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56 무엇 때문에 사람은 늘 성경으로 하나님을 규정합니까? 하나님을 성경에 제한시키면 왜 그릇됩니까?

하나님 말씀 답: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에 하나님은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성경의 글귀로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 구조와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타당한 논법을 설명하고 성경의 본체를 복원하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성경을 미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에 달할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이 여기에서 그저 성경에 대해서만 해석을 했을지라도 너는 잊지 말라. 사람이 참으로 숭배하는 것은 성경 외에도 그릇된 것들이 많다. 사람이 유독 숭배하지 않는 것은 바로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은 다만 성경을 예로 삼아 모든 사람을 일깨울 뿐이다. 즉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재차 극단으로 치달아 막막한 데로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부분ㆍ내용소개≫에서 발췌

『여러 해 동안, 사람의 전통적인 믿음법(바로 세계의 3대 교파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이며,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라 하지 않고 성경을 떠나면 사교이고 이교이며, 설사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을 해석한 기초에서의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네가 만일 주를 믿는다고 하면 성경을 봐야 하며, 너는 성경을 먹고 마셔야 하고 성경 이외에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더 이상 숭배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주를 믿는 것이 성경을 믿는 것으로 되었다. 사람이 주를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낫고, 사람이 성경을 보기 시작한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성경을 믿기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 낫고, 사람이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낫다. 이와 같이,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으로 삼아 숭배하고 자기의 목숨으로 삼는다. 만일 성경이 없어진다면 생명이 없어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높게 보고 심지어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본다. 만일 성령의 사역이 없고 하나님을 모색해내지 못한다 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일단 이 성경책을 잃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을 잃으면, 마치 사람이 생명을 잃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를 믿은 후에는 성경을 보고 성경을 외우기 시작한다. 성경을 잘 외우는 사람일수록 주를 사랑하고 믿음이 크다는 것을 더욱 증명할 수 있으며, 성경을 보고는 다른 사람에게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훌륭한 형제ㆍ자매라는 것이다. 이 여러 해 동안, 사람은 모두 성경에 대한 이해(理解) 정도에 근거하여 주에 대한 사람의 충심 또는 사람의 믿음을 가늠하였다.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도 깨닫지 못하고 줄곧 성경 장절을 푸는 실마리만 수집할 뿐이다. 사람은 여태껏 성령 역사의 동향을 추구하지도 않고 줄곧 고생스레 성경만 연구하고 성경만 조사할 뿐이다. 지금까지 어느 한 사람도 능히 성경 외에서 성령의 더 새로운 사역을 찾아낸 적이 없으며, 누구도 성경을 떠날 수 없었고 누구도 감히 성경을 떠나지 못하였다. 사람이 성경을 여러 해 동안 연구하면서 그렇게 많은 해석을 하고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데가 많고 줄곧 논쟁이 그치지 않는 탓에 오늘의 2천여 개 종파가 형성되었다. 사람은 모두 성경에서 얼마간의 남보다 뛰어난 해석이나 더 깊은 비밀을 찾아내려 하고 성경을 탐색하려 하며, 성경에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배경, 또는 예수가 유대에서 역사한 배경, 또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더 많은 비밀을 찾아내려 한다. 성경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모두 ‘미신’이며, 성경의 내막과 실질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아직도 성경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신기(神奇)한 감이 있고 또한 성경에 대하여 더욱더 ‘미신’한다. 현재, 사람은 모두 성경에서 말세 역사의 예언을 찾아내려 하며, 하나님이 말세에 무슨 사역을 하는가, 말세에 모두 무슨 징조가 있는가를 발견하려 한다. 이리하여, 사람이 성경을 숭배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렬해지고, 말세가 될수록 사람은 더욱더 성경의 예언 특히 말세에 대한 예언을 미신한다. 사람이 이렇게 성경을 미신하고 이렇게 성경을 신임하면, 사람은 성령 역사를 찾고 구할 마음이 없어진다. 사람의 관념 속에, ‘오직 성경만이 성령의 사역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오직 성경에서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으며,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 역사의 비밀이 숨겨져있으며,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전부와 모든 사역을 다 분명히 말할 수 있고 그 외의 책과 사람은 다 분명히 말할 수 없으며, 성경이 하늘 위의 사역을 땅에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시대를 시작할 수 있고 시대를 끝마칠 수도 있다’고 의식한다. 사람에게 이런 관념들이 있으면 성령의 사역을 찾고 구할 생각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전에는 성경이 사람에게 도움이 얼마나 컸든지 현재에 와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의 가로막음으로 되었다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성경은 역사 서적에 속한다. 네가 만약 성경 구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지고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가 너를 저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다. 네가 구약으로써 예수가 한 사역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네가 만약 현재 신약과 구약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실행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를 죄로 정할 것이며, 너는 오늘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 없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 흐름 이외의 사람에 속한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