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을 받은 후

2022.02.05

중국 친린

2018년 10월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에 가는 길이었어요. 근데 파이프를 싣고 가던 차가 들이받아 오토바이와 같이 바닥에 고꾸라져 그 자리에서 기절했어요. 그리고 깨어났을 때 왼쪽 가슴이 너무 아프고 숨쉬기가 곤란해서 사고차량 운전자가 절 병원으로 데려다 줬어요. 검사하니 왼쪽 여섯 번째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의사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원래 교통사고는 불행이지만, 지금은 행운이라는 거예요. 의사가 사고 덕분에 왼쪽 폐에서 종양이 있는 걸 발견했다고 얼른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며 시간이 지나 암이 퍼지면 늦는다는 거에요. 그걸 듣고 너무 놀라 주저앉았어요. 의사가 괜찮다고, 아마도 양성 종양일 거라며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위로해 줬어요. 전 속으로 ‘그래! 악성일 리가 없지. 하나님 믿는 동안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이렇게 생각하니 좀 진정되더라구요. 나중에 남편도 위로해 줬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 병원 장비도 최신이 아니잖아. 아마 오진일 거야.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면 별일 아니겠지.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 믿잖아. 병이 나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그땐 저도 하나님이 암에 걸리게 놔둘 리 없다고 믿었어요.

이틀 후에 동생들이 절 데리고 큰 병원에 갔어요. 근데 정말 너무 뜻밖에도 검사해 보니 악성 종양에다 그것도 벌써 중기였어요. 의사는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어요. 시간 끌다 말기가 되면 그땐 수술하고 싶어도 못한다구요. 그땐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구요. 하나님 믿는 동안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본분을 미루지 않았고, 형제자매한테 어려운 일 있으면 바로 가서 도와주면서 그렇게 진심으로 헌신했는데, 어떻게 이런 큰 병에 걸릴 수 있는지, 하나님이 왜 지켜주지 않으시는지… 생각할수록 괴로웠어요. 그때 어떤 환자가 저한테 자기도 수술한 지 1년 됐는데 수술한 데가 아직도 너무 아파서, 돈 쓰고 고생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같은 병실에 있던 한 노인이 수술 후 3일 째날 걸어다니다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죽었대요. 그 말을 들으니 맥이 탁 풀리면서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어요. 수술이 실패하면 전 죽고 돈만 날리는 건데, 또 가족들은 어떻게 사나요.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때 말씀이 떠올랐어요. 『사람에게 겁나고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사탄의 우롱으로 인한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맞아요.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 달렸으니 수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하나님 믿고 의지하며 직면하기로 했죠. 그 후에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4시간 정도를 수술하고 깨어났더니, 간호사가 기뻐하면서 수술이 아주 잘됐다는 거에요. 전 다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라는 걸 알고 속으로 감사드렸어요. 그리고 입원한 지 20여 일만에 퇴원했죠.

그런데 집에 와서 산소 마스크가 없으니 숨이 잘 안 쉬어졌어요. 숨을 들이쉴 수가 없는 거에요. 수술한 데서 노란 물이 나오고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요. 뭘 먹거나 마시려면 기침이 나와서 식구들이 수술 부위를 막아 줘야 했고, 누워서 자면 숨이 가빠져서 앉아서 자야 했죠. 진짜 하루가 일년 같더라구요. 정말 이 괴로운 날이 언제면 끝날지 하나님도 지켜주시지 않고, 계속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는 건 고통이 더 클 텐데… 마음이 약해지다 못해 믿음마저 사라지더라구요. 말씀을 봐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기도를 해도 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어느 날 교회 리더가 와서 말씀을 읽어 줬는데, <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이 말씀이었어요.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이렇게 큰 병이 찾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고, 우리의 패괴 성품, 속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려는 거랬어요. 하나님 믿을 때 육이 편하면 본분도 열심히 하지만, 병에 걸려 육이 고통받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죠. 근데 그건 하나님과 거래하는 거지, 순종이 아니잖아요? 하나님 말씀과 리더의 교제를 듣고 나니까 부끄럽더라구요. 병에 걸린 건 하나님이 절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려는 건데 공과도 못 배우고 자신을 반성도 안 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너무 이성이 없었죠.

