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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1. 은혜시대에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할 수 없었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었을 뿐이다. 요한은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선봉장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머물렀고”, 예수는 그때부터 사역을 시작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직분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에게 하나님의 신분이 있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믿음이 어떠했든 ― 연약할 때도 있었고 강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 그것은 다 직분을 하기 전의 정상 인성 생활이었다. 예수가 세례(기름 부음)를 받자 즉시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이 따르게 되면서 그는 직분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표적과 기사, 이적을 행할 수 있었으며, 능력과 권세가 있었다. 예수는 직접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역사하고 영을 대신하여 역사하며 영의 음성을 선포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요한은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에 속하기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못한다. 요한이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했다면 성령이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에게 사람의 뜻에 속하는 것이 많이 있었거나 치우친 것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요한은 하나님을 직접 대표할 수 없다. 요한의 잘못과 그릇된 것은 요한 본인을 나타내지만 요한의 사역은 성령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요한의 전부가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요한의 치우치고 그릇된 것도 하나님을 대표한단 말이냐? 사람을 대표했을 때 치우치고 그릇된 것이 있는 것은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대표하는데도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은 함부로 사람이 하나님의 지위에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높이 받드는 사람일지라도 안 된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은 결국 설 수 없다. 성령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은 성령이 증거한 사람이고 또 성령이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령이 요한에게서 한 사역은 적당한 선이 있었는데,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되어 예수를 위해 길만 예비하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요한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만 유지하고 보호하였다. 그에게 길을 예비하는 사역만 하게 하고 그 외의 사역은 못 하게 한 것이다. 요한은 엘리야를 대표하고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를 대표하였기에 그런 사역은 성령이 다 보호하였다. 요한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위한 것이라면 성령이 다 보호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한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하고 자기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온 자라고 했었다면, 성령은 그를 징계했을 것이다. 요한이 한 사역이 아무리 크고 성령의 보호까지 받았을지라도 요한의 사역은 범위가 있었던 것이다. 성령이 요한의 사역을 보호한 것은 틀림없지만, 당시에 그에게 준 능력은 길을 예비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길을 예비하는 요한일 뿐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외의 사역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는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사람의 사역을 성령이 허용하는 것은 더 핵심적인 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2. 어떤 사람들은 악령이 들려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계속 외쳐 댔지만, 결국 서지 못하였다. 이는 그가 잘못 대표하였기 때문이다. 대표한 것이 사탄이어서 성령이 거들떠보지 않았다. 말하는 것이 아무리 대단하고 외치는 것이 아무리 커도 너는 피조물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존재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외친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외칠 필요가 있겠느냐? 높이 치켜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 자신은 자신의 사역을 한다. 사람에게 지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고, 사람에게 존칭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가 하는 사역이 바로 그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었더냐?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었더냐? 설마 그가 증거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었겠느냐? 그가 사역을 하기 전에 이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았느냐? 네가 새 길을 내지 못하고, 영을 대표하지 못하고, 영의 사역과 영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한다고 하자. 또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지 못하고, 영이 하는 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 기묘, 난측(難測) 그리고 사람을 형벌하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네가 아무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해도 소용없다. 이름만 있을 뿐, 본질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왔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계속 사역을 하는데, 그것도 영을 대표하여 사역한다. 네가 그를 사람이라 칭하든 하나님이라 칭하든, 주님이라 칭하든 그리스도라 칭하든, 또는 그를 자매라 칭하든 다 괜찮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영의 사역이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는 사역이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칭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에 대한 사람의 호칭에 의해 그의 역사가 결정되겠느냐? 네가 어떻게 칭하든,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된 육신이고, 영을 대표하며, 영이 인정하는 분이다. 네가 새 시대의 길을 낼 수 없고 옛 시대를 끝낼 수 없다면, 또 새 시대도 열 수 없고 새 사역도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3.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 사람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사역도 하나님을 직접 대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체험을 직접 하나님의 경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의 경영’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다 그 자신의 경영 계획에서 하려고 하는 사역으로, 큰 경영에 관련되는 일이다. 사람(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자신의 체험을 공급하는 것이고, 앞사람이 걸어온 길에서 다른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공급하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작이다. 성령께 쓰임 받을지라도 그들이 하는 사역은 6천년 계획에서 큰 경영과 관련되는 사역이 아니다. 그들의 사역은 각각 다른 단계에서 성령께 일으킴을 받아 그들이 할 수 있는 기능이나 그들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을 인도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하나님 자신이 땅에서 하는 경영의 한 항목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경영에서 더 큰 사역은 할 수 없고, 더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피조물을 대표하여 자신의 기능을 하는 것일 뿐,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직분을 할 수는 없다. 이는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인데,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을 받아 사역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인도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길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무관하고, 영의 사역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다르며, 그들의 신분이나 대표하는 대상도 다르다. 이는 성령이 하려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사역을 하는 것은 같을지라도 신분과 지위는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은 새로운 사역을 좀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옛 시대의 사역을 좀 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새 시대의 성품과 새 시대의 뜻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들은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하기 위해 사역하는 것일 뿐, 새로운 사역을 함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직접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행실을 얼마나 폐하고 새로운 행실을 얼마나 가져왔든, 여전히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한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역사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행실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전개한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가 사역을 하는 것은 단도직입적이어서 하려는 사역을 직접 한다. 바로 그가 가지고 온 사역을 직접 선포하고, 원래 하려던 사역을 직접 하여 그의 속성(원문: 所是)과 성품을 선포하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의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다. 