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보기엔, 모압의 후대라면 온전케 될 수 없고 온전케 될 자격이 없으며, 다윗의 자손이라 하면 꼭 희망이 있고 꼭 온전케 될 수 있지만 모압의 후대라 하기만 하면 온전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너희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의의를 모르고, 현재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너희들은 여전히 자기의 전망을 생각하면서 내려놓기 아쉬워한다. 무엇 때문에 오늘 유독 너희들 이 무리의 가장 가치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역사하는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설마 이 사역을 틀리게 하였단 말인가? 이 사역을 일시적으로 소홀히 하였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너희들이 모압의 자손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치우치지 않고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역사하겠는가? 너희들이 좀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이상, 고려해보지 않았겠는가? 그가 이렇게 경솔히 일을 처리하겠는가? 설마 시초에 너희들이 모압의 후대임을 몰랐단 말인가? 이런 것을 너희들이 좀 생각해볼 줄도 모르는가? 너희들의 ‘관념’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들의 그 건전한 사유가 균형을 잃었는가? 너희들의 총명과 지혜는 어디로 갔는가? 너희들이 도량이 넓어서 이 작은 일에 주의하지 않은 것인가? 너희들의 대뇌는 전망ㆍ운명과 같은 일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며, 이런 일을 제외한 그 나머지의 일에는 모두 마비되고 멍청하며 아무것도 모른다.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가? 전망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네가 믿는 것은 그래 모두 너의 아름다운 귀숙(歸宿)이 아닌가? 그래 모두 전망이 아닌가? 너는 현재 생명의 도에 대하여 얼마나 꿰뚫어보고 얼마나 얻었는가? 너는 오늘 모압의 후대 몸에서 역사하는 것은 너희들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고의로 너희들의 추악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고의로 너희들로 하여금 형벌을 받아들이게 한 다음 너희들을 불못에 던져 넣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에게 전망이 없다고 알리지도 않았고 더욱이 너희들을 멸할 것이고 너희들을 침륜되게 할 것이라고 알리지도 않았다. 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는가? 네가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네가 스스로 규정한 것이 아닌가? 너의 정신적 작용이 아닌가? 네가 스스로 규정한 것이 유효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만일 너에게 축복이 없다고 한다면 너는 꼭 멸망의 대상이고, 내가 너에게 축복이 있다고 하면 너는 꼭 멸망되지 않는다. 현재에 다만 너를 모압의 후대라고 말하였을 뿐 너를 멸망될 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모압의 후대는 다만 저주받은 것에 불과하고 패괴된 인류 중의 한 부류에 불과하다. 이전에 죄를 언급하였는데, 너희들이 모두 죄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죄인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아닌가? 죄인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대상이 아닌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저주받는 대상이 아닌가? 죄인이라면 다 멸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혈기에 속한 자는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그래 오늘까지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너희들이 모압의 후대인 고로 소극적이 되었는데, 너희들도 역시 죄인 중의 인류에 속하지 않는가? 너희들은 어떻게 오늘까지 걸어온 것인가? 온전케 된다는 것을 말하면 너희들은 기뻐하고, 큰 환난을 경력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이것은 더욱더 복이 있다고 느끼며, 능히 환난 속에서 나와 이기는 자로 되는 것은 더욱더 하나님의 지극히 큰 축복이고 지극히 큰 높임이라고 느낀다. 모압을 언급하니 너희들 가운데서 곧 파동이 일기 시작하였다. 어른이든 아이든 할 것 없이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고 마음속으로는 아주 언짢아하였으며, 너희들은 모두 태어난 것을 후회하였다. 모압의 자손 후대 몸에서 하게 된 이 단계 사역의 의의에 대하여 너희들은 깨닫지 못하고 높은 지위를 추구할 줄만 알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면 후퇴하였고, 온전케 되는 것과 이후의 귀숙을 언급하면 기뻐하였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고 자기에게 아름다운 귀숙이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현재에 이 지위 때문에 우려한다. 신분이 낮고 지위가 낮기 때문에 사람은 또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처음에 온전케 되는 것을 말하고 후에 모압의 후대를 언급하니 사람은 이전의 온전케 되는 길을 부인하였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시종 이 사역을 하는 의의도 모르고 또한 이런 역사의 의의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않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분량이 너무나 작아서 아주 작은 일에도 견디지 못하며, 자기의 신분이 너무나 낮다는 것을 보고는 소극적이고 추구할 신심도 없어졌다. 사람은 다만 은혜받는 것과 평안 누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징으로 삼고 복받기를 추구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근본으로 삼을 뿐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적합한 귀숙과 온갖 은혜를 달라고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종이 되도록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와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되, 어느 때든지 충돌이 발생되지 않도록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사람의 모든 요구를 승낙할 것을 요구하고 사람이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성경에서 본 “무릇 너희들이 구하는 것이라면 내가 다 들어주리라”는 이 말씀과 같다. 하나님께 사람을 심판하지도 말고 사람을 대처하지도 말라고 요구하며, 하나님이 언제나 인자한 구주 예수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좋은 관계가 있기를 요구한다. 사람의 믿음법은 모두, 사람이 비록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요구할지라도 사람이 거역하든지 아니면 순종하든지 하나님이 줄곧 사람에게 베풀어준다는 것이며, 사람이 계속 끊임없이 하나님께 ‘빚을 독촉’하여도 하나님이 반드시 아무런 반항도 없이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배로 갚아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뭘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다만 사람의 지배대로 해야 하고 사람을 임의대로 지배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다년간 감추었던 그 자신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마음대로 ‘사사로이’ 사람에게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오로지 영원토록 사람의 죄를 사하고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경에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섬기게 함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섬기려 하고 사람의 종이 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시키기만 하면 하나님이 오로지 순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너희들은 여전히 이러한 믿음법이 아닌가? 하나님께로부터 뭘 얻지 못하면 내빼려 하며, 일을 꿰뚫어보지 못하면 노기충천하고 심지어 욕까지 퍼붓는다. 너희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의 지혜와 기묘를 전부 다 발표해내는 것을 아예 용인하지 않고, 일시적인 안일만 탐향(貪享)하기 위할 뿐이다. 오늘날까지도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태도는 여전히 이전의 낡은 관점이다. 너희에게 위엄을 조금 나타내면 너희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현재 너희들은 자기의 분량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를 보았는가? 너희들이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라. 사실 너희들의 낡은 관점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면 너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롭다고 여기면서 최고봉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다가도 작은 일이 좀 있으면 음부에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인가?

