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연단 중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연단을 겪은 후 사람은 연단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연단 중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단이 많을수록 너로 하여금 더욱더 육체를 배반하게 할 수 있으며, 연단이 많을수록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사랑이 더 많아진다. 이것은 너희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다. 무엇 때문에 연단을 받아야 하는가? 연단으로 어떤 효과에 달하려 하는가? 하나님이 사람 몸에 하는 연단 사역은 무슨 의의가 있는가? 네가 만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서 어느 한 정도까지 경력하면 너는 하나님의 연단이 너무나 좋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연단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연단 중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지에 의하여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고, 연단 중에서 비록 안으로 고통받아 마음이 칼로 에이는 듯 아프지만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 하고 육체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안은 괴로워 어느 정도에 이르도록 고통스럽지만 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저의 안은 어둡지만 저는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니 당신의 사랑을 저의 안에 더 많이 만드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연단 중에서의 실행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토대로 하면 연단은 너를 하나님과 더욱 친근해지게 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한다. 네가 너의 마음을 바쳐 하나님 앞에 놓으면 너는 연단 중에서 꼭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정상적이며, 하나님과의 교통도 갈수록 빈번해진다. 네가 늘 이렇게 행하면 더 많은 때에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고 더 많은 때에 하나님 말씀의 인도 가운데서 살 수 있으며, 너의 성정도 갈수록 변화되고 너의 인식도 날로 늘어나게 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시련이 갑자기 너에게 닥칠 때,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을 해낼 수 있다면 그때에 너는 마치 욥과 같고 또 베드로와 같다. 네가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을 하게 되면 너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너는 달갑게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며,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연단을 겪은 사랑이라야 견강하여 취약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어느 때에 시련하든, 어떻게 너를 시련하든, 네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달갑게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달갑게 참을 수 있다면 너의 사랑은 순결해질 것이고 너의 믿음도 실제가 있을 것이다. 그때에야 너는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하는 진정한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진정한 사람이다.

사람이 만약 사탄의 권세 아래에 떨어진다면 안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이 없게 되며, 이전의 이상(異象), 이전의 사랑, 이전의 심지마저도 소실된다. 이전에는 늘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을 마땅한 것이라고 느꼈는데, 현재는 늘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것을 치욕이라고 느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불평이 생긴다. 이는 사탄의 역사에 속하며, 이는 사람이 사탄 권세 아래에 떨어진 표현이다. 이러한 정형에 봉착하면 너는 재빨리 기도하고 재빨리 돌려세워라. 이렇게 하면 너는 사탄이 공격할 때에 보호를 받게 된다. 고통스러운 연단 중에서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 떨어지기 아주 쉽다. 이때의 연단 중에서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너의 심지를 불러일으켜 너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놓아야 하고 최후의 시간까지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지 너는 여전히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하며, 하나님을 주동적으로 찾고 구해야 하고 교통하기를 주동적으로 찾고 구해야 한다. 이때 네가 피동적이 될수록 더 쉽게 소극적이 되고 더 쉽게 후퇴하게 된다. 기능을 해야 할 때에 비록 네가 잘 할 수는 없지만 너는 너의 전력을 다하였고, 너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였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너를 잘했다 하든 잘하지 못했다 하든, 총괄적으로 말해서 너의 존심(存心)은 옳은 것이며, 너는 자시(自是)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너를 오해하고 있을 때, 너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관용할 수 있기를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저를 양해할 수 있기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다만 마음속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양심이 평안 얻기만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칭찬하고 저를 높여주기를 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부터 당신을 만족케 하기만을 추구하겠습니다. 제가 이 기능을 함에는 저의 능력을 다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우매하고 소질이 낮고 눈이 멀었지만 저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기만 하면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는데, 이것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력 중에서 두 번 실패하고 한번 성공하는 것이 있거나 다섯 번 실패하고 두 번 성공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경력하고 경력해야만 실패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다. 너에게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칠 때면 자기를 신중하게 대해야 하고 자기의 발걸음을 단속해야 하며 다그쳐 기도해야 한다. 네가 이 일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이겨낼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기도가 효과에 달한 것이다. 네가 이번에 성공하여 안에 누림 얻은 것을 보고 또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더듬을 수 있고 성령의 함께함을 잃지 않게 된다. 이때에야 너의 몸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것에 의하여 실행하면 너는 경력 중에서 길이 있게 된다. 네가 만약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네 안에는 성령의 함께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일을 실행해낸다면 안은 좀 괴롭지만 그 후에 성령이 너를 따르게 된다. 네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함께함을 더듬을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때에도 힘이 있게 되고, 형제자매들과 교통할 때 양심이 참소를 받지 않게 되고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면 너는 자신이 한 것을 내놓고 공개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지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여전히 정상적일 수 있으면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 것이 효과에 달하였음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의 마음이 고통을 받으면 사람의 생명에 유익한 점이 있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시련을 여러 번 겪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역시 연단을 백 번 겪어야 하고 역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에 의해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에 의하고 고통스런 시련에 의해야만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사랑을 발하게 할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사랑이 없다. 안에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외면에 떠있게 된다. 어느 정도에 이르기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과 자신의 애로를 보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이 너무 많아 허다한 애로가 닥치면 이겨나갈 수 없음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 많음을 보게 된다. 