하지만 그 자신이 보기에는 사역을 잇고 깊게 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말씀을 선포하고 새 사역을 직접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사역은 심사숙고하거나 연구를 거치거나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깊이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관습을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길을 가는’ 식이다. 즉,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는 길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열어 놓은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4.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태어난 것처럼 요한은 약속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고 많은 사역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 선지자에 속하는 것은 그가 예수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일도 아주 크다. 그가 앞에서 길을 다 예비한 후에야 예수가 정식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예수를 위해 힘쓴 것과 같다. 그가 한 사역은 예수의 사역에 봉사한 것이다. 예수는 그가 길을 예비한 후에 사역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사역은 더 새롭고 더 세밀하고 더 구체적인 것이었다. 요한은 시작 사역만 하였다. 더 많은 새 사역은 다 예수가 한 것이다. 요한도 새 사역을 하였지만 새 시대를 개척한 것은 아니다. 요한은 약속으로 태어난 자이고, 그의 이름 역시 사자가 지어 준 것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그의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려고 할 때, 그의 모친은 되려 “이 아이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해요.”라고 하였다. 그것은 다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그러면 요한은 왜 하나님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예수의 이름도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고 성령이 약속한 분이다. 그는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요, 인자이다.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하였는데 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예수의 사역과 요한의 사역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한이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했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냐? 아니면 하나님이 정해 놓았기 때문이냐?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말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한 자이지만, 그의 사역은 시작에 불과했을 뿐 심층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는 새 시대를 열었고, 낡은 시대를 끝냈으며, 구약 율법도 완전케 하였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속하는 그 단계 사역을 한 것이다. 요한은 길만 잘 예비해 놓았을 뿐이다. 요한이 한 사역도 컸고, 한 말도 많았으며, 그를 따른 제자들 역시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 시작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요한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전혀 얻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뜻 역시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이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고 택한 자들을 예비한,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이었다. 정상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이런 일을 전혀 분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의 사역 역시 상당히 컸을 뿐만 아니라 요한은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그의 사역은 성령이 보호해 주었다. 그러므로 오직 그들이 한 사역으로 각자의 신분을 분별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를 단정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은 다르고, 사역의 성질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과연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는 이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는 시작, 계속,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시작하기만 하였다. 예수는 처음에 복음과 회개의 말씀을 전하였고, 그 후에는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자신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하였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였다. 이런 점은 요한과 같다. 하지만 새 시대를 열어 사람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준 것은 다른 부분이다. 은혜시대에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과 가야 할 길은 다 예수의 입에서 나왔으며, 예수는 결국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다. 요한이 그 사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야말로 하나님 자신이고, 그는 직접 하나님을 대표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5. 오늘날의 이 단계 사역이 하나님 자신의 역사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은 이상(異象)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는 이번 단계 사역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네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거나 사역을 잘못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예수의 사역으로 오늘날의 사역에 대조해 보다가 맞아떨어지지 않자 이번 단계 사역을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면 너무나 눈먼 것이 아니겠느냐? 성경에 기록된 것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 4복음서를 다 더해 봤자 100장도 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것,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 금식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아내를 버리는 것에 관한 것, 예수의 출생, 예수의 족보, 예수가 제자를 세운 것… 그저 얼마 되지 않는 이런 것들만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보물로 삼으며 오늘날의 사역에 대조해 보기까지 하고, 또한 예수가 일생 동안 한 사역이 그 정도뿐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그런 사역만 할 수 있을 뿐, 더 이상의 사역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터무니없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6. 또 사람은 하나님이 육신에 오면 분명히 인성 생활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는 거룩한 분이므로 양치나 세수를 하지 않아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순전히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성경에 그의 사역만 기록되어 있고 인성 생활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에게 정상 인성이 없었다고 증명할 수 없다. 또 30세 이전에 정상 인성 생활이 없었다고 증명할 수도 없다. 예수는 29세 때부터 정식으로 역사하였다. 그렇다고 네가 예수의 29세 전의 인성 생활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그 부분은 정상 인성 생활 부분이지 신성 역사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세례를 받기 전에는 성령이 직접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직분을 해야 할 그날까지 그저 정상인의 생활을 유지하였을 뿐이다. 그가 성육신 하나님이었을지라도 정상 인성이 성숙되는 과정이 있었다. 성경에 그 성숙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자라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에는 은밀한 단계일 뿐이어서 표적과 기사도 나타내지 않았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 한 모든 사역이야말로 은혜와 진리가 넘치고 자비와 긍휼이 가득한 인류에 대한 구속 사역이다. 그 사역의 시작은 정확히 은혜시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계속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예수가 직분을 하기 전, 성경에서 말한 대로 영이 그의 몸에 임하기 전에 예수는 정상인이었고, 초자연적인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성령이 그의 몸에 임했을 때, 즉 그가 직분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온통 초자연적인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에는 정상 인성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고, 또한 성육신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다고 잘못 여기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의 사역과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이 다 초자연적인 것이고, 네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 초자연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가 행한 것과 말한 것은 사람이 깨달을 수도, 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것을 땅에 가져왔는데 초자연적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깨달을 수도 측량할 수도 없고, 너무나 기묘하고 지혜로운 천국의 심오한 비밀을 땅에 가져왔는데 초자연적이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무리 초자연적이든 다 정상 인성에서 한 것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에도 인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성육신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7.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서 역사하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그는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춘 후에야 아버지를 위해 사역을 담당할 수 있고, 아버지의 부탁을 감당할 수 있다. 그때가 되어야 역사하기 시작한다. 예수는 유년 시절에 고대의 많은 일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생들에게 물어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예수가 이제 막 말할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역사하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잘못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그는 사역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시작하는 것이지 사역을 완전히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사역하지 않는다. 