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집 (a)하나님 말씀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 관한 설교 교통
【132-A-1】
하나님 말씀을 읽겠습니다.
『아마 네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은 것은 한두 해만이 아닐 것이다. 너는 그 몇 년의 삶 속에서 아마 많은 고난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마 고난은 별로 받지 않고 많은 은혜를 받았을 수도 있으며, 아마 고난이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아주 평범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어떠했든지, 결국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문제에 대해 우리 한번 교통해 보자. 그러나 내가 이 말씀을 보는 각 사람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을 시인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을 놓고 말한 것이지 하나님을 시인하거나 시인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이 대중을 향해 말씀하고 있고 세상 사람에게 말씀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너는 모든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새겨 두어야지 자신을 늘 이런 말씀 밖에 두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집안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함의(含義)를 깨달아야 한다. 이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 하나님을 믿는 데에 내포된 뜻은 다 너희의 긍정적인 진입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실질에 대해 해부하려고 하는데, 물론 이것은 반대면에서 너희를 인도하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너희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의 경건과 충심을 자랑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내가 만일 너희 마음 깊은 곳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지 않는다면 너희 각 사람은 모두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쓸 것이고 모든 영광을 다 자신에게 돌릴 것이다. 너희의 자대(自大)하는 교만한 본성이 너희를 부추겨서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게 하며,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게 하여 너희의 속셈, 관념, 사치스런 욕망, 탐욕스러운 두 눈을 빛 가운데 폭로시킨다. 그러나 너희는 오히려 말끝마다 한평생 그리스도의 사역에 몰두하겠다고 외치고, 말끝마다 그리스도가 이전에 말씀했던 진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되뇌고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믿음’인데, 너희의 ‘아무런 뒤섞임도 없는 믿음’이다.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는 예로부터 매우 엄격하였다. 만일 너의 충심에 속셈과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말하는 충심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사람이 속셈으로 나를 기만하고 조건으로 나에게 토색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사람이 나에게 충심무이(忠心無二)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든지 ‘믿음’이란 이 글자만을 위하고 모두 ‘믿음’이란 이 글자를 검증받기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가 감언이설로 나의 환심을 사려 하는 것을 미워한다. 내가 언제나 너희를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에 나 또한 너희가 진정한 믿음으로 나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을 언급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고난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묻겠다.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왜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가?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가? 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도 왜 그에 대해 멸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왜 공개적으로 그를 논단하는가? 왜 언제나 그의 행적을 캐내려 하는가? 왜 그의 안배에 순복하지 않는가? 왜 일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하지 않는가? 왜 그의 제물을 토색하고 훔치는가? 왜 너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말하는가? 왜 그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가? 왜 함부로 뒤에서 그를 모독하는가? 등등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믿음’인가?
너희의 언행에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분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고 있고, 너희가 일하는 동기와 목표에는 불신 성분으로 가득차 있으며, 심지어 너희의 눈길과 내쉬는 숨결에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분이 섞여 있다. 바꾸어 말해서 너희 각 사람은 매 일분 동안에도 ‘불신’ 성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너희는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배반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너희의 온몸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성육신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혈액이 주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디딘 발자국은 참된 것이 아니고, 너희가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때우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한 말씀을 언제나 반신반의하고 바로 실행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언제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행한 사역에 대해 언제나 믿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며,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하든 다 견해를 가지고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어떻게 설명을 하든 관념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너희 마음속에 섞여 있는 불신 성분이다. 너희가 비록 그리스도의 역사를 따르면서 지금까지 낙오되지는 않았지만 너희의 마음속에는 패역의 성분이 너무 많이 뒤섞여 있다. 그 패역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는 뒤섞임이다. 아마도 너희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만일 그중에서 자신의 속셈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너는 반드시 멸망될 대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사람은 그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지 그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 지금까지 그를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따르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심판도 좋아하지 않으며 세력과 돈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사람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세상에서 세력이 있는 그런 교파를 찾고 전적으로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만 찾으며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다 해도 반신반의하고 온 몸과 마음을 쏟지 못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역주: 헌신, 소비)한다는 글귀를 말하지만 눈은 오히려 대단한 목사와 강사를 주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속은 명리와 영예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이토록 작디작은 이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고, 눈에 차지도 않는 이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토와 거름 더미에 있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만약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라면 하늘땅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배꼽 잡고 웃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택하여 온전케 한다면 저 큰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 성분이 뒤섞여 있는데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그야말로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단지 지위, 명망, 세력을 중요시하고 큰 단체와 파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솔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눈에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본래부터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배치되는 배반자들이다.
너는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 않고 지위가 혁혁한 그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며,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그리스도를 좋아하지 않고 세상과 야합하는 그 음탕한 사람들을 좋아하며, 너는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비웃기만 하면서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생활하는 그 시체들을 탄복하며,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그 적그리스도의 품속에 안기기를 원한다. 비록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은 육체뿐이고 글귀뿐이며 통제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명예와 사탄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모든 지위를 향하고 있고 그들의 세력과 권세를 향하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한다. 네가 오늘까지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부득이한 것이다. 너의 마음에 하나하나의 높고 큰 형상이 영원히 우뚝 솟아 있어 너는 그들의 일언일행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그 말과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두 손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영원히 지고지상한 자이고 영원히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너의 마음속에서 그는 영원히 비천한 자이고, 영원히 경외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너무나 평범하고 그의 권세는 너무나 작으며 그가 너무나 높지도 크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진리를 중요시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모두 불신파라고 하고 진리의 배반자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그리스도의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너는 너에게 불신 성분이 얼마나 있는지 찾아냈는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성분을 얼마나 찾아냈는가? 나는 네가 진리의 도를 선택한 이상, 온 몸과 마음을 다 쏟아야 하고 우유부단하거나 흔들리지 말 것을 권한다. 너는 하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어떤 한 사람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각 사람에게 속하며 하나님에게 일편단심인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너희에게는 아직도 불신 성분이 많이 있으니 너희가 한번 진지하게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꼭 답을 얻을 것이다. 네가 진정한 답을 얻었을 때, 너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만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면 너는 그리스도에 대해 경외와 두려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너희의 믿음은 30%뿐이고 의혹은 오히려 너희들 심령의 70%를 차지한다. 그리스도가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한 마디 말씀을 할 때마다 너희는 그에 대해 관념과 견해가 생길 수 있는데, 그 관념과 견해는 바로 너희가 그를 전혀 믿지 않아 초래된 것이다. 너희는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앙모하고 두려워하며 땅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데 그것도 여전히 너희의 불신이 아닌가? 너희는 지난날에 사역했던 하나님만 그리워할 뿐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대면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영원히 너희의 마음속에 섞여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믿음’이다. 나는 결코 너희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희에게는 불신 성분이 너무 많고 해부해야 할 불순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불순물은 바로 너희에게 ‘믿음’이 전혀 없는 상징이고, 너희가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기호이며, 너희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낙인이고, 너희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에 가려진 수건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얻어지는 데의 장벽이고, 너희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데의 장애물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증거이다. 지금 너희는 너희의 모든 생활을 한번 성찰해 보아라! 그렇게 하면 너희의 모든 것에 다 유익한 점이 있다!』
【132-A-2】
좀 전에 우리는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제목이죠.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오게 되는 건 다 믿음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오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보고 진리도 교통해 봅시다.” 하면, 받아들일까요?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믿으면 돈 줘요? 예배 참석하는 데 100위안을 준다면 다 하나님 믿으러 갈게요. 돈 안 주면 안 가요, 들어봤자 소용도 없어요.”라고 합니다. 이건 어떤 관점이죠? 이방인의 관점입니다. 돈만 알죠. 진리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릅니다. 돈만 주면 뭐든 다 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공짜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영생을 얻으라고 해도 안 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구별될까요? 우리는 말씀을 들으려고 가정을 제쳐놓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직장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 모든 걸 하나님께 바치고 자기 자신까지 하나님께 바쳐 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와 이방인들이 구별되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발표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 온 모든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점검하고 감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우리의 관념과 상상 속에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의 믿음에는 어떤 불순물들이 있고 어떤 속셈들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믿음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고 어떤 기준이 있는지를 함께 봅시다. 이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찾아야 할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 믿음에는 찾고 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이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갖고 있는 불순물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존재하는 그 불순물들은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하나님에 대해 어떤 거역과 대적을 하고 그리고 어떤 관념을 형성시키고, 마지막에는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까요? 그런 불순물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저는 주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고, 또 주님을 위해 그렇게 오래 헌신했는데, 설마 제 믿음에 아직도 불순물이 있을까요?”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많은 고난을 받았고, 이번 단계를 받아들인 후에도 또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설마 제 믿음에 불순물이 있을까요?”라고 합니다. 이렇게 규정해도 괜찮을까요? 이런 생각은 어떻습니까? 불순물이 없다고 하지 말고, 우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냥 믿기만 하면 된 걸까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만 인정하면 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말세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저는 당신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가 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이고, 전부 하나님 영의 발표니까, 당신이 말세의 그리스도라는 걸 전혀 의심치 않습니다. 