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집 (b)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7-B-1】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세의 사역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은 이미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상,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심판은 먼저 하나님 집에서 시작된다고 이전에 언급한 그 말씀 중의 ‘심판’은 바로 오늘 하나님이 말세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온 사람들에게 하는 심판이다. 혹 어떤 사람은 말세가 오면 하나님은 하늘에 큰 탁자를 하나 설치하고 그 위에 흰 탁자 보를 펴놓고 큰 보좌 위에 앉아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하나님은 각 사람의 죄상을 드러내어 그것으로써 사람이 천당에 갈지 유황불 못으로 내려갈지를 확정할 것이라는 등등의 이런 초자연적인 상상을 할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상상하든지 하나님 역사의 실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상상은 다만 사람 사유에서 온 구상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의 머리에서 온 것이고 사람이 듣고 보고 총결하여 끼워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상상이 얼마나 다채롭든지 그것은 다만 만화 그림일 뿐, 결코 하나님 역사의 계획을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모두 사탄에게 ①패괴된 사람인데, 어찌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하게 측량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아주 기이하게 상상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심판의 사역을 하시는 이상, 반드시 규모가 가장 방대할 것이고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틀림없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대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 사역일 수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사람은 ‘심판 사역인 이상,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틀림없이 아주 위엄 있고 기운이 넘치며,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대성통곡하며 땅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이다. 그때의 장면은 틀림없이 매우 장관(壯觀)일 것이고 사람을 매우 격동시킬 것이며……’라고 여긴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절묘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심판 사역을 시작했을 때에도 너는 여전히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네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여길 때는 벌써 하나님이 하늘땅을 바꾼 때라는 것을. 그때에는 혹시 네가 인생의 의의를 막 깨달았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무정한 징벌 사역은 깊이 잠들고 있는 너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때에 너는 문득 크게 깨달을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이미 끝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람이 싫어하고 역겨워하는 그런 화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말고, 무엇이 심판인지에 대해 말해 보자! ‘심판’이란 이 글자를 언급하면 너는 여호와가 각방(各方)에 ②효유한 말씀이 생각날 것이고, 예수가 바리새인을 질책한 말씀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 말씀은 비록 엄하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때의 다른 환경, 즉 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그런 말씀은 말세의 그리스도가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과는 다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며 사람의 말과 행위를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드러낸 그런 말씀은 더욱이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드러내고 대처(역주: 훈계)하고 수리(역주: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ㆍ대처와 수리는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③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④요해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ㆍ길ㆍ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만약 네가 이런 진리를 중히 여기지 않고 늘 이런 진리를 피하려 하고 늘 이런 진리 이외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면 나는 너를 죄악이 극에 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너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는 ⑤도(道)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심판을 도피하는 사람이라 하고, 너를 희고 큰 보좌 앞에서 도주하는 꼭두각시이고 배신자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서 도주한 어느 한 반역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 더 중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와서 심판을 받고 또한 정결케 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생존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후의 일이다.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다시 말하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각방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각방의 사람들에게 효유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에 대해 매우 언짢아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너에게 알리겠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흔히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며, 모두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며, 사람의 머리는 마치 한 웅덩이의 썩은 물과 같아 생겨나는 것은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매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한다. 그리하면 나는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각자에게 자기 자신을 금보다 더 중하게 여기지 말 것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로 인하여 심판 사역을 반복하여 두 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면 너는 후회막심해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한 말을 네가 믿지 않는다면 너는 하늘의 그 희고 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라! 너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수를 저버렸고 다 예수를 부인했어도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실은 우주와 땅끝까지 널리 전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닌가? 만일 네가 아직도 예수가 와서 너를 천당에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하나의 매우 완고한 썩은 나무라고 한다. 예수는 너같이 진리에 충성하지 않고 복만 받으려 하는 거짓 신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도 가차 없이 불 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 중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罪狀)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⑥효력할 자격조차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이 제사장이 되게 예정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역주: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 ”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효유(曉喩): 분명하게 알리고 직접 지시함.
③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④요해(了解): 인식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알다 등의 뜻.
⑤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⑥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137-B-2】
지난번 예배에 이어서 네 번째 단락을 교통하겠습니다.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은 심판 사역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시려는 사역인데,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셔야 할 사역입니다. 이런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러한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대신할 수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아마 “율법시대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해 하신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심판 사역은 왜 사람을 사용해 하실 수 없나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지 않을까요?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실 때에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셨습니다. 하지만 말세의 심판 사역은 무엇 때문에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지,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심판 사역의 정의를 알려 주셨습니다. 심판 사역은 어떤 성질의 사역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심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렇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 사역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다.’ “진리로 인류를 정복한다.” 다 같이 곰곰이 묵상해 봅시다. 사람은 왜 이 심판 사역을 할 수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어 진리를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식하고, 이렇게 터득해도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고, 진리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시고 심판 사역을 하시면 안 될까요?”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안 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어떤 사람은 아마 선지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도 역시 사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으니, 선지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으로 심판 사역을 하면 안 될까요? 다들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 안 될까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발표하시는 효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자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아닌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분으로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발표하셔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이런 효과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은 하지만 그 자신이 진리가 아니기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이런 효과, 이 둘의 효과에는 어떤 구별이 있을까요?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해 참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는 여기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고,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데, 왜 안 될까요? 왜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인즉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이 사역을 하면 적합하지 않기에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으로 심판 사역을 하신다면, 될까요? 왜 안 될까요? 그렇게 하면 어떤 방면의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까?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선지자를 사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면 단지 전달한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해서만 조금 인식하게 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에 대해서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선지자 그 자신의 실질이 인성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인성의 실질인데, 신성의 소유소시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절대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보시면, 비록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을 좀 교통해 낼 수는 있지만, 제가 유로하는 것은 여전히 인성의 소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진리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제가 유로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소시이지,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아시겠죠? 비록 제가 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유로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예 미치지도 못합니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우리는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든지 선지자의 실질은 인성이지 신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유로할 수 없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도 유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는 신성의 실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 사역을 하실 때 어디서나 수시로 진리를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유로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에게서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설령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아주 유한하죠. 아주 유한한 것입니다! 지금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셨으니, 당연히 말세의 심판 사역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실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우리가 이 점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지만 교계의 사람들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많은 진리에 대해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그들보다 너무나 많이 얻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 책은 전부 진리의 발표인데, 하나님께서 창세하신 이래 인류가 하나님의 몇 단계 역사를 경력하면서도 여태껏 얻은 적이 없었던 진리이며, 여태껏 모르고 있었던 진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고 있기에 이런 진리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두터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말씀해 보세요, 교계에 있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아주 많은 목회자들은 다 학문도 있고 지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말세의 역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하신 것을 발견할 수 없을까요? 왜 이런 사실을 보지 못할까요?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마태복음 13:15, 사도행전 28:27)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성경을 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불쌍하게 보이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진리 실제가 좀 있는 사람이 진리를 교통하고 설교로 공급을 한다고 하면, 저는 교계의 목사보다 백배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교계 목사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안경까지 쓰고 강단에 서 있으니 “와, 멋있네! 우리 목사님, 기품이 있으셔.”라고 하지 마세요.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설교 내용에는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다릅니다. 겉모습은 번듯하지 못해도 진리 실제 몇 마디만 교통하면 교계 사람들이 놀라워합니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이 말씀은 어디에서 온 거예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왜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르죠? 우리가 말씀 나누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궁금해합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죠? 똑같이 성경을 읽고, 똑같은 참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실제적인가요? 그 인식이 왜 우리보다 더 깊은가요?”라고 말합니다.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한 효과입니다. 그들은 심판 형벌을 경력한 적이 없기에 성경을 100년 동안 읽으며 연구한다고 해도 이런 효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성경을 가장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지만,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계속 아버지 하나님을 높이고 ‘삼위일체’를 높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할까요?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 알았더라면 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교계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논리, ‘삼위일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로 종교인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 보니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생긴 것입니다. 심판 형벌이 우리 몸에서 도달한 효과는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우리가 오늘 그 주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니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137-B-3】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 더 보겠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이 말씀의 의의는 정말 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영체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면 어떨까요? 될까요? 어떤 분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 안 될까요?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다 느낌이 있습니다. 다들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되냐고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죠? 만약 왜 안 되냐는 물음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성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이성적인 인식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체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역사하신다면 사람이 볼 수 있을까요? 사람이 만질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될까요?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영이 음성을 내어 말씀하십니다. 소리가 나니까 그 소리를 따라서 찾아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누가 나한테 말했지? 어? 사람은 어딨지?”라고 하게 됩니다. 찾아봐도 없으면 곧바로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겁에 질리겠죠. 무서워서 방에 있지도 못하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네 집에서 소리가 나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겠죠. 그러면, 누구도 감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기자가 와서 조사해 보고는 “소리도 없는데? 당신, 정신 이상이 생긴 거 아니에요?”라고 할 것입니다. 정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봐도 병이 없다고 합니다. 병도 없는데, 왜 정신 나간 소리 하냐고 하겠죠. 그렇게 되면 쉽게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역을 직접 영으로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역을 영으로 하시면 하늘에서 우렛소리로 말씀하시든,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든,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든, 아니면 방안에서 말씀하시든,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든 다 안 됩니다. 사람들은 다 기겁하면서 아연실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쉽게 혼란이 생기겠죠. 그렇지 않은가요?
