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고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회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봉사한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하고 있다. 우리는 늘 연약해지기도 하고 또 늘 강건해지기도 하며, 모든 행위가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말할 필요없이, 우리는 또 천부의 뜻을 행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주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주 예수의 영광이 강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땅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국도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모든 것이 ≪계시록≫에 예언한 것처럼 “주님이 오셔서, 재난을 가져오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며 그를 따르는, 그의 다시 돌아오심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언제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마음속은 감개무량하며, 자기가 말세에 태어나 운이 좋게 주의 강림을 볼 수 있는 것을 다행스러워한다. 비록 박해를 당하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꾸어올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이 모든 바람과 주님의 베푸신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박차를 가하여 집회하게 한다. 혹시 내년에, 혹시 내일에, 또 혹시 사람이 예상치 못한 더욱 짧은 시간 내에,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여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앞다퉈 누구도 뒤떨어지려 하지 않는데, 이는 주님의 나타남을 제일 먼저 보는 자가 될 수 있기 위해서이고, 주님께 들림받는 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이날의 도래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화비(花費)하여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어떤 이는 가정을 버렸으며, 어떤 이는 혼인을 포기하였고, 심지어 어떤 이는 모아둔 전 재산을 다 바쳤다. 얼마나 사심 없는 공헌인가! 이러한 진지함과 성실함, 이러한 충심은 틀림없이 역대 성도들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은총을 베풀고 싶은 자에게 은총을 베풀고 긍휼히 여기고 싶은 자를 긍휼히 여기기에, 우리의 이러한 봉헌과 화비는 주님께서 이미 보셨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도 이미 주님의 귀에 들렸으니, 주께서 우리의 봉헌에 응답하여주실 것이라 믿는다. 더군다나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었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복과 약속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계획하고 있으며, 당연하게 자신의 봉헌과 화비를 공중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는 조건과 자본으로 삼고, 더욱이 서슴없이 자신을 장래의 보좌에 올려놓는데, 만국만민을 다스리든, 왕 노릇 하든 모두 당연한 것이고 역시 예상했던 일이다.

우리는 주 예수와 적대되는 모든 사람을 멸시한다. 그들의 결국은 다 훼멸될 것이다. 누가 그들더러 주 예수가 구세주임을 믿지 말라 하였는가? 물론 때로는 주 예수를 본받아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한다. 그들이 모르기에 우리는 마땅히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다 성경 말씀대로 하는데, 이는 무릇 성경과 어긋나는 것이라면 이단이고 사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혔다. 우리의 주님은 성경에 있고 성경을 떠나지 않으면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인데, 이 원칙을 잘 지킨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서로 부축한다. 매번 집회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주님의 뜻에 맞고 주님께 열납(悅納)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환경은 아주 열악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기쁨이 넘친다. 손을 내밀어 얻을 수 있는 복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인들 내려놓을 수 없겠는가? 우리가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이 전부는 모두 말 없는 가운데 있으며, 전부는 또 모두 하나님의 눈이 감찰하고 있다. 거름더미에서 들림받은 우리 이 극소수의 궁핍한 사람들은 주 예수를 따르는 모든 평범한 자들처럼, 들림받는 꿈을 꾸고 있고 복받는 꿈을 꾸고 있으며 만국을 다스리는 꿈을 꾸고 있다. 우리의 패괴는 하나님의 눈에 여지없이 드러났고, 우리의 욕망과 탐욕은 하나님의 눈에 정죄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그토록 정상적이고 또한 그토록 조리가 있어, 우리의 바람이 올바른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우리가 고집하는 이 모든 것의 정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그 누가 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도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찾고 구할 줄 모르고 탐구할 줄 모르며, 관여할 의향은 더욱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우리가 들림받을 수 있을는지, 축복받을 수 있을는지, 천국에 우리의 자리가 있을는지, 생명수와 생명나무의 열매는 우리의 몫이 있을는지에 관심을 갖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를 믿고, 주를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의 죄는 이미 사함받았고, 우리는 이미 회개도 하였으며, 우리는 고배(苦杯)를 마셨고 십자가도 졌다. 어느 누가 우리의 대가가 주님께 열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우리가 충분한 기름을 예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미련한 처녀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버림받는 자 중에 하나가 되는 것도 원치 않기에, 주님께서 보호하여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한다. 이는 성경에서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태복음 24:23-24)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 구절을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겼고 거꾸로 줄줄 외운다. 우리는 그것을 더없이 귀한 보배로 여기고 생명처럼 여기며,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들림받을 수 있는지의 근거로도 삼는다……