그건 100% 인정합니다.”라고 합니다. 그 인정 하나면 참된 믿음이 될까요? 참된 믿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율법시대의 유대교 신도들도 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했습니다. 그것도 100%, 대대손손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니 오히려 인정하지 않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믿음에는 어떤 문제가 생긴 겁니까? 교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2천년 동안 믿었는데,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시니 또 전능하신 하나님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인류의 참된 믿음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그런 믿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또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 그런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까요? 마태복음 7장 22~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은혜시대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 사람들은 늘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주님께 참된 믿음이 없었던 걸까요? 주님은 왜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들을 정죄하시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문제에 찾고 구할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찾고 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걸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복하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그러니까 유대교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기독교의 목사, 장로, 모든 신자들까지 다 한꺼번에 천국으로 데려가시고, 하나님이 천국에서 매일 음성을 발해 말씀을 하신다고 합시다. 그럼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그 사람들이 순복할 수 있을까요?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주님을 대적하고 주님과 대립하지 않을까요? 주께서 하늘에서 진리를 발표하시면 그들은 반대하고 정죄하고 증오하면서 하늘에서도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왜 발생할 수 있다고 할까요? 교계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그럴 수 없죠. 천국에서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우린 다 순복합니다. 우린 여전히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진정으로 순복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정말 유대교의 회당에 가서 설교를 하셨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틀림없이 예수님을 공격하고 게다가 잡아서 관원들에게 넘겼을 겁니다.”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왜 주님을 잡아 관원들에게 넘기려고 했을까요?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 그들을 욕하지도, 때리지도 않으셨고 회당에 들어가 그들을 모욕하거나 그들의 신앙의 권리를 빼앗지도 않으셨는데, 그들은 왜 예수님을 잡고 공격하고 관원들에게 넘기려고까지 했을까요? 누가 이 일을 분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지 봅시다. 꿰뚫어 볼 수 있으신가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교계 예배당에 가서 진리를 발표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편 한 편 발표하셨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교계에 있는 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예배당에서 내쫓고 정죄했을 것입니다. “이 자는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다! 우린 당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 유대인처럼 생긴 그 그리스도이지 당신은 아니야, 당신은 가짜다. 지금 안 나가면 우린 당신을 내쫓고, 당신을 정부에 넘기겠다!”라고 했을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문제일까요?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집을 방문하시고, 그들에게 진리를 교통해 주신다면, 그 집에서 쫓겨나고, 예수님처럼 머리 둘 곳도, 안식할 곳도 없게 되겠죠, 그렇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예배당에 나타나 말씀하시거나 역사하시지 않을까요? 그 원인을 이제 분명하게 아시겠죠? 교계는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셨을 때, 왜 바닷가로 가서 어부들을 찾아 말씀을 전파하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고 증거하셨을까요? 왜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왜 예배당에 가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찾지 않으셨을까요? 답을 이제 다 찾으셨습니까? 이 문제는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누구나 다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럼 대체 무슨 원인일까요? 왜 그렇게 된 걸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의 믿음 속에 불순물이 너무 많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유대교에서 쫓겨나신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뭐라고 하실까요? “너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너희의 우상을 믿고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도다. 내가 말하고 사역하는 것 같이 하나님이 오셔서 그렇게 하셔도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을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교계 예배당에 나타나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도 예수님께서 유대 교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너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가장 현실적인 진리를 발표해 너희를 정결케 하고 심판하고 너희를 구원하고자 하는데도 너희는 인정하지 않고, 거기다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이 문제들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사람의 내면에 있는 불신으로 초래된 결과입니다. 교계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불신 요소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정죄한 그 사실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사실이 사람을 그대로 드러낸 겁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교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셨을 때, 기독교의 목사, 장로와 신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드러난 후, 우리는 이 사실을 근거로 인식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 안에 도대체 어떤 불순물들이 들어 있고, 어떤 불신 요소들이 들어 있을까요? 그런 불신 요소와 불신의 불순물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요? 이 부분의 진리를 교통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필요합니다! 왜 필요할까요? 그 불신 요소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음에 여전히 위험 요소가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무슨 위험이 있겠어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과 도태되고 정죄받을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는 이런 불신 요소들을 드러내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불신 요소와 사람의 믿음 안에 있는 불순물을 드러내지 않으시면 사람이 스스로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교계에 보내 교계의 지도자, 목사와 장로들에게 모두 다 읽어 보게 한다면 그들이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다수가 여전히 대적하고 정죄까지 할 겁니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패역과 대적은 너무 큽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고 말하면, 다들 맞다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누가 진정으로 믿냐고 물어 보면 다들 손을 듭니다. “우린 다 진정으로 믿고 있어요, 우린 가장 잘 믿고 있고, 의심이 전혀 없이 100% 믿고 있는 사람들이죠.”라고 말합니다. 다 자기 자랑을 하지만 사실을 가지고 드러내면 다 무너집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가장 잘 순복한다고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너희 속에는 불신하는 악한 마음이 있다!”라고 하시면 “예? 왜 우리에게 불신하는 악한 마음이 있다고 하시죠? 저희가 가장 잘 믿는 사람들인데요!”라고 말합니다. 그건 어떤 성정입니까? 교만 자대가 아닌가요? 이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태도일까요? 진리에 순복하는 태도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내 관념에 맞고, 내 비위에 맞는 건 수용하고, 찬성하고, 아멘 할 거예요! 근데,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내 관념에 맞지 않고, 내 어두운 면을 폭로하면 저는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반대하고 정죄할 겁니다!”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건 어떤 성정인가요? 사탄의 성정이 아닌가요? 하나님이 오셔서 진리를 이렇게 발표하셨는데, 과연 몇 명이 받아들였습니까? 몇 명이 찾고 구했습니까? 온 교계는 다 하나님의 오심을 영접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오셔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 각지에 알렸는데, 자발적으로 찾고 알아보고 받아들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버리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불신의 시대가 아닙니까? 이건 불신의 시대입니다. 온 교계가 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132-A-3】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서 밝히신 걸 교통해 보도록 합시다. 이 말씀의 두 번째 단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함의(含義)를 깨달아야 한다. 이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 하나님을 믿는 데에 내포된 뜻은 다 너희의 긍정적인 진입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실질에 대해 해부하려고 하는데, 물론 이것은 부정적인 면을 드러냄(원문: 反面)으로 너희를 인도하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너희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의 경건과 충심을 자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밝히지 않으셨다면 어떨까요?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너희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의 경건과 충심을 자랑할 것이다.” 이 말씀은 사실이 아닙니까? 믿기지 않는다면 교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라고 물어 보십시요. 그럼 아마 “네, 물론이죠, 의심할 나위 없죠. 제가 얼마나 많은 걸 버리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아세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당신은 경건한 신자입니까?” “물론이죠.” “그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있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죠. 저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교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그렇게 확신합니다. 예전에 우리도 주님을 믿을 때는 그랬습니다. 교계 사람들에게 관념이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너무 뒤떨어졌어요, 너무 패역해요, 너무 외식적이에요!”라고 하지 마세요. 실은 우리도 교계에 있을 때, 다 그런 꼴이었고, 그들과 똑같았습니다. 조금도 더 나은 데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점이 뭘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여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진면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효과가 있게 된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보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교통하든 반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교통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순복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과 형벌을 경력했습니다. 비록 경력한 시간은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의 말씀에 심복구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이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하고 계시는구나.”라면서 거기까지 알게 됐습니다. “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게 됐어, 이게 가장 실제적인 사랑이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건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 위해서야! 정결케 하는 건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온전케 하시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만 진정으로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모두 순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그런 말씀들을 듣고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많은 가책을 받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참 아들이면 징계하고, 사생자면 징계하지 않죠! 우리가 바로 진정한 의미상의 하나님 선민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의 하나님 선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만한 순복이 있게 되었고,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께 가장 위안이 되는 일입니다. 어떤 분은 역대 성도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얻도록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자, 오늘날 이렇게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건 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고, 정해 주신 복이란 걸 깨닫고 너무 기뻐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심판과 형벌에 관한 말씀을 보게 되자 울면서 도망가 버립니다. 복을 받는 건 괜찮지만 심판하고 형벌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또 은혜를 베풀어 기쁨을 누리게 하는 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고통받게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을까요? 참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어떻게 행하시든 다 하나님 앞에 순복하고 말씀에 순수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밝히시면 그것이 우리의 진면모라는 걸 깨닫고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것이 다 맞습니다. 저는 당신께 순복하겠습니다.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이니 반항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결케 될 때까지 순복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이렇게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게 순복하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참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가장 열납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장 칭찬받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늘 자신을 과시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전부 “아니에요! 저는 그렇지 않아요. 이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전 안 그래요! 저는 그 사람들보다 낫습니다. 온 교계에서 제가 가장 경건하고, 가장 충성심이 많고, 믿음도 제일 큽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일까요? 늘 잘난 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늘 틀렸다고 여긴다면 큰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너무 패역하고,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인 겁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밝히신 내용 중에 어떤 건 자신에게 부합되지 않고, 어떤 건 자신에게도 확실히 존재한다고 하고,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건 인정하고 순복한다고 합니다. 그럼 인식하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어떤 말씀은 너무나 깊습니다. 본성을 매우 엄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 아직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당할까요? 순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순복하는 걸까요? 