보시면, 크리스천들이 기도할 때는 언제 어디서든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기도로 찾고 구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이 음성을 내어 말씀하신다면, 기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영에 아뢰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영으로 말씀하시면, 한두 번만으로도 기겁하게 될 것이고, 기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인성은 그런 초자연적인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니면, 저녁에 방에 불을 딱 끄고 캄캄해지는 순간 두 눈이 나타나서 지켜 본다면, 무섭지 않겠습니까? 무섭습니다. 사람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쉽게 정신 착란이 오고, 정신이 무너집니다! 귀신 하나가 뭐 자그마한 짓을 해도 사람은 질겁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게 바로 사람의 육체입니다. 영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에게 나타나시려면, 가장 적절한 방식은 오직 성육신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인자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고, 사람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것입니다. 사람이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접촉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당신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군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로는 뭘 생각하게 되죠?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어디에 있지? 하나님이라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겠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분은 진리를 발표하실 수 있으니까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맞아. 이분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실제화 되신 분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머리로는 또 ‘영이 육신에 실제화 되시니까, 하나님이라는 느낌이 안 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일종의 모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 모순 상태가 있게 되면서 믿게 됩니다. ‘아,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면 초자연적이지 않아서 참 좋구나! 어떻게 봐도 평범한 사람이잖아.’ 그러면서 그 사람은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실제화 되시는 건 내가 보지 못해. 하지만 보게 되는 분은 아주 확실한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면 나도 하나님과 접촉해도 두렵지 않아, 사람처럼 접촉하면 되겠네.’라고 하는 이런 심리상태를 가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그런 심리상태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는 효과를 본 것이고,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그분을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을 사람처럼 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시고 역사를 하시는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제한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유롭게 말씀을 발표하시고, 진리를 발표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편에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인성이 다 정상이고, 외모나 각 방면에서 다 평범하시기 때문에 속으로 그분을 사람으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아무리 그분을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고 인정을 해도 마음으로부터 사람처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분의 심판, 그분의 폭로, 그분의 엄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으로 저촉하고 반항하면서 사람의 패괴 성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유로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체의 모습으로, 천사의 모습으로,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음성을 발하시면, 사람이 패괴된 것을 감히 유로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패역과 대적을 유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담력을 더해 준다고 해도 못할 것입니다. ‘저분은 정말 하나님이셔! 하나님이시니 어떻게 말씀하셔도 다 돼. 날 심판하셔도 난 순복해야지, 어쩔 수 없어. 반항하기만 하면 더 끝장이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성육신으로, 사람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며, 진리를 발표하실 때, 사람의 패역과 패괴가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드러나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을 하시는 근거가 제공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유로하고, 대적하고, 거역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그 순리대로 진리를 발표하시는 것입니다. 조건이 맞으니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패괴 유로에 근거해 진리를 발표하시며 사역을 하십니다. 사람이 거역하고 대적한 증거와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발표하시고,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 사역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또 실제적이고도 정상적이고, 사람의 관념에도 맞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로 인류의 패괴와 패역을 심판하시고, 인류의 본성 실질을 폭로하시게 되는 이 사역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중에 많은 말씀에서 심판, 정죄, 형벌, 연단의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서야 ‘아! 성육신하신 이 그리스도는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실제화하신 분이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육신에 나타나신 거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사람들과 선지자들과는 완전히 다르구나. 이분에게는 참으로 신성의 실질이 있으시구나!’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의 심판을 경력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효과에 이르는 것은 바로 이런 실제적인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진리로 말미암아 많은 심판의 고통, 시련의 고통, 형벌의 고통을 받고, 궁극적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心服口服)하면서 땅에 엎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된 것입니다. 완전히 정복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정복된 사람은 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것일까요? 적그리스도는 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없을까요? 그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똑같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의 선민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 앞에 엎드릴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진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심복구복하게 하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바로 실제의 하나님이시고 바로 하늘의 하나님이시라고 시인할 수 있도록 정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적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의 발표라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을까요? 그건 왜 그럴까요? 왜 교계 목사들은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을까요? 왜 그럴까요? 만일 이런 일들을 통찰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도태시키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육신이 위대해서 사람의 관념에 맞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육신에서 발표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발표이고, 진리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한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사역에 진정으로 순복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에 대해 진실한 경외심이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와 같은 이렇게 큰 인물이 어떻게 보잘것없는 그리스도에게 순복할 수 있겠냐고, 그러면 품위를 잃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순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문제일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하고도 정상적인 육신에 비미은장(卑微隱藏)하셔서 누가 엎드릴 수 있는지, 누가 순복할 수 있는지, 누가 그분을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하게 경배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성육신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시지 않습니까? 성육신 앞에서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 앞에서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너무도 기묘하고, 너무도 지혜롭고, 너무도 실제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2~30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진실한 순복이 없고, 진실한 경외심도 없어서 도태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몇 년 믿으면서 마음으로 육신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실질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게 되면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시여, 당신께서 아무리 비미은장하실지라도, 외모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당신은 제가 가장 경탄하고 탄복해 마지않는 하나님이시고, 가장 감사드릴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여전히 지고지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아무리 비미은장하게 육신에 거하실지라도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경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심판 사역이 어떤 사람들에게서 이런 효과를 보게 되겠습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온전케 되어 어린양의 생명책에,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생명책이라고 하는 큰 책을 가지고 계시냐고 합니다. 큰 노트도 아니고 큰 책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그 사람들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라고, 그리스도께서 마음으로부터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리가 있는 게 아닌가요? 어떤 사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10년, 20년을 믿었어도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입으로만 믿는 믿음입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헛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리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헛믿은 것이고, 헛수고한 것입니다!
