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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를 잘 다스리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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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   성 쉬에천

고등학교 졸업 후, 저는 명문대에 진학했습니다. 원서를 제출할 때 저는 요즘 한창 떠오르고 인기 있는 관리 분야인 인력자원 관리(약칭 HR) 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올 무렵, 선생님은 기대에 가득 차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실습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꼭 학급 임원이 되어야 해. 그래야 경험도 쌓을 수 있고 훈련받을 기회도 늘어나. 전문 지식이나 업무 능력도 빨리 향상될 거고. 그러면 졸업하자마자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저는 반드시 제 힘으로 학급 임원이 되어서 임명장을 받고 훗날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위해 기반을 다지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승승장구했던 삶에 찾아온 좌절

개강 전 반 친구들은 인터넷으로 학과와 반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느렸던 저는 개강 며칠 전에야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습니다. 학급 양성 교육 임원과 반장 후보자는 이미 활발한 사람 중 선발된 후였습니다. 그 소식에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원래 개강 후에도 열심히 공부하며 반장의 자리를 꿰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남에게 밀렸던 것입니다.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저는 군사 훈련에서 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아쉽게도 몇 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첫 번째 ‘좌절’이었습니다.…

좌절은 잠시 뒤로 미루고 저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언젠가 제 실력으로 남들보다 뛰어날 수 있을 것이고 학교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전쟁터 같은 학생회, 잘못된 가르침을 받다

그래서 저는 학생회에 들어갔습니다. 착실히 제 일을 하면서 모든 활동의 계획도 잘 해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저는 부장의 눈에 들었고 저도 정식으로 부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학생회 주임 선생님은 제가 이끈 부서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뛰어난 부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고 꿈이 한 발짝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고 이상은 헛된 꿈이자 순진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학과에 행사나 활동이 있으면 다른 부장들이 저보다 훨씬 빨리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학생회 회장도 저를 찾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우울했습니다. ‘같은 부장이고 내가 더 일을 잘하는데 왜 학과의 다른 부장들이 나보다 훨씬 정보가 빠른 거지?’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서 선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제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고 저는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제 얘기를 듣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력자원 관리를 배우는 애가 대인 관계를 잘 맺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학생회에서 계속 한 자리 꿰고 싶으면 회장 앞에서 아첨도 떨고 다른 교수님들한테 얼굴도 자주 비추고 그래. 그래야 무슨 일이 생기면 너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너를 좋게 생각하지. 그러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것이고 그래야 너도 발전할 기회가 생겨!” 그 얘기를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에서 기회는 실력이 아니라 아첨과 관계로 얻는 것이라니!’ 그와 함께 저도 모르게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왜 실력으로 경쟁하면 안 되는 거지? 아첨이 무슨 실력이라고! 허리 굽히다가 허리 나가겠어. 나는 절대 그렇게 굴복하지 않을 거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거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자 저는 당시 유행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네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세상에 맞춰 스스로 바뀔 수는 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만약 내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그리고 학생회 안에서 어떻게 남들보다 뛰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그렇게 되면 내 꿈은 어떻게 돼?’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저는 결심했습니다. 아부하고 관계를 맺는 게 나 혼자만 그런 것도 아닌데 뭐하러 혼자 고고한 척하겠어?