수천 년 이래, 살아있던 사람들이 떠났으며, 소망을 가져갔고 꿈을 가져갔는데 천국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분명히 모른다.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으며,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잊고 여전히 앞사람의 가르침과 앞사람의 길을 따르고 있다. 이렇게 해가 지고 달이 뜨며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의 주 예수, 우리의 하나님이 과연 우리가 행한 이 모든 것을 정말 열납할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고, 장차 벌어질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줄곧 침묵하며, 여태껏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에게 말씀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멋대로 성경에 따라, 표적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판단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에 익숙해졌으며, 우리의 사유 방식으로 우리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우리의 지식과 관념, 도덕 윤리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대체하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데에 익숙해졌고 하나님이 우리의 수시로의 도움이 되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손 내밀어 요구하고 하나님을 오라 가라 하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또 성령이 어떻게 인솔하는가에 아랑곳할 필요없이 규례를 지키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더욱이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날들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의 성품이 어떠한지,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가 무엇인지, 그의 형상이 어떠한지, 그가 오면 우리가 그를 알아볼 수 있는지 등등 이러한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그가 계시고, 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어떠어떠하다고 상상할 수만 있으면 충분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감상하고, 우리의 신령함을 보애(寶愛)하며, 만사를 분토로 여기고 만유를 발 아래에 둔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신자들이기에, 설령 멀고도 험난한 길과 온갖 위험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 매번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시록 22:1-5)라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한없는 기쁨과 만족으로 넘쳐나며,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주님의 택함에 감사하고, 주님이 은총을 베풀어 우리로 하여금 금생에 백배를 얻고 내세에 영생을 얻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만약 지금 우리를 죽으라 해도 절대로 한 치의 원망도 없습니다. 주여, 빨리 오소서! 우리가 당신을 간절히 바라는 걸 봐서라도,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걸 봐서라도, 더 이상 일분일초도 지연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며 또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눈으로 보고 계신다. 그는 계획있게 절차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를 진동하는 것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걸음 한걸음 인류에게 다가와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이고,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한 울부짖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공의와 위엄이며, 권세를 지니고 자애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서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아무도 그의 도래를 알아차리지 못하였고, 아무도 그의 도래를 영접하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아무도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람의 생활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마음, 평범한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처럼 우리 가운데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추구가 있고 자신의 목표가 있으며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이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전혀 속박됨이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눈에는 다만 하나의 작은 신자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그의 눈앞에 있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그의 앞에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아무도 그의 존재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도 그가 하는 기능에 대해 그 어떤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아무도 그의 신분에 대해 그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추구를 계속하였을 뿐이다. 마치 그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우연한 기회에, 성령은 그를 ‘빌어’ 한 편의 말씀을 발표하였다. 아주 뜻밖이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음성임을 굳게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흔쾌히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말씀을 발표하는 이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우리는 다 받아들여야 하고 거절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음번의 음성은 혹시 나를 통할 수도 있고 혹시 너를 통할 수도 있으며 또 혹시 그를 통할 수도 있는데, 어느 누구든 다 하나님이 은총을 베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숭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어차피 하나님일 수가 없고, 우리는 또한 절대로 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선택하여 우리의 하나님으로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얼마나 높고 크고 얼마나 존귀한데, 자그마한 사람이 어찌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와서 우리를 끌어올려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는데, 이렇게 자그마한 사람이 어찌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임무를 감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이 재림한다면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서 만인이 보게 할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어찌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조용히 숨어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바로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있는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것도 해석하지 않고 온 이유를 분명히 말하지도 않고, 그의 계획에 따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만 하고 있다. 그의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와 권면과 일깨움과 경고로부터 책망과 징계에 이르기까지, 온유하고 자상한 말투에서 격렬하고 위엄 있는 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긍휼을 한껏 받게 하고 매우 두려워하게도 하였다. 그의 말씀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있는 비밀을 모두 적중시켰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우리의 영을 찔러 우리로 하여금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 마음속의 그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는지,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이런 고생을 겪어야 우리가 들림받을 수 있을지? 우리는 마음속으로 따져보고 있었다…… 이후의 귀숙(歸宿)을 위하여 또한 장래의 운명을 위하여.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이 이미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다고 여긴 사람이 없었다. 비록 그가 이미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하였고, 그가 이미 우리와 대면하여 많은 말씀을 하였어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우리의 미래의 하나님으로 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전망과 운명을 이 자그마한 사람에게 맡겨 주관하게 하는 것은 더욱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몸에서 끊이지 않는 생수의 공급을 받고 있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는 생활을 하면서 오직 하늘에 있는 주 예수의 은총에 감사할 뿐, 신성을 지닌 이 보통 사람의 느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인류의 저버림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영원히 사람의 유약함과 무지함을 용서해주고 영원히 그에 대한 사람의 무례한 태도를 관용해줄 수 있는 듯이, 그는 여전히 육신 중에 비미은장(卑微隱藏)하여 사역을 하고 있고 마음의 소리를 발표하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 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수많은 시련을 겪었고 수많은 질책을 겪었고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애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되었으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을 보게 되었다. 이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하였고 또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였고 또 우리로 하여금 가책과 빚짐을 더욱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는 우리가 그의 수중의 어린 양처럼 그에게 죽임을 당하며, 때로는 우리가 그의 눈동자처럼 사랑을 누리며, 때로는 우리가 그의 원수인 것처럼 그의 노기에 의해 그의 눈에서 잿더미로 된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서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오매불망 되찾으려던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그는 우리를 혐오하며, 그는 우리를 들어쓰며, 그는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그는 우리를 인도하며, 그는 우리에게 계시를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까지 한다. 그는 밤낮으로 우리를 걱정하고 밤낮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이 작고 평범한 육신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귀숙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허영심이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방해하여, 이러한 사람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하는 것을 달갑게 주동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비록 그가 우리에게 많은 만나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가져왔지만 우리 마음속의 ‘주님의 지위’는 이런 것들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못해 이 사람의 특수한 신분과 특수한 지위를 존중하고 있다. 그가 입을 열어 우리로 하여금 그를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가 곧 오실, 이미 우리 가운데서 오랫동안 역사한 그 하나님임을 주동적으로 시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경계함과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가리켜주며,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투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에 띄지 않는 이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고, 그는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그는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그는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한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가 굴욕을 참고 있는데,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한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구비하지 못하고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일반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를 갖고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 할 수 없으며, 아무도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없고, 아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도 없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구비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의 몸에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더 이상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줄 수 없고 우리에게 광명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비밀을 밝힐 수 없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이탈하고 패괴 성정에서 이탈하게 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는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과 전 인류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하게 살던 우리의 생활을 끝냈고, 우리 전인(全人)으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으며, 그는 우리 전인을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감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자그마한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그가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이다! 바로 그이다! 그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가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하여금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그에게 정복되어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와 말씀에 저촉하지 않았으며, 전인이 그의 앞에 엎드려 오로지 이 한평생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만을 원하였고, 그에게 온전케 되어 그의 은총에 보답하고 우리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며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역사에 협력하며 힘껏 그의 부탁을 완성하기만을 원하였다.

