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14 오랫동안 주님을 믿고, 주님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면서 사역한 사람들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설마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천국에 갈 수 없단 말입니까?

성경 참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네가 이전에 터득한 것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순수하여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만일 버리지 않는다면, 너의 이후의 진입에 극대한 가로막음으로 될 것이다. 무릇 성령의 오늘의 빛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역세 역대의 그 사람들도 하나님의 발자취를 뒤따랐지만 그들은 현재까지 따를 수 없었다. 이것은 말세 사람의 복이다. 성령의 현시의 역사를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이 어디까지 인솔하여 네가 어디까지 따른다면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성령의 현시 역사를 따르지 못한 그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역사 중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사역한 것이 아무리 많고 받은 고난이 아무리 크고 뛰어다닌 길이 아무리 많다 해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무릇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인데,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 성령의 현실 말씀 밖의 섬김은 모두 육체에 속하고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니,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고 있으면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설사 하나님을 섬긴다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 섬기는 것이고 관념 속에서 섬기는 것이어서,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 역사를 따를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으며,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고, 관념과 육체적인 섬김은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를 수 없으면, 바로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섬김은 엇나가는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섬김은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하나님과 합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령 역사를 따르는 것이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고 오늘의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야말로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고 역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최신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으며, 최신 역사에서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패역을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과 실질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섬기는 중에서 차츰차츰 성정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진실로 참 도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 역사에 도태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한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배반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관념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논단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찾고 구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볼 기회가 있을 수 있고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그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하나님의 은총에 달렸으며 사람의 추구에도 달렸고 사람의 존심(存心)에도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만일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없고 하나님이 오늘 하는 것을 꿰뚫어볼 수 없으면서도 찾고 구하지 않고 의혹하거나 논단하거나 연구 분석한다면, 이는 모두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시의 빛이 나왔는데도 네가 여전히 어제의 빛을 귀중히 여기면서 새로운 역사를 대적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순전히 못된 놈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관건적인 점은 가장 새로운 빛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비로소 진실한 순복이라 한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이러한 심지가 없다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데에 달할 수 없고 다만 현 상태에 만족한 탓에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원래 있는 것들에 점유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 안에 각종 관념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각종 상상을 형성시켰는데, 이런 것이 모두 사람 마음속의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믿는 것은 사람 자신의 관념이고 사람 자신의 상상 표준이라고 한다. 네가 너의 마음속으로 상상한 하나님에 비추어 오늘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가늠한다면, 너의 믿음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애호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원하지 않는다. 무릇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격이 얼마나 높든지 화비(花費)한 것이 얼마나 많든지, 설사 필생의 정력을 화비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순교까지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 대하여 칭찬하지 않고 다만 사람에게 은혜를 조금 주어 잠시 누리게 할 뿐이다. 이러한 사람을 진리를 실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성령은 이러한 사람 몸에서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하나하나 도태시킬 것이다. 연로한 사람, 젊은 사람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사람, 존심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다 대적하고 엇나가는 사람에 속한다. 이러한 사람은 틀림없이 도태될 대상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순복의 성분이 조금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이름만 시인하고 하나님의 친절함과 사랑스러움만 조금 느낄 뿐 성령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고 성령의 현실적인 역사와 말씀에 순복할 수 없는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없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순복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 의하여, 생활 속에서의 고난과 연단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추구하는 이것을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만 누려서는 온전케 될 수 없고 변화될 수 없고, 다만 표면의 순복, 표면의 경건, 표면의 사랑과 인내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만 누려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없다. 설사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이 있다 하더라도 천박한 것이다. 혹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혹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은 결코 사람의 생명을 대표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진실한 인식이 있음을 대표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연단할 때에나 하나님의 시련이 사람에게 임할 때에 사람이 순복할 수 없고 또한 의혹이 생기고 넘어지기까지 하는데, 이러한 사람 안에는 아예 하나님께 순복하는 성분이 없다. 그의 안에는 하나님을 믿는 허다한 조목조목 이루어진 틀들만 있고 심지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총결한 오랜 경험 또는 성경을 원칙으로 하는 각종 규례들만 있는데,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것들로 가득찼는데, 그래 뭘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하는가! 모두가 개인의 애호에 따라 순복하는데, 하나님이 이러한 순복을 원하겠는가?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를 만족시키고 있고 자기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네가 이것을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애굽의 바로이고 악을 행하는 자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너의 이러한 섬김을 원하겠는가? 내가 너에게 권하는데, 가장 좋기는 그래도 일찌감치 회개하여 자기 자신을 좀 정확히 알든지 아니면 가장 좋기는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하여라. 이러면 네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너 자신에 대하여 더 유리하다. 엇나가지 않고 방해하지 않고 분수를 지키면서 나날을 잘 보낸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징벌받지 않도록!』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되어야지, 한 지경에만 정지되어 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 사역에 정지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그 패역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사람의 실행이 만일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따르지 못한다면, 사람의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 어긋난 실행일 것이며, 이런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도 서로 엇나갈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와 같은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고 더욱이 최후에 하나님의 간증을 굳게 서는 사람으로 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경영 사역도 이런 한 무리 사람들 몸에서 끝마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그 사람들, 이전에 십자가를 위하여 고통받은 그 사람들이 만일 마지막 때의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들이 한 모든 것은 다 헛수고이고 다 쓸데없는 것이다. 성령 역사의 가장 뚜렷한 표현은 바로 현실적이고 수구(守舊)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 오늘의 실행과 어긋나는 사람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비록 이전의 빛을 지키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라고는 부인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늘 실행의 변화를 말하고, 이전의 실행과 현재의 실행의 구별을 말하고, 이전의 그 시대에 어떻게 실행한 것인가를 말하고, 현재의 이 시대에 또 어떻게 실행하는 것인가를 말하는가? 늘 이런 실행의 구분을 말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사역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람에게 요구한 실행도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만약 어느 정도에 정지되어 있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새로운 빛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불변하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그 사람들이 늘 그들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그들 몸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정지되어 그들 몸에는 성령 사역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벌써 다른 한 무리 사람들의 몸에 옮겨졌는데, 그는 이 사람들 몸에서 그의 새로운 사역을 이루려 한다. 종교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저버리고 그의 새로운 역사를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 몸에서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도 어렵게 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하였고 사람의 관념으로 하여금 아물기 어렵게 하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가. 그러나 그는 사람의 애로가 너무 많은 것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을 여태껏 정지하지 않았으며, 줄곧 역사하고 있고 줄곧 말씀하고 있다. 비록 다수의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부단히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고,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애(寶愛)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무엇 때문에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무엇 때문에 늘 이와 같은 방식인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 몸에 역사하는 것이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하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 몸에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