【137-B-4】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읽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각방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각방의 사람들에게 효유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은 어떤 사역입니까? “다시 말하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각방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각방의 사람들에게 효유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교계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교계 사람들은 들어도 못 알아듣고, 봐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말세의 심판 사역은 말입니다. 그건 하늘에 크고 흰 보좌가 있고, 그 위에 인자가 앉아서 심판을 하시는 건데, 생명책과 죽은 사람의 책을 다 펴시는 것이 심판 사역입니다.’라고 합니다. 이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닙니까? 그럼 계시록에 펼쳐진 그 장면의 실제 상황은 어떠할까요? 그것을 글귀대로 해석한다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해석하지 못하죠. 그 보좌가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하늘에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또 인류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체험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장면만 어떻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상상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계시록의 예언이 인류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면, 그 진실한 상황은 어떨까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전 인류에게 진리를 발표해 주시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경력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 역사의 실제 상황이고, 실제적인 장면입니다. 계시록의 장면들을 막힘없이 외운다 해도 그것은 실제적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인식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지금 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셔서 세계 각 나라와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효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들과 진리들은 모두 인터넷으로 공중에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거죠! 지금 각 나라와 각 지역의 사람들은 다 찾고 구하고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최종에, 받아들인 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에 몫이 있게 되고,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밖의 사람인데, 모두 이방인에 속하고, 결국 하나님께 훼멸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높여 주시고,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몇 해 동안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 사역은 어떤 사역입니까? 바로 진리를 발표하는 사역이고, 그리스도의 진리, 길, 생명을 인류에게 열어 놓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경력하면서 무엇을 얻게 될까요? 바로 진리와 생명입니다. 그러면 “얻는 것이 진리라면, 진리란 어떻게 해석합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한테 진리가 뭔지 말해 보라고 하면, 저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은 꽤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얻은 것이 아닙니까? 저는 많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생명이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형벌을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생명이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을 아주 많이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진리의 실제가 아닙니까? 지금 적지 않은 하나님 선민들이 모두 심판 사역을 경력하면서 얻은 인식들을 좀 말해 낼 수 있는데, 그런 진실한 경력과 인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진리를 깨달아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그 경력 인식에 참으로 깨달은 진리가 많아야 경력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리에 대해 경력이 없고 인식이 없다면,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교통하는 경력 인식들을 보면 정말 진리 실제가 있습니다! 정말로 진리 실제가 있다면, 진리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전에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하나님의 말씀들을 많이 교통해 준 다음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것이 뭔지 이젠 알겠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글자 표면의 도리는 알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다 순복하고 듣는 게 순복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에 대해 어떤 진실한 순복이 있는지 말해 보세요. 본인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가요?” 이렇게 물으니 아무 말도 못 합니다. 그럼 진리가 없다는 뜻이죠. 만약 어떤 사람이 “저는 주님을 평생 믿었어요.”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평생 믿었으니 자격은 있겠네요. 그러면 주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라고 물으니 실제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알고 있냐고요? 주님은 긍휼과 자비이십니다. 주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로 주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은혜와 축복을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누렸어요. 기도했더니 딸이 대학에 붙었고, 또 좋은 직장을 얻었어요. 그리고 또 기도했더니 좋은 배우자를 만났고,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정말로 아들을 낳았어요. 봐봐요,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도 주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거겠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으로 주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 나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하나님이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것,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직접 체험했고, 피의 교훈이 있고, 그래서 나중에 진실한 회개가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다들 인식이 있다고 하시네요. 어떤 방면의 인식일까요? 그 사람은 “전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와 거룩이 확실하다는 걸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패괴된 진상을 남김없이 드러내셨는데,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누구도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을 다 지적해 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는 펑펑 울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나네, 조금도 틀리지 않아. 하나님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아시지? 어제 마침 이런 마음을 가졌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발표하셔서 날 드러내셨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신다는 말씀은 너무 실제적이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게 정말 확실해!”라고 합니다. 골수와 뼛속에 어떤 본성이 있고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가끔은 스스로 잘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시니 한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게 확실하다는 걸 이젠 느꼈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경력하고 인식하게 된 것이죠.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경력해 보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어우, 정말 큰일 나요, 절대 거스르면 안 돼요!”라고 합니다. 만약 무의식중에 패괴를 유로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패괴된 본성 실질이 어떤 것인지 해부해 주시겠지만, 만약 일부러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진노를 발하시고, 징계하시고, 징벌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야채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었는데, 뼈에 부딪쳐 다행히 손가락은 잘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말로 하나님을 노하시게 해서 하나님께서 날 징계하시는 거야.”라고 합니다. 일을 하다 갑자기 다치면, “왜 다쳤는지 너무 잘 알아.”라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교통사고가 나고, 누군가는 병에 걸렸는데 다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은 진짜 거스르는 걸 용납하지 않네요!”라고 하죠. 누구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퍼뜨렸는데, 다 퍼뜨리고 나서 병에 걸렸습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서 고분고분해졌습니다. 가족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어요.” 가족이 말하죠. “그러게 누가 그렇게 관념과 소극적인 걸 퍼뜨리라고 그랬어요, 좋을 게 없고 꼭 징벌받을 줄 알았어요!”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성품은 정말로 거스르는 걸 용납하시지 않아요.”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몇 개월 안 돼 죽었습니다. 하나님 집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징벌받은 대표적인 사례≫라는 책이 있는데, 800여 건의 사례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대표적인 것만 뽑아낸 것이지, 사실은 1만 건이 넘습니다. 적어도 1만 5천 건은 되는데, 비슷한 사례들이 많아서 중복되면 의미가 없으니, 사실 조사를 거쳐 그 800여 건만 뽑아낸 것입니다. 그 800여 건의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부러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다면,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그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하나님을 대적해 징벌받은 종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1만 사례가 넘죠. 하나님 집에서 징벌받은 사례도 적지 않은데, 적그리스도들은 출교됐습니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들이 모두 도태됐죠. 어떤 사람은 저주받아 죽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의 사역을 하셔서 도달한 효과입니다. 즉, 하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진리를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다 하나님께 징벌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 사역 가운데서 일어난 사실인데,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에 대해 매우 언짢아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너에게 알리겠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흔히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며, 모두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너무나 진실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또 성육신 되셨다고 하니 언짢아합니다. ‘왜 또 성육신 되신 거지? 한 번 성육신하셔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와 아름다운 약속을 해 주셨으니, 다시 와서 우릴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얼마나 좋아? 그럼 끝나는 거잖아. 왜 또 성육신하신 거지? 거기다 왜 또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거지?’ 사람의 관념과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아 마음으로 좀 저촉합니다. 사실 아닙니까? 그럼 이 사실이 무엇을 설명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너에게 알리겠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흔히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며, 모두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죠? 사람이 하나님의 재림이나 역사를 대할 때는 늘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판단하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 완전히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게 되고, 사람의 관념을 철저히 반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이런 사실에서 결론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결론일까요?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절대 사람의 관념 상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절대 사람의 두뇌 사유와 추리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계속 그렇게 한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만약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고집스레 지키면 또 하나님을 대적해 하나님께 도태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상상할 수조차 없죠! 이것이 바로 교훈 아닌가요? 누군가 “왜죠? 왜 그런 거죠?”라고 합니다. 바로 아래에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며” 만약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고, 모두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다.” 사람은 땅의 구더기인데, 어떻게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하신 분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작디작은 하나의 피조물인데, 어떻게 조물주께서 주로 무엇을 하시고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그 사실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씀에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누가 이 말씀에서 진리를 발견했다면, 말해 보세요. 진리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읽고, 여러 해 읽어도 진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큰일입니다. 진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서 “진리가 어디에 있어요? 말해 봐요,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진리는 바로 하나님 말씀에 있는데, 어떤 말씀은 그 자체가 바로 진리이고, 어떤 말씀에는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이 말씀에는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진리가 숨겨져 있을까요? 피조된 인류는 하나님 안중에 그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고 영원히 조물주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가 아닙니까? 이것이 진리입니다. 듣기 좋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 피조물에 속합니다. 좀 더 실제적으로 말하면, 이 피조물이 얼마나 작습니까? 어느 정도로 작습니까? 사람의 아이큐, 지혜, 사유가 어느 수준으로 가련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안중에는 그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아이큐는 구더기의 아이큐와 비슷한데, 어떻게 조물주의 지혜를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몇 년을 살면 사람의 아이큐로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을까요? 천 년을 살면 될까요? 만 년을 살면 될까요? 안 된다고 하시네요. 그럼 1억 년을 살면 될까요? 여전히 안 된다고 하시네요.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의 아이큐는 영원토록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그 정도로 고정된 것입니다. 바로 유한한 것인데, 사람이 몇 년을 사는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유한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 아이큐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까요? 사물의 표면 현상을 꿰뚫어 볼 수는 있겠지만, 여러 가지 사물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못 합니다. 동물의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만사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배운 그 정도 지식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 정도 지식과 과학을 좀 배워서 만들어 낸 것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켜 무기와 도구를 만들고는 또 인류를 훼멸하고, 인류의 생태 환경도 파괴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까? 그럼 이 인류의 아이큐는 어떻습니까? 인류의 아이큐로는 인류를 보호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고, 장수하는 것조차도 하지 못하며,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보장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망과 계획을 이루는 능력조차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본능마저도 없습니다. 그럼 이 아이큐가 어느 정도겠습니까? 아이큐도 별로이고,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인류의 아이큐로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무엇을 대가로 합니까? 인류의 생태 환경과 생존 환경을 훼멸시키는 것을 대가로 합니다. 마지막 결말은 어떻겠습니까? 과학을 발전시켜 최종에는 인류를 훼멸시킵니다. 인류의 과학이 최고로 발전하는 날이 바로 인류의 말일입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바로 인류의 최고 아이큐가 사람을 훼멸시켰습니다. 그럼 말해 보세요, 인류에게 총명과 지혜가 있습니까? 자신을 보존해 나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은 땅의 먼지입니다. 먼지라고 하면, 그것은 생명이 없고, 머리가 없습니다. 먼지는 물질인 거죠. 그러나 구더기는 생명이 있고, 또 땅에서 기어 다닐 수 있고, 무엇을 먹을 수도 있고, 며칠간은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구더기라고 합니다. 구더기는 값어치가 있습니까? 다들 없다고 하시네요. 그럼 사람이 그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면서도 잘난 척한다면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죠?
