금 세계 각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재난과 전쟁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을 성경에 비추어 봤을 때 주님께서 재림에 대해 예언한 부분이 거의 이루어 졌고, 주님이 올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후에 인터넷에서 만난 한 신도가 1991년에 주님께서 이미 재림하셨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주님이 재림했다는 그 말이 의심이 들어 저는 참지 못하고 수잔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수잔은 제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저는 “불가능하지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반드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고 모두가 다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 주님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이미 오셨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수잔이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형제님도 성경을 많이 정독하셨지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본다면 형제님도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여러 가지로 되어 었어요. 성경의 예언을 보면,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하나는 방금 형제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는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셔서 사람들이 주님을 모두 볼 수 있다고 예언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은밀히 강림하시기에 부분적인 사람들이 알 수 있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25: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죠. ‘도적’, ‘밤중에 소리가 나되’라는 이와 같은 말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늘에 아무런 울림이 없으며, 땅에도 아무런 진동이 없다는 의미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밀한 강림에 관한 예언이에요. 우리가 주님께서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만을 믿고, 은밀히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소홀히 대한다면 맞을까요? 그러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여 들림받게 될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요?”

수잔의 질문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이 두 성경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설마 성경 내용에도 모순된 부분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성경 속 예언은 분명 두 가지였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당혹스러운 상태에서 수잔과 교통을 이어갔습니다. 수잔이 말했습니다. “성경 예언에 따르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방식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은밀하신 강림이고, 다른 하나는 공개적인 나타나시죠.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인자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셨어요. 겉모습만 놓고 보면 그리스도의 겉모습은 보통 사람과 같아요.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던 것처럼 정상적인 인성을 가지고 있고, 보통 사람들처럼 입고 먹고 활동하며 움직이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죠. 이런것은 우리 모두에게는 은밀한 것이에요. 누구도 그가 하나님인지 알아 보지 못하고, 그의 본래 신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인자가 역사하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성품의 발표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오셨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신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10:27)라는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 겉모습만 보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보통 사람으로 대하면서, 말세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거부하며, 심지어 대적하고 정죄하며 모독하지요.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셨을 때처럼 말이죠. 예수님의 겉모습이 보통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역사와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임을 인식하고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주님의 구원을 받은 것이죠.” 수잔 자매의 교통을 들으며, 저는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역사하셨을 때 분명 그랬습니다. 그런데 또 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고 쓰여 있고, 목사님과 장로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생각이 나자 저는 자신만만하게 수잔에게 반문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성육신하신다는 거지요? 성경 말씀을 부정한다는 건가요?” 수잔 자매는 말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성경 속 여러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성육신하시어 재림하신다고 예언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수잔 자매가 말한 대로 성경 속 몇 구절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누가복음17:24~25)

제가 성경 구절을 다 읽은 후, 수잔 자매가 말했습니다. “이 예언들에는 모두 ‘인자가 와서’ 혹은 ‘인자가 강림하여’라고 언급되어 있어요. ‘인자’라고 하면 사람으로부터 나고, 정상적인 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영체(靈體)의 나타남이라면 ‘인자’라 칭할 수 없겠죠. 여호화께서는 영(靈)이시기 때문에 ‘인자’이라 칭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천사를 본 적이 있는데 천사도 영체이므로 ‘인자’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무릇 사람의 형상이 있지만, 영체에 속하는 자는 모두 ‘인자’라고 할 수 없어요.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자, 그리스도로 칭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실제로 육신이 되었고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 되어 사람들사이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인자이고, 하나님께서 성육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는 다시 올것이고 여전이 인자라고 하신 것은 바로 그가 육신으로, 인자의 신분으로 다시 오는 것이지 영의 신분으로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가 다시 오신다는 것은 바로 성육신의 방식으로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는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하신다는 점을 더더욱 증명해 주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주님의 재림이 성육신의 방식이 아니라 영체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면, 많은 고난을 받을 일도 없고 이 세대에 의해 ‘또 한번’ 버림받을 일도 없을 거에요.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을 저버릴 수 있겠어요? 누가 하나님의 영이 고난받게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보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성육신하시어 재림하실지, 아니면 영체로 재림하실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저는 ‘인자’라는 두 글자를 보고, ‘또한’ 이라는 글자를 다시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저도 전에는 ‘인자’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잔 자매의 설명 덕분에 의문점이 완전히 풀릴 수 있게 됐고, 듣는 내내 설렘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온라인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날 밤 저는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오랜 세월 믿어오면서도 이렇게 좋은 성경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고, 가슴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밝은 빛과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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