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79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심판도 있고 형벌도 있고 폭로도 있어 확실히 위엄과 진노를 띠고 있지만, 긍휼과 사랑이 조금 부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내가 하는 것은 정복의 사역이고 전적으로 너희들의 패역과 옛 성정에 대하여 하는 것이기에, 예수와 여호와의 선한 말씀은 오늘의 이 엄한 심판의 말씀과 전혀 비교할 수 없다. 이 엄한 말씀이 없으면 몇천 년 동안이나 거역한 너희 이 ‘전문가’들을 전혀 정복할 수 없으며, 구약 율법은 너희들 몸에서 이미 효력을 잃었으며, 오늘의 심판은 그때 율법의 위력을 훨씬 초과한다. 너희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심판이고 약간의 율법의 단속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시초의 인류가 아니라 몇천 년 동안이나 패괴된 인류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1)≫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에 의하여 달하는 것인가?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ㆍ진노ㆍ위엄ㆍ심판ㆍ저주이다. 그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에 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안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낼 뿐만 아니라 얼마간의 엄한 말씀에 의하여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심각히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들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알게 하려면 하나님이 심판하는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에 의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마지막 때에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인바, 모든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러한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 말세가 이미 되어 만물이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모두 서로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유별 중에 구분된다. 이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국과 귀숙을 드러낼 때이다. 사람이 만일 형벌과 심판을 경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에 의해야만 만물의 결국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중에서만이 정체가 드러날 수 있어, 악은 악에 속하고 선은 선에 속하여 사람이 다 각기 종류대로 된다. 형벌과 심판에 의해 만물의 결국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데에 달하고, 만인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에 의하여 달해야 한다. ……만일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는 말세에 여전히 사람에게 끝없는 긍휼과 자애를 베풀어 사람을 사랑하며, 여전히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이고 공의로운 심판이 아니라 관용ㆍ인내ㆍ사함이며, 사람이 얼마나 큰 죄를 범하든지 여전히 용서하고 공의로운 심판이 조금도 없다면, 전체 경영을 언제 마무리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성품으로 사람을 언제 인류의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겠는가? 예컨대 한 법관이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법관이어서 무슨 죄를 범한 사람이든지 다 사랑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다 사랑하고 포용한다면, 그가 어느 때에야 안건을 분명히 판결할 수 있겠는가? 말세에,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각기 종류대로 할 수 있고 사람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다. 이리하여, 심판ㆍ형벌의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전체 시대를 끝마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사람이 보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형벌ㆍ심판과 저주일 수 없으며 구원하는 데는 반드시 긍휼ㆍ자애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구원 방식은 그의 긍휼 자애를 전부 베풀고 심지어 자기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써 전 인류를 바꾸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전과 비길 수 없다. 오늘 너희들을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각기 종류대로 하는 때이니, 너희들을 구원하는 방식은 긍휼 자애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으로써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받아들인 것은 전부 형벌ㆍ심판과 무정한 격타(擊打)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 무정한 격타에 아무런 징벌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다만 너희들이 보기에 조금도 인정미가 없는 몇 마디 말씀이고, 나의 노기가 얼마나 크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여전히 교훈의 말씀이니, 너희들을 해치려는 뜻이 전혀 없고 너희들을 사지(死地)에 몰아 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가? 너희들이 알다시피, 현재에 공의로운 심판이든지 아니면 무정한 연단과 형벌이든지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현재에 각기 종류대로 하려 하든지 아니면 각 종류의 사람을 드러내려 하든지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정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든 때림이든 다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 방식은 더는 이전과 비길 수 없다고 한다. 오늘,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들의 구원으로 되었고 각기 종류대로 되는 너희들의 제일 좋은 도구로 되었으며, 무정한 형벌은 너희들의 크나큰 구원으로 되었다. 이 형벌과 심판에 직면하여 너희들이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너희들이 시종 누리는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닌가? ……

