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본인이 진입해야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

9

장쑤성 뚜판

얼마 전, 한 교회에 인솔자 한 명이 부족해 선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다른 한 인솔자가 원칙을 어기고 꼼수를 부렸다는 것을 알고 형제자매들이 그 인솔자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솔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고집을 부렸고 결국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너무 제멋대로 하는 게 아닌가? 교회 인솔자라는 사람이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사역안배도 무시하고, 형제자매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오히려 큰소리라니. 결국, 당신 때문에 교회에 혼란을 가져온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교회 인솔자에게 교통해 줄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근거로 그 방면의 진리를 찾아 그 자매를 설득할 준비를 했습니다. 저녁에 그 자매를 만난 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책망하는 어조로 자매에게 교통했습니다. 교통을 시작한 지 10분만에 자매는 눈물을 닦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뒤따라 갔던 형제가 돌아와 저에게 “자매는 갔어요. 본인도 잘못한 것을 알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꼬투리를 잡고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원칙적인 큰일을 그냥 얼렁뚱땅 넘기려는 건가요? 그 자매는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에요.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바로잡으려고 한 것뿐인데, 입도 뻥끗 못 하게 하면 앞으로 사역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가요? 너무 위험한 행동 아닌가요? 안되겠어요. 편지를 써야겠어요.” 저는 곧바로 자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먼저 제가 교통할 때 불손했던 점에 대해 자매의 양해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또 자매의 문제를 원칙과 결부시켜 썼습니다. 저는 이것이 합리적이며 올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고, 자신을 인식하는 인솔자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그 자매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인솔자에게 이 일을 교통하게 되었습니다. 인솔자는 저에게 이 일을 해결할 때, 어떻게 진입했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주 당혹스러웠습니다. ‘내가 어떻게 진입했느냐고? 설마 해결 방법이 잘못되었단 걸까, 부적절했다는 걸까?’ 인솔자는 “문제는 자매의 문제 해결 여부에 있는 게 아니에요.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지위와 권세로 형제자매를 대했는지, 아니면 진리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해결했는지, 형제자매가 스스로 깨닫게 했는지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했어요. 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교통으로 다른 형제자매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한 거죠. 보세요. 그 자매가 그때 왜 그렇게 갔을까요? 그것은 그 자매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은 것이에요. 우리가 다른 형제자매에게 진리만 교통해 주고, 정작 자신은 본인의 패괴를 가볍게 여기며, 본인조차도 이를 깨닫지 못한 채로 그저 사역만을 위한 사역을 하며, 스스로 공과를 배우지 못하고, 성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결국 바울과 똑같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정작 바울 자신은 성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오히려 그의 오래된 패괴 성정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더 고질적인 문제로 변질되어 자신과 견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되는 대상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인솔자의 교통은 저를 꿈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배치하셨을 때, 저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어떻게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그 당시 자신의 속마음에 대해 성찰해 보지도 않고, 그저 머릿속에는 온통 타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형제자매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이 저에게 고개 숙이게 하는 것입니까? 저 역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으로 진리도, 인성도, 이성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똑같은 피해자입니다. 제가 어찌 남보다 높고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저는 제 분수를 모르고, 진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말투는 사나워지고, 신경질을 냈으며, 혈기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자매를 훈계하며 교만 자대한 사탄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매는 눈물을 닦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지만, 저는 전혀 자신을 반성하거나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자매에게 반감이 생겨 자매를 미워하기까지 하며 화를 냈습니다. 저는 교통이라는 미명하에 큰 붉은 용처럼 독재 통치를 한 것이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경험에서 저는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오직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교 교통에서 “많은 사람이 거짓 인솔자나 적그리스도가 된 것은 진정성 있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진리 실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위가 있어 권력을 얻으면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고 높은 위치에서 권세에 기대어 사람을 억누르고 지위를 탐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민에게 미움을 사고 배척당해 실패할 것입니다. 설마 이런 교훈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사람은 왜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까? 만약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왕이 되어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한 사람의 행위이므로 적그리스도의 길로 가는 비열한 욕망입니다…”(<생명 공급 설교ㆍ하나님 말씀을 체험해 진리 실제로 진입해야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일단 지위가 있으면, 권세를 빌어 못된 짓을 하고 높은 위치에 서게 되고, 지위를 이용하여 타인을 억누르고 모함하고 억압하게 됩니다. 결국, 거짓 인솔자나 적그리스도로 변하게 됩니다. 지위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초래하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제가 경험한 이 일이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상태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 실질은 부인할 수 없으며, 그 길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자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제가 옳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저의 과오가 하나님께 고스란히 드러나 저는 도태될 것입니다! 제 생각이 이 끔찍한 결과에 다다르자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방법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바울처럼 자신의 생각과 상상 속에서 살았으며, 저의 타고난 본연의 개성과 패괴 본성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섬겼습니다. 만약 상태를 바로 돌려세우지 않았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형벌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저는 꼭 자신의 진입을 중요시하고 진리 추구를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저는 일선에서 본분하는 자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 그 자매가 자신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기에 저에게 실행의 길에 대해 교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다 읽자, 저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그 자매는 너무 교만한 것이 아닌가? 교회 인솔자와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고, 누구든 그 자매에게 건의하면 핑계만 대기 일쑤고, 독단전행하고, 책임진 교회 복음 사역이 효과가 없어 교회에서 계속 자매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오늘은 나에게 편지를 보내 ‘실행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다니. 나에게 ‘실행 길을 가르쳐’ 달라고? 자매는 자신이 옳고 합리적이지만, 남들은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을 인식하기나 할까?’ 생각할수록 화가 나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나한테 실행의 길을 가리켜 달라고 했지? 나도 진작부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기회가 왔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매를 굴복시킬 수 있도록 그 자매의 상태와 대조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제가 찾으려고 할수록 적합한 말씀을 찾지 못하겠고, 평소에 알고 있었던 말씀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것 때문에 조급해할 때 마음에 책망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그 자매를 네 앞에 배치해 놓았을 때 너는 어떻게 진입했는가? 왜 늘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 네가 지금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로 저는 마음이 좀 안정되었고 인식도 좀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의 일을 너는 다 잊었는가? 사역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후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때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자기 안에 있는 어려움부터 해결해야 하고, 자신의 타락된 성정을 제거해야 하며, 참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알아야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많이 교통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안 되니 자기 병부터 치료해야 한다. 나의 말을 많이 먹고 마시고 묵상하며, 나의 말대로 생활하고 처신하며,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하나님이 네 안에서 주권을 잡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줄 모르는 사람이 생명이 자랄 수 있겠느냐? 자랄 수 없다! 반드시 시시각각 나의 말로 살아야 하고, 삶 속에서 나의 말이 일 처리하는 기준이 되어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고 저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점차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2편 말씀>에서 발췌)

