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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행복한 결혼 생활] 돈이 없는 결혼 생활 어떻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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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遼寧)성 장쥔(張軍)

새벽녘, 한 줄기 햇빛이 방안을 비추자 마루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첸후(千蕙)이는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 리리(丽丽)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첸후이, 나 다음 주에 결혼해, 꼭 와줘!”

친구가 결혼한다는 희소식에 첸후이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전에 리리에게 괜찮은 남자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는데, 리리가 다 싫다더니. 이번에는 결혼하는 걸 보니, 남편감 집안 조건이 꽤 괜찮나 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리의 결혼식 날, 첸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를 했습니다. 10시 쯤, 첸후이는 리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신혼집 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널찍한 거실, 아름다운 장식품, 세련되고 럭셔리한 가구, 이렇게 큰 집은 정말 ‘금빛 찬란'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절로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쩐지 리리가 결혼을 한다더니, 남편이 정말 부자인가 보네!’

나중에 결혼식장에 간 첸후이는 그 화려함에 더욱 기가 눌렸습니다.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올리는 예식에다, 사회자는 현지의 유명한 MC였고, 웨딩카 행렬도 전부 다양한 브랜드의 고급차였습니다. 눈앞의 이 모든 광경에 첸후이는 부러우면서 질투가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같이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든 외모든 내가 리리보다 나았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러 면에서 리리보다 못하구나. 결혼식의 화려함은 차치해도, 지금 내가 사는 집도 오래된 단층집이잖아. 리리가 지금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내가 평생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하겠지.’ 첸후이는 낙담하며 당초 배우자 선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만 성실하고 좋으면 미래에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고 섣불리 능력 없는 남편을 고른 것입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기필코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부자를 고를 것입니다. ‘아, 지금은 다 늦었어!’ 첸후이는 어쩔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각자 남편의 직업, 수입, 집, 차 등등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니 첸후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자리가 불편해진 그녀는 간단히 음식을 먹고 나서 총총히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첸후이의 머릿속에 계속 결혼식의 광경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기보다 잘 살았고, 자신을 돌아보니, 돈도, 차도 없고, 아직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있으니, 호화로운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답답해서 자기가 지금 이렇게 못 사는 게 다 남편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집안 조건이 좀 좋았더라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나도 집 있고 차 있는 중산층 생활은 할 수 있었을 테고, 친구들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첸후이는 집안의 전부가 다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히 남편의 고지식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하면 꼬투리를 잡고 남편에게 성질을 부리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기분이 나쁠 때마다 얼른 그를 달래주었습니다. 남편이 자기한테 잘하고, 무슨 일이든 양보해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억울하고, 이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생활이 지금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첸후이는 남편이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주고 다정하게 대화도 나눴는데, 지금은 일이 없으면 휴대폰만 쳐다보고 게임하며, 그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편의 이상 행동에 첸후이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당신한테 시집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고, 형제자매와 자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첸후이는 그들이 다들 소박하고, 선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단순한 마음으로 털어놓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해결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사이에서는 상하 귀천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서로를 깔보지도 않았고 서로 돕고, 일으켜 세우며, 공급해 주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하며 사람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전에 없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 후,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구애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이 있을지, 너의 반려자가 될 수 있을지를 개인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와 삶을 함께할 배우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네 삶의 일부로 들어오고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의 형태는 천태만상이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에 불만을 가진 부부도 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결혼도 있다. 천생연분인 부부가 있고 비슷한 집안의 상대와 결혼한 부부도 있다. 행복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결혼도 있다.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몰이해와 경멸을 자아내는 결혼도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결혼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확 트인 그는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이 진작에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과 예식장에 들어갑니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첸후이는 남편과 만나서 사귀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이 배정하신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해 모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취향과 추구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말을 잘하고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능력 있고,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우리 요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원망 속에 살면서 상대를 차갑게 대하거나, 상대와 기싸움을 하고, 말다툼하며, 심한 경우에는 이혼까지 감행해 자신과 가족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이때, 첸후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순종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무능하다고 싫어하며 남편을 얕잡아보고 스스로 고통 속에 빠져 산 것입니다. 남편도 그의 안색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첸후이는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길 원하고, 더 이상 자신의 삶에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남편의 무능을 원망하지 않으며, 남편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돈이 없는 결혼 생활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때부터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면 예전처럼 그렇게 억지를 부리거나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남편과 화목하게 살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변화를 보며 그에 대한 태도도 누그러졌습니다.

