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도성육신의 비밀 (3)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는 그 무슨 건축을 하지 않고, 그 무슨 운동도 하지 않고, 직분을 하는 것이다. 매 차례의 도성육신(道成肉身)은 다만 한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다. 현재는 국도시대에 들어섰고 국도 훈련 중에 진입하였다. 이 단계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을 어느 정도로 만드는 것도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일부분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을 어떤 성과에 이르게 한 후 그가 다시 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분을 끝내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다 하면, 바로 그의 땅에서의 사역을 다 타당하게 안배하면 그는 영광을 받게 된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결코 같지 않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직분만 하는 것이며, 그의 직분과 무관한 이외의 일을 그는 거의 간섭하지 않고 심지어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는데, 특히 사람이 해야 할 사역에 그는 더욱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단지 그의 본시대와 그가 해야 할 직분에 유관되는 사역이며, 그 외의 일은 마치 그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듯하다. 그는 사람됨의 더 많은 상식을 장비(裝備)하지 않고, 더 많은 사교술도 배우지 않으며, 사람이 이해하는 기타의 일도 장비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이런 것에 그는 일률로 관심을 두지 않고 그의 직분 내의 사역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도성육신인 하나님께는 ‘결핍’함이 너무 많고, 심지어 사람에게 있어야 할 허다한 것을 그가 전혀 알고자 하지도 않고 또한 알지도 못한다. 예를 들어 생활 상식, 사람됨의 처세 원칙, 이런 것은 거의 그와 무관하다. 하지만 너는 도성육신인 하나님 몸에서 비정상적인 표현이라고는 조금도 볼 수 없다. 말하자면, 그의 인성은 단지 그의 정상 인성 생활을 유지하고 그의 정상 대뇌 이지(理智)를 유지하여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을 수 있게 하며, 그 외의 것을 그는 장비하지 않는다. 이 이외의 것들은 또한 사람(피조물)에게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도성육신은 단지 자신의 직분을 하는 것이고 전체 시대에 비추어 사역을 하는 것이며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구역에 비추어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전 우주를 향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역사하는 방향이고 그가 역사하는 원칙이다. 이것은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고, 사람이 전혀 간섭할 수도 없다. 매 차례의 도성육신은 모두 시대의 사역을 가지고 오는 것이지 일부러 사람과 20년, 30년, 40년, 7~80년에 이르기까지 생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그를 이해하게 하고 파악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본래 성품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전혀 깊게 할 수 없으며, 다만 사람의 관념을 증가시킬 뿐이고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사상을 노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하나님 도성육신의 사역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 깨달아야 한다. 설마 너희에게 말한 “내가 온 것은 정상 사람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 말을 너희들이 깨닫지 못하였단 말인가? 너희들은 “하나님이 땅에 와서 정상 사람의 생활을 지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 말을 잊었는가? 너희들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목적을 깨닫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하나님이 어찌 일부러 땅에 와서 피조물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도 모르는가?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단지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그의 땅에서의 사역은 짧은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일부러 하나님의 영이 그 육신을 양성하여 하나의 출중한 교회 인솔자로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본래 ‘도’가 ‘육신’이 된 것인데, 다만 사람이 그가 하는 사역을 몰라서 그에게 강요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모두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도성육신’이지 하나님의 영이 하나의 육신을 양성하여 ‘하나님’의 배역을 잠시 맡게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자신은 양성해낸 것이 아니라 ‘도’ㆍ‘말씀’이 ‘육신’ 되어 오늘 정식으로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사실임을 다 알고 시인도 하지만 너희들은 모두 끼어들어 숫자만 채우고 있다. 너희들은 하나님 도성육신이 하려는 사역 그리고 그의 도성육신의 의의와 실질에 대하여 전혀 깨닫지 못하고 다만 다른 사람을 따라 운문을 외울 뿐이다. 너는 하나님 도성육신이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다고 여기는가?