흐름에 따르다가 지친 몸과 마음

곧이어 저도 학생회 부서실로 향했습니다. 부서 내 사소한 일은 사실 제가 혼자서 처리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일부러 옆 방에 계시는 교수님한테 가서 사인과 함께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끔은 아부 섞인 말로 교수님이 저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거기 있는 동안 교수님이 심부름이 시킬 일이 있다고 오시면 저는 몇 번이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상태가 지속되자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학과에 무슨 일이 있으면 담당 교수님이 제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시키셨습니다. 그와 함께 저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국가 장학금을 신청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 측에서 전화로 다른 장학금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지급할 수 있다고 알려 줬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고 얼굴도장을 많이 찍는 것이 정말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바랐던 대로 많은 기회도 얻었고 그만큼 대우도 좋아졌지만,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하루는 한 학생이 학생회 관리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사람들 앞에서 학생회 푯말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때부터 학과에서 ‘제약’을 받아 학과의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참가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저도 말실수를 해서 높으신 분들의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윗분과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몇 번씩 고민한 끝에 보냈고 그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는 머리를 빨리 굴려서 조리 있게 답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저를 억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일 긴장한 상태 속에서 살았고 휴대폰이 울리기만 하면 혹시나 윗분이 깜짝 방문하시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에 제 심장이 덩달아 빨리 뛰었습니다. 자다가도 새벽에 깨어나서는 윗분이 시킨 일을 다 했는지 생각해 보고 빠뜨린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일 가면을 쓴 것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삶이 몇 달간 지속되자 몸과 마음이 지쳤고 삶도 피곤해졌으며 표정도 굳었습니다. 저는 힘들고 막막했습니다. ‘지금 내가 배우는 전공이 어떻게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를 잘 중재하는가 하는 건데 그냥 학교의 윗사람 몇 명과 관계를 맺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앞으로 취업하면 기업의 인력자원 관리자로서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까?’ 저는 앞으로 제가 가질 직업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행했던 ‘스스로 선택한 길은 어떻게 해서든 헤쳐나가야 한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저는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뛰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그 어떤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꿋꿋이 버텨야 해.…’ 그래서 저는 힘든 마음을 끌어안고 억지로 버텼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게 조심하며 말했고 거짓된 웃음은 마치 복사한 가면과 같아서 속내를 알 수가 없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동화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런 제 고민을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장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어. 대학교는 사회와 같아. 놀랄 것도 없지. 관계가 최우선 순위고 능력은 그다음이야.…”

그 순간 저는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막막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으로 계속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할까요?

막막함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신 하나님

2015년, 엄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시간 날 때마다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고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가 다들 순수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스스로 자신이 드러낸 타락한 성품을 모두 말하고 진리를 구하여 해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부족한 점이나 모자란 점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를 해 주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말실수로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부러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에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면서 저는 거짓으로 물든 가면을 내려놓고 진짜 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동에 옮기자 저는 엄청난 해방감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고 이런 교회 생활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후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는 제가 학교에서 왜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 설교에서 이런 교제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날마다 사탄의 사악한 독소의 영향을 받고 있고, 사람은 또 생각하는 데에 능하고 자신이 즐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며, 또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존 능력이 있고 자유 선택의 의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둡고 사악한 세상에서 여러 해 동안 그럭저럭 살기만 하면 부지중에 사탄에게 타락될 뿐만 아니라 배울수록 더욱 나빠집니다. 게다가 조상의 유전과 인류의 선전 교육으로 인류는 사탄의 타락에 빠질 수록 더 깊어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고 사탄의 타락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인류는 한 세대 한 세대 이런 문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고 더욱더 타락되었고 점점 사악하게 되었으며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인류는 사탄에게 또 점점 깊이 타락되어 인성과 시초의 양심을 완전히 잃고 이미 사탄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줄곧 사악한 것을 숭상하고 사실을 왜곡합니다.”(<사물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표징이다> 중에서)