나중에 또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낯선 사람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 하나님이 사역한 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참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생명줄로 여겼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기를 원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검증하고 시련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종착지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조금이나마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 … 지금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나님은 단지 진리와 그의 도를 사람에게 부어 준 뒤 여러 환경을 마련하고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시련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말씀과 진리와 그가 행하는 사역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많은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와 글귀와 규례로만 삼아 지킬 뿐, 일을 처리하고 말하거나 또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도를 자신이 지켜야 할 도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크나큰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방향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반감과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말씀에서 제 내적 상태를 드러내셨더라구요. 전 진리를 추구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려던 게 아니라 수고하고 헌신해서 그분께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던 거였죠. 돌이켜 보니 전 계속 그분을 방패막이로 여기고, 헌신을 많이 하면 그분이 절 지켜주고 축복해 주실 거라 믿었던 거예요. 몸이 건강하고 집안이 편안할 때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도 다 받아들이고 순종하면서 얼마든 고생할 수 있고 믿음도 충만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폐암에 걸리니까 본분 이행하느라 고생하고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지켜 줘야지, 이런 큰 병에 걸리게 하는 법이 어딨냐며 그분을 오해하고 원망했어요. 버리고 헌신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제 모습에서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은 볼 수 없었죠. 하나님은 절 가족으로 생각하고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셨는데, 전 하나님을 생명줄로 여기고 그분에게서 이익을 보려고 했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죠. 그건 완전히 하나님과 거래하고, 그분을 이용하고 속이는 건데,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어요! 하나님을 믿는 동안 그분에게서 평안과 축복을 얻고,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어요. 하나님이 주신 게 너무 많아요. 근데 그 사랑에 보답하기는커녕, 매번 달라고 요구만 하고 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오해하고 원망했어요. 너무 양심이 없고, 이성도 없죠. 그제서야 제가 이렇게 병에 걸린 건, 하나님께서 복받으려고 하나님을 믿는 제 그릇된 관점을 바꾸고, 진리를 추구해 패괴에서 벗어나라는 뜻인 걸 알았어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죠! 그러니 정말 죄책감이 들었고, 하나님의 고심을 저버릴 수 없어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어요. 그걸 깨달으니까 마음이 정말 든든하고 편안해지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씀을 봤죠. 그러니 서서히 몸도 전처럼 힘들지 않더라구요.

어느새 1차 항암치료를 하는 날이 됐는데, 같은 병실 환자들 다 구토를 하더라구요. 저도 메스껍긴 했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죠. 그러니 저보고 복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다 하나님이 돌봐주신 거잖아요. 치료를 세 번 받으니 체력이 점점 떨어져 걸을 때도 비틀거리고, 식욕도 없고, 밥만 먹으면 토했어요. 4차 치료 때는 약물을 주사하고 얼마 안 가 온몸이 나른해지더니 위장이 요동을 치면서 계속 헛구역질이 나고 눈도 흐려져서 다 겹쳐서 보이고 주위가 뱅뱅 돌면서 너무나 괴로웠어요. 눕지도 못해, 앉지도 못해 어질어질해서 나도 모르게 주사 바늘을 빼 버린 거예요. 수간호사가 와서 남편한테 호통치면서 약물에 세균이 들어가면 지금까지 받았던 치료가 다 소용없게 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누가 책임질 거냐는 거에요. 그동안 받던 치료가 다 소용없게 된다는 말을 들으니, 속으로 돈은 쓰고 병은 안 낫고 매일 제 간호를 해야 하니 가족에게 짐만 되고, 그렇다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순간 너무 절망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남편이 안 보는 사이에 몰래 병실에서 나와 12층 창가에 걸터앉아 정말 이렇게 힘들 바에야 차라리 뛰어내리자 생각했죠. 그러니 계속 눈물이 나는 거에요. 근데 그때 갑자기 남편이 오더니 절 거기서 끌어 내렸어요. 그리고는 저한테 하나님을 믿어야지 왜 사람 말을 믿냐는 거에요. 그 말을 들으니 부끄럽더라구요. 그렇죠. 왜 전 그분께 의지하지 않았는지… 그때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 밖에도 모든 사람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외적으로 이미 죽음에 이를 정도의 병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기에 너의 수명이 아직 다한 것이 아니고 너의 사명이 완수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너를 데려가지 않는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구해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제가 몇 살까지 살고 언제 죽을지 이미 정해 놓으셨다구요. 아무리 암에 걸렸대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내기 전이면 살려 두실 거고, 사명을 완수하면 병이 없더라도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게 하나님이 정한 운명이죠. 근데 전 그것도 모르고 병고가 닥치니 순종하려는 마음은 싹 사라져 버리고, 병이 낫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그냥 죽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 거죠. 얼마나 패역해요! 그걸 깨달으니 그렇게 괴롭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기로 다짐했어요. 치료를 몇 번 더 받고 나니 놀랍게도 많이 회복됐어요. 퇴원할 때 의사가 하는 말이, 세 달 후에 문제 없으면 방사선 치료는 안 해도 된댔어요. 집에 와선 몸이 많이 좋아져서 본분도 다시 시작했어요. 1차 검사 때 의사가 문제 없고, 상태도 또 괜찮다는 말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본분을 잘해서 하나님께 보답하려고 했죠. 하나님이 병을 거두셔서 고생이 끝날지도 모르니까요. 그 뒤로 전 본분도 열심히 하고, 믿음도 커졌어요.

