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40 말세에 하나님이 하신 새 사역에 직면하여 어떻게 찾고 구해야 참 도(道)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난측(難測)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이리하여, 설사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할지라도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본다’는 그 사람들을 모두 무능한 따위들이고 모두 오만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는 그야말로 한 마리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말끝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은 저렇게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하나님은 저렇다”고 하는 그 사람들은 다 광언(狂言)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고 본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계책을 세울 수도 없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인솔하는가 하는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복해야 하지 이러저러한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만 진토(塵土)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려는 생각이 있는 이상, 자기의 관념을 하나님의 역사 중에 내놓고 하나님더러 참고하라고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자기의 패괴 성정으로써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극력 대적해서도 안 된다. 이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이러한 사람이 그래 그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 하고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이상, 마땅히 진리의 도를 찾고 구해야 하고 하나님과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해야지, 목을 곧게 세워 하나님과 맞서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무슨 좋은 열매를 먹겠는가?

오늘날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였다는 이 말을 네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신기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너에게 너의 천연적인 것을 먼저 폭로하지 말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진실로 경건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은 논쟁하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찾고 구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 “오늘날 하나님이 또 새로운 일을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또 육신으로 돌아왔다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혹시 네가 이 말에 개의치 않을 것이고, 혹시 네가 이 말을 아주 싫어할 것이며, 또 혹시 네가 이 말에 대하여 매우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지 간에, 나는 그래도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사실에 직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신중하게 고찰할 수 있고, 가장 좋기는 경솔히 단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너희들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 오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네가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언어를 본 후에, 이런 말씀이 단지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에 부합되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여긴다면, 너는 이 만분의 일의 언어 가운데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너에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너무 자고(自高)하지 말라고 권한다. 너의 조금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장차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인데, 네가 자세히 고찰하고 반복적으로 상고하면, 너는 이 마디마디의 말씀이 도대체 진리인가 아닌가, 생명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몇 마디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정죄하여, “이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온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내가 너에게 권하니, 너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여라! 너희들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발표한 언어를 정죄하지 말고, 미혹받을까봐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렇다면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닌가? 만일 네가 여러 번 고찰한 후에도 여전히 이런 말씀이 진리가 아니고 길이 아니고 하나님의 발표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바로 최종에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고 이렇게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네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잘 생각해보아라! 경솔하지 말고 덤벙대지 말며,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기지 말라. 마땅히 자기의 귀숙(歸宿)을 위하여, 자기의 전망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고려해야 하고, 자기를 희롱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말을 너는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이미 하나님이 하늘땅을 새로 바꾼 때이다≫에서 발췌

『겉모습은 실질을 결정할 수 없으며, 게다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겉모습이 아닌가? 그의 용모와 차림새는 그의 진실한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까닭은, 그들이 예수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세심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연고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하는 형제자매 모두가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며, 하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당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마땅히 하나님의 다시 돌아옴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가를 꼼꼼하게 고려해보아야 하며, 어떻게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자기의 두뇌를 명석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오는 예수를 기다리는 각 사람의 직책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영적 눈을 밝게 뜨고, 그런 허황한 글귀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현실의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언제나 흥분되어 모든 것을 잊은 채 온종일 유유히 떠다니지 말고, 언제나 하늘의 어느 한 송이 흰 구름 위에 앉은 주 예수가 홀연히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전혀 그를 알지도 못하고 그를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어떻게 준행하는지도 모르는 너희들을 데려가기를 바라지 말라. 그래도 현실적인 것을 좀 생각해보아라!

네가 이 책을 펼칠 때, 혹시 연구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혹시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네가 어떠한 태도이든지, 나는 그래도 네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그를 경솔히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혹시 네가 이 말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너의 태도가 변할 것인데, 이것은 너의 존심(存心)과 터득 정도에 달렸다. 하지만 한가지는 네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실질상에서 구별이 있다. 혹시 네가 이 말씀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사람이 받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무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받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고, 전 인류를 인솔하는 것이며, 비밀을 풀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새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주는 것이다. 사람이 받은 깨우침은 단지 얼마간의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일 뿐, 전 인류를 인솔하여 새로운 시대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의 비밀을 풀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간단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어쨌든 간에, 너는 절대로 시비를 전도(顚倒)해서는 안 되고, 절대로 높은 것을 낮다고 하거나 깊은 것을 얕다고 해서는 안 되며, 진리임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있음을 믿는 각 사람으로서 모두 올바른 입장에서 문제를 고찰해야 하고, 모두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새 역사와 새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나타남이 어떠한 형식과 국가에도 구애되지 않는 것은 그의 계획 중의 사역을 이룰 수 있는 데에 있다. 마치 하나님이 유대에서 말씀이 육신 된 목적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인 것과 같다. 그러나 유대인은 모두 하나님이 이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주 예수의 형상으로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들의 ‘불가능’이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거로 되어 결국은 이스라엘의 망국을 초래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또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하나님이 머지않아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선전하는 동시에, 또 하나님의 나타남을 정죄하였다. 그들의 ‘불가능’은 또 한번 하나님의 나타남을 그들의 상상 중에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쥐고는 미친 듯이 웃어대는 것을 보았다. 이 ‘웃음’이 바로 유대인과 똑같은 정죄와 모독이 아닌가? 너희들은 진리 앞에서 경건치 않고, 더욱이 간절히 사모하는 태도도 없으며, 줄곧 연구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기다릴 뿐인데, 이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설마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발하는 음성과 말씀마저도 분별해내지 못하면서 네가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는가?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면 거기에 곧 진리의 발표가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오직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자격이 있다. 너의 관념을 버려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런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너에게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깨우쳐 그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의 말씀을 깨닫게 할 것이다. 너희들의 ‘불가능’하다는 논조를 버려라!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여길수록 더 가능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사유와 관념 이 범위를 초월하여 하는 것이며, 불가능한 일일수록 더욱 구해야 할 진리가 있고, 사람의 관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디에서 나타나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이 나타난 지점이나 방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실질을 바꿀 리가 없다.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지 그의 성품을 바꿀 리가 없으며,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지 그는 전 인류의 하나님이다. 마치 주 예수처럼,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체 아시아ㆍ유럽ㆍ아메리카 사람의 하나님이며 더욱이 전 우주 아래위의 유일한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의 발하는 음성과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자! 하나님은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의 말씀과 그의 나타남은 공존하며, 그의 성품과 그의 발자취는 언제나 인류에게 공개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모두 이러한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발걸음을 떼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시대로 매진하여, 하나님이 그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예비한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나타남은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