하나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진실한 말을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단순하게 그대로 털어놓으면 됩니다. “하나님, 이 말씀은 제가 아직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깊다고 생각되는데,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여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당신의 말씀은 진리이고, 절대 틀릴 리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순복하겠습니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기다려서 다시 하나님과 교통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런 일에서 어떤 태도인지 아십니까?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감찰을 제대로 못하신 거 아닌가? 여기서는 감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네! 다른 건 사실에 부합되는데, 여기 말씀은 사실과 맞지 않아! 틀렸어. 그래서 이 말씀은 인정 못해! 틀렸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입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분량이 작은 것이지, 3년, 5년 후에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10년 후에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도 그렇게 교만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3년, 5년을 경력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땐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지금 보니까 전혀 틀리지 않아”라고 하면서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는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지 않고, 사실을 과장했다고 했었는데, 저는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그렇게 경력했습니다. 교만 자대하고 독선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은 심판에 관한 말씀이 너무 엄하면 가슴에 찔리고, 괴롭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그런 곳을 보게 되면 그냥 넘기고 다음 페이지 보면 돼! 말씀을 보다가 편안하고 사람의 관념에 맞으면 그 페이지 계속 보면 돼! 자꾸 심판에 관한 말씀만 봐서 자신을 괴롭힐 거 뭐 있어? 축복에 관한 말씀이나 많이 보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마음을 나눈 말씀들은 얼마나 좋아, 보면 볼수록 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다 그런 식으로 경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후회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의 뺨을 때립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가장 엄한 말씀과 인류를 폭로하신 가장 엄한 말씀을 보게 되면 얼른 밑줄을 긋습니다. “빨리 줄을 그어 놔야지.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진입해야 할 부분이야! 여기에서 진리를 찾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여기에 있어! 빨리 줄을 그어 놔야지!”라고 합니다. 그 반면에 축복에 관한 말씀, 위로의 말씀, 그리고 사람의 관념에 맞는 말씀을 보게 되면 “안 볼 거야! 중요하지 않아,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그런 말씀들이 가장 중요해. 거기에 생명 진입이 있고, 거기에서 성정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거기에서 순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참된 태도가 있는 거야! 이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거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위로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합니다. 지금 보면 새 신자들 가운데 대부분 사람들의 정형이 우리가 금방 믿고 말씀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정형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패괴가 다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력해 왔는지를 여러분에게 교통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치욕이고, 우리의 패괴 유로입니다. 여러분이 인식하고 깨달아 교훈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말씀을 계속 교통하겠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내가 만일 너희 마음 깊은 곳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지 않는다면, 너희 각 사람은 모두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쓸 것이고, 모든 영광을 다 자신에게 돌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까? 사실에 부합됩니다. 너무 정확합니다. 패괴된 인류는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추한 진면모를 폭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다 잘난 척만 할 겁니다! 누가 과시할 줄 모릅니까? 저도 자신을 과시할 줄 압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도 추구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어요! 저는 경건한 사람이에요.” 이런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아 사람들이 듣지는 못했지만 저는 간혹 속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저도 인정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모두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쓸 것이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렇게 경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아주 잘난 척하면서 제 자신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여겼을 겁니다. “누가 물러선다 해도 난 절대 물러서지 않아! 난 하나님께 가장 순복하는 사람이고, 죽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시면 난 다 버릴 수 있어. 직장도, 가정도 다 버릴 수 있어.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가장 커.” 이런 자화자찬은 어떻습니까? 큰 면류관을 씌우지 않았나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너희의 교만하고 자대(自大)하는 본성이 너희를 부추겨서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게 하며,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게 하여 너희의 속셈, 관념,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스러운 두 눈을 빛 속에서 폭로시킨다.” 우리가 이런 패괴를 유로하고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고 또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면서 우리의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고, 자신의 관념과 속셈,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스러운 두 눈이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근원은 뭘까요? 어떻게 초래된 걸까요? 하나님은 “너희의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이 너희를 부추겨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은 정확하게 말하면 뭘까요? 바로 사탄의 본성이고, 사탄의 성정입니다. 그럼 우리가 사람이 늘 죄짓고 늘 패괴를 유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근원을 찾지 않고 패괴가 유로되면 억제합니다. 거짓말을 한 다음에 “이번에 거짓말을 했지만 다음에는 거짓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거역과 대적을 유로한 다음에도 “이번에 거역하고 대적했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관념이 생겨 불복한 다음에도 “이번에는 관념이 있었지만 다음엔 관념이 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패괴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바로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입니다. 이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은 쉽게 해결될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주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상관없이, 심지어 평생 동안 믿고 주님을 위해 화비했어도 패괴 유로는 끊이질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죄를 짓고는 자백하고, 자백하고는 또 죄를 짓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죽는 날까지도 주님께 죄를 자백해야 했습니다. 어떤 죄를 자백해야 했을까요? “주님! 제가 오늘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님, 오늘 또 육체를 방종했습니다. 육체의 누림을 탐했습니다. 주님, 오늘 또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늘 이렇게 기도하면서 죄를 자백하지만 죄짓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건 틀림없지만 왜 지나고 나면 또 끊임없이 죄를 지을까요? 왜 어떻게 해도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요?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정말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나라시대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죄짓는 그 근원을 알려 주셨습니다. 근원은 바로 교만하고 자대하는 본성이고, 바로 사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탄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로 그 본성이 우리를 지배해 이것을 하게 하고 저것을 하게 합니다. 우리를 부추겨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고, 우리를 부추겨 육체의 누림을 탐하게 하며, 우리를 부추겨 명리와 지위를 좇게 하고, 우리를 부추겨 거짓말로 자신의 체면을 지키게 하며, 우리를 부추겨 늘 자신을 수호하게 하고, 늘 복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분투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에 대해 여러 가지 관념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각종 거역과 대적을 초래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되고, 마지막엔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합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다 사탄의 그 본성으로 인한 것입니다. 화근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에 와서, 하나님은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사탄의 그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왜 드러내셨을까요? 바로 사람들에게 인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알게 되면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은 진리가 많아지고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 되면 사탄의 본성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붕괴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132-A-4】
사탄의 본성은 사람의 내면에서 어떻게 제거되고, 또 어떻게 정결케 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저에게 패괴가 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치만 패괴된 인류에게는 다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지 않나요?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다 이중적인 가면을 쓰고 있잖아요. 왜 좋은 면은 말씀하시지 않고 나쁜 면만 자꾸 말씀하시죠? 사람이란 원래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다 있잖아요! 그런 게 사람이죠. 이 세상에 이중성을 띠지 않고 좋은 면만 있고 나쁜 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죠!”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선한 면도 있고, 악한 면도 있다고 하면서 그게 사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일까요? 틀렸습니다. 그건 어떤 사람이 하는 말입니까? 바로 사탄의 논조입니다. 그럼 대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별이 없을까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별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데, 어떻게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걸까요? 궁극적으로 변화가 어느 정도로 돼야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쁜 면만 변화시키고, 좋은 면은 그대로 남겨 둔다는 말이 맞을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람은 선한 면과 악한 면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선한 면이 없고, 전부 악한 면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죠. 우리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면이 전혀 없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사람에게는 다 사탄의 본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패괴된 사람이고, 패괴된 부류이고, 패괴된 인류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사탄 본성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다면,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게 아닙니까? 모든 일에서 사탄 본성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바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정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십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괴시킨 인류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후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하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도 보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에 따라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때부터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사람의 내면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새로운 생명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된 거죠. 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점차 더 많은 진리를 깨달음에 따라 성장하게 됩니다. 그 생명이 자랄수록 사람은 하나님께 더 순복하게 되고, 더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되고, 하나님께 더 기꺼이 경배하게 됩니다. 그 경지에 이르면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던 사탄의 본성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사탄의 본성은 왜 사람의 내면에서 붕괴되고 무너지게 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내면에 있는 사탄에 속한 모든 것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그런 관념과 철학, 사탄의 그런 이론과 그릇된 논리는 다 사악하고 터무니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난 포기할 거야! 그걸 배반할 거야! 그리스도만이 나의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의 생명이요, 진리만이 나의 생명이다!”라고 하게 됩니다. 내면에 있던 사탄의 본성을 온전하게 간파하게 되면, 즉 그 실질을 꿰뚫어 보고, 그 권세를 꿰뚫어 보고, 그 사악함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람은 그걸 증오하고 배반하기 시작하고, 포기하고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본성이 사람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은혜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노력했지만 왜 사탄 본성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주님에 대해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또한 주님을 전파하고 증거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심지어 옥살이도 하고 죽음도 서슴치 않았는데, 왜 사탄 본성의 통제와 부추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거짓말을 하면서 죄를 지었을까요? 그건 어떻게 된 걸까요?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게 될까요? 누가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말씀으로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과 형벌은 전적으로 진리의 발표를 통해 효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시지 않았고, 예수님도 말세에 하시는 그런 말씀들을 발표하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신 심판 사역만이 인류를 가장 철저하게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이 하신 것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과 형벌을 꼭 받아들여야 하나요?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순복과 고난받을 마음가짐으로는 왜 바로 들림받아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죠?”라고 말합니다.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구속 사역만 하셔서 단지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만 하셨을 뿐입니다. 사탄의 본성과 성정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해결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은혜시대의 속죄제는 사람의 패괴를 해결할 수 없고, 사람의 패괴도 정결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은 죄 사함만 받았을 뿐이죠.