내가 한 말은 비록 엄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구원이다. 왜냐하면 나는 말만 하고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 빛 속에서 살게 하였고 빛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였으며, 빛의 귀중함을 알게 하였고 더욱이 이런 말씀이 사람에 대하여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바로 구원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내가 비록 허다한 형벌 심판의 말을 하였지만 사실이 너희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내가 온 것은 바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바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씀은 비록 엄하지만, 모두 너희들의 패괴와 너희들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여전히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내기 위한 것이다.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엄한 것은 역사 효과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역사해야만 사람이 자기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역 성정을 이탈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이번의 하나님의 역사에서 어떤 말씀은 확실히 사람의 뜻에 맞지 않고, 심지어 사람의 마음을 찔러 고통스럽게 하였다. 어떤 심판의 말씀은 마치 죄를 덮어씌우는 것 같고 또 사람을 욕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실제 배경이 있고 완전히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는 것이지 결코 과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실질에 근거하여 말씀한 것인데, 사람이 한동안 경력하기만 하면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 목적은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말씀해야만 최적 효과에 달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고심은 전적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체현(體現)된 것은 전부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로부터 보든 아니면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으로부터 보든 아니면 역사 시간의 길고 짧음과 정밀한 안배 계획으로부터 보든 모두 그분의 사랑이 그중에 있다. 예컨대, 사람은 자기 자식에 대해 모두 사랑이 있어 자기 자식이 바른 길에 들어서도록 하기 위하여 많은 공을 들인다. 아이의 결점을 발견하였을 때 가볍게 말하면 듣지 않고 고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너무 엄하게 말하면 아이의 자존심을 상할까 걱정하고 견디지 못할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다 사랑의 지배 하에 큰 공을 들인 것이다. 자녀로서 너희도 아마 부모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온유와 보살핌만이 사랑이 아니라 엄한 때림은 더욱 사랑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사랑의 지배 하에 있다. 그에게 사랑의 전제가 있으므로 패괴된 인류를 힘써 구원한다. 대충대충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밀히 계획하고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다. 시간상에서, 지점에서, 말씀하는 말투에서, 말씀하는 방식에서, 그가 들인 노력에서…… 가히 말해서 그의 사랑이 유로(流露)되지 않은 것은 한가지도 없다. 어느 것이나 다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이 한량없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좌담 기요ㆍ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에서 발췌

『말씀의 심판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정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실질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한차례 또 한차례의 심판은 모두 사람의 마음속을 찔렀다. 어느 한차례의 심판이나 다 직접 사람의 운명에 관련된다. 일부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것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하고, 이것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을 알게 하고 이 더러운 세상을 알게 하는 데에 달하며, 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이 인류를 알게 하는 데에 달한다. 이렇게 형벌하고 심판할수록 더욱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또 사람의 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심판하는 목적은 바로 극히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속은 이 사람들의 심령을 불러깨우기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바로 사람의 영은 오래전부터 죽은 것이다. 하늘이 있는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지도 모르며 더욱이 자기가 사망의 심연에서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찌 자기가 바로 이 죄악의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자기의 이 썩은 시체가 바로 사탄에게 패괴된 후 또 사망의 음부에 떨어졌음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땅의 만물이 일찍 인류에게 패괴되어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또 어찌 조물주가 오늘 땅에 와서 구원할 만한 패괴된 한 무리 사람들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비록 온갖 연단과 심판을 거쳤지만 사람의 그 마비된 지각은 시종 꿈쩍않고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다. 사람은 너무나 타락되었다! 이러한 심판은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무정한 우박과 같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유익한 점이 있다. 이렇게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효과에 달할 수 없고 사람을 고해(苦海)의 심연에서 전혀 구원해낼 수 없으며, 이렇게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은 음부에서 나오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이미 죽었고 사람의 영이 이미 사탄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극도로 타락된 너희들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전력을 다해 부르고 전력을 다해 심판해야만 얼음같이 찬 너희들의 그 마음을 불러깨울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