하나님 도성육신은 단지 시대를 인솔하고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점은 너희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기능과 크게 다르기에 너는 이 두 일을 함께 놓고 논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을 함에는 장기적으로 양성되고 온전케 되어야 쓰임받을 수 있다. 또한 요구되는 인성은 아주 높은바, 정상 인성의 이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허다한 처세 원칙과 법칙도 깨달아야 하고 사람의 더 많은 지혜와 윤리 지식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구비해야 할 바이다. 그러나 하나님 도성육신은 이런 것을 구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소시를 발표하고 직접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해야 할 시간에 하는 것이고 마음대로 마구 하는 것도 아니며 직분을 해야 할 때에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사람의 사역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성에는 이런 것이 구비되지 않았다(이런 것이 구비되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직분을 해야 할 시간에 그의 직분을 하며, 지위가 어떠하든지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며, 사람이 그를 어떻게 알든지 사람이 그에 대하여 견해가 어떠하든지 이런 것은 그의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역사할 때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나 그는 줄곧 그의 사역을 하였는데, 이런 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데에 지체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시초에 그는 사람에게 자기의 신분을 표명ㆍ선양하지 않았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였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비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역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육안으로 인식할 수 없고 설사 사람이 인식하였다 하더라도 그의 역사를 돕지 못하며, 또한 그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육신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하고 직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분에 대하여 그는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오직 그가 해야 할 사역을 다 할 때가 되어야 그의 모든 신분과 지위도 사람이 자연히 다 알게 된다. 하나님 도성육신은 침묵만 지킬 뿐 전혀 그 무엇을 선양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떠하든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따르든지 그는 줄곧 자신의 직분만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며, 누구도 그의 사역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가 사역을 끝마칠 때에 가서는 꼭 끝마치고 종결 짓게 되는데, 누구도 주장하지 못한다. 그가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을 떠난 후에야 사람이 그가 한 사역을 알게 되는데, 그러나 또 완전히 투득할 수는 없다. 얼마 동안 지나서야 사람이 그의 원래 역사할 때의 뜻을 완전히 깨닫게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도성육신 시대의 역사’를 도합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친히 하고 친히 말씀하여 육신의 직분을 다 하는 것이고, 다른 한 부분은 모두 성령께 쓰임받는 그런 사람에게 남겨주어 하게 하는 것인데, 바로 이때에 사람이 자기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길을 개척해냈고, 사람이 스스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도성육신이 일부분 사역을 하는 것이며, 이 사역을 잇는 이는 성령이고 역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 도성육신이 주로 무슨 사역을 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의의가 도대체 무엇이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의 실수이고 역시 사람의 관념이며 더욱이 사람의 패역한 점이다.

하나님 도성육신은 일부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육신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사람의 육체와 어떤 구별이 있는가를 분별하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사람의 능숙히 분별하는 능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일부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을 경배하게 하여 하나님이 이로부터 크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 도성육신의 원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사람의 죄를 정하거나 일부러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는 일부러 사람과 불쾌히 지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원뜻이 아니다. 그가 매번 말씀이 육신 되는 것은 모두 불가피한 사역이다. 그의 더 큰 사역과 더 큰 경영을 위해서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모두 사역의 필요이고 모두 필수적인 것이며, 일부러 땅에 와서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구태여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모두 부득이한 것이고 모두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 시야를 넓히게 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사리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며, 그가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고, 와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며, 와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고, 또한 육신을 입고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활을 인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그의 경영에 관련되고 전 우주의 사역에 관련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 도성육신이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히게 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무엇 때문에 각국에 가서 일주하지 않는가? 