어떤 사람은 “우리가 사탄에게 패괴돼 패괴 성정도 좀 있고 거짓말도 좀 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정말 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하나님께 순복하기도 해요. 근데, 어떻게 우리가 사탄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죠?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가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다고 해서 정말 하나님을 대적하는 걸까요?”라고 묻습니다. 이런 문제에 쉽게 답할 수 있습니까? 딱 한 가지 일을 얘기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시면서 은혜시대의 말씀들을 발표하셨을 때, 유대교 신자들이 받아들였나요? 그들은 그런 말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음성을 내어 말씀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과 즉시 싸울 것이고, 하나님과 적이 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예를 더 들어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육신이 어느 교회에 가시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 거라는 건 일단 제쳐 놓읍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느 교회를 가시든 반드시 쫓겨날 것이고, 환영받지 못하실 겁니다. 가면 “여기에 뭐하러 오셨어요?” “주님을 믿으러 왔습니다.” “아, 예배 드리러 오셨군요.” “예, 주님을 믿으면 예배 드려야죠. 주일이라 주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제가 말을 좀 해도 될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주님을 위한 증거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증거해야죠.” “그럼요! 그건 좋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모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제가 진리 한 편을 말해도 될까요?” “어떤 진리를 말씀하실 겁니까?”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바로 이 말입니다.” 그럼 교계의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당신, 그거 무슨 말이야? 우릴 뭘로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우리의 믿음도 다 부인해 버리고, 이건 우리를 논단하고 성도들을 정죄하는 거야, 당신 순전히 우릴 참소하려는 거잖아!” 큰일났습니다. 그리스도는 틀림없이 예배당에서 쫓겨나실 겁니다.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주여, 저희에게 나타나시길 바랍니다. 저희 가운데 나타나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그 말이 정말일까요? 거짓입니다. 그 말은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 당신이 오셔서 우리를 단번에 하늘로 올려 공중에서 당신과 만나게 해주시고, 복을 받게 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셔서 진리를 발표해서 우리를 심판하실 거면 얼른 나가 주십시요.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진면목이 아닙니까? 이제 여러분은 이 일을 잘 아셨습니까? 그럼, 어떤 사람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됐다고 해서 정말 하나님의 원수가 될까요? 정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될까요? 그렇게 심각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렇게 심각할까요? 예, 정말 그렇게 심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성육신으로 오셨어도 다 예배당에 들어가시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층 사회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도 회당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오셔서 교계 예배당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교계 예배당에 보낸다면 그들에게 바로 정죄받습니다. 그들은 극력 논단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교, 기독교의 사람들을 하늘로 올려 주신다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과 대립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도 남습니다. 하늘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논쟁하고, 천국에서도 예수님과 따질 겁니다. 이런 사실을 믿습니까? 이런 사실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수년간 교계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했지만, 교계의 대적과 공격은 아주 심했습니다. 예배당을 봉쇄하여 바늘 들어갈 틈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예배당에 가서 몰래 예배에 참석하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알아보지만, 자신의 진정한 신분은 밝히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발각되고 쫓겨납니다. 그들은 또 형제자매들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한 자니, 보면 바로 신고하고 쫓아내라고 합니다. 교계는 우리와 미친 듯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물과 불이 상극인 것처럼 우리와 화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와도 상극이 됐습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증오하고 그리스도와 미친 듯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탄이 패괴시킨 결과가 아닙니까? 사탄의 본성이 사람 속에서 생명이 되어 사람을 통제한 결과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정말 그렇게 심각한가요? 그럼 사탄의 성정은 어떤 행실로 나타나나요?”라고 합니다. 예전에 제가 사탄 성정에서 드러나는 주된 행실 12가지를 글로 써서 나열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주된 것들이고, 부차적인 것들은 총결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더 많을지 모릅니다. 단지 주된 것만 총결한 것입니다.
사탄 성정에서 드러나는 주된 행실 12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늘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갖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 진리를 증오하고, 사악을 숭상하며, 하나님과 적이 됩니다. 세 번째, 교만하고, 자대하며, 무법천지이고,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네 번째, 유아독존하고, 자신을 숭배하게 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다섯 번째, 늘 다른 사람 위에 앉아 사람들을 통제하고, 장악하고, 우롱하려고 합니다. 여섯 번째, 독선적이고, 제멋대로 날뛰며, 독단적으로 행하고,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일곱 번째, 겉으론 복종하면서 속으론 배반하고, 교활하고, 궤사하며, 거짓말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기만합니다. 여덟 번째, 진리를 멸시하고, 지위와 권세를 숭상하고, 지위에 따른 복을 탐하고 누립니다. 아홉 번째, 사악한 세력을 따르고, 그들과 결탁하여 못된 짓을 일삼고, 나쁜 자를 도와 악을 쌓습니다. 열 번째, 육체의 안일을 탐하고, 육체를 방종하고, 죄악 속에서 쾌락을 누립니다. 열한 번째, 자신에게는 진리 생명이 없으면서 왕 노릇 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려고 합니다. 열두 번째, 권력을 잡고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살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이 12가지 방면의 사탄 성정이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사탄 성정은 적어도 이 12가지로 나타납니다. 사탄 본성의 핵심은 뭘까요? 바로 교만하고 자대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씀, 잘 하셨어요. 아주 적절한 것 같네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그렇게 심각할까요? 다 연관은 좀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것 같진 않은데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심하지 않을까요? 제가 과장한 건가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패괴 성정이 겉보기에는 심각하지 않은데요. 우리에게 없다고 할 수는 없고, 다 관련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은 하지도 않았어요.”라고 합니다.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지 않았다고 그런 본성이 없고, 본성에 그런 것들이 들어 있지 않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봅시다. 각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세요, 대선 후보자일 때는 뭐든 다 들어줍니다. 이것도 약속하고, 저것도 약속하고, 이것도 처리해 주겠다고 하고, 저것도 해결해 주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들은 그대로 믿고 “좋아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당신을 찍어드려야죠.”라고 합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어떻습니까? 누가 그런 것들을 거들떠나 봅니까? 누가 해결이나 해 줍니까? 사람을 속인 겁니다. 표를 얻으려고 좋은 말만 한 겁니다. 패괴된 인류는 사람을 기만하기 좋아하는 게 아닙니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지 않습니까? 그런 성정이 있으면서도 권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권력을 잡고 왕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사탄 성정의 12가지 행실들이 하나씩 다 들어맞습니다. 전혀 과장된 게 아닙니다.