예수가 29세였을 때, 그의 인성은 사역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상당히 성숙되어 있었다. 그제야 30년이나 감춰져 있었던 성령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정식으로 그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요한은 7년 동안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였다. 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마치자 투옥되었고, 그때 짐은 완전히 예수에게 지워졌다. 예수가 21~22세에 그 사역을 했었다면, 인성이 너무 부족한 데다가 막 청년 시기에 들어선 시점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 많아 방향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는 요한이 일정 기간 일을 한 다음 예수가 하였다. 예수가 사역할 때는 이미 그의 정상 인성이 해야 할 사역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중년이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8.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하는 데에는 많은 원칙이 있다. 사람은 많은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늘 고정 관념으로 대조하거나 하나님께 지나친 요구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이 순전히 고정 관념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 성육신하든,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만 또 육신을 벗어나 역사할 수 없고, 말씀이 육신 되었으나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역사하지 않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가 없게 되고, ‘말씀’이 육신 된 의의는 더욱 없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은 오직 하늘의 아버지(영)만 알 뿐, 그 외에는 육신 자신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도 모른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더없이 정상적이 되었다. 또한 확실히 ‘말씀’이 육신 되었고, 육신이 ‘정상이고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음을 더 잘 나타내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9. 어떤 사람은 “왜 시대를 열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셔야 합니까? 정말 피조물은 대신할 수 없단 말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다 알다시피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다. 물론, 새 시대를 전개하면서 옛 시대도 끝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나중이다. 스스로 사역을 전개하였으니 스스로 옛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을 물리치고 세상을 이기는 증거(證据)이다. 친히 사람들 속에서 역사할 때마다 한 차례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으면 옛 사역이 끝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옛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면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오직 하나님 자신이 와서 사람들 속에서 새 사역을 해야만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고, 사람에게 새 삶과 새 시작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낡은 시대에서 살게 되고, 영원히 사탄의 오랜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창조된 인류로 시대를 끝내게 한다면, 사람이나 사탄이 보기에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반하는 것일 뿐이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탄에게 약점을 잡히게 된다. 하나님이 친히 열어 놓은 시대에서 사람이 순종하고 따라야만 사탄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다른 사역을 할 필요 없이 따르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두고 각자 본분을 지키고, 각자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에 사람이 대신할 필요가 없다. 또한 하나님은 피조물의 사역에 개입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본분을 하고 하나님의 사역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순종이고, 사탄을 물리치는 증거이다. 하나님 자신은 시대를 연 다음 더 이상 친히 인간 세상에 와서 역사하지 않는다. 그때에야 사람은 정식으로 새 시대에 들어가 자신의 본분을 하게 되고, 피조물의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이런 것은 다 사역하는 원칙이므로 아무도 어겨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만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하나님이 스스로 한다. 하나님은 사역을 전개하는 분이자 사역을 끝내는 분이며, 사역을 계획하는 분이자 사역을 경영하는 분이고 더욱이 사역을 완성하는 분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나는 시작과 끝이라, 나는 씨를 뿌리는 자이자 곡식을 거두는 자이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모든 사역은 다 하나님이 스스로 한다. 그는 6천년 경영 계획의 주재자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거나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끝낼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이상 온 세상이 자신의 빛 속에서 살도록 이끌 것이고, 또한 자신의 모든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전체 시대를 끝낼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1)>에서 발췌

10. 예수가 유대에서 역사할 당시에는 공개적이었지만 지금 너희들 가운데에서 역사하고 말씀하는 것은 은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너희들 가운데에서 하는 사역은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 말씀, 이 형벌과 심판을 너희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이 사역은 너희들 가운데에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에게만 열려져 있고 이방인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형벌을 받아 온전케 될 날이 가까운데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이 사역은 참으로 은밀하다! 성육신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은밀한 것이지만,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공개하고 나타내고 보여 주었지만, 이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이지 그 외의 이방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여기에서 하고 있는 사역이 철저히 격리된 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알게 된다면 정죄에 핍박을 더하기만 할 뿐 믿지 않을 것이다. 큰 붉은 용 국가, 이 가장 낙후된 곳에서 역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역을 공개한다면 진행해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이 사역이 이곳에서는 아예 통하지가 않는다. 사역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그것들이 어찌 용납하겠느냐? 그러면 더 큰 위험에 직면하지 않겠느냐? 이 사역을 은밀하게 하지 않고 예수 때처럼 거창하게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마귀에게 ‘노략’되지 않았겠느냐? 그것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지금 교회에 들어가서 설교하고 교훈한다면, 내가 벌써 뼈도 못 추리게 되지 않았겠느냐? 그러면 사역을 어찌 전개해 나갈 수 있겠느냐? 지금 표적과 기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은밀히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발견할 수도 없다. 이번 단계에도 은혜시대의 예수처럼 역사한다면 이렇게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밀히 역사하는 것은 너희에게도 유익하고 사역에도 유익하다.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 곧 은밀한 사역이 끝날 때, 이 사역은 급속히 확장될 것이다. 사람들은 중국에 이긴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중국에 성육신하였고, 그의 사역이 이미 끝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중국이 빨리 몰락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중국에서 친히 역사하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했기 때문임을 문득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2)>에서 발췌

11. 성육신 하나님은 친히 역사하는 기간에 자신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지, 모든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성육신한 것은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 뿐, 사람에게 그의 형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반드시 그 자신이 친히 해야 하므로, 그는 반드시 육신을 입고 역사해야 한다. 사역이 끝날 때 그는 인간 세상을 떠난다. 앞으로 전개될 사역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인간 세상에 장기간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인에게 나타내는 것은 그의 공의 성품과 모든 행사일 뿐, 두 차례 성육신할 때 입은 육신의 형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성품으로만 나타낼 수 있을 뿐, 성육신의 형상으로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육신의 형상은 일부 한정된 사람들, 즉 육신에서 사역할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낸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역은 은밀한 사역이다. 이는 예수가 사역할 때 유대인들에게만 나타냈을 뿐, 유대 족속 외에는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역을 완성하자 인간 세상에 머물지 않고 즉시 떠났던 것이다. 그 후에는 예수의 형상이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직접 역사하였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다 끝날 때 그는 인간 세상을 떠나며, 그 뒤로는 육신에 머무는 기간에 했던 것과 유사한 사역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뒤의 사역은 다 성령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때 사람은 그가 육신에 있었을 때의 형상을 보기 매우 어렵다. 그는 사람에게 아예 나타나지 않고 영원히 숨는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특정 시대, 특정 시간, 특정 국가, 특정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 그 사역은 성육신 기간의 사역만 대표하는 것으로 시대성이 있고, 하나님 영의 한 시대 역사만 대표할 뿐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의 형상이 만민에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모든 성품이지 하나님의 두 차례 성육신 형상이 아니다. 또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두 차례의 형상이 합해져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은 해야 할 사역을 다 하면 반드시 땅을 떠나야 한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러 왔을 뿐 그의 형상을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하나님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케 되었을지라도, 그는 그를 본 적이 없는 어떤 족속에게도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2)>에서 발췌