하루는, 첸후이가 친정에 가자 이웃이 물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직도 신혼 때 살던 단층집에 사세요? 아파트는 안 샀어요?” 첸후이는 마음이 흔들리고 당혹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이요.” 이웃이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 살려고 하는데, 깨끗하고 편안해서 살기 좋잖아요.” 첸후이는 이웃의 시선을 피하며 핑계를 대고 말했습니다. “저희 시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어요. 저는 단층집도 아주 좋은데요. 아파트는 나중에 생각해 보려구요.” 이웃이 떠난 후 첸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휴! 우리가 무슨 집 살 돈이 있어!’ 부지중에, 첸후이는 또 남편이 무능해서 자기의 체면이 깎였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첸후이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혼이 당신께서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이 저보다 잘 사는 것을 보면 그래도 원망스럽습니다. 남편이 제가 원하는 행복한 생활을 주지 못한 것 같고,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하루는, 첸후이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트렌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트렌드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간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첸후이는 사람의 모든 고통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좇아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제일이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체면에 살고, 나무는 껍질에 산다’ 등등 사악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돈을 숭상하고 물질적 향락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고, 양옥집과 별장에 살며, 호화 승용차를 끄는 등의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좇습니다. 아울러 이를 밑천으로 서로 높은 수준으로 비기고 자랑합니다. 돈이 있고, 잘 살면 잘난 사람이고, 그가 하는 말에도 기가 살아있고 모두가 부러워하며 아첨합니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점점 비현실적이고, 허영에 빠지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해 완전히 인성과 이성,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모두 집안 조건이 좋은지, 돈은 잘 버는지를 봅니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부귀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도 존귀해진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시집 잘 가는 게 낫다' 등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며 완전히 결혼관을 왜곡시켰습니다. 사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 쌍방이 함께 모든 책임을 지면서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결혼에 너무 많은 요구와 조건이 생겼습니다. 부부간의 감정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거래로 가득합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면 결혼하고,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물질적 요구와 허영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그 결혼은 억지로 유지되거나 서로 미워하며 상처 주다가 심한 경우 이혼에 이릅니다. 지금 사회는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내연녀나 꽃뱀도 흔하게 보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깨달은 첸후이는 본인도 역시 사악한 시대 조류의 유혹을 받고 고통당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 그와 남편은 꽤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차 있고, 집 있고,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때, 그는 남편의 평범하고 무능함을 싫어했고, 매일같이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도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부부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서 집안은 예전의 화목하고 따스함을 잃었습니다.

첸후이는 남편에게 대했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추구했던 생활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건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종의 수단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지 않았다면, 첸후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본인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에게 우롱당하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되고 심지어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첸후이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자에게 시집가서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의 남편은 밖에서 외도하고, 여색을 탐하면서 부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집안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 하인처럼 굽실거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둘 사이에도 진실한 감정이 없었고 자주 말다툼하며 싸웠습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만족을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없는 쓰라린 고통과 무기력으로 가득했습니다. 설마 그런 삶이 행복할까요? 첸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그는 마음속의 이런 허망한 것들을 내려놓고 남편과 화해했습니다.

그 후에, 첸후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첸후이는 감개무량했습니다. ‘예전에 사탄이 주입한 목표대로 살려고 했던 삶은 정말 고통스러웠어. 난 진리가 없어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헛되이 내 인생을 낭비한 거야.’ 그제서야 깨달은 첸후이는 잘못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다시는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헛된 물질적 삶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남편을 바르게 대하고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기까지 헤아리니, 첸후이는 남편이 비록 돈이 없어서 그에게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주지 못하고, 허영심도 채워주지 못하지만 정직하고, 일처리가 신중해서 무슨 일을 하든 주도면밀하며, 그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억지를 부려도 남편은 다 양보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그의 믿음 생활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첸후이는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배정한 결혼이 가장 좋은 것임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인이 부자인 남편을 선택해서 풍족한 삶을 살았더라도 생활은 먹고 마시는 게 다였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창조주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진리와 비밀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사악한 시대의 조류도 분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첸후이는 가난하든 풍족하든 적절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남편을 대하는 첸후이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쏟고 이해했습니다. 서서히, 그와 남편 사이의 소통도 늘어났습니다. 남편은 그의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들의 가정도 화목해지고 온기가 돌았습니다. 첸후이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에 감사드렸습니다. 그의 지금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정확한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