【132-A-5】
일반적으로 친형제가 서로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생계를 위해서 사업도 하고 장사도 하느라 형제 사이에 서로 죽이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일단 한 명이 황제가 된다면 둘은 목숨을 걸고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됩니다. 부자지간의 정도 가장 돈독합니다. 그러나 왕위를 위해서는 부자지간에도 서로 잔인하게 죽고 죽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권력에 관련되면 사람의 본성은 철저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권력 다툼이 없을 때는 “정말 그렇게 심할까요? 그저 사탄 본성이잖아요? 그저 거짓말을 좀 한 거잖아요? 그저 좀 이기적이고 비열한 거잖아요? 그저 명예와 권력을 위해 이익을 좀 다툰 것뿐이잖아요? 그렇게까지 심각하겠어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 작은 일에서는 사람의 진면모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일이 터지면 그대로 드러나게 되죠. 예전에 저는 “저 탐관오리들은 저렇게 많은 돈을 횡령해서 뭐하지? 저걸 다 쓸 데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횡령한 적도 없고 꽤 괜찮은 사람이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한 후에 “예전에 내가 횡령하지 않았던 건, 내가 돈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내가 만약 정말 돈 관리를 맡았더라면, 어쩌면 나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라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정말 권력을 쥔 다음에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사탄 성정의 12가지 현상이 권력을 잡지 않았을 때는 그저 연관이 좀 있을 뿐이지,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정말 권력을 잡았을 때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겠습니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어떤 죄는 어떤 특별한 환경이 있어야 짓게 됩니다. 특별한 환경이 없이는 그런 죄를 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항상 남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해요.”라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바른말을 하고 옳은 말을 해 비위를 거슬리게 됩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래도 그 사람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일들은 주변 환경과 시련, 그리고 어떤 특별한 환경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 말이 맞나요? 아무런 지위도 없다면 그런 죄지을 환경이 없는 겁니다. “저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결합니다. 저는 영원히 이런 죄를 짓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의 제물을 절대로 한 푼도 훔치지 않고, 한 푼도 가로채지 않고, 한 푼도 탐내지 않을 겁니다.”라고 합니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 하는 말일까요? 제물을 보관하는 본분을 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물을 보관하는 본분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환경은 그 돈이 있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도 탐하지 않고 훔쳐먹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사람을 드러냅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욕심내지 않고, 훔쳐먹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 명이 제물을 감독하고 관리하니까 손을 쓸 수도 없고, 생각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에서 절대 하나님의 제물을 훔쳐먹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성립될까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증거는 실제적인 환경이 있어야 그 증거도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도 수치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도 흡족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없이 허튼소리나 빈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마다 내면에는 사탄 성정의 주된 행실 12가지가 다 있습니다. 단지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심하게 나타나지 않거나 혹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일단 지위가 있고, 권력을 잡게 되면 경중 정도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인솔자 일꾼들은 그 본분을 하지 않을 때는 행실이 아주 좋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있죠. 그러나 일단 인솔자가 되면 그렇지 못하고 변하게 됩니다. 많은 악을 행합니다. 그런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다들 “발탁할 때는 좋았는데, 왜 불과 1~2년 사이에 이렇게 변했을까요? 인솔자가 되더니 왜 예전과 달라졌을까요?”라고 합니다. 지위가 있게 되니까 사람도 달라진 겁니다. 사람은 지위가 있고 없고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본분을 하고 안 하고에 따라, 시련이 임하고 임하지 않고에 따라, 또한 심판과 형벌을 경력해 본 것과 경력해 보지 못한 것에 따라 다 다릅니다. 그런 건 다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천성적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과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것도 다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되면 후회하고 반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실패와 좌절 앞에서도 반성하지 않고, 완고하게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신의 길로만 갑니다. 회개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결말을 정하실 때, 왜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근거하고 다른 건 보지 않는다고 하셨을까요? 고난을 얼마나 많이 받았든,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나 됐든, 관록이 얼마나 되든 다 보지 않습니다. 경험이 많고 명성이 아무리 높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고 적음도 더더욱 보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고, 그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탄의 본성은 사람의 내면에서 철저하게 제거되고, 송두리째 제거됩니다. 또한 사람의 내면이 새롭게 바뀌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됩니다. 즉, 이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의 내면에서 권세를 잡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람이 생존하는 토대가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되고, 또한 진리 생명이 됩니다.
사탄의 본성은 어떤 것들로 구성되었는지 아십니까? 왜 사람에게 사탄의 본성이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할 수 있을까요? 왜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고, 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숭배하게 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할까요? 가수나 스타들을 보세요, 객석을 향해 노래 부르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아래에서 환호하고 들끓고 칭송합니다. 그럼 그 가수나 스타들은 그걸 즐기면서 매우 흥분하죠. 그러면서 ‘기분, 정말 최고다! 정말 가수가 되니까 참 좋구나, 다들 날 우상으로 받들어서 정말 좋아. 이런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제발 시간이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떤 성정입니까? 사탄의 성정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경력하고 나니 사람들 앞에 나서면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숨기던 대머리를 들킨 것처럼 창피하죠! 사람들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없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인솔자를 선출할 때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를 뽑아 주세요, 저는 인솔자가 되고 싶습니다.” 정작 인솔자가 되고 나면 예배 때마다 걱정됩니다. ‘사람들에게 뭘 교통해야 되지? 인솔자라 교통을 안 할 수도 없고, 뭘 말해야 되지? 나한테 진리 실제도 없잖아! 이 인솔자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한테는 왜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말할 면목이 없다고 느낍니다. 인솔자가 되고 나서 자신은 가엾을 정도로 빈궁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증거할까? 난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진리를 교통해야 되지?’ 정말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고 나면 사람은 자신의 패괴된 진면모를 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좀 겸손해지고, 더 이상 그렇게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심판을 경력해서 이르게 된 효과가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많이 경력하면서 자신의 패괴된 진면모를 꿰뚫어 보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을 증오하게 되고, 역겨워하게 됩니다. 따라서 허영심도, 지위에 대한 욕심도 사라지고, 기꺼이 하나님만 따르는 작은 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거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때가 되면 사람에게 이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건방지지도 않고, 교만하거나 자대하지도 않고, 잘난 척하지도, 독선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유아독존하지도 않게 되죠.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면 정결케 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많이 경력할수록 우리의 패괴된 진면모를 한 단계 더 깊이 알게 되고, 정상 인성의 부족함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어 진리를 구하고자 더 노력하게 됩니다. “빨리 진리를 갖춥시다, 우리에겐 생명이 없어요! 빨리 진리를 갖춥시다, 우리에겐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것들이 부족해요! 얼른 진리를 갖춥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 얕습니다! 빨리 진리를 갖춥시다, 우리는 아직 풍성하게 얻지 못했어요!”라고 하면서 진리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렇게 노력하면서 어느 날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하나님을 증거할 말들이 끝없이 많아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데에 청산유수 같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영원히 다 증거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은 마음이 뿌듯하여 누림이 있게 되고, 너무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하게 되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건 너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저는 너무 많은 변화가 있게 됐어요. 그렇게 많았던 패괴 성정과 사탄의 관념, 철학, 이론 등이 다 진리를 추구하면서 부정하게 되고, 버리게 되고, 제거됐어요. 예전에 숭배하던 세상의 그런 명언들이나 논조들, 의미 깊은 명언들은 지금 와서 보니까 다 그릇된 논리고, 허튼소리였어요! 저는 철저히 버렸어요. 지금 마음에 기억하고 새긴 건 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들은 과거에 사탄의 논리와 관념, 이론들을 대체했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내면에서 생명이 됐어요.” 그런 게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경력해서 얻게 된 효과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그런 진리들을 알게 되면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게 되셨나요?”라고 물어 봅니다. 가장 뚜렷한 효과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임해도 그 실질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알게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발표하신 그 어떤 진리에도 맞서지 않고, 순복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어떻게 증거해야 되는지,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완성해야 되는지, 어떤 본분을 해야 되는지, 어떻게 본분을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에 이르게 되는지를 마음으로 잘 알게 됩니다.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사악하고 음란한 시대이고, 사탄이 정권을 장악한 세상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계시록에 예언한 이 세상의 짐승, 모든 짐승들, 그리고 음녀인 교계는 다 하나님과 적이 되기 때문에, 절대 그들에게 잡혀가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그들에게 사로잡히면 짐승의 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침륜되고 멸망될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패괴된 인류를 꿰뚫어 보게 되고, 하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남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훼멸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대재난이 쏟아질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되어 기뻐 뛰며 끝없이 찬송할 것이고,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132-A-6】
지금 어떤 사람은 “대재앙이 오면 아이들이 죽습니다. 애들은 무고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왜 아이들을 지켜 주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유치한 말입니까! 지금 중동 쪽 전란으로 다마스쿠스는 폐허가 되었는데, 각국 난민들 가운데 어른, 아이, 노인들까지 다 있습니다. 그럼 이건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원망할까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으니까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으시다고 원망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 정도의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자가 먹잇감을 잡아 죽이는 것을 보고 “너무 잔인해요, 너무 불쌍해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가련함과 수치스러움은 보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건 보지 못하죠.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인류를 증오하지는 못할망정 동정하다뇨? 어느 편에 선 겁니까? 사탄의 편에 선 건가요? 하나님 편에 선 건가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운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마지막에는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실 것이고, 하나님은 누구라도 다 구원하실 겁니다.”라는 허튼소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요? 노아 시대에 노아의 가족 8명만 방주에 오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홍수로 죽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가운데는 노인, 여인, 어린아이들, 심지어 갓난 아기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 죽었죠. 그러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부류에 속하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고 계십니다. 그럼 이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시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허락하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큰 일도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안배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진리를 어떻게 찾고 구해야 할까요?