이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고 적합한 곳을 선택하여 머물러,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하였다. 단 이 하나의 육신이라도 상당히 의의가 있다. 그는 전체 시대를 대표하고, 또 전체 시대의 사역을 전개하며, 그는 옛 시대를 끝마치는 분이자 새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큰일이고 모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한 단계 사역의 의의이다. 당시에 예수가 왔을 때 그는 얼마간의 말씀만 하였고 얼마간의 사역만 하였다. 그는 사람의 생명이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사역을 끝마치고는 떠났다. 오늘 내가 말을 다 한 후 너희에게 알려주어 너희들이 다 깨닫게 되면 이 단계 사역이 끝나게 된다. 너희들의 생명이 어떠하든지 이후에 또 사람이 이 단계 사역을 이어야 하고 이 말씀을 이어 땅에서 해야 하는데, 그때면 사람의 사역을 하기 시작하고 사람의 건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는 다만 하나님이 역사하여 직분을 다하는 것으로써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할 뿐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사람이 사역하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은 집회와 좌담을 좋아하고 의식(儀式)을 중요시하지만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집회이고 사람의 회의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자유로이 말씀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고 특히 해방을 받으니 너희들도 모두 해방을 받는다. 그러나 너희에게 집회해주는 것을 나는 가장 혐오하며, 너희들의 이러한 규례와 같은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 나는 규례를 가장 혐오한다. 사람을 모두 제한하여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감히 말도 못하게 하며 감히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하고 뚫어지게 너를 바라보게 하는데, 나는 너희들의 이런 집회 방식을 가장 혐오한다. 가장 혐오하는 것은 대집회인데, 너희들과 함께 이렇게 모이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활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임받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의식과 규례가 너무 많아 너희들로 하여금 인솔하게 하면 사람을 다 규례로 이끌어들어가게 되므로 사람은 너희들의 인솔 아래에서 규례를 벗어날 수 없으며 다만 종교적 냄새가 갈수록 짙어지고 사람의 행실이 갈수록 많아질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집회하면 줄곧 강설하여도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강의를 하기만 하면 10여 일을 하여도 중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대집회에 속하고 사람의 회의에 속하는데, 그 무슨 먹고 마시고 누리고 영이 해방받는 생활에 속하지 않는다. 모두가 회의이다! 너희들의 동역자회ㆍ대집회ㆍ소집회를 나는 다 혐오하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역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칙이다. 집회에서 ‘설교’하기를 원하지 않고, 대중 앞에서 무엇을 선양하기도 원하지 않으며, 더욱이 너희들을 소집하여 며칠 ‘특별 회의’를 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이 모두 고지식하게 앉아서 함께 집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이 모두 어떤 의식 속에서 사는 것을 보기 싫어하고, 나는 너희들의 이러한 의식에 참여하기를 더욱 원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이렇게 할수록 나는 더욱 혐오한다. 나는 너희들의 이런 의식과 규례에 전혀 아무런 흥미도 없으며, 너희들이 얼마나 잘하든지 나는 다 혐오한다. 너희들이 잘못 안배한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너무 비천한 것도 아니라 내가 너희들의 이러한 생활을 싫어하고 더욱이 너희들의 이러한 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하려는 사역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한곳에 이르러 한 편의 설교를 끝마치고는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 성에서 나왔다. 제자들을 데리고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람들 가운데서 떠났는데, 자주 이렇게 역사하였다. 사람들 가운데서 떠나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그들이 깨달아야 할 도를 그들에게 얼마간 말하였는데,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역은 아주 적었다. 너희들의 요구에 의하면 하나님 도성육신은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가 사역을 해야 하되 앉아서도 말해야 하고 서서도 말해야 하며 걸으면서도 말해야 하고 시시각각 역사해야 하며, ‘운전’을 정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요구가 사람의 이지에 부합되는가? 너희들의 인격이 어디에 있는가? 너희들이 너무 과분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사역을 하는데도 네가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내가 나의 직분을 하는데도 네가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내가 무슨 사역을 해야 하고 어느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는 다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 혹시 네가 보기에는 내가 일을 얼마 하지 않은 것 같겠지만 나의 사역은 끝난 것이다. 네가 보아라, 4복음서에 예수가 한 그런 말씀도 다 유한한 것이 아닌가? 당시에 예수가 회당에 들어가서 한 편의 설교를 하는 데는 기껏해야 몇 분간이면 끝났다. 