【137-B-5】
하나님 말씀에 보면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고지상이라고 불린다면 그분은 바로 조물주이십니다. 만유를 주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지고지상하십니다. 그런데 땅의 구더기와 천우에 있는 지고지상한 분을 어떻게 비길 수 있겠습니까? 비길 수가 없습니다! 구더기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지혜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생각,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성품을 구더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건 인간의 지적 능력, 사유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수 사람들은 다 영이 통하지 않아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소질을 갖춘 사람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성령께서 온전케 해 주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수많은 진리를 발표해 주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실지라도 사람은 스스로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온전케 해 주셔야 합니다. 그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쉽게 얻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 스스로 얼마 되지도 않는 아이큐를 가지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정이 매우 교만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리를 교통하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하는 거잖아? 당신도 말씀 보고 진리를 교통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집에서 말씀 보거든, 매일 봐. 그런데 당신 교통을 들으라고? 당신이 뭔데?’라고 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교계의 목사들은 평생 성경 강해를 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모릅니다. 성경 지식 밖에 없습니다. 어떤 지식인가요? 성경에 있는 인물 이름과 지명에 대한 지식, 성경에 있는 모든 국가들의 지리에 대한 지식, 성경에 있는 사도들의 출신과 인품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지식들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 지식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더더욱 대표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건 사람의 실질이 비천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에서 살고 있으면 영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물질적인 것에 속합니다. 그래서 영계를 직접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영계를 통과할 수 없다 보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영계의 전쟁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통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깨우침과 성령의 인도를 의지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온전케 될 수 없는 건 정해진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머리는 마치 한 웅덩이의 썩은 물과 같아 생겨나는 것은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폭로하셨는데, 어떻습니까? 받아들이기 쉬운가요? 과학자는 인정 안 합니다. 과학자들은 자기 머리가 썩은 물웅덩이 같지 않다고 합니다. 자기는 좋은 물품을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비행기도 만들 수 있고, 우주선도 만들 수 있고, 다른 행성에 갈 수 있는 능력도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디를 갈 수 있든, “사람의 머리는 마치 한 웅덩이의 썩은 물과 같아 생겨나는 것은 구더기에 불과하다.”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를 지금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유하신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든, 언젠가는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걸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일부러 사람을 폄하하려는 뜻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폄하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교만자대하는 사람에 대해 비유를 들어 그 뜻을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내 머리를 썩은 물웅덩이로 비유하셨고, 나를 더러운 물에서 나오는 구더기에 비유하셨어. 말씀은 날 깎아내리시는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람의 머릿속에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관념과 상상이 존재한다면, 그런 관념과 상상은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것들, 소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관념 상상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구더기이고, 그 사람의 머리는 썩은 웅덩이의 물이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죠?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하죠? 본인 스스로를 생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생수의 원천이 아니고 그 머리는 썩은 웅덩이의 물이고 거기서 생겨나는 것은 다 구더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한 방면으로는 실제적인 면이 있고, 한 방면으로는 풍자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어느 날, 사람이 관념과 상상이 너무 많아 하나님을 너무 많이 대적하다가 완전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될 때면, “제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고, 제가 말한 것들은 다 그 머리에서 생겨난 구더기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성급해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어느 정도 경력하게 되면 이 말씀이 진리라는 걸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패괴된 인류를 형용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을 형용하기에 가장 적절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매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의 진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 말씀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매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보시면, 하나님은 각 단계의 역사에서 다 수많은 진리를 발표하시면서 예정하신 효과를 거두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각 단계의 역사는 다 하나님께서 생각으로 지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 하나로 각 단계의 역사를 지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생각은 어느 정도로 높겠습니까? 사람이 측량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영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이 측량할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의 그 생각으로도 하나님의 전능이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로 지휘한 각 단계의 역사는 땅에 있는 어떠한 사악한 세력도 방해할 수 없고, 교란할 수 없으며, 파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사역은 사탄을 이기고 인류를 정복하고 모든 것을 성취하는 사실을 이룹니다. 그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사람의 사고력보다 얼마나 더 높으신 걸까요? 비유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아래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한다. 그리하면 나는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더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간이 하나님과 겨루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굉장한 노력을 들이고 지혜란 지혜를 다 써가면서 대응책을 내기 위해 생각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다들 필요 없다고 하시네요. 왜 필요 없을까요? 인류가 거역하고 대적하는 정도는 하나님께서 벌써 몇천 만 년전에 인류를 만드시기 전에, 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각으로 지휘하신 매 단계의 역사는 다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으로 이 사역을 지휘하시는 순간, 각 단계의 사역을 어떻게 어떻게 해야겠다고 하시면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이루어지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효과에 도달합니다. 충분히 인류를 정복하고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생각 하나로 지휘하시면 모든 게 성취되는데, 사람에게 온갖 지혜를 다 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전혀 필요 없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을까요? 사람은 그냥 땅에 있는 구더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머리는 다 썩은 물웅덩이라는 걸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다. 만세 전부터 벌써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이 말씀은 우리가 교통한 내용에 근거하면 증명될 수 있습니다. 확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계에 아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가득한데,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수 있냐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은 구원하시지 않겠냐’라고 합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까?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단계 사역을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선민들이 하나님 말씀을 진실로 경력하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이번 단계 사역 이후에 이루실 사실들, 이 단계의 사역으로 가져올 모든 재난, 도달할 효과를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역을 정식으로 시작하지도 않으셨을 때, 이런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고, 하나님의 예정이 먼저 있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성과가 먼저 있고, 하나님께서 이 단계의 사역을 이루신 사실이 먼저 있은 다음에야 하나님의 선민들이 말씀을 경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뭘 볼 수 있죠? 어떤 사람은 한참 얘기했는데, 무슨 얘긴지 못 알아듣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먼저 다 하신 다음, 우리가 아직 경력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이 사역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이루신 사실이라는 말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해마다, 어느 날 어떤 일에 부딪히게 될 것까지 모두 예정됐고, 일생의 결말이 다 정해졌고 다 경력했다는 얘기 같은 게 아니냐고, 그건 좀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합니다. 좀 그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실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오늘은 시인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단계 사역이 끝나고 대재난이 끝난 다음에 한번 보세요. 그때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실이 이미 오래전에 완성됐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겪게 될 일들, 우리에게 임하게 될 일들, 당연하게 해야 될 본분, 가야 할 길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정해 놓으신 게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다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갓 태어났을 때는 그런 일들을 다 안배해 놓으신 상태고, 인생의 길을 걷기도 전에 다 안배해 놓으신 상태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그 사람의 일생은 이미 현실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되시죠? 그럼 왜 평생 동안 아무도 자신의 운명의 주재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배워도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이방인들이나 무지한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운명이 자기 손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정해진 대로 죽고 정해진 대로 하게 돼 있습니다. 평생 운명에 맞섰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운명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못생겨서 성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형해도 여전히 그 사람입니다. 운명이 바뀌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들여 몇 번씩 성형을 하여 얼굴 뼈도 다 깎아냈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키를 더 늘리려고 다리를 자르고 가운데다 이물질을 박아넣습니다. 그래도 운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떤 운명을 타고났으면 아무리 해 봤자 그런 운명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성형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다들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을 주셨다면 그 모습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최종적으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게 된다면, 헛되이 사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본분을 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합격된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이런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합격되게 본분해야 합격된 피조물입니다. 본분을 잘한다면, 본분하는 가운데서 진리 실제를 살아내고, 본분하는 가운데서 진리에 순복하고, 본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본분을 하나님의 요구에 맞춰 하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린다면, 우리가 한 본분이 합격인 것입니다. 본분을 합격되게 하면, 합격된 피조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귀숙을 주실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귀숙은 어떻게 얻게 되는 것입니까? 본분을 통해 얻는 것입니다. 본분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바로 합격된 피조물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집에서 하나님을 믿을 생각을 합니다. 집에서 믿으면 본분을 할 수 있을까요? 본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맞나요? 집안에 앉아서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차려 준 밥상에 앉아서 숟가락만 얻는 것인데,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분을 해야 합니다. 본분하면 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서 실행하고 경력하면서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만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돈을 가득 벌어서 고급 차에 호화저택에서 사치하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는 게 하나님을 따르는 걸까요?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따르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불신파라고 하시고,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헛믿은 것입니다! 교계를 보세요. “주님을 어떻게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 세례받으라고 합니다. 세례는 어떻게 받나요? 강에 가야죠, 강이 없으면 욕조 안에 들어가고, 그럴 조건도 안 되면 대야에다 물을 받아 가지고 머리부터 부어 주든지, 아니면 목사가 손에 물을 묻히거나 물을 좀 부어 머리에 손을 얹어 비비고는 됐다고 합니다. 이제는 세례받았으니까 천국에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가요? 그게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인가요? 그게 떠나지 않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인가요? 그런 걸 가지고 종교 의식이라고 합니다. 교계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첫 번째 조건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생명이자, 생존의 기반입니다!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님을 800년 믿어도 헛된 것이고 소용없는 것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게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본분을 통해 이런 진리를 경력하고 실행하면서 이런 진리,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들고, 자신의 진실한 믿음으로 만들고, 자신의 진실한 사랑으로 만들어야 진리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실로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돼야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137-B-6】