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그걸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한다면 불신자에 속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재앙으로 처리하십니다. 재앙이 닥치면 불신자는 모두 죽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기 때문이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결말이 같을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거기에 진정으로 믿는다면 설령 패괴 유로가 좀 있다 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 어느 정도 순복하고 경배하게 됩니다. 비록 아직 정결케 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간혹 거짓말도 섞고, 심지어 과오도 있겠지만,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이 여전히 그 사람에게는 유효합니다. 그래서 살아남게 되는 겁니다. 사탄이 또 참소할 수 있을까요? 사탄은 참소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이 있기 때문에 속죄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효력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속죄제는 그런 사람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됩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2~3년 정도밖에 경력하지 못했는데, 재앙이 떨어진다면 아직 정결케 되지 않은 저희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물어 보고 싶은 사람이 많겠죠? 많을 겁니다. 아마 90% 정도는 다 그런 의문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분명해지셨나요? 아시겠습니까? 제가 좀 전에 어떻게 말했죠? 설령 아직 완벽하지 못하고, 패괴 유로도 좀 있고, 심지어 거짓말도 하고, 과오도 있다 해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진리 실제가 좀 있기 때문에 살아남게 되는 겁니다. 그런 과오가 있다 해도 죽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한번 음란을 저질렀다고 해서 죽게 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속죄제가 그 사람에게서 효력이 발생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20~30년 정도 경력해서 진리를 얻고 온전케 된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 봅니다. “이긴 자라는 칭함을 받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에게는 패괴가 전혀 없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패괴 유로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긴 자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대신해 그 죄를 담당하셨고, 이미 사해 주셨기 때문에, 사탄도 감히 참소하지 못하고, 참소할 권리도 없는 겁니다. 그럼 말세에 하나님께 온전케 된 이긴 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긴 자가 됐을까요? 그들은 아름답고 굳센 증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답고 굳센 증거는 뭘까요?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탄이 광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을 박해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간증을 굳게 선 것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따르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하고 또한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추구해 마지막에는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수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다 하나님 편에 서서 넘어지지 않고, 사탄에게 잡혀가지 않고, 끝까지 지킨 사람들을 이긴 자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긴 자의 증거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전쟁이 있다고 합시다. 한 개 연대 정도 되는 병력이 산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을 방어하면서 지킨다고 합시다. 거기에서 적군의 공격을 10번 이상 막아내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진지를 지키던 사람들은 한 개 중대 인원밖에 남지 않고 다 전사하게 됩니다. 그럼 그 한 개 중대의 사람들이 최후의 이긴 자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끝까지 견지하게 된다면 즉, 대재앙이 떨어지는 그때까지 견지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긴 자인 것입니다. 그 기간에 사탄의 수차례 시험과 공격, 박해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게 섰을 때, 바로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싸우면서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케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긴 자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으시죠? 어떤 사람은 “마지막까지 견지만 하면 이긴 자예요”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죠. 많은 시련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서야 이긴 자가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에서 실패합니다. 타협합니다. 사탄에게 용서를 빕니다. 그다음엔 교회에서 머릿수만 채우면서 따른다 해도 그건 이긴 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남편(아내)의 핍박과 위협을 받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해! 또 본분하면 끝이야!”라고 하면 “누구랑 살든지 맘대로 해, 난 본분하고 난 하나님을 따를 거야! 이혼해, 바로 수속할게.”라고 하면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체포되어 기소되고 실형을 받습니다. 하지만 자백서에 서명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아 몇 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옵니다. 이게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선 간증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도 버리고 자식도 버립니다. 넘어지지 않고 굳게 끝까지 하나님을 따릅니다. 그들이 바로 이긴 자죠. 각가지 상황이 다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 간증을 섭니다. 그런 사람들은 끝까지 본분을 다하고, 본분을 하면서 진리도 추구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대적도 점차 줄어들고, 저촉하는 마음도 점차 줄어듭니다. 마지막에는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었다고 느끼게 되면서 아무런 저촉도 없고, 관념도 없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긴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끝까지 따랐음에도 관념과 패역도 없애지 못하고, 교만 자대도 해결하지 못하고, 또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아 대충 때우고 기만하는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을 이긴 자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시련도 임하지 않게 됩니다.
지난 예배 때, 어떤 형제자매님들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짐승의 표’는 어떻게 된 거냐고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해석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해석하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에게 해석할 자격도 없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일을 성사시키고 그 일을 이루시는 걸 볼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겁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전능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예언은 사람이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해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표’에 대한 저의 조그마한 깨달음과 생각만 교통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혹시 어떤 분이 이렇게 설명하면 받아들일 수 없고, 찬성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각자의 깨달음이 있고, 각자의 선택이 있고, 또한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어떻게 깨닫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참답게 찾고 구하면서 절대로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진리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경력하면 됩니다. 늘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자대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예언은 사람이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억지로 해석한다면 100% 틀릴 것이고,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지 마세요. 자신의 관점과 인식을 말한다면 만약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근원이 정확하고, 길도 정확하고, 또한 효과도 좋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계시록에 나온 ‘짐승’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건 사탄의 정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탄의 정권은 뭘 말합니까? 각국의 정권, 큰 붉은 용의 정권을 가리키죠. 각국의 정권 중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속한 거라면 그리스도의 나라겠죠. ‘짐승’은 각국의 정권을 말하는 것이고, ‘큰 음녀’는 교계를 말하는 겁니다. 어떤 건 천주교를 말하고, 어떤 건 기독교를 말하는 겁니다. 어떤 교든 다 음녀이고, 세상과 음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정하지 맙시다. 저는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대략 이렇게 갈피만 잡아주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나신 것은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사탄의 사악한 세력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어떤 사역을 하러 오셨을까요? 첫 번째,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겁니다. 두 번째, 이 시대를 끝마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들입니다. 하나님나라시대의 자민은 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로 인해 온 교계와 그리고 마지막엔 전 세계가 다 그리스도와 싸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선민들은 세계 각종 짐승과 음녀의 박해를 받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고 하셨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어떤 분들은 그럼 ‘짐승의 표’는 뭘 말하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짐승의 표’는 구체적으로 뭘 말하고 있는지, 지금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사실을 한가지 알려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사탄과의 많은 싸움, 사탄에게 빼앗기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박해하려고 하고, 또 우리를 핍박해서 감옥에 넣고, 살길을 끊어 버리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각종 시련이 닥치면 누군가는 사탄에게 잡혀가는 일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잡혀간 다음, 일단 사탄 편에 서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의 믿음은 불합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불신파라고 하십니다. 불신파는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런 게 짐승에게 잡혀 간 것에 속합니다. 사탄에게 잡혀가거나 투항한다면 하나님 편에서 봤을 때, 짐승의 표가 있게 되는 겁니다.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큰 붉은 용이 와서 잡아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계속 믿으면 옥살이시킬 거야! 징역 몇 년 때릴 거야! 남편(아내)의 직장도 잃게 되고, 자식들 대학입시 자격도 박탈시킬 거야! 그리고 가족들 일자리도 다 막아 놓고, 살길도 다 끊어 버릴 거야!”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짓거리 아닙니까? 어쨌든 각종 시련이 다 닥치게 됩니다! 오늘 임하지 않았다면 내일 임할 것이고, 내일도 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시련이 임하게 하십니다. 왜 시련이 임하게 할까요? 시련이 없다면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환난 속에 빠뜨리지 않으면 충성을 볼 수 없고, 진심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그 진심과 충성심과 순복을 반드시 드러내야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매 사람에게 다 그렇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나라시대는 그렇게 점검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렇게 점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 어떤 관문에서 사탄에게 사로잡히거나 ‘짐승의 표’를 찍게 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영영 잃게 되는 겁니다.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으로 들림받은 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싸움과 큰 환난이 닥치게 될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지 계시록에서 찾아보세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자”(계 7:9),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계 7:14), 그런 구절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한 걸음도 뒤처지지 않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긴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위해 증거한 사람도 있고, 순교한 사람도 있습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수님을 위해 증거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말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는 딱 보면 몇 부류의 사람들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결말이 있게 되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는지,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자들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몇 부류의 사람들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132-A-7】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는 다 짐승의 표를 받게 됩니다. 그 표는 도대체 어떤 상징들이 있을까요? 꼭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얼굴에 ‘죄수’라고 찍었던 것처럼 그런 짐승의 표가 아닙니다. 그건 자백서를 쓰거나 사탄에게 항복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인하는 말을 했을 때, 그걸 녹음해 놓습니다. 그러면 끝장인 겁니다. 그런 건 다 짐승의 표를 받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사탄에 사로잡히고 삼켜진 증거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거죠. 아시겠습니까?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의 큰 싸움과 큰 시련이 임하게 될 때, 정말 사탄에게 사로잡힌다면 바로 짐승의 표가 찍히게 되고, 끝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굳게 서게 되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긴 자가 돼서 천국으로 들림받게 되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단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00%입니다. 그걸 기억하시면 됩니다. 짐승에게 잡혀가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겁니다. 