시련 중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재 정형을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더욱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일생 동안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고통스러운 연마를 많이 겪었다. 이런 연단은 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토대로 되었고, 그의 일생 중 가장 의의있는 경력으로 되었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방면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지로 인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방면은 그가 받은 연단과 받은 고통으로 인한 것이다. 이런 고초는 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의 길잡이로 되었고, 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들로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만일 연단의 고통을 거치지 않는다면 사람의 사랑에는 천연적인 것이 가득하고 사람의 기호가 가득하다. 이러한 사랑은 사탄의 뜻이 가득하여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지가 있다 해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칠 수 없다. 설사 사람의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마치 사람의 뜻이 조금도 없는 것 같고 다 하나님을 위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져오면 모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사람이 설사 모든 진리를 투철하게 깨닫고 인식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이라고 말할 수 없고 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연단을 받기 전에 허다한 진리를 깨닫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런 진리를 다 실행해낼 수는 없다. 사람이 연단 중에 있을 때에야 이런 진리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고 이런 진리의 내포된 뜻을 참으로 체득할 수 있다. 이때 사람이 다시 이런 진리를 실행하면 정확할 것이고 하나님 뜻에도 부합될 것이다. 이때의 실행에는 개인의 뜻이 적고 사람의 천연적인 것도 적고 사람의 감정도 적다. 이때의 실행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 진리는 사람이 입으로 인식하고 마음으로 원하면 효과에 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깨닫게 되면 효과에 달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연단 중에서 허다한 고통을 받아야만 사람의 사랑이 순결하게 되고 하나님 뜻에 부합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열심으로써, 천연적인 것으로써 그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충심으로써, 진리로써 그를 섬기라는 것이다. 이래야만 진정한 사랑이다. 그러나 사람이 천연 속에서 살게 되면 진리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달할 수 없고 충심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달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 열성적이 아니면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 냉담한 것이고, 하나님을 극도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극도로 미워하는 것이다. 천연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이러한 극단 속에서 살고, 언제나 이러한 비진리의 정형 속에서 살면서도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비록 내가 누차 이 일을 언급하였지만 사람은 또 중요한 일로 여길 수 없었고 이 일의 중요성을 투철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스스로 우롱하는 신앙 속에서 살게 되었고,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비진리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되었다. 역대 이래, 인류의 발전에 따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갈수록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절대적일 수 있기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또한 갈수록 모호해졌고 갈수록 막연해졌다. 이에 뒤따른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에 뒤섞인 거짓도 갈수록 많아진 것이다. 사람의 정형과 사람의 모든 행위는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탄에게 갈수록 심하게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이 더 많고 더 큰 구원 사역을 해야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졌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또한 갈수록 적어졌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없는 패역 중에서 살게 되었고 비인성 생활 속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사랑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패역과 대적이 가득하였다. 비록 사람이 보기엔 사람이 이미 하나님에 대하여 최대한도로 사랑하고 최대한도로 관용한 것 같겠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에 대한 사람의 사랑에 뒤섞임이 얼마 있는지를 그는 아주 분명히 살폈으므로 여태껏 사람의 거짓 은근(慇懃)으로 인하여 사람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사람의 봉헌으로 인하여 사람의 은정에 ‘보답’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그렇게 분별이 없지 않다. 누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가를 그는 다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의 일시적 충동으로 인하여 열정이 끓어올라 그렇게 된 까닭도 모를 리가 없으며, 사람의 본질에 따라, 사람의 행위에 따라 사람을 대한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그에게는 그의 존엄이 있고 그의 주장이 있다.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다. 하나님은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의 사랑으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할 리가 없다. 반대로,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그는 정확히 대할 것이다.

사람의 정형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 대하여 인식도 있고 순복도 있을 수 있게 하며 사랑도 있고 간증도 있을 수 있게 한다. 이러면 사람은 반드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와 수리를 겪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영원히 인식하지 못하며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연단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와 사람의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몸에 연단의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있는 일로 되었고 크나큰 도움으로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 쉽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 쉽게 터득하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필경 하나님이니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성품에 대해서는 쉽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모두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구비된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구비되지 않았고 진리를 실행하는 심지도 구비되지 않았다. 사람이 만일 고통받지 않고 연단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 대하여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로지 연단 중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중에서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를 사람에게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중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수리하고 대처한다. 사실과 진리의 대조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더욱 인식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더욱 인식하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게 한다. 따라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하는 모든 사역은 그 목적이 있고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는 의의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취소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 속에 멸하려는 것도 아니라 연단 중에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존심과 사람의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고험이고, 사람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중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