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33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고 오직 예수만이 구주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라고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당신들은 왜 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성경 참고: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자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고 하는데, 이 말도 맞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실질이 영구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변하고 사역이 변하였다 하여 그의 실질이 변하였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구불변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여호와’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역사할 때 내가 취한 이름이다. 그 원뜻은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고 사람을 저주할 수 있고 또 사람을 인솔하여 생활하도록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즉 하나님의 선민)의 하나님이며, 능력이 지극히 크고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이다. ‘예수’는 본래 임마누엘이다. 그 원뜻은 사람을 구속하는, 자애와 긍휼이 충만한 속죄제이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분이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분인데, 경영 계획 중의 일부분 사역만 대표하였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이며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유대 족속을 제외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하여 제단 위에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바란 것은 여호와의 재현(再現)이었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낸 속죄제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이 이름은 은혜시대로부터 온 것이고, 또한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예수 이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있게 된 이름이고, 역시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표하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며, ‘여호와’ 이 이름은 율법 아래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고유한 이름이다. 매 시대, 매 단계 역사에서 나의 이름은 모두 대표적 의의가 있는 것이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바로 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는데 은혜시대의 구속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사람이 만약 말세에서도 여전히 구주 예수가 강림하고 또한 여전히 그의 유대에서의 형상을 지니고 강림하기를 바란다면, 전체 6천년의 경영 계획은 구속시대에 머물러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또한 영원히 말세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시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주 예수’는 다만 인류를 구속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자이며, 내가 ‘예수’ 이 이름을 취한 것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하여 있게 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여호와ㆍ예수ㆍ메시아는 모두 나의 영을 대표하지만 이 몇 이름은 나의 경영 계획 중의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할 뿐 나의 전부를 대표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사람이 부르는 나의 이름은 나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전부 다 분명히 말할 수 없으며, 다만 서로 다른 시대에서 나에 대하여 다른 호칭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 즉 최후의 시대가 도래할 때, 나의 이름은 여전히 변하게 된다. 여호와라 하지 않고 예수라고도 하지 않고 더욱이 메시아라고도 하지 않고, 능력이 지극히 큰 전능한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는데, 이 이름으로써 전체 시대를 끝마친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세와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세를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에서 발췌

『예수 이 하나의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함’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명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만일 하나님이 그의 성품을 변화시킬 리가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라 할 수밖에 없고 더는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이다! 네가 말해봐라, 단지 ‘예수’ 하나의 이름━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함만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이 많은 이름 중에서 어느 한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다 개괄할 수는 없고 어느 한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하나님의 이름은 허다하지만 이 많은 이름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전부 명확히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풍부하여서, 그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할 수 없게 한다. 사람은 인류의 언어로써는 하나님을 모두 다 개괄할 수 없다. 많은 영적 위인들도 다만 얼마간의 유한한 어휘로써 사람이 인식한 하나님의 성품, 즉 위대ㆍ존귀ㆍ기묘ㆍ난측ㆍ지고지상ㆍ거룩ㆍ공의ㆍ지혜 등등을 개괄할 뿐이다. 너무나도 많다! 이 몇 개의 유한한 단어만으로는 사람이 본 유한한 하나님의 성품을 다 묘사해낼 수도 없다. 후에, 또 많은 사람들이 내심의 격정을 한층 더 표현할 수 있는 얼마간의 어구를 첨가하였는데, 즉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라는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이러한 것과 유사한 인류의 언어가 절정에 이르렀어도 사람은 여전히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에게 많은 이름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또 이름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시가 매우 많지만 사람의 언어가 또한 너무 결핍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특정된 단어와 하나의 특정된 이름만으로는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해낼 수 없다. 그러면 네가 말해봐라, 하나님의 이름이 그래 고정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처럼 위대하고 이처럼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마다 그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매 시대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려 할 때, 그는 시대에 부합되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춘 특정된 이 이름으로써 본시대의 그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써 표현해낸다. ……하나님께는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다만 사역을 하려 하고 인류를 경영하려 하는 것으로 인하여 그가 하나의 이름 또는 두 개의 이름 또는 더 많은 이름을 취하였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어느 이름으로 불려도 그 자신이 자유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또 너━하나의 피조물이 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 따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을 사람이 개괄할 수 없다. 너는 다만 “하늘 위에 하나님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이라 하고 큰 능력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너무 지혜로우시고 너무 높고 크시며 너무 기묘하시고 너무 신비로우시고 너무 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며, 더 말하고자 해도 말할 수 없고 요만큼 알 뿐이다. 이렇다면, 단 예수 하나의 이름이 하나님 자신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말세에 와서도 여전히 그가 역사하지만 그의 이름은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시대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이 또 예수로 되었는가? 메시아가 오리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이름을 예수라 하는 이가 왔는가? 하나님의 이 이름이 어찌 바뀔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은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닌가? 설마 하나님이 오늘 더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어젯날의 사역도 바꿀 수 있고 ‘여호와’의 사역을 ‘예수’가 이을 수 있는데, ‘예수’의 사역을 또 다른 사역으로 교체할 수 없겠는가?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는데, ‘예수’의 이름도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두뇌가 너무 단순한 탓에 초래된 것이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지 또한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너의 견식은 너무나 적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