앞으로 온 세상은 다 이걸 가지고 싸우게 될 겁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사탄이 거룩한 성을 공격할 것이고, 온 기독교, 가톨릭, 유대교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와 싸우게 될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짐승의 표를 받게 되고, 짐승에게 잡혀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일단 교계와 합하고 세상의 사탄 정권과 합하게 되면 즉, 세상을 따르고 교계를 따르는 것이면 다 짐승의 표가 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교계의 사람들을 보세요. “우린 끝까지 교계와 생사를 같이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끝난 겁니다. “우리는 무조건 큰 붉은 용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끝났습니다. 전부 다 짐승의 표를 받은 겁니다. “우린 절대적으로 가톨릭을 따르고 기독교를 따를 것이다!” 끝장입니다. 짐승의 표가 찍히게 됐습니다. 교계는 ‘음녀’이고, 사탄 정권은 ‘짐승’입니다. 아셨습니까? 이게 대략의 윤곽입니다. 우리는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뭘 가리키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걸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연구해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성경을 해석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틀리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여러분의 진입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유익하실 겁니다. 이건 성경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해석하면 유익을 얻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나 제가 이렇게 진리를 교통하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급선무는 뭘까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되면 참 도에서 뿌리내릴 수 있고, 일단 뿌리내리게 되면 더 이상 짐승에게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절대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으면 위험합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죠.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말 한 마디 했는데,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결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대문을 나가 버렸습니다. 끝난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제 말을 듣고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대립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그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면 누굴 탓할까요? 저를 탓할 수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제가 했던 말 한 마디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세 사역을 거부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거부한 겁니다. 교계가 정죄하고 세상의 정권이 정죄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걸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이 사실만 지킨다면 짐승에게 잡혀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 이름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납니다. 믿은 게 수포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주님을 믿어도 그저 조용하게 살고, 세상과 싸우지 않으려고 믿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걸로 충분해요. 저는 시비에 말리고 싶지도 않고,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아요.”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어떤 말인가요? 허튼소립니다! 시비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탄이 찾아옵니다. 사탄은 꼭 죄를 정하고 핍박하겠다고 하는데, 말려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건 우리가 시비 거는 게 아닙니다. 누가 시비에 말려들기 좋아하겠습니까? 다 조용히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과 정결을 경력하고 싶어 하지, 누가 그 자들을 건드리고 싶어 하겠습니까? 문제는 그 자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그들이 더러운 죄를 뒤집어 씌우겠다고 합니다. 계속 정죄하고 붙잡겠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위해 굳센 간증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건 마귀가 일부러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겁니다! 마귀가 “당신,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 따르면 이혼할 거야! 우리 가족 다 당신을 버릴 거야!”라고 말합니다. 대체 누구의 문제입니까? 우리가 “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반드시 당신과 이혼해야겠어, 더 이상 살 수 없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마귀가 그렇게 통제하는 겁니다. 믿지 않는 가족과 믿지 않는 자녀들이 그렇게 통제하는 겁니다. 그들은 마귀의 도구입니다! 마귀는 그들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자매들을 보면 감옥에 잡혀갑니다. 그리고 공안에서 어떻게 심문하죠? “자백서 써.” “안 써요.” “일단 ‘안 믿겠다’고 하면 바로 풀어 줄 거야.” “싫어, 끝까지 믿을 거야!”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귀도 방법이 없으니까, 약점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저 여자는 남편을 아주 사랑해요. 자기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니까, 남편이 믿지 말라고 설득하면 따를 거예요.”라고 알려 줍니다. 그래서 남편이 와서 설득합니다. 그래도 그 자매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약속했잖아요? 상관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이제 와서 왜 그래요? 정말 이럴 거면 이혼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합니다. 남편도 설득에 실패하고 경찰에게 알려 줍니다. “아들의 말을 제일 잘 듣습니다. 아들이 와서 말하면 통할 겁니다.” 결국 아들이 와서 말합니다. “엄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엄마가 감옥에 있으면 난 엄마가 없잖아! 엄마 사랑을 잃게 돼.” 아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 자매는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그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냥 자백서에 사인하자.’ 사인을 하고 나옵니다. 감옥을 나섰는데, 마음은 흑암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마음에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왜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괴롭지?’ 집에 돌아가서 통곡합니다. ‘사인을 하는 게 아니었어! 속았구나! 빨리 알았으면 사인하지 말걸, 사인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 괴로워. 이런 고통은 정말 처음이야.’ 하염없이 울다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자백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감옥에 한번만 다시 가게 해주세요, 감옥에서 죽을지언정 절대 다시 사인 같은 거 하지 않겠습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정에 휘둘리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정 때문에 사탄의 손에서 자신을 망칠 수 있습니다. 제 말이 맞나요? 어떤 사람은 “다 안 믿어도 난 끝까지 믿을 거예요. 다 안 따른다 해도 난 따를 거예요! 옥살이를 하더라도, 감옥에서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거예요!”라고 합니다. 말은 참 좋습니다. 문제는 정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아내(남편)와의 정도 깊고, 자녀들과의 정도 깊습니다. 정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말도 빈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탄에게 사로잡힌다는 건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믿지 않거나 믿고 싶지 않아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잡혀간다는 게 아닙니다. 그때가 되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임하면 자기도 모르게 간증을 잃게 되고, 사탄과 타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본분을 하다가 일이 터지고, 또 어떤 사람은 저 본분을 하다가 일이 터집니다. 어떤 일이 터져서 사탄에게 사로잡힐지 모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긴 자의 간증을 굳게 서는데, 그 사람은 시련에서 넘어집니다. 욥을 보세요, 시련이 닥쳤을 때,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모든 은혜와 축복이 하루아침에 사탄에게 다 뺏기고 사라졌습니다. 욥은 그 자리에서 반성합니다. 속으로 기도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건 사탄이 빼앗는 일이 아니다, 이 뒤에는 하나님께서 거두신 거야. 하나님께서 거두신 거면 순복해야 돼.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돼.” 침착하게 반성하고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간증을 보세요, 욥은 일에 닥쳤을 때, 아주 침착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꼭 “쫓아갑시다. 우리도 100명 정도 사람 모아서 가서 찾아옵시다!”라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욥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 일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지 반성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라면 사람이 되찾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셨으면 거둘 수도 있는 거고, 하나님께서 다시 주시면 또 받게 되는 겁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설령 다시 찾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거두신다면 다시 찾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시려고 한다면 아무리 쫓아도 소용없습니다. 욥은 그런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참 도에 뿌리를 든든히 박아야 시련을 당해도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자마자 바로 책망과 심판 형벌이 임합니다. 그건 좋은 일 아닙니까?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겉보기에 책망이든, 질책이든, 아니면 시련이든, 연단이든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깨달으라는 겁니다. 그 일에서 유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라는 거죠. 그러면 축복으로 바뀐 게 아닙니까? 축복이 된 것입니다. 유익을 얻게 된 거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겠죠!
우리가 오늘 교통한 이 말씀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불신의 불순물들을 보게 되셨나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늘 관념이 생기는 것이 불신의 성분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늘 관념이 있는 것도 불신의 성분입니다. 또한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대해 관념이 있는 것도 불신의 성분입니다. 순복하지 않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을 받으려면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가장 좋은 행실은 바로 모든 일에서 먼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 관념이 생겼다면 그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면 되고, 어떤 일에서 순복하지 못했다면 그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면 됩니다. 많은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거나 혹은 많은 일에서 다 진리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참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에는 불순물이 있는 겁니다. 교계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100% 인정은 하지만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정죄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다 불신파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 인정할 뿐,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진리는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편에서는 다 불신파이고, 다 하나님의 배신자들인 겁니다. 그리고 다 정죄받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꿈도 꾸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대재난이 끝난 뒤에,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예, 있습니다. 하는 일들이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는 일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자민들이 관리하게 될 겁니다. 설령 교계의 명성 높은 박사나 설교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관념이 있고, 순복하지 못하고, 말세의 그리스도가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입니다! 전형적인 적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되는 건 유대교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드러난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침륜되고 멸망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겁니다. 영계에는 그런 적그리스도들을 전문적으로 징벌하는 곳이 있습니다. 현재 바울의 영혼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있습니다. 말세에 교계의 지도자들의 결말도 바울과 같습니다. 다 그곳으로 끌려갈 겁니다. 베드로의 영혼은 천국에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전부 천국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그리스도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인 우리는 가장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간증을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잡혀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엔가 시련이 닥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병이 나서 죽게 되거나 혹은 드러나게 된다면 끝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태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다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불신파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아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1년, 2년밖에 안 믿었는데, 진리를 좀 깨닫고 좀 변화되어 대재난이 와도 넘어지지 않고, 죽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20년이나 믿었지만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고, 본분도 잘 하지 않아 대재난이 오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은 햇수에 상관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햇수는 주된 요소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걸 기억하세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가 거의 끝날 때가 됐네요, 근데 저는 이제 막 믿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너무 짧지 않나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일찍 믿었을 걸 그랬어요, 아쉬워요! 제가 앞으로 2년 내에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제 갓 믿은 사람은 오래 믿은 사람과 비하면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면 어떤 분들은 갓 믿기 시작했지만 아주 좋습니다. 영도 통하고 단순하고 진리에도 순복합니다. 그런 분들은 전망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다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으시고, 진리도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습니다.