12.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의 사역은 시대를 여는 것이고 몇 년에 한정된 사역이므로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끝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의 형상을 지닌 예수는 유대에서 역사한 하나님의 형상을 대표할 수밖에 없었고, 십자가의 사역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육신에 있는 기간에는 시대를 끝마치고 인류를 멸하는 사역은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사역을 끝내고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영원히 숨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방의 충성스러운 신자들도 주 예수의 나타남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벽에 붙여 놓은 주 예수의 그림만 볼 수 있었다. 그 그림은 사람이 그린 것일 뿐, 하나님 자신이 사람에게 나타난 형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두 차례의 성육신 형상으로 만인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역은 그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각 다른 시대의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나타낸 것, 그가 공개한 성품과 그가 한 사역으로 성취된 것이지, 예수의 나타남으로 성취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은 성육신의 형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그(그녀)가 한 사역으로 그의 형상을 나타내고 그의 성품을 공개한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성육신되어 하려는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2)>에서 발췌

13. 두 차례 성육신의 사역이 끝나면, 그는 이방 각 족속에게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만인에게 그의 형상을 보게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어 전체 옛 시대를 끝낼 것이다. 그가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그리 큰 영역에 미치지 않는 까닭은(예수는 유대에서만 사역하였고, 오늘날은 너희들 가운데서만 하는 것처럼) 육신의 사역에는 범위가 있고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정상적인 평범한 육신의 형상을 통해 짧은 시간의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성육신한 육신을 통해 영원한 사역을 하거나 이방 만민에게 나타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유대에서만 하거나 너희들 가운데서만 하는 것처럼). 그 범위에서 행한 사역을 통해 또 사역 영역을 확대하는데, 물론 확장하는 사역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그때는 성육신한 육신의 사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범위가 있는 것이지 전 우주 구석구석을 두루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의 영은 육신에서 한 사역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유한한 범위에서 하는 시작 사역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의 영이 그 사역을 이어 가고, 게다가 범위를 확대하여 역사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2)>에서 발췌

14.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단지 시대를 이끌어 가고, 새 시대를 전개하며 옛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그는 땅에서 사람의 생명 여정을 걸어 가려고 온 것이 절대 아니고, 땅에서 인간 세상의 풍상고초를 친히 체험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을 손수 온전케 하거나 어떤 사람의 성장 과정을 직접 보려고 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의 사역이 아니다. 그의 사역은 다만 새 시대를 시작하고 옛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바로 그가 스스로 시대를 시작하고 스스로 시대를 끝내는 것이고, 친히 사역하는 방식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친히 역사할 때마다 친히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는 먼저 육신에서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겨 모든 영광을 받고, 2천 년 전체 사역의 ‘서막’을 열어 땅에 있는 사람들로 합당한 길을 가게 하고, 평안과 희락이 있는 나날을 보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땅에서 오랫동안 생활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어쨌든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일반 사람의 일생이 있을 수 없다. 즉, 지극히 보통이고 평범한 사람처럼 땅에 상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반 사람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의 최소 부분만으로 인성 생활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어찌 땅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겠느냐? 그러면 치욕이 되지 않겠느냐?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은 그저 정상적으로 사역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게 있는 정상 인성은 일반 사람처럼 가정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정상 이성, 정상 사유, 정상 육신의 먹고 입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꼭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다고 증명할 필요는 없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말씀’이 육신 된 것이므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그의 말씀을 보게 하는 것이다. 바로 사람에게 육신에서 하는 사역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의 뜻은 사람들이 그의 육신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바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가 하는 모든 사역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는 육신에서 사역을 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그의 역사의 지혜와 모든 권능을 보게 하려는 것이지, 일부러 육신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높이 받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성이 아주 좋을지라도 아무 선전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만 하고 있을 뿐 왜 지금까지 그의 정상 인성을 널리 알리거나 증거하지 않는지 너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성육신 하나님에게서 본 것은 그의 신성의 속성뿐이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그의 인성의 속성을 선전하여 사람에게 본받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끌 때라야 인성의 속성을 보여 준다. 그래야 사람들로 인정하고 탄복하게 하여 그들을 이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행하는 사역(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만으로도 사람을 정복한다. 그는 사람을 탄복하게 하거나 ‘숭배’하게 한다기보다는 경외심을 느끼게 하거나 그가 난측하다고 느끼게 할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탄복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이 그의 성품을 보고 그를 경외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2)>에서 발췌

15.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은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분과 무관한 일은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묻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특히 사람이 해야 할 사역에는 더더욱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은 그 당시의 시대와 그가 해야 할 직분에 관련된 사역일 뿐, 그 외의 일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사람됨의 상식을 더 갖추지 않고, 사교술도 더 배우지 않으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른 일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그런 것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직분 내의 사역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어야 할 많은 것에 대해 관심도 없거니와 알지도 못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생활 상식이나 사람됨의 처세 원칙 같은 것은 그와 거의 무관하다. 하지만 너는 성육신 하나님에게서 비정상적인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인성이 그의 정상 인성 생활과 정상 이성을 유지시켜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외의 것은 갖추지 않는데, 그런 것은 사람(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오로지 자신의 직분을 하는 것이다. 전체 시대를 상대로 사역하는 것이고 전 우주를 향하여 사역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지역을 상대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역사하는 방향이고 원칙이며, 아무도 바꿀 수 없고 사람이 전혀 손댈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3)>에서 발췌

