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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처음으로 욥을 시험하다

1) 하나님이 한 말씀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2) 사탄의 대답

(욥 1:9~11)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은 욥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욥기> 1장 8절, 이 말씀은 우리가 본,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과 사탄의 첫 대화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했느냐?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욥을 평가한 것이다. 하나님은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했다. 하나님과 사탄의 그 대화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하여 욥을 시험하게 하려고 뜻을 굳혔다. 즉,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편으로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감찰과 평가가 정확하여 틀림이 없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고, 욥의 간증으로 인해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과 경외심을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왔을 때,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직설적으로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물은 것이다. 하나님의 질문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하나님은 사탄이 이리저리 빈둥거리며 늘 하나님의 종, 욥을 엿보고 또 항상 욥을 시험하고 공격하고 있었고, 또 한 가지 방식을 써서 욥을 무너뜨려, 욥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은 굳게 서지 못하는 것임을 실증하려고 시도하고 있었고, 또한 제멋대로 욥을 해쳐 하나님을 욕하게 만들어, 하나님 손에서 욥을 빼앗아 가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보았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은 묻는 방식으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니, 영원히 하나님을 욕하거나 사탄을 따르는 일은 없다는 것을 사탄에게 알려 주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듣고, 사탄은 더욱 악에 받쳐 한시 급히 욥을 빼앗아 가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이 ‘순전하고 정직’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예 믿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믿지 않으며, 그와 동시에 또 사람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욥기> 1장 9~11절에 있는 것처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악랄한 본성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한 사탄이 욥을 해할 방도를 모색하고 음모를 꾸민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도 환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재차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알려 주어, 사탄으로 고분고분 복종하게 하여―그것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여―욥을 공격하고 시험하게 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일부러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 때문에 증오하고 분노하여 욥을 공격하게 하였다. 따라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여 사탄이 철저히 수치당하고 실패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더 이상 욥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을 의심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련과 사탄에게서 오는 시험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고 사탄의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적임자는 오직 욥뿐이었다. 그런 대화가 있고 나서, 사탄은 허락을 받고 욥을 시험하러 갔다. 그것이 사탄의 일차 공격이었다. 일차 공격 목표는 욥의 가산이었다. 사탄이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이렇게 욥을 참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한 목적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탄에게 요구가 하나 있었다. 즉, <욥기> 1장 12절,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욥을 사탄의 손에 넘겨준 후, 제기한 조건이다. 즉,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최저선인데, 욥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은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인정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목전에 있는 욥의 정직함과 순전함은 그 검증을 견딜 수 있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탄에게 범위를 하나 주었다. 곧, 욥의 모든 재산을 다 빼앗아 가도 되지만,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그때,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완전히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탄이 욥을 어떻게 시험하든, 어떤 방식을 쓰든 다 되지만, 욥을 해쳐서는 안 되고,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사람이 죽을지 살지는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탄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그 말씀을 하자마자, 사탄은 바로 쫓아가 갖은 수단으로 욥을 시험했다. 그렇게 되어 욥은 즉시 온 산의 우양을 잃게 되었고, 하나님이 베풀어 준 모든 가산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시련은 그렇게 욥에게 임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성경에서 욥이 겪은 시험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 욥은 그 일을 알고 있었을까? 욥은 한낱 평범한 사람이니 자신의 배후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당연히 몰랐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과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으로, 욥은 하나님의 시련이 자신에게 임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을 뿐이다. 욥은 영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고, 또 그 시련의 배후에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욥은 어떤 일이 닥치든,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대하는 욥의 태도와 반응을 분명히 보고 있었다. 하나님이 본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본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시련을 받기까지, 욥의 마음이 늘 하나님에게 열려 있었고, 하나님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버리지도 않았고 등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이어서 우리 함께 욥이 어떤 시험을 겪었는지, 시련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자.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 보자.