하나님께 정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차례의 승자전과 같다.

하나님 말씀은 곳곳마다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을 드러내었고 우리의 상상을 드러내었으며 우리의 패괴 성정을 드러내었다. 일언일행, 일거일동으로부터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본성 실질은 그의 말씀 가운데 드러나, 우리를 전전긍긍하게 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였다.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존심과 목적,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정까지 그는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주어, 우리로 하여금 만신창이가 되게 하였고 더욱이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였다. 그는 그를 대적한 우리를 심판하고 그를 모독하고 정죄한 우리를 형벌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에서는 우리가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우리가 바로 살아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무리한 요구나 의도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어느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일시에, 우리의 마음은 평형을 잃어 앞길을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몰랐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마치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였고, 또 마치 우리는 주 예수와 ‘만난 적도 없고 알고 지낸 적도’ 없는 듯하였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미망케 하였고 우리를 방황케 하였다. 우리는 낙심하였고 실망하였으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있었다. 우리는 털어놓으려고 시도했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며, 더욱이 계속하여 우리의 구주 예수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속내를 하소연하려고도 시도했다.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대범하였지만 마음은 전례없이 낙담하였다.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아주 침착해보였지만 마음은 뒤집히듯 심하게 시달림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의 모든 꿈과 희망을 앗아가, 우리로 하여금 더는 지나친 욕망을 갖지 못하게 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그와 우리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생기게 하였고, 심지어 아무도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큰 좌절과 이렇게 큰 굴욕을 당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음과 하나님의 존귀를 절실히 느끼게 하였는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얼마나 더러운가.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처음으로 우리의 오만과 자대(自大)를 깨닫게 하였고, 또한 사람이 영원히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같이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더는 이러한 패괴 성정 가운데서 살지 않고 시급히 이러한 본성 실질에서 벗어나 더 이상 그에게 미움받지 않고 혐오받지 않기를 갈구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말씀에 달갑게 순복하고 그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에 거역하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그가 우리의 구주로 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나왔으며, 지옥에서 나왔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얻었다! 그는 사탄을 이겼고 많은 원수들을 패배시켰다!

우리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가진 한 무리 평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만세전에 예정해놓은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거름더미에서 끌어올린 궁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정죄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정복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도를 얻었다. 하늘 끝이나 바다 끝이든, 핍박이나 환난이든, 우리는 모두 전능한 하나님의 구원을 떠날 수 없다. 이는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고 우리의 유일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너에게도 베풀어주고 나에게도 베풀어주고 그에게도 베풀어주며,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준다.

하나님의 역사는 해와 달이 바뀌는 것처럼 여태껏 멈춘 적이 없다. 너에게도 역사하고 나에게도 역사하고 그에게도 역사하며,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