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89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사람은 모두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니, 사람이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그분은 꼭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매우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끝까지 따르는데, 그분이 그래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그러나 내가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모두 적합한 조건이 있다. 내가 요구한 것을 누구든지 다 달해야 한다. 나는 너의 자력(資歷)이 얼마나 깊은가, 자격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지 않고, 다만 네가 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진리를 애모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볼 뿐이다. 네가 만일 진리가 없고 반대로 내 이름을 모욕하며 나의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다만 근심 걱정없이 따를 뿐이라면, 그때는 너의 악으로 인하여 너를 격살하고 너를 징벌할 것이다. 네가 그래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네가 그래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내가 한 말을 네가 다 준수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내가 칭찬한다. 너는 네가 줄곧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통받고 모진 고생을 하면서 하나님과 고락을 함께 하고 환난을 함께 하였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한 말씀은 네가 살아내지 못하였다.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따라 뛰어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너는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고 생각지도 않는다. 너는, 어차피 네가 하나님을 공의로운 분이라 믿고 그를 위해 고통받고 그를 위해 뛰어다니고 그를 위해 봉헌하였으니 공로는 없어도 고생한 보람이 있기에 그가 확실히 너를 기념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롭다는 이것은 틀림없지만, 이 공의 중에 잡질이 뒤섞여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체의 것이 뒤섞여있지 않고 사람의 거래가 뒤섞여있지 않다. 무릇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그의 도를 준수하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도 용서치 않고 누구도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 당신을 위해 뛰어다니면 최후에 당신이 저에게 얼마간의 축복을 줄 수 있겠지요?”라고 묻는데, 그럼 내가 너에게 묻겠다. “내가 한 말을 네가 준수하였느냐?” 네가 말한 공의는 거래에 따라 말한 것이다. 너는 단지 내가 공의로운 분이니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할 수 없고 무릇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라면 꼭 구원을 얻을 것이고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라면 꼭 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 고려한다. “끝까지 따르는 자는 꼭 구원을 얻으리라”고 내가 한 이 말은 내포된 뜻이 있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나에게 완전히 얻어진 사람이고, 나에게 정복된 후 진리를 찾고 구하여 온전케 된 사람이다. 너는 몇 가지나 달하였는가? 너는 단지 끝까지 따른다는 데에 달하였다. 그 외에는 달하였는가? 너는 나의 말을 준행하였는가? 내가 다섯 가지 요구를 제기하면, 너는 한가지만 달하고 그 외의 네 가지는 달하려 하지도 않고 가장 간단하고 수월한 한 갈래 길을 찾아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추구하는데, 나의 공의로운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다만 형벌이고 심판이고 공의로운 보응이며,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무릇 나의 도를 준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사 끝까지 따른다 할지라도 꼭 징벌받을 것이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가운데의 ‘따른다’의 그 내포된 뜻은 바로 환난 중에서 굳게 선다는 것이다. 현재에 많은 사람들은 따르는 것을 상당히 쉬운 일로 여긴다. 그러나 사역이 곧 끝날 때가 되면 네가 ‘따른다’의 내포된 뜻을 알게 되는데, 네가 정복을 받아들인 후 현재에 여전히 따를 수 있다 하여 너를 온전케 될 대상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을 이겨낼 수 없고 환난 중에서 이길 수 없는 그 사람들은 최종에 꼭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은 모두 공정(工程)의 검증을 겪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조만간 모두 쫓겨날 것이지만, 이기는 자는 국도에 존류하게 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구하는 사람인가의 여부는 공정의 검증에 의해서야, 즉 시련에 의해서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규정하는 데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마음대로 저버리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과 사람이 탄복하지 않는 사역을 하지도 않는다. 참 믿음인가 아니면 거짓 믿음인가 하는 것은 모두 사실로써 검증한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밀이 가라지로 될 수 없고 가라지가 밀로 될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최종에 모두 국도 중에 존류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느 한 사람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이대로 따르면 틀림없이 얻을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마지막 끝까지 따르고, 본분을 하면서 힘껏 화비(花費)하고 다 포기하면 과오가 좀 있다 해도 나는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 안에 패괴된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겠는가?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놓고 볼 때 만일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수시로 넘어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는가? 네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한다 해도 끝까지 갈 수 없다. 마지막 이 단계는 한패의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는데,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겠는가? 최종에 사람에게 100% 또는 80%정도 변화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30%, 40%정도의 변화는 있어야 하고, 적어도 너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힌 것들을 찾아 내어 변화시켜야 한다. 네가 하나님이 요구한 30% 내지 40%정도의 요소에 달할 수 있다면, 가장 좋기는 60% 내지 70%정도의 요소에 달한다면, 너의 안에 진리가 좀 구비되고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재차 일이 닥칠 때에는 경솔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게 된다. 이래야만 최종에 온전케 되고 약속을 얻는 데에 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이렇게 여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집회하고 노래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본분이 있으면 본분을 하는 이런 것이 아닌가?’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이 의의에 대해 아직도 꿰뚫어보지 못하였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의의는 너무 깊어 사람이 확실히 짐작할 수가 없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 안에 있는 사탄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의 본성의 것들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고 진리의 요구와 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참으로 구원에 이른 것이다. 네가 여전히 종교에 있을 때처럼 글귀 도리와 구호만 외치고 또 조금의 행동이나 좋은 행실이 있고, 즉 죄를 짓는 어떤 일은 네가 해낼 수 없고 뚜렷한 그런 죄는 범하지 않는다 해도 네가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음을 대표하지 않는다. 네가 규례를 지킬 수 있다 하여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가? 네가 옳게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가? 본성 안의 것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최종에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하나님을 거스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한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너는 길을 잘 선택하고 진리에서 노력을 들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노력을 들여야 한다. 대강 반쯤 알고는 그만두거나 웬만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라. 네가 스스로 속이면 너 자신만 해칠 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빗나가서는 안 된다. 최후에 믿다가 하나님도 없고 그저 책만 받쳐들고 말 타고 꽃구경하듯이 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으면 끝장이다. ……한가지 작은 일에서도 네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없다면 큰 원칙상의 일이 닥칠 때는 더욱 하나님의 요구에 달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간증이 없다. 이러면 골칫거리이고, 너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한다.』

≪좌담 기요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