3) 욥의 반응

(욥 1:20~21)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돌려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말씀한 후, 사탄은 물러갔다. 뒤이어, 욥에게 갑작스러운 맹렬한 공격이 들이닥쳤다. 먼저, 소와 나귀를 빼앗기고, 종들이 살해되었으며, 이어 양떼와 종들이 불에 타 죽었고, 그다음 낙타를 빼앗기고, 종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나중에 자녀들도 목숨을 빼앗겼다. 그 일련의 공격들은 욥이 처음으로 시험을 겪으면서 받은 고통이다. 그 공격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분부대로 단지 욥의 가산과 자녀만 겨냥하고, 욥은 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욥은 거액의 가산을 소유한 부자에서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그 타격은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고, 올바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욥은 오히려 비범한 면을 나타냈다. 성경에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욥이 여러 가지 가산과 자녀들을 잃은 것을 들은 후의 첫 반응이다. 일단, 욥은 놀라움을 표하지 않았고, 당황스러움도 표하지 않았으며, 분노나 증오는 더욱 표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욥은 속으로 이미 그 모든 재앙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더욱이 보응이나 징벌이 임한 것도 아니라, 자신에게 여호와의 시련이 임한 것이고, 여호와께서 재산과 자녀들을 거두어 가려고 한 것임을 확신했다. 그때의 욥은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또한 아주 맑았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임한 재앙에 대해 이성적으로, 자연적으로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겉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가 적신(원문: 赤身肉體)이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하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욥이 신생아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하며,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는 것은 욥이 알몸으로 세상에 왔으니, 여전히 아무것도 없어 신생아처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임한 그 모든 일을 대하는 욥의 그 같은 태도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욥의 믿음은 신뢰의 범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와 순복이었다. 욥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것에도 감사를 드릴 수 있었고, 더더욱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돌려 드릴 수도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와 순복은 인류 가운데서 본보기가 되고,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성의 최고봉에 이른 것이다. 욥은 비록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진실한 존재를 체험했다.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했고, 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도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그 시각 자신의 육체를 거두어 가도 기꺼이 원하고, 아무런 원망도 없다고 아뢸 수 있었다. 욥의 그 모든 표현은 다 욥의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으로 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단순하고 성실하고 착했기 때문에,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굳게 믿고, 동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초에서 욥은 하나님이 인도한 것이나 자신이 만물 중에서 본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과 행위, 표현과 일처리하는 원칙을 규범화했다. 오랜 시일이 지나, 욥은 자신의 경력(역주: 체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해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심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악에서 떠나게 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것이 욥이 지킨 ‘순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성실하고 단순하고 착한 인성을 갖추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악에서 떠나는 실제 경력과 ‘주신 자도 여호와,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는 인식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욥은 사탄의 그런 악랄한 공격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시련이 올 때에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하나님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릴 수 있었다. 비록 욥은 첫 번째 시험에서 아주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후세 사람들은 욥의 그런 ‘간단’한 것을 일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고, 욥보다 더 높은 표현을 할 수 있을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오늘날, 욥의 그 ‘간단’한 표현을 마주하여, 그것을 다시, 오늘날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표명한 “절대적으로 순복하고 죽기까지 충성하자”라는 구호나 결심과 대조해 본다면, 너희는 부끄러워 진땀이 나지 않겠느냐?