말세의 그리스도를 따르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가장 주요한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하는데,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순복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에 순복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 순복하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에 순복하고, 인솔자 일꾼이나 형제자매들의 진리에 부합되는 말에 순복하는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순복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를 기만하는 것일까요? 누구를 속이는 것일까요?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린양의 생명책에 분깃이 있으려면 반드시 무엇을 갖춰야 합니까? 반드시 몇 가지 실제를 갖춰야 할까요? 집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가요? 세상에 연연하고, 돈을 벌어 즐기면서 천륜지락을 누리는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집에서 한가하게 지내며 자식이나 사랑하고, 부모에게나 효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은 “전 부모님께 효도하는데요. 설마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건가요?”라고 합니다. 계명은 지켜도 됩니다. 하지만 계명은 잘 지켰어도 말세 그리스도의 심판에 순복하지 않는다면, 지키고 있는 그 계명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3천 년 전의 일이기에 지금 그것을 들고 나오면 효과가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제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시대에 뒤떨어진 건가요?”라고 묻습니다. 2천 년이 지났으니 벌써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해도 효과가 없고, 또 지키지도 못합니다! “간음하지 말찌니라”라고 한 조목을 지킬 수 있습니까? 누군가 “저는 평생 한 남자(여자)와만 결혼해서 살았으니, 간음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라고 하셨는데, 그런 사람이 무엇을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지키려고 해도, 평생을 지킨다고 해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음욕을 품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모두 음욕을 품고 있습니다.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만 보면 ‘이야, 멋지네. 이런 사람을 배우자로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음욕을 품은 것이 아닙니까? 좀 한가하기만 하면 궁리합니다. ‘내가 만약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면 어떨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음욕이 아닙니까? 음욕을 품은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면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무리 지킨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뭣 때문에 계명을 반포하신 겁니까?”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한마디 말로는 정말 대답하기가 힘드네요. 계명을 반포하시는 것은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하시는 것이고, 사람에게 자신의 더러움과 패괴를 인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키지 못할 때면 인정하게 됩니다. ‘에휴, 난 정말 간음죄를 범한 사람이구나! 난 정말 살인범이야. 살인은 안 했어도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있어! 도둑질은 하지 않았어도 마음속으로 탐했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게 하는데, 그 말씀 한 마디로 사람을 드러내고, 드러낸 다음 얼른 죄를 자백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명을 발표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최종에 하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말세에 심판하시는 것으로 해결하십니다. 사람이 간음죄를 잘 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들이고,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여 사람에게 간음은 어떤 실질이고, 탐욕은 어떤 실질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은 어떤 것들인지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말세 심판에서 발표하신 진리로 이런 패괴들과 사탄의 이런 성정, 이런 더러운 본성들을 해결하십니다. 지금 율법시대든 아니면 은혜시대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진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패괴 실질과 패괴 진상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에게 자신의 더러움과 패괴를 보게 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말세의 심판으로 인류의 모든 패괴를 해결하시고 정결케 하십니다. 이렇게 말세의 사역을 다 하시게 되면 율법시대의 사역과 은혜시대의 사역에서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말씀은 말세의 심판 사역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고리에 고리가 물리고, 한 단계 한 단계 깊어지면서 최종에 인류의 모든 패괴는 다 말세의 심판으로 해결되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은혜시대의 예수님만 믿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안 된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정결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죄사함은 받았다 하더라도 정결함을 받지 못했기에, 사람은 육체의 패괴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야말로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은혜시대의 사역은 단지 한 단계의 구속 사역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단지 한 단계 속죄제의 사역인데, 바로 하나님나라시대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만약 길을 예비하는 한 단계 사역만 받아들이고는 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환상이 아니겠습니까?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대학교 학력을 얻으려고 하고 대학생 수준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환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여러분들이 말씀해 보세요, 은혜시대의 교계 목회자들이 똑똑한 사람이 맞습니까? 모두들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어떤 방면에서 눈이 먼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음성임을 모릅니다. 이것이 가장 눈이 먼 방면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이것은 더더욱 눈이 먼 방면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심판 사역이 이미 끝났는데도 아직도 이 사실을 분명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눈이 먼 방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눈을 뻔히 치켜뜨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닙니까? 교계의 사람들이 미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꿰뚫어 보셨죠? 만약 교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말세에 발표하신 진리를 교통했는데, 그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시인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것이 바로 눈이 먼 것이 아닙니까? 진리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계속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나는 각자에게 자기 자신을 금보다 더 중하게 여기지 말 것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로 인하여 심판 사역을 반복하여 두 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면 너는 후회막심해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한 말을 네가 믿지 않는다면 너는 하늘의 그 희고 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라! 너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수를 저버렸고 다 예수를 부인했어도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실은 우주와 땅끝까지 널리 전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닌가? 만일 네가 아직도 예수가 와서 너를 천당에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하나의 매우 완고한 썩은 나무라고 한다. 예수는 너같이 진리에 충성하지 않고 복만 받으려고 하는 거짓 신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도 가차 없이 불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반대로 조금도 가차 없이 불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이 말씀의 뜻에서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이것은 지옥에서 불사름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년을 불사름당합니다. 만년은 어떤 개념일까요? 사람이 몇 평생을 살아야 만년이 되겠습니까? 이 만년은 정말 엄청 긴 시간입니다. 이것은 영원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만년을 불사름당합니다. 몇만 년도 만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불사름당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불사름당하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스러워야 하고 얼마나 심하게 고통스럽겠습니까? 영원토록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뜻이 좀 있지 않을까요?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어떤 고통일까요? 바로 불에 타는 고통입니다. 불에 타는 고통은 일반적인 고통보다 크지 않을까요? 그 고통은 큽니다! 독약을 먹고 죽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는지 아십니까? 보통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면 목숨을 잃게 되는데, 가장 빠르면 몇 분이면 끝입니다. 건물에서 뛰어내리면 일반적으로 몇 분이면 죽습니까?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5층 건물이나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면, 일반적으로 1분도 되지 않아 죽게 됩니다. 그것은 약을 먹는 것보다 더 빠르지 않습니까? 고통이 매우 짧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에 떨어져 받게 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육체의 고통은 아주 쉽게 해결되지만 지옥에 떨어진 후, 불에 타는 그 고통은 너무나 오래 갑니다. 만년 동안 불사름당합니다. 만년 동안 불사름당한다는 것은 영원한 고통입니다. 사람이 육체의 고통은 단번에 끝내고, 1분 내에 해결될 수 있지만, 영혼이 지옥의 불 못에 떨어져 만년 동안 불사름당하는 그 고통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각 단계 역사에서 모두 징벌받은 대상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시대에는 두 성이 하나님께 훼멸되었었는데, 소돔이 전형적인 대표입니다. 소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훼멸이었습니다. 그 당시 훼멸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유황불을 내리셔서 그들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하면, 그때의 훼멸은 철저히 훼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영, 혼, 체를 모두 훼멸하셨습니다. 영혼이 다 훼멸되었는데, 그 사람들의 영혼이 철저히 사라진 것입니다. 훼멸되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훼멸하시는 것은 재난을 내려 사람의 육체만 해결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에 대해 또 처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영혼은 불 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릅니다. 어떤 영혼은 훼멸되는데, 영, 혼, 체가 모두 훼멸됩니다. 이런 성어가 있습니다.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다시 태어날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이 무슨 큰 죄를 범했기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까요? 큰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구원받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최후에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여 영혼이 다시 환생할 기회가 영원히 없어졌으므로 지옥에 억눌려 있게 되고, 18층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죄얼은 정말 가볍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다 몇십 년을 살았으나 그런 죄를 범했으니 큰일이 아닙니까? 직접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으면서 조금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효력을 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본분을 잘하여 충성된 효력자라도 되면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논단하는 일을 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은 더욱더 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 그 죄는 엄중해서 금세와 내세에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제일 엄중한 죄는 절대로 범하지 마세요. 하나는 제물을 훔쳐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선민을 쟁탈하는 것인데, 바로 적그리스도가 범하는 죄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가장 큰 죄는 바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선민을 쟁탈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자기 앞에 끌어들입니다. 사람은 조물주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기에 마땅히 하나님 앞에 와야 합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들여 사람들을 통제하고 그 사람들로 자기 말을 듣게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순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범한 죄가 아닙니까? 적그리스도가 주로 범한 것은 무슨 죄입니까? 바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선민들을 쟁탈한 죄입니다. 그들은 독립 왕국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나라와 맞서려고 합니다. 이것이 큰 죄입니다! 이것은 교계의 목회자들이 범한 죄와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교계의 목회자들이 범한 죄보다 더 엄중할 것입니다. 교계의 목회자들은 아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방인들처럼 훼멸하면 끝나는 일인데, 만약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해 사람들을 미혹시켰다면, 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나서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들을 쟁탈한 적그리스도는 교계의 목회자들의 죄보다 더 엄중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곳에서는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제하고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 집의 설교 교통을 듣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설교만 듣게 하면 끝입니다. 