만일 최후 한 단계 정복 사역을 이스라엘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정복 사역은 의의가 없을 것이다. 이 국가에서 하고 너희들 몸에서 하는 것은 가장 의의있는 사역이다. 너희들은 가장 미천한 자들이고 역시 지위가 가장 낮은 인류이다. 이 사회에서 너희들은 최하층의 인물들이고 또한 시초에 하나님을 가장 시인하지 않던 자들이다. 너희들은 하나님과 가장 멀리한 인류이고 아주 심하게 피해 입은 인류이다. 이 단계 사역은 다만 정복하기 위한 것이므로 너희들을 선택하여 이후의 간증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닌가? 만일 정복의 시작 사역을 이 사람들 몸에 하지 않는다면 이후의 정복 사역은 전개하기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이후의 정복 사역은 오늘 사역의 사실에 의하여 효과에 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복 사역은 다만 모든 정복 사역의 발단이며, 너희들은 정복된 첫 패의 사람들이고 정복될 전 인류의 대표이다. 만약 참으로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하는 오늘의 사역이 너무 좋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패역을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너희들의 신분도 드러내보였다. 그가 말씀한 목적과 의의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극적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말씀으로부터 계시받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며, 그가 한 말씀으로부터 사람의 영을 불러깨우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현재까지 사람은 줄곧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참으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길 것이다. 인식이 없는 사람은 어떠할 것인가, “아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압의 후대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압의 후대라고 친히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좋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더러 모압의 후대가 되라고 했습니까? 누가 우리더러 이전에 그렇게 그분을 대적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정하러 오셨어요. 당신은 하나님께서 시종 우리를 심판하시는 걸 보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니 이렇게 형벌을 받아도 마땅해요.” 이 말이 옳은가? 오늘 너희들을 심판하고 너희들을 형벌하고 또 너희들을 정죄하지만 정죄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든, 저주하든, 심판하든, 형벌하든 너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너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너로 하여금 자신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너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다 공의로운 것이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고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고 역시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역사한 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만약 너의 지위가 낮다는 것만 알고 네가 패괴되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네가 오히려 하나님이 오늘 네 몸에서 하는 심판과 형벌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경력할 수가 없고 더욱이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이 와서는 격살하는 것이 아니고 멸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는 것이다.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나기 전에 즉 각 종류의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은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옛 성정을 이탈하게 하는 것에 의하여 즉 생명을 추구하게 하는 것에 의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구비해야 할 바이다. 사람이 보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형벌ㆍ심판과 저주일 수 없으며 구원하는 데는 반드시 긍휼ㆍ자애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의하여 사람을 감동시켜 사람의 마음을 다 하나님께 드리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해내는 것이고, 즉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구원은 거래의 구원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백배로 베풀어주어야만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 귀복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분발하고 명예를 빛낼 수 있다는 이것도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조금도 틀림없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구원 방식은 그의 긍휼 자애를 전부 베풀고 심지어 자기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써 전 인류를 바꾸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전과 비길 수 없다. 오늘 너희들을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각기 종류대로 하는 때이니 너희들을 구원하는 방식은 긍휼 자애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으로써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받아들인 것은 전부 형벌ㆍ심판과 무정한 격타(擊打)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 무정한 격타에 아무런 징벌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다만 너희들이 보기에 조금도 인정미가 없는 몇 마디 말씀이고, 나의 노기가 얼마나 크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여전히 교훈의 말씀이니 너희들을 해치려는 뜻이 전혀 없고 너희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가? 너희들이 알다시피, 현재에 공의로운 심판이든지 아니면 무정한 연단과 형벌이든지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현재에 각기 종류대로 하려 하든지 아니면 각 종류의 사람을 드러내려 하든지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정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든 때림이든 다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 방식은 더는 이전과 비길 수 없다고 한다. 