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63 성경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는데, 당신들은 왜 성경이 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까?

하나님 말씀 답: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음성을 발한 전부의 기록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일 뿐이다. 그중 일부분은 선지자 예언의 기록이고, 일부분은 역대에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 써낸 경력과 인식이다. 사람의 경력에는 사람의 견해와 인식이 뒤섞여있는데, 이것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허다한 책 중에서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에 속하고, 어떤 것은 사람의 편견에 속하며, 어떤 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터득법에 속한다. 물론 다수의 말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에서 온 것이고 정확한 터득에 속하지만, 또 완전히 정확한 진리의 발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일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개인 경력의 인식이나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당시에 이사야가 한 예언과 다니엘ㆍ에스라ㆍ예레미야ㆍ에스겔 그들이 한 예언과 같은 것은 성령이 직접 지시한 것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에 속하는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은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묵시를 받은 그들이 허다한 예언을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가 직접 지시한 것에 속한다. ……

……현재의 사람은 언제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여기기를,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것만큼 말씀하였고 성경의 그렇게 많은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여기기를, 신구약 66권의 모든 책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두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이 한 말씀의 기록이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터득법이며,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하고는 다수가 모두 역사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의 어떤 것은 사람의 경력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은 성령의 깨우침에서 온 것이다. 바울이 쓴 서신과 같은 것은 사람이 한 일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모두 성령이 깨우쳐준 것이며, 뭇교회에 써 보낸 서신이고 뭇교회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격려이지 성령이 한 말씀은 아니다. 그는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고, 게다가 그는 선지자도 아니며, 더욱이 이상(異象)도 보지 못하였다. 이 편지는 당시의 에베소ㆍ빌라델비아ㆍ갈라디아 등 몇 곳의 교회에 써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신약의 바울 서신은 모두 바울이 그런 교회에 써 보낸 서신인데, 성령의 묵시가 아니고 성령의 직접적인 말씀도 아니며, 다만 바울이 사역하는 기간에 뭇교회에 대한 권면ㆍ위안과 격려이고 역시 당시 바울의 허다한 사역의 기록이며, 주 안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써 보낸 것일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다 그의 권유를 듣고서 주 예수의 모든 도를 준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오늘의 교회든 이후의 교회든 다 그의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의 이 말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당시 교회의 정형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과 교통하고 그들을 권면하여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며, 그는 다만 설교하거나 일깨워주고 권면을 하였을 뿐이다. 그는 자기의 부담에 결부시켜 말하였고, 이런 말에 의하여 그 사람들을 부축하였다. 그는 당시 뭇교회의 사도의 사역을 하였는데 주 예수가 쓰는 일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였고, 교회의 사역을 담당해야 하였으며, 형제자매들의 정형을 장악해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 안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가 한 말이 무릇 사람에게 덕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이라면 모두 옳은 것이지만 그가 한 말은 성령의 말씀을 대표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의 경력의 기록과 사람의 서신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여긴다면 이것은 완전히 틀린 인식법이고, 이것은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뭇교회에 보낸 서신인데, 그것은 그가 당시 각 교회의 정황과 각 교회의 현시 정형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써주는 것으로써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주 예수에게서 은혜를 받도록 한 것이고,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히 말해서, 그 본인의 부담이자 역시 성령이 그에게 더해준 부담이다. 필경 그는 당시에 뭇교회를 인솔하는 사도였으므로, 뭇교회에 편지를 써서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그의 신분은 단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을 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기에, 그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관건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으며, 그가 한 말은 성령의 말씀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하나의 피조물일 뿐, 하나님 도성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예수의 신분은 같지 않다. 예수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이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어찌 그와 등호를 그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만일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말과 유사한 것을 성령의 음성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한다면, 사람이 너무나 분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좀 엄중하게 말하면, 사람이 완전히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사람의 말과 사람의 서신의 기록을 ‘성서’로 삼고 ‘천서’로 삼아 부복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데 네가 말해봐라, 그가 교회에 쓴 그런 편지에 개인의 생각이 뒤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인의(人意)적인 것들이 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개인의 경력과 개인의 생명 정도에 의하여 교회에 편지를 써주었다. 마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써준 것이 하나의 견해이고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써준 편지가 또 하나의 견해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떤 것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이리하여, 다만 그들을 모두 교회에 대하여 부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한 통의 편지는 하나의 분량을 대표하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부축을 대표하며 교회에 대한 그들의 부담을 대표하고 사람이 사역하는 일면만 대표할 뿐, 절대로 성령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네가 만약 그의 서신이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다. 이것은 모독에 속한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기타 서신은 근대의 영적 인물의 전기에 상당하여, 워치만 니의 책 또는 로렌스의 경력 등등 이 사람들이 쓴 영적 전기와 함께 논할 수 있다. 다만 근대 인물이 쓴 책이 성경 신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은 같은 것이고 모두 성령이 한 단계에서 쓰는 인물이니,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성경 신약 ≪마태복음≫에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었는데, 첫머리에 예수를 아브라함의 후예이고 다윗의 자손이고 요셉의 아들이라 하였으며, 아래에 또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낳았다고 하였다. 이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니며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족보의 기록은 예수와 요셉을 억지로 함께 써놓았다. 족보 아래에 예수가 강생한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또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라 하였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족보에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쓰여져있다. 족보는 예수를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요셉의 이 세대까지 42대 인물을 기록하였다. 그 후 서둘러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예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상하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족보에 분명히 기록된 것은 요셉 가족의 인물이고, 분명히 요셉의 족보이다. 그러나 마태는 무리하게 예수의 족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마태가 쓴 족보와 같은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가? 더욱이 황당한 논법이다! 이리하여, 너는 이 책이 완전하게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혹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땅에 있으면 족보가 있어야 하므로 예수를 아브라함 가족의 제42대 중에 배열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로 너무나도 황당하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어찌 족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네가 만약 하나님에게 족보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피조물 중에 배열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땅에 속하지 않고 조물주이기에, 비록 육신이지만 사람의 본질과 다르다. 네가 어찌 하나님을 피조물과 같은 부류에 배열해놓을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그는 당시 여호와의 역사 대상이며, 단지 여호와 마음에 드는 충성스러운 종이고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의 하나인데, 그가 어찌 예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는가?