그런 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어떻게 경력해야 하고, 훈계와 책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말하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글귀 도리만 말하고 알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제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 있겠습니까? 성정 변화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역사 효과가 그 사람들에게서는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행한 악입니다. 깨달으셨겠죠? 만약 하나님의 선민이 명의상으로는 성육신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적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그에게 순복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리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받아들인 것이 거짓 목자이고, 순복한 것이 거짓 목자이고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맞서게 되면, 적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흐리멍덩하게 믿는 그런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정죄받게 되고, 징벌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일에 대해 깨달으셨겠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것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지 않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자기의 이치만 따진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절대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서 어떠한 사역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늘 새 신자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몇 해 믿었는데, 기초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몰라서 “기초가 있다는 건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라고 합니다. 제가 “큰 붉은 용의 허튼소리와 교계의 황당무계한 논리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만약 큰 붉은 용이 미혹하고, 교계의 목사가 미혹한다면, 굳게 설 수 있을까요?”라고 하니, 그 새 신자가 “굳게 설 수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의 잘못된 이론도 알고 있고, 교계의 황당무계한 논리도 알고 있으니, 미혹될 리가 없죠.”라고 합니다. 제가 “기초가 좀 있다고 할 수 있네요. 그럼 진리로 그런 황당무계한 논리들을 반박할 수 있나요?”라고 물으니, 그는 “그건 못해요. 전 진리로 반박하는 건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미혹될 리는 없어요.”라고 합니다. 미혹될 리가 없다면, 기초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초는 좀 있어도 진리로 반박할 수 없다면, 자신이 참으로 굳게 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진리로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은, 만약 또 사람을 더 잘 미혹시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미혹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또 미혹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중공이란 큰 붉은 용의 모든 거짓말과 사람을 미혹시키는 교계의 모든 황당무계한 논리들을 진리로 반박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초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으며,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 인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탄이 패괴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누군가 “그리스도의 인성은 왜 패괴된 인류의 인성과 이렇게 큰 구별이 있나요? 우리 패괴된 인류는 사탄에게 패괴되었기 때문에 패괴 성정이 생긴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똑같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왜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나요?”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이제는 답을 찾으셨겠죠? 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진리이고 생명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진리가 구비되셨기 때문에 사탄이 패괴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이나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기만 하면 “다 허튼소리이고 황당무계한 논리이다. 이 사람들은 다 마귀이다!”라고 하십니다. 보자마자 딱 알아보십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일부분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건 황당무계한 논리입니다!” 큰 붉은 용이 한 마디 하면 “거짓말이야.” 교계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좀 들어보고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어. 텅 빈 이론이야.”라고 합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별로 분별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별로 분별이 없는 사람은 교계의 목회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말할까요? “다 맞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와서 진리 실제를 교통하는 것을 듣고도 “다 맞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분별이 없기에 무엇이든 다 맞다고 합니다. 자신의 관념에 맞으면 다 맞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진리에 부합됩니다. 정확합니다. 진리에 부합되고 뭐든 다 맞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분별이 있습니까? 왜 분별이 없다고 합니까? 누가 말한 것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맞는지에 근거해 옳고 그름을 확정하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끝장입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 그 자체는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의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와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는 모두 이 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무엇에 근거할까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과 진실한 깨달음에 근거하여, 그런 거짓 글귀 도리들을 분별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진리에 대한 경력과 인식이 없으면서도 교계의 황당무계한 논리들을 분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137-B-7】
형제자매들이 제기한 문제를 듣고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문제 (1) 인솔자 일꾼들이 제가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걸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바로 힘이 쭉 빠지고 제가 본분을 하는 건 그저 효력을 하는 것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상면의 교통에서 “효력하는 자는 다 좋은 놈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고, 머릿속에는 늘 “배양할 가치가 없는 궤사한 사람”이라고 한 말이 떠올라 너무 괴롭고, 기운도 빠지고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도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또 가책이 많이 돼서 이대로 나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이 계속 맴돌면서 정형이 반복됩니다. 스스로도 이러면 아주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진입해야 이런 상황에서 굳게 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심판과 폭로가 임하면 소극적이 되는데, 어떻게 말해야 소극적이 되지 않을까요? “자매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니, 배양할 사람이네요. 자매님은 궤사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아이를 달래듯 말하면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아이를 달래듯 그런 말만 하면 될까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진 사람에게 반대되는 말, 달래 주는 말로 위로해 준다면, 소극적이 되지 않겠죠. 이렇게 사역하면 될까요? 안 된다고 하는 분이 있으시네요. 왜 안 됩니까? 그러면 효과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까요? 왜 안 됩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소극적이 되지 않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기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고, 사람의 패괴 본성을 해결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라는 것을 시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하신 사탄 성정의 여러 가지 표현과 여러 가지 본성 실질을 유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매님에게만 있는 건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자매님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터득하지 못했네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하신 패괴 성정은 패괴된 모든 인류에게 다 존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였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패괴된 표현과 본성, 패괴된 진상은 사람마다 다 몫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인류의 각종 패괴는 누구에게나 다 존재합니다. 여러분들께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다만 겉으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연히 드러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확연히 드러나는 나쁜 일을 했습니다.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든, 그 본성과 사탄 성정, 속셈은 다 같은 것입니다. 얘기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간음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행위로는 간음하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음란한 생각이 없을까요? 행위로는 도둑질하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탐욕스러운 생각이 없을까요? 진짜로 횡령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돈을 탐하는 생각이 없을까요? 다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런 상황이 없었던 것이고, 그런 지위나 환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런 지위나 환경이 있었더라면 저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8년이나10년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늘 강가에 서 있으면, 신발이 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말씀해 보세요, 사람에게 지위가 있으면 재물을 탐내지 않을까요? 명리를 향한 마음이 없을까요? 간음이나 음란을 범하기 쉽지 않을까요? 사람은 지위가 있으면 가장 잘 드러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인지는 그 사람에게 지위를 주면 몇 년이 안 돼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원형이 철저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한 사람이 어느 지위에 있으면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몇년 동안 어느 지위에 있으면서도 지위로 인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나쁜 짓들을 다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그러면 이 사람은 상당히 괜찮다는 것입니다. 지위에 있으면서 정말로 그런 나쁜 일들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존경을 받을 만합니다. 저도 이런 사람에게 가장 탄복합니다. 지위가 없을 때, 이런 일 저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그런 조건이 없었거나 그런 적합한 상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직위도 없고, 생김새도 정말 잘생기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갈 여자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 못난이가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성장(省長)이 되면, 품에 안기는 여자들이 없을까요? 품에 안기는 아가씨들이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생김새가 말이 아닙니다. 용모가 추하기 그지없어도 그 사람이 억만장자라면 품에 안기는 사람이 없을까요? 다들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재산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재산을 쟁탈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고, 어떤 나쁜 짓이든 다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괴된 인류의 본성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만약 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만 근거해 “저는 이런 일들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이 성립될까요?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만약 정말 지위가 있어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좀 설명됩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든지 다 탄복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이렇게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돈에 욕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그건 자신에게 지위가 없어 돈이 생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돈이 생겼어도 돈을 탐내지 않고 베풀어 줄 수도 있고, 부자가 되어도 베풀어 줄 수 있다면, 이것은 사람을 탄복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패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다거나 너무 훌륭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예전에 제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는 인식하게 됐습니다. 만약 저에게 예전에 지위가 있었다면, 저는 그 관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많이 탐했냐, 적게 탐했냐는 문제죠. 그리고 제가 여자를 막 만나는 그런 사람들과 비해도 꼭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몇 명을 만났느냐의 문제겠죠. 그때는 저에게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범하지 않았는데, 큰소리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때 범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정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임하면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실사구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의 진실한 정형을 폭로하셨으므로 받아들이고 순복해야지, 대적하거나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맞서면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예외인 사람이 있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아주 깊이 패괴되었다고 시인하는데, 어떤 사람은 왜 시인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순복하지 못합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사람의 격, 마음씨, 진리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금방 “인솔자 일꾼이 말하기를,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을 알았을 때, 바로 힘이 쭉 빠진다.”