【132-A-8】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일이 임했을 때, 진리가 뭔지, 규례가 뭔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 이방의 사탄의 말은 진리가 아닌가? 성인들의 책에 있는 명언들은 진리가 아닌가? 이방인들의 명언도 듣기 좋은데, 그건 진리가 아닐까? 교계에 유명한 사람들이 했던 멋진 말들은 진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많은 사람들은 분별할 줄 모릅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할 줄 모르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의 말이 있습니다. 그게 진리입니까? 이런 뚜렷한 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진리입니까? “착한 사람은 일생이 평안하다.” 그 말은 진리일까요? “모든 것이 하찮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라는 말은 진리인가요? 지식이 진리인가요? 철학이 진리인가요? 과학은요? 법은요? 다 아닙니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이 임하면 분별할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일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녀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은 사람이 교육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하셨다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그것은 교육의 결과가 아닙니다.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좀 있게 해 주고, 규칙적인 생활을 좀 하게 할 뿐입니다. 그저 그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세계관은 교육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 실질도 교육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는 것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교육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됩니다. 큰 붉은 용이 있는 곳에 데려다가 몇 년만 교육받게 하면 그 사람은 끝납니다. 큰 붉은 용의 독소로 꽉 찰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사탄은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교육을 한다 해도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본성이 어떠면 그냥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커서 마귀가 될 사람은 결국 마귀가 되고, 사탄이 될 사람은 역시 사탄이 됩니다. 늑대는 태어나서부터 늑대인 것과 같습니다. 개 젖을 먹이면서 개처럼 키워도 여전히 늑대입니다. 본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 이방인들 속담에 “인생은 팔자소관이라, 모든 것이 다 운명대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는 아니지만 사실에 부합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맞는 말이고, 사실에 부합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팔자소관’이란 것도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시간 몇 분 몇 초에 태어나는지, 거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과 운명이 그 몇 글자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누가 하나님을 언제 믿게 되는지, 언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일이 닥치게 되는지, 어떤 결말이 있게 되는지는 하나님께서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정하신 것은 정하신 것이지만 사람이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을 다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 한 가지를 남겨두셨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수년간 효력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을 얻어 자민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풍수나 세력에 의존해서는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력과 수단으로 물질적인 이득과 혜택은 조금 얻을 수 있겠지만, 결말은 바꿀 수 없습니다. 죽어야 할 사람은 어쨌든 죽게 되고, 멸망돼야 할 사람은 어쨌든 멸망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리를 추구한다면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진리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노하지 않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진노는 그것으로 인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사람의 운명도 바뀌게 되고, 그 자녀들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천대까지 복을 베푸십니다. 그리하여 자녀들도 따라서 복을 받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미워한다면 자녀들도 같이 불행해지고, 삼사대까지 그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보세요, 무서운 겁니다. 사람의 운명은 진리를 추구해야 바꿀 수 있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 위안씩 들여서 배운 그 지식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이고, 멸망이고, 침륜입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진리를 추구해서 진리를 얻게 된다면,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따라서 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되어 사탄의 성정을 정결케 하고, 사탄의 본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사람에게 진정한 인생과 영생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진리는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진리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도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행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도, 요구하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진리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 축복받게 되고, 궤사한 자가 된다면 훼멸될 것입니다. 한번 진리가 맞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되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나요?”라고 묻습니다. 예, 맞습니다. 성실한 사람만 된다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왜냐면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갖추라고 요구하신 진리를 실행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보호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100%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람이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멸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이방인들이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통하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문제 답변
질문 (1)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경력해야 합니까? 그리고 또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다음과 같이 답변함: 이 문제를 간단히 교통해 보겠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일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서 사람의 패괴가 정결케 되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곧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그 과정은 진리가 있는 환경이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진리가 있는 환경’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바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본분을 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면서 협력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면 그 효과는 가장 좋고, 가장 이상적이 됩니다. 어떤 분은 “저는 그런 환경이 안 돼요. 가정 살림도 어렵고, 생계를 위해서는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교회 생활에 참여한다거나 본본을 할 여건이 안 돼요.”라고 합니다. 그런 분들은 집에서 경력하시면 됩니다. 설교 교통을 듣고, 형제자매 두세 사람씩 모여서 접촉도 하고, 교통을 좀 해도 됩니다. 하지만 진리가 있는 교회 환경에서 본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과는 효과의 차이가 많이 있겠죠?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다 똑같이 경력하는 겁니다. 진리가 있는 교회 환경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면서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되고, 마지막에 패괴 성정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에 대해 갈수록 많이 알게 되고, 하나님과 점점 더 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합하게 되면 하나님께 순복하니 즐겁고 행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니 즐겁고 행복한 겁니다. 사는 것도 점점 더 행복해져 마치 셋째 하늘에서 사는 것과 같죠. 이것이 진리가 있는 교회의 환경에서 경력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만약 이런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직장도 다니고 일도 하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도 좀 보고, 설교 교통도 좀 듣고, 진리를 교통해도 됩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보다 못하고, 얻는 것도 적고, 진보도 느릴 것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경우는 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속합니다. 아셨나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다가 핍박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책망과 질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출교되었다가 다시 회개하고, 선행을 예비해 어쨌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수년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일들을 경력했습니다. 하지만 다 어느 정도 진리를 얻게 되었고, 큰 유익을 얻어 생명 성정도 다 어느 정도 변화됐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서 그런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좌절과 실패를 통해 서로 적응하고 충돌하면서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확실히 변화가 좀 생겼습니다. 또한 얻게 된 진리 생명은 너무 많고, 얻은 것도 너무 풍부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일들을 경력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성과를 얻었고, 많은 진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교회 생활이 우리를 배양시키고 단련시킨 게 아닙니까? 우리가 교회 생활을 통해 그렇게 성장하면 점차 패괴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과 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대재난이 올 때는 다 살아남게 될 겁니다. 살아남게 된 뒤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실현되면 그리스도 나라의 사람이 됩니다.
질문 (2):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최소한 기본 양심과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교통에서 하나님이 “기본 양심이 없고 인성 품격이 없는 사람, 즉 인성 품격이 극히 악랄한 사람, 인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느냐?”라는 문제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예배에서도 교통해 보았지만 아직 밝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형제님이 다시 한번 교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과 같이 답변함: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드러낸 말씀입니다. 또한 사람의 일종의 패괴 정형을 드러낸 거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난 뒤, 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본 양심이 없고 인성 품격이 없는 사람, 즉 인성 품격이 극히 악랄한 사람, 인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무엇을 통해 생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정말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 품격도 없고, 인격 자체가 아예 없다면 그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본 양심도 없고, 품격도 없고, 인격도 없다면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책망과 질책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 아무리 정확하게, 사실에 맞게 책망한다 해도 반항할 것입니다. 심지어 욕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럼 이제 이 질문의 답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우리 다수의 사람들은 지난날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모습을 돌아보면, 정말 교만하고, 자대하고, 독선적이고, 미련한 일들도 했었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거짓말도 하고, 또한 자신의 이익만 지키려고 하고, 체면을 지키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과 엄격하게 비춰 보니, 자신에게는 정말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 품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인격조차 없는 뻔뻔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게 되죠. 하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다 순복할 수 있게 되죠. 그런 경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난 전에는 기본 양심도, 인성 품격도 없었어! 인격 자체가 아예 없었지.”라고 하면서 그 점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책망과 질책이 임해도 인식할 수 있고, 순복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시든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런 사람과 앞에서 말했던 사람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은 기본 양심과 인성, 인격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고, 후자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심판과 형벌에 순복할 수 있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겉으로는 “아, 나는 기본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고, 사람도 아니구나. 진리라곤 전혀 없고, 거짓말만 하는구나!”라고 인식하지만, 그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질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 사람은 기본 양심과 인성 품격이 없고 인격이 없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패괴를 인식한 것입니다. 원래 전혀 인식하지 못한 사람과 구별이 되죠. 아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답이 없는 이방의 짐승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짐승이고,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할까요?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할 겁니다. 짐승이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욕하고 싸우려고 달려들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면의 행실도 그런 자보다 좀 낫습니다. 그런데도 심판과 형벌을 통해 자신은 짐승이고, 인성이 없고,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인성이 없는 것이고, 누가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걸까요? 분별하실 수 있겠죠?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인성이 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만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끝난 겁니다. 그게 진짜 인성이 없는 거죠. 이런 구별점이 있지 않나요?
질문 (3): 어떻게 해야만 성령 역사에 유의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답변함: 성령 역사에 유의하려면 우선 성령께서 어떤 역사를 하시는지, 성령이 역사하시는 원칙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원칙은 주로 사람을 깨우쳐 주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때가 더 많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해 주는 것을 위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받은 사람, 참 도를 이제 막 받아들인 사람에게 시련이 임하고 환난이 닥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때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감찰하십니다. 시련과 환난이 닥치면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서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해 보세요. 그때가 바로 성령께서 가장 잘 깨우쳐 주실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찾고 구할 때, 성령의 역사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련과 환난에 부딪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고 육체의 안일을 탐할 때, 그리하여 마음에 공허한 느낌이 들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화가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때도 성령의 역사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몇 가지 관건적인 시간, 관건적인 시각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찾고 구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역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