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역사

목차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은 모두 마음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인데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만족을 얻으며, 마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하는 것인데 이로 인하여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있는 데에 달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에야 차츰차츰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하나님의 부담을 부담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고 종교 인사가 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 몸에서 하나님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다만 하나님 역사의 안받침물로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치 하나님 집의 장식품과 같다. 이는 숫자를 채우는 사람이고 폐물에 속하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 몸에는 성령이 역사할 기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온전케 할 가치도 없다. 이러한 사람은 표준적인 산송장이어서 성령께 쓰임받을 성분이 조금도 없다. 모두가 사탄에게 침점된 사람이고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이며 하나님이 도태시킬 대상이다. 오늘 사람을 쓰는 것은 사람의 취할 만한 부분을 이용하여 차제발휘(借題發揮)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취할 수 없는 부분을 온전케 하고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여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면 너는 성령께 쓰임받을 기회와 자격이 있게 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받게 되며 더욱이 너의 부족한 점에 대한 성령의 보완을 얻을 기회도 있게 된다.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적극적인 방면에서는 네가 더 깊이 진입하여 더 높은 보임이 있을 수 있으며,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네가 자기의 부족함에 대하여, 자기의 결함에 대하여 더욱더 인식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을 더욱더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게 되며, 또한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는 네가 옳은 사람임을 설명한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된 전제에서 네가 성령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는가의 관건적인 점은 바로 네가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성령이 사람을 깨우치고 사람을 쓰는 데는 사람을 소극적이게 하는 것이 조금도 없고,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진취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연약이 있을지라도 이것에 의거하여 살지 않을 수 있고 생명이 자라남에 지체되지 않을 수 있으며 계속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찾고 구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표준이다. 이 한가지만으로도 네가 이미 성령의 함께함을 얻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사람이 늘 소극적이면 설사 빛비춤을 받고 자기를 알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어서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만 입은 것이지 성령의 함께함을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소극적인 면을 놓고 말하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고 영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지 못하였음을 설명한다. 이 점을 모두 어느 정도 인식해야 한다.

경력 중에서 보다시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하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의 영적 생활과 사람의 생명이 자라나는 문제에 관련된다. 만일 너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다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에 달할 것이다. 네가 부담을 갖고 하나님 앞에 왔기에 늘 자기에게 부족함이 너무 많고 허다한 진리를 알아야 하고 허다한 실제를 경력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끼며, 이런 일을 언제나 너의 마음속에 두고 있는데, 마치 너를 숨 돌릴 수 없을 지경으로 내리누르는 듯하여 너로 하여금 이 때문에 마음이 무겁게 한다(그러나 소극적인 정형은 아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자격이 있을 수 있는데, 그의 부담으로 인하여, 그의 마음이 무거운 것으로 인하여, 가히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가 치른 대가와 받은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바꿔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또 마음대로 사람에게 베풀어주지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사람에게 더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면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최소한 마음조차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사람의 생명 성정이 아직도 별로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살면서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표준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담이 있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심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늘 깨우침을 받고 빛비춤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겉으로는 마치 이지(理智)가 없는 것 같고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말함에는 분수가 있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마음을 언제나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람만이 충분히 성령께 쓰임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언급한 이지가 없다는 이러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마치 사람과 정상 관계가 없는 것 같고 외면의 사랑과 외면의 행실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지만 영 안의 일을 교통할 때는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실제적으로 경력하여 받은 빛비춤과 깨우침을 사심없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줄 수 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훼방하고 비웃을 때에도 그는 바깥 인ㆍ사ㆍ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다. 마치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독창적인 견해가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울 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거나 마음속의 하나님께 묵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있으며, 여태껏 그와 다른 사람과의 정상 관계를 수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치 이러한 사람에게는 처세 철학이 없는 듯하다. 겉으로부터 보면 이러한 사람은 활발하고 사랑스러우며 치기(稚氣)를 띠고 있고 약간의 침착도 띠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의 모양이다. 그 무슨 처세 철학, ‘정상적인 이지’는 이러한 사람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전부 하나님 말씀에 기울이는데, 마치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님만 있는 듯하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지가 없다’는 사람이고, 바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의 표징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이 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아무리 방탕하고 아무리 정욕을 방종하고 육체를 방종하여도 그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며, 바로 성령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만일 네가 이 점에 달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질 자격이 없고 성령께 온전케 될 자격이 없다.

하나님과의 정상적 관계를 맺으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데에 달해야 한다. 이 기초에서 네가 다른 사람과도 정상 관계가 있게 된다. 만일 네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수호하든 네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힘써도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한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사람의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의 너의 지위를 수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너를 칭찬하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만일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수호하며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면 자연히 너와 모든 사람의 관계도 정상적이 될 것이다. 이렇다면 너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육체적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기초에서 맺어진 것이다. 육체적 왕래는 거의 없지만 영적으로는 교통이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공급한다. 하는 이 모든 것은 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기초에서 하는 것이며, 사람의 처세 철학에 의거하여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담에 의거하여 자연히 형성되는 것이며, 너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없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기를 원하는가? 너는 하나님 앞에서 ‘이지가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너는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사람들 가운데서의 너의 지위를 고려하지 않기를 원하는가? 네가 접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너와 관계가 가장 좋은가? 어떤 사람들이 너와 관계가 가장 나쁜가? 너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정상적인가? 너는 모든 사람을 다 일률적으로 대하는가? 너와 모든 사람과의 관계는 너의 처세 철학을 통해 수호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사랑의 기초에서 맺어진 것인가?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영이 무디고 마비되어 지각이 없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사람의 성정도 영원히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은 사람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우침과 빛비춤을 받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한 방면은 사람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하고 또한 소극적인 방면에서 인식하게 한 후 따라서 벗어버릴 수 있게 한다. 네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 달하게 되면 영 안의 매 하나의 세밀한 감동까지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약간의 깨우침과 빛비춤까지도 알 수 있으며, 계속 유지한다면 이것으로써 성령께 온전케 되는 경로에 차츰차츰 진입하게 된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할수록, 너의 영이 더욱 예민해지고 섬세해지며 더욱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다. 그러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갈수록 정상적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정상 관계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한 기초에서 맺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에 의거하여 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과 사람은 육체적 관계만 있고 다 비정상이며, 모두 정욕을 방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너의 영 안에 감동이 있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원하고 언제나 네가 중요시하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원한다면 만일 다른 사람이 찾고 구하는데도 너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여 네가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네가 감정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아예 정상 관계가 없음을 더욱 증명한다. 너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너는 자기의 추악한 몰골을 덮어감추는 것이다. 설사 네가 인식을 좀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너의 존심(存心)이 옳지 않다면 네가 하는 것은 모두 인위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어서 하나님도 너를 칭찬하지 않는다. 너는 육체에 의거하여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부담으로 인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고 또한 무릇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 정상적으로 왕래할 수 있다면 너는 비로소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한 사람이다. 이러면 네가 사람과 어떻게 접촉하든지 처세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중에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너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도대체 정상적인가? 어떤 기초에서 맺어진 것인가? 너에게 처세 철학이 얼마나 있는가? 벗어버렸는가? 만일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완전히 향할 수 없다면 너는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최종에 가서도 너는 여전히 사탄에게로 돌아가며, 너는 하나님의 자민(子民)이 될 자격이 없다. 이런 것은 모두 네가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