예수의 족보는 누가 써준 것인가? 예수 자신이 쓴 것인가? 예수가 친히 그들에게 “네가 나에게 족보를 써주라”고 했는가?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마태가 기록해놓은 것이다. 당시에 예수가 허다한 사역을 하였는데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고 또한 예수도 해석하지 않았다. 그가 떠난 후 제자들이 각처에서 전도하고 사역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의 그 단계 사역을 위하여 서신을 쓰기 시작하고 복음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2, 30년 후에 기록된 것이다.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이 본 것은 모두 구약인데, 즉 은혜시대의 그 사람들이 본 것은 모두 구약이다. 신약은 은혜시대에야 있게 된 것이고, 예수가 역사할 때에는 신약이 없었다. 그가 부활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이 그의 역사를 기록해서야 4복음서가 있게 되었고, 거기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 이런 책들까지 더하였다. 예수가 승천한 지 3백여 년 후에, 후세 사람이 또 그것들을 한데 배열하고 골라 수록해서야 신약서가 있게 되었다. 당시 이 사역을 끝낸 후에야 신약이 있게 되었지, 앞당겨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고,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으며, 후에는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을 함께 수집하였다. 요한이 기록한 밧모섬에서 본 최대의 이상을 마지막 한 권에 장정하였는데, 이것은 말세에 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모두 후세 사람이 안배한 것이며, 현재의 ‘말씀’과는 같지 않다. 현재는 역사의 절차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접촉하게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역사와 말씀이다. 사람이 참견할 필요없이 직접 영으로부터 온 말씀을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대로 안배해놓았는데,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 모두 같지 않다. 그들이 기록한 것은 그들의 문화정도와 사람의 소질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록한 것은 사람의 경력인데 한 사람이 한가지 기록 방식이고 한 사람이 하나의 인식이며 기록한 것은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말하니, 네가 성경을 하나님으로 삼아 숭배한다면 너는 너무나 우매하고 너무나 어리석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오늘 너희들은 누가 감히 무릇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 해낸 말을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네가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에스라의 예언서를 삭제해버리고 그 옛 선지자들이 쓴 책마저도 삭제해버렸는가? 기왕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너희들은 또 감히 제멋대로 선택하였는가? 너에게 성령 역사를 선택할 이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에서의 허다한 이야기를 그들이 삭제해버렸는데, 만약 네가 이전에 기록한 이런 책들이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긴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분 책들을 삭제해버렸는가?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이상, 다 남겨서 뭇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발급하여 보게 해야지, 사람의 뜻을 뒤섞어 함부로 삭제하고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옳은 것이다. 바울과 요한 그들의 경력에 개인의 보임이 뒤섞여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에게 개인의 경력으로부터 온 것과 개인이 본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현실적인 경력과 배경에 근거하여 인식한 것인데, 누가 감히 그런 것이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무엇 때문에 마태ㆍ마가ㆍ누가ㆍ요한 그들 네 사람이 당시에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도 다 같지 않은가? 믿어지지 않으면 너희들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가 세 번 주를 부인한 것도 다 다르고 각기 ‘특색’이 있음을 좀 보아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오늘 내가 이렇게 성경을 분석하는 것은 성경을 혐오하거나 성경의 참고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언제나 오리무중에 처해 있지 않도록 나는 성경의 원래 가치와 성경의 내원을 너에게 명확히 설명하고 천명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대한 사람의 견해가 너무 많고 또한 다수가 모두 부정확한 견해이며, 사람이 이렇게 성경을 보면 사람이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려는 사역을 가로막게 되어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는 극대한 엇나감이고 폐해만 있고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더러 깨달으라고 하는 것은 근근이 성경의 실질과 내막이며, 너더러 성경을 보지 말라거나 너더러 성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선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더러 성경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과 정확한 견해를 가지라는 것이다. 너무 편면적이 되지 말라! 비록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긴 원칙과 근대의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경력이 많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진실한 보임과 인식도 기록되었다. 이런 것은 모두 본시대에서 참 도를 추구하는 사람의 참고로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