고 했는데, 설마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보다 더 엄할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는 이보다 더 엄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인류를 사탄의 후손이라고, 사탄의 종류라고 심판하셨는데, 자매님은 받아들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라고 시인한다면, 인솔자 일꾼이 자신을 궤사한 사람이어서 배양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왜 소극적이 되고 힘이 빠졌습니까? 이건 무슨 문제입니까? 이 말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였다면, 왜 사람의 한마디 말에 힘이 빠지고 소극적이 되겠습니까? 이건 무슨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은 개의치 않아 하면서, 반대로 인솔자 일꾼의 말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며 마음에 둡니다. 인솔자 일꾼이 자신에게 배양할 가치가 없는 궤사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보다 더 잘 듣고 효과를 보는데, 즉시 소극적이 되고 김빠진 공처럼 힘이 쭉 빠집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오히려 인솔자 일꾼을 숭배합니다. 인솔자 일꾼의 말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 정도로 지위가 있고, 그 정도로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이런 사람은 아주 곤란합니다.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 형벌도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인솔자 일꾼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데만 신경 쓰고, ‘내가 인솔자 일꾼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위치일까?’ 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맞겠습니까? 사람은 이런 일에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복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인식해 봐야겠어. 하나님 말씀에 패괴된 인류를 폭로하시는 진리가 이렇게 많고, 이렇게 많은 말씀들을 하셨는데, 나는 왜 마음에 두지 않았을까? 나는 왜 하나님 말씀에 마음을 쓰지 않는 걸까? 나는 항상 인솔자 일꾼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만 궁리하는데, 이건 명예와 지위를 너무 중요시 여기는 게 아닌가?’ 어떤 사람은 늘 인솔자 일꾼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발탁해 한자리 좀 올라서게 해 준다면, 목적을 달성한 겁니까?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상을 받고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속셈과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인솔자 일꾼이 당신의 주(主)입니까? 당신의 하나님입니까? 그들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당신을 높여 주고 당신을 쓰고 배양해도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습니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인솔자 일꾼들을 숭배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하나님 마음속에 지위가 있을까?’, 이런 데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주 위험합니다. 그 사람이 가는 길이 맞습니까? 그가 제기한 문제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은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이고,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솔자 일꾼들이 자신을 배양하고 발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솔자 일꾼의 사역에 순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솔자 일꾼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사람이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문제 (2) 인성이 괜찮고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지만, 명예와 지위의 지배를 받아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에서 제 자신이 항상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게 드러나는 것을 보고, 제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면서도 또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며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다 보니 본분을 할 때 속박을 받는데, 어떻게 실행하고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면에서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해 방식이 있고, 인식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에서 자신이 항상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게 보여지니까, 자신은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면서도 또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대하지 못하다 보니 본분을 하면서 속박을 받게 되는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고 사탄 본성이 있기에, 흔히 모두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길을 선택하게 되고, 모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기 전에는 모두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모두 곁길을 가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과오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과오들이 자주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무릇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단 드러나기만 하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고, 일단 과오가 있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어 반드시 도태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실 사람,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모두 곁길로 간 적이 있었고, 과오가 있었으며, 패괴 유로가 있었습니다. 사역을 할 때는 저를 비롯해 모두 사람의 뜻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다들 맞다고 하시네요. 그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곁길로 갔다고 해서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기는 것이 맞습니까? 이런 생각은 분명히 틀린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을 실질이 나쁘다고 합니까? 모두가 사탄의 본성이 있고 사탄의 성정이 있는데, 어느 누구의 실질이 좋습니까? 실질이 좋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거치지 않고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있을까요? 어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그 사람의 인식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길로 갔다고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에게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다 보니 본분을 하면서도 항상 속박을 받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왜 계속 잘못을 고집하려고 합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본 적이 없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계시고, 성령께서 음성을 발하신 줄로만 여기고, “일곱 영의 말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쓰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편 한 편 이 제목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지금도 그 원본이 모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방 음성을 발하셔서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마치 선지자가 하는 말 같아요. 계시를 받았어요.” 언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셔서 성육신의 진리를 게시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황연대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눈이 멀었으면 하나님을 몰랐을까? 어떻게 이런 잘못을 범할 수 있을까?” 더욱이 또 하나님과 높고 낮음을 겨루었으니 너무나 비열했습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추악했습니다. 이런 잘못들을 모두 범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다 죽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은 완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굽은 길을 얼마나 많이 갔든, 패괴를 얼마나 많이 유로했든, 하나님의 심판을 경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회개를 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며,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어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철저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만 하면, 첫째로,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고,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늠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다 순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 맞지 않아도, 즉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고 우리를 정결케 하신 다음 다시 지옥에 버리신다 해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조물주이시기에, 그분이 어떻게 하시든 모두 진리이고 다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해 이런 경외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순복한다면, 이것은 성정이 변화된 표현이 아닐까요? 사람에게 이런 성정 변화의 증거가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더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논단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모두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이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며, 진리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찾고 구하기에, 논단하지 않고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된 것입니다. 바로 온전케 된 사람입니다. 온전케 되지 않은 사람은 이런 일들에서 늘 잘못을 저지릅니다. 한 번 대적하고는 다음번에 또 범하고, 두 번 대적하고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번에 또 범하면서 범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며,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논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설사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시인하며, 최소한 사람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임을 시인합니다. 겉으로는 책잡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만약 물고 늘어진다면 죽을 것이고,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논단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영원히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은 진리이시기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사람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보면,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당신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주권 잡는데, 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존재합니까?” 이런 사람은 영이 통하는 겁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들의 존재를 일찍이 안배해 놓으신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안받침물이 되는 자들이고, 효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럼 알곡과 쭉정이는 왜 일찍 갈라놓지 않았을까요? 이는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는데, 실질이 나쁘다는 건 무얼 말합니까?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 드러났는데, 그럼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까? 관념이 안 생길 수 없습니까?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없습니까? 자포자기하지 마세요! 만약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면,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진리를 교통하든,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에 순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도태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여겨도 그건 소용없습니다. 어떤 것을 실질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합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리에 순복할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진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이 “저는 정말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마 정말로 끝장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에 속한 자이기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 당신의 본성 실질이 좋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할 수 있다면, 이제는 변화되고,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정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지금 자신을 규정할 때인가요, 아니면 진리를 찾고 구하며 받아들일 때인가요? 다들 진리를 받아들일 때라고 하십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사 맞고 약을 먹고 나서 정상적으로 밥 먹고 정상적으로 활동하세요.” “저는 실질이 좋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무슨 실질이 나쁩니까? 주사 맞고 약을 먹고 나서 밥을 먹고 운동해야 합니다.” “저는 실질이 좋지 않으니 운동 안 할래요. 저는 실질이 좋지 않으니 밥도 안 먹을래요.”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정신병이 발작한 것입니다. 이러면 큰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쉬울까요? 항상 자신의 실질이 좋지 않다고 규정하지 마세요. 어떤 실질이 좋지 않습니까? 사탄에게 패괴된 후 누구에게 정상 인성이 있습니까? 만약 정상 인성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은 당신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인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과 정결케 하심에 순복할 것인지, 진리를 실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계속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며 자신을 규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자신의 실질이 나쁘다고 계속 떠들어 대면서도 자신이 이것을 진리라고 시인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진리에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실질만 나쁜 것이 아니라 아마 신경에도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 형제자매는 소극적이 되지 마세요. 제가 한 말이 아마 귀에 좀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진리를 찾고 구하면 됩니다. 제가 귀에 거슬리게 말했을지라도 악의는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을 자극해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항상 자신을 규정하지 말게 하려는 뜻입니다. 듣기 싫었다면 양해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을 급하게 합니다. 직설적이고, 아무 말이나 다 해 버리는데, 타고난 성격입니다. 비록 생명 성정은 좀 변화되었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명 성정 변화는 성격이 변화되었는지로 가늠할 수 있습니까? 생명 성정의 변화와 성격은 관계가 없습니다. 성격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격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의 용모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137-B-8】