이 설교 교제를 통해 저는 이 세상은 사탄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올바르지 못한 기운이 성행하고 모든 사람이 사탄의 생존 법칙인 ‘아부를 떨어야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좋은 신체 조건도 세 치 혀만 못하다’, ‘말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은 혀에, 좋은 말은 다리에 달려 있다’ 등에 물들어 이러한 처세술로 살았고 누구와 만나건 진심을 나누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말과 거짓의 말을 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아부를 떨며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과 뒤가 다른 모습으로 살며 점점 사악해지고 거짓과 교활함, 간사함을 일삼고 매일 가면을 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삶은 답답하고 고통스러워 해방감을 느낄 수 없으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라곤 없습니다. 저도 그렇지 않나요? 친구들이 모두 얼굴도장을 찍으며 임명장과 중요한 행사를 기획할 기회를 얻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며 윗사람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남 앞에서 굽히며 살고 거짓말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습니다. 윗사람을 섬기고, 아첨하며 착실한 종이 되어 모든 일에 머리를 굴리고 마음을 썼습니다. 말이나 행동이 항상 조심스러웠고 ‘제약’을 받거나 돋보일 기회를 잃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는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인격을 잃었고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지쳤고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제야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은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과 처세술로 살아서 생기는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겪은 일을 돌이켜보며 저는 사탄의 법칙으로 사는 고통과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고 얼굴도장을 찍으며 많은 발전 기회를 얻기 위해 맺은 관계는 제게 고통과 씁쓸함을 안겨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거 저는 사람이 왜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야 하고 능력으로 경쟁하지 않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생존 법칙은 모두 부정적인 것입니다. 모두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그릇된 생존 법칙으로 살면 점점 타락되고 간사하며 교활해지고 인성이 없게 되어 전혀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말세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여러 수단과 방식, 그리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진실을 드러내시고 그와 함께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규칙과 실천의 길을 가리켜 주시어 우리가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 낸다면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함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꼈고 사탄의 처세술과 가치관에서 벗어나 인생의 참된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얼굴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결심하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찬양 <젊은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추구>를 듣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젊은이는 이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고, 젊은이는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는 간사함이 가득하거나 멸시로 가득한 눈빛을 지녀서는 안 된다. 파괴적이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서도 안 된다. 또한, 이상(理想), 기개,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는 앞날에 대해 낙담하거나, 삶에 대한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끈기를 가져야 하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젊은이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위와 불의를 감싸서도 안 되고, 마땅히 가져야 할 주관을 가져야 한다.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과감히 헌신하고 노력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는 흑암 세력의 압제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의를 바꾸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역경에 물러서서는 안 되며 허심탄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지 이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주신 덕분에 저는 제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소위 말하는 발전 기회를 위해 고개 숙이며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의 법칙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고통을 줄 뿐입니다. 사탄의 말에 따라 살았다가는 점점 간사하고 거짓된 모습을 살아 낼 수밖에 없고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젊은이가 가져야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갖춰야 합니다. 진리를 실천에 옮기고 사악한 세상의 흐름을 좇지 않으며 부정적인 것에 당당히 ‘No!’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때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집으로 오게 해 주시어 제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고 올바른 추구 방향과 목표를 갖게 해 주시며 더는 사탄에게 고통받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학교 선배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곧 학생회 회장 뽑는다고 하더라. 너도 가능성 있어. 며칠만 더 얼굴도장 찍어서 사람들한테 확실히 각인시키면 회장은 아니더라도 최소 부회장은 할 수 있을 거야!” 선배의 말에 제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학생회는 자리가 5개밖에 없습니다. 제가 꿈에 그리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회라는 게 듣기엔 좋은데 만약 내가 정말 학생회 임원이 된다면 거기서 또 복잡한 대인 관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 학생회 한 부서의 부장이었을 때도 학교 윗분들과 만나느라 매일 신경이 곤두서 있고 심신이 지쳤었는데. 학생회 회장단에 들어가게 된다면 더 많은 윗분과 학생을 만나게 될 거야. 그럼 예전처럼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격과 존엄 없이 살게 되지 않겠어?’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위와 불의를 감싸서도 안 되고, 마땅히 가져야 할 주관을 가져야 한다.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과감히 헌신하고 노력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는 흑암 세력의 압제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의를 바꾸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맞습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충분히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불구덩이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면 그건 사탄의 계략에 스스로 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 간의 관계를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계속 사탄에게 고통받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입장을 똑바로 정해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사탄의 법칙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가치관에 ‘No!’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웃으면서 과감히 회장단 입후보할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회장단 명단이 모두 나왔고 저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며칠 후 교육 관리원 자리를 놓고 또다시 경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는 회장단처럼 멋있지도 않고 신입생도 한 반만 돌보지만 어쨌든 경험할 기회야. 만약 내가 여기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유일한 기회마저 놓치는 게 아니겠어? 그럼 이번에는 경선에만 참가하고 다른 윗분에게 ‘얼굴도장’ 찍으러 돌아다니지는 말자. 이것도 원래의 자리를 지키면서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지 않는 것과 같은 거야.’ 그렇게 저는 지원서를 제출하고 평소처럼 생활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뽑는 사람은 4명인데 총 6명이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6명 중 4명을 뽑는다니. 탈락 가능성이 높진 않네. 게다가 나는 하나님께 더는 사탄의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기도드렸어.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를 지켜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선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락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후보자들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다 있을지 누가 알아? 만약 나만 윗분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혹시 내가 그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기셔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주는 거 아닐까? 이미 회장단에 들어갈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어디 가서 감투를 얻지?’ 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들어 윗분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좋은 말만 써서 보내면서 다른 높은 분 앞에서 제 얘기를 잘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교육 관리원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실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는 또 사탄의 처세술과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회하고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로 구했습니다. ‘하나님, 당신 앞에서 다시는 사탄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 내지 못하고 간증을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자책감이 들고 힘듭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가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보고 사탄의 가치관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단어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란 단어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는 방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게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이 인생의 꿈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진짜로 넘겨 버렸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사탄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강한 유혹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는다 해도 다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으로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게 만들며,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제가 항상 사탄의 가치관으로 살며 한자리를 얻으려고 했던 것은 모두 제가 명예와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교의 교육과 유명한 사람의 영향을 받아 저는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야 한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물은 낮은 곳으로’와 같은 사탄의 독소를 받아들였고 어려서부터 사람들 틈에서 뛰어나 최고의 자리에 서겠다는 원대한 꿈과 포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걸 위해서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온 후 저는 또 사악한 흐름에 이끌려 ‘얼굴도장’을 찍는 방법으로 윗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했고 사람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험을 쌓아 앞으로 직장을 구한 후에도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생존 법칙을 좌우명으로 삼았고 결국 대인 관계에 신경을 쓰느라 심신이 지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탄의 생존 법칙이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생각을 배신하고 더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임원이 될 기회를 놓치고 현장 경험을 쌓지 못해 제가 바랐던 명예와 이익을 함께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 두려워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한이 있어도 사탄의 가치관으로 교육 관리원 자리를 꿰차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한 저는 사탄이 그릇된 사상 관점과 생존 법칙으로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려고 했고 우리 마음에 명예와 이익이 가득 차, 이를 올바른 추구 목표로 삼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명예와 이익, 지위가 있고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한껏 머리를 조아리고 아부를 떨었으며 인격과 존엄을 잃어버렸습니다. 명예와 지위는 족쇄처럼 저를 옭아맸고 제가 명예와 이익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고 결국 사탄의 권세에 떨어져 사탄의 통제를 받고 농락당하며 고통 속에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다