2차 검사 때는 뜻밖에도 의사가 암이 후두부로 전이돼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거에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순간 온몸이 굳고 눈물만 나더라구요. ‘아니, 암이 왜 퍼졌지? 이번에 병에 걸리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꾸고, 또 최선을 다해 본분 했는데 하나님은 왜 병을 거둬 가지 않으시지?’ 한창 이런 생각을 하는데, 죄책감이 들더라구요. 또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차분히 반성해 봤어요. 왜 제가 병이 더 심해졌다는 의사 말에 또 참지 못하고 원망했는지 그러는 원인이 뭘까 생각해 봤죠. 그러다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우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어떤 목적과 야심, 저의도 없는 초심을 지닌 자가 있는지 보아라. 설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본 사람이 몇몇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다. …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제가 바로 그 모습이었어요. 하나님을 믿는 내내 복받을 목적으로 늘 복받고 평안을 얻을 궁리를 하느라 진리를 실행하고 순종하려는 고민은 해보지도 않았죠. 하나님 믿고 가정이 은혜와 축복을 받고, 저도 다행히 의지할 곳을 찾게 되니까 본분에 힘을 쏟으면서 하나님께 더 많이 받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암에 걸리니 원망하면서 난 본분 하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건강한 몸을 주셔야 한다 생각한 거죠. 또 암이 전이됐단 말을 듣고 또다시 하나님께 생떼를 썼어요. 아파도 본분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병을 거둬 달라구요. 완전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그분께 빚쟁이처럼 굴면서 계속 졸라 대고 거래를 했어요. 아무리 버리고 헌신해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드리는 게 아니라 거짓으로 그분을 속이고 그분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서 제 요구를 들어달라고 한 거에요. 전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사탄 독소로 살며 작은 대가로 큰 축복을 바라기만 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본성이 너무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수치를 모르는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이었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성육신하시고, 공산당의 박해를 견디셨어요. 그리고 우리처럼 믿는 사람들의 오해와 원망, 대적 때문에 큰 굴욕을 당하심에도 진리를 선포해 우릴 정결케 하고 구원하셨고, 또 그럼에도 하나님은 정말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셨어요. 하나님은 제가 병을 앓는 동안 계속 저와 함께하시면서 고통과 절망의 순간마다 말씀으로 저를 인도하셨어요. 하나님의 본질은 아름답고 선하고, 그분의 사랑은 너무나 크죠. 근데 저는 너무 양심이 없고, 제 행동으로 그분께 상처를 드렸어요. 바울도 복음 전파를 위해 버리고 헌신하고, 고생하고 애썼지만, 순전히 면류관과 상을 받으려는 속셈이었죠. 그가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한 말은 사실 자기가 복을 못 받으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는 거였어요. 바울은 전혀 자신을 알지 못했고, 성품도 전혀 변화되지 않아 결국 하나님께 벌을 받았죠. 근데 제 추구 관점도 똑같더라구요.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 게 당연한 거고,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저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죠. 제 그릇된 추구를 바꾸지 않으면 결국 저도 바울처럼 도태되게 돼요. 그래서 무릎 꿇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젠 제 그릇된 추구 관점을 내려놓고 싶어요. 앞으로 제 병이 어떻게 되든 당신의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에 매일 하나님 말씀을 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니 내적 상태도 좋아졌어요.

2019년 12월 어느 날 방사선 치료 받으란 연락이 왔어요. 다른 환자들이 방사선 치료가 무척 힘들다는데 살이 타들어 가고 머리도 빠지고 구역질 나고 어지러워서 밥맛도 잃는댔죠. 너무 무섭고, 그런 고통은 받고 싶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병을 거둬 가시면 고생 안 해도 될 거란 생각을 하다 순간 또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생각을 배반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말씀을 봤는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에 있는 말씀이에요.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뭔가를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 때문이지, 그 자신의 복이나 화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변함이 없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일생을 통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었다. 욥의 이러한 모든 생각과 행실은 하나님의 귀에 들어갔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생각과 행실을 중히 여겼으며, 그의 그러한 인식과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욥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생각하는 자신의 책임이었고, 또한 하나님이 원하는 바였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니 감동이 밀려왔어요. 욥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평생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뭘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죠. 시련이 닥쳐 온몸에 악창이 나서 고통을 겪고도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은 원망 안 했고, 굳게 서서 사탄에게 치욕을 안겼죠. 저도 욥을 본받아 굳게 서기로 했어요. 치료가 아무리 힘들어도, 또 병이 낫든 안 낫든 하나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죽어도 원망 않기로 했죠.

1차 치료가 끝나니 좀 메스껍긴 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어서 밥도 먹고 그랬어요. 옆의 환자들이 다 놀라더라구요. 같은 치료를 받고도 저만 멀쩡하다니 정말 신기하다고 했죠.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45일간 치료를 받는데 주치의가 검사 결과를 보고 놀라더라구요. 아니, 암세포가 다 없어졌다고 자기 눈을 의심하는 거에요. 그래서 병원 과장도 확인하고, 다른 의사들도 너무 신기해하더라구요. 암세포 부위도 사라지고 부종도 없어졌다고 다음날 퇴원하고 집에서 쉬어도 된다고 했어요. 전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였고, 제 생사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구요.

고통스런 병마와 싸우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죠. 근데 병 때문에 하나님 믿으며 복을 바라는 제 속셈과 불순물을 깨닫게 됐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됐어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저를 향한 구원을 알게 됐구요. 병이 온 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라는 걸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드렸어요! 앞으로는 복을 받든 화를 받든 제 자신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안배에 따르며 제 본분을 다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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