16.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오직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은 짧다. 그가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육신을 출중한 교회 인솔자로 양성하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 자체가 본래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다만 사람이 그가 하는 사역을 몰라 그에게 강요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양성하여 잠깐 ‘하나님’의 역할을 담당시킨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은 양성해 낸 것이 아니라 ‘진리’, ‘말씀’이 ‘육신’ 되어 오늘날 정식으로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3)>에서 발췌

17.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만 시대를 이끌고 새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기능과 크게 다르기에 너는 그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역하려면 장기적으로 양성되고 온전케 되어야 쓰임 받을 수 있다. 또한 매우 수준 높은 인성이 요구되는데, 정상 인성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처세 원칙과 법칙도 더 잘 알아야 하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은 그런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속성에 대해 말씀하고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마구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시간에 하고 직분을 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의 생활이나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인성에는 이런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이것은 그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는 직분을 해야 할 시간에 자신의 직분을 하는데, 지위가 어떻든 한결같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사람이 그에 대해 어떻게 알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든, 그런 것은 그의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사역했을 때와 같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한결같이 자신의 사역을 했다. 그런 것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사역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는 처음에 자신의 신분을 표명하거나 선전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따르라고만 했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낮춤일 뿐만 아니라 육신에서 역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육안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그의 사역을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성육신한 것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하고 직분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다 끝내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의 신분과 지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무엇을 선전하는 일 없이 침묵하기만 한다. 사람이 어떠하든 어떻게 따라오든, 그는 계속 자신의 직분만 하고 해야 할 사역만 하는데, 아무도 그의 사역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는 사역을 끝낼 때가 되면 반드시 끝내고 종결짓는데, 그것을 결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그가 사역을 끝내고 사람을 떠난 후에야 그의 사역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하고 뚜렷하게 알지는 못한다. 사람은 그가 예전에 역사할 때의 뜻을 완전히 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지 모른다. 말하자면, ‘성육신 하나님 시대의 역사’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부분은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고 친히 말씀함으로 육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한 부분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들에게 맡겨 사역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는 사람이 자신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미 길을 열어 주었으니 사람이 스스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이 한 부분 사역을 한 다음, 성령과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그 사역을 계속해 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이번 단계에 주로 어떤 사역을 하는지,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가 무엇인지, 그가 해야 할 사역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요구하는 대로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의 실수이자 사람의 관념이며, 더욱이 사람의 패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3)>에서 발췌

18.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에게 자신의 육신을 알게 하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과 사람의 육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별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분별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경배하게 하여 그것으로 크게 영광받으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 성육신의 원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사람을 드러낼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을 괴롭힐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원뜻이 아니다. 두 차례의 성육신은 다 불가피한 사역이다. 그것은 그의 더 큰 사역과 더 큰 경영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사역에 필요한 것이고, 필수적인 것이며, 땅에서 돌아다니려는 생각이 있어 온 것이 아니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 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부득이한 것이고,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게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며,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와서 시대를 대표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인데 그것도 육신을 입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삶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그의 경영에 관련되고, 전 우주의 사역에 관련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이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왜 각국을 돌아다니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적합한 정착지를 택하여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육신만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그는 시대 전체를 대표하고, 또 시대 전체의 사역을 전개한다. 그는 옛 시대를 끝내는 분이자 새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큰일이고, 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한 단계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3)>에서 발췌

19. 하나님이 친히 각 시대의 사역을 시작한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운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특별 집회를 열어 주러 온 것이 아니며, 어떤 단체를 설립해 주러 온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러 왔을 뿐이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아무에게도 제한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사람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인식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만 할 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3단계 사역을 하였다. 여호와에서 예수까지,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특별 집회’를 열어 준 적이 없다. 또 전 인류를 한곳에 소집하여 ‘특별 세계 전도 집회’를 열어 자신의 사역을 확장한 적도 없다. 그는 다만 적절한 시간에 합당한 장소에서 자신의 전체 시대의 시작 사역으로 시대를 전개하고 인류의 삶을 인도할 뿐이다. ‘특별 집회’는 사람의 모임이며, 사람을 소집하여 기념일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혐오하고, 특별 집회를 소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혐오한다. 너는 이제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3)>에서 발췌

20.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6천년 경영 계획에서 나타난 것이다. 은혜시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율법시대에만 나타난 것도 아니며, 말세에만 나타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말세 사역은 심판, 진노, 형벌을 대표한다. 말세 사역은 율법시대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대체할 수도 없다. 하지만 3단계 사역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며, 한 분의 하나님이 한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시대를 나누어 한 사역이다. 말세 사역은 마무리 사역이고, 율법시대 사역은 시작 사역이며, 은혜시대 사역은 구속 사역이다. 모든 사람들이 6천년 전체 경영 계획에 관한 역사 이상(異象)을 밝히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계속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말세에는 말씀 사역만으로 하나님나라시대를 전개하지만 모든 시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말세는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나 율법시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말세에 이르러서야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심오한 비밀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심오한 비밀은 그 어떤 사람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사람은 성경에서 진리를 조금 깨닫거나 글귀를 조금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들어 있는 뜻은 영원히 풀지 못한다. 