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22 주님을 믿은 동안 저는 많은 은혜를 받았고 병도 나았습니다. 만약 제가 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양심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야말로 참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매 시기에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려 하는데, 매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서 새로운 발단이 있다. 사람이 만일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응되는 이런 진리를 지킬 뿐이라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르면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성령의 역사임을 정확히 보고 아무런 염려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정지하지 않았고 그의 발걸음도 정지한 적이 없다. 그는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는 언제나 바삐 지내고 전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성령의 역사를 조금 얻고서는 영구불변한 것으로 삼으며, 인식을 조금 얻고서는 하나님의 더 새로운 역사를 ‘추종’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 보고서는 급히 하나님을 하나의 특정된,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그가 본 그 형상이라고 여기고 이전에 이러하였으면 이후에도 영원히 이러할 것이라고 여기며, 천박한 인식을 조금 얻고서는 자만하여 우쭐거리면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소시를 제멋대로 선양하기 시작하며, 한 단계 성령의 역사를 단정한 후에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아무리 선전하여도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고 지나치게 수구하는 사람들이고 새 사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착오라고 여기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이 배역을 맡고 있으며, ‘메시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이 배역을 맡고 있다…… 어린양의 발자취를 최종까지 따르는 사람이라야 최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길 끝까지 따를 수 없으면서도 자기가 이미 전부를 얻었다고 여기는 그 ‘총명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유없이 중단시키고 또한 100% 파악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들, ‘하나님께 충심무이하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이 사람’들을 뽑아낼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충심무이’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에 대해서는 여전히 실로 너무나 메스껍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모두 궤사를 행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고 옛 사역만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새 시대에 저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징벌받는 사람이 되는데, 이 사람들이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무릇 낡은 율법을 저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모두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중요시하고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최종에 자기의 양심에 의해 자기의 전망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는 규례를 지키지도 않는다. 비록 그 자신의 역사일지라도 그는 미련을 두지 않고 부인해야 할 것은 부인하고 도태시켜야 할 것은 도태시킨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경영 사역 중의 소부분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적대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터무니없음이 아닌가? 사람의 무지함이 아닌가? 자기가 복을 받지 못할까봐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최종의 복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고집스레 지키는 그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충심무이하는데, 그들이 이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자들이다. 현재는 국도시대이고 율법시대가 아니기에,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할 수 없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의 사역과 서로 대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변하였으므로 사람의 실행도 바뀌었는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심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새로운 시대이다. 새 시대에서는 새로운 사역을 하는데, 특히 사람을 온전케 하려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더 새로운 사역을 더욱 빨리 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진심으로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어렵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고 어느 단계 사역도 영원불변의 사역으로 삼지 않으며, 시종여일하게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한다. 그의 사역은 한 단계가 한 단계보다 실제적이며, 하면 할수록 사람의 실제 요구에 부합된다. 사람은 오직 이러한 역사를 경력해야만 최종의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므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도 갈수록 높아진다. 이래야만 사람이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쓰임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는, 한 방면은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사람의 관념을 돌려세우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을 인솔하여 더 높고 더 실제적인 경지에 진입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영역에 진입하도록 하여 최종에 그의 뜻을 이루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본성이 패역하고 일부러 대적하는 그 사람들은 빠르고도 신속한 이 단계 역사에 의해 다 도태될 것이며, 오직 진심으로 순복하고 기꺼이 ‘낮추고자’ 하는 사람만이 길 끝까지 갈 수 있다. 이러한 역사에서 너희들은 모두 순복할 줄 알아야 하고 관념을 버릴 줄 알아야 하며, 걸음마다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만일 건성건성 한다면, 기필코 성령께 버림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엇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을 경력하기 전에는, 사람의 낡은 규례와 율례가 그야말로 불가승수(不可勝數)여서 모든 사람이 이 때문에 이성을 잃었고 이 때문에 득의양양해하였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의 가로막음이고,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의 원수이다. 사람이 만일 순복하는 마음이 없고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위험한 것이다. 네가 만약 간단한 역사와 말씀에만 순복하고 더 깊은 것을 터득할 수 없다면, 너는 수구(守舊)하는 사람이어서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다.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역사하는 것은 같지 않다. 만약 이 기간의 역사에 네가 잘 순복하고 다음 기간의 역사에 잘 순복하지 못하거나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떠난다. 하나님이 걷는 이 단계에 네가 뒤따랐으면, 다음 단계에도 뒤따라야 한다. 이야말로 성령께 순복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