오늘,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들의 구원으로 되었고 각기 종류대로 되는 너희들의 제일 좋은 도구로 되었으며, 무정한 형벌은 너희들의 크나큰 구원으로 되었다. 이 형벌과 심판에 직면하여 너희들이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너희들이 시종 누리는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닌가? 너희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의 소재도 깨달았으며 더욱이 한차례 또 한차례의 격타와 징계도 경력하였다. 그러나 너희들은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는가? 너희들의 복은 어느 누구의 복보다도 더 크지 않은가? 너희들의 은혜는 솔로몬이 누린 그 부귀영화보다도 더 풍성하다! 너희들이 생각해봐라, 만일 내가 와서 너희들을 대하는 뜻이 정죄와 징벌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너희들의 날이 그래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겠는가? 죄에 속한 너희 이 혈기의 사람들이 그래 오늘까지 존류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너희들을 징벌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구태여 말씀이 육신 되어 이렇게 큰 공정을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만일 징벌한다면 한마디 말을 하는 시간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 일부러 너희들을 정죄한 다음 너희들을 멸할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들은 아직도 나의 이 말을 믿지 못하는가?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다만 긍휼ㆍ자애의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단 말인가? 또는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순복하게 하는 데에 더 유리하지 않은가? 더욱더 사람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한 말은 비록 엄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구원이다. 왜냐하면 나는 말만 하고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 빛 속에서 살게 하였고 빛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였으며, 빛의 귀중함을 알게 하였고 더욱이 이런 말씀이 사람에 대하여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바로 구원임을 인식하게 하였다. 내가 비록 허다한 형벌 심판의 말을 하였지만 사실이 너희에게 임하지는 않았다. 내가 온 것은 바로 사역을 하는 것이고 바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씀은 비록 엄하지만 모두 너희들의 패괴와 너희들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여전히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내기 위한 것이다.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엄한 것은 역사 효과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역사해야만 사람이 자기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역 성정을 이탈할 수 있다. 말씀 사역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는 전제 하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성정 변화에 달하게 하는 것이며,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달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하는 역사 방식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할 수 있고, 오직 말씀만이 진리를 천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방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명확하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후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말씀하는 방식을 채용하여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진리와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비밀을 사람들에게 풀어놓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참 도를 얻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게 한다.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징벌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것이 아니고 각 종류 사람의 귀숙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라 최후 한 단계 사역을 다한 후에야 상선벌악의 사역을 하고 각 종류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는 것이다.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확실히 구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구원받은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최대한도로 구원해내고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목적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없는 자,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할 수 없는 자는 모두 징벌받을 대상이다. 이 단계 말씀의 사역은 모든 사람이 깨닫지 못한 도와 비밀을 다 사람에게 풀어놓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조건이 있게 하여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은 다만 말씀으로 역사할 뿐 사람이 좀 거역한다 하여 결코 사람을 징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는 구원 사역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 패역이 있다 하여 사람을 징벌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고 징벌받고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알게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의 심판에 의하여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패역과 대적을 폭로할 것이고 도성육신(道成肉身)인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불순복을 폭로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때문에 이 사람들을 일일이 징벌하지 않고, 극도로 패괴된 구할 수 없는 그 사람들만 버려 그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주며, 개별적인 사람은 그 육체를 취소한다. 그 외의 그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따르면서 대처와 수리를 경력한다. 만일 따르는 기간에 여전히 대처와 수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또한 갈수록 타락해진다면 이러한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를 이미 잃은 것이다. 말씀의 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모두 최대한도로 관대해주는데, 즉 사람을 최대한도로 관용해주는 것이다. 사람이 미로에서 돌아설 수 있기만 하면, 사람이 회개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어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한다. 사람이 시초에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격살하려는 뜻이 없었고 되도록 구원하였다. 만일 사람이 참으로 구원할 여지가 없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한 사람을 함부로 징벌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쳐주고 인도하는 것이지 형장(刑杖)으로 격살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최후 한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