『교통을 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 생명과 영 안의 일을 교통해야 생명 공급을 할 수 있고 사람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람을 훈계하는 어투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그 자체가 위치에 잘못 선 것이다. 교통하려면 영 안의 일을 알아야 하며, 지혜가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더듬어야 한다. 타인을 섬기려면 본인이 반드시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교통하는 내용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3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수정같이 맑고 깨끗해 저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저는 일이 임하면 자신을 인식할줄 몰랐고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무엇인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일이 임할 때,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것이 너무 적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일을 하거나 일을 볼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원칙으로 삼으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일은 포기하고 배반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제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저의 이런 표현이 본분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44번 원칙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원칙’ 중 “1.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각 부류의 사람을 분별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반드시 사랑으로 도와주며,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라는 원칙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에게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은 네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 없는 자,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 하나님이 혐오하는 자는 우리가 마땅히 혐오해야 하고 마땅히 단절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서 요구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자신 안의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육신되어 자신을 낮추어 드러내지 않으시며,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패괴를 증오하지만, 인간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고, 인간을 패괴에 따라 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거듭 당부하시고 간곡하게 타이르시며, 사랑으로 감화시켜 인간에게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저를 높여 이런 본분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저 또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사랑으로 도와주고, 보살펴 주며, 성심성의껏 사람을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원칙을 어겼습니다. 지위가 좀 있다는 이유로 타인의 패괴가 드러난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연약함을 감싸주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상대방을 억누르고 굴복시켜 제 말을 듣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닙니까? 이때 저는 자신의 무지와 교만으로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바로 제43번 원칙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원칙’과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체험을 함께 나누고 체험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함께 나눈다는 것은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패괴 성정을 다 말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분별하게 함으로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은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진실하게 교통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자매와 어떻게 교통해야 유익을 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펜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는 사랑이 충만했고, 자매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교만 자대한 본성과 인성이 없는 행위를 이야기했습니다. 즉, 형제자매에게 사랑도 포용도 없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올바르지 못한 것을 말했습니다. 저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 앞에 자매님을 배치하여 제가 악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어요. 인솔자로서 저는 아무런 진리 실제가 없고, 정말이지 인솔자의 본분을 할 자격이 없어요.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분을 책임과 의무로 생각하지 않았고, 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본분을 권력과 지위로 여겨 제가 타인보다 높다고 생각했어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았을 때, 제 마음에는 미움과 논단으로 가득 찼어요. 또한 저는 자매님을 책망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너무나 교만 자대했어요! 사실 자매님의 부족한 점이 바로 저의 부족함과 결점이에요, 저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협력을 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조화로운 협력의 진리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른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문제를 드러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깊은 뜻도 몰랐으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지에 대해서도 몰랐어요. 그래서 닥친 일에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책망 훈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늘 저 자신의 육체를 수호하며, 일할 때 항상 겉면에서만 맴돌았어요. 자매의 이번 편지로 저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간파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앞으로 모든 일에서 우리가 함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분석하며, 제가 경험한 진실한 상황을 자매와 교통하며 함께 진입할 때, 홀가분하고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거리감도 벽도 없었고, 진리를 행한 후 하나님의 축복이 그 속에 있음을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되는 깨우침과 인도는 그저 도리만 말할 줄 알고 진입할 줄 모르며, 경험할 줄만 알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줄 모르는 저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저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한 성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상면의 형제님 교통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패괴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죄악이 있는 곳에 반드시 형벌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사역이 확실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는 것이 확실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과 은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직 이런 실제적인 심판 형벌이야말로 우리를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구해 내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을 박차고 광명에 들어서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진리를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계속 저와 함께하여 제가 하루속히 정결케 되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길 원합니다.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③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④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