그 후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사람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바람과 결정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길 원하고, 바람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편안한 곳에서 살면서 그럴싸한 옷을 입고 싶어 한다. 또한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소망은 이렇게 ‘완벽’하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명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미래를 대담하게 계획하거나 마음껏 꿈을 키울 수는 있어도 꿈을 실현할 능력과 권력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결정할 능력이 없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언제나 꿈과 괴리가 있고 늘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 앞날을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영원히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배치한 운명에 달려 있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문득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지 사람의 능력이나 머리에 달려 있지 않으며 학력으로 결정되지도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집에서 취업 준비를 하거나 평범한 학력을 가진 사람과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월급을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반면 문화적 소양이 높지 않지만, 자신의 기술이나 특기로 성과를 거두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었으며 창업 후 사장님이 되어 지역에서 명성을 쌓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갖고 있건, 그리고 우리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건 결국 우리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재하십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운명은 어쨌거나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학생회장이나 임원을 맡고, 아무리 많은 행사에 참가하고, 수많은 임명장이나 감투를 쓰더라도 그런 영예가 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제게 정해 주신 운명의 궤적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만약 제가 안간힘을 써서 노력하고 이에 맞서려고 해도 결국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시 욥이 떠올랐습니다. 욥은 동방 사람들에게 큰 인물로 손꼽힙니다. 어마어마한 자산을 갖고 있었지만, 명예나 이익을 좇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게 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길을 추구하고 창조주의 배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길을 걸었습니다. 시련이 닥친 욥은 모든 자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거두심에 순종했습니다. 욥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경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욥은 명예와 이익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고 있었고 이런 것을 추구해도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명예나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산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끝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냈습니다. 욥은 평안하고 기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욥은 즐거운 삶을 살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조금 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길을 걸으며 명예와 이익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만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얼굴도장’ 찍던 시절과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얻다

그 후 저는 공부와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와 예배드리거나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굉장히 알차고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공적인 일로 윗분이나 교수님을 찾아뵐 때면 저는 머리를 굴리고 짜내며 그분들에게 잘 보이려는 등 사탄의 처세술로 살지 않았고 제 이미지가 망가질까 봐 전전긍긍하지도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제가 가진 생각을 말했고 제가 해야 할 일만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제 운명이 학교의 윗분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제가 능력을 키우거나 이력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에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앞에 담담하고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거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여전히 윗분 앞에서 ‘얼굴도장’을 찍고, 학생회에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이며 그들 역시 윗분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과 가식적이고 아첨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편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를 그 늪에서 꺼내 주시고 명예나 지위를 얻기 위해 사탄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얼굴도장’을 찍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날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끈기를 가져야 하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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