네가 성경에 기록된 욥의 집에 닥친 그 모든 불행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이 있겠느냐? 많은 생각들이 연이어 떠오르지 않겠느냐? 아주 놀랍지 않겠느냐? 욥에게 닥친 시련은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욥에게 시련이 왔을 때, 그 모습은 문자를 통해서도 이미 비참하여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묘사되었는데, 하물며 실제 모습이야 더 말할 나위 있을까? 보다시피, 욥에게 임한 것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욥에게 임한 그 시련은 도대체 누가 직접 조종한 것일까? 당연히 사탄이 한 것이고, 사탄이 직접 손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어떤 방식으로 시험하라고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사탄에게 조건만 하나 주었다. 그리하여 그 시험이 곧 욥에게 임한 것이다. 그 시험이 욥에게 임했을 때, 사람들에게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 사탄의 악랄함과 사람에 대한 증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적대심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그때 시험의 잔인한 정도는 글로 묘사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시 말해,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악랄한 본성과 추한 몰골은 그때에 여지없이 폭로된 것이다! 사탄은 그런 기회를 빌어, 하나님이 허락한 기회를 빌어, 욥에 대해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광폭하게 해쳤는데, 그 수단과 잔인한 정도는 지금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자 전혀 견뎌 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욥이 사탄의 시험을 겪고 시험 속에서 간증을 굳게 섰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준 시련 속에서 사탄과 자신의 순전함, 정직함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는 대결을 펼쳤다고 하는 편이 더 낫다. 그 대결에서, 욥은 온 산의 우양과 모든 가산을 잃었고 자녀들도 잃었지만,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포기하지 않았다. 즉, 욥은 사탄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가산과 자녀들을 잃을지언정,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지키고 사람됨의 근본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성경에는 욥이 가산을 잃은 전 과정이 간단하게 기록되었고, 또한 욥의 표현과 태도도 기록되었다. 간명하게 핵심을 찌른 문자적 기록은 사람들에게 마치 욥이 그 시험을 아주 ‘가볍게’ 대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정말 사실의 진실한 장면을 원상 복귀하고, 또 사탄의 악랄한 본성에 결부시키면, 그 몇 마디로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며, 진실한 장면은 그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인류를,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을 해치고 증오하는 정도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해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사탄은 틀림없이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또한 하나님 눈에 있는 의인,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계속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사탄을 멀리하고 사탄을 배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이 허락한 그 기회를 빌어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모든 분노와 증오를 다 욥에게 쏟은 것이다. 보다시피, 욥이 몸과 마음에서부터 육체까지, 외부에서 마음속까지 받은 고통은 그토록 너무나 심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당시의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성경의 기록에서 욥이 고통받을 때의 그 심정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밖에 없다.

욥이 지킨 순전함에 사탄은 수치와 무안을 당하고 허둥지둥 도망가 버렸다

욥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었고, 보고 있었으며, 또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감찰하고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마음이 몹시 아팠다.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다고 하여, 자신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을 후회했을까? 그 답은 하나님이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지 사탄에게, 하나님 앞에서 지킨 욥의 의(義)를 실증할 기회를 주었고, 또한 사탄에게 그것의 사악함과 비열함을 드러낼 기회도 주었으며, 더욱이 욥에게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탄을 향해, 나아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향해, 욥의 의를 간증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일을 간증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최종 결과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정확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느냐? 사실, 욥은 이미 사탄을 이기지 않았느냐? 여기에 욥의 가장 대표적인 말이 있다. 즉, 욥이 사탄을 이긴 증거이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고 말했다. 그 말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욥의 태도이다. 이어서 욥은 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다. 욥의 그런 말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에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으며, 하나님의 칭찬은 그른 데가 없고, 하나님이 칭찬한 그 사람은 의인이라는 것을 실증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 말은 욥이 하나님을 위해 한 증거이다. 이런 평범한 말 한마디가 사탄을 매우 두려워하게 했고,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했고, 허둥지둥 도망가게 했으며, 더더욱 속수무책이 되게 했다. 또한 욥의 그 말 한마디에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 행사의 기묘와 위력을 느끼게 되었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도가 권세 잡고 있는 사람의 비범한 매력을 보게 되었으며, 더욱이 작디작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강대한 생명력도 보게 되었다. 첫 대결에서 사탄은 그렇게 패하고 말았다. 비록 사탄은 ‘식견을 넓혔지만’ 욥에 대해 그만두려고 하지는 않았고, 그 악랄한 본성도 결코 그 일로 인해 달라지지는 않았다. 사탄은 계속 욥을 공격하려고 시도하였고, 따라서 다시 하나님 앞에 오게 되었다……

계속해서 욥이 두 번째 시험을 받을 때의 구절들을 보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