그가 말을 다 한 후 제자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떠났으며, 어떠한 해석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회당의 그 사람들이 서로 의논할 뿐 예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며, 그 외의 사역을 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많이 강의하고 많이 말씀하라고 하며,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말씀해야 한다고 한다. 너희들 보기에는 말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해야만 하나님이다. 너희들은 모두 소경들이다! 모두 짐승 따위들이다! 모두 사리를 모르는 것들이다! 너희들의 관념은 너무나도 많다! 너희들의 요구는 지나치다! 인성이 없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나님이라 하는지 전혀 모른다! 너희들은 무릇 ‘강설자’라면 모두 하나님이고 무릇 자주 너희에게 ‘말씀’을 공급하는 자라면 너희들의 ‘친 아비’라 여긴다. 너희들이 말해봐라, ‘오관이 단정’하고 모습이 ‘비범’한 이 사람들이 그래 이지가 조금이라도 있는가, 그래 천일(天日)을 알고 있는가! 너희들이 하나하나가 모두 탐관오리 같은데, 어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어찌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겠는가?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준 것은 적지 않지만 너희들 몇 사람이나 중요시하였는가? 누가 완전히 얻을 수 있었는가? 너희들은 오늘 너희들이 걷는 길을 도대체 누가 인솔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줄곧 나에게 요구하고 그 무리한 요구들을 제기하는데, 너희들은 부끄럽지 않은가? 내가 말한 것이 아직도 적은가? 내가 한 사역이 아직도 적은가? 너희들이 누가 진실로 나의 말을 보배처럼 여겨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가? 모두가 앞에서는 아첨하고 뒤에서는 기만한다! 너희들의 행실이 너무 비열하여 사람을 메스껍게 한다! 내가 알기로, 너희들이 나더러 너희에게 말씀하고 역사하라는 것은 다만 너희들의 눈요기가 되고 너희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불과한 것이지 너희들의 생활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가, 너희들의 생활은 벌써 변화되었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오늘까지도 너희들은 여전히 옛 병이 재발하는가? 설마 누가 나의 말을 빼앗아가서 너희들이 얻지 못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 같은 인간쓰레기들에게 나는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쓸데없다! 나는 그렇게 많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너희들은 다만 시야를 넓히거나 한껏 눈요기를 하기 위한 것이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너희들은 다 제 자신을 속이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내가 너희들과 대면하여 한 말을 너희들은 얼마나 실행하였는가? 너희들이 하는 것은 다 사람을 속이는 수작이다! 나는 너희들 가운데 굿을 보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을 혐오하고, 너희들의 호기심을 매우 혐오한다. 너희들이 만일 참 도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내가 혐오하는 대상이다! 내가 알기로, 너희들이 나의 말을 듣는 것은 너희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너희들의 어떤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일 뿐 너희들은 진리의 존재를 찾고 구할 생각이 없고 또는 생명의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를 탐구할 생각이 없다. 이런 요구들은 너희들 가운데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다만 ‘하나님’을 노리개처럼 삼아 연구하고 감상할 뿐이다. 너희들이 생명을 추구하는 마음은 아주 작으나, 너희들의 그 호기심이 있는 욕망은 오히려 작지 않다! 이러한 사람에게 생명의 도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기에 대고 말하는 격이어서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너희에게 알린다! 너희들이 만일 너희들 내심 속의 공허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뿐이라면 가장 좋기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 너희들은 너희들의 목숨을 중요시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희롱하지 말라! 너희들이 가장 좋기는 너희들의 호기심을 너희들이 생명을 추구하는 근본으로 삼지 말고, 이것을 너희에게 말씀하라고 나에게 요구하는 핑계로도 삼지 말라. 이런 것은 모두 너희들의 뛰어난 수작이다! 내가 또 너에게 묻겠다. 내가 너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한 것을 너는 도대체 얼마나 진입하였는가?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너는 다 인식하였는가?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너는 다 실행해냈는가?

매 시대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와서 시작한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운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특별 회의를 열어주러 온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무슨 조직을 설립해주러 온 것도 아니라 단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가 역사하는 데는 어떤 사람의 제한도 받지 않고, 어떻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며,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사역만 할 뿐이다. 창세부터 현재까지 이미 3단계 사역이다. 여호와로부터 예수까지, 율법시대로부터 은혜시대까지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에게 ‘특별 회의’를 열어준 적이 없고, 여태껏 모든 인류를 한곳에 소집하여 ‘세계 사역 특별 회의’를 여는 것으로써 그의 사역을 확장한 적도 없다. 그는 다만 적당한 시간에 적합한 지점에서 그의 전체 시대의 시작 사역을 하는 것으로써 시대를 전개하고 인류의 생활을 인솔할 뿐이다. ‘특별 회의’는 사람의 모임이며, 사람을 소집하여 함께 명절을 지내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기를 혐오하며, 특별 회의를 소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별 회의를 혐오한다. 현재 너는 하나님 도성육신이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사역인가를 깨달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