그 까닭은 사람이 본 것은 여호와나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라 죽은 글귀뿐이고, 또 그런 사역의 심오한 비밀을 열 수도 없기 때문이다.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가장 심오하고 은밀하여 사람은 전혀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사람에게 해석하고 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고, 영원히 닫혀 있는 심오한 비밀이 될 것이다. 오늘날 너희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종교계 인사는 물론, 너희조차 깨닫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1. 말세 사역은 3단계 사역 중에서 마지막 단계 사역이고 또 다른 새 시대의 사역이지, 경영 사역의 전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6천년 경영 계획은 3단계 사역으로 나뉘며, 어느 단계 사역도 한 부분만 대표할 뿐 3개 시대를 대표할 수는 없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율법 아래의 하나님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율법을 정해 주었고, 계명을 반포하였으며,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율법시대만 대표한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게 하는 하나님, 성전 안의 하나님, 제단 앞의 하나님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율법 아래의 사역은 한 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사역만 한다면,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계시는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하고 반드시 성전 안에 들어가야 한다”라며 사람은 하나님을 규정할 것이다.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율법시대가 지속되었다면, 사람은 또 하나님에게 긍휼과 자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하고 죄를 사해 줄 줄만 알며, 거룩하고 무고한 분이며,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쳐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는 것만 알았을 것이다. 사람은 이런 것 외에 다른 것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을 대표한다. 율법시대가 어떤 측면을 대표하고, 은혜시대가 어떤 측면을 대표하며, 이번 단계가 또 어떤 측면을 대표한다. 이 3단계 사역이 다 합해져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3단계 역사를 알아야 완전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3단계 역사 중에 어느 단계도 빠져서는 안 된다. 3단계 사역을 알아야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보게 될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고, 구속 사역을 했다고 해서 영원토록 인류를 구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한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났으니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만 속하고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은 주로 말씀 사역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긴 적이 없이 형벌 심판만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말세 사역은 여호와가 했던 사역, 예수가 했던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 줄 뿐만 아니라 인류의 귀착지와 결말까지 밝혀 인류 가운데서의 구원 사역을 모두 끝마친다. 이번 단계의 말세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그것을 분명히 알게 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할 수 있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다 마쳐야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경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2.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끝나게 되었다. 모든 사역을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나타내고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다. 그러면 사람이 그의 모든 성품을 알게 되고, 그의 속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다 끝낼 때가 되면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밝혀 주고,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다 깨닫게 하고, 사람이 앞으로 가야 할 길과 인류의 귀착지에 대해서도 다 알려 준다. 이것이 바로 이번 단계에 하려는 모든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3. 오늘날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이전과 다르고, 율법시대와는 더욱 같지 않다. 이스라엘에서 역사할 때, 율법 아래의 사람에게 어떻게 요구하였느냐? 그저 안식일을 지키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되었다. 안식일이 되면 아무도 일하지 않았고, 아무도 여호와의 율법을 어겨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안식일이 되어도 평소대로 일한다. 예배해야 할 때는 예배하고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하는데,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다. 은혜시대에는 세례받고,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쓰고, 발을 씻어야 했다. 지금은 이런 규례들이 다 폐하여졌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더 높은 요구가 있게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깊어지고 사람의 진입도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예수가 안수기도하였다. 지금은 말씀을 다 하였는데 안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씀으로 직접 효과를 보는 것이다. 당시는 안수로 사람을 축복하고 사람의 병도 고쳐 주었다. 당시에는 성령이 그렇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이 그렇게 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효과를 본다. 말씀을 다 명확히 알려 주었으니 그렇게 실행하여라. 말씀이 바로 그의 뜻이고 그가 하려는 사역이다. 그가 한 말씀을 통해 그의 뜻을 깨닫고, 너에게 하라고 요구한 것을 알게 되므로 안수받을 필요 없이 바로 실행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제게 안수해 주세요! 안수로 당신의 축복을 받고 당신과 함께 몫이 있게 해 주세요!”라고 한다. 이것은 지난날에 했던 낡은 실행 방식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다 폐하여졌다. 성령은 시대에 따라 역사한다. 마음대로 하거나 규례에 맞춰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새 시대에는 반드시 새 사역이 있게 마련인데, 각 단계의 사역은 다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안수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하였지만, 오늘날 또 그렇게 한다면 의의가 없을 것이다. 성령은 당시에 그렇게 하였다. 은혜시대였기 때문에 사람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 없이 믿기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구나 특별한 은총을 누렸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여 형벌과 심판으로 사람의 패역과 사람 안에 있는 정결치 않은 것들을 제거한다. 그 단계는 구속 단계여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누리게 해 주어야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고, 은혜로 죄 사함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이 단계는 형벌과 심판, 말씀의 채찍질, 말씀의 징계와 폭로로 사람 안에 있는 불의한 것들을 드러내어 구원받게 하는 단계인데, 구속 사역보다 더 깊어진 것이다. 은혜시대의 은혜는 사람이 충분히 누렸고 또 이미 체험하였으므로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 사역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씀의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심판, 형벌, 연단을 받아 성품이 변화된 것은 내가 한 이런 말 때문이 아니더냐? 각 단계 사역은 전 인류의 발전 상황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하는 것인데, 행하는 사역은 모두 의의가 있다. 그것은 마지막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나중에 인류에게 아름다운 처소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마지막에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4. 마지막 사역은 말씀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아주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여 얻은 변화는 은혜시대의 사람이 표적과 기사로 얻은 변화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은혜시대에는 안수기도로 귀신이 사람 몸에서 나가긴 했지만 사람 안의 타락된 성품은 그대로 존재하였고, 병이 낫고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는 사역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아 사람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이지,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사함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이런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았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은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받아야 하고, 성품이 다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고 성품 변화의 과정을 알아야 하며, 또한 그 길을 따라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성품이 점차 변화되어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면 철저히 죄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예수가 역사할 당시,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모호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겼고, 대선지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 속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육체의 평안과 희락을 누린다든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다든지, 병이 낫게 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선행을 하고 겉으로 보기에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인정받는 신도였는데, 그런 신도라야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살아생전 생명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죄짓고 자백하는 것만 반복하였을 뿐 성품 변화의 길은 없었는데, 은혜시대의 사람은 그런 상태에 있었다. 