문제 (3) 재난이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아가시는데, 그때 성령의 역사가 있나요?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어떻게 경력해야 아름다운 간증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답변: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아가신 다음에 재난이 떨어지는 건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어떻게 경력해야 되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겠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습니다. 아셨나요? 하지만 그때에는 성령의 역사 방식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인도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력하는 과정에서 성령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때는 본인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구하면서 경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욥이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묵상했던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경력해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성령의 역사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에 의존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묵상하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 역사에만 의지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도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일에 대해서든 다 분명하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지 않고, 말씀에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다면,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무리 깨우쳐 주신다 해도 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면 분명하게 말씀드렸죠? 욥의 경력은 앞으로 하나님의 선민들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간증입니다. 앞으로 하나님 선민들에게는 다 큰 시련이 닥칠 것입니다. 구사일생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다 경력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시련이 너무 커서 많은 사람들이 멍해져 갈피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은 무조건 끝났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죽을 거라고 걱정하면서 말씀을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것입니다. 일단 스스로 자신은 끝났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은 끝나는 것입니다. 큰일 나는 것이죠. 규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말씀을 먹고 마시고 많이 봐야 합니다. 일단 성령이 말씀에서 깨우쳐 주시면 길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면서 많이 장비(裝備)하면, 그때 가서 쓸 수 있습니다. 지금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그때 가서 성령 역사에만 의지하려고 하면, 아마도 실수가 생길 것이고 자신을 지체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하셨죠?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한 학생이 있는데, 집에 있거나 또는 시험을 보기 전에 항상 다른 사람을 의지한다고 합시다. 부모에게 “나한테 답 좀 알려줘요, 문제 좀 풀어 줘요.”, “형, 누나, 문제 좀 풀어 줘.” 계속 그렇게 하다가 진짜 시험장에 들어갔을 때는 부모도 형도 누나도, 오빠도 언니도 없습니다. 그때는 자신이 평소에 공부한 실력으로 해야 합니다! 이런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아시겠죠? 그때가 되면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어려움이 있고, 사람마다 다 자신만의 곤경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잘 보지 않고 진리를 장비하지 않으면, 그때 가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길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쉽게 흑암에 빠지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문제 (4)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어떻게 경력해야 효과적이고, 자신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더 잘 알아 정결케 될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한다는 건,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에 대해 폭로하시는 말씀, 심판하시는 말씀, 형벌하시는 말씀을 다 받아들이고, 본인에게 맞춰 보고 자기 정형에 결부시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에게는 다 어떤 표현들이 나타나고, 패괴된 인류의 관념과 상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하신 말씀을 보면 자신과 대조해 봐야 합니다. 나중에 자신과 맞추게 되면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고, 모든 패괴된 인류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느껴집니다. “나한테 아직 이렇게 많은 패괴가 있었구나! 이제는 내 패괴를 똑똑히 봤어.” 이렇게 본인이 다 분명히 알게 되고 시인하게 되면, 자신을 아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방면으로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해 패괴된 인류를 심판하시는데, 이 진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왜 이 진리를 발표하셔서 인류의 이 방면의 패괴를 해결하시는 걸까요? 이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소유소시입니다. 이 진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리키는 것이 진리라는 걸 정말 깨달았다면,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게 정말 사람의 패괴 성정이고, 사람의 진상이고, 사람의 진짜 표현이고, 사탄 본성에 있는 독소라는 걸 깨달았다면, 자신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되고, 반드시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패괴를 벗어 버리려면 인식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많은 말씀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진짜 정형에 결부시켜서 진정으로 인식한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한 효과의 기준은 어떤 것이죠? 자신의 사탄 본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본성이 안에 있는데, 유로되는 게 사탄의 성정이란 걸 보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는데, 다 사탄의 성정에 속합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게 사탄의 성정이고, 명예 지위를 좋아하는 것도 사탄의 성정이고, 사람을 숭배하는 것도 사탄의 성정이고, 자신을 과시하면서 드러내는 것도 사탄의 성정입니다. 이걸 다 알게 되고,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요소와 실질을 다 알게 되고, 이런 성정마다 다 사탄 성정에 속한다는 걸 인식해서 결국 자신이 패괴된 진상을 보게 되면, ‘아, 이 패괴된 인류는 정말 깊이 패괴됐구나! 정말 사람의 모양이 조금도 없구나!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도 사람들을 괜찮다고 생각하고, 나도 꽤 좋다고 생각했을 거야! 오늘 보니까 그렇지 않네? 그러니까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지!’라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해부해 보면 사람에게는 정상 인성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정상 인성까지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어디 있죠? 사람은 진정한 사람의 모습대로 살지도 못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게 살아내고 아무리 잘 꾸며도 온통 사탄의 형상인 것입니다. 위선적인 형상인 게 보입니다. 이런 사실을 꿰뚫어 본다면, 그래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까요? 세상에는 그래도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계속 말할까요? 계속 패괴된 인류를 숭상할까요?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심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인류를 이렇게 심판하시는지, 하나님은 이 인류를 어떤 시각으로 보시는지 깨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지 않겠습니까? 이런 효과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서 있게 된 최종 효과입니다. 우리는 심판 형벌의 최종 효과에 근거해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은 확실히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신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정하게 됐습니다. 심판 형벌을 경력하면 정말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뭘까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맞서면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하나님께서 인류의 패괴를 어떻게 폭로하셨든 그건 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거라고 하고, 인류 중의 인간쓰레기들을 심판하는 것이지, 좋은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식한다면, 그건 잘못된 이해가 아닐까요? 그건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이 아닌가요? 그건 진리를 시인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심판 형벌의 사역에서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다 보니 정결케 돼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진리를 증오하고 싫어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다 옳고, 다 진리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생명 성정의 변화를 받을 수 있을까요? 구원받을 수 있고, 온전케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도태될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어떻게 경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분명하게 답변해 드렸죠?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보면서 항상 자신과 대충 대조해 보고는 ’아니야, 날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야. 난 이렇게 심각하지 않아. 난 인류 가운데 좋은 사람에 속해. 이건 인간쓰레기들을 놓고 말씀하시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망이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어떤 말씀은 저를 두고 하는 말씀이지만, 어떤 말씀은 저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제 속에도 그런 패괴들이 다 있다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들은 본인이 하지 않았다 해도 그래도 패괴되지 않았습니까! 겉으로는 간음하지 않았고 음란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속으로는 했습니다. 이런 효과는 심판 형벌 초기에 몇 년을 겪으면서 생겼습니다. 지금은 더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 형벌하시는 말씀은 어느 방면이든 우리에게 다 몫이 있습니다. 뼛속에, 혈액 속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했든 안 했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다 사실이고, 다 실제라는 걸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심복구복이 돼야 순복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력하면 확실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심판 형벌에서 한 방면은 말씀이고, 다른 한 방면에는 훈계 책망, 시련 연단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다 심판 형벌입니다. 깨달았죠? 그 훈계와 책망, 시련과 연단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무조건 심판 형벌입니다. 더 실제적인 심판 형벌입니다. 어떤 징계는 더 실제적인 심판 형벌이고, 어떤 훈계 책망도 더 현실적인 심판 형벌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순복하면 얻는 게 더 많아져서 변화받는 것도 더 빨라질 것입니다.
문제 (5) 사역 안배에서 “지금 다수의 하나님 선민들은 아직 진리 실제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했고, 다만 진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위해 화비(花費)하려는 심지만 갖추었습니다. 가장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훈계 책망을 경력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솔자 일꾼이 이 방면에서 하나님 선민들을 이끌어 진리 실제에 진입한다면, 교회 생활은 완전히 정상궤도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선민들도 완전히 하나님을 믿는 정상궤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인솔자 일꾼이 어떻게 이끌어야 하나님 선민들이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훈계 책망을 경력하는 실제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교통 부탁드립니다.
답변: 인솔자와 일꾼에게는 다 본직 사역이 있고 하나님의 부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탁과 사람이 하는 본분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솔자 일꾼이 해야 할 실질적인 사역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인솔자 일꾼이 본직 사역에 충실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면서 늘 자신을 증거하고 과시한다면, 그런 사람은 피조물의 본분을 잘한 것일까요? 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인솔자는 ‘인솔자’대로, 일꾼은 ‘일꾼’대로 바로 하나님의 선민들을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게 이끌어 가는 사역을 말합니다. 이건 인솔자의 책임이고 직책입니다. 가정 주부로서,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자녀를 잘 키워 어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가정 주부의 본무입니다. 맞나요? 인솔자 일꾼의 본무는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선민들을 이끌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 훈계 책망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는 먼저 자신의 경력 인식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이 경력할 줄 모를 때는 잘 지도해 주고, 하나님의 선민들이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치우쳐 잘못 이해하는 경우에는 바로잡아 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력과 인식, 즉 순수하고 올바른 경력과 인식, 실행의 길을 늘 선민들에게 교통해 준다면, 그건 인솔자 일꾼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 아닌가요? 그게 바로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실제 사역을 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본무에 충실하지 않고 이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며 이런 사역을 안중에 두지 않고는 툭하면 글귀 도리로 자신을 과시한다면, 그건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게 아닙니까?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왜 실패했습니까?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인솔자 일꾼이 되려면, 성실하고 착실하면서도 진솔하게 하나님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여,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인솔자 일꾼의 본무이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본무이기도 합니다. 이해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