그런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받았겠느냐? 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사역이 끝난 후에 또 심판, 형벌의 사역이 있게 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행할 길이 있게 한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을 쫓아낸다면 이 사역은 효과도, 의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죄성을 벗어 버릴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은 상태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속죄제로 사람은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이는 십자가의 사역이 끝났고, 하나님이 사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아직 타락 성품이 존재하여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인류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말씀으로 사람의 타락 성품을 드러내고 적합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앞 단계 사역보다 의의가 더 크고, 효과가 더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사역은 말씀으로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여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더 철저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가 완전케 되었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철저히 완성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5.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의 방식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어도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말씀’을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말씀’을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말씀을 듣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되거나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6.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다.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타락 성품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다시 속죄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진다.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하였다. 말세에 인류의 패역을 심판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정결케 했을 때에야 구원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였다. 그것은 3단계 사역 중에 한 단계만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 사역은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겪을 수 있으며, 평범한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 피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말씀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한 것이지, 사람이 간구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혈기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보지도 못하고 영에 접근할 수도 없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뿐이다. 이 사람을 통해야만 인간은 모든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되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두 번째 성육신으로 사람의 죄가 충분히 제거될 수 있고, 완전히 정결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이 끝나고,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가 온전케 되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의 성육신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하는 사역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성육신으로 이미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다. 그러므로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7. 말세 사역에서 말씀의 위력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위력보다 크고, 말씀의 권능은 표적과 기사의 권능을 능가한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타락된 성품을 까밝힌다. 네가 스스로 발견할 수 없지만, 말씀이 드러내면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다. 이것은 말씀의 권능이 아니냐? 이것은 오늘날의 말씀 사역으로 생긴 효과이다. 그러므로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온전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권능은 사람에게 은혜만 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육체는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고, 사람 속에는 여전히 사탄의 타락 성품이 존재한다. 즉, 정결케 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죄에 속하고 더러움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으로 정결케 되어야 하나님께 얻어지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고, 사람을 구속하였으며,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 하나님께 되돌아오게 하였을 뿐,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타락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구속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뿐, 사람의 속은 여전히 더럽고, 사람은 여전히 대적하며 거역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므로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 구속받기 전, 사탄의 많은 독소가 이미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몇천 년 동안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속받았어도 속량받은 것에 불과하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비싼 값으로 사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안에 있는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게 된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과 연단으로 타락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은 구원 사역이라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 이번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자 제2단계 구원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여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사람의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은 구속되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과오대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체에서 살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짓고 끊임없이 사함 받는 사람의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자백한다. 그러므로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하다고 해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 그것으로는 구원 사역의 절반만 완성되었을 뿐인데, 이는 사람에게 아직도 타락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죄보다 더 깊은 것이고, 사탄이 사람 안에 심어 놓은 것이며,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죄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사람은 깊이 뿌리박혀 있는 본성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말씀의 심판을 통해 효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때부터 점차 변화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8. 사람이 지금 이루어 낸 것, 즉 현재 사람에게 있는 분량, 인식, 사랑, 충실, 순종, 깨달음은 말씀의 심판으로 있게 된 효과이다. 네가 충실하고 지금까지 설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통해 된 것이다. 사람은 지금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이 확실히 평범하지 않고 많은 것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심오한 비밀이자 기이한 일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아무에게도 굽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철저히 순종하게 되었다. 감히 연구하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다 말씀에 무너지고 이 말씀의 심판 아래에 엎드러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그 ‘음성’ 앞에서 순종하게 될 것이므로 말씀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다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에 엎드러진 것과 같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타락을 인식하고 구원받는 이 목적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성육신해야만 각 사람에게 말씀을 직접 전해 줄 수 있고, 그래야 귀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말씀으로 있게 되는 효과이다. 영이 나타남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으로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옛 성품들을 완전히 들춰내어 인식하게 하고 변화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는 실제적인 사역으로, 아주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아주 실제적으로 심판한다. 그러기에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효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으로 된 육신의 권능이고 성육신한 의의이다. 그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말씀이 가져온 사역 효과를 나타내고, 영이 육신에 왔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심판하는 방식으로 그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육신은 비록 평범하고 정상인 인성을 지닌 외형이지만 말씀으로 생긴 효과를 통해 그에게 권능이 가득함을 보게 된다. 또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보게 되고, 그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임을 보게 된다. 이것으로 모든 사람은 그가 하나님 자신이고,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임을 보게 된다. 또 아무도 범할 수 없고, 아무도 그의 말씀의 심판을 넘어설 수 없으며, 어떤 흑암 세력도 그의 권능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29.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육신도 권능을 지닐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게 아주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는 모든 권능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역사 효과도 뚜렷하다. 이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능을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본질은 권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그의 권능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역사할 때에도 그의 권능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역사는 다 효과가 있게 할 수 있다. 사람이 그가 권능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그의 거스를 수 없는 측면과 그의 진노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권능, 은밀한 진노, 공개한 말씀을 통해 말씀하는 효과가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지혜로 사람을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권능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이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말씀이 육신 된 다른 한 측면의 의의이다. 즉, 그것은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말씀의 실제로 사람에게서 효과를 보게 하고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혀 효과가 있을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볼 수도,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육체에 속한 피조물이고,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양자의 성질도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아예 맞지 않아 전혀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영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원래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피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영이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을 예로 들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구속할 수 있지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제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 사이를 몇 번 더 왕복해야지’, 사람을 하늘에 올려 보내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오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타락되었고, 또한 전혀 하늘에 올라가 속죄제를 가지고 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람들 속에 와서 친히 사람이 전혀 할 수 없는 사역을 해야 했다. 매번 말씀으로 된 육신은 정말 필요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한 단계라도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억울함을 참고 모욕을 당하면서 말씀이 육신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30.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많은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고, 역대 이래 하나님이 한 사역을 깨닫게 된다. 또한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받게 되고, 역대 이래 사람이 열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며, 역대 이래 선지자와 사도가 한 일과 사역한 원칙을 알게 된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깨닫게 되었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각 단계의 역사와 말씀을 통해 영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고,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한 사역을 인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품도 인식하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을 인식하게 된 것 역시 말씀에서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에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과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니더냐? 예수의 그 단계 역사에서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지만 이 단계에서는 나타내지 않는다. 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지 알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한 말씀은 역대 이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을 능가한다. 선지자가 한 예언일지라도 이런 효과가 있을 수 없다. 선지자가 말한 것은 예언일 뿐이다. 선지자가 한 말은 향후 발생할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그 당시에 하려고 했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것도 아니다. 또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고, 심오한 비밀을 밝혀 주는 것도 아니며, 생명을 베풀어 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단계에서 한 말씀에는 예언도 있고 진리도 있지만, 그 말씀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과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첫 단계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이다.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시작 사역으로, 땅에서 역사할 근원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 당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무엇이 사람인지 몰랐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기에 첫 단계 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활을 인도해야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에는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예언을 한 것인데, 여러 사역 중의 한 가지였을 뿐이다. 첫 단계 사역은 성육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지자를 통해 각 나라 각 족속에게 공표하였다. 예수가 역사할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많은 말씀은 하지 않았다. 말세에 하는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역대 이래 한 적이 없었다. 비록 이사야, 다니엘, 요한이 많은 예언을 하였지만, 그들이 한 예언은 지금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이 말한 것은 예언일 뿐이지만, 지금 하는 말은 예언이 아니다. 내가 한 모든 말을 예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는 깨달을 수 있겠느냐? 내가 한 말이 앞으로 일어날 일이고 내가 떠난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네가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 말씀 사역은 예수 시대에 한 적이 없고, 율법시대에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그 당시에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역사하실 때에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신 것 외에는 역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말씀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여호와가 한 말씀의 본질은 무엇이냐? 그는 사람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였을 뿐, 그것은 생명과 영적인 일에 관련되지 않았다. 왜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각 지역에 공표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공표’, 이 두 글자의 뜻은 분명하게 알리고 직접 지시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그저 사람에게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친히 가르쳤을 뿐, 생명을 공급하지 않았고 그 어떤 비유도 하지 않았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사람을 책망하거나 징계한 것이 아니고 심판 형벌한 것도 아니라 인도하기만 한 것이다. 여호와는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광야에 나가 만나를 거두라고 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만나를 거두어 먹어야 하는데, 그날 먹기에 넉넉한 양을 거두되 이튿날이 되면 곰팡이가 나므로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여호와는 사람을 훈계하지 않았고,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사람 속의 생각과 마음도 폭로하지 않았다. 여호와는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인도한 것이다. 그때의 사람은 간단한 기계적인 동작만 어느 정도 할 뿐 어린아이와 같아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율법을 반포해 백성들을 인도하기만 하였다. 복음 사역을 확장하여 진심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하는 사역을 인식하게 하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려면, 너는 반드시 각 단계 사역의 내막과 본질, 그 의의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너의 교통을 듣고 여호와와 예수가 행한 사역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하는 모든 사역과 세 단계 사역 간의 연계와 차이점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듣고 난 후, 세 단계 사역은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다 한 분의 영이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또 비록 그들이 각각 다른 시대에 역사하고, 역사 내용도 다르고 하는